지난 일요일 오전에 보성군 벌교읍에 있는 태백산맥문학관을 방문했다.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1989년 완간)을 기념한 문학관으로 박경리의 <토지>를 기념한 하동의 박경리문학관에 견줄 만한 곳이다. 조정래문학관이라는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것은 소설 <아리랑>의 무대가 되는 전북 김제에 조정래아리랑문학관이 따로 있어서다(고흥에는 조종현-조정래-김초혜 가족문학관이 건립돼 있다. 한국에서는 이례적일 듯싶다. 박경리 선생도 하동 외에 통영과 원주에 각각 문학관이 세워져 있기는 하다).

적고 보니 내년이 완간 30주년이다(아마도 기념행사가 준비되고 있지 않을까). 작가가 1943년생이므로 <태백산맥>은 40대에 쓰인 노작이다(40대에 이만한 작품을 써낸 작가가 그 이후에는 없는 듯싶다. 요즘 40대는 ‘젊은 작가‘로 분류된다). 사실 대하소설들은 구입도 그렇지만 보관도 여의치 않아서 완독하지 않은 <태백산맥>이 서고에 있다. 내년에는 먼지를 털어내고 완독도 하고 겸사겸사 강의도 진행하면 좋겠다(대략 4-5주 일정이겠다). 짝이 될 만한 것은 <아리랑> 외에 이병주의 <지리산>, 박경리의 <토지> 등이다(최명희 <혼불>까지 더하면 한국문학이 자랑하는 대하소설군이 된다).

태백산맥문학관은 기대한 만큼이었다(이상도 아니고 이하도 아니고). 다른 문학관을 많이 보아온 때문. 작가의 육필원고뿐 아니라 아들과 며느리의 필사원고도 전시하고 있는 것 정도가 특이하다고 할까. 해방 이후 최고작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지만 과문한 탓인지 <태백산맥>에 대한 비평과 연구는 (<토지>에 견주어도) 풍족해 보이지 않는다. 따로 이유가 있는지는 작품을 읽고서 더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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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강의차 용산역으로 향하는 중이다. 날짜로는 겨울 첫날. 옷을 하나 더 껴입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연말 일정도 일정이지만 막달이 되고 보니 내년 구상도 안 할 수 없다. 상반기 강의 일정이 어느 정도 정해졌지만 새로운 주제 몇 가지를 더 채워넣을 수는 있다. 그 중 하나는 한국대문학 대표 작가 읽기인데 이미 작년에 진행했던 강좌의 보충강의다.

손창섭과 김승옥부터 이인성과 이승우에 이르는 한국문학 강의에서 다루지 못한 건 김동리 계보의 작가들로 대표적으로는 이문구와 박상륭을 들 수 있다. 김승옥과 같은 세대로 1960년대에 등단하여 활동한 시기가 비슷하고 이후가 각자 독자적인 자기 문학을 구축한다. 박상륭에 대해서는 강의에서 가끔씩 문의를 받고는 하는데 아직까지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그의 대표 중단편과 <죽음의 한 연구>까지가 다룰 수 있는 범위인데(<칠조어론>까지 읽을 여유는 없다) 김승옥 문학이 간 길, 가야 했던 길에 견주어 박상륭의 의의와 문제성을 짚어보는 게 목표다(소설과 잡설의 차이).

박상륭의 작품들은 예전에 한 차례 구입했지만 빠진 것도 있어서 이번에 다시 구입했다. <열명길>은 예전판 그대로이고 <죽음의 한 연구>는 판갈이를 했다. 후기 단편집 <평심>도 구했다. 이문구의 <관촌수필>은 이번에 문지클래식 양장본으로 다시 나왔다. 김동리 소설은 <무녀도>(<을화>)를 다루게 될 듯하다. 영국문학기행을 앞두고 내년 여름에는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읽을 예정이다. <율리시스>를 읽고 방문할 더블린의 모습이 기대된다.

열차가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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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8-12-01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음의 한 연구>가 집에 온 날.
두께에 심~하다,
앞 페이지 열어보고 와! 재밌겠다,
그러곤 근처에도 가지않았다는^^
<관촌수필>은 재미있었어요.

강헌의 명리학 강의에서
뜨거운 사주, 조습한 사주를 논할 때
거주지 생활습관 음식을 조언해주세요.
제가 인스타 팔로잉하는 영국사람이 있는데 그들은 틈틈이 이탈리아로 여행을 가더군요.
제 일터가 습하고 추워요.
문득 요즘은 여행은 아니더라도 이탈리아 관련 책을
읽으면 어떨까란 생각이^^;;
로쟈님도 꿀 넣은 생강차,
따끈하게 아침저녁으로
드셔요, 그러면 벽돌책이 좀 가벼워질 거 같아요~~^^*

로쟈 2018-12-02 23:05   좋아요 0 | URL
네, 생강차를 자주 찾아야겠군요.~

wingles 2018-12-02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나.. 조이스를 따라 가는 더블린 문학기행! 제 위시리스트 중에 하나인데.. (대중에게 오픈되는 건지 뭔지 모르지만) 9월엔 갈수 없는 신세..ㅠㅠ 혹시 나중에 루트를 살짝 알려주실수 있다면 제 휴가때 그대로 밟아보고 싶어요.

로쟈 2018-12-02 23:04   좋아요 1 | URL
내년 가을에 영국문학기행의 일부로 더블린을 방문하려고 해요. 확정되면 공지할 예정입니다.~
 

오랜만에 감기 환자가 되어(병원 신세까지 진 건 아니지만) 두 시간 저녁잠을 자고 회복기 모드로 넘어가는 중이다(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피로나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고 감기 또한 원인은 다른 데 있는 것 같지 않다. 피로 누적에 기온이 떨어진 게 불청객을 불러들인 것. 하루 정도 묵었으니 내일 아침까지는 배웅할 수 있기를 바랄 뿐.

이것저것 할일이 많고 그 중에는 새로 나온 책들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일도 포함되는데, 정리할 공간이 더이상 남아있지 않아 바닥에 쌓아두기 시작한 이후로는 언제나 허덕이는 일이다. 비유하자면 업무가 점점 가중되는데 사무실 일손은 바닥난 상황이라고 할까(한때 ‘최근에 나온 책들‘을 열심히 주워섬기기도 했지만 그런 열정은 더이상 남아있지 않다). 토드 메이의 <부서지기 쉬운 삶>(돌베개)을 손에 들자니 제목에 이래저래 떠오르는 생각들이다.

토드 메이는 <질 들뢰즈>(경성대출판부)로 안면을 튼 저자인데 벌써 10년 전에 나온 책이다. 그 사이에 <죽음이란 무엇인가>(파이카)도 나왔지만(구매한 책이다) 절판되었다. <부서지기 쉬운 삶>의 원서를 주문하면서 확인하니 독자적인 책을 여러 권 더 펴냈다. <부서지기 쉬운 삶>을 읽어보고 추가적인 구입도 고려해보려 한다. 소개는 이렇다. ˝‘나는 지금 여기서 무얼 하고 있지?‘라고 자문하는 사람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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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1 0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01 1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주말의 지방강의를 남겨놓고 있지만 11월 한달간의 긴 일정이 끝나간다(주말은 12월이군). 전국일주 수준의 지방강의가 연이어 있었고 주말과 휴일도 없다시피 했다. 일단락되고 보니 무탈하게 소화했다는 안도감이 든다. 후유증이 없지는 않아서 점심부터는 감기 증상이 있다(미세먼지 탓인지도 모른다). 경과는 내일 아침이 돼봐야 알 것 같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는 것처럼 12월에는 12월의 일정이 있고 그 또한 만만치는 않다. 다만 지방강의가 줄어서 이동거리도 현저하게 줄 예정. 그렇지만 한해를 정리하는 일정들이 추가되기에 마음은 계속 분주할 듯싶다. 더불어 내년도 준비해야 하는데, 관심주제 가운데 하나로 ‘니체와 도스토예프스키‘도 꼽고 있는 터라 최근 며칠간 니체의 책들도 새로 구입하거나 다시 구했다. 이번주에 새 번역본이 나온 <선악의 저편>(아카넷)도 그 중 하나.

돌이켜보니 청하판으로 읽은 게 거의 30년 전이지 싶다. 책세상판 전집으로도 일부 장을 읽었지만 통독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에 이번에 3종의 번역본을 나란히 빼놓았다. <선악의 저편>은 1886년에 나왔으니 <차라투스트라>에 바로 뒤이은 후기작이다. 그렇지만 보통은 <차라투스트라>보다 먼저 읽어보도록 권장하는 니체 입문서가 <선악의 저편>이다. 따로 페이퍼를 적겠지만 12월의 고전으로 <선악의 저편>을 읽으려고 하고, 겸사겸사 니체와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생각도 정리해보려 한다.

절판된 책들 가운데는 레프 셰스토프의 <니체,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비극의 철학>(현대사상사)도 찾아볼 참이다. 박스보관도서라면 도서관에서 빌려야 하는 상황. 약에 쓸 책들은 항상 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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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gles 2018-11-30 0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찾으려면 그 책이 없는 경우가 종종 있죠~ㅎㅎㅎ 내년엔 니체와 도스토옙스키 강좌를 기대하며 저도 읽어봐야 겠네요. 날씨 안 좋은 요즘, 꼭 건강 유의하시길..

로쟈 2018-11-30 09:46   좋아요 0 | URL
네 감기 조심하세요.~

가명 2018-12-01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최근에 든 생각인데 전자책활용이 어떨까요 종이책을 읽은 다음 보관은 전자책으로 하는거죠

로쟈 2018-12-01 10:53   좋아요 0 | URL
네 그것도 방도인데 저는 종이책 세대라 책은 손에 들 수 있어야.^^;

오지 2018-12-07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이책~^^ (종이책 읽기를 권함 /김무곤/더숲)
니체를 손에 들었어요~초반 넘어가고 있는데 그의 마음을 먼저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새벽까지 전투를 할까합니다.
 

이번주 주간경향(1304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헤밍웨이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소담출판사)를 다뤘다. 결말 부분이 소설로서는 흥미롭지만 사회소설로서의 결함이라고 생각되었다. 헤밍웨이 작품 가운데 최고 졸작으로 평가되는 <강 건너 숲속으로>도 다시 번역돼 나오면 좋겠다 싶다(과거 전집판으로 한 차례 출간된 적이 있다). 여러 모로 반면교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험프리 보가트 주연의 영화 <소유와 무소유>(1944)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원작이지만 소설과는 내용이 많이 다르다. 영화 각색에는 포크너도 참여한 사실이 눈길을 끈다... 


 

주간경향(18. 12. 03) 헤밍웨이의 미국 대공황 사회소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는 가장 유명한 미국 작가라고 해야 할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가장 덜 알려진 소설이다. 생전에 발표한 다섯 편의 주요 장편소설 가운데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와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대표작으로 환대를 받았다면 <노인과 바다> 직전에 발표한 <강 건너 숲속으로>와 함께 이 작품은 작가의 명성에 못미치는 작품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럼에도 이 소설에 관심을 갖는 건 거장의 ‘졸작’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헤밍웨이의 작품으로선 희귀하게도 미국의 현실을 다룬 ‘사회소설’이라는 점 때문이다.


1920년대에 발표한 두 편의 장편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무기여 잘 있거라>는 미국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공간적 배경은 미국과 거리가 멀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에 와서야 비로소 미국 사회의 현실을 다루게 되는데, 소설이 쓰인 1930년대 중반은 1929년 대공황의 여파로 실업자가 급증하고 빈부격차가 심화하던 때였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라는 제목 자체가 이 시기의 문제적 상황을 압축하고 있다. 자연스레 주목하게 되는 것은 자신의 분신적인 ‘고독한 개인’을 주인공으로 삼아온 헤밍웨이가 ‘가진 자(유산계급)’와 ‘못 가진 자(무산계급)’의 대립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느냐다.



주인공 해리 모건은 플로리다 남단 키웨스트에서 낚싯배 대여를 생업으로 삼고 있는 중년 가장이다. 그에게는 아내와 세 딸이 있다. 키웨스트는 쿠바와 가까워서 큰돈을 주겠다는 밀항자들이 있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불법까지 저지르려고 하지는 않는다. 자칫 가족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어서다. 그런데 그에게 몇 주간 배를 빌리고 바다낚시 중에 낚시도구들까지도 날려버린 한 부자가 그의 돈을 떼먹고 달아나는 일이 벌어진다. 졸지에 빈털터리가 된 해리는 하는 수 없이 밀항자들과 거래를 하고 급기야는 살인까지 저지른다. 


그의 추락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데, 쿠바에서 술을 밀수하다가 쿠바 경비대의 총격으로 한쪽 팔을 잃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 관리에게 밀수사실이 적발돼 배마저 압류당한다. 바닥에까지 내몰린 해리는 거액의 돈을 받는 조건으로 압류된 배를 훔쳐내 쿠바 혁명조직의 밀항을 거들지만 도중에 그들과 교전이 벌어져 숨지고 만다. 그가 숨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은 “한 사람으로는 안 돼”라는 것이다. 

보통의 사회소설에서라면 해리의 마지막 각성은 사회문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의 문제이며 그 해결은 집단적 차원, 계급적 차원에서 모색되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유도된다. 하지만 노동운동이나 쿠바에서의 혁명 시도에 회의적이었던 헤밍웨이는 이 작품에서도 예상 밖의 결말을 제시한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립이 역전돼 부유층 여성들이 실제로는 해리와 같은 남자다운 남자를 ‘갖지 못한 여자’이며, 반대로 해리의 아내 마리는 가난하지만 해리와 같은 남자를 ‘가진 여자’라는 것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립이 이렇게 해소되기에 헤밍웨이는 빈부의 문제를 더 이상 다룰 필요가 없어진다. 헤밍웨이식 사회소설의 흥미로운 결론이다.


18.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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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11-27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좀 당황스러운 결론이였어요.
헤밍웨이가 너무 성급한 결론을 내린것은 아닌지
이미 가진 자라서 그 문제를 빨리 해치워 버리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그리고 또한가지,
여자에 대해서, 결혼(부부)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것은 아닌가~

로쟈 2018-11-27 23:16   좋아요 0 | URL
헤밍웨이가 기대하는 여성상이라고 생각해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여우 2018-12-13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입하고 아직 읽지 않앗는데. 빨리 읽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