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까지 대전예술의전당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 원작의 <백치>가 무대에 올려진다. 방대한 분량의 작품이 2시간 25분 분량의 연극으로 제작되었다(15분간의 인터미션 포함). 뮈시킨과 나스타샤, 로고진 등의 인물들을 국내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서 만나보는 드문 경험을 제공한다(10월 초에는 국립극장에서도 무대에 오른다). 작품해설을 청탁받아 팜플렛에 실은 글을 옮겨놓는다. 지난 화요일 아침 지방강의차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쓴 글이다. 


도스토옙스키와 백치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는 1821년 빈민구제병원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투르게네프나 톨스토이와 같은 동시대 작가들과는 달리 도스토옙스키는 잡계급 출신의 작가이다. 제정 러시아에서는 귀족도 농민도 아닌 중간층을 잡계급이라고 불렀는데, 의사와 상인, 성직자가 여기에 속했다. 공병학교에 다녔지만 문학청년이었던 도스토옙스키는 유럽문학의 거장으로 부상하던 프랑스 작가 발자크와 영국 작가 디킨스를 탐독했다. 바야흐로 1830년대는 근대 사회소설이 본격적으로 발아하던 때였다. 러시아문학사에서도 1830년대는 이전의 서정시 중심의 낭만주의문학에서 산문소설 중심의 사실주의문학으로 이행해가던 과도기였다. 도스토옙스키는 러시아 국민문학의 바탕을 마련한 푸슈킨과 고골의 작품들을 읽으며 작가의 꿈을 키워나갔다.  

공병학교 시절 도스토옙스키는 낭비벽으로 늘 돈에 쪼들렸고, 아버지에게 돈을 요구하는 편지를 줄기차게 보냈다. 작가로 데뷔한 이후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아서 투르게네프에게도 손을 벌렸다가 사이가 틀어진 일화는 유명하다. 도스토옙스키가 빌려달라는 돈의 절반만 빌려준 투르게네프가 나중에 전부를 빌려주지 않았느냐고 착각하는 바람에 도스토옙스키의 분노를 산 것이었다. 두 사람은 도스토옙스키가 죽기 수개월 전에야 화해했다. 이러한 이력을 갖게 될 작가의 데뷔작이 <가난한 사람들>이란 건 잘 어울리는 일이다. 1844년부터 쓰기 시작한 이 작품은 가난한 중년의 하급관리 마카르 제부시킨과 그의 먼 친척 소녀 바르바라가 주고받은 편지로 구성되었다. 작품은 1846년 초에 한 잡지에 발표되지만 그 전해에 도스토옙스키는 당시 시인이자 편집자였던 네크라소프와 최고의 비평가 벨린스키로부터 격찬을 받으며 러시아문학의 기대주가 된다.

청년 작가 도스토옙스키를 ‘제2의 고골’로 불리게 만든 <가난한 사람들>은 1840년대에 유행한, 하층민들의 삶에 대한 ‘생리학적 스케치’를 계승한 작품이지만, 도스토옙스키는 거기에다 가난한 사람들의 심리학을 덧붙였다. 고골과 그의 아류 문학에서 도스토옙스키 문학으로의 이행은 생리학에서 심리학으로의 이행이라고 이해해도 무방하다. <가난한 사람들>의 두 주인공은 가난한 살림살이를 걱정하면서도 늘 타인의 시선과 험담에 신경을 쓴다. 데뷔작에서부터 선보인 ‘나’와 ‘타자’의 경쟁적 관계는 도스토옙스키 문학의 핵심 테마가 된다.

<가난한 사람들>로 문단의 격찬을 받으며 성공적인 데뷔를 했지만 도스토옙스키의 작가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뒤이어 발표한 작품 <분신>은 그 자신의 자부심과는 달리 미온적인 반응을 얻는데 그쳤고, 결정적으로는 1849년에는 한 정치서클에 가담하여 활동한 게 문제가 돼 체포되어 사형선고까지 받았다. 이후에 감형되어 시베리아 유형을 떠나게 되지만 사형수로서 형집행 직전까지 갔던 체험의 그의 여러 작품에 흔적을 남긴다. 특히 <백치>에서 미쉬킨이 들려주는 사형수의 마지막 순간에 관한 이야기는 작가의 직접적인 체험에 빚지고 있다.

동토의 땅에서 긴 유형생활을 마치고 다시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것은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인 1859년말이었다. 그는 한 살 위의 형 미하일과 잡지를 발간하고 수감과 유형 생활을 소재로 <죽음의 집의 기록>을 발표하면서 작가로서 재기한다. 1864년 자신이 주관하던 잡지에 <지하로부터의 수기>라는 문제적인 작품을 발표한 이후, 우리가 잘 아는 <죄와 벌>(1866)부터 <백치>(1869), <악령>(1872), <미성년>(1875), 그리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880)에 이르는 걸작 장편들을 연이어 발표한다. 러시아문학사뿐 아니라 세계문학사의 한 장관을 이루게 될 위대한 작가적 여정이다. 도스토옙스키는 두 권으로 계획했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첫 권을 발표하고 둘째권은 시작하지 못한 채 1881년 눈을 감았다.

도스토옙스키는 여러 작품들을 통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필생의 물음을 다루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문제를 탐구했다. 그런데 이 정체성은 언제나 타인의 인정을 전제로 한다. ‘나’의 존재는 타인의 인정에 의존하기 때문에 ‘나’는 자신의 독자성을 주장하면서도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빚어지는 갈등과 쟁투가 도스토옙스키 초기 문학의 주제였고, 시베리아 유형 이후에 그는 이 문제를 국가적 정체성의 문제로 확장했다. ‘러시아는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진 것이다. 이 경우에도 러시아의 정체성에 대한 모색은 유럽이라는 타자의 인정을 통해서만, 그리고 그 타자와의 비교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리하여 누구보다도 유럽의 사상과 정치적 상황에 관심을 기울인 작가가 도스토옙스키였다. ‘가장 러시아적인 작가’ 도스토옙스키가 ‘가장 유럽적인 작가’이기도 한 것은 이 때문이다.


첫 장편소설 <죄와 벌>에 뒤이어 작가적 여정의 두번째 기착지에 해당햐는 <백치>는 도스토옙스키를 가장 극심한 창작의 고통으로 몰아넣은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초고와 최종판이 완연히 다른 것은 그러한 고통의 결과이다. <죄와 벌>을 발표한 이듬해에 도스토옙스키는 신속한 작업을 위해 고용했던 속기사 안나 그리고리예브나와 결혼하고 장기간의 유렵여행을 떠났다. 남편의 많은 채무가 창작에 방해가 될 것을 염려한 아내 안나의 결단에 따른 것이었다. 이 외유중에 구상하고 집필한 <백치>의 주인공은 원래 가냐 이볼긴이었다. 몰락한 장군집안의 차남으로 가족을 부양하면서도 주변으로부터 멸시당하는 자존심 깅한 청년이었고 게다가 간질병환자였다.

야심을 가진 가난한 청년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가냐는 <죄와 벌>의 라스콜니코프를 떠올리게 하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발자크 소설의 전형적인 주인공도 상기시킨다. 그렇지만 이 주인공은 도스토옙스키를 만족시키지 못하며 결국 작가는 초고를 대폭 수정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을 교체한다. 소설의 첫 장면에서 치유차 수년간 스위스에서 머물다가 먼 친척뻘되는 부인을 만나기 위해 기차를 타고 페테르부르크로 향하는 미쉬킨이 바로 교체된 주인공이다. 가냐가 소설의 주인공이었다면 발자크 소설의 주인공 라스티냐크와 마찬가지로 속물적인 부르주아들의 세계에서 속악한 방법으로 출세를 위해 고투하는 인물로 그려졌을 것이다. 아니, 그런 인물의 이야기가 소설이 줄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도스토옙스키는 이 발자크적인 이야기를 비틀고 다른 이야기로 감싼다. 그는 투쟁의 과정을 통해서 출세에 이르는 청년을 그리는 대신에 정체가 불분명한 간질병환자를 등장시켜서 부르주아들의 타락하고 비속한 세계를 구제하고자 한다. 이것이 가냐가 주인공인 소설에서 미쉬킨이 주인공인 소설로의 이행이며 동시에 발자크 소설(유럽소설)에서 도스토옙스키 소설(러시아소설)로의 이행이다. <죄와 벌>에서의 라스콜니코프가 스탕달의 <적과 흑>의 주인공 쥘리앵 소렐의 모방이면서 그 극복의 형상이었다면 <백치>의 주인공 미쉬킨은 지참금에 유혹되어 정략결혼을 감행하려는 가냐를 물리치고 나스타샤를 구원함으로써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승리를 보여주어야 했다.

하지만 <백치>의 결말은 이러한 기대와 사뭇 대조된다. 그리스도와 돈키호테를 모델로 한 미쉬킨은 정욕의 화신인 로고진에 의해 살해된 나스타샤의 시신 앞에서 망연자실해 하며 결국 더 나빠진 상태로 스위스로 다시 돌아간다. 작가적 구상에 비추어보면 이것은 실패다. 미쉬킨은 나스타샤를 구하는 데 실패하며 동시에 타락한 러시아를 구하는 데에도 실패한다. 도스토옙스키 역시도 이 실패에 대해서는 거리낌없이 인정했다. 다만 이 실패로 말미암아 도스토옙스키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로 이어지는 도정에 다시 들어가게 되는 것이기에 위대한 실패라고 불러도 좋겠다.

중요한 것은 실패의 원인과 과정이다. 작가 도스토옙스키의 지병이기도 했던 간질은 발작과정에서 극도의 고통을 수반하지만 한편으로는 잠시 황홀경을 체험하게 한다. 아주 짧은 시간일지언정 조화와 화해의 순간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다. 미쉬킨의 간질은 그런 의미에서 구원의 비전이 될 수 있다. 또 스위스에서 미쉬킨은 마을사람들로부터 따돌림당하고 학대받던 마리라는 처녀를 구해준 경험이 있다. 이러한 질병과 경험이 미쉬킨의 자격요건이면서 타락한 페테르부르크, 타락한 러시아를 구원하기 위한 수단이다. 미쉬킨은 이를 통해서 나스타샤를 구원하고 아글라야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다.


그렇지만 미쉬킨이 상대해야 하는 세계는 비속하면서도 막강하다. 구두쇠 상인이었던 아버지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고서 그것을 바탕으로 나스타샤를 손에 넣고자 하는 로고진에게 미쉬킨은 한갓 ‘유로지비‘(러시아 중세의 바보성자)에 불과하다. 로고진의 세계를 잘 대변하는 것은 그의 집에 걸려 있는 홀바인의 그림 ‘무덤속의 그리스도‘인데, 이 그림은 성화의 관례와는 다르게 그리스도를 신성한 존재가 아닌 시신으로 그렸다. 실제로 도스토옙스키는 유럽여행중 스위스의 바젤미술관에서 그림을 직접 보고 큰 충격을 받았고 이는 <백치>의 집필 동기의 하나다. 도스토옙스키에게 홀바인의 그림은 허무주의(무신론)를 웅변하연서 허무 그 자체로 여겨졌다.

도스토옙스키의 원작에서 이 허무주의를 대변하는 인물은 이폴리트다. 폐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통보받은 이 소년은 자연의 법칙에 순종하기를 거부하고 그에 맞선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자살을 시도한다. 로고진이 욕정의 만족을 위해서 어떤 행위도 서슴지 않는 반항자의 형상을 보여준다면 이폴리트는 형이상학의 차원에서 그의 짝패가 된다. 그들의 반항에 맞서야 했던 미쉬킨은 홀바인의 그림 속 그리스도처럼 창백하고 무력하며 돈키호테처럼 순수하지만 착오적이다.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인간을 묘사하고 그를 통해서 세계를 구원해보고자 한 도스토옙스키의 시도는 작품의 말미에서 리자베타의 탄식으로 마무리된다. ˝이 모든 것, 이 모든 외국 것, 당신네 유럽의 모든 것은 오직 환상에 불과해. 외국에 나와 있는 우리 모두 환상에 불과일 뿐이야.˝

비록 미쉬킨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지만 서구의 가톨릭과 사회주의 사상을 싸잡아 비판하면서 러시아와 러시아인, 러시아적인 것이 세계를 구원하리라는 그의 믿음은 도스토옙스키의 이후 작품들에서 계속 반복된다. 그 여정의 종착지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작품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다. <백치>는 그 여정의 중요한 이정표로서 작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세계에 대한 이해는 물론 근대소설의 의미와 역할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통찰을 던져주는 작품이다.

18. 0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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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9-15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배우들은 작품을 읽고 연기를 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작품을 읽고 연기하면 깊이가 더할텐데 그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갑니다^^

로쟈 2018-09-15 18:34   좋아요 1 | URL
네 읽는 배우들도 있겠지만, 대본 중심이기 때문에 필수적이진 않을 듯해요. 연극은 분량상 원작을 압축하면서 도스토옙스키적인 설정이 많이 빠져나가서 아쉽게 여겨집니다.

wingles 2018-09-17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립에서 예매해 둔 작품이었는데 선생님 해설이 있다니 더 기대되네요^^

로쟈 2018-09-17 22:37   좋아요 0 | URL
이 글이 해설로 실릴 예정입니다.~
 

두 권의 제목이 그렇다. 주디스 버틀러의 <위태로운 삶>(필로소픽)과 알랭 바디우의 <참된 삶>(글항아리). <위태로운 삶>은 앞서 <불확실한 삶>(경성대출판부)으로 번역돼 나왔었다. 이번에 나온 건 새 번역판. ‘애도의 힘과 폭력‘이 부제이고 원저는 2006년에 나왔다.

˝폭력과 혐오가 국경을 넘나드는 지금, 저자는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쉽게 파괴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이해, 즉 삶의 취약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비폭력적 윤리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특히 저자는 레비나스의 타자와 얼굴 개념을 통해, 의미의 사각지대에 갇힌 인간이 어떻게 통치와 권력에 의해 공적 담론의 장에서 얼굴을 박탈당하고 권리 없는 생명이 되는지, 그리하여 어떻게 우리가 뿌리 뽑힌 그들의 삶 앞에서 애도가능성을 무기한 연기하고 무감각해지게 되는지 고찰한다.˝

한편 바디우의 책은 원저가 2016년에 나왔고 나는 지난해에 나온 영어판을 갖고 있다. 한국어판도 빨리 나온 셈. 3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글들은 바디우가 프랑스 및 벨기에와 그리스 등지의 고등학교나 교육기관 등에서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과 그의 세미나를 계기로 실시된 강연들을 토대로 한다. 일종의 젊음에 관한 강의록 묶음인 셈이다.˝

강의가 이루어진 건 2015년이니 바디우가 일흔아홉일 때다(바디우는 1937년생인데 강의에서 나이를 그렇게 밝힌다). 지금은 여든을 넘긴 나이이고, 게오르크 가다머 같은 장수 철학자의 사례가 있지만 강연과 저술이 얼마나 더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젊은 세대에게 전하는 노 철학자의 ‘마지막‘ 조언으로서도 의미가 있지 않나 한다. 그 젊은 축에 속하는 건 아니지만 영어본도 구해놓은 김에 나도 읽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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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 한겨레에 실은 '책과 생각' 칼럼을 옮겨놓는다. 강의에서 자주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과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비교하고는 하는데, 마침 어제도 <고리오 영감>에 대해 강의하게 되어 그에 대해 적었다. 엊그제 원고를 쓰느라 세 종의 <고리오 영감> 번역본을 에코백에 넣고 하루종일 돌아다닌 기억이 난다. 원고는 지방강의차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썼다.  



한겨레(18. 09. 14) 라스티냐크와 라스콜니코프라는 갈림길


몇년 전에 프랑스문학을 강의하면서 발자크의 소설과 처음 만났다. 프랑스 소설의 거장을 대학시절에 손에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만남'이라고 하기에는 미진했다. 도스토옙스키가 러시아어로 번역했다는 <외제니 그랑데>도 읽다가 덮은 기억이 있다. 발자크 소설의 재미와 의의를 알아보지 못했던 탓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때문인지, 문학을 보는 안목이 깊어진 덕분인지 정색하고 손에 든 발자크는 매우 흥미로웠다. 근대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확실한 답변을 발자크는 제시하는 듯 보였다.

 

무엇이 근대인가. 좁은 의미의 근대를 산업혁명(영국)과 시민혁명(프랑스)이라는 이중혁명의 결과로 이해한다면 본격적인 근대는 19세기 이후에 시작된다. 근대의 대표적 문학장르로서 소설의 전성기가 19세기인 것은 자연스럽다. 그 전성기에 구간을 설정하자면 발자크부터 도스토옙스키까지다. 작품으로는 <올빼미당원>(1829)에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880)까지인데, 근대소설의 표준으로는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1835)를 꼽을 수 있다.

 

작중에서 ‘부성애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고리오 영감을 제목으로 삼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몰락한 시골 귀족의 아들 외젠 라스티냐크다. 그는 출세를 위해 파리로 상경하여 하숙생활을 하며 법과대학에 등록한다. 법조인이 되는 것이 출세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렇지만 마음을 바꾸게 되는데,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는 상류사회 귀부인들과의 연줄이나 결혼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막대한 지참금을 동원하여 자신의 두 딸을 귀족들과 결혼시킨 고리오 영감의 둘째 딸과 라스티냐크는 가까워진다. 평생 모은 재산을 딸들에게 쏟아부은 고리오 영감은 라스티냐크와 같은 하숙집에 기거하는 처지다. 그런 아버지를 두 딸과 사위는 체면상 부끄럽게 여기며 결국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사람이 타지 않은 빈 마차만 보낸다. 쓸쓸한 장례식을 치른 라스티냐크가 파리를 향하여 “이제 우리 둘의 대결이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소설의 결말이다.


라스티냐크의 투쟁 선언은 그가 사회에 던지는 첫번째 도전 행위다. 그런 의미에서 <고리오 영감>은 라스티냐크의 탄생기이기도 하며, 이후 발자크 소설에서 라스티냐크는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가 된다. 그에게 투쟁은 어떤 의미였던가. 비속한 범죄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그는 “사회의 3대 표현”을 본다. 몇 종의 번역본을 참고하면, 복종(순종)과 투쟁, 그리고 반항(저항)이 그것이다. 시골에 있는 가족들의 태도이기도 한 복종은 따분하고, 같은 하숙생이면서 범법자인 보트랭이 대표하는 반항은 불가능하다. 남은 것은 비록 불확실하더라도 세상(사회) 속으로 나아가는 투쟁이다.



<고리오 영감>이 표준적인 소설이라는 말은 라스티냐크의 투쟁이 근대소설의 기본형이라는 뜻이다. 근대소설은 라스티냐크와 같은 청년 주인공이 상경하여 출세를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다. 이러한 이야기가 표준일 때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1866)이 갖는 특이성이 드러난다. 가난한 법대 휴학생이 전당포 노파를 도끼로 살해하는 이 소설에서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비범한 존재로 인정받고자 했지만 사교계의 귀부인들과 아무런 연줄도 없었던 러시아판 라스티냐크다. 신분상승의 경로가 막연한 상황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입증하려는 주인공의 시도는 과격한 방식을 취하게 된다. 게다가 고리오 영감과 그의 귀부인 딸이 곁에 있었던 라스티냐크와 달리 라스콜니코프에게는 가난한 술주정뱅이 마르멜라도프와 창녀 소냐가 있었을 따름이다. 발자크와 도스토옙스키의 차이이면서 프랑스 소설과 러시아 소설의 차이다.


18. 0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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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2018-09-14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 깊은 곳에서 교수님의 글을 신문으로 봤어요
신문에도 책의 표지가 있으면 좋겠어요.

로쟈 2018-09-14 23:17   좋아요 0 | URL
아. 작가 그림이 들어갔네요. 온라인에서는.
 

이번주 주간경향(1294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서평 강의에서 다룬 김에 밀의 <여성의 종속>(책세상)에 대해 적었다. 다른 번역본으로는 <여성의 예속>(이대출판부)으로 나와 있다. 이번주에 나온 책 가운데서는 드루드 달레룹의 <민주주의는 여성에게 실패했는가>(현암사)가 <여성의 종속>이 던지는 질문을 검토하는 데 유익한 참고가 될 듯하다... 



주간경향(18. 09. 17) 남녀평등은 얼마나 실현되었나


여성주의 고전으로 꼽히는 존 스튜어트 밀의 <여성의 종속>은 그의 대표작 <자유론>에 견주어 ‘평등론’이라고 불려도 좋을 에세이다. 그 평등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평등으로, 밀은 사회적 관계에서 남녀 간의 불평등이 인간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중대한 장애물이며 “이것은 완전 평등의 원리로 대체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19세기에 쓰인 <여성의 종속>을 오늘날 다시 읽는다면 그것은 자연스레 과연 밀의 주장이 이후에 얼마만큼 실현되었는지 확인해본다는 의미가 있다. 


먼저 따져볼 것은 우리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성의 시대인가, 반이성의 시대인가. 밀은 자신의 확신을 뒷받침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들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당대 다수의 견해에 맞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토로한다. 그것은 정확하게는 반대되는 의견과의 싸움이 아니라 그릇된 감정과의 싸움이어서다. 그러한 감정은 편견에 대한 검토를 차단하고 비판을 봉쇄한다. 가령, 남성은 명령하고 여성은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을 자명한 것으로 간주하여 어떠한 문제제기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밀은 이러한 경향이 18세기 계몽주의로부터도 후퇴한 것이라고 보았다. 인간의 보편적 이성에 대한 믿음이 밀의 시대에 와서는 본능에 대한 숭배로 대체되었다. 비이성적인 것에 대한 경도와 함께 온갖 거짓 신앙이 판을 친다. 그렇게 귀를 막고 있는 다수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바꾸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한 어려움과 비교하자면 밀의 남녀평등론은 매우 간명한 논리에 의해 뒷받침된다. 이제까지 인류의 역사는 힘의 법칙에 지배되어 왔지만 그것은 도덕의 법칙에 의해 대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도덕의 법칙은 다른 게 아니라 인간은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 각자가 자유로운 시민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에 따를 때 인간을 인격체가 아닌 물건으로 대하는 노예제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미국의 악명 높은 흑인노예제가 남북전쟁의 결과 폐지된 것은 1865년의 일이고 <여성의 종속>은 1869년에 발표되었다. 이러한 순서는 나름대로 역사적 의미를 갖는데, 밀은 노예해방의 바로 다음 단계가 여성의 남성에 대한 종속으로부터 해방, 곧 여성해방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밀이 보기에 노예제가 힘의 법칙에 따른 정당화였을 뿐 아무런 근거를 갖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의 종속도 근거가 없다. 

“인간 삶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정말 중요한 것을 고르라고 한다면, 그것은 각자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밀은 말한다. 이 행복에 대한 접근과 추구의 권리가 인류의 절반에게는 봉쇄되어 있다면 부조리한 일이다. 밀의 문제제기로부터 150년이 지난 오늘날 그러한 부조리는 얼마만큼 제거되었을까. 제도상의 차별 철폐와는 별도로 우리의 관념 속에서 남녀 간의 평등의식은 얼마만큼 확고해졌을까. <여성의 종속>이 던지는 질문이다.


18. 09. 13.



P.S. 한 가지 교정사항을 적어둔다. <여성의 종속> 해제에서 <여성의 종속>이 여성주의 이론사의 출발점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여성의 권리옹호>(1792)의 출간연도가 1702년으로 잘못 적혔다. 오타이긴 한데, 리커버판에서도 교정되지 않은 상태라 눈에 띈다. 이 책도 완역본은 <여권의 옹호>라는 제목으로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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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도 버스가 오지 않는
안성공도터미널 승차장 바닥에
죽은 듯 붙어 있는 나방 한 마리
죽은 건가 건드려 보려다
내게 무슨 권한이 있나 싶다
그러다 버스에 몸을 실으니
인연도 아니구나
그렇게 죽은 듯 붙어 있는 나방이었으리
죽은 건가 건드려 보려다
인연이 아니구나 떠나갔으리
그대 떠나고 나는 남은 건가 싶다
안성공도터미널 승차장 바닥에
승천을 기다리 듯 나는 숨죽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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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sdud5789 2018-09-13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께서 직접 쓰신 글인가요? 어제 저녁에 안성에서 쿤데라,농담 강의 들은 공도주민인데 괜히 반갑네요^^ 유익한 강의 너무나 고맙습니다. 다음주가 마지막이라니 너무 아쉽네요

로쟈 2018-09-13 23:13   좋아요 1 | URL
네, 주민이시군요.^^ 다음주에 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