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자 한겨레에 실리는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지난 월요일에 쓴 원고인데,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번역에서 궁금하게 생각했던 점 한 가지를 글감으로 삼았다.   

한겨레(10. 07. 31) '서사적 바람둥이’가 낯설어진 이유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이미 눈치챈 독자들이 있겠지만, 체코 출신의 망명작가 밀란 쿤데라의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서두다. 쿤데라는 1981년에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지만 ‘프랑스 작가’라고 부르는 건 여전히 어색하다. ‘세르반테스의 절하된 유산’(소설)의 특별한 예찬자인 그에게 특정 국적은 별로 의미가 없을 것이니 차라리 그의 조국은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중부유럽의 작가’를 자임하는 쿤데라는 체코어판과 프랑스어판을 동시에 ‘정본’으로 인정한 드문 작가이기도 하다. 때문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도 정본이 둘이다. 독어 중역본으로 처음 출간된 한국어본도 체코어본, 프랑스어본 번역 등이 추가되어 그간에 네댓 종 이상이 나왔다. 현재는 프랑스어본 번역만이 통용되고 있어서 아쉬운데, 다양한 번역본을 음미하면서 읽을 수 없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것은 어떤 의미인가?

일단 복수의 번역본은 번역의 차이와 변화 양상에 주목하게 해준다. 한두 가지 예를 들면, 먼저 주인공들의 이름이 바뀌어왔다. 체코어본 번역에서 ‘토마스’와 ‘테레자’라고 표기된 주인공의 이름이 독어본 번역과 프랑스어본 번역에서는 ‘토마스’와 ‘테레사’가 됐고, 프랑스어본 번역 개정판에서는 ‘토마시’와 ‘테레자’가 됐다. ‘테레사’가 ‘테레자’가 된 것은 교정사례라고 할 수 있지만, ‘토마스’가 ‘토마시’로 바뀐 것은 근거를 찾기 어렵다. 독일작가 ‘토마스 만’이 덩달아 ‘토마시 만’으로 바뀐 걸 보면 유머를 의도한 건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바람둥이의 유형’도 달라졌다. 쿤데라는 두 가지 범주로 나누는데, 한쪽은 ‘서정적’ 유형으로 모든 여자에게서 자신의 이상을 찾으려고 애쓰고, 다른 한쪽은 ‘서사적’ 유형으로 수집가적인 열정을 갖고서 여성적 세계의 무한한 다양성을 추구한다. 전자는 항상 이상 찾기에 실패함으로써 동정을 사기도 하지만, 후자는 항상 만족한다는 이유로 비난을 산다. 작품에서 토마스는 후자에 속한다. 이 두 유형이 독어본과 체코어본 번역에선 ‘서정적 바람둥이’와 ‘서사적 바람둥이’ 정도로 번역됐지만, 프랑스어본 번역에서는 ‘낭만적 호색한’과 ‘바람둥이형 호색한’으로 옮겨졌다.  


어째서 이런 차이가 빚어졌는지 궁금할 법한데, 쿤데라의 <소설의 기술>을 참고하면 ‘내막’을 짐작해볼 수 있다. 자기 소설의 ‘열쇠어’ 중 하나로 ‘서정성’을 풀이하면서 그는 ‘서정적인 것’과 ‘서사적인 것’은 미학의 영역을 넘어서 “자신과 세계와 타인에 대한 인간의 두 가지 태도”를 표상한다고 말한다. 문제는 이런 생각이 프랑스인들에게는 아주 낯설다는 점이다. 그는 타협책으로 프랑스어판에서 ‘서정적 바람둥이’를 ‘낭만적 한량’으로, ‘서사적 바람둥이’를 ‘자유주의적 한량’으로 바꾸는 것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이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조금 서글펐다”고 그는 덧붙였다. 요컨대 체코어본이나 독어본, 영어본과는 달리 유독 프랑스어본에서는 ‘서정적 바람둥이’와 ‘서사적 바람둥이’라는 유형학이 허용되지 않은 것이다. 그에 따라 프랑스어본을 정본으로 삼은 한국어본은 쿤데라의 ‘서글픔’까지도 옮기게 되었다. 더불어 서정적인 것과 서사적인 것이란 이분법은 우리에게도 낯선 것이 되고 말았다.  

10. 07. 30.  

P.S.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최초 번역본은 송동준 교수의 독어본 번역이다.(이 번역본에서는 '서정적 난봉꾼'과 '서사적 난봉꾼'이라고 옮겼다). 김규진 교수의 체코어본 번역은 중앙일보사간 소련동구문학전집판(<존재의 견딜 수 없는 가벼움>)과 한국외대출판부판(<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두 종이 출간됐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홍차 2010-07-31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마시와 테레자로 쓴 까닭은 체코어 이름이 Tomáš와 Tereza이기 때문입니다.
독어본은 독어 철자에 없는 하체크 š를 뺀 Tomas와 독어화한 Teresa라서 번역본은 토마스와 테레자가 된 것이고 불어본은 역시 하체크를 뺀 Tomas와 그냥 체코어 이름 Tereza인데 번역본은 둘 다 한국 식 세례명에도 있고 좀 더 익숙한 이름인 토마스와 테레사로 썼다고 보면 됩니다.
체코어 원문을 보니 Thomas Mann으로 돼 있던데 토마시 만은 토마스를 토마시로 일률적으로 바꾸다 생긴 오류로 보입니다.

로쟈 2010-07-31 18:48   좋아요 0 | URL
기왕에 나온 체코어 번역본도 '토마스'라고 표기해주고 있으므로 '토마시'는 불필요한 혼란을 안겨준다고 생각해요. 그냥 생색용 흉내내기 정도(정작 교정되어야 할 오류들은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충실성'이 바람둥이 번역에는 적용되지 않았으므로 일관성이 없는 거지요. 그리고 '토마시 만'이야 물론 한번에 바꿔쓰기 하면서 생긴 오류일 텐데, 교정을 보지 않았다는 걸 꼬집고 싶었어요...

홍차 2010-07-31 18:32   좋아요 0 | URL
체코어 번역본도 토마스로 적었다니 좀 의외긴 한데 아마 맨 처음 번역한 책의 표기에 맞추지 않았나 싶군요.
근데 좀 더 자세히 쓰셨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게 기고문 내용만으로는 그냥 왜 이름을 바꿨는지 모르겠다는 뜻으로 읽히거든요.
물론 번역에서 정작 더 중요한 문제를 지나친 일이 좀 아쉽긴 합니다.

로쟈 2010-07-31 19:06   좋아요 0 | URL
자세히 쓸 수 있는 분량은 아니고요. 고유명사 표기에서 원음 흉내는 보통 '알리바이'여서 제가 못마땅해 하는 편입니다. '테레사'의 경우에도 저는 그렇게 통용되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보는데, 체코어본도 '테레자'라고 했으므로 통일해줘도 되겠다 싶어요. 한데, '토마시'는 뭥미 수준인 거죠. 고유명사 표기는 원음을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헷갈리지 않는 것과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š(sh)를 '시'로 표기하는 것도 임의적인 규칙이지요. 예전엔 '슈'나 '쉬'로 표기했으니까요...
 
'고전, 영화로 읽다' 강좌

엊저녁에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진행한 5주간의 '도스토예프스키 깊이 읽기' 강좌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읽기'로 마무리됐다. 수강생 몇 분과 간단하게 뒷풀이자리를 가졌는데, 차후 강의 일정을 물어오시는 분들이 계셔서 9월 강의 일정이긴 하지만 미리 올려놓는다. 지난봄 '고전, 영화로 읽다' 강좌의 속편 격인데, 도서관에서 또 한번 영화로 고전을 만나는 기회를 갖게 됐다. 

  

지난번에 다룬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와 형평을 맞추기 위해 이번에 고른 건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다. 강좌는 무료로 진행되기에 도서관 근처에 사시는 분이라면 주말에 영화감상 나들이를 나오셔도 좋겠다. 이미 7월 일정은 이번 주말만 빼고는 진행이 됐고, 9월에 네 차례가 강좌가 더 남아 있다. 참고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대한 강의는 9월 11일(토)에 예정돼 있으면 신청은 노원평생학습관 홈페이지에서 받는다고 한다. 전체 일정은 다음과 같다.   

영화제작소눈의 '상영+강좌'프로그램인 <고전, 영화로 읽다>가 도서관을 찾아갑니다. 서울문화재단의  '책, 예술과 만나다' 중 하나로 선정되어 4개의 도서관에서 8번의 강좌를 이어나가게 됐습니다. 다소 심심한 도서관의 주말 상영회를 좀 더 뜨거운 시간으로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하나의 책과 하나의 영화가 어떻게 서로를 흉내내고, 싸우며 때로 벗어나는지를 되도록 담백하게 듣고, 말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찾아와주세요. 혹은 찾아가주세요. 때로 도서관이 극장이 되기도 합니다. 아니면 극장에서 책을 발견해도 좋습니다. 수많은 진부한 책과 영화속에서 길을 잃은 당신이라면, 더욱 찾아와주길, 찾아가 주길 바랍니다.(수강신청은 각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정독도서관

1강(7월 10일) - 거울 앞에 선 소설과 영화 : 그 증감의 게임
코맥 매키시『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5 / 코엔 형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007
강사 : 김영남 (영화감독), <내 청춘에게 고함>, <보트> 등 연출 

2강(7월 17일 ) - 동시대성의 내연과 외연                  
가와바타 야스나리 『산소리』,1954 / 나루세 미키오 감독 <산의 소리>,1954
강사 : 이연호(영화평론가), 전 KINO 편집장, 영상원 강사,『전설의 낙인』등

 
고덕평생학습관

3강 (7월 24일) - 인형의 집 : 집나간 노라만 문제인가? 
헨릭 입센『인형의 집』, 1879년 / 패트릭 갈랜드 감독 <인형의 집>, 1973년
강사 : 장정일(소설가), 시집『햄버거에 대한 명상』,희곡『고르비 전당포』,소설『보트하우스』등

4강 (7월 31일) - 크로넨버그, 죽음과 욕망의 생리학
오노레 드 발자크『나귀 가죽』, 1831년 /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 <비디오드롬>, 1983년
사 : 이창익(종교학자),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위원, 한신대 강사,『종교와 스포츠』등

노원평생학습관 

5강 (9월 4일) - 오뒷세이아, 세계와 인간을 탐구한 서사시
호메로스『오뒷세이아』, 기원전 7세기 / 마리오 카메리니 감독 <율리시스>, 1954
강사 : 강대진(고전문헌학자), 정암학당 연구원,『고전은 서사시다』,『잔혹한 책 읽기』,『신화와 영화』등 



6강 (9월 11일) - 도스토예프스키와 인간의 구원
도스토예프스키『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880 / 피터 젤렌카 감독 <카라마조비>, 2008

강사 : 이현우(인문학자), 서울대 노어노문학과 박사, 한림대학교 연구교수,『로쟈의 인문학 서재』등

거마도서정보센터 

7강(9월 18일) - (미정)
베른하르트 슐링크『더 리더』, 1995 / 스티븐 달드리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2008
강사 : 김진영(철학자), 아카데미 상임위원.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아도르노와 벤야민 미학을 전공. 

8강(9월 25일) - (미정) 

10. 07. 30.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07-30 0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30 0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30 0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30 1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헌내 2010-07-30 15:51   좋아요 0 | URL
요즈음, 한국학술정보원에서 해외 학술지를 무료로 복사해주고 있더군요....
(www.riss.kr)

그나저나 역시 지원해주는 인문사회과학 해외 학술지는 400건 밖에 안 됩니다. (인문학만이 아닌 인문+사회과학입니다 - 인문학 학술지는 100건도 안되는 것 같던데...)


P.S. 건방지게 지젝을 프로필 사진으로 씁니다 ㅋ

로쟈 2010-07-30 19:34   좋아요 0 | URL
지젝 덕분에 왠지 가족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네요.^^

재준 2010-07-30 17:39   좋아요 0 | URL
앗! 어제 뒷풀이 감사했습니다. 스스로 드러내지 않음을 성장과 미덕으로 여겨온 저를 돌아본 시간이기도 했거든요^^. 노원에 꼭 시간내서 찾아뵙겠습니다. 건강하세요.

로쟈 2010-07-30 19:35   좋아요 0 | URL
네, 노원에서도 뵈면 구면이겠습니다.^^

lifeisart 2010-07-31 11:04   좋아요 0 | URL
저 노원에서 뵐께용^^ 넘 멋진 강좌 기대됩니당~

로쟈 2010-07-31 14:52   좋아요 0 | URL
영화+강의여서 4시간 정도 잡으셔야 합니다.^^
 

이탈리아의 저명하면서도 문제적인 영화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의 소설 <폭력적인 삶>(민음사, 2010)이 다시 번역돼 나왔다. 나는 예전에 나온 세계사판을 갖고 있는데, 어디에 보관해두고 있는지도 모르던 차여서 반가운 일이다(아직 읽지 않은 것이다). 영화쪽에서는 '파졸리니'라고 부르고 알라딘에서도 '파졸리니'로 잡혀 있는데, 실제 발음은 '파솔리니'인 모양이다. 내게 '파졸리니'란 이름이 친숙한 건 영화부터 접했기 때문. 아주 오래전에 그의 영화 <살로, 소돔 120일>이나 <오이디푸스왕> <캔터베리 이야기> 등을 본 기억이 있다. 베를톨루치의 스승으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폭력적인 죽음'으로도 사후에 유명세를 치렀다. 몇년 전에 전기가 두 종 번역됐었는데, 이 참에 모아서 읽어봐도 좋겠다. 영화도 그간에 많이 출시됐다. 덧붙여, 어제로써 즐찾이 2900명이 됐는데, 그것도 기념하여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즐찾 3000은 아마 올해안에 달성될 듯싶은데, 내심으론 알라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 생각한다). 아래는 사드의 소설을 파시즘 치하로 번안한 영화 <살로, 소돔 120일>의 한 장면.


12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폭력적인 삶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지음, 이승수 옮김 / 민음사 / 2010년 7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내일 수령" 가능
2010년 07월 29일에 저장

A Violent Life (Paperback)
Pasolini, Pier Paolo / Carcanet Pr / 2007년 8월
41,060원 → 33,660원(18%할인) / 마일리지 1,69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5월 22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0년 07월 29일에 저장

폭력적인 삶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지음, 박명욱 옮김 / 세계사 / 1995년 2월
9,900원 → 8,910원(10%할인) / 마일리지 490원(5% 적립)
2010년 07월 29일에 저장
품절

평전 파솔리니- 죽음과 삶의 몽타주
엔초 시칠리아노 지음, 김정미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5년 5월
27,500원 → 24,750원(10%할인) / 마일리지 1,370원(5% 적립)
2010년 07월 29일에 저장
품절


12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죽이든 밥이든 마감을 훌쩍 넘긴 원고를 일단 보내놓고 다른 일로 넘어가기 전에 잠시 쉬는 손으로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고른다. 아, 벌써 8월이구나, 라고 쓰려다 보니, 그런 표현이 가장 안 어울리는 달이 또 8월인 것 같다. 어제도 덥고 오늘은 더 덥고, 하는 날의 연속이니까. 그냥 내일 강의준비도 하면서 쉬엄쉬엄 책이나 고른다. 가만히 노는 꼴을 못 보는 걸 보면 이럴 땐 꼭 시골 할머니 마음이다.  

1. 문학 

신경숙 작가가 추천한 문학분야의 책은 김은국의 <순교자>(문학동네, 2010)이다. "6ㆍ25전쟁을 배경으로 이념 대립으로 인한 사건을 통해 겪는 신앙과 양심의 갈등을 묘사한 책으로 한국계 최초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른 재미작가 김은국의 대표작"이라는 게 소개다. 사실 지난 학기에 이 작품을 교양강좌 커리큘럼에 집어넣었다가 을유문화사판이 품절되는 바람에 다루지 못했는데(덕분에 카뮈의 <최초의 인간>을 읽었다), 문학동네판이 새로 나와서 내년 봄학기에 다루려고 한다. 김욱동 교수의 연구서 <김은국>(서울대출판부, 2007)도 강의준비용으로 구비해두었는데, 왠일인지 보이지 않는다.   

2. 역사 

이덕일 소장이 추천한 역사분야의 책은 이언 아몬드의 <십자가 초승달 동맹>(미지북스, 2010). "저자는 ‘유럽(Europe)’이라는 어원이 ‘아랍(Arab)’처럼 서쪽이나 암흑, 뒤처짐을 뜻하는 고대 셈어 ‘에레브(ereb)’에서 왔다는 사실처럼 유럽과 이슬람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면서, 11세기 에스파냐에서부터 19세기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들이 동맹을 맺고 공동의 적과 싸웠던 사례를 5장에 걸쳐 전해주고 있다.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는 요즘말로 혈맹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많은 공동 전쟁을 치렀다."  

원제에서처럼 두 가지 종교로 갈려 있음에도 같은 동맹군으로 싸운 전력이 있다는 것은 유럽/아랍의 이분법이 얼마나 유효한지 회의를 갖게 만든다. 이러한 이분법의 무력화는 딱 데리다식의 전략인데, 저자의 최신작이 아니나 다를까 <수피즘과 해체>(2010)이다. 데리다와 이븐 아라비를 비교하고 있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고른 철학분야의 책은 마리에타 맥카티의 <나를 찾아온 철학씨>(타임북스, 2010). 원제는 '철학이 어떻게 당신의 삶을 구제해줄 수 있는가'. 조금 자세한 소개는 이렇다.  

저자 마리에타 맥카티는 철학 클럽을 운영하면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정답 없는 질문을 자신과 남들에게 던지면서 살아간다. 왜 정답 없는 질문을 철학자는 던질까? 정답이 없는 질문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창조적 사고를 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헬스 클럽에서 몸을 단련하듯이, 철학은 우리의 정신을 단련시킨다. 정신의 단련은 생각하는 훈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마치 근육이 성장하는 것은 파열의 고통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맥카티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함, 의사소통, 시각, 유연함, 공감, 개성, 소속, 평온함, 가능성, 기쁨과 같이 지극히 평범하고 우리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주제들이다. 현대 문명의 기술들은 우리 육체의 편리함을 추구하다 보니, 정신적 건강함에 대한 배려를 상실한다. 정신적 건강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대화와 토론을 이 책을 통해서 할 수 있다

마치 짝을 맞춘 듯한 제목의 책은 알렉산드르 졸리앙의 <고마워요, 철학부인>(푸른숲, 2010). "장애를 운명으로 여기며 자기를 부정하고 세상을 외면하던 알렉상드르 졸리앙이 철학을 통해 어떻게, 얼마나 달라지게 되었는지를 편지 형식으로 풀어 쓴 독특한 철학 에세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자신의 경험을 가감 없이 열어 보여준다. <고마워요, 철학 부인>은 단지 세상을 해석하는 철학이 아니라 자신을 변화시킨 깨달음으로서 철학을 드러내 보여주는 책"이라고 소개된다. 두 권 다 저자는 생소하지만, 그런 만큼 부담감 없이 읽어볼 수 있겠다. 옆집에 사는 철학씨, 철학부인을 만나는 것처럼.   

4. 정치/사회 

강정인 교수가 고른 정치/사회분야의 책은 박찬승의 <마을로 간 한국전쟁>(돌베개, 2010)이다. 소개기사를 스크랩해놓은 적이 있는데, "이 책은 마을에서 벌어진 갈등과 상호 학살을 중심으로 한국전쟁을 분석한 한국전쟁의 미시사이다. 이 책은 저자가 전라남도와 충청남도에 소재한 다섯 마을을 분석대상으로 삼아 10여 년간 해당 지역을 현장 답사하며 관련자 구술을 채록하고 희생자 씨족 가문의 족보까지 꼼꼼히 조사하여 얻은 연구 성과물"이다. 강정인 교수의 평은 이렇다.  

저자는 마을에 잠복해 있던 민간차원의 갈등이 남북한 국가권력의 침투와 맞물려 비극적인 충돌과 학살로 귀결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되돌아보면서, 오늘날 남북관계나 한국사회에서 갈등을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가는 능력이 과연 얼마나 성숙했는가를 되묻는다.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이한 해에 출간된 이 책은 한국전쟁에 관한 기념비적 저작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런 구술사/미시사 책으로 작년에 나온 김영미 교수의 <그들의 새마을운동>(푸른역사, 2009)도 떠올리게 한다. 한편 저자의 다른 책으론 <한국 근현대사를 읽는다>(경인문화사, 2010)도 올해 나온 책이다.   

5. 경제/경영 

이준구 교수가 고른 경제/경영서는 역시 한번 소개한 적이 있는데, 군터 파울리의 <블루 이코노미>(가교출판, 2010)다. 제목대로라면 '청색 경제'를 주장하는 책인데, 소개는 이렇다.    

이 책의 저자 군터 파울리(Gunter Pauli)는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는 전 세계 지식인들의 모임인 로마클럽의 초창기 회원으로 활약했다. 로마클럽은 더 이상의 성장이 환경에 심각한 위협을 가져올 것임을 경고한 <성장의 한계>(Limits to Growth)라는 책을 출판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지구의 미래를 위해 더 이상의 성장을 자제해야 한다는 결론은 사람들을 큰 충격에 빠뜨렸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서 태도를 180도 바꿔 성장과 환경 보호가 양립가능한 명제라고 말한다. 40여 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그의 생각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는 녹색경제(green economy)를 대체할 ‘청색경제(blue economy)’를 주창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녹색경제는 환경 보호라는 목표의 달성을 위해 기업과 소비자에게 많은 비용을 요구하는 문제점을 갖는다고 한다. 이에 비해 청색경제에서는 환경을 보호하면서 더 큰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지난번에 <블루 이코노미>와 함께 묶었던 책은 재닌 베니어스의 <생체모방>(시스테마, 2010)인데(http://blog.aladin.co.kr/mramor/3855767), 생체모방, 생태모방이란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라면 필히 챙겨두어야겠다.   

6. 과학  

최영주 교수가 고른 과학분야의 책은 로널드 넘버스의 <과학과 종교는 적인가 동지인가>(뜨인돌, 2010). 이미 적잖은 책들이 나온 주제인데, "이 책은 이러한 과학사의 전통적 통념이, 즉 과학과 종교가 끊임없이 대립하였다는 통념이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즉 과학적 관점 때문에 목숨을 잃은 과학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지동설의 갈릴레오나 진화론의 다윈의 신앙 이야기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를 통해 과학과 종교의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종교와 과학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책으론 최근에 나온 칼 세이건의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사이언스북스, 2010)도 떠오른다. '신의 존재에 관한 한 과학자의 견해'가 책의 부제다. 그리고 물론 작년에 나온 <종교전쟁>(사이언스북스, 2009)도 다시 떠오르고. 그러고 보니 이 책은 아직 구입하지 않았군...  

7. 예술 

김춘미 교수가 추천한 예술분야의 책은  이기영의 <민화에 홀리다>(효형출판, 2010). 드디어 처음 보는 책이 등장했다. "외교학과를 나와 발전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어느 날 도자기에 빠져 도예가가 된 필자가 그동안 사랑했던 민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거기에 현대적 미감으로 민화를 다시 창조해내고 있는 작가 서공임의 작품 80여 점이 함께 우리를 매료시키는 책"이라는 게 소개의 변이다. 민화에 대한 책은 그간에 아주 드물지 않았나 싶다. 우리 옛 그림에 대한 책으론 김정애의 <우리 옛 그림의 마음>(아트북스, 2010)이 최근에 나온 책이고, 작년에 나온 걸로는 오주석 선생의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월간미술, 2009)이 있다.  

8. 교양 

이한우 기자가 고른 교양분야의 책은 김동진의 <파란눈의 한국혼 헐버트>(참좋은친구, 2010)이다. 한국현대사와 긴밀한 연관이 있는 '파란눈'임을 예감할 수 있는데, '한국혼 헐버트'의 간단한 행적은 이렇다.  

한국 이름은 흘법(訖法) 혹은 할보(轄甫)였던 헐버트가 1886년 5월21일 벙커, 길모어 부부와 함께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조선에 도착한 것은 7월4일. 벙커나 길모어 부부 모두 청년 이승만의 개화정신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인물들이다. 이 시절 이승만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곧 대한민국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뜻이다. 이 때부터 20년간 한국에 살면서 헐버트가 보여준 활동의 범위는 말 그대로 눈부셨다. 교육자이자 한글학자, 역사학자이자 언론인, 선교사이자 독립운동가로서 다양한 활동을 펼친 그는 고종을 위해, 서재필을 위해 그리고 이승만을 위해 헌신적인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헐버트란 이름은 생소하지만 한국과 인연을 맺은 외국인 가운데 언더우드란 이름은 가장 유명하지 않을까 싶다. 찾아보니 몇 권의 책이 나와 있다. <언더우드가 이야기>(살림, 2005)도 있고, <조선견문록>(이숲, 2008)도 있다. <언더우드가 이야기>에 대한 소개는 이렇다. "4대에 걸쳐 한국에 살며 120년간 한국 근현대사의 영욕을 함께 한 언더우드 가문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선교를 위해 한국에 도착해 선교 및 교육, 의료 사업을 진행했던 언더우드 1세부터 얼마전 출국한 언더우드 4세까지, 한국을 사랑한 한 서양인 가문 이야기와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가 함께 펼쳐진다."  

9. 실용 

손수호 논설위원이 추천한 실용분야의 책은 매니 하워드의 <내 뒷마당의 제국>(시작, 2010)이다. 표지가 내용을 짐작하게 하는데, 가장 생소한 책이지만 소개는 가장 흥미진진하다.   

뉴욕에서 요리평론가로 이름을 날리던 저자가 로커보어를 자처하면서 푸드마일 실험에 도전했다. 직업으로 미뤄 음식에 일가견이 있고, 도심에 살면서 가장 가까운 곳의 식재료를 추구하니 자연스럽게 자신의 집 뒷마당에 눈길이 꽂혔다. 마당을 갈아엎어 농사를 짓고, 축사(畜舍)를 손수 지어 가금(家禽)을 기르면서 진행한 농장 6개월 프로젝트의 결과는? 참담한 실패다. 교본을 따라 해도 이상하게 작물은 자라지 않았고 가축은 쉽게 배반했다. 토네이도가 농장을 때려 쑥대밭을 만들었다. 그런 곡절 끝에 첫 만찬에 올라온 찬거리는 구운 닭 반 마리와 콜라도 그린(Collard green, 배추 비슷하게 생겼다), 토마토 세 조각. 땅의 정직함, 계란 하나와 가지 한 조각의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책 중간 중간에 배치된 사진이 실험의 치열함을 말해준다. 배수로를 확보하기 위해 가슴팍까지 구덩이를 파는 모습, 닭을 잡아 털을 뽑아 요리하는 장면 등이 서바이벌 게임의 치열함을 말해준다. 가장 극적인 후일담은 아내에 대한 감사의 글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음에도 히스와 제이크를 품에 안고 떠나지 않은 아내가 고맙다”. 마당에서 뛰노는 닭을 보기는커녕 고구마 하나 제 손으로 캐보지 않았으면서 식탐에 젖은 사람이 읽으면 쿵∼ 감동이 내려앉을 책이다. 

책의 부제가 '자급자족에 도전하는 뉴요커의 리얼 생태 서바이벌'. 이보다는 덜 격렬하지만 유사한 컨셉의 책으론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담은 다마무라 도요오의 <전원의 쾌락>(뮤진트리, 2010)도 있다. "도쿄에서 태어나고 자란 부부가 밭농사를 지어보겠다며 멀리 일본 알프스가 바라보이는 신슈지역 해발 850m 도부마치의 언덕에 집을 짓고, 말로는 다 표현하기 힘들 만큼 고된 초보 농사꾼의 수습 기간을 온 몸으로 겪어낸 몇 년간의 시간을 토마토 페이스트처럼 진하게 농축시켜 열두 달의 일상으로 유쾌하게 그려낸 것"으로 소개되는 책이다.   

한국책도 하나 얹자면 서화숙의 <마당의 순례자>(웅진지식하우스, 2009) "27년간의 기자생활로 독해진 마음을 풀고, 22년간의 아파트 생활을 끝내고,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서 진짜 삶을 찾은 동화작가이자 한국일보 기자인 서화숙의 에세이"이다. 부제는 '부암동 푸른 마당에서 누리는 고혹한 자유'. 부암동이란 동네는 언젠가 한번 가봤는데, 독특한 정취를 뽐내는 곳이었다(같은 서울인데도 '관광객'들이 많아서 불편하기도 하다고). 큼직한 도서관만 하나 있으면 금상첨화겠다... 

10. 루이스 멈퍼드  

내 맘대로 고르는 책은 루이스 멈퍼드(멈포드)다. 어차피 8월 마지막 주에 <메트로폴리탄 게릴라>(텍스트, 2010)의 저자인 박홍규 선생과 대담을 하게 돼 있어서(http://blog.aladin.co.kr/mramor/3933690) 일독해봐야 하는 책들이다. 내가 갖고 있는 건 이번에 나온 <유토피아 이야기>(텍스트, 2010) 외 <예술과 기술>(민음사, 1999)뿐이니 큰 부담은 없다. 하지만 전에 소개됐던 <역사 속의 도시> 등이 다시 나오면 좋겠다.  

10. 07. 28.  

P.S. 8월의 읽을 만한 고전은 카프카의 <소송>이다. 최근 들어 매년 새 번역본이 출간되고 있어서 '입맛'을 다시고 있던 차였다. 계획은 세 종의 번역서를 대조해서 읽고 뭔가 써보는 것인데, 잘 될지는 모르겠다. 오손 웰스의 영화 <심판>도 다시 보고 싶군. 답답한 여름에 갑갑한 영화를 보는 것도 이열치열의 한 가지일까... 

  

10. 07. 28.


댓글(3) 먼댓글(0) 좋아요(4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자나 2010-07-31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뒷마당의 제국> 소개글을 보니, 미국 기자의 프랑스 남부 정착기 <프로방스에서의 1년>이 생각나네요. 약간은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전원 풍경이 묘사되어서 한 때 프로방스 붐을 일게 했다는... 사회학적 내지 생태학적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고찰한 책들을 비롯해서 "도시 지식인의 귀농기"라는 주제도 한 아름은 되겠군요.

로쟈 2010-07-31 09:38   좋아요 0 | URL
이번주 국내서에도 <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년>이 있네요...

종이달 2022-04-27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그리고 어쨌든 날씨는 이상적이었다”

문학동네 블로그에 연재하는 '로쟈의 스페큘럼'을 옮겨놓는다.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파티>를 일단 마무리하는 내용이다(다음 회에 약간 더 부연될 수 있다). 어젯밤과 오늘 오전에 쾌적하지 않은 컨디션 상태에서 쓴 글인데, 블로그에는 깔끔하게 정리돼 올라와 있다. 전문은 http://cafe.naver.com/mhdn/16729 를 참고하시길. 

 

잠시 철학사 상식을 들추자면, 칸트를 ‘독단의 잠에서 깨어나게 한 것’은 <인간본성론>의 저자 데이비드 흄(1711-1776)이었다. 칸트 자신의 고백이다. 하지만 그가 말하지 않은 또 다른 인물이 있으니 스코틀랜드의 사상가 헨리 홈(1696-1782)이다. 칸트 연구자인 한스 파이잉거에 따르면 칸트는 홈은 <비평의 원리>(1762)란 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일본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은 <트랜스크리틱>(한길사, 2005)과 <네이션과 미학>(도서출판b, 2009) 등에서 대략 이렇게 정리해주고 있다. 

“칸트가 홈에게서 배운 것은 ‘취미판단’, 즉 미학적 취미판단의 가능성에 대한 반성과 그 근거에 대한 연구였다. 홈은 취미판단의 보편성, 즉 미추의 기준을 찾아 그것을 인간 본성에 내재하는 원리에서 도출해내려고 애를 썼으며, 미추에 관한 인간 감수성의 선천성을 주장하는 입장에 서 있었다.” 

홈과 칸트에게서 공통적으로 문제된 것은 취미판단의 주관성(개인성) 주장과 보편성 요구 사이의 대립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이때 칸트가 도입한 것이 일반성과 보편성의 구별이다. 취미판단은 규칙에 의거하지 않기에 일반성을 갖지 않는다. 하지만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모든 사람의 동의를 요구할 수는 있다. ‘공통감각(sensus communis)’을 통해서다.  

공통감각이란 무엇인가. 고진은 이 공통감각을 개인의 쾌/불쾌, 쾌적함과는 구별하면서 ‘공동의 언어게임’ 문제로 재규정한다. “취미판단에서의 보편성은 서로 다른 규칙체계를 소유하는 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문제”이니까. 그러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우리가 상대방(타자)의 입장이 돼보는 일이다. <도덕감정론>의 저자이기도 한 아담 스미스가 ‘공감(sympathy)’이라고 부른 이것이 바로 칸트가 말하는 ‘상상력’이다. 즉 스미스의 ‘도덕감정’이란 칸트식으로 말하면 “자유로운 존재로서 타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도덕법칙”이다. 요컨대, 도덕감정의 바탕은 타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봄으로써 공통감각의 토대를 마련하는 상상력이다.  



<가든파티>에서 ‘예술가 타입’ 로라가 갖고 있는 자질 또한 이 상상력이다. 천막을 치러 온 일꾼들을 감독하기 위해 어머니와 언니들을 대신하여 나선 로라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자신을 어른스럽게 가장하는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버터 바른 빵조각을 손에 들고 있다).

“안녕하세요.” 그녀는 어머니 목소리를 흉내내며 말했다 그렇지만 끔찍하게도 꾸민 것처럼 들려서, 창피해진 나머지 조그만 계집아이처럼 말을 더듬었다. “아, 저, 용건이…… 천막 때문에 오신 거죠?”

로라는 ‘어머니를 흉내내는 조그만 계집아이’다. 이 ‘아이’는 인부들을 ‘사무적’으로 대하려고 하지만 친근감을 억누르지 못한다. 그녀는 인부들의 웃는 모습에서 “기운내요, 잡아먹지는 않을 테니까”란 ‘메시지’를 읽어내며, 천막을 치기에 적당한 장소에 대한 의견을 나누면서 인부들과 ‘공통감각’을 만들어낸다. 가령, 로라가 백합 잔디밭쪽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자 한 인부는 별로라고 말하면서 “저기, 천막 같은 것은요. 눈을 팍 때리는 그런 데다 쳐야 하거든요. 무슨 뜻인지 아시려나.”라고 덧붙인다. 로라는 잠시 ‘눈을 팍 때린다’(bangs slap in the eye)란 표현이 예의에 맞는지 미심쩍어 하지만, 그의 말뜻은 잘 이해한다(she did quite follow him). ‘공동의 언어게임’ 공간이 확보되면서 이해의 가교가 놓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때문에 로라가 인부들의 모습에서 상당한 호감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다.

아, 일꾼들은 어쩌면 저다지도 멋질까,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춤 상대가 되고 일요일 밤 저녁식사에 오기도 하는 바보 같은 남자애들이 아니라 일꾼들과 친구가 되면 왜 안되는지? 이런 사람들하고 훨씬 더 잘 지낼 수 있을 텐데.
키 큰 남자가 뭔가 둥글게 매달아놓거나 늘어뜨릴 것을 봉투 뒷면에 그리는 사이, 그녀는 모두가 이 말도 안되는 계급적 구분 탓이라고 단정했다. 자기만큼은 그런 차이를 느낀 바 가 없다. 전혀, 눈곱만큼도……

그러니까 로라의 생각으론, 같은 계급의 ‘바보 같은 남자애들’보다 더 멋진 ‘일꾼들’과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건 말도 안되는 ‘계급적 구분’ 탓일 뿐이다. 그녀는 그런 구분에 동의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어리석은 인습’으로 경멸한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일꾼 처녀(work-girl)’가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느낀다. 하지만 바로 그런 ‘깨달음’의 순간을 깨뜨리는 것은 “로라, 로라, 어디 있니? 전화 왔다, 로라!”라는 목소리다. 이 목소리야말로 그녀의 정체성을 일깨워주며 원래의 자리로 ‘소환’하는 역할을 한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일꾼 처녀’는 로라의 상상이 빚어낸 가상의 정체성이자 일시적인 ‘기분’일 뿐이지만, ‘전화’는 현실이다. 가정용 전화가 매우 드문 시절이었기 때문에 ‘전화’라는 말 자체가 그녀의 ‘계급성’을 말해준다. 그것은 하나의 지표다. 일꾼들과는 결코 동일시될 수도, 동질화될 수도 없는 계급성의 지표인 것이다.(...)

이미 셰리던 집안의 자녀들은 이웃 빈민가에는 근접하지 않도록 어렸을 때부터 교육받은 터다. 하지만 로라와 로리 남매는 가끔씩 그 골목을 지나가본 경험이 있고, 무엇보다도 ‘예술가 타입’인 로라는 이웃의 불행에 대해서 특유의 공통감각을 발휘한다. 그녀는 “거기다 그 불쌍한 여자한테 악단 소리가 어떻게 들리겠어.”라고 조스에게 말하고, 어머니한테는 “악단도 오고 모두들 올 텐데. 그 사람들한테도 다 들릴 거예요, 엄마. 이웃이나 마찬가지잖아요!”라는 이유를 대며 파티를 그만두어야 한다고 고집한다. “엄마, 우리가 정말 너무 무정하게 구는 게 아닐까요?”라고 하소연한다. 하지만 아무도 로라의 얘기를 귀담아 듣지 않으며 셰리던 부인은 로라에게 파티용 모자를 씌워줌으로써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 “이 모자는 네 거다. 너한테 딱 어울리네. 내가 쓰기에는 너무 젊은 취향이잖니. 이렇게 그림처럼 예쁜 네 모습은 처음이네. 자, 한번 봐!”라고 말하며 손거울을 들이민다. 로라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리지만 맨스필드가 준비한 건 또 한 번의 반전이다.

“전 이해할 수가 없어요.” 로라는 말하고 재빨리 방에서 빠져나와 자기 침실로 들어갔다. 정말 우연히도, 방에 들어섰을 때 맨 처음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황금색 데이지로 장식한 까만 모자에 긴 까만 벨벳 리본을 맨, 거울에 비친 이 매력적인 소녀의 모습이었다. 자기가 이렇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는 상상도 못해보았다.  

여기서 ‘예술가 타입’의 심미적 주체는 나르시시즘적 주체이기도 하다. 이웃의 사고에 대해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오빠 로리와 상의하려다가도 그가 옷차림과 모자가 근사하다고 말해주니까 로라는 “결국 그에게 한마디도 못하고 말았다.” 로라의 윤리적 가능성과 한계가 한꺼번에 드러나는 장면이다. 파티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다시금 이웃의 불행이 화제에 오르자 셰르던 부인은 남은 음식을 갖다 주자는 제안을 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로라는 다른 의견을 피력한다. “파티에서 남은 음식을 가져다주다니. 그 불쌍한 여자가 그것을 정말 달가워할까?”라는 의문을 갖는다. 역시나 로라의 공통감각이 가능하게 한 의문일 것이다. 적어도 그녀는 전형적인 부르주아적 도덕을 자연스럽게 체현하고 있지는 않다.

부르주아적 도덕이란 무엇인가? 파티용 차림 그대로 음식 바구니를 가지고 가면서 셰리던 부인은 칸나 백합도 같이 가져가라고 권한다. “그 계층(class) 사람들은 이 꽃을 대단하게 여기거든”이라는 게 이유다. 여기에도 공통감각이 작용한다고 해야겠다. 하지만, 이 공통감각은 곧바로 ‘현실주의’의 저항에 직면한다. 꽃줄기에 레이스옷이 망가질 거라는 게 조스의 날카로운 지적이다. 그것을 받아들여 결국 셰리단 부인은 로라가 바구니만을 들고 가게 한다. 요컨대, “이웃을 도와야 한다, 하지만 나의 옷을 더럽히면서까지 도움을 줄 필요는 없다.”는 것이 부르주아적 도덕이다. 그것은 정해진 한계를 초과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한으로서의 타자’에 대한 책임에 붙들리는 윤리와 구별된다. 로라는 과연 그러한 도덕적 주체에서 윤리적 주체로 넘어갈 수 있을까?   

로라가 바구니를 들고 남편을 잃은 스콧 부인을 문상하러 간 장면이 <가든파티>의 결말이다. 그녀를 맞는 것은 미망인의 언니다. 로라가 이웃이나 마찬가지(they're nearly neighbors)라고 했던 스콧 부인과 죽은 스콧이 소위 그녀의 ‘타자’다. 이 결말 장면에서 로라는 그들과 차례로 조우한다. 먼저, 스콧 부인과의 대면하는 모습이다.

그 순간 화롯가의 여자가 돌아보았다. 눈이 퉁퉁 붓고 입술도 퉁퉁 부은, 벌겋게 부어오른 얼굴이 끔찍해 보였다. 로라가 왜 거기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듯 보였다. 무슨 일인가? 이 알지도 못하는 여자가 어째서 바구니를 들고 부엌에 서 있는 것인가? 도대체 무슨 일인가? 그리고 그 가엾은 얼굴은 다시 일그러졌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지만 여기서는 어떠한 ‘만남’이나 ‘교감’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무런 커뮤니케이션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말 그대로 그들은 서로에게 타자다. 그것이 ‘살아있는 이웃’이 타자로서 갖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죽은 이웃’은 어떤가? 

거기에는 한 젊은 남자가 깊은 잠에 빠진 채 - 너무나 곤히, 너무나 깊이 잠들어서 두 사람 모두에게서 멀리, 멀리 떨어진 채 - 누워 있었다. 아, 이렇게 초연하고, 이렇게 평화로울 수가. 그는 꿈을 꾸고 있었다. 다시는 그를 깨우지 마라. 그의 머리는 베개에 파묻혀 있고, 눈은 감겨 있었다. 감은 눈꺼풀 아래 두 눈은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온통 꿈에 빠져든 것이었다. 가든파티니 바구니니 레이스 드레스니 하는 따위가 그에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심지어 망자는 “일어나야만 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나는 만족한다고.”까지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렇게 보는 시점은 로라의 것이다. 여기서 로라의 시점은 망자의 시점과 일체가 되고 있다. “그는 만족한 듯 보였다”가 아니라 “나는 만족한다”라고 기술된다. 말 그대로 ‘공통감각’의 실현이다. 특이한 것은 이 죽음이 아무런 ‘타자성’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정말 멋있고 아름다웠다. 그들이 웃어대고 악단이 연주하는 동안, 이런 기적이 이 골목에 찾아온 것이다.”라고 로라는 느끼며, 죽은 스콧은 더없이 행복한 모습이다. 이런 발견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고, 그에게 무언가 말도 없이 방에서 나가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로라는 큰 소리로 어린애처럼 흐느꼈다. “이 모자, 용서해주세요.” 그녀는 말했다.

로라의 ‘모자’는 그녀의 나르시시즘과 가든파티의 성공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이 모자, 용서해주세요(Forgive my hat)”란 사과를 통해서 로라는 규범적인 차원에서 예의를 갖춘다. 그렇게 하여 상가를 나온 로라가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작품은 종결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맨스필드는 오빠 로리와의 만남은 마지막에 남겨놓았다. 로라에게는 분신이자 멘토 격의 인물이다. “그렇게 끔찍했니?(Was it awful?)”라는 로리의 질문에 로라는 “아니, 그저 경이로웠어.(It was simply marvellous.)”라고 답한다. 경이로웠다는 느낌은 물론 행복해보이던 시신과의 조우를 떠올린 것이겠다. ‘죽은 이웃’과의 대면 말이다.  

하지만, 로라는 아직 ‘끔찍함’에는 도달하지 못한 상태다. ‘살아있는 이웃’과의 만남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윤리적 주체는 이제 형성중인 주체다. 그런 미진함이 ‘인생’에 대한 정의를 어렵게 만든다. 머뭇거리게 하고 말을 더듬게 한다. “인생이란 게-”를 반복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작품에서 이 열린 물음에 대한 봉합은 “그러게 말이야, 응?(Isn't it, darling?)”이란 로리의 대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물론 이것을 임시방편적으로 보는 시각도 가능하다. 아직 제대로 답해지지 않은 것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경우 로라의 물음은 텍스트를 빠져나와 독자에게 전이된다. “그리고 어쨌든 날씨는 이상적이었다”란 작품의 첫 문장에서 ‘그리고’가 끌어들인 효과와 마찬가지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로라에게 “따뜻하고 사랑이 담긴 목소리”로 답해줄 준비가 돼 있는가? 지금은 곤란하다고?.. 

10. 07. 27.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지 2010-07-28 0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이상적인 날씨와 참 그런 삶이 만나는군요... 다음 글이 기대됩니다.

로쟈 2010-07-28 09:01   좋아요 0 | URL
글이 좀 긴 편인데,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

구보 2010-07-28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긴 편이었군요.의식 못하고 단숨에 읽었습니다.스콧부인과 교감이 이루어졌다면 그렇고 그런 통속소설이 됐겠지요. 가능성의 영역일망정 그만한 시도조차 용기로 느껴집니다.


로쟈 2010-07-28 21:34   좋아요 0 | URL
네, 그건 어려운 일이죠. 이 문젠 맨스필드의 다른 작품을 통해서 한번 더 생각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