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옛날에 나는 떠났다
부여를 숙신을 발해를 여진을 요를 금을
흥안령을 음산을 아무우르를 숭가리를
범과 사슴과 너구리를 배반하고
송어와 메기와 개구리를 속이고 나는 떠났다


나는 그때
자작나무와 이깔나무의 슬퍼하든 것을 기억한다
갈대와 장풍의 붙드든 말도 잊지 않었다
오로촌이 멧돌을 잡어 나를 잔치해 보내든 것도
쏠론이 십리길을 따러나와 울든 것도 잊지 않었다


나는 그때
아모 이기지 못할 슬픔도 시름도 없이
다만 게을리 먼 앞대로 떠나 나왔다
그리하여 따사한 햇귀에서 하이얀 옷을 입고
매끄러운 밥을 먹고 단샘을 마시고 낮잠을 잤다
밤에는 먼 개소리에 놀라나고
아츰에는 지나가는 사람마다에게 절을 하면서도
나는 나의 부끄러움을 알지 못했다  

 

그동안 돌비는 깨어지고 많은 금은보화는 땅에 묻히고 가마귀도 긴 족보를 이루었는데
이리하여 또 한 아득한 새 옛날이 비롯하는 때
이제는 참으로 이기지 못할 슬픔과 시름에 쫓겨
나는 나의 옛 한울로 땅으로―나의 태반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해는 늘고 달은 파리하고 바람은 미치고
보래구름만 혼자 넋없이 떠도는데

아, 나의 조상은 형제는 일가친척은 정다운 이웃은
그리운 것은 사랑하는 것은 우러르는 것은
나의 자랑은 나의 힘은 없다 바람과 물과 같이 지나가고 없다
 

-자작나무와 이깔나무가 슬퍼한다는 것까진 모르겠는데

 갈대와 장풍의 붙드는 말도 잊지 않았다니,,,,, 

이용악의 모든 사람의 고향과 함께 이제는 서정시로도

잘 납득이 안 되는 말들을 잘도 하던 백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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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아홉 살짜리 고졸 나이가 경우 된

덕종(德宗) 경강대왕께서 어느 날

7월 연계(軟鷄) 같은 소리로 말씀하시기를 ―

“죄란 목숨보다 어느 거나 가벼운 거니

너그러워얘지. 너그러워얘지.

어쩌다가 화가 터져 주인을 때렸거나, 죽였거나

살인 강도질 같은 거 잘못했다 손치더라도

죽일 것 까지는 없어. 그럴 것까정은 없어.



매나 몇 찰씩 아프게 갈겨서

마음 편한 무인도로나 보내 주라구.

― 《고려사절요 : 卷之四》, 덕종경강대왕, 三年’ 조 

-왠지 귀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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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뼉 칩시다 정을 다하야

우리 손뼉 칩시다

 

노새나 나귀를 타고

방울 소리며 갈꽃을 새소리며 달무리를

즐기려 가는 것은 아니올시다

 

청기와 푸른 등을 밟고 서서

웃음지으십시오

아해들은 한결같이 손을 저으며

멀어지는 나의 뒷모양 물결치는 어깨를

눈부시게 바라보라요

 

누구나 한번은 자랑하고 싶은

모든 사람의 고향과

나의 길은 황홀한 꿈 속에 요요히 빛나는 것

 

손뼉 칩시다 정을 다하야

우리 손뼉 칩시다. 
 

-누구나 한번은 자랑하고 싶은 모든(나의가 아니라)사람의 고향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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