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관심도서' 리스트를 만들어놓기로 한다. 건너뛸 때도 있겠지만, 매주 눈에 띄는 책 다섯 권씩을 골라놓을 참이다. 사실 어제 신간을 검색하다가 얼추 다섯 권 정도가 차기에 직접 구입도 하고 장바구니에 넣기도 했는데, 그 리스트이기도 하다. 주종은 물론 인문사회과학쪽이다. 그중 가장 평이하면서도 모두가 읽어볼 만한 책은 앨버트 허시먼의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웅진지식하우스, 2010)이다. 원제는 '반동의 수사학'으로 '세상을 조종해온 세 가지 논리'가 번역본의 부제다. 우석훈은 추천사에서  이렇게 적었다. "허무주의야말로 가진 자들이 바라는 가장 강력한 대중적 경향이다. 부디 독자 여러분도 허시먼과 함께 허무주의로부터 벗어날 첫 출발점을 찾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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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세상을 조종해온 세 가지 논리
앨버트 O. 허시먼 지음, 이근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1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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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네그리의 제국 강의
안토니오 네그리 지음, 서창현 옮김 / 갈무리 / 2010년 11월
19,000원 → 17,100원(10%할인) / 마일리지 9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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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뮨주의- 공동성과 평등성의 존재론
이진경 지음 / 그린비 / 2010년 11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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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원자- 세상만사를 명쾌하게 해명하는 사회 물리학의 세계
마크 뷰캐넌 지음, 김희봉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8월
16,500원 → 14,850원(10%할인) / 마일리지 82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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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의 '문화와 세상' 꼭지를 옮겨놓는다. 어제 오전에 쓴 것인데, '기본소득'에 관한 얘기를 꺼내려고 했지만 칼럼은 '미친 존재감의 민주주의'에서 멈추었다. 요지는 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한 지적과 함께 새로운 민주주의의 발명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으로 정리될 수 있다. 참고한 책은 박홍규 교수의 <소크라테스 두 번 죽이기>(필맥, 2005)와 엄기호의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푸른숲, 2010)이다. 기본소득 문제를 다룬 <분배의 재구성>(나눔의집, 2010)도 조금 참고했지만 칼럼에 담지는 못했다.  

경향신문(10. 11. 23) [문화와 세상]‘미친 존재감’의 민주주의를 꿈꾼다

서양 민주주의의 기원이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 특히 아테네의 민주주의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건 초등학생도 아는 상식이다. 하지만 조금 더 구체적인 실상은 어떠했을까?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면, 우리의 상식을 조금 보강할 필요가 있겠다. 일단 기본적인 정보를 나열하면 당시 아테네의 인구는 20만~25만명 정도였고, 시민으로서 권리를 인정받는 성인 남성은 약 3만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노예와 여성이 시민에서 배제된 까닭이다. 그래도 그 3만명은 매달 수차례, 매년 40회씩 광장에 모여 국정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고 의결권을 행사했다. 물론 다 모인 건 아니어서 한 번에 5000~6000명 정도가 참여했고, 대부분은 자발적으로 모였지만 출석 수당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것이 민주주의의 ‘기원’이라면 우리는 그보다 더 진전된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을까?

어떤 기원이 모델로서의 의미도 갖는다면 노예와 여성을 배제한 아테네 방식을 ‘제한적’ 민주주의라고 평가절하할 수만은 없다. 거꾸로 그 ‘제한적’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제한성’을 말하는 것이라면? 알다시피 민주주의의 대전제는 모든 시민 혹은 국민이 정치적 주권자로서 평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시민들 ‘사이의’ 평등이며, 모든 인간이 ‘시민’으로 인정받지는 않았다. 아테네의 경우에 노예와 여성은 생산활동과 가사노동을 전담해야 한다는 이유로 오직 성인 남성만이 정치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차별의 정당성이 아니라 두 가지 활동의 병행이 어렵다는 인식이다.

가령 아테네에서 공무원이나 법관 같은 공직은 1년 임기의 추천제였다. 요즘 초등학교 일부 교실에서 반장을 돌아가면서 맡는 식이다. 그렇게 시민권을 가진 자는 누구나 공직자가 될 수 있었지만 무보수 명예직이어서 돈벌이가 되지는 않았다. 거꾸로 그럼에도 공직을 맡을 수 있었던 건 모든 시민이 어느 정도는 먹고살 만했기 때문이다.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기에 공직을 사익추구를 위한 수단으로 삼지 않고, 시민으로서의 명예와 공익을 위해 봉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아테네식 민주주의가 시사해 주는 것은 민주주의에서 ‘물적 토대’가 갖는 의의다. 민주주의는 ‘깨어있는 시민의식’만 가지고 작동하는 제도가 아니다. 그것은 노예적 삶으로부터 해방된 시민을 필요로 한다.

‘잉여’라고 자칭하는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서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가 만만치 않다. “민주주의가 되어도 내 삶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내’가 참여할 수 없다면, 그것은 ‘당신들의 민주주의’다. 마치 노예와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본 아테네 민주주의처럼 말이다. 구조적인 취업난 속에서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없는 다수의 청춘들이 “우린 아직 인간이 아니다”라고까지 말한다. 그들의 모습을 담은 책 제목을 빌리면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라고 항변한다. 물론 ‘비인간’으로 내쫓기는 것은 청춘들만이 아니다. 우리시대 다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또한 ‘시민’의 삶이 아닌 ‘난민’의 삶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들의 목소리를 틀어막고 정치적·제도적 공간에서 배제하려 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민주주의는 어쩌면 그리스의 제한적 민주주의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시민과 비시민을 분할하는 민주주의 말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다른 가능성은 없는가? 혹 모든 구성원을 주권자 시민으로서 포함하고 대우하는 민주주의를 우리는 새로 발명할 수 있을까? 유행하는 말로 ‘미친 존재감’을 자랑할 만한 민주주의를 잠시 꿈꾼다

10.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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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국식 민주주의가 옳은 길인가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12-19 09:26 
    어제 '뒷북성'으로 발견한 책은 왕사오광의 <민주사강>(에버리치홀딩스, 2010)이다. 서구식 민주주의, 특히 미국식 민주주의를 비판한 책으로 경제대국 중국의 '자신감'을 표현하는 책으로 소개됐는데, 사실 저자의 민주주의 비판은 '상식'으로 수용될 필요가 있다(가라타니 고진이나 지젝의 민주주의 비판도 맥락을 같이한다). 민주주의를 사라지게 만드는 현재의 민주주의( ‘자유’ 민주주의, ‘간접’ 민주주의, ‘헌
 
 
2010-11-25 15: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25 1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드카로 시작해서 맥주로 끝내기
모스크바발 페투슈키행 열차

한겨레21의 '예술가가 사랑한 술' 코너에서 '체호프의 보드카'가 다뤄졌기에 스크랩해놓는다. 지난 봄에 주간한국의 기사에서 다뤄진 것과 같은 아이템이다. 다시 읽어봐도 재미있다.  

  

한겨레21(10. 11. 19) 체호프의 언론인을 위한 코스 메뉴 

춥다. 유독 추위를 많이 타기도 하지만 올가을은 남다르게 춥다. 옷장 구석에 묻혀 있던 코트는 옷장 문을 열었을 때 손이 닿기 쉬운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러시아인은 대륙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기 위해 겨울이면 보드카를 마신다는데, 어깨에 한기가 오스스 돋아나기 시작한 요즘, 보드카에 대한 생각이 간절해졌다. 칵테일의 베이스로 여기저기서 보드카를 흡수해왔겠지만 한 번도 스트레이트로 먹어본 적은 없다. 한 잔, 단 한 잔만 마신다면 왠지 몸에서 열이 펄펄 날 것만 같다는 생각에 집착하며 밤 11시 야근을 마치고 셔터를 반쯤 내린 슈퍼마켓에 허리를 잔뜩 굽히고 기어들어가 보드카 한 병을 ‘득템’했다. 추위에 대비한 월동 준비 물품이기도 하지만, 언젠가 도전해보리라 생각한 안톤 체호프의 언론인을 위한 8가지 코스 메뉴를 채우려면 보드카가 없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체호프는 1880년께 ‘자명종 달력’이라는 글에 언론인에게 맞춤한 메뉴를 작성해 실었다. 8단계 코스는 다음과 같다. 1. 보드카 한 잔 2. 양배추 수프와 카샤(메밀가루로 쑨 죽의 일종) 3. 보드카 두 잔 4. 양고추냉이를 곁들인 어린 돼지고기 요리 5. 보드카 세 잔 6. 양고추냉이·고춧가루·간장 7. 보드카 네 잔 8. 맥주 일곱 병

술잔이 없어 커다란 머그의 바닥에 보드카를 공평하게 펼쳤다. 한 모금 마시니 뜨끈한 감각이 뱃속을 데웠다. 바깥의 찬 공기를 쏘인 피부는 여전히 차갑고 몸속만 따뜻해지니 왠지 기분이 좋았다. 올겨울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리하지 않고 오늘은 8코스 중 1단계에만 머물기로 한다.

알코올을 무려 40% 포함한 보드카는 타는 듯 목을 타고 내려가 온몸 구석구석에 뜨거운 기운을 전했다. 러시아에서 처음 판매될 때는 60%에 이르는 보드카도 생산됐다고 한다. 몇 잔이면 쉬이 취하는 이 술을 두고 차이콥스키는 “보드카에 취해 게슴츠레한 얼굴로 비틀거리던 러시아 백성들 모습을 가락으로 바꾸면 <백조의 호수> 같은 러시아 음악이 된다”고 했다.

여기, 게슴츠레하게 비틀거리는 이들로 그득한 문학작품도 있다. 소련 지하 출판물 사상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는 베네딕트 예로페예프의 <모스크바발 페투슈키행열차>는 취기로 출렁대는 소설이다. 주인공은 제목 그대로 모스크바에서 출발해 페투슈키에 이르기까지 2시간 남짓의 기차여행을 한다. 그는 44개 역을 거치면서 준비해온 각종 술을 꺼내먹으며 만취 상태에 도달한다. 흔들리는 시선과 끊임없이 웅웅대는 대화들을 따라가노라면 읽는 이도 함께 취할 지경이다. 술자리에서 덜 취한 이가 취한 이 옆에서 추임새를 넣듯, 대화의 맥락을 따라잡으라고 알려주는 각주만 50여 쪽에 이른다. 올해 초 독일에서는 예로페예프의 이 소설을 연극으로 옮긴 무대에서, 주인공을 맡은 배우 마르크 슐체가 진짜 보드카를 마시며 연기하다 술을 못 이겨 급히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단다.

독한 보드카는 아이러니하게도 서양에서 해장술의 베이스로도 쓰인다고 한다. ‘블러디 메리’는 보드카에 토마토 주스와 우스터 소스, 소금, 후추를 조금 넣고 셀러리와 레몬 조각 등으로 장식한 칵테일이다. 숙취 해소에 좋아 브런치와 함께 곁들이는 경우가 많단다. 따뜻한 취기를 주는 것에서 시작해 숙취까지 돕는 술이라니, 올겨울 완벽한 술을 찾은 것 같다!(신소윤 기자)  

10.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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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11-22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유일하게 즐기는(?) 블러드 메리가 이런 효과가 있었군요. 머리로는 몰라도 몸은 이미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같네요.

로쟈 2010-11-24 08:31   좋아요 0 | URL
모든 술하고 잘 어울려서 보드카를 성격 좋은 술이라고 하더군요...

2010-11-22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24 0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24 1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25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25 1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는 사피어-워프 가설(언어상대성 가설)로 유명한 미국의 언어학자 벤자민 리 워프의 선집 <언어, 사고, 그리고 실재>(나남, 2010)가 궁금해서 어제 서점을 찾기도 했지만, 지난주는 눈에 띄는 새책이 많지 않은 주였다. 그런 가운데에서 한권 꼽으라면 가장 묵직한 <엥겔스 평전>(글항아리, 2010)이 서가를 장식할 만하다. 자세한 소개기사가 있기에 옮겨놓는다. 알라딘이 먹통이 되지 않았다면 어제 옮겨놓았을 기사다(상품 이미지 넣기는 아직도 안되는군).   


◇엥겔스(뒷줄 왼쪽)가 1864년 마르크스(〃 오른쪽), 마르크스의 딸들과 함께 찍은 사진.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딸들로부터 ‘둘째 아빠’라고 불릴 정도였으며 그들을 40여년간 보살폈다     

세계일보(10. 11. 20) “마르크스의 예언 가시화 시작됐다” 

공산주의 이론을 완성한 마르크스(1818∼1883)와 엥겔스(1820∼1895·사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공산주의가 종언을 고한 지 20여년 만에 이들의 명성이 되살아나고 있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와 시베리아 강제수용소를 초래한 무시무시한 존재에서, 최근에는 현대 자본주의를 예리하게 분석한 이론가로 변신 중이다. 이미 1998년 ‘공산당 선언’ 출간 150주년을 맞아 뉴욕타임스는 ‘마르크스의 주가가 150년 만에 다시 치솟았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은 바 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공산당 선언은 지칠 줄 모르고 부를 창조하는 자본주의의 힘을 먼저 인식했고, 자본주의가 세계를 정복할 것이라고 예언했으며, 여러 나라의 경제와 문화가 세계화라고 하는 불가피한 과정 속에서 엄청난 고통을 겪게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평했다.

영국의 대표적 소장 역사학자인 트리스트럼 헌트(퀸 메리칼리지대 역사학부 교수)는 ‘엥겔스 평전’을 통해 “지금도 이런 분석은 유효하며 재해석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뉴욕타임스의 예언대로 서방의 정부와 기업, 은행들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자유시장 만능주의(신자유주의)라는 태풍을 만났다. 멕시코와 아시아는 경제위기를 겪고 있고, 중국과 인도는 급속한 산업화를 이루었으며, 러시아와 아르헨티나에서는 중산층이 대거 몰락했고, 대량 이주가 일어나고 있다. 저자는 “2007∼09년 전 세계는 자본주의 위기를 겪으며 마르크스의 ‘불길한 예언’은 가시화하기 시작했다”고 밝힌다.

2008년 가을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은행 국유화가 진행됐다. 그 와중에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자본론’(2008년 독일에서는 베스트셀러)을 읽고 있는 사진이 일간지에 나오자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그(마르크스)가 돌아왔다”고 외쳤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마르크스를 가리켜 “놀라운 분석력을 가진 존재”라고 극찬했다.

지난 80년간 지구의 3분의 2에 달하는 땅에서 유혈과 파괴를 초래한 마르크스가, 오히려 파괴적인 자본주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부르주아지는 종교적인 외경심, 기사도의 열정, 속물적인 감상주의도 몽땅 이기적인 계산이라는 얼음물 속에 처박았다”고 했다. 자본주의가 각국의 언어와 전통 국가체제마저 변질시키는 과정을 밝혀낸 최초의 인물은 마르크스였다.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말이 미국화(Americanization)의 대명사가 되기 훨씬 이전에 벌써 마르크스는 세계화의 모순을 짚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동업자 프리드리히 엥겔스에 대한 평가는 마르크스에 대한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단지 그가 부르주아지 출신이었기 때문인가. 동유럽이 몰락한 1989년 사회주의의 아픈 기억을 잊고 싶어하는 분위기와 맞물려 그는 대중의 기억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심지어 마르크스를 윤리적 휴머니스트로, 엥겔스를 기계론적 과학주의자로 양분해 엥겔스는 옛 소련과 중국, 동남아 공산국가들이 저지른 만행의 원조로 지탄받기도 했다. 


◇극심한 빈부차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사진으로, 영국 빅토리아시대(1837∼1901) 면방직공장에서 일하는 소년의 모습이다. 전 세계 노동자들이 이 사진을 보고 분개했다.

저자는 엥겔스에 관심을 갖는 이유에 대해 “그가 아니었으면 공산주의가 태동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프로이센의 부유한 상인의 아들 엥겔스는 마르크스를 돕기 위해 맨체스터 면방직 공장을 40여년간 운영하는 등 그를 성심성의껏 도왔다. 그뿐만이 아니다. 미국 남부 플랜테이션에서부터 영국 지배하의 인도까지 세계 무역의 흐름을 두루 접하면서 경험한 국제 자본주의 구조와 모순은 마르크스 자본론의 토대가 되었다. 그는 빈민가 체험을 하고 무장 봉기에 나섰으며, 식민지 해방 문제를 정확히 제시했다. 그는 또 마르크스의 천재성을 살리고, 공산주의라는 대의를 위해 개인적인 야망까지도 버렸다고 저자는 풀이한다. 사회주의자들이 걸핏하면 떠들던 ‘개인희생’은 이렇듯 엥겔스가 시초였다는 것이다. 

엥겔스는 마르크스와 함께 자본주의 비판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현대와 진보, 종교와 이데올로기, 식민주의, 세계적인 재정 위기, 도시 이론, 페미니즘, 다윈주의, 생명윤리의 문제에 대해서도 마르크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영국의 역사학자 토니 저트는 “본래의 공산주의가 변질됐으며, 레닌주의라는 독소로 인해 일탈했다”고 규정했다. 저자는 ‘못된 공산주의’가 물러간 지금이야말로 다시 한번 그들의 저작을 되돌아볼 좋은 기회라고 제안한다. 경제위기가 반복되면서 대기업과 거대 은행, 거대 자본가 등에 부가 집중하고, 빈부차가 극심해지며 서민과 노동자가 불행해지는 신자유주의 물결 속으로 빠져드는 지금, 이 책은 신자유주의 종말이 어떻게 귀결될 것인지를 시사하고 있다. 우주와 인간과 역사를 근본부터 잘못 인식해 허물어진 마르크스의 광풍이 다시 휘몰아친다면 역사의 향방은 어떻게 될까.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유명 사상가의 단순한 평전이 아니다.(정승욱 선임기자) 

10.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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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 한겨레에 실린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지면에 코너 타이틀이 나가지 않았다). 20세기 러시아문학을 강의하다 보니 연거푸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다루게 됐는데, 이번엔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이다. 네 종류의 번역본이 나와 있지만(문예출판사판은 박스보관도서다), 반응은 그렇게 뜨거운 것 같진 않다. 그래도 20세기 러시아문학의 고전인 건 변함이 없다. 그의 원고는 불타지 않는다... 

한겨레(10. 11. 20) 거장의 원고는 불타지 않았다

괴테의 비극 <파우스트>에는 두 여인과의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 각각 ‘그레트헨 비극’과 ‘헬레나 비극’이라 불리는 이야기다. 죽은 이후에 자신의 영혼을 넘기기로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은 늙은 학자 파우스트는 마녀가 만들어준 물약을 마시고 매력적인 젊은이로 변신한다. 약 기운에 도취된 그에게는 모든 여자가 여인들의 이상형 헬레나로 보인다. 그가 거리에서 처음 만난 아가씨 마르가레테(그레트헨)에게 “아, 정말로 저 처녀는 아름답구나! 나 이제까지 저런 애를 본 적이 없구나”라고 경탄하는 이유다. 마르가레테도 파우스트에겐 헬레나의 미모를 가진 처녀로 보이는 것이다. 실상도 그럴까? 



파우스트가 “아름다운 아가씨”라고 부르며 집에 바래다주겠다고 수작을 걸 때, 마르가레테는 “저는 아가씨도 아니고, 아름답지도 않아요”라고 답한다. 여기서 ‘아가씨’는 귀족계급의 처녀를 가리키는 ‘프로일라인’의 번역인데, 대개 ‘아가씨’로만 번역돼 있어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우리말에서 ‘아가씨’는 보통 ‘아줌마’의 상대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일어 ‘프로일라인’은 시민계급의 처녀를 가리키는 ‘융프라우’의 상대어다. 마르가레테의 대답은 자신이 ‘프로일라인’이 아니라 ‘융프라우’라는 것이고, 그런 의미를 살려서 ‘프로일라인’을 ‘양반집 아가씨’라고 옮긴 경우도 있다. 그렇게 정직하게 답한 걸 고려하면 “아름답지도 않아요”라는 마르가레테의 말을 겸손으로만 간주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최소한 그녀는 평범한 처녀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20세기 러시아문학의 거장 미하일 불가코프의 장편소설 <거장과 마르가리타>에서 여주인공 마르가리타는 특별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파우스트와 마르가레테’ 이야기를 ‘거장과 마르가리타’ 이야기로 다시 쓴 이 작품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모스크바의 박물관에서 일하던 ‘거장’은 어느 날 거리에서 꽃을 들고 있는 한 여인을 본다. 그는 그녀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눈빛에 실린 고독에 이끌리고 두 사람은 곧장 사랑에 빠진다. 어떤 사랑이었나? “사랑은 골목길에서 갑자기 살인자가 튀어나오듯이 우리 앞에 나타나 우리 두 사람에게 달려들었습니다. 번개처럼, 단도처럼!”

거장은 예수와 본디오 빌라도에 관한 소설을 쓰고 마르가리타는 소설에 흠뻑 빠져들어 그를 ‘거장’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발표도 하기 전에 문학계에서 부당한 비난과 혹평의 대상이 된다. 스탈린 시기에 탄압받은 작가 불가코프의 문학적 분신이기도 한 거장은 실의에 빠져 자신의 원고를 소각한 뒤에 제 발로 정신병원을 찾아간다. 그런 참에 볼란드(악마)와 그의 일당은 흑마술로 모스크바를 한바탕 혼란으로 몰아넣으며 소비에트 시민들의 탐욕과 속물 근성을 폭로한다. 그리고 마르가리타는 볼란드가 연 사탄의 무도회에서 안주인 역할을 하고 그 대가로 거장과 재회한다. 볼란드의 마법은 거장이 소각한 원고까지도 되살려놓는다. “원고는 불타지 않는다!”는 그의 말은 생전에 이 마지막 작품을 출간할 수 없었던 불가코프의 문학적 신념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뒷얘기가 궁금하신가? 빛의 세계에는 합당하지 못하기에 거장에게 내려진 처분은 세 번역본에 따르면 ‘평온’(문학과지성사)과 ‘안식’(열린책들), 그리고 ‘평안’(민음사)이다. 마르가리타와 함께 영원한 안식을 얻는 거장의 모습은 이 작품의 교정을 보면서 세상을 떠난 불가코프의 마지막 희원을 구현하고 있다. 

10. 11. 20. 

 

P.S. 반갑게도 러시아에서 TV시리즈로 제작된 <거장과 마르가리타>가 국내에도 출시됐다. 50분짜리로 10부작이니 대략 500분 분량인데, 유튜브에서는 영어자막본으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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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고쿠도 2010-11-20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우스트...번역본이 참 여러가지가 나와있는데 그 중 어떤 판본이 좋을까요? 우선은 열린책들에서 나온 것을 갖고 있기는 합니다.

로쟈 2010-11-20 15:38   좋아요 0 | URL
열린책들판이 가장 경제적이긴 합니다. 궁금한 대목 몇 개를 비교해보시고 추가로 구입하셔도 좋겠구요. 저도 대여섯 종 갖고 있는 듯합니다...

2010-11-20 15: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21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