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리크스의 외교문서 '폭로'에 대한  미 정부의 압박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설립자 어산지는 영국에서 성폭행 런던의 독방에 갇혀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더불어 그가 노벨평화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는 소식도). 위키리크스라는 '국적없는 언론'의 힘을 거꾸로 보여주는 사례 같다. 주한 미대사관에서 작성한 외교문서들도 공개된 문서 리스트에 포함돼 있어서 향후 어떤 '폭발'이 가능할지 예단할 수 없다. 세계언론사의 한 획을 긋는 게 아닌가 싶다. 위키리스크의 활동을 지지하는 칼럼 두 편을 스크랩해놓는다.  

경향신문(10. 12. 11) [시론]위키리크스 사태와 언론의 자유 

지난 11월 말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WikiLeaks)가 자국 외교관들을 통해 수집한 외국 정부와 국제기구, 그리고 국제 주요 인사들에 대한 비밀스러운 정보를 담은 미국 국무부의 외교전문 25만건을 폭로해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위키리크스의 폭로로 인해 국가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은 미국은 연일 위키리크스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면서 위키리크스 설립자인 줄리안 어산지(Julian Assange)를 1917년에 제정된 간첩법(Espionage Act)을 적용해 처벌할 것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 서버 제공업체 서비스 중단
그뿐만 아니라 그동안 위키리크스에 인터넷 서버를 제공해 왔던 아마존닷컴이 서버 제공을 중단하고, 스위스의 포스트 파이낸스 은행이 어산지의 은행계좌를 차단했다. 또 그동안 위키리크스와 아무 문제없이 거래를 해왔던 마스터 카드와 비자카드 그리고 온라인 결제업체인 페이팔(PayPal) 등이 위키리크스 지지자들의 기부금 결제를 중단하는 등 위키리크스에 대한 압력이 전방위로 이루어지고 있다. 위키리크스는 아직까지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이러한 압력의 배후에 미국 정부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위키리크스의 이번 외교 전문 폭로에 대해 미국 언론들은 위키리크스의 폭로를 공공의 이익을 위한 활동으로 지지하는 언론사와 국가 비밀 누설로 국가를 곤경에 빠뜨렸다고 비난하는 언론사로 양분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언론인 폭스뉴스(Fox News)는 위키리크스의 폭로는 미국의 외교활동에 큰 상처를 입히고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위상을 떨어뜨려 미국의 역할을 약화시켰다며 맹비난했다. 반면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는 위키리크스의 외교 전문 폭로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고 미국 정부의 외교 목표들과 성공·타협·좌절 등을 그 어떤 자료보다도 잘 보여주고 있어 이번 폭로는 국민의 알권리 충족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며 위키리크스의 폭로를 지지하고 나섰다.

이처럼 위키리크스의 외교 전문 폭로에 대한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된 가운데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되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 바로 국가 안보와 국제사회에서 국가 위상의 중요성을 내세워 정부 기관이 행하는 언론 자유에 대한 간접적인 위협 효과(Chilling Effect)다. 앞서 설명했듯이, 이번 외교 전문 폭로로 위키리크스는 그동안 인터넷 서버를 이용해 왔던 회사로부터 서비스 중단 통보를 받았고, 거래를 맺어왔던 은행과 기업들과도 관계를 청산해야만 했다. 이번에 위키리크스와 관계를 청산한 업체들은 공식적으로 미국 정부나 외부로부터 압력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들의 갑작스러운 관계 청산에는 어떤 형태로든 정부 기관의 압력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고, 이는 전형적인 권력기관의 언론에 대한 간접적인 위협효과 중 하나다.

언론에 대한 명백한 탄압행위
많은 언론사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뉴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앞으로 언론매체의 인터넷 의존도가 점차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번 위키리크스의 사태처럼 인터넷 서버를 제공하는 업체들이 외부 압력에 의해 서비스를 갑자기 중단할 경우 언론사가 큰 타격을 입는 것은 물론 인터넷상에서 언론의 자유는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된다. 이는 언론의 자유에 대한 명백한 탄압 행위다.

지난 1971년 미국 연방 대법원은 내부 고발자 ‘대니얼 엘스버그(Daniel Elsberg)’의 제보를 바탕으로 베트남전 1급 비밀문서인 일명 ‘펜타곤 페이퍼(Pentagon Papers)’를 폭로한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대해 정부기관의 비리나 비행을 폭로한 행위는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위키리크스가 이번에 폭로한 내용도 미국 외교관들이 비정상적인 외교활동을 통해 수집한 비밀정보들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둘의 차이가 무엇인지 모르겠다.(최진봉 텍사스주립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한겨레(10. 12. 13) [김선주 칼럼] 국적없는 언론, 위키리크스 

미국의 시사주간 <타임>이 2010년 10대 뉴스의 두 번째로 꼽은 것은 위키리크스의 ‘거침없는 폭로’이다. 폭로라는 말이 주는 부정적인 느낌을 지우면 위키리크스는 꿈의 언론이다. 2007년 폭로전문 사이트로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 위키리크스는 2008년엔 이코노미스트가 주는 뉴미디어상을 받았고, 2009년엔 국제앰네스티로부터 미디어상을 수상했다. 위키리크스는 새로운 미디어임이 분명하고 국적 없는 세계언론이다. <뉴욕 타임스> <가디언> 등등 세계 유수의 언론은 위키리크스의 폭로 문건을 받아서 2차적으로 가공해 보도하고 있을 따름이다.

모든 저널리스트는 겉으로 드러난 것만이 아닌 진실을 정확하게 알고 거기에 의거해서 보도하고 비판하고 논평하고 싶은 꿈이 있다. 그러나 자신이 쓰는 기사가 어떤 단체가 필요에 따라 공개한 정보에 의해서만 쓰여지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라는 엄청난 의구심에 자주 휩싸인다. 돈과 권력과 기득권을 가진 집단이나 빅브러더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필요한 정보를 조금씩 흘리며, 그들은 저 높은 곳에 앉아서 기자들이 갑론을박하는 것을 보며 낄낄거리는 것이나 아닌지 항상 뒤꼭지와 발밑이 불안하고 써늘하다.

위키리크스가 아니면 교황이 추기경 시절 이슬람국가인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을 왜 반대하였는지, 미국의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이 무엇 때문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생체정보가 필요했는지, 미국 군인들이 아파치 헬기에서 어떻게 바그다드의 행인을 조준사격하면서 낄낄거렸는지 우리는 영원히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위키리크스의 설립자인 줄리언 어산지는 지금 성폭행 혐의로 런던의 감옥에 갇혀 있다. ‘세계 외교가의 9·11 사태’를 가져온 미국의 극비 문서 25만건 공개 뒤 인터폴은 세계 188개국에 어산지를 수배했다. 그가 어떤 정치적인 목적을 갖고 특정한 집단을 파괴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세계의 빅브러더만 겨냥하고 있고 그 폭로가 어디로 향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구명을 위해 그가 어떤 권력과도 어떤 거래도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고 또 그러리라 믿는다.

사르트르의 말을 빌리면 지식인이란 남의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다. 정의와 자유, 선과 진실, 인류 보편의 가치가 유린당하면 남의 일이라도 자신의 일로 간주하고 간섭하고 투쟁하는 사람이다. 집단이기주의에 매몰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지식인의 소임이고 언론인 또한 이 범주에 속한다. 저널리즘의 역사는 정보나 사실을 감추는 특정 기관이나 단체와 싸워 정보를 찾아내 공개한 역사이고 그로 인해 역사는 올바른 방향으로 물꼬를 틀었다는 어산지의 주장은 옳다. 폭로만 하는 것은 무책임한 짓이라는 비판은 옳지 않다.

부당한 정보수집을 해 문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한 집단이 자국 국민이나 세계 여론을 향해 정당성과 필요성을 입증할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다만 어떤 국가가 미친 짓을 저질렀다고 해서 그 나라의 국민들을 배척하지 않을 세계인의 양식이 필요할 뿐이다.

‘국경없는 의사회’나 ‘국경없는 기자들’처럼 국경없는 언론이 필요해진 세상이다. 개인은 도덕적일 수 있지만 인류 역사상 국가는 결코 도덕적인 적이 없었다. 지금처럼 글로벌한 세상에서는 그래서 국적없는 언론이, 글로벌한 세계인의 양식, 혹은 집단지성의 도덕적인 힘이 개입해야만 한다. 무한경쟁의 세계시장경제체제 속에서는 글로벌한 기준이란 강자에게는 달콤하지만 약자에겐 횡액일 뿐이다. 어떤 나라든 어떤 빅브러더이든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짓을 했을 때 그것을 저지하지는 못했더라도 사후에 압박하고 세계 혹은 해당 국가의 여론에 의해 더 좋은, 더 겸손하고 더 이상적인 정부로 갈 수 있도록 압박은 해야 한다. 위키리크스가 해놓은 국적없는 언론의 폭로는 그래서 가치가 있고 옹호되어야 한다

10. 12. 13.  

P.S. 위키리크스라는 한 가지 '대안' 이전 언론의 현실은 어떤 것이었나? '미디어 카르텔'과 '거짓말'이 판치고, '여론조작'으로 국가가 앞장서서 국민을 속이는 현실이었다. 반전을 위한 '폭로'의 행진이 계속돼야 하는 이유다.   

최시중 방통위원장과 방통위 인사들의 행태에 대한 실명비퍈으로 눈길을 끄는 <미디어 카르텔>(마티, 2010)에 대한 리류기사는 http://news.nate.com/view/20101213n2269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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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때리다 2010-12-13 15:16   좋아요 0 | URL
어샌지를 살해해야 한다던 새라 페일린이라는 cerebrum이 empty하신 nyun이 미국의 최고 스타덤에 있는 정치인이라지요? 그리고 그런 스타덤에 오른 큰 비결이 바로 그런 무뇌아적 발언들 덕분이고요...

로쟈 2010-12-14 16:05   좋아요 0 | URL
미국의 '힘'이죠...

노이에자이트 2010-12-16 17:32   좋아요 0 | URL
푸틴이 어샌지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더군요.글쎄...푸틴이 언론자유를 논하다니 참 이상합니다.

로쟈 2010-12-16 23:42   좋아요 0 | URL
러시아식 민주주의를 비난하던 미국식 민주주의는 뭐가 다르냐는 거겠죠. 어샌지를 비판한다면 더 이상하지 않을까요?
 

어제 종로에 있는 서점에 들러 손에 든 책은 김삼웅의 <리영희 평전>(책보세, 2010)이다. 책은 발행일이 12월 10일자인 1쇄였는데, 어느새 3쇄에 들어간다고 한다(오늘이 11일인데!). 서거와 맞물려 다시금 선생의 삶과 역정이 주목받는 듯하다. 일부의 냉대와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단연 '이주의 책'이라고 해야겠기에 서평기사와 칼럼을 옮겨놓는다. 그리고 '사회적 독서'로 분류해놓는다.  

서울신문(10. 12. 11) 권력 앞 독야청청했던 리영희의 삶과 글  

기자로서 펜을 빼앗겼지만, 그럴수록 진실을 토하는 사자후는 더욱 커져갔던 참언론인이었고, 강단 바깥으로 내쳐짐으로써 비로소 만인의 스승이 될 수 있었던 이였다. 야만과 광기가 몰아치던 시대의 한 줄기 등불 역할을 했던 이였다. 불이면서 또한 얼음이었고, 엄혹한 시절 많은 이들의 전위면서 또한 후방이었던 이였다. 



무릇 평전이라는 것이 흔히 빠지는 오류가 ‘주례사식 찬사’다. 하지만 전 독립기념관장 김삼웅이 쓴 ‘리영희 평전’(책보세 펴냄)은 이러한 것들과 본질적으로 궤를 달리한다. 리영희라는 인물 자체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의 삶에서 흠결을 찾아내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엄혹한 시절이었기에, 오히려 조금만 타협했다면 남부럽지 않은 권력과 부를 누리는 삶도 가능했겠지만 그는 언론사와 대학에서 네 차례나 내쫓기는 삶을 회피하지 않았다. 또한 세계사적인 대변화의 시기, 외로운 섬처럼 고립된 한국사회의 미숙한 이성들에게 명징한 시대정신의 이정표를 제시했다. 펜을 앞세운 이성의 목소리는 물론 투쟁의 거리와 감옥도 그는 기꺼이 마주했다.

1989년 한국기자협회보에 남긴 그의 글은 당시에나 지금이나 후배 기자들의 얼굴을 새삼 홧홧거리게 만든다. ‘내게 신문지는 있어도 신문은 없었다. 신문지의 소식들은 하나같이 권력을 두둔하는 낡은 내용, 권력에 아부하는 구린내 나는 내용’이라면서 ‘그따위 신문종이를 만들어내는 신문인들이 감히 언론인을 참칭할 때 나는 그들을 언롱인(言弄人)이라는 호칭으로 경멸해 왔다.’고 호되게 질타한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도 마찬가지다. ‘모든 정부의 결정, 정책, 행동을 국가의 이름으로 대치해 놓고 그런 것에 대한 외부의 비판을 반박하는 것이 애국심이라고 직결해 버리는 사고방식이 과연 애국심이겠는가를 생각해 본다.’

1970년 리영희 명예교수가 언론계를 향해 토해낸 사자후는 40년이 지난 지금의 기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한반도에 전쟁의 기운이 감돌고, 초강대국과 굴욕적인 외교 협상을 맺어도, 진실 찾기는 애써 외면한 채 그저 정부의 발표 중심으로 판단하고 그것을 국익으로 생각하는 기자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리영희의 모습 전부는 아니다. 차가운 이성의 소유자인 듯싶은 이미지로 비쳐지지만 기자 시절 동료들과 놀러 가서 배갈을 잔뜩 마시고 보트를 타려다 물에 빠지거나 코트를 잃어버리고 돌아온 이야기며, 백범 김구의 암살범 안두희를 테러했던 생면부지의 의혈청년을 불러 저녁밥과 술을 사주며 의기를 칭찬했다는 일화 등은 그의 인간적 면모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리영희의 정신을 일찌감치 몸으로 받아 실천한 후배 언론인이자 역사의 뒤안길에 묻힌 인물의 현재적 의미를 되살려내는 평전 작업에 매진해 오고 있는 김삼웅이기에 명쾌하고 엄정한 펜끝은 절로 리영희를 닮았다.

지난 8월 27일. 1시간 30분에 걸쳐 생애 마지막 인터뷰를 가진 것을 포함해 모두 150시간에 이르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또한 자서전 ‘역정’, ‘대화’ 등 그의 십수권에 이르는 저서를 모두 아울렀고, 그동안 리영희에 대해 각계각층에서 남긴 짧고 긴 글을 모두 모아 정리했다. 김삼웅은 리영희의 81세 생일이자 병세가 완연했던 지난 2일 서울 면목동 녹색병원을 찾아 책을 바쳤다.

김삼웅은 “평전을 쓰면서 솔직히 후회했다. 그의 청렬한 생애와 넓고 깊은 사유·지식의 세계를 가늠하는데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리영희에 대한 김삼웅의 존경심이 뚝뚝 묻어난다. 하지만 필체는 이성을 가뜩 갖춘 ‘리영희체’다.(박록삼기자)  

경향신문(10. 12. 11) [책동네 산책]리영희처럼 읽고 생각하기

리영희 선생이 돌아가셨다. ‘1970년대 젊은이들의 사상적 은사’ 또는 ‘의식화의 원흉’이 그에게 상투적으로 따라붙었던 수식어다. 정반대의 뉘앙스이지만 이런 수식어는 대체로 그가 쓰고 말한 것들에서 유래한다. 기자로서, 학자로서, 저술가로서 선생은 참 많은 글을 썼다. 그래서 우리는 선생이 남긴 글들만 생각하기 쉽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 글을 쓰기 위해 그가 누구보다 많은 것을 읽고, 궁리했다는 사실은 잊기 쉽다는 것이다. 



선생은 환갑을 몇 년 앞둔 88년 <역정>(창비)이라는 자전적 에세이집을 출간했는데 오래전 읽는 이 책에서 내가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모두 ‘읽기’에 대한 선생의 집념에 관한 것이다. 한국전쟁이 나던 시절 선생은 안동공립중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근무중이었다. 선생은 집에서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고 있다가 전쟁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언제인가 징역을 살 때는 학창시절에 하다 만 프랑스어 공부도 할 겸 가족에게 <레 미제라블> 원서를 넣어달라고 해서 읽었다는 대목도 나온다.

내가 기자가 된 것은 그가 현직기자에서 물러난 지 30년 가까이 흐른 뒤이지만 ‘기자 리영희’가 남긴 전설은 여전히 언론계에 남아 있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통일원 자료실’ 얘기일 것이다. 지금도 완전히 자유로운 편은 아니지만 과거엔 기자 또는 학자라고 해도 북한 또는 공산권에서 나온 자료에 접근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어느 북한 관련 연구자가 통일원 자료실을 자주 이용했는데 자기가 열람하는 자료마다 ‘리영희’란 사람이 앞서 열람했다는 기록이 있기에 유심히 봤더니 거의 모든 자료의 열람카드에 리영희라는 이름이 써 있었다고 한다. <리영희 평전>(책보세)을 쓴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 관장은 자신이 그간 쓴 현대사 인물에 관한 10여권의 평전을 선생이 모두 꼼꼼히 읽고 잘못된 부분까지 지적한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런 에피소드들은 글을 쓰거나 말하기에 앞서 ‘팩트(fact)’부터 챙기는 선생의 습성을 보여준다. 선생의 평론집 <스핑크스의 코>(까치)에는 ‘한국의 젊은 여성들은 바쁘다’란 제목의 칼럼이 실려 있다. 96년에 쓴 글인데 젊은 여성들이 소비주의에 휘둘리는 세태를 꼬집는 내용이다. 선생은 그 해 겨울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가죽부츠가 크게 유행한다는 얘기를 매스컴에서 들었다는 말로 글을 시작했다. 결혼식 참석차 명동에 나간 김에 가죽부츠의 인기가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기 위해 길 한쪽에 서서 지나가는 여성 20명의 구두를 살폈다고 했다. 그 결과 8명이 가죽장화를 신었더라면서 40%라는 수치를 도출한다. 이처럼 세태를 풍자하기 위한 글에서조차 선생은 근거를 제시하고 싶어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쳤기에 선생의 글들은 차분한 분석적 논조를 유지할 수 있었고, 웅변보다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었다. 시사평론집은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오래됐다는 인상을 받기 쉬운데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두레), <스핑크스의 코>처럼 십수년 전 나온 선생의 평론집은 지금 읽어도 시의성이 느껴지는 글들이 많다. 우리가 선생에게서 ‘리영희처럼 쓰기’뿐 아니라 ‘리영희처럼 읽기’와 ‘리영희처럼 생각하기’도 배워야 하는 이유이다.(김재중 기자) 

10.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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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당의 새해 예산안 날치기 처리로 정국이 경색돼 있는데,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연평도 포격 때문에 묻힌 감이 있는) '민간인 사찰'이 뇌관이 아닌가 싶다. 두 가지 사안을 연결시켜서 짚고 있는 칼럼이 있어서 스크랩해놓는다. 대표적인 보수논객인 이상돈 교수의 시론이다. '비판적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는 필자는 4대강 사업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반대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열혈 보수주의자가 보기에도 '정권의 말로'는 이미 시작됐다... 

 

 경향신문(10. 12. 10) [시론]정권의 말로 예고하는 ‘민간인 사찰’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과 관련이 있는 국무총리실 내의 한 조직이 정권에 걸림돌이 될 만한 사람들을 은밀하게 사찰했다는 의혹이 점차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노무현 정부에 의해 임명된 공기업 임원 등 구 여권 인사뿐 아니라 한나라당의 비주류라고 할 수 있는 국회의원 여러 명도 사찰 대상이었음이 거의 확인되어 있고, 박근혜 전 대표도 사찰을 당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직계이지만 이상득 의원과 대립각을 세웠던 정두언 의원이 사찰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나선 대목은 특히 곱씹어볼 만하다.

사찰 대상의 동향을 파악하는 수준이 아니라 휴대폰을 상시적으로 도청했다는 의혹마저 제기되어 있어 사찰의 배후가 간단치 않으며, 사찰의 규모 또한 알려진 것보다 더 광범했을 것이라는 의심이 든다. 사찰의 초점이 구 정권 인물에서 한나라당 의원으로 옮겨간 것으로 보이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사찰 대상이었다는 부분은 현 집권세력이 여당 의원들의 이탈을 무엇보다 경계하고 있을 것이라는 그간의 가정(假定)을 확인시켜 준다. 국회가 미디어법과 세종시 문제를 처리할 때 여당 내 반대 때문에 곤혹스러웠던 집권세력이 임기말의 ‘권력 누수’를 막기 위해 사찰이란 불법수단을 동원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4대강 사업 등과 관련해서 정권에 비판적이던 몇몇 한나라당 의원과 박근혜 전 대표가 사찰 대상이었다는 의혹은 그런 점에서 납득이 간다.

대통령의 큰형과 관련 조직 윤곽
엊그제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여당 단독으로 예산안과 문제 법안들을 통과시킨 데서 보듯이, 집권세력은 대화와 타협이란 정치를 포기한 지 오래다. 간혹 쓴소리를 했던 한나라당 의원들도 꼼짝 못하고 이런 폭거에 동참한 것을 보니 사찰이 갖고 있는 ‘위협적 효과(chilling effect)’를 알 수 있다. 박연차와 연루되었다고 보도된 의원들이 기소되어 곤욕을 치른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의원들은 ‘보이지 않는 손’의 뜻을 알아서 새길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도 사찰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검찰이 수사를 덮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는 점에서 ‘민간인 사찰’은 닉슨 대통령을 사임으로 몰고 간 워터게이트보다 훨씬 심각하다. 워터게이트는 일과성 사건이었지만 ‘민간인 사찰’은 정권 초부터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권 내 비선조직이 정권 반대세력과 여당 의원을 불법으로 사찰했다면 그 나라는 ‘독재국가’다. ‘독재정권’이 ‘국격’을 논하고 ‘G20’ 운운하고 있는 만화 같은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

상황이 이렇지만 의석수가 부족한 야당은 탄핵은커녕 국정조사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이런 수모를 당한 여당 의원들이 먼저 들고 일어나서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검찰에 수사를 요청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들은 돌부처처럼 얼어붙어 있으니, 측은한 생각이 들 뿐이다.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이러고도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를 하겠다는 집권세력과, 자신들은 비주류라서 현 정권의 실정(失政)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는 한나라당 내의 일부 세력이다. 이런 난정(亂政)을 하고도 훗날 무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집권세력도 한심하고, 침묵으로 동조함으로써 침몰하고 있는 배에서 탈출할 수 있는 구명정을 차버린 비주류도 한심하다. 하도 한심해서 이들이 혹시 영구집권을 할 묘책이라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여당의원까지 포함, 독재의 상황
이제 공은 ‘국민’에게 넘어왔다. ‘민간인 사찰’은 물론 ‘4대강’, 종편 배정 등 이 정권이 벌이고 있는 일은 목적과 내용은 물론 방법과 절차에서도 올바른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국회는 마비되어 있고, 검찰이나 감사원 등에도 믿을 구석이 없으니 불법을 바로잡을 장치가 완전히 망가져 있는 형국이다. 내년에는 선거가 없어서 민의를 밝힐 기회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민주주의를 이룩하고 또 그 열매를 향유했던 우리 국민이 이러한 독재상황을 감수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1987년 6월혁명 때도 그러했고, 1960년 4월혁명 때도 그러했다. 그만큼 민심은 무서운 것이니, 집권세력은 그것을 알아야 한다.(이상돈 |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0.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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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0 17: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10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통 12월 중순이 넘어가면 출판계는 대작이나 문제작을 내놓지 않는다. 연말연시에 책 선물을 하는 경우는 있지만 독서할 시간은 많지 않고 그만큼 책을 찾는 발길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12월에 나오는 책들은 대개 '밀어내기용'이 많다. 해를 넘기지 않기 위해 애를 쓴 결과다. 하지만 간혹 '통념'을 건너뛰는 책들도 나온다. 

  

이번주부터 나오기 시작한 <루쉰 전집>(그린비)이 그렇다. 1, 2, 7권이 선보였는데(더 나왔나?) 장서가들의 '책탐'을 부추길 만하다. 15권짜리 장정에 들어간 김영수의 완역본 <사기>도 <로마제국쇠망사> 완역본을 능가하는 대사업이 될 듯하다. <사기 본기1>(알마, 2010)이 이번주에 나왔다.   

전집이 아닌 단행본에 시선을 맞추자면 <문학카페에서 철학읽기>(웅진지식하우스, 2006)의 저자, 아니 내게는 <데칼로그>(바다출판사, 2002)의 저자 김용규의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휴머니스트, 2010)이 출간됐다. 아니 이것도 '순수' 단행본은 아니군.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시리즈라 한다. 당초 신학과 철학을 전공한 저자의 '야심작'이라 할 만한데, 860쪽이 넘는 분량은 조철수의 <예수 평전>(김영사, 2010)을 떠올려준다. '대작'에 값하는 책들이다.   

개인적으론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이 '신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으로 시작하는 것이 흥미롭다.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거기에서 하나의 선택과 방향, 물음 등이 읽히기 때문이다. 방대한 여정도 시작은 첫걸음부터다. '신이란 무엇인가'란 형이상학 고유의 물음형식이 이 책의 첫걸음인 것이다. 그래서 떠올린 책은 잭 마일스의 <신의 전기>(지호, 1997)다. 퓰리처상 수상작이라고 해서 몇년전에 구해놓았는데, 현재는 절판중인 책이다(소장도서라곤 하지만 항상 어디에 두었는지가 문제다). 얼마전에 나온 카렌 암스트롱의 <신을 위한 변론>(웅진지식하우스, 2010)까지 포함하면 얼추 신에 대한, 신을 위한 '종합선물세트'가 될 만하다. 그런데, 왜 하필 신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가? 저자가 길잡이로 삼은 것은 <팡세>의 한 구절이다.  

"자신의 비참함을 알지 못하고 신을 아는 것은 오만을 낳는다. 신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비참함을 아는 것은 절망을 낳는다."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로 '신'에 이어지는 것은 '이성'이라 한다. 언제쯤 출간되는지 모르겠지만 볼프강 벨슈의 <이성1>(이학사, 2010)과 같이 읽어봄직하다. 이 또한 제1부만 번역돼 나온 상태인데, 원서의 부제는 '우리시대의 이성비판과 횡단이성'이다. 절반만 번역되었기에 번역본 부제는 '우리시대의 이성비판'이 됐다. 저자의 색깔이 더 강하게 드러날 '횡단이성'이 마저, 얼른 출간되면 좋겠다. 그런데, '우리시대'가 언제부터인지 궁금하신가? <계몽의 변증법>(문학과지성사, 2001)부터다. 거기서 알 수 있지만 제목의 '이성비판'에서 '이성'은 '비판'의 주어가 아니라 목적어다. 저자는 데리다와 들뢰즈, 리처드 로티와 넬슨 굿맨 등 프랑스와 미국철학의 '이성비판' 사례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볼프강 벨슈의 전작으론 <미학의 경계를 넘어>(향연, 2005)가 소개돼 있다. 몇년 전 세미나에서 읽었는데, '미학의 해체'란 주제가 흥미롭지만 번역은 좀 아쉬웠다.    

그리고, 아감벤 독자들에겐 반가운 소식인데, <호모 사케르>를 기준으로 하자면 초기 저작인 <유아기와 역사>(새물결, 2010)가 번역돼 나왔다. 부제는 '경험의 파괴와 역사의 근원'.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이탈리아어판 벤야민 전집 편집자로 명성을 얻었는데, 그의 벤야민관을 엿보게 해주는 책이다. '벤야민 르네상스를 불러온 문제작'이란 뒷표지의 문구가 그래서 나온다. 덧붙이자면, "프랑크푸르트학파-아도르노의 연장선상에 있던 벤야민을 20세기 지성사의 전혀 새로운 성좌 속에 배치시키고 있는 역작"이다. 개인적으론 <장치란 무엇인가?>(난장, 2010), <세속화 예찬>(난장, 2010)과 함께 연말에 읽을 '아감벤 3종세트'다.   

그런가 하면 '이글턴 3종세트'도 있다(연말이라 독서도 '묶어서' 한다). 오랫동안 대기중이던 <이론 이후>(길, 2010)가 출간됐기 때문이다. 소개는 이렇다. "이론의 중요성을 각인시키고자 하는 테리 이글턴의 문제작. 인간은 결국 '이론'을 통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비로소 자신을 성찰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논리를 치밀한 문화이론을 바탕으로 제시함과 동시에 그 굴곡의 역사를 되짚어본다." 

 

생각난 김에 연말에 읽을 '이론서'가 필요하신 분은 지젝 등이 편집한 <공산주의 이념>(Verso, 2010)이 어떨까 싶다(어제 배송받은 책이다). 알랭 바디우의 <공산주의 가설>에 대한 발표와 토론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공산주의 가설>은 특이하게도 알라딘에서는 판매하지 않는다. 나는 교보에서 구입했다). 같이 읽을 만한 책은 바디우의 <철학을 위한 선언>(길, 2010)과 지젝의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창비, 2010). <공산주의 가설>은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에서 소개를 받고 구입한 책이다.  



문학분야를 건너뛰면 관심도서 가운데 남는 건 로저 펜로즈의 <실체에 이르는 길>(승산, 2010)이다.  

 

"세계적인 석학 로저 펜로즈의 8년 만의 역작. 스티븐 호킹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거목이 창조해 낸 ‘현대물리학의 집대성’"이라고 소개되는 책. 난이도가 있는 책이어서 '독서'가 될지 '구경'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우주의 법칙으로 인도하는 완벽한 안내서'라는 홍보문구는 유혹적이다. 하지만 어제 두 군데 서점에 들렀을 때는 구할 수 없었다... 

10. 12. 10.  

P.S. 원래는 '이주의 관심도서' 리스트를 만들어놓으려고 했으나 얘기가 길어져서 페이퍼로 돌리고, 제목을 따로 붙여놓는다. 파스칼의 단장을 약간 비틀어놓으면서...  

"자신의 비참함을 알지 못하고 책을 읽는 것은 오만을 낳는다. 책을 읽지 않고 자신의 비참함을 아는 것은 절망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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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때리다 2010-12-10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reality라는 말은 철학에서는 주로 '실재'로 번역하지 않나요? '실체'라는 말은 substance의 번역어로 사용하고요...

로쟈 2010-12-10 09:17   좋아요 0 | URL
정신분석에선 '현실'이니 다 제각각입니다. 물리학에선 '실체'라고 옮기나 봅니다...

비로그인 2010-12-10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비참함을 알지 못하고 책을 읽는 것은 오만을 낳는다. 책을 읽지 않고 자신의 비참함을 아는 것은 절망을 낳는다."

이 문장이 파스칼의 문장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오네요. 신은 멀고 책은 가까워서 그런가요? ㅎㅎ 연말에도 여전히 바쁘시겠죠? 날이 본격적으로 추워질 모양인데 감기 조심하시구요^^

로쟈 2010-12-11 10:28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신은 멀고 책은 가깝지요.^^ 연말에도 바쁘긴 한데, 그래도 최악은 넘긴 듯합니다.^^;

2011-01-06 1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11-01-06 18:49   좋아요 0 | URL
가끔씩 들르셔서 그런 모양입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시길~

귀족온달 2011-02-05 0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는 <신을 위한 변론>과 <신을 올호하다>를 관심있게 읽었습니다. 리차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과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신은 위대하지 않다>에 대한 반론으로 쓴 책들이었는데요, 로쟈님의 서평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실 신학에 무지한 저로서는 이글턴이 말하는, 히치킨스는 신학을 모르면서 종교를 무신론적 관점에서 공격한다는 지적이, 좀 마뜩잖았습니다. 게다가 이글턴은 히치킨스의 계급적인 문제를 거론하면서 왜 사회적인 문제에는 입을 닫으면서 종교를 공격하느냐고 일침을 놓는데, 이 수준이 되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사회주의적 신앙인 vs 자유주의적 무신론자....예전에 <종교전쟁>이라는 책에서도 신학자분의 대담을 통해서도 시원하지 않았는데요, 과학을 기반으로 한 무신론에 대한 신학의 답변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혹은 그것에 대해서 탐독할만 한 다른 책들은 머가 있을까요? 두서 없는 댓글 죄송하고요 ㅠㅠ 앞으로도 좋은 서평 부탁드립니다^^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작년에 이어서 올해의 과학도서를 골라놓는다. 실은 내가 고른 것이 아니라 아태이론물리센터에서 선정한 '2010년 올해의 과학도서' 10권의 리스트를 챙겨놓는 것이다. 작년말에 나온 책들도 포함돼 있다(나는 작년 리스트에 포함했었다). 선정위원들은 국내서가 한권밖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아쉬움을 표했다고. 리스트는 가나다순이다. '2010년'에 초점을 맞추면 올해의 대표 과학도서는 스티븐 호킹의 <위대한 설계>(까치, 2010)를 꼽아야겠다. 말 그대로 올해 출간된 책이기도 하니까. 거기에 최신간을 보태자면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로저 펜로즈의 <실체에 이르는 길>(승산, 2010). '현대물리학의 집대성'이라고 소개되는 책이다. 연말 선물로 푸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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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내 2010-12-09 20:19   좋아요 0 | URL
그런데 위대한 설계는 생각보다 매출량이 적더군요...
전 상당히 기대했는데...

어째 1Q84, 정의란 무엇인가 이 둘이 흥행을 올 해는 쓸어버린 것 같군요..^^;

handsomedino 2010-12-10 02:47   좋아요 0 | URL
호오... 로저 펜로즈의 저 책이 번역되었다니... 흐아... 감탄사를 엉뚱한 데 남발하고 갑니다^^;;

귀족온달 2011-02-05 03:25   좋아요 0 | URL
칼세이건의 책...나온지 몰랐네요 감사합니다. 존 엠슬리의 독약에 관한책 흥미롭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