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강의차 KTX에 몸을 실었다. 오늘 강의는 <안나 카레니나>. 아침에 워밍업 삼아 안나를 소재로 시도 한편 썼다. 지난 월요일부터 매일 한편씩 쓰는 중이다. 페이스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억지로 막아두지는 않으려고 한다. 20년만에 쓰는 기분도 나쁘지 않기에.

두달 정도 강의를 하면 한주쯤 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5월 첫주 강의를 최소로 잡았지만 그 사이 특강들이 채워져서 예상했던 휴식은 취하지 못할 것 같다. 게다가 후반기에 다룰 책들 가운데 처음 강의에서 읽는 작가와 작품이 여러 편이라 준비도 필요하다. 마크 트웨인과 헨리 제임스를 읽을 예정이고 울프의 <올랜도>도 강의에서 처음 다룬다.

분기별 혹은 작가별 강의가 끝날 때마다 물개 조련사들이 정어리를 던져주는 것처럼 스스로에게 포상을 내린다. 이번주에 종강한 일본근대문학 강의와 관련해서는 ‘일본현대문학사 시리즈‘를 중고로 구입했다. 동국대출판부에서 나온 시리즈로 현재는 모두 절판된 상태라 ‘사라진 책들‘에 속한다. <일본 메이지문학사><일본 다이쇼문학사><일본 쇼와문학사>로 구성돼 있고 저자는 모두 다르다. 다만 역자가 공통이어서 역자의 기획으로 보이는 시리즈다.

가라티니 고진의 <일본근대문학의 기원>과 가토 슈이치의 <일본문학사서설>(전2권) 등이 소장하고 있는 일본문학사인데(영어책으로는 로널드 킨의 <일본문학사>도 갖고 있다. 상당히 두꺼운 책이다) ‘일본현대문학사 시리즈‘가 보강됨으로써 제법 든든해졌다. 다음에 또 일본근현대문학 강의를 진행한다면 내용을 좀더 업그레이드 할 수 있겠다. 아마도 한두번 정도 더 다룰 수 있지 않을까. 강의할 시간도 많이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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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이다(러시아 작가 투르게네프의 200주년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같은 해에 태어나서 1883년에 똑같이 세상을 떠났다). 당연하게도 마르크스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그 유산을 되짚어보는 책들이 연이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번주 책으로는 토머스 스타인펠트의 <마르크스에 관한 모든 것>(살림)을 주문해놓은 상태다. 독일에서 나온 책으로 제목 값을 할지는 받아봐야 알겠다.

˝명성, 선언, 돈, 자본 등 16개의 키워드를 뽑고 마르크스의 이론을 적용하여 수필 형식으로 풀어나간다. 마르크스에 대해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옹호할 것은 옹호하면서 균형 잡힌 시각을 보인다. 지은이의 문학·음악 등 예술 분야의 폭넓은 식견이 책의 내용을 풍성하게 하며 우리에게 마르크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보여준다.˝

로날드 뭉크의 <마르크스 2020>(팬덤북스)는 표지의 인상과는 달리 정색하고 마르크스의 유산을 다룬 책이다.
˝68혁명 이후 세대와 1989년 소련 해체 이후 세대는 날이 갈수록 힘을 잃어 가는 마르크스주의를 버리고 후기 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심지어는 포스트정치철학들에서 새로운 신념을 찾고자 노력했다. 그러한 모순이 이 책의 핵심 주제이다.˝ 원저도 봐야 가늠이 될 것 같다.

그리고 <공산당 선언>(도서출판b)의 새번역본도 나왔다. 하반기에는 나대로 <공산당선언>에 대한 강의를 할 수 있을지 점검해봐야겠다. 그러자니 읽어야 할 책이 또 산더미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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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내버려두지 말아요
나는 내가 아니에요 내 안의 주머니
빨간 주머니 눈길을 질주하는 철제 기관차
내 안의 금속성
깨어나 보면 모든 게 거울이에요
모두가 나를 흉내 내고 손가락질하고
나는 쉿! 하고 말해주었어요
쉬잇!

나는 잠들지 않아요
내 노래는 멈추지 않아요 방향을 바꾸지
않아요 바꾸려 하지 말아요 밖으로
나가지 못해요 모두가 나를
보고 있어요 브론스키 당신
인가요 브론
스키 나를 내버려두지 말아요

내가 아닌 나는 무슨 꿈을
꾸는지 나는 밖으로 나가지 못해요
당신이 이백 루블을 건넸다고 했죠
과부가 된 여자에게 나는
알았어요 내게 건넨 눈짓이었죠
주머니가 부풀어 올랐어요
나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는 뺨과 입술과 가슴
당신의 손가락이 닿는 가슴

꿈에서처럼 폭설이 내렸죠
죽어가고 있었죠 나는
모든 게 안전했어요
죽어가는 건 쉬운
일이에요 그때 당신을 떨어뜨린 말처럼
가엾은 프루프루
당신은 죽일 수밖에 없었어요
나는 비명을 질렀어요 알렉세이 브론
스키 살아있나요 당신

네 흐느꼈지요
우리는 그렇게 넘어버렸어요
그렇게 지나가 버렸답니다
쉬운 일이었어요 나는 왜
미치지 않았던가요 우리는
왜 미칠 수 없었던가요
사랑은
미쳐버린 자들의 평온이에요
당신의 온기가 그리워요

한순간이었어요 촛불처럼
꺼져가고 있어요 기차가
오고 있네요 지금
나는 내가 아니에요 나는
누구의 이름으로
죽게 될까요
죽음은 죽음일까요
눈을 가려주세요
이제는
방향을 바꿀 수 없어요
쉬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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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1274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존 허스트의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위즈덤하우스)에서 한 가지 테마와 관련한 내용을 적었다. '가장 짧은 세계사'라고는 하지만 매우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요긴한 책이다. 리뷰에서 다룬 건 그 일부다. 리뷰에서 언급된 페트리샤 크론(패트리샤 크로운)는 <케임브리지 이슬람사>(시공사)의 공저자인데, 존 허스트가 참고한 책은 크론의 <산업화 이전 사회들>로서 현재 배송을 기다리는 중이다. 



주간경향(18년 5월 01일) 유럽이 중국을 앞설 수 있었던 이유


공항서점 베스트셀러는 독서 트렌드를 읽게 하는 한 척도다. 어떤 책이 읽히는가가 궁금해서 손에 든 책이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인데, 지난해 가을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서점에 발견하고 곧바로 구입했었다. 짐작에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유럽사 책이 아닐까 싶다. 책의 원제는 '가장 짧은 유럽사'다. 유럽사의 상식과 표준을 제공한다고 보면 되겠다.


표준이라고 하지만 저자의 독창적인 관점이 없는 건 아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역사학자인 저자는 유럽사를 균등하게 다루지 않는데 적은 분량 때문이 아니라 유럽의 모든 부분이 똑같다고 생각하지 않아서다. "세계사에 미친 영향력을 따지자면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독일의 종교개혁, 잉글랜드의 의회정치, 프랑스의 혁명적 민주주의가 폴란드의 분할보다 더욱 중요하다"는 게 저자의 입장이다. 


이는 자연스레 역사서술에서 선택과 집중과 함께 독특한 구성을 낳는다. 유럽사 전반에 대한 짧은 개요를 제시한 다음 주제별로 꼼꼼하게 다시 되짚어보는 식이다. 이러한 반복적 구성 덕분에, 책을 덮으면 유럽사를 두 번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유럽의 기이함'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게 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하는 것도 책의 미덕이다. 


저자가 토로하는 바에 따르면 그의 유럽사 이해는 이슬람사 연구자인 페트리샤 크론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다. 오히려 유럽사 연구자가 아니어서 크론은 유럽사의 특이성을 지적할 수 있었는데, 오늘날의 정치경제체제가 유럽식 모델에 기원을 두고 있어서 이 특이성이 간과된다. 많이 지적되는 것이지만 16세기 이전만 하더라도 중국문명은 유럽보다 앞서 있었다. 유럽은 인쇄술과 제지술, 나침반과 화약 등을 중국으로부터 직간접으로 수입했다. 그렇지만 대의정부가 수립되고 산업혁명이 일어난 곳은 중국이 아니라 유럽이었다. 곧 유럽은 근대를 발명한다. 


어떤 차이 때문인가? 권력의 분산과 문화의 개방성이 핵심이다. "유럽에서는 권력이 분산되어 있었으며, 고급문화는 여러 요소의 혼합물이었고 세속적 지배에 견고하게 묶여 있지 않았다." 가령 중세 유럽에서 황제와 교황 사이의 충돌은 교회와 국가 사이의 오랜 긴장을 낳았고 권력 분산의 선례가 되었다. 강력한 군주제 국가의 출현이 지연되면서 독립적인 도시국가와 제후국이 다수 존재하게 되었고, 이러한 소규모 국가들 덕분에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가능했다. 더불어 유럽 전체의 변형이 가능했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반면에 중국에서는 오랫동안 권력이 황제에게만 집중되어 있었고 개개인이 아무리 총명하다 할지라도 국가의 통제를 벗어날 수 없었다. 제자백가 시대가 중국사상사의 전성기였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도 동일하다. 강력한 통일국가와 전제권력 하에서는 새로운 사상과 혁신이 탄생하기 어렵다. 이러한 역사의 교훈이 과연 과거의 교훈에만 그칠 것인가. 1인권력체제가 공고해져가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의 현재 모습이 역사의 교훈을 뒤집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18. 0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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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권짜리로 나왔던 ‘진중권의 서양미술사‘를 보완하는 책이 나왔다.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인상주의 편>(휴머니스트). 부제가 ‘미학의 눈으로 보는 현대미술의 태동‘이다. 흔히 현대미술의 출발점으로 간주되기에 인상주의에 관한 책은 나름 적지 않게 나왔지만 진중권표 서양미술사가 이번에도 가장 확실한(인상적인?) 가이드 노릇을 할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지만 굉장히 많은 도판을 수록하고 있어서 인상파 화집으로도 읽을 수 있다. 유럽의 미술관을 결코 많이 둘러본 것은 아니지만 몇 차례 방문하다 보니 인상파 그림도 친숙하게 마주치곤 했는데 어떤 그림을 본 것이고 그 미술사적 의의는 어떠한지 다시 되짚어볼 수 있어서 좋다. 아직 실제로 보지 못한 그림들에 대해서도 사전 숙지용으로 읽어둠 직하다.

인상주의에 대해서 내가 갖고 있는 책도 여러 권이다. 리월드의 <인상주의의 역사>(까치)를 표준으로 생각해왔는데 아직 읽지 않았다. 좀더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기본으로 하고 <인상주의의 역사>는 부교재로 삼아야겠다. 이런 정도야 허용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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