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르블랑의 '아르센 뤼핑 전집'(아르테)이 출간되었다. 전10권(확인해보니, 기존 황금가지판과 코너스톤판 전집이 20권짜리다). 이렇게 분량이 많았었나 싶지만, 여하튼 결정판이라고 하니까 뭔가 '결정된' 듯해서 반갑다. 기억에 뤼팽에 매혹된 건 초등학교 3학년 때가 아니었나 싶다. 아마도 당시 구할 수 있었던 2-3권의 뤼팽 시리즈를 읽지 않었던가 싶은데, 40년 전에 이 전집을 접할 수 있었다면 까무러쳤겠다. 지금이야 물론 그 정도는 아니다. 게다가 10권이면 언제 읽겠냐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리를 생각해서 리스트로 묶는다. 일단은 5권까지만 구입할까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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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 1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7월
33,000원 → 29,700원(10%할인) / 마일리지 1,650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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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 2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7월
35,000원 → 31,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750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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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 3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7월
30,000원 → 27,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500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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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 4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7월
29,000원 → 26,100원(10%할인) / 마일리지 1,450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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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자 한겨레의 '책과 생각'에 실리는 칼럼을 옮겨놓는다. 번역과 번역서에 대해서 짚어보는 '이현우의 언어의 경계에서' 꼭지인데, 이번에는 톨스토이의 대작 <전쟁과 평화>의 역사관에서 대해 적었다. 지난해 문학동네판에 이어서 최근 민음사판이 출간된 게 글을 쓴 계기다...


 


한겨레(18. 07. 20) '역사'를 입에 놀리는 사람을 경계하기


레프 톨스토이가 한국에 처음 소개된 건 1909년 잡지 <소년>을 통해서였다. 최남선과 이광수가 주선자이자 그의 숭배자였다. 투르게네프와 함께 톨스토이는 1920년대 독자들에게 이광수만큼 많이 읽힌 것으로 알려진다. 그렇지만 어떤 톨스토이였나를 묻게 되면 대답은 궁색하다. 소설가로서 그의 대표작 <전쟁과 평화>나 <안나 카레니나>는 해방 이후에야 번역되기 때문이다. 번역된 이후에도 한국 독자가 주로 읽은 건 카츄샤와 네흘류도프의 사랑 이야기 <부활>이었다. 톨스토이를 모르는 독자는 거의 없지만 그를 제대로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 독자도 많지 않다. <전쟁과 평화>를 완독한 독자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한때 <안나 카레니나>도 강의에서 읽을 번역본이 없어서 애를 먹었는데 <전쟁과 평화>는 그보다 더 오랫동안 사정이 좋지 않았다. 오래된 번역본 두어 종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다 지난해에야 세계문학전집으로 새로 교정된 문학동네판이 출간되었고, 최근에 젊은 세대의 번역본으로 민음사판이 가세했다. 톨스토이의 걸작 <전쟁과 평화>를 읽을 수 있는 조건이 비로소 갖춰진 것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전쟁과 평화>는 무엇이 특별한가. 1869년판에 붙인 후기에서 톨스토이는 자신의 작품이 “장편소설도 아니고, 서사시도 아니고, 역사적 연대기는 더더욱 아니”라고 적었다.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과 그 패배라는 사건을 중심에 두고 1805년부터 1820년까지 러시아 사회의 모습을 담은 이 소설은 당시 기준으로 표준적인 유럽 장편소설을 초과하고, 과거 사실의 기록을 지향하는 역사 연대기도 훌쩍 넘어선다. 어느 한 범주로만 묶을 수 없어서 가족소설이면서 성장소설이고 전쟁소설이면서 역사소설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런 가운데서도 톨스토이가 특별한 비중을 둔 것은 역사관의 개진이었다. 나폴레옹 전쟁을 거리로 삼아서 역사란 무엇인가를 성찰해보려는 것이 그의 강력한 집필 동기였다. 그가 도달한 결론은 무엇인가.



놀랍게도 톨스토이는 국가적 대세에는 아무런 주의도 기울이지 않고 개인적 관심에만 골몰했던 사람들이 영웅적 행위를 통해 참여하려고 했던 사람들보다 훨씬 유익한 일을 했다고 본다. “역사적 사건에서 무엇보다 뚜렷한 교훈은 지혜의 나무를 먹지 말라는 것이다. 무의식적인 활동만이 열매를 맺을 뿐, 역사적 사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은 결코 그 사건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문학동네) “역사적 사건들 가운데 가장 명백한 사건은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금지한 것이었다. 오직 무의식적인 활동만이 열매를 맺으며, 역사적 사건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은 결코 자신의 의의를 이해하지 못한다.”(민음사)


이러한 역사관에서 바라볼 때 나폴레옹 같은 세계사적 영웅이 역사를 움직여간다고 보는 영웅사관은 공상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나폴레옹은 <전쟁과 평화>에서 냉소거리가 되는데, 그가 아무리 군대를 지휘하고 명령을 내린다 하더라도 전장의 아수라장 속에서는 제대로 전달되지도 수행되지도 않는다. 나폴레옹 자신만 그렇게 믿을 뿐이다. 그렇다고 톨스토이가 민중사관에서처럼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본 것도 아니다. 톨스토이가 보기에 역사는 무의식적 과정이며 주체가 없다. 그것은 마치 사회성 곤충으로서 벌의 생활과 유사하며 실제로 톨스토이는 벌에 자주 비유한다. 개개의 벌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전체 군집의 생존과 존속에 기여한다. 역사적 과정에서는 인간도 이런 벌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톨스토이의 교훈이다.

18. 0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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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8-07-20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전쟁과 평화를 읽지 않았습니다 -.- 근데 읽어도 그 뜻을 모를 게 확실했네요. 로쟈님 글을 읽고나니 읽어야겠다 싶습니다. 힌트를 얻고나면 어려운 문제도 풀 수 있으니깐요!

로쟈 2018-07-20 08:47   좋아요 0 | URL
안식년때 한번 읽어보시길.~

jhyeon02 2018-07-20 0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음사판 번역자 연진희입니다. 톨스토이가 국내에 소개되는 과정이며 톨스토이의 역사관에 대한 조명을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이 작품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아무리 많은 말을 쏟아도 부족하겠지만, 특히 역사관은 <전쟁과 평화>에서도 아주 중요하고 의미 있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로자님의 서재에 댓글을 남기기로 한 것은 번역자로서 제 오역을 발견하고 수정할 기회를 주신 것에 무엇보다 감사하고 이 지면을 빌어 독자분들께 사과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인용해 주신 부분은 4권 1부 4장 33쪽입니다. ()에 적힌 글이 수정을 반영한 부분입니다.

“역사적 사건들 가운데(에서) 가장 명백(분명)한 사건(것)은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금지한 것이었다(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직 무의식적인 활동만이 열매를 맺으며, 역사적 사건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은 결코 자신의(사건의) 의의를 이해하지 못한다.”(민음사)

바로 그 다음에 이어지는 ‘설사 그 역(그것)을 이해하려 애쓴다 해도 그는 그 무익함에 충격을 받고 말 것이다.‘에서도 수정이 필요합니다.

무심코 제가 이해하고 싶은 방향으로 독해하여 대명사가 지시하는 바를 정확히 간파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출간 전까지 최대한 검토하고 검토했는데도 이 부분의 실수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로자님의 칼럼 덕분에 감사하게도,오류를 확인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혹시 앞으로도 이것만이 아니라 다른 오류나 어색한 부분을 발견하시면 꼭 연락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역사관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테마에 대해서도 로자님의 글을 또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다른 독자분들께도 동일한 간청을 드립니다. 독자분들의 의견을 제대로 확인하고 반영해서 쇄를 거듭할수록 더욱 온전하게 성장하는 번역서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민음사에는 다음 쇄부터 수정이 적용될 수 있도록 말씀을 드려놓겠습니다.

* 제 이메일 주소는 jhyeon02@hanmail.net입니다.

로쟈 2018-07-20 08:50   좋아요 0 | URL
아. 번역은 어려운 문제이고 더 낫게 혹은 다르게 번역할 수 있는 여지는 늘 있지요. 방대한 작품을 옮기느라 고생많으셨습니다. 더 나은 번역으로의 성장은 저도기대할게요.~
 

이번주 주간경향(1286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일본계 미국 역사학자로 하버드대학의 교수로 재직중인이리에 아키라의 <20세기의 전쟁과 평화>(연암서가)를 찾아 읽고서 적었다. 저자에게 주목한 건 최근에 나온 '하버드 C.H. 베크 세계사' 시리즈의 <1945 이후>(민음사) 책임편집을 맡고 있어서인데, 이리에의 전공 분야가 미국 외교사이고, 인터내셔널 내지 트랜스내셔널한 세계사에 대한 관심은 <20세기의 전쟁과 평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역사가가 보는 현대세계>(연암서가)도 <1945 이후>의 입문격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주간경향(18. 07. 23) 자기파괴와 자기재생, 전쟁의 양면성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아직 결과를 예단하기는 어려우나 궁극적으로 전쟁이 아닌 평화가 우리의 선택지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렇지만 평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이해당사국 간의 외교적 대화와 협상만으로 충분한가.


지난 20세기는 양차 세계대전을 포함해 전례없는 규모의 파괴와 살상으로 얼룩진 전쟁의 세기였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900년에 20억명 정도였던 세계인구는 100년 사이에 3배 이상 증가했다. 전쟁과 내전으로 수천만 명이 희생되었지만 전쟁이 삶에 대한 인류의 희망을 다 꺾지는 못했던 것이다. 다르게 보면 전쟁의 역사는 자기파괴의 경험뿐 아니라 자기재생의 기회도 갖게 해주었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이러한 양면성이다.

인류의 역사가 전쟁으로 점철돼 있다고 하지만 20세기의 전쟁은 이전의 전쟁과는 다른 성격을 갖고서 출발했다. 20세기의 출발점이 된 1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짚어보면서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이 차이다. 1914년 여름 이전에도 발칸반도에서는 1912년과 1913년에 무력충돌이 발생했었다. 그렇지만 이때는 주변 대국을 전쟁으로 끌어들이지 않았고 세계대전으로 비화하지 않았다. 하지만 1914년은 달랐다. 당시 대국의 하나였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황태자가 세르비아라는 소국의 테러리스트에게 암살됐다. 오스트리아의 동맹국 독일이 개입하자 이 두 국가와 대립하던 러시아와 프랑스가 참전했고, 중립을 지키던 영국까지 독일에 선전포고함으로써 유럽의 대전이 시작되었다.

국지전쟁이 대전으로 발전하는 데 열쇠가 되는 것은 대국이다. 국제관계의 글로벌화가 열강을 낳고 열강들 간의 분쟁이 세계대전으로 번진다. 저자가 보기에 1차 세계대전의 배경이 된 것은 이러한 글로벌화의 진전이다. 교통과 통신수단의 비약적 발전과 무기기술의 발달로 20세기의 글로벌화는 더 가속되며 이것이 1차 세계대전보다도 훨씬 더 규모가 큰 2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낳았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국지전쟁이 대규모 전쟁으로 발전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에 저자는 주목한다. 1920년의 러시아·폴란드 전쟁이나 1935년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 그리고 1940년대의 중국내전과 1950년대의 한국전쟁, 1960년대의 베트남전쟁 등이 그러했다. 이 전쟁들을 국지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대국의 군사력뿐 아니라 국제기구, 세계 각지의 여론 등이 전쟁의 억지력으로 작용해 국경을 초월한 평화운동이 구축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한국전쟁의 의의를 새로운 시각에서 평가한다. 미·소 간 전면전에 이르지 않은 것은 두 나라가 핵전쟁으로의 확전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휴전’은 ‘평화공존’의 다른 말이었다. 이제 휴전체제를 넘어서 종전선언이 이루어지고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구축된다면 평화를 위한 인류의 희망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게 될까. ‘20세기의 전쟁’의 교훈을 다시금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18. 0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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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만에 나온 김중식의 두번째 시집 <울지도 못했다>를 5분만에 읽었다(그렇게 읽다가 걸리는 시를 꼼꼼히 읽는다). 그러고는 떠올린 게 ‘웃지도 못했다‘란 제목. 첫 시집 <황금빛 모서리>에서 분명 맘에 들어한 시들이 몇편 있었는데 그 ‘김중식‘을 알아보지 못하겠다. 내가 잘못 봤던 것인지. 차라리 처음 기억만을 남겨두는 게 나았을지도.

먼 곳에도 다른 세상 없는데
새 대가리 일념으로 태평양을 종단하는 도요새
산다는 건 마지막이므로
살자,
살아보자,
다시 태어나지 않으리니.
-‘도요새에 관한 명상‘에서

내가 아는 건
가을 숲 불꽃놀이가 끝나더라도
우리가 할 일은 봄에 꽃을 피우는 것
가장 깊은 상처의 도약
가장 뜨거웠던 입의 밎춤
할례당한 사막 고원에 핀 양귀비처럼

언제 파도가 왔다 갔는지
사막에서 바다냄새가 난다
이루지 못할 약속을 할 때
우리는 다가가면서 멀어질지라도
봄에 할 일은
꽃을 피우는 것
-‘물결무늬 사막‘에서

기억의 착오가 아니라면 김중식은 이런 류보다 더 매력적인 시를, 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젊은 시인이었다. 이제는 젊지 않은 나이에 두번째 시집을 들고서 나타났지만 아쉽게도 내가 기대한 모습은 아니다. 시인의 말로는 ˝첫 시집이 고난받는 삶의 형식이있다면, 이번 시집은 인간의 위엄을 기록하는 영혼의 형식이다.˝ 그의 언어는 위엄보다 고난을 기록할 때 더 빛나는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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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사람 시인선‘의 세번째 시집으로 나온 송진권의 <거긴 그런 사람이 살았다고>를 펼쳤다가 ‘송홧가루 묻은 풍경‘에서 눈길이 멎었다. ‘화투시‘의 한 장면이다.

청단 홍단을 깨고
비약 풍약을 깨며
파투 난 화투 파투 난 인생을
착착 다시 손에 접어 치며
패를 돌리는 십 원짜리 민화투
다음 판엔 초단이라도 하겠다며
늙은이들 웃음소리도 송홧가루 묻어
뻐꾸기 울음소리에 뭉쳐들지요

시인선의 다른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송진권 시인도 내게는 낯선 이름이다. 하기야 새로 시집을 낸 젊은 시인들 대다수가 내게는 그렇다(짐작에 우리는 최다 시인 보유국이다). 이 대목에 눈길이 멎은 건 오래 전에 가방에 넣고 다녔던 시가 생각나서다. ˝숙아, 인생은 그날이 꽃과 같아˝라는 구절은 포함한 시인데, 제목도 시인도 기억날 듯하면서 기억나지 않는다(문지시인선의 목록을 보면 떠올릴지도). 벌써 20년도 훨씬 전의 일이다.

그렇게 시들은 복사해서 가방에 넣고 다니고 때로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던 것 같다. 그게 나였던가, 적잖이 놀란다. 과거는 낯선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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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7-18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들을 복사해서 가방에 넣고 다니는
국문학과 다니는 오빠
아니고 노문학과 다니는 오빠야~셨구요.
미대 다니는 오빠와 문학과 다니는 오빠중에
누가 더 인기가 많을까요?ㅋ

로쟈 2018-07-18 23:45   좋아요 0 | URL
미대 다니는 오빠는 제가 모르는 사정이라..

모맘 2018-07-19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숙아, 는 찾으셨는지요?
궁금한 시네요

모맘 2018-07-19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한 선배의 시들을 타이핑했던 기억이 나네요 선배의 친구가 감수를 했다고 복사집 표지에 적어둔것도 아! 하고 떠오릅니다 한 부를 갖고있었는데 찾아봐야겠네요ㅋ

로쟈 2018-07-19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성호의 ‘고향집, 폐허‘라는 시예요.~

모맘 2018-07-19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모맘 2018-07-20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8 7월 함성호의 시집을 검색하다가
로자쌤이 서른여덟에 올린 1998스물들에게 쓴 서른의 글을
읽었어요(복잡하지만 아시죠?)ㅎㅎ 로자쌤의 글속에는 그보다 10년전인 1987년도도 있고요 대한민국 땅 이곳저곳에서
살아야할 이유를 찾고 있었던 스물들을 떠올려봤습니다 참 따뜻한(?) 글이었습니다 1987
1998 2018 뭔가 있어보이네요ㅋ

로쟈 2018-07-20 17:57   좋아요 0 | URL
네 조교할때 쓴게 벌써 20년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