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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인 듯하더니 여름날씨로 직행하는 듯하다. '계절의 여왕'이라고 하기엔 좀 후덥지근한 날에 별다른 즐거움이 있을 리 없어 틈틈이 책이나 몇 권 꼽아보기로 한다.  

 

 

 

 

주저없이 가장 먼저 꼽을 책은 루이스 메넌드의 <메타피지컬 클럽>(민음사, 2006)이다. '2002년 퓰리처상 수상작'이라고 표지에는 박혀 있는데, 그것만으로도 웬만큼은 신뢰할 수 있다(우리에겐 그런 도서상이 있는가?). 한데, 분야가 흥미롭다. "오늘날의 미국을 만든 단 하나의 사상, 프래그머티즘은 어떻게 탄생했는가"를 화두로 한 인물평전인 것이다. 감으로는 프래그머티즘 입문서로서뿐만 아니라 아예 미국학 입문서로서도 적격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짐작에, 루이스 메넌드는 <프래그머티즘의 길잡이>(철학과현실사, 2001)의 저자 루이스 매난드와 동일인이지 싶다(박스보관 도서라 바로 확인은 안되지만). 아무려나 나란히 '길잡이' 삼아 읽으면 되겠다. 아래 사진은 원서의 표지.

소개를 잠시 옮겨온다: "미국을 지금까지 유지시켜온 철학적 근간은 프래그머티즘(pragmatism), 즉 실용주의 철학이다. 이 책은 미국의 프래그머티즘을 탄생시키는 데 공헌한 네 명의 학자를 추적한다. 법률가 올리버 웬들 홈스,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 윌리엄 제임스, 논리학자이자 과학자이며 기호학의 창시자인 찰스 샌더스 퍼스, 철학자이자 교육학자인 존 듀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아마도 지명도 순으로 재배열한다면, 듀이-제임스-퍼스-홈스 순이 될 듯하다. 국내에 번역/소개된 책들도 그러한 순서를 따르는데, 이번에 출간된 퍼스의 선집을 제외하면 퍼스와 홈스의 책은 아예 소개된 바 없다. 듀이의 경우에도 교육학 관련서 몇 권과 <경험으로서의 예술> 발췌본 정도가 체면치레를 하고 있는 정도. 친미니 반미니 해서 논란이 많지만, 기본적으로는 우리가 미국에 관심이 없다고 해야 할 거 같다. 이번에 나온 <메타피지컬 클럽>이 그러한 무관심을 얼마간 만회해줄 것인지?

조금 더 옮겨온다: "제목인 '메타피지컬 클럽'은 1872년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에서 이 네 사람이 서로 교류하면서 주축이 되어 만든 토론 모임의 이름. 이 책은 미국 지성사의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네 학자의 삶을 다룬 전기이자, 이들이 활동한 남북 전쟁 이후 미국의 100여년 간을 담은 지성사이다. 또한 이들 학자들이 형성한 미국 정신의 근간인 프래그머티즘의 기원에 대한 입문서로 읽을 수도 있다."

어디 그것뿐인가? "전체적으로는 네 주인공의 삶을 순차적으로 묘사하면서 전쟁과 정치, 과학과 철학, 인류학과 심리학, 종교와 교육, 실재의 법 재판, 인종문제와 노동운동 등 개별적인 주제들을 정교하게 짜맞췄다. 또한 오랜 기간 수집한 1차 사료를 통해 이들의 생생한 육성을 들려주고, 챈시 라이트, 루이 아가시를 비롯한 이들 주변의 19세기 후반 미국의 대표적인 지성들과 유명인사들을 충실히 묘사했다." 이만한 수준의 현대 한국지성사나 러시아지성사도 읽어보는 게 나의 희망사항이다. 과문한 탓에 잘 눈에 띄지 않는다.

 

 

 

 

두번째로 꼽을 책은 <메타피지컬 클럽>의 한 꼭지인 찰스 샌더스 퍼스 선집 <퍼스의 기호사상>(민음사, 2006).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스위스의 기호학자 소쉬르와 함께 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퍼스는 현대 기호학의 창시자로 자리매김되는 인물이다(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 또한 퍼스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칼 오토-아펠이나 하버마스 같은 독일 철학자들도). 하지만, 그 지명도나 위상에 비하면 그간에 기이할 정도로 소개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물론 관련 논문들은 드물지 않다), 이번에 체면 치레할 정도의 책이 출간된 것. 소개를 읽어본다.  

"한국 인문학계에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찰스 샌더스 퍼스는 미국이 배출한 가장 독창적이고 다재다능한 철학자이자, 논리학자이자, 기호학자이다. 이 책은 소쉬르와 함께 기호학의 선구자 중 하나로 평가받는 그의 수학, 화학, 심리학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사상 가운데서 기호론과 현상론과 관련된 글들을 뽑아 한국 기호학의 권위자 김성도 교수의 손으로 편역한 것."

편제는 "총 4개의 장과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현상론과 관련된 단락으로 그의 유명한 삼범주론을 주로 다룬다. 2장은 세미오시스 및 해석체 개념, 기호의 삼분법 등을 다루는 퍼스의 기호이론을 소개했으며, 3장에서는 감각론과 지각 이론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그리고 4장에서는 웰비 여사에게 보낸 서간문 가운데서 기호 이론과 관련된 부분들을 모았다. 부록으로는 퍼스의 초기 논문 가운데 기호학 및 인식론과 관련하여 핵심적인 논문이라고 파악된 두 편의 논문을 실었다. 또한 60여 쪽에 달하는 편역자의 해제를 덧붙여, 퍼스 연구의 불모지와 같은 한국에서 퍼스 사상의 핵심과 중요성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꾸몄다."

단, 훑어보면서 느낀 아쉬움은 원전의 출처가 대략적으로만 기재돼 있는 것. 그러니까 원문과 대조해서 읽으려고 할 경우엔 손품을 좀 팔아야 하게 생겼다. '고전'의 경우 출처가 구체적으로 명기된 대역본 체제를 나는 선호하는데, 현재의 출판여건은 그러한 체제를 아직 기피하는 듯하다.  

 

 

 

 

세번째 책은 새롭게 기획된 비트겐슈타인 선집으로 나온 책 두 권이다. 일단은 기존에 번역됐던 주저 <논리-철학 논고>와 <철학적 탐구>가 책세상에서 출간됐다. 이미 이 책들이 절판된 시점인지라 새로운 선집판은 반가움을 던져둔다. 기존의 번역은 손질한 듯한데, 표지가 통일돼 있는 것이 우선은 마음에 든다.

중복을 피해서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들로 비트겐슈타인 입문서를 꼽아보자면, 초급자에겐 <30분에 읽은 비트겐슈타인>(랜덤하우스중앙, 2004)가 가장 적합하겠고, 중급자는 박병철 교수의 <비트겐슈타인>(이룸, 2003)부터 시작하시면 되겠다. 학술서 범주에 들어갈 책으로는 남경희 교수의 <비트겐슈타인과 현대철학의 언어적 전회>(이대출판부, 2005)가 있다. 내가 가장 읽고 싶은 책은 스티븐 툴민 등이 쓴 <빈, 비트겐슈타인, 그 세기말의 풍경>(이제이북스, 2005)이다.  

 
 
 
 
 
 
 

네번째 책은 종교학자 엘리아데의 신간 <신화, 꿈, 신비>(도서출판 숲, 2006)이다. 이미 <세계종교사상사>(이학사)까지 출간된 마당이기에 엘리아데는 '마무리' 모드로 진입한 게 아닌가랑 생각이 든다. 새롭게 출간되는 책들이 모두 '부록'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없다. 소개에 따르면, "엘리아데의 주요 저작 중 하나"로서, "지은이가 1948년에서 1955년 사이에 국제적으로 저명한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 12편을 9편의 글로 간추려 엮은 것으로, 엘리아데 종교학의 진수를 한 눈에 볼 수 있다"고 한다.

연초에는 <메피스토펠레스와 양성인>(문학동네, 2006)이 출간된 바 있는데, 이론적인 성격을 많이 탈색하고 있어서 일반독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영원회귀의 신화>(이학사, 2003), <대장장이와 연금술사>(문학동네, 1999), <이미지와 상징>(까치글방, 1998) 등이 그런 범주에 드는 책들이 아닐까 싶고. 물론 엘리아데와 초면인 분이라면, (여러 번 언급한 듯한데) 정진홍 교수의 (살림, 2003)를 먼저 읽는 게 좋겠다. 

 

 

 

 

다섯번째 책은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의 자서전 <영혼의 일기>(거송미디어, 2006)이다. 사실 <영혼의 자서전>(고려원, 1981)이 이미 출간됐었지만, 절판된 상태인지라 부득이 (분량상으론) 다소 부실해 보이지만 이 책을 꼽는다. 하긴 내가 읽었던 <영혼으로 서리라>(청하, 1989)도 두꺼운 분량은 아니었지만, 매우 인상적인 책이었다. 현재 읽어볼 수 있는 카잔차키스의 책으론 <그리스인 조르바> 정도인 듯하며, 중국과 일본 여행기 <천상의 두 나라>(예담, 2002)가 아직 절판되지 않았다.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예수의 마지막 유혹>의 원작자가 카잔차키스란 것도 상식으로 알아두어야겠다.

그리스가 낳은 최고의 작가(혹은 철학자)라고 말할 수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카잔차키스는 적어도 크레타 섬이 낳은 최고의 작가인 것만은 분명하며 책은 그의 영혼의 편력/투쟁을 기록한다. 사전에 알아둘 만한 내용을 옮겨온다.

-1885년 크레타 섬 이라클레이온에서 태어난 카잔차키스는 터키의 지배 아래 어린시절을 보내며 기독교인 박해 사건과 독립 전쟁을 겪었다. 이러한 경험으로부터 그는 자유와 자기 해방을 얻기 위한 3단계 투쟁을 계획하였다. 1단계 투쟁은 압제자 터키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이는 크레타가 해방을 맞는 순간 2단계 투쟁으로 발전했다. 즉, 인간 내부의 무지, 악의, 공포 같은 모든 형이상학적 추상으로부터의 해방을 쟁취하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3단계에서는 사람들이 섬기는 모든 우상들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를 만끽하고자 했다.

-이처럼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호메로스와 베르그송, 니체를 거쳐 부처, 조르바에 이르기까지 사상적 영향을 고루 받았다. 그리스의 민족 시인 호메로스에 뿌리를 둔 그는 1902년 아테네의 법과대학에 진학한 후 그리스 본토 순례를 떠났다. 이를 통해 그는 동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업적은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임을 깨닫는다.

-1908년 파리로 건너간 카잔차키스는, 경화된 메카니즘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를 창출하려 한 앙리 베르그송과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며 신의 자리를 대체하고 '초인'으로서 완성될 것을 주장한 니체를 접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투쟁적 인간상"을 부르짖었다. 또한 인식의 주체인 '나'와 인식의 객체인 세계를 하나로 아울러 절대 자유를 누리자는 불교의 사상은 그의 3단계 투쟁 중 마지막 단계를 성립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아래 스틸사진은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1964)의 한 장면. 앤소니 퀸이 조르바로 열연했다.)

-그의 오랜 영혼의 편력과 투쟁은 그리스 정교회와 교황청으로부터 노여움을 사게 되었고, 그의 대표작 <미칼레스 대장>,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그리스인 조르바>가 신성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파문당하기도 했지만, 그는 1951년, 56년 두 차례에 걸쳐 노벨 문학상 후보에 지명되는 등 세계적으로 그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다른 작품들로는 <오뒷세이아>, <예수,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다>, <성 프란치스코>, <영혼의 자서전>, <동족 상잔> 등이 있다.(*아래 사진은 그의 묘지.)

 

해서, 카잔차키스와 한 계절을 나보는 것도 인생을 사는 한 가지 방법으로 나쁘지 않을 듯하다...

06. 05. 09-10.

P.S. 참고로, <메타피지컬 클럽>에 대한 한겨레신문(06. 05. 12)의 리뷰를 일부 옮겨온다. 작성자는 한승동 기자이다.

-2002년 퓰리처상 수상작 <메타피지컬 클럽>(민음사 펴냄)은 이 윌리엄 제임스와 법학자 올리버 웬들 홈스, 논리학자이자 과학자이며 기호학 창시자인 찰스 샌더스 퍼스, 철학자요 교육학자인 존 듀이 등 남북전쟁 이후 반세기의 미국 지성사를 지배한 네 거인 얘기를 중심으로 미국현대사를 재구성한다. 다양한 이력과 철학의 소유자인 그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공통분모는 그들이 실용주의로도 번역되는 미국 ‘프래그머티즘’의 창시자들이라는 점이다. 부제도 ‘오늘날의 미국을 만든 단 하나의 사상 프래그머티즘은 어떻게 탄생했는가’다.

-하지만 이 책은 그들의 철학적 논의를 다룬 것이 아니라 ‘역사적 해석작업’이다. 따라서 딱딱하지 않다. 그들 4명에 관한 전기적 서술형식을 취하면서도 그들뿐만 아니라 부모와 형제 등 풍성한 가족 얘기, 그들 사이를 이어주는 에머슨, 다윈, 아가시 등 당대의 숱한 유·무명 등장인물들, 그리고 그들 사람얘기를 중심으로 전쟁과 정치, 과학과 철학, 인류학과 심리학, 종교와 교육, 법, 인종문제, 노동운동 등 다양한 주제들을 매우 구체적인 실증자료들을 토대로 정교하게 엮어 흥미진진하게 당대사정을 쫓아가는 재미가 있다.

-‘메타피지컬 클럽’이란 메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의 윌리엄 제임스 서재에 모이곤 했던 젊은 지식인들, 말하자면 이 책의 주인공들이 자신들 모임에 “반은 비꼬는 의미로, 또 반은 반항적인 의미로” 붙인 이름이다. 1872년 1월에 결성됐고 퍼스, 홈스 외에 세인트 존 그린, 존 피스크, 첸시 라이트, 프랜시스 엘링우드 애벗 등이 멤버였다. (물론 인종차별주의자 애거시 등 기성 가치의 대변자들은 이 클럽 멤버가 아니었으며, 제임스는 애거시의 과학학교 제자였으나 그의 사상적 후예는 아니었다.) 9개월 정도밖에 존속하지 않았지만 미국사를 바꿔놓은 프래그머티즘의 산실이었다.

-모든 것은 남북전쟁(1861~65년)에서 시작됐다. 신무기와 전술 교체기에 일어나 엄청난 인명피해를 낳았던 그 전쟁 뒤 연방체제는 살아남았으나 미국은 거의 모든 면에서 새로운 나라가 됐다. “씻을 수 없는 정신적 상흔을 남기는 전쟁들이 그렇듯 남북전쟁도 그 시대의 신념과 가설들을 의심하게 했다. 신념들은 미국이 전쟁으로 치닫는 것을 막지 못했고, 그래서 그것들은 전후의 새로운 세계에서는 전혀 쓸모없는 것처럼 보였다. 남북전쟁은 남부에서 노예제 문명을 쓸어버렸지만 그와 함께 북부의 지적 문화 거의 전부가 쓸려나갔다. 미국이 그 문명을 대체할 문화를 계발하고, 사상들을 찾아내고, 사고방식을 확립하는 데에는 거의 반세기가 걸렸다. 그 발버둥이 바로 이 책의 주제다.”

 

-듀이 등 네 사람은 그 발버둥의 중심에 있었고 그들이 새로 짜낸 사상은 교육, 민주주의, 자유, 정의, 관용에 관한 미국인의 사고방식을 바꿔놓았다. 그들의 프래그머티즘은 관념적 진리 추구에 매달려온 유럽철학 전통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인간 이성의 상대성·우연성·오류 가능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했다. “우리가 전적으로 어떤 진리를 믿는다고 할지라도 다른 진리들이 사실일 가능성은 항상 있다. …우리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 정당화는 세계에 존재하는 다른 방식, 사실들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 우리가 보여주었던 관용에서 기인한다. 양자택일은 폭력이다, 프래그머티즘은 사람들의 신념이 쉽게 폭력으로 변질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었다.”

-2차대전 뒤 양자택일식 냉전 이데올로기가 판치면서 빛을 잃었던 프래그머티즘은 냉전 붕괴와 함께 적어도 반대입장을 경청하는 관용과 다양성 측면에서 부활의 조짐을 보였다. 그러나 네오콘 등장, 테러와의 전쟁이 상징하는 ‘아메리카 제국주의’의 ‘우리 편 아니면 적’식의 패권전략추구와 더불어 빛은 다시 꺼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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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5-10 09:15   좋아요 0 | URL
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 서광사 판에서 손질된 게 있을까요? 서광사 판을 가지고 있는데 수정된 게 있다면 또 사야하는지...쩝...역자는 같은데 말이죠.

로쟈 2006-05-10 09:56   좋아요 0 | URL
저도 책의 실물은 보지 못한지라 당여히 대조해 보지도 못했습니다. 완전 개역본일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전 판본들이 절판된 상태이기 때문에 반갑다는 것이고, 제가 기대하는 건 이전에 출간되지 않았던 책들입니다...

비로그인 2006-05-10 22:58   좋아요 0 | URL
근데 비트겐슈타인 입문서 박병철 교수 것 원츄입니다.=.= =b
제가 처음으로 읽은 철학책인데. 2번 읽고서 완전히 뒤집어졌습니다.
얇으면서도 아주 좋아요.

근데 루이스 메넌드는 토마스 쿤과 관련이 있는 그 하버드대 총장 역임한 사람과 동일 인물인가요?

로쟈 2006-05-10 23:20   좋아요 0 | URL
이력에서 '하버드 총장' 얘기는 안 보이던데요... 2003년부터 하바드에서 재직중이긴 합니다. 책갈피와 알라딘에서 '뉴욕시립대학교' 교수라는 소개는 한물간 정보네요. 인터넷 검색에 10초만 투자하면 알 수 있는 내용인데...

yoonta 2006-05-10 23:32   좋아요 0 | URL
철학적 탐구 서점에서 얼핏 봤는데 잘못된 곳 바로잡았다고 하더군요. 껍데기만 바꾼 책은 아닌듯 합니다.

yoonta 2006-05-11 02:53   좋아요 0 | URL

비트겐슈타인 관련책 중에서는..

 

 

 

 

요 책이 아주 좋은 것 같더군요..평전이기도 하면서 그의 철학과 그 변화과정을 잘 살펴볼수있는 책입니다..

 초,중,고급 독자 모두에게 유용할듯 합니다.


로쟈 2006-05-11 09:00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이중에 저도 자주 언급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생략했습니다.^^

루들 2006-05-11 16:00   좋아요 0 | URL
쿤과 관련 있는 하버드대 총장은 제임스 코넌트(James Conant)를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
 

최근에 눈길을 끈 외신 기사 두 건을 옮겨놓는다. 나중에 글감이 될 만하겠기에 일단은 '자료'로서 보관해놓고자 하는 것인데, 주제는 '남성'이다. 두 기사 모두 한국일보에 게재된 것으로 첫번째 기사는 '남성 피임약 세계 첫 개발'이란 제목이고, '슈퍼 정자'를 다룬 두번째 기사는 "아빠는 큰 키…푸른 눈…만능 스포츠맨…박사"란 제목이다.

 

 

 

 

한국일보(06. 05. 01) 정자 생산을 중단 시키는 남성 피임약이 세계 최초로 개발된다. 세계적인 의학전문지 란셋(Lancet)은 최신호(28일자)에서 호주와 유럽 14개 지역 등에서 1990~2005년 18~51세 남성 1,500명을 대상으로 30차례 실시한 임상시험 결과,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과 여성호르몬 프로게스트로겐을 함유한 남성 피임약이 100% 효과를 거두었다고 보도했다. 독일 쉐링과 네덜란드 오가논 제약사가 개발한 이 피임약은 향후 3~5년 내에 세계 최초로 시판될 것으로 보인다.

-이 호르몬제 남성 피임약은 여성용 피임약이 배란을 중지시키는 것처럼 정자 생산을 중단시켜 피임효과를 거둔다. 제약사들은 몸에 심는 임플란트와 먹는 약 등 2가지 형태로 만들어 시험해 왔다. 이 남성 피임약은 성욕감퇴 체중증가 우울증 등의 부작용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으며, 일부 임상시험자는 오히려 성욕이 증가했다. 남성 피임약 사용을 중단하면 3~4개월 뒤에는 정자 생산 능력을 완전히 회복할 수 있다.

-연구 책임자인 호주 시드니대 피터 리우 박사는 “이 남성 피임약은 신뢰성이 높고 복원이 용이하기 때문에 콘돔이나 정관수술 등 기존 남성 피임법보다 더 우수하다”고 말했다.

(*)여성 피임약의 개발이 원하지 않는 임신의 공포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프리섹스'를 가능하게 함과 동시에 여성의 자기결정권 향상에 혁명적인 기여를 했다는 점은 상식에 속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피임의 책임은 상당 부분 여성에게만 전가해온 것도 사실이다(더불어 '구멍난 콘돔'의 공포도 여전히 연인들을 부자유스럽게 했었다). 이제, 번거로운 수술 대신에 사용이 간편한 먹는 피임약이 상용화된다면, '피임'에 대한 책임은 남녀가 공평하게 나누어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경우, 남성 피임약은 남녀평등이라는 '의식'의 한 가지 물적 토대가 되어주는 것. 상상임신은 가능하지만, 상상피임은 가능하지 않다. 다시 말해서, 피임은 '관념'이 아니라 '현실'이다. 그리고 '현실'이 바뀌어야 '관념'도 바뀌게 된다(혹은 현실은 관념의 변화를 강제한다).   

한국일보(06. 05. 08) 몇 차례 인공수정을 시도했다 실패한 미국 여성 멜리사 와이스(39)는 며칠 전 인터넷에 ‘물건’을 내놓았다. 6년 전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정자은행에서 3,000달러를 주고 산 ‘401호 정자’ 세트였다. 인공 수정이 실패한 그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내놓았는데 순식간에 팔렸다. 뒤늦게 ‘돈을 달라는 대로 줄 테니 남은 것이 없느냐’는 간청도 쏟아졌다. 와이스가 내놓은 401호 정자는 ‘슈퍼 정자’라 불리는 최고품이었다. 수요가 너무 많아 이미 2년 전 동난 것이었다.


 

 

 


-좋은 유전자를 갖고 있거나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충할 정자로 수정하는 ‘맞춤형 수정’이 늘면서 이처럼 일부 품질 좋은 정자는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401호 정자를 제공한 주인공에 대한 관심도 가히 폭발적이다. 정확한 신원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독일계로 193cm의 큰 키에 푸른 눈과 갈색 곱슬머리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사 학위에다 만능 스포츠맨이며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는 효자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제공받아 태어난 아이가 매년 3만명이 넘었고 특히 같은 정자로 태어난 아이가 갈수록 늘고 있다. 401호 정자로 25명이 태어났고 한 보디빌더의 정자로도 같은 수가 탄생했다. 언론은 401호 정자 제공자를 추적하는 한편 미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401호 정자로 태어난 아이들을 일일이 찾아 이들을 비교하는 기사를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401호 정자를 통해 아이를 낳은 엄마들은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받은 여성과 제공받은 정자로 태어난 사람들을 위한 인터넷사이트에서 육아 정보를 주고 받고 있다. 직접 만나 휴일이나 주말을 함께 보내기도 한다.

-이들 역시 정자 제공자가 누구인지 무척 궁금하지만 ‘사생활을 보호 받고 싶다’는 정자 제공자의 바람대로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는다. 같은 정자로 태어난 아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근친상간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영국은 법으로 같은 정자를 제공 받을 수 있는 여성 수를 10명으로 제한했지만 미국은 개별 정자은행 자율에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기사를 읽고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올린 것은 네덜란드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1995)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네덜란드의 작은 마을. 안토니아는 임종을 앞둔 어머니를 찾아 딸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마을에 정착해 어머니의 오래된 농장을 운영하면서 마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이 영화는 독립적인 여성, 안토니아를 중심으로 모녀 4대가 엮어가는 삶의 모습을 서정적으로 그려나가는 가족 연대기라고 할 수 있다. 여성들이 꿈꾸었던 유토피아적 삶의 방식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작품"인 이 영화에서 아이를 갖기 위해 남자를 구하러(실상은 '정자를 구하러') 다니던 모녀의 모습이 얼핏 떠오른 것.

 

 

 

 

정자은행은 이제 그런 '수고'가 더이상 필요하지 않은 시대를 만들어놓았다. 더불어, 일부일처제의 근간도 미래에는 위협받을지 모르겠다. 자신의 정자로 25명의 아이들을 낳는다면, 유전자적 관점에서는 이미 '일부다처제'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기에 그러하다. "큰 키…푸른 눈…만능 스포츠맨…박사"의 정자(유전자)가 선호된다면, 그보다 열등한 남성의 정자는 피임은커녕 갈수록 짝을 찾기 힘들어질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도래할지도 모르는 '슈퍼 정자의 시대', 그건 역설적으로 남성이 '제2의 성'으로 확실하게 전락하는 시대를 뜻하게 될는지?..

06. 05.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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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6-05-09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공공연한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에도 난자 불법거래가 있잖아요. 공부 잘 하는 이쁜 여대생 난자가 극히 선호되죠. 쩝.

2006-05-09 07: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6-05-09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끌리는 제목이군요. 저도 한국일보서 그 기사 봤어요. ^^

로쟈 2006-05-09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관련 분야에 계신가요?^^
아프락사스님/ 뭔가 쓰고 싶도록 만드는 기사였습니다. 한데, 이 페이퍼는 (당장에는) '쓰지 않기 위해서' 올려놓은 것이긴 합니다.^^

조선인 2006-05-10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 관련 분야가 아니라요, 여대 나왔거든요. 사례를 좀 알죠.-.-;;
 

뜻밖의 신간을 만나는 반가움의 반대편에는 없는 돈을 축내지 않아도 좋은 고마움이 있다(*이 글은 2003년 3월초에 씌어졌다). 서점에 갈 때마다 내가 느끼는 것이 바로 반가움이거나 고마움이다. 지난 두주 동안에도 많은 책들이 나왔지만(요즘 출판계를 불황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다행히도 눈길을 끄는 책은 많지 않았다. 반가움보다는 고마움이 더 앞섰던 두주였다. 그럼에도 주목할 만한 책들 몇 권을 적어본다.

 

  

 



맨처음에 소개하고 싶은 책은 로저 에버트의 <위대한 영화>(을유문화사)이다. 영화잡지 <프리미어>팀이 옮겼는데,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에버트는 퓰리처상까지 수상한 바 있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평론가이다. 나는 인터넷상에서 러시아 영화에 관한 그의 기사 몇 편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의 글들은 모아놓으면 더 힘을 발휘하는 거 같다(이와 반대되는 저자들도 많다). 추천사를 쓴 영화평론가 김영진의 말을 빌면, "젠체하지 않고 냉소적이지 않으며 무한한 애정으로 영화를 껴안으면서 정확하게 분석적 거리를 유지하는 평문"들을 그의 책에서 만나볼 수 있다. 더불어, 들뢰즈, 라캉을 들먹여야지만 영화평론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이번주 <씨네21>의 특집도 '48권의 책으로 읽는 감독의 길'이었다. 그중 기자들이 비교적 길게 리뷰를 쓴 책들은 10권인데, 참고로 그 목록을 적어둔다. <채플린-거장의 생애와 예술>(한길아트),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길>(민음사), <나의 인생 나의 영화 장 르누아르>(시공사), <데즈카 오사무- 만화가의 길>(황금가지), <잉그마르 베르이만의 창작노트>(시공사), <히치콕과의 대화>(한나래), <올리버 스톤1,2>(컬쳐라인), <로저코먼- 나는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백 편의 영화를 만들고 한푼도 잃지 않았는가>(열린책들), <펠리니>(한길사), <마틴 스코시즈- 비열한 거리>(한나래) 등이다.

나는 이 열권 중에 <감독의 길>(구로자와 아키라)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고, <펠리니>는 그냥 갖고 있으며, <히치콕과의 대화>는 분실했다(조감독하는 동생 친구가 가져가버렸다, 필시). 해서 한때 영화평론에도 생각이 없지 않았던 자신이 다소 부끄러워졌다. 물론 영화관련서들을 몇십 권 갖고 있지만, 그래봐야 최소한 읽을 책의 3할이 못되는 책인 것. 하물며, 봐야할 영화들은 또 얼마나 봤을까?.. 참고로, 아주 최근에 영어로 된 러시아 영화 소개서 한권이 나왔다. 저자는 D. Gillespie이고 책제목은 'Russian Cinema'이다. 200쪽이 안되는 비교적 얇은 분량이다.

 

 

 

 

노마디스트들에겐 반가운 소식으로, 들뢰즈의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인간사랑)이 번역돼 나왔다(*내가 아직까지 번역서를 안 갖고 있는 거의 유일한 들뢰즈 책이 아닌가 싶다. 번역에 대해서는 그리 후한 평을 얻고 있지 못한 책이다). 들뢰즈가 쓴 스피노자 책은 두 권인데, <표현의 문제>는 그 중 두꺼운 책이다. 언젠가 철학과 대학원에서 스피노자 강의를 몇 차례 청강한 적이 있는데, 그때 부교재의 한권이었고, 나는 그 영역본을 갖고 있다. 하지만 도중하차했기 때문에 책의 내용이나 비중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마이클 하트의 <들뢰즈의 철학사상>(갈무리) 정도를 참고해봐야겠다(*하트의 책은 <들뢰즈 사상의 진화>로 재번역돼 나왔다).

 

 

 

 

그리고 또 한권의 철학책. '이달의 철학자' 헤겔의 <믿음과 지식>(아카넷)이 번역돼 나왔다. 서점에 아직 진열되지도 않은 채 쌓여 있는 걸 봤는데, 분량이 그리 두껍지 않다. 헤겔 책을 그래도 남들만큼은 갖고 있는 편이지만, 신간은 전혀 생소하다. 야코비 등의 신학/철학에 대한 비판서인가 싶다. 하지만, 내가 더 바라는 것은 <정신현상학>이 좀더 읽을 만한 수준으로 재번역되는 것이다(*알다시피 이후에 <정신현상학>은 임석진 교수의 번역으로 개정본이 출간됐다. 그것이 '좀더 읽을 만한 수준'인가는 모르겠다. 몇 안되는 서평을 읽어봐도 가늠할 길이 없다).

 

 

 



-쥬디스 버틀러의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인간사랑)도 소리소문없이 번역돼 나왔다(원제는 'Bodies that matter'). 쥬디스 버틀러는 낸시 프레이저와 함께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는 영미권 여성철학자이자 페미니스트이다. 페미니즘적 라캉 독해로 우리에겐 알려져 있는 듯한데, 신간은 최초로 번역된 그녀의 단행본 저작이다. <라캉의 재탄생>(창작과비평사, 2002)에 실린 라캉과 버틀러에 관한 장을 참조할 수 있다.



 

 

 

국내 저작으로는 주은우의 <시각과 현대성>(한나래)이 출간됐다. 저자의 박사학위논문을 손본 것인데, 이 주제에 관한 가장 묵직한 국내 저작이다. 아직 통독하지 않아서 뭐라 말할 순 없지만, 학위논문으론 김종엽의 <연대와 열광- 에밀 뒤르켐의 현대성 비판 연구>(창작과비평사, 1998)과 함께 가장 궁금했던 책이었다.

 

 

 

 

묵직하기론 <리오리엔트>(이산)도 만만찮다. 종속이론가인 안드레 군더 프랑크의 신작인데, 나로선 저자의 이름만 얼핏 들어본 적이 있다. 나로선 당분간 읽을 겨를이 없는 이 책에 대해선 중앙일보에 실린 최갑수 교수의 서평을 참조하시길.

 

 

 



영미문학연구회의 고전문학 번역평가 사업이 샘플이 공개됐다. 그 결과는 오늘자 한겨레에 실려 있다. 샘플 작품은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인데, 검토대상이 된 21종 가운데, 14종이 표절번역이었고, 나머지 7종도 거의 읽을 수 없거나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한다.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사태는 상당히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영미문학학회지인 <안과 밖>에도 매호 고전 번역을 검토하는 글이 실리는데, 지난호의 경우 도 결론은 디킨즈의 <위대한 유산>을 우리말로는 읽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평가사업의 보고서가 내년초쯤 책으로 출간된다고 하니까 기다려봐야겠지만(*2005년에 <영미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로 출간됐다), 총체적인 문제의 점검에 이어서 새로운 재번역서들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사실 이런 평가사업은 다른 분야의 고전들에도 확대 적용되어야 한다. 학진(학술진흥재단)이 제대로 돈을 써야 하는 사업분야는 바로 이런쪽이다.

최근 일간지 북리뷰들에서 비판적인 읽기 코너들이 생겨나고 있어 고무적이다. 지난번에 소개한바 있던 중앙일보의 죽비소리가 그 스타트를 끊은 것인데, 출판계의 반응도 즉각적이다. 오역이 많은 걸로 지적된 <루시의 유산>과 <붉은 여왕>의 출판사측에서는 해당책들을 환불조치하거나 개정판과 교환해줄 방침이라고 한다. 언론의 파워가 이런 거구나 싶은데, 하여간에 좀 뻔뻔한 (부실한 지젝 번역서들을 양산하고 있는) 인간사랑을 비롯하여 몇몇 출판사들도 이 참에 각성했으면 싶다. 그리고 도서정가제가 실시되고 있으므로 책값의 거품도 좀 빠졌으면 싶고.

가만히 입다물고 있으면 좋은 책들이 거저 나오는 게 아니다. 책을 사랑하는 이들의 악착같은 관심과 비판이 더욱 요긴한 계절인 듯싶다...

2003. 03.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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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h1999 2006-05-09 02:30   좋아요 0 | URL
제 글에 리플 남겨주신 분 맞지요? 글이 굉장히 많네요.. 앞으로 자주 뵙겠습니다.

로쟈 2006-05-09 10:32   좋아요 0 | URL
예, 한 2-3년 되다 보니 많은 축에는 들어가는 모양입니다. 자주 오실 정도는 아니고 가끔 들러주십시오.^^
 

언젠가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인 올해가 소비에트 러시아의 최대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탄생 100주년이기도 하다는 소개 기사를 옮겨온 적이 있는데, 며칠전 교수신문(06. 05. 04)에 '쇼스타코비치 탄생 100주년에 부쳐'라는 부제를 단 음악비평 기사가 게재되었기에 이 또한 옮겨온다. 그의 생일은 9월에 있으므로 가을에야 보다 성대한 기념행사들이 개최될 듯하지만, 미리 그의 음악세계를 조명하는 기사를 가끔씩 읽어보기로 한다. 클래식 음악에는 문외한에 가까운지라 대개는 다른 이들의 의견을 옮여오는 식이 될 것이다. 이번 기사는 허영한 한예종 교수가 기고한 것으로 '冷戰은 그의 음악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을까'가 그 타이틀이다.

-레닌과 스탈린, 흐루시초프의 소련을 대표하는 작곡가인 드미트리히(*'드미트리'가 맞다) 쇼스타코비치(1906~1975)는 격변하는 20세기의 세계사와 소련의 역사가 그대로 반영된 흥미로운 주인공이다. 조연급이면 피할 수 있었던 비난의 초점이 됐고 그를 사이에 둔 소련과 서방세계의 지속적인 갈등은 지금까지도 많은 음악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쇼스타코비치가 진정으로 소련 공산당의 충실한 당원이었는지 아니면 겉으로만 그렇게 행세를 한 것인지의 문제다. 절묘하게도 이 문제에 대해서 작곡가 자신은 아무런 답을 남기지 않았다. 공식석상에서 자아비판을 하면서도,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애국지사의 모습을 보이면서도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어쩌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있는 듯한 수많은 암시를 흘리고 있었다.

-교향곡 1번(1925)으로 약관 스무 살의 나이에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소련이 최고로 아끼고 자랑스럽게 여긴 쇼스타코비치에게 위기가 오기 시작한 건 그의 오페라 <맥베스 부인> 때문이었다(*얼마전 이 오페라의 원작인 레스코프의 <므첸스크군의 멕베스 부인>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1934년에 초연됐던 이 오페라에 대한 반응은 그야말로 열광적이었다.

 

 

 

 

-그러나 2년이 지나 다시 무대에 오른 <맥베스 부인>을 관람하러 온 스탈린의 말 한마디에 그토록 사랑받던 오페라가 순식간에 비판의 초점이 됐다. 1936년부터 시작된 대숙청의 시대가 온 것이다. 이 위기를 넘기게 한 작품이 바로 지금도 가장 자주 연주되는 교향곡 제5번이다. 이 교향곡이 1937년에 초연된 그 날 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 정도로 이 교향곡이 감격적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소련 최고의 작곡가로 복권된 그는 1938년 신문과 인터뷰에서 “교향곡 5번이 정당한 비판에 대한 소비에트 예술가의 실질적이고 창조적인 응답이라고들 하니 매우 기쁘다”는 애매한 태도를 취한다. 잘못을 반성했다고 보기에는 충분치 못한 답변이었다.

 

 

 

-교향곡 5번에 ‘정당한 비판에 대한 응답’이라는 말이 수식어처럼 따라 다닌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마지막 악장 피날레는 다소 급격하다고 할 정도로 분위기가 급전되면서 활발하고 밝은 분위기로 작품을 마무리한다.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분위기의 급변과 체제 순응적인 쇼스타코비치를 연결지으려한다. 긍정주의적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그러한 피날레를 만들어 넣어 정부의 비난을 피하려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소련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다소 인위적인 미학적 잣대를 내세워 서방세계의 음악계가 추구하던 모더니즘을 비판했다.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는 바로 그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음악으로 비판을 받았고 그보다 다소 쉬운 음악적 내용을 지닌 교향곡 5번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실현한 작품으로 보았던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음악은 소리라는 추상적 매체를 사용하는 장르여서 가사를 사용하지 않는 한 그 구체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사가 없는 순수 기악음악의 경우 아무리 구체적 내용이 명시된 표제음악이라 하더라도 그 제목과 달리 감상되고 해석되어질 여백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작곡가의 직접 언급이 중요해진다. 다시 말해서 작곡가가 직접 이 곡은 강이다, 또는 이 선율은 나무다, 라고 말하지 않는 한 작곡가가 진정으로 담으려고 한 내용을 짐작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해석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쇼스타코비치가 교향곡 5번에 대한 인터뷰 내용을 보면 그 곡에 대한 사람들의 해석과 자신의 의견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말하자면 “당신들이 이 곡이 이러하다고 하니 나는 기쁘다” 정도에서 멈춘다. 일반적으로 작곡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하나의 내용으로만 이해되기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쇼스타코비치의 이러한 태도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마지막 교향곡인 15번은 천박하기까지한 로시니의 <윌리엄 텔 서곡>의 선율이 등장하는가하면 엄숙한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에 사용된 ‘운명’ 모티브까지 나온다. 사람들은 이 희한한 조합에서 의미를 찾느라 부산했지만 정작 작곡가는 이 곡의 특별한 내용의 존재를 부인했고 단순히 ‘장난감 가게’와 같은 분위기라는 설명만 제공했다. 또 한번 그의 알다가도 모를 작품 해설(?)에 모두들 어리둥절했다.

-이번에는 다소 다른 예를 들어보자. 대표적인 전쟁 교향곡인 교향곡 7번은 흥미있는 일화와 함께 순수 기악음악으로도 일정한 구체적 내용을 담을 수 있는 예다. 1941년 6월 22일, 독일의 나치군이 소련을 침략하자 쇼스타코비치는 곧바로 군에 지원하지만 시력이 좋지 않아 레닌그라드 음악원의 지붕을 지키는 소방부대에 편입된다. 소방 모자를 쓰고 지붕을 지키는 그의 모습을 찍은 사진은 소련의 거의 모든 신문에 실렸고 서방 언론에서도 군인으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변신한 작곡가의 모습을 흥미롭게 다뤘다. 같은 해 8월 레닌그라드가 독일군에 의해 포위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피난을 떠났지만 쇼스타코비치는 남아서 그의 교향곡 7번의 일부를 완성한 후 라디오 방송을 통해 직접 이 사실을 알리기도 했다. 사태가 위태로워지자 당 지도부는 레닌그라드를 떠나라는 명령을 내렸고 모스크바에 도착한 그는 이번에는 전쟁 영웅으로 대접받았다.

 

 

 

-교향곡 7번에 대해서 작곡자는 긴 내용의 줄거리를 직접 밝히고 있어 그 내용의 해석에 있어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고통받는 레닌그라드 도시와 소련 동포를 묘사하는 1악장으로 시작해 전쟁에서 승리하는 4악장으로 끝나는 교향곡이라는 것이 작곡자의 변이었다. 비록 가사는 없지만 작곡자의 설명이 수긍이 가는 음악적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쇼스타코비치는 생애 말년에 이 교향곡이 레닌그라드가 포위되기 전에 이미 구상됐고 성경의 94번 시편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어쨌든 이 교향곡에서 전쟁 분위기를 피하기는 어렵다. 행진곡 풍의 리듬과 북소리는 전쟁을 암시하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쇼스타코비치를 철저하게 체제 순응적인 작곡가로 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에 그처럼 극적으로 작곡된 교향곡이라 하더라도 또 다른 측면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스탈린 사후, 쇼스타코비치가 선보인 첫 작품이 프로그램이 없는 교향곡 10번이라는 것은 의미가 있다. 이 곡을 작곡할 무렵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학생이었던 24살의 피아노연주자 엘미라 나지로바와 은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녀의 이름 ‘엘미라’로부터 이끌어낸 선율 동기(미-라-미-레-라)와 작곡자 자신의 이름으로부터 나온 선율 동기(D-Es-C-H/우리말 음이름으로 옮기면 레-미b-도-시)를 서로 얽혀 놓고 있다. 교향곡 10번은 다시 한번 비평가들 사이에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정치적 상황이 변해가고 있음을 감지한 쇼스타코비치는 평소와는 달리 강력한 어조로 자신의 주장을 폈다. 그러나 결국 1954년 4월 초에 열린 작곡가 연맹 대회에서 이 불필요한 논쟁의 종지부를 찍듯이 작곡가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연설을 하며 “이 작품에서 나는 인간의 감정과 열정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끝맺는다. 이 교향곡은 어떤 정치적 해석도 어려워 보인다. 극히 사적인 쇼스타코비치만이 존재하며 이 점을 그는 반성해야만 했다.

-그의 정치적 정체성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그의 교향곡을 해석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가 진정으로 체제 순응 작곡가였다면 그의 교향곡은 철저하게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해석되고 그렇지 않다면 부당한 정부의 압력에 대항한 서구식으로 위대한 작곡가가 되기 때문이다. 20세기 서방세계의 음악관은 철저하게 미학적 자율성을 중시했기에 미학적으로 사회주의 리얼리즘과는 상반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런 논란의 배경은 쇼스타코비치의 진정성과는 다소 거리가 먼 당시로서는, 또 어쩌면 지금까지도 지속되는 냉전 시대적 대결 구조다. 쇼스타코비치를 소련의 작곡가로 보려는 세력과 그를 서방 세계의 작곡가로 보려는 세력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암투가 지금도 진행 중이라는 생각이다. 분명한 건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는 것. 그 양면성 중 한 면을 강조하며 자기편으로 유도하려는 노력은 오히려 그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 그 양면을 모두 진정한 쇼스타코비치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06. 05. 08.

 

 

 

 

P.S. 한번쯤 읽어보고 싶은 게 쇼스타코비치의 평전인데, 국내에는 아직 솔로몬 볼코프의 <증언>(이론과실천, 2001)밖에 나와 있는 책이 없다(진의성에 대해서 많은 의심을 받고 있는 책이다). 유력한 평전(들)이 조만간 출간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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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6-05-08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퍼감다^^

로쟈 2006-05-08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옮겨오기만 했습니다.^^ 이미지 몇 개 찾아온 것 말고는 수고한 것도 없구요. 한데, 쇼스타코비치의 경우, 일차적으론 그 자신이 모호한 정치적 행보를 보였다는 것과 음악이란 장르 자체가 정치적 매체로서는 좀 비효율적이고 모호하다는 점, 두 가지가 모두 걸려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그 자신이 그런 걸 얼마간 의식하면서 줄타기를 했을 수도 있구요. 전공자에 따르면 그는 매우 소심했던 사람으로 자기 의견을 남들에게 잘 드러내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요즘 이 서재를 찾는 분들이 하루에 400여분 안팎이 되는 걸로 뜨지만, 즐찾이 늘거나 주는 것도 아니고 댓글이 더 달리는 것도 아니므로 대부분의 경우 유령-독자들이 아닌가 싶다(아니면 400이란 숫자 자체가 허수이거나). 이런 류의 블로그가 생기기 이전에 혼자 PC에 쳐넣곤 하던 일기와의 차이점이라면 이 '유령들'의 존재인데, 그건 좀 자극적이면서 동시에 성가신 일이기도 하다. 무슨 '유령수업' 같기도 하고...

 

 

 

 

공개된 서재(블로그)인 이상 얼마간의 '공공성'을 충족시켜야 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지만, 또 얼마간은 '사적인' 공간인 이상 나만의 '자유'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 해서, 이 공간에 적어놓는 글들은 교묘한 줄타기, 혹은 이중적인 플레이의 산물이다.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면서, 또 나 자신을 위한 것만은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작년 1월초 모스크바 통신에 '언더그라운드에 대하여'라고 올려놓았던 글을 다시 정리해서 옮겨온다. 대체 너의 포지션이란 게 뭐냐, 란 질문을 바람결에 듣기도 하는데, 거기에 답한다는 의미도 있다(그러니까 나는 두 번 대답하는 셈이 되겠다).

글의 내용은 대부분 당시에 읽었던 김규항의 칼럼 '희망에 대하여'에 대해 코멘트를 덧붙이는 것으로 돼 있다(칼럼은 <나는 왜 불온한가>에 포함돼 있지 않은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기생적'이며, 텍스트라기보다는 '곁다리텍스트'이다. 사실, '블로그'가 아니라면 이런 류의 텍스트가 살아남았을 리 없다. 좋은 세상이고, 좋은 세월이다. 그럼, 고대되는 이창동의 신작 <밀양>에서부터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보도록 한다.   

 

김훈의 치정소설이 밀양을 배경으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돌아온 이창동의 신작은 밀양이배경이다(나는 두 주 전쯤에 <씨네21>에서 그런 내용이 실린 인터뷰를 읽었다). 밀양(密陽), 혹은 ‘시크릿 선샤인(Secret Sunshine)’(신작의 영어제목이다).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 그곳에서 일어났다는 걸 보면, 밀양은 햇빛이 좋은 만큼이나 그늘도 깊은 모양이다. 나는 밀양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지만, 어쩌면/잘하면 올해 안에 밀양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스크린에서.

홍상수의 신작 <극장전>도 크랭크인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불과 작년초를 기준으로 한 얘기인데, 왜 이렇게 코믹하게 느껴지는지!). 그의 행보가 빨라진 건 아마도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실패’를 보상하기 위한 것은 아닐까? 그럼, <친절한 금자씨>를 찍는 박찬욱은? <올드보이>의 믿기지 않는 ‘성공’을 재확인하기 위해서! 어쨌거나 이들이 빨리-찍기에 있어서 김기덕과 경쟁하는 것은 (관객으로서) 고무적이다. 허진호도 신작을 찍는다고 하고. 보기에, 한국영화는 현재의 세계영화계에서 보기 드문 활력을 자랑하는 듯하다. 그건, 그렇고 이어지는 건 김규항의 한 최근(?) 칼럼이다(최근에 인터넷에서 읽은 것일 뿐이어서 정말로 최근의 칼럼인지는 자신할 수 없다. 제목은 ‘희망에 대하여’인가 그렇다).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의 9할은 80년대가 준 것이다. 젊은이들의 알록달록한 머리색,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을 권리, 그 대통령을 욕할 자유, 북한군을 인간으로 그린 영화, 민주적인 노동조합...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어 오히려 대수롭지 않은 것들의 9할은 80년대, 그 불의 시대가 준 선물이다. 한국의 80년대는 특별했다. 인류 역사에서 그렇게 많은 인텔리 청년들이 일신의 안위를 뒤로 한 채 세상을 바꾸는 일에 투신하고 스러져간 시대가 있었던가.

이 시작부터 두드러지는 건 그의 ‘나르시시즘’이다: “한국의 80년대는 특별했다.” ‘386’이라는 언론의 표현 대신에 ‘80년대 청년들’이라고 그는 쓰지만, ‘인텔리 청년들’이라고 하는 걸로 봐서 ‘80년대 청년들’의 9할은 ‘80년대 학번의 대학생들’을 지칭한다. 그리고 사실, 그 대학생들/인텔리들이 그렇게 많아진 건 5공의 ‘선심성’ 대학정책 때문이었다(더불어 군사정권은 통행금지를 해지하고, 중고등학교의 두발과 교복을 ‘자율화’했다. 머리에 물을 들이려면 ‘머리’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사립대학의 설립조건을 완화함으로써 대학들이 우후죽순 늘어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졸업정원제라는 걸 도입하면서 대학 입학생 수를 더 늘려놓은 것이다. 해서 “그렇게 많은 인텔리 청년들”의 ‘물적 토대’는 역설적이지만, ‘파시스트들’이 마련해주었다.

더불어, 당시는 경제호황국면이었기 때문에 요즘과 같은 대졸자 취업문제가 거의 없었다. 90년대 후반 이후 대학생/졸업생들이 좀스럽게도 취업문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반면에 ‘80년대 청년들’은 군사정권 타도와 조국의 민주화 같은 ‘대의’에 ‘투신’하다가도 원하기만 하면, 직장인/생활인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물론 일부 스러져가기도 했지만. 그런데, 김규항은 그런 ‘희생’에 대해서, 다른 세대들이 어떻게 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일까? ‘기념관’이라고 세워달라는 것일까?

 

 

 

 

자기 세대에 대한 은근한 자부심과 나르시시즘이 김규항만의 것은 아닐 것이기에 더 트집을 잡지는 않겠지만(가령, 4.19세대의 자부심, 이명박 세대의 자부심, 김훈 세대의 자부심 등), 그런 자부심을 객관적인 것으로, 보편적인 것으로 주장하면 곤란하다. “인류 역사에서” 운운하는 것이 그렇다. 사실, 그런 청년들의 원조는 러시아이며, 인텔리’란 말 자체가 러시아어 ‘인텔리겐챠(intelligentsia)’의 준말이다(‘인텔리겐챠’란 말 자체는 러시아의 고유어가 아니지만). 그러니 ‘인텔리’라는 부정확한 표현 대신에(흔히 고학력자를 ‘인텔리’라고 지칭하므로) ‘인텔리겐챠’(표준어는 ‘인텔리겐치아’)라고 써주는 것이 옳지만, 김규항은 이 말의 소속을 (무)의식적으로 부인/거부한다. 그 이유는 곧 알게 된다.)

-80년대 청년들의 땀과 피가 땅에 베어(*배어) 파시스트들이 권력의 전면에서 물러나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진전될 무렵, 현실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고(물론 그것은 사회주의의 붕괴가 아니라 사회주의의 한 졸렬한 시도의 붕괴였지만) 더 이상 왼쪽으로 당기는 힘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적인 우경화가 시작되었다. 이 모순된 상황은 일견, 한국은 살 만한 나라가 되었고 사회주의적 가치는 시효를 다한 것처럼 보였다. 10여 년을 극악한 군사 파시즘과 싸우던 청년들의 긴장은 그 변화한 상황 속에서 혼란에 빠졌고, 정처 없이 흐트러져갔다.

이 대목에서 현실 사회주의 붕괴를 ‘사회주의 한 졸렬한 시도의 붕괴’라고 한 것은 유감스럽다(짐작에는 이 때문에 이 칼럼에서 ‘인텔리겐챠’는 ‘인텔리’가 되었다). 러시아 인텔리겐챠들의 땀과 피가 땅에 배어(이건 ‘비유’가 아니다. 그들의 희생은 사실 양적으로 한국의 ‘80년대 청년들’과는 비교가 안된다. 남의 나라 역사라고 해서 함부로 말해서는 안된다) 결과적으로 성취한 것이 1917년 사회주의 혁명이며, 2,000만명으로 ‘인민의 적’으로 몰아 희생시켜가면서 건설한 것이 (스탈린식의) 현실 사회주의였다.

이전에 한번 인용한 바 있지만, “스탈린 시대에 소련은 농업집산화, 중공업 중심의 급속한 산업화, 문화혁명 등 여러 조치들을 통하여 위대한 성취와 사회적 변화를 이루어 내었고,(…) 당시 소련은 자본주의 세계가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도 높은 경제성장률을 계속 유지하였고, 그 결과 소련 사회의 모습은 유럽에서 가장 후진적인 문맹자들의 농업국가에서 국민 다수가 문맹에서 벗어난 도시 중심의 산업국가로 완전히 변모하였다.” 

조금 더 인용하자면, “이런 변화는 소련의 많은 사람들, 특히 노동자와 농민 출신의 젊은이들에게는 영웅적인 희생, 교육, 신분 상승 등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도시의 노동자들과 중간계층들은 당시의 어려운 상황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기를 열망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이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고 있다는 확신을 지낸 채, 국민의 모든 힘을 경제 발전에 최대한 동원하려는 정부의 노력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호응은 산업 및 관료제의 팽창, 대대적인 숙청, 교육 기회의 확대 등과 연결되면서 노동자 및 농민 출신의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신분 상승의 기회를 제공하였고, 그 결과 노동계급 및 농민 출신의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수많은 요직을 차지하게 되었다(고등학교 학생수는 1926-7년의 1,834,260명에서 1938-9년의 12,088,772명으로 증가하였고, 고등교육기관 학생수는 1927-8년과 1932-3년 사이에 159,800명에서 469,800명으로 증가했는데, 그 중 노동계급출신의 비중은 25.8%에서 50.3%로 증가하였다. 또한 고등교육기관 졸업생들의 승진은 매우 급속하여 이미 1941년에는 1928-32년 졸업생의 89%와, 1933-7년 졸업생의 72%가 국가 및 당의 지도적인 간부로 성장하였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 2,000만 명 이상이 희생됐지만, 이게 ‘현실사회주의’였다. 이게 왜 ‘한 졸렬한 시도’인가? 희생자들 때문에? 하면, (A급 좌파가 아닌) ‘B급 좌파’가 정권을 잡게 되면(설마 중앙집권적 권력이라는 게 필요없는 것인가?), 좀 달라지는가? 과연 사회주의건설에 반대하거나 적극 동참하지 않는 세력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거기서는 ‘희생’ 혹은 ‘숙청’의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가? 가령 개량적 진보주의에서부터, 중도보수, 수구보수, 수구꼴통에 이르는, 그리하여 아마도 현재 인구의 70%는 확실히 넘을 만한, 3,000만 명은 확실히 넘을 만한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어떻게 개량하고 개조할 것인가? 무엇으로 그들의 동참을 ‘강제’하는가? 그들의 자발적 동참을 기다리는가?

소련은 자연자원이라도 풍부했지만 그마저 없는 한국의 생존은 어떤 방식으로 확보할 것인가? (자본주의 이후) 생산수단의 공유, 공동생산과 공동분배라는 ‘아름다운 원칙’을 과연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일국사회주의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가? 그럼, 전세계의 사회주의화, 공산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사회주의적 가치’가 시효를 다하지 않았다면, 다른 프로그램은 무엇인가? 혹 모든 (이성적인) ‘프로그램’은 그 자체로 실현불가능한 자기모순을 안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기대하는 건 이런 물음들에 대한 대답 혹은 의견이지만, 김규항의 칼럼은 무력한 ‘적전(敵前) 분열 이후 10년’으로 넘어간다.

-10년이 지났다. 오늘 그들은 대략 셋으로 나뉜 것으로 보인다. (80년대의 내용은 폐기하고 이력만을 팔아 장사에 나선 부류는 접고 가자. 그런 천박함까지 80년대의 이름으로 언급할 순 없으니.) 첫째, 세상이 달라졌다는 의견에 명백하게 반대하며 80년대의 연속성을 유지하며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들이다. 손에 꼽을 만치 적은 그들은 곤란한 처지에 있다. 그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세상이 변했다고 합의했고, 그런 합의를 기반으로 하는 방식의 운동이 각광을 받는 상황에서, 그들이 지키는 신념은 낡은 것으로 비쳐지기 일쑤다. 그러나 (세상이 변했다는 의견에 찬성하고 안 하고를 떠나) 그들은 ‘여전히 남은 문제들’과 싸우는 유일한 세력이다. 그들은 낡은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새로운 세상에 접근한 사람들이다.

“오늘 그들은” 대략 셋으로 나뉘었다고 하지만, “어제(=80년대) 그들은” 그렇게 구분될 수 있었을까? “80년대의 내용은 폐기하고 이력만을 팔아 장사에 나선 부류”라고 몰아붙이고 있는 이들의 상당수가 80년대 운동권의 (잘나가는) 핵심들이었다(이 ‘장사꾼’들이 ‘386 국회의원들’을 지칭하는지, ‘벤처사업가’들을 지칭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그들이 10년 후에는 ‘이력을 팔아 장사에 나설 천박한 부류’들로 분류될 수 있었을까? 그런데, 지금 그들이 그런 식으로 분류되고 걸러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80년대라는 폭압적 상황하에서는 눈에 띄지 않았던 ‘사소한’ 차이들이 ‘오늘’ 드러난 것.

레닌주의의 기치하에서는 스탈린도 트로츠키도 부하린도 모두가 한몸이고 한 통속이었다. 하지만, 혁명이 성공하고 세상이 달라지자 그들은 스탈린파와 트로츠키파와 부하린파로 분리/분열돼 가고 사회주의의 적통과 반동으로 구분/숙청된다. 그런 식으로 어제의 동지는 오늘의 적이다(김규항의 박노해 비판을 떠올려보라. 하지만, 80년대 누가 박노해를, 혹은 노동해방문학을 비판할 수 있었을까? 혹은 김수환 추기경은? 80년대 누가 추기경을 비판할 수 있었을까?). 왜?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세상이 달라졌다는 의견에 명백하게 반대하며 80년대의 연속성을 유지하며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들”로 분류되는 이들은 쿠스투리차의 영화제목을 빌리자면 ‘언더그라운드’의 사람들이다. ‘80년대의 연속성’이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라는 점에서 전두환(파쇼정권)이나 김영삼(문민정부), 김대중(국민의 정부), 노무현(참여정부)이 다 똑같다는 것이다. 전선(戰線)의 외양만이 바뀌었을 뿐, 근본적인 사회적 적대관계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으며 그런 적대의 혁파를 위해 자신을 희생/투신하는 사람들! 이러한 논리의 자연적 귀결은, 이전에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인간개조 혹은 인간복제이며(그것만이 ‘근본적인 변화’이기에), 네그리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기계-인간에 대한 적극적인 긍정이다. 그것은 김규항의 입장이기도 한가?

하지만, 그는 한 문단 내에서 이야기를 묘하게 비튼다. “80년대의 연속성을 유지하며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들”이 “(세상이 변했다는 의견에 찬성하고 안 하고를 떠나) 그들은 ‘여전히 남은 문제들’과 싸우는 유일한 세력”으로도 지칭되는 것이다. “세상이 변했다는 의견에 찬성하고 안 하고를 떠나”라는 건 이들간에도 두 부류가 있다는 얘기인가? 이 문단의 시작에서 이들은 “세상이 달라졌다는 의견에 명백하게 반대”한다고 분명히 언급되었다. 이 두 구절이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가? 그들은 “세상이 변했다는 의견에 찬성하고 안 하고를 떠나” “세상이 달라졌다는 의견에 명백하게 반대”하는 것인가?

그리고 “여전히 남은 문제들”은 뭔가? ‘남은 문제들’이란 말은 해결된 문제들도 있다는 얘기 아닌가? 세상이 달라지지 않았는데, 해결된 문제들은 무엇인가? “여전히 남은 문제들만” 마저(!) 해결하면 ‘근본적인 변화’가 성취되는가? 여기에 논리적 균열이 있는 건 아닌가? 나로선 이 균열이 “그들은 낡은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새로운 세상에 접근한 사람들이다.”라는 역설적인 결론에 의해 봉합된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둘째, 이른바 90년대 이후의 변화한 상황을 근본적인 변화로 규정하고 적응한 사람들이다. 이를테면 90년대 중반 이후 급부상한 부르주아적 시민운동이다. 그런 새로운 방식의 운동은 80년대의 전체운동 중심 운동의 그물에 담지 못했던 중산층의 이런저런 문제들을 챙기며, 준 정당에 가까운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그 성과야 지나칠 만큼 충분한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지만, 문제는 그런 운동이 오늘의 유일한 운동인 양 주장되는 일이다. 그런 주장들은 바로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운동을 어리석고 낡았다고 비난하는 일이 된다.(그들은 여전히 ‘80년대의 연속성’이나 ‘변혁의 전망’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그들의 실제 활동 속에서 그런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유지를 위해 많은 것을 타협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언론에 의지하다 보니 언론문제에 불분명한 입장을 보인다든가, 언론에서 다뤄줄 만한 주제에 편중한다든가, 그 번듯한 살림을 꾸리기 위해선 과격해 보이지 않아야 한다든가 하는 문제들은 그들의 족쇄다.)

여기에 또다른 부류가 있다. 이들과 첫번째 부류와의 종차(種差)는 90년대 이후의 변화를 보는 시각에 달려 있다. 첫번째 부류(=언더그라운드)가 90년대를 80년대로부터의 근본적인 변화라고 인정하지 않는 데 반해서, 두번째 부류는 그걸 인정한다. 그리고 거기에 적응한다. 그런데 여전히 ‘80년대의 연속성’이란 말을 쓴다. 그런 그들을 김규항은 ‘부르주아적 시민운동가들’이라고 일컫을 모양이다. 이들에 대한 그의 태도는 이중적인데, 그들의 인식과 운동방식에 ‘반대’하진 않지만, 그것이 운동의 전부인 걸로 간주되는/간주하는 건 반대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운동은 (부르주아적) 한계를 명백하게 갖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론 그들과 달리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운동”을 사람들로 하여금 간과하게(결과적으론 ‘낡은 운동’으로 비난하게) 하기 때문이다.

-셋째, 이력을 팔아 장사에 나설 만큼 간교하지도 변화한 상황에 적응할 만큼 재빠르지도 못했지만, 여전히 신념을 지키며 살기엔 변화한 상황의 혼란과 피로를 이길 수 없었던 사람들이다. 80년대의 청년들의 가장 많은 부분일 그들은 말 그대로 청년 시절의 노고가 허망해져버린 사람들이다. 남들이 일신의 안위를 준비하느라 열심일 때 거리와 현장을 내달려야 했던 그들은, 꼭 그만큼 경쟁에 뒤진 삶을 어색하게 꾸려간다. <한겨레>를 구독하고 남들보다 진지한 책을 읽고 선거 때면 조금이라도 진보적인 정당에 투표하기도 하지만, 그런 작은 노력들은 이미 천민자본주의의 정신에 사로잡힌 그들의 주변으로부터 은근한 경멸의 대상일 뿐이다.

어떤 근거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김규항은 이 세번째 부류를 ‘80년대 청년들의 가장 많은 부분’, 즉 대다수로 규정한다. 아마도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그의 ‘80년대 청년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제한된 범위의 ‘운동권’을 뜻하는지도 모르겠다(소위 ‘운동권’ 바깥에 있었던 나로선 그 속뜻을 알지 못하겠다). 정말로 그 운동권 ‘대다수’는 “말 그대로 청년 시절의 노고가 허망해져버린 사람들”인지? 그래서 “경쟁에 뒤진 삶을 어색하게” 꾸리면서 “주변으로부터 은근한 경멸의 대상일 뿐”인지?

나로서 약간 혼란스러운 것은 칼럼의 서두에서 “인류 역사에서 그렇게 많은 인텔리 청년들이 일신의 안위를 뒤로 한 채 세상을 바꾸는 일에 투신하고 스러져간 시대가 있었던가.”라고 감회를 섞어 얘기한 것과 그 인텔리 청년들(=80년대 청년들) 대다수가 “주변으로부터 은근한 경멸의 대상일 뿐”이라는 이 대목에서의 지적 사이의 간극이다. 내가 아는 ‘그렇게 많은 인텔리 청년들’은 ‘경멸의 대상’이 아니며(그들은 오히려 나보다 잘나간다. 집행유예를 받았던 한 친구는 10년후 내게 <부자 아빠와 가난한 아빠>를 읽어보라고 권했었다), 혹 ‘경멸의 대상’일지도 모르는 ‘80년대 청년들’은 ‘대다수’가 아니라 ‘소수’이다(어떤 다수가 ‘경멸받는다면’, 오히려 경멸받지 않는 소수가 비정상 아닌가?).

‘은근한’ 경멸? “(겉으론 아니지만) 네들이 속으로 날 경멸하는 걸 다 알아!” 같은 건가? 그건 자의식의 일종이고 피해의식의 일종 아닌가? 사회/운동의 대의(大義)를 위해서 거리와 현장을 내달려야 했다면, ‘그만큼 경쟁에 뒤진 삶’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오히려 자랑스러워해야 하는 것 아닌가? 거꾸로 그런 경력 때문에 ‘경쟁에 앞선 삶’이어야 정상인가? 더불어, 운동을 했으면 반드시 ‘보상’을 받아야 하나? 민주화 운동 유공자들처럼? ‘고상하지만 무력한’ 이들(=아름다운 영혼들)의 주변은 ‘천민자본주의 정신’에 사로잡혀 있다고 하는데, 이 주변인들은 다수인 세번째 부류보다도 더 다수인가? 이러한 의문들은 칼럼의 주장에 시비를 걸려는 게 아니라 그 ‘진의’를 좀더 명료하게 해두기 위해서 제기하는 것이다.

-오늘 80년대의 청년들은 (변화한 세상에 적응한 사람들을 빼고는) 대개 세상의 경멸에 처해 있다. 희한한 일은, 사람들은 그 청년들이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의 9할을 주었다는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그 청년들을 마치 어리석은 과거를 가진 사람처럼 경멸하곤 한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런 동의는 그런 경멸을 위한 준비일 뿐이다. 그 청년들이 ‘그 80년대에 데모 한번 안 해본 놈들’에게서까지 받는 그런 경멸은 과연 온당한 것일까.

여기서도 ‘80년대 청년들’이라고 다소간 모호하게 지칭되고 있는 이들은 ‘그 80년대에 데모 한번 안 해본 놈들’과 대비되고 있는데, 그렇다고 그 모호성이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80년대 청년들’은 ‘한번이라도 데모 해본 놈들’부터 ‘데모현장이 강의실이었던 분들’에 이르기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갖기 때문이다. 전자라면 절대 다수이고 후자라면 소수 정예이지만, 내가 보기에 김규항은 이들을 뒤섞는다. ‘절대 다수’가 ‘어리석은 과거를 가진 사람’으로서 경멸 받는 것은 넌센스이므로, ‘어리석은 과거를 가진 사람’이라고 지칭되는 이들은 적어도 운동 경력 때문에 ‘훈장’이라도 달고 나온 이들을 가리켜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정말로 ‘80년대 청년들’로 지칭될 만큼, ‘인류 역사’를 들먹일 만큼 다수였는가? 운동을 위해서 일신을 내던질 수 있었던 그들이 지금에 와서 새삼 주변(=사람들)의 시선에 그토록 민감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 분명 사람들의 정신이 ‘천민자본주의 정신’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들의 경멸이야말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며, 오히려 그런 주변인들로부터 환영/존경받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 아닐까? ‘천민자본주의 정신’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사람은 제대로 볼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존경해줄 수 있는 것인지? 자세하게 읽으려고 하면, 칼럼은 이해되지 않는 대목들이 수두룩하다.

가령, “희한한 일은, 사람들은 그 청년들이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의 9할을 주었다는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그 청년들을 마치 어리석은 과거를 가진 사람처럼 경멸하곤 한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런 동의는 그런 경멸을 위한 준비일 뿐이다.”라는 대목은 전형적인 히스테리증자의 담론을 떠올리게 한다(예컨대, 히스테리증자에게는 어떠한 사랑의 고백도 변심으로 의심받을 것이다. “저 남자가 갑자기 무관심해졌어. 딴 여자가 생긴 거야!” “저 남자가 왜 갑자기 친절하지? 딴 여자가 생긴 걸 감추려고 하는군!”).

이 ‘동의’를 ‘존경’으로 바꾸어도 사태는 역전되지 않을 것이다. 히스테리증자에게서는 그 ‘존경’ 또한 ‘경멸’을 위한 준비일 뿐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경멸이 아닌 진정한 동의이며, 존경인지는 어떻게 판별할 수 있는가? (궁예처럼) 보면 아는가? 하여간에 이런 식의 징징대는 소리는 듣기에 불편하다(영화 <람보>의 끝장면에서 남들의 ‘경멸’에 대해 자못 억울하다는 듯이 징징대는 ‘람보’ 실베스타 스탤론과 무엇이 다른가? 참고로, 이 <람보>는 레이건 시대의 미국, 80년대 시대정신의 영화적 상관물이었다).

“그 청년들이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의 9할을 주었다”는 대목은 어떤가? 그들은 무얼 돌려받기 위해서 주었는가? ‘인류 역사’는 차치하고 한국의 근현대사만 보더라도 모든 앞선 세대는 자신들이 피땀흘린 노고의 대가를 후대에 물려주었다. 이건 당연한 것 아닌가? 이전 통신문에서 살펴본 김훈의 세대만 하더라도 한국사회의 ‘물적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그 이전에 한국전쟁의 참전세대가 아니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있지도 않았다. 도대체 무얼 말하자는 것인가?

사실, 김규항이 80년대 청년들이 주었다고 주장하는 건 비판적 사회 ‘의식’ 아닌가? ‘의식화’란 당대의 상투어. 그 ‘의식’이란 소프트웨어는 ‘물적 토대’라는 하드웨어가 없이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을까? 결국 이건 하나마나 한 얘기 아닌가? “그 청년들이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의 9할을 주었”는데, 어쩌라는 얘기인가? ‘80년대 청년들’은 무슨 특별한 역사적 사명의 유전자라도 갖고 태어났었더란 말인가? 지금의 2000년대 학번들도 노무현 정부가 아닌, 5공 정권하에서였다면, 일신의 안위를 뒤로 한 채 세상을 바꾸는 일에 투신했을 것이다. 그건 한 개인의 앙가주망 이전에 ‘시대정신’이자 시대적 요청이(었으)니까.

-하는 말대로, 그들이 80년대의 후반기에 그렇게 열심하던 사상 투쟁이나 사회구성체 논쟁은 분명 과열된 부분이 있었고 그들의 운동엔 편중된 부분이 있었다. 그들이 90년대의 혼란에 그렇게 무력하게 흐트러진 일 또한 그런 부분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새로운 전망을 찾기 위해선 그런 오류에 대한 비판은 필요하다. 오히려 80년대가 종료한 지 10여년이 지났지만 그런 오류에 대한 정확한 비판과 토론이 진행되지 않은 일은 아쉬운 일이다.

김훈의 인터뷰에서 이 대목에 상응하는 부분은 박정희의 ‘정치적 과오’에 대해서 “물론 그런 것까지 없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어.”라고 답하는 부분이다. 김규항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물론 80년대 운동에 과열된/편중된 부분이 없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김훈의 경우에도 지적했지만, 이런 판타지야말로 자기기만이다. 나는 당시에 그렇게 ‘열심하던’ 사상투쟁 등속도 혐오스러웠지만(그들은 주체사상이나 스탈린주의는 전폭적으로 지지하면서 ‘소프트 스탈린체제’였던 박정희나 그 ‘외설적 이면’으로서의 전두환은 혐오했다), 그러한 ‘오류/과오’까지가 온전하게 80년대 청년 정신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때문에 그와는 분리될 수 없다고 본다

우경화된 파쇼정권에 대응하기 위해서 필요 이상의 ‘좌경화’가 요구되었던 건 당연한 일, 이해할 만한 일 아닌가? 그게 옳거나 그르다고 판정하는 것은 이차적이다. 운동은 이성에 의해 조율되지 않으며, 거기에 언제나 동반되는 것은 ‘광기’이다. 김규항의 지적대로, (80년대 청년들이) “90년대의 혼란에 그렇게 무력하게 흐트러진 일 또한 그런 부분과 관련이 있을 것”인바, (김규항의 주장대로) 그들이 현재 사람들로부터 경멸받는다면, 그건 일정 부분 자기책임이다. 이제 결론이다.

-문제는, 80년대의 오류에 대한 그런 비판들이 새로운 전망을 찾기 위한 생산적인 목적이 아닌 엉뚱한 목적,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주장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확실히 80년대의 정신은 ‘지나친 자본주의’로서 신자유주의 정신과 적대적이며, 80년대의 정신이 아무 구분없이 경멸되어야 할 필요가 바로 거기 있다. 오늘의 정신, 신자유주의의 정신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하루가 다르게 벌어지는 빈부의 격차를 당연시하는, 모든 경제적 실패를 노동자의 책임으로 넘겨지는, 아이들이 아파트 평수대로 신분을 나누는, 일류대학이 부자의 자식들로 채워지는, 오로지 돈이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부모가 자식에게 선생이 제자에게 올바로 살라고 가르치는 일이 자식과 제자의 인생을 망치는 일이 되는, 정신이다. 과연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희망은 부당한 경멸을 돌려주는 일에서만 출발할 것이다. 80년대, 그 위엄을 되찾아야 할 때다.

“80년대의 정신이 아무 구분없이 경멸되어야 할 필요가 바로 거기 있다.”라는 대목은 문맥과 맞지 않는데, 오타가 아니라면 아이러니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즉, ‘80년대의 정신’은 ‘신자유주의 정신’과 적대적이기에, 그 ‘신자유주의 정신’이 지배적인 정신, ‘오늘의 정신’이 된 우리시대에 ‘경멸’받는다는 것. 그런 맥락에서라면, 사람들의 경멸은 ‘80년대 정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징표일 것이므로 (부당한 것으로 불평해야 할 게 아니라) 오히려 환영해마지 않아야 할 것이다. 더불어, ‘80년대 청년들’이 김규항의 주장대로 경멸받는 ‘다수’라면, 신자유주의 정신을 상대로 좌절할 이유는 무엇인가?

저항의 ‘물적 토대’를 문제삼는 거라면 모를까(그건 좀 어렵고 복잡하다), 그가 내내 내세우고 있는 것은 ‘정신’, 곧 ‘의식’ 아닌가? 부당한 결멸 정도를 (되)돌려주는 일에서 ‘희망’이 출발될 수 있다면, 이 또한 너무도 쉬운 일 아닌가? 자신을 은근히 경멸하던 주변 사람들에게 당장 내일 아침부터 경멸의 시선을 되돌려주면 되는 것이니까. 그걸로 80년대, 그 위엄을 되찾을 수 있는 거라면 말이다.

끝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 위엄’의 내용이다. ‘그 위엄’을 되찾아야 하지만, 그리고 그걸 ‘재단언(reassert)’해야 하지만, 정작 그 위엄의 내용은 아직 정리되지/갖춰지지 않았다. 80년대의 오류에 대한 비판이 (그간에 편파적으로 진행되었을 뿐) 아직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80년대가 종료한 지 10여년이 지났지만 그런 오류에 대한 정확한 비판과 토론이 진행되지 않은 일은 아쉬운 일이다.” 이러한 상황에 그대로 적용가능한 것은 재작년 연말인가 하머바스(독일)와 데리다(프랑스) 등 대표적인 서유럽 지식인/철학자들의 ‘시국선언’에 대한 지젝의 비판이다.

 

 

 

 

자신들의 선언서에서 두 철학자는 유럽이 자신의 “윤리-정치적 유산”을 재단언할 힘을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한바, 지젝은 그것이 충분하지 않다고 비판한다. 왜나면, “우리가 미국 정치와 문명 속에서 비난받아야 하는 것으로 그리고 위험한 것으로 발견하는 것은 유럽 자체의 일부이며, 유럽적 기획의 가능한 결과들 중 하나”(<이라크>, 50쪽)이기 때문이다. 즉 “미국은 유럽 자체의 왜곡된 거울이다.”(즉 미국이란 거울에 비쳐지고 있는 것은 유럽 자신의 얼굴이다.)

해서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은 자기비판이다. “유럽 자체에 대해 비판적으로 개입하기를 원치 않는 이들은 미국에 대해서도 침묵해야 한다.”(51쪽) 그것이 지젝의 단언이며, 이는 새로운 주장으로 이어진다. “유럽적 유산의 방어가 연대와 인권이라는 위협받는 유럽적 민주주의 전통의 방어에 국한된다면 전투는 이미 패배한 것이다. 유럽의 유산이 방어되기 위해서는 유럽이 스스로를 재창안해야 한다. 방어의 행위 속에서 우리는 방어해야만 하는 그 무엇을 재창안해야 한다.”(51쪽)

즉 한쪽에서는 우리의 ‘금송아지’를 보호/방어하기 위해서 피 흘리는 가운데, 한쪽에서는 그 ‘금송아지’를 열심히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김규항이 옹호하며 재단언하고자 하는 ‘80년대 정신’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 자체의 오류를 제거한, 순수하게 진보적인 ‘80년대 정신’(=금송아지)이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건 그 정신의 윤곽과 아직 ‘참호’(=언더그라운드) 안에서 전투를 계속하고 있는 소수의 전사(戰士)들, 그리고 대다수 ‘패잔병들’뿐이다. 때문에, “80년대, 그 위엄”을 한편으론 되찾아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런 게 아직 없으므로) 만들어내야 한다.

해서, 남들의 경멸에 신경쓰거나 발목 잡혀 있을 때가 아니며, 자화자찬하거나 징징댈 시간이 아니다. 과연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그건, 한가한 질문이다. “누가 승리를 말하는가? 극복이 전부인 것을.”(릴케)이란 시구를 조금 비틀어서 말하자면, “누가 희망을 말하는가? 전진이 전부인 것을.” 묵묵한 전진이…(*여기까지가 본문이었다. 이어지는 것은 본문에 덧붙인 군말이었다.) 

 

 

 

 

김규항의 칼럼에 대한 논평에 생각보다 길어졌다.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의 9할은 80년대가 준 것이다.”란 첫문장을 읽으면서부터 마음이 답답해지기 시작해서, 결국은 한때 그의 칼럼의 애독자였지만 나는 더 이상 그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다. 나는 분류하자면, “세금 왕창 내는” ‘중도 우파’도 부르주아도 아니지만, 김규항의 분류대로라면 ‘80년대 청년’도 아니다. ‘80년대 인텔리’이긴 하지만, 나는 일단 ‘팔아먹을 이력’이 없고, 세상이 좀 달라졌다고 믿기 때문에 ‘80년대적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지 않으며, 남들만큼 ‘간교하지도’ ‘재빠르지도’ 않아서 경쟁에 뒤진 감은 있지만, 그건 자업자득 정도로 여긴다(그러니 굳이 분류하면, 세번째 부류의 ‘변이형’ 정도 될까?).

단 하나, 내가 내심으로 자긍심을 갖는 것은 세상이 좀 달라지긴 했어도 나의 정치적 태도는 80년대나 지금이나 그다지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다. 김훈의 분류대로 하자면, 나는 ‘회색분자’이어서(최인훈의 명명에 따르면, ‘회색인’), 그다지 달라질 게 없는 건지도 모르지만. 내 주변에서 80년대에 ‘운동’을 잘하던 이들은 대부분 지금도 잘나간다(한나라당 공천까지 신청해 가면서). 그들에 주눅들어 하던 이들은 지금도 그냥 그 주변에서 주눅든 채 살아가고. 그리고, 나 같은 회색분자는 지금도 회색분자이다(나도 기회주의적으로 좀 처신하고 싶고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빌어먹을 ‘기회’란 게 안 주어진다. ‘기회’는 나를 경멸하는 모양이다). 이건 일종의 생태학이다. ‘운동생태학’. ‘운동윤리학’ 이전에 말이다.

나는 김규항이 자신을 어떻게 분류할지 궁금하다. 아마도 “세상이 달라졌다는 의견에 명백하게 반대하며 80년대의 연속성을 유지하며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들”에 속하리라, 혹은 속해야만 하리라. 적어도 ‘B급 좌파’라는 명패에 값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손에 꼽을 만치 적은 그들”의 “곤란한 처지”에 합류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 또한 정말로 ‘곤란한 처지’에 있는지? ‘언더그라운드’의 처지라면, 세 부류를 ‘개관(槪觀)’할 만한 처지가 안된다. 그걸 개관하기 위해서는 언더그라운드 ‘바깥’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그는 세상이 변했다는 것도 알고 있어야 하며(그럴 경우, 운동방식 또한 바뀌어야 한다) 동시에 그럼에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어야 한다(그럴 경우, 운동방식은 바뀌면 안된다). 그러니까 그의 처지를 규정하는 건 모종의 아포리아이다. 본문에서 “세상이 변했다는 의견에 찬성하고 안 하고를 떠나”라는 애매한/유보적 표현은 짐작에 아마도 그래서 들어갔을 것이다. 김규항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



본문에서 한번 언급했던 쿠스투리차의 영화 <언더그라운드>(1995)의 줄거리는 이렇다. “1941년 독일에게 점령당한 유고의 베오그라드. 무기밀매를 하던 블래키와 마르코는 지하실에 무기생산고를 만든다. 이로부터 3년후, 마르코는 블래키를 독일군으로부터 구출해 지하실로 숨게 한다. 하지만 유고가 해방된 후에도 마르코는 지하실 사람들을 속여 계속 무기를 만들게 하는 한편 블래키가 사랑하는 여자 나탈리아를 빼앗고, 티토의 측근이 되어 부와 명예를 누린다. 블래키의 아들 요반의 결혼식날 언더그라운드는 사고로 파괴되고 아직도 전쟁이 진행중인 것으로 믿고 있는 블래키는 자신의 영웅담을 영화화하고 있는 촬영현장에 도착해 진짜 총을 발사한다. 1992년 다시 전쟁에 휩싸인 베오그라드. 마르코와 나탈리아는 블래키의 지하군에 의해 살해된다. 마지막, 블래키의 죽음에 의해 잉태된 꿈의 장면, 모든 죽은 사람들이 햇살 밝은 곳에서 축제를 벌이는데 그들이 딛고 있는 땅이 육지로부터 떨어져 나간다.”(김소영 교수의 요약)

유고 내전에 관한 이 ‘블랙 코미디’에서조차도 언더그라운드의 사람들은 관객의 마음을 무겁게 했었다. 반복해서 말하자면, “세상이 달라졌다는 의견에 명백하게 반대하며 80년대의 연속성을 유지하며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들”로 분류되는 이들은 이 ‘언더그라운드’의 사람들을 닮았다. 나는 그들이 세상을 어떻게 견뎌내는지 가늠할 수 없다(1980년부터만 잡아도 벌써 25년째이다!). 그들과는 달리 나에게 먹구름 같던 80년대는 지난 김영삼 정부때 전두환, 노태우가 내란수괴죄 등으로 수감되면서 비로소 막을 내렸다. 두 사람이 구속되는 날, 나는 젊은 날 머리속을 내내 감싸던 무거운 안개 같은 것이 걷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87년 6월의 ‘함성’이 그날에서야 비로소 결실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을 듯했다). 나는 그 이후의 한국 정치사에 대해서는 케세라 세라, 될 대로 되라이다. 그건 무관심이 아니라 낙관이다(더 이상의 후퇴는 없을 거라는).

나는 우리의 삶에서 정치가 해줄 수 있는 몫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며, 나머지 문제들, “여전히 남은 문제들”은 종교(=종교 없는 종교)와 예술/문학에 의해서 해결이 모색되어야 한다고 본다(데리다의 저작들 중 일부는 'Acts of Religion'과 'Acts of Literature'란 제목으로 묶였는데, 나의 모든 관심 또한 그 사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내가 엊그제, 그러니까 지난해의 마지막날 저녁에 읽은 단편소설은 체홉의 <다락방이 있는 집>(1896)인데(‘운동’의 방식에 대한 두 가지 입장 차이가 이 단편의 이데올로기적 테마를 구성한다), 거기에 등장하는 화자(=화가)는 이렇게 말한다. “필요한 건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이 아니라, 정신적 능력을 발휘하기 위한 자유입니다. 초등학교가 아니라 대학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내가 보기에, 정신의 자유, 정신의 대학은 정치가 충족시켜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초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대학(교육)’을 유보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지구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굶어죽는데, 어떻게 너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느냐고 말할 수도 없다. 그건 또다른 ‘폭력’이다(인간에겐 생명보다 더 중요한 가치들이 있다!).

내게 ‘언더그라운드’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80년대의 연속성’이란 무엇인가? <언더그라운드>에서 2차 대전이 계속 진행중이라고 믿고 있듯이, 군사파쇼 정권과 피억압 민중간의 대립구도의 연속성인가? 아니면, 다국적자본의 신자유주의와 전세계 노동계급간의 대립구도의 연속성? 어쨌거나 5공 때의 구호는 매번 반복되었다. “김영삼 정권 타도하자!” “김대중 정권 타도하자!” “노무현 정권 끝장내자!”(하지만, 그 구호들이 언제 실현됐던가? 메아리 없는 구호는 ‘구호를 위한 구호’로 귀결되는 것 아닌가?) 그러한 구호들에서 지속적인 것은 ‘타도하자/끝장내자’라는 ‘관성’이다. 영어로는 ‘overthrow’.

'Overthrow'는 타도/전복하다란 뜻도 되지만, 야구 용어로는 폭투(暴投), 그러니까 투수가 공을 너무 멀리 너무 높게 던지는 걸 말한다.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요구는 폭투처럼 콘트롤이 안되는 요구이다. ‘근본적인 변화’라는 건 아무도 정의/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와일드(wild)하며, ‘정의(正義)’를 닮았다(짓궂게도 5공의 집권여당은 ‘민주정의당’이었다. ‘80년대 청년들’과 집권여당의 지향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일치했던 것. ‘민주주의’와 ‘정의’!). 단, 그것이 ‘근본주의’에 붙들리지 않는 한에서 말이다. 하지만, ‘폭투로서의 정의(Justice as a Overthrow)’가 힘을 갖기 위해서는,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혹은 위엄을 내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해야 한다.

 

 

 



정의로서의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는/요구하는 사람들이 왜 경멸 받는가? 그건 힘이 없기 때문이다. 김훈의 표현을 갖다 쓰자면, ‘물적 토대’가 없기 때문이다(그런 이유로 김훈은 좌파를 ‘멸시’한다). 몽테뉴-파스칼의 통찰을 다시 반복하자면, “힘없는 정의는 무기력하다. 정의 없는 힘은 전제적이다. 힘없는 정의는 반격(=경멸)을 받는데, 왜냐하면 항상 사악한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정의 없는 힘은 비난을 받는다. 따라서 정의와 힘을 결합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정당한 것이 강해지거나 강한 것이 정당해져야 한다.”(데리다, <법의 힘>, 27쪽)

책임질 수 없는 구호들만을 남발하는 걸로 자신이 정의(=근본적인 변화)에 편에 서 있다고 믿는 건 착각이거나 오만이다. 그건 자신들이 ‘물적 토대’(=힘)를 갖고 있기에 곧 정의롭다고 믿는 것만큼이나 오도된 것이다. 자신의 말(=구호)에 책임지고, 그 말에 ‘물적 토대’(=힘)를 부여함으로써, 말의 위엄을 되찾을 수 있을 때만이 정의는 반격/경멸을 받지 않게 된다. 거기에 비하면, “그 청년들이 ‘그 80년대에 데모 한번 안 해본 놈들’에게서까지 받는 그런 경멸은 과연 온당한 것일까.”라고 따위의 질문은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는 것은 과연 온당한 것일까.”라는 질문만큼이나 부차적이며 한가하다. 사자가 양을 잡아먹는 것은 그것이 정당(온당)해서가 아니다.



지난주에(*2005년초) 인터넷에는 지난해 10월에 사망한 철학자 데리다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창간 50주년 기념연설(발체)문이 영역본과 함께 올라왔었는데(강연은 5월에 있었고, 강연문은 11월호에 게재됐다),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다음의 문단이었다. 나는 한 문단을 둘로 나누어서 영역과 국역을 같이 제시하겠다(국역은 신기섭님의 것을 약간 수정했다).

Caught between US hegemony and the rising power of China and Arab/Muslim theocracy, Europe has a unique responsibility. I am hardly thought of as a Eurocentric intellectual; these past 40 years, I have more often been accused of the opposite. But I do believe, without the slightest sense of European nationalism or much confidence in the European Union as we currently know it, that we must fight for what the word Europe means today. This includes our Enlightenment heritage, and also an awareness and regretful acceptance of the totalitarian, genocidal and colonialist crimes of the past. Europe’s heritage is irreplaceable and vital for the future of the world. We must fight to hold on to it. We should not allow Europe to be reduced to the status of a common market, or a common currency, or a neo-nationalist conglomerate, or a military power.

“미국의 헤게모니와 중국의 떠오르는 힘, 그리고 아랍/이슬람의 신권 정치 사이에 낀 유럽은 독특한 책임을 지고 있다. 나는 ‘유럽 중심적인’ 지식인이 아니며, 지난 40년 동안 정반대의 이유로 곤욕을 치러왔다. 하지만, 나는 한치의 유럽 국수주의도 갖지 않고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유럽연합에 대해 그다지 신뢰하지 않으면서도 오늘날 ‘유럽’이란 말이 의미하는 바를 위해서 우리가 싸워야만 한다고 확고하게 믿는다. 여기에는 계몽주의의 전통과 함께, 과거 전체주의의 범죄행위와 인종학살, 식민주의적 범죄행위에 대한 인식과 이에 대한 유감도 포함된다. 이러한 유럽의 전통은 대체될 수 없으며, 세계의 미래를 위해서 아주 중요하다. 우리는 이걸 지키기 위해서 싸워야 한다. 우리는 유럽이 그저 하나의 시장이나 하나의 통화체제, 혹은 새로운 형태의 국가연합이나 통합된 군사력 등으로 축소되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

문단의 이러한 전반부가 연설의 핵심을 구성하지만, 내가 더 주목한 것은 이어지는 후반부의 유보조항이다: “Though, on that last point, I am tempted to agree with those who argue that the EU needs a common defence force and foreign policy. Such a force could help to support a transformed UN, based in Europe and given the means to enact its own resolutions without having to negotiate with vested interests, or with unilateralist opportunism from that technological, economic and military bully, the United States of America.”(비록, ‘통합된 군사력’이라는 이 마지막 요점에서는 유럽연합이 공동의 방위력과 외교정책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동조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만 말이다. 그러한 힘은 유엔이 기술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불량배 국가인 미국과 타협하지 않고, 미국의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는 가운데 유럽에 근거를 두고서 독자적으로 그 결의를 실행할 수 있는 기구로 탈바꿈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강조는 나의 것인데, 강조된 것은, 그리고 데리다가 특별히 부각시키고 있는 것은 바로 ‘힘’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군사력(a military power)’. ‘불량배’(=미국)과 타협하지 않으면서 유엔이 자신의 결의를 독자적으로 실행하는 걸 도와주기 위해서라도 유럽연합의 힘(군사력)은 불가불 요구된다고 이 ‘해체철학자’는 보는 것이다. 이 힘이 바로 어떤 발언이나 결의에 수행력을 덧붙여주는 ‘물적 토대’이다. 이러한 물적 토대에 의해서 뒷받침되지 않는 정의는 곧 반격 받으며, 조롱과 경멸의 대상이 된다. 철학자마저 이러할진대, 하물며 ‘운동가’가 세상 사람들의 경멸이나 탓하고 있다는 건 넌센스이다.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의 9할은 80년대가 준 것이다.”에서 내가 읽는 것은 바로 그 넌센스이다...

06. 05.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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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기계 2006-05-08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개인적으로 로쟈님의 글을 따로 프린트해서 보관하기도 하는 애독자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가끔 로쟈님이 이렇게 자신의 옛글을 정리하실 때 유령 같은 독자의 입장에선 정리하기가 조금 성가시기도 합니다.^^ 개인적인 결벽인지는 모르지만 '초판 글'과 '개정판 글'을 다 함께 챙겨 보관합니다. 정말 맘에 드는 글은 (이미지 버전을 위해) 칼라로 뽑아내기도 하고요. 개인적인 일이지만, 한편으론 로쟈님의 "이중적인 플레이"에 대한 최소한의 화답입니다. 만난 적도 없는데, 자신만을 위한 글을 정리하는 로쟈님의 글을 챙겨 읽을 땐 제게는 로쟈님이 유령 같이 느껴집니다.^^ 꾸벅.

로쟈 2006-05-08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령-독자 한분이 자수하셨군요.^^ 관심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은 애초에 3조각인가로 나뉘어 올려졌었기 때문에, 한데 모아놓으면 시각적으로도 보기 편하지 않을까 싶네요. 거기에 이미지들도 몇 개 들어가 있으니까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고. 뭐, 핑계를 대자면 그렇습니다. 가끔은 교정과 비판도 해주시길...

로쟈 2006-05-08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교수신문'의 기사를 담뽀뽀님의 서재에서 읽곤 합니다. '러시아문학'이란 리뷰란을 따로 빼놓아도 많은 분들이 제 '출신성분'에 대해서 오해하거나 되묻곤 하시더군요...

여울 2006-05-08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수하게 진보적인 ‘80년대 정신’(=금송아지)이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건 그 정신의 윤곽과 아직 ‘참호’(=언더그라운드) 안에서 전투를 계속하고 있는 소수의 전사(戰士)들, 그리고 대다수 ‘패잔병들’뿐이다. 때문에, “80년대, 그 위엄”을 한편으론 되찾아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런 게 아직 없으므로) 만들어내야 한다.

" 과연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그건, 한가한 질문이다. “누가 승리를 말하는가? 극복이 전부인 것을.”(릴케)이란 시구를 조금 비틀어서 말하자면, “누가 희망을 말하는가? 전진이 전부인 것을.” 묵묵한 전진이" ... 그쵸!!! 좋은 하루 되시구요.

일요일의마음 2006-05-08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알라딘에 서재를 만든 계기가 재작년쯤에 네이버에서 '알라딘에 로쟈라는 사람 글이 읽을 게 많다'는 코멘트를 보고 들어와 본 거였더랬는데, 그동안 읽기는 거의 다 읽었더랬는데요^^ 사실 사소한 교정들은 가끔 봐드릴 수 있지만(가끔 눈에 띈다는...) 별로 중요한 건 아닌 듯해서염=3=3=3

로쟈 2006-05-08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로 중요하지 않더라도 알려주십시오. 서재주인장에게만.^^ 제 눈의 티를 못보는 것처럼 자기 글의 오타나 오류도 잘 눈에 띄지 않거든요. 고친다고는 하지만...

yoonta 2006-05-09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글 그냥 스킵하려다가 읽었는데 좀 논란의 소지가 있는 글이네요..스탈린식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평가부분에서 님은 김규항씨가 졸렬한 시도라고 평한것을두고 2000만명이라는 큰 희생을 치르고 획득한 정치제도이기 때문에 혹은 2000만명을 희생시키는 행위자체가 졸렬하지 않고 위대한? 업적 혹은 시도라고 보시는 건가요? 당시의 정치적 투쟁에서 승리한 레닌주의노선이 당시의 러시아 상황에서 가장 올바른 결론이었다고 보시는건가요?


p.s.끝까지 읽으려는데 어디가 인용글이고 어디가 님의 코멘트인지 넘 헷갈리네요..
-가 문단 맨 앞에 있는 것이 인용글이고..-가 없는 것이 님의 코멘트인가요? 전에는
(*)표시로 구분하신거 같은데 이글에는 그런 구분이 잘 안되어있군요. 번거로우시더라도 (*)표시 혹은 다른 표시로 확실히 구분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로쟈 2006-05-09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문에만 (-)표시가 있습니다(인용문이 많지 않을 때는 굳이 *표를 달지 않습니다). 그리고, '현실사회주의'에 관해서, '가장 올바른 결론'과 '가장 현실적인 결론'은 구별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역사는 가장 올바른 경로를 선택하지 않습니다(그것이 '현실적'이지 않을 경우엔 더더욱). '현실 사회주의'와는 '다른 사회주의' '진정한 사회주의'를 꿈꾸는 이들에게 갖는 저의 불만은 그러한 상상력이 '현실 자본주의'에 대해서 면죄부를 준다는 데 있습니다(우리는 또 얼마든지 '이상적 자본주의' '도덕적 자본주의'를 꿈꿀 수 있으니까요).

2000천만명 운운은 '대단하다'는 뜻에서입니다. 그러한 '공포정치'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었던 것은 사회계급의 전면적인 교체 덕분이었다고들 얘기합니다. 그 많은 자리는 물론 숙청된 이들이 마련해준 것이며, 적어도 그 희생자들의 수만큼 사회적 신분 이동이 가능했던 거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그러니까 모두가 '피해자'는 아닌 겁니다). 저는 그러한 피의 숙청 없이, 어떠한 방식의 계급투쟁이 가능한지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본문에서 지적한대로, 소위 진보좌파라는 이들이 나머지 (최소한) 70%의 '반동분자'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하구요. 이에 대한 해명 없이 '가장 올바른'을 늘어놓는 것은 아름다운 소리이기는 하지만, 귀기울여볼 만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yoonta 2006-05-09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에는 그런 피의 숙청이 필요할만큼 강제와 폭력이 필요한 혁명이라면 차라리 '일어나지 않는게 좋았던 혁명'이라고 생각합니다. 2000만명의 희생을 치러서 얻은 댓가가 과연 무엇이었던가요? 2000만명을 죽인다음 그 위치를 차지할수있었던 노동계급?들의 신분상승이 그 희생만큼의 값어치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서 그렇게 피로서 성립된 현실사회주의가 오늘날까지 잘 작동되었던가요?

물론 "가장 올바른 결론"이 항상 "가장 현실적인 결론"이 되지는 않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당시에 '현실적'이었던 레닌주의, 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에 "면죄부"를 준는 것도 마찬가지로 아닙니다..

로쟈 2006-05-09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제와 폭력'이 불필요한 '혁명'에 대해서는 제 상상력이 따라가지 못하겠습니다(더불어, 레닌-스탈린주의적 '과잉'이 혁명을 이끈 것이므로, 사실상 그러한 '과잉'을 제거한다면 말씀대로 혁명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한데, 모두가 좋은 게 좋은 건가요? 노동자도 좋고, 자본가도 좋은? yoonta님의 '가장 올바른 결론'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경청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단, 그것이 윤리적인/추상적인 결론만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yoonta 2006-05-09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급격한 사회적 변화를 야기하는 일반적 의미의 정치적 혁명에는 일정정도의 "강제와 폭력" 수반될수밖에 없죠. 하지만 그것이 꼭 2000만명을 숙청시키는 야만이어야만 했을까요?

레닌이 죽기직전에 그랬다죠. 스탈린은 너무 잔혹한 인물이기 때문에 자신의 후계자가 될만한 인물이 아니라고. 하지만 레닌에 의해 성공한 10월혁명은 스탈린에 의한 권력장악과 그의 전횡을 가능하게한 밑바탕을 마련해주었죠. 로쟈님도 잘 아시겠지만 당시의 러시아에서 볼세비키는 사회주의계열 내부에서도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그들에 의한 혁명은 어떻게 보면 혁명이라기보다는 소수에 의한 쿠테타에 가까웠다고 봅니다. 혁명?의 성공후 그들은 수많은 노동자들을 배신했죠. 모든 권력이 소비에트로 간 것이 아니라 모든 권력은 레닌에게로 갔으니까요..-_- 크론슈타트에서는 레닌에 의한 이러한 권력독점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 반혁명적 성격을 인지하고 대대적인 봉기를 일으키기도 했고요..

10월혁명에 대한 평가는 그리고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는 이런 일련의 논의들을 꼼꼼히 점검해보아야 하는 사항이기 때문에 그리 간단히 다루어질만한 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가장 올바른 결론"은 아직은 이곳에서 이야기할 상황은 아닌것 같네요. 단 그것이 윤리적이고/추상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만 밝힙니다.

yoonta 2006-05-09 0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마저 읽었네요..중 후반부도 마찬가지로 논란거리가 많은 내용이군요..

한마디만 코멘트해보면..그렇다면 좌파가 획득해야만 하는 그 "물적토대"란 무엇인가요? 돈인가요? 아니면 정치적 군사적 권력? 만약 그렇다면 이런 것들이야 말로 좌파가 혐오하고 거부해왔던것들 아닌가요? 그런 것들이 아니라면 그들의 물적 토대는 도대체 무엇이죠?

님이 이부분에서 비판하려고 하는 좌파의 문제점 즉 공허한 구호만 남발하고 그 구호의 실천성, 물적토대를 담보하지 못하는 모습들은 여러점에서 비판받을 만한 부분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구호의 의의조차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죠. 많은 경우 그들의 구호나 이야기가 공허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도 애초부터 그들에게 (자본주의적)기회가 주지 않는 현실, "(자본주의적)기회가 그들을 경멸하"는 현실때문이니까요. 그들이 필요로하는 "물적토대"는 자본주의적 기회나 물적토대라기보다는 자본주의의 외부를 지향하는 물적토대이기 때문이고, 기회이기 때문이니까요.

한가지 동의하는 부분은 왜 우리를 경멸하느냐고 투덜대는 것보다는 "금송아지"를 계속해서 묵묵히 만들어내는 일들을 해야한다는 부분입니다. 그런점에서 김규항씨의 이글은 그가 아직도 80년대의 향수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로쟈 2006-05-09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구호의 의의조차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죠. 많은 경우 그들의 구호나 이야기가 공허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도 애초부터 그들에게 (자본주의적)기회가 주지 않는 현실, "(자본주의적)기회가 그들을 경멸하"는 현실때문이니까요. 그들이 필요로하는 "물적토대"는 자본주의적 기회나 물적토대라기보다는 자본주의의 외부를 지향하는 물적토대이기 때문이고, 기회이기 때문이니까요."로 yoonta님의 생각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대략 어떤 입장이신지 가늠할 수 있겠습니다(이진경주의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혹 차이가 있다면, 나중에 덧붙여주시면 좋겠습니다). '자본주의의 외부'에 대한 상상력도 시간이 되시면 나누어주시길. 제 기본적인 생각은 노마디즘 유행에 대한 간략한 코멘트의 형태로 조만간 제시될 것입니다...

yoonta 2006-05-09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저는 이진경주의가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그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네요. 제가 "자본주의적 외부"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그런 추측을 하셨나본데 그것은 이진경주의 혹은 노마디즘을 염두에두고 쓴 표현은 아닙니다. 저는 단지 좌파적 상상력이라는 것이 자본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을 목표로 작동되는 것이고 그것에 기초한 '자본주의의 외부'를 지향해야 하는 것이 그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외부'라는 표현을 했던 것입니다.

2006-05-09 2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5-09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필요없는'은 그대로 놔두어도 될 거 같고, 나머지는 모두 수정했습니다. 저보다 꼼꼼하게 읽으시니까 두렵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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