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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구내서점에서 본 두툼함 책 하나는 '학문 주체화의 새로운 모색'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우리 안의 보편성>(한울, 2006)이었다. 한동안 '학문의 주체성' 내지는 '우리 학문'이란 말이 학술계의 화두로 유행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신간은 그간의 성과를 집약하고 있는 책인지, 아니면 주기적인 레퍼토리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걸 직접 따져볼 만한 형편은 아니었는데, 얼마간 궁금증을 풀어주는 리뷰가 있길래 옮겨온다. 문화일보 최영창 기자가 쓴 "탈식민적 인식서 나아가 현실에 대한 보편적 독해"란 제하의 리뷰가 그것이다. 참고로, '우리 안의'란 표현은 <우리 안의 파시즘>(삼인, 2000) 이후 최근에 출간된 <우리 안의 과거>(휴머니스트, 2006)에 이르기까지 출판계에 유행하고 있는 하나의 트랜드이다.

 

 

 

 

문화일보(06. 06. 30) 1990년대 중반 미국 서부 남가주대(USC)에 교환교수로 가 있던 조희연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세계체제론의 권위자인 지오반니 아기리의 강의를 듣다가 “독재정부가 아닌 민주정부 아래에서 투쟁하는 한국을 포함한 제3세계 신흥공업국의 노동운동의 과제와 방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아기리는 “그것은 나에게 물어야 할 것이 아니라 당신이나 한국의 운동가들이 스스로 대답해야 할 문제이다. 한국의 노동운동이 신흥공업국 노동운동의 선봉에 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한국 노동운동의 향방이 세계 노동운동에 중요한 전범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국내 인문사회과학자 12명이 서구 학문으로부터의 종속에서 벗어나 우리 학문의 주체적 정립을 모색한 책에서 조희연 교수는 당시 경험을 예로 들며 일생일대의 ‘지적 수치심’을 느꼈던 때라고 밝혔다. 당혹감에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 그는 강의가 끝난 뒤 벤치에 한 시간쯤 앉아 국내 학계와 지성계가 우리 현실을 어떻게 대면하고 있는지 수치스러운 마음으로 되돌아보았다고 한다.

-우리 근대학문의 서구 종속성 문제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상지대·성공회대·한신대 3개 대학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민주사회정책연구원에서 기획한 책은 우리의 경험과 현실, 역사와 사회에 대한 ‘탈식민적 인식’의 순준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우리 현실에 대한 ‘주체적이고 보편적인 독해’를 통한 실천적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여기서 ‘보편적 독해’란 정신대 문제나 박정희 신드롬, 광주항쟁 같이 우리 사회의 ‘특수성’으로 간주되는 현상들 속에서 세계사적 보편성을 읽어내려는 노력을 말한다.


 

 

 


-한국 학계 전반의 식민성을 점검한 서장에서 조희연 교수는 “지적·학문적 식민주의는 미국적 근대화를 추구했던 주류 우파 학자들뿐 아니라 이에 저항했던 좌파 학자들도 피해갈 수 없었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과잉보편화’된 서구적 보편의 특수화와 함께 그동안 주변적인 것으로 인식되면서 ‘과잉특수화’된 한국적·비서구적 특수의 보편화가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다만 우리 안의 보편성 발견 노력은 ‘우리 안의 파시즘’을 인식하는 과정과 동시에 진행돼야 ‘국가주의’나 파시즘으로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다고 조 교수는 덧붙였다. 화교나 외국인 노동자, 정주외국인에 대한 배타적 태도에서 볼 수 있는 무수한 ‘우리 안의 파시즘’적 잠재력을 성찰하고 극복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우리 자신이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질 때 현재의 ‘한류’가 문화적 패권주의가 아니라 아시아 동반주의의 새로운 문화적 차원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은 서장에 이어 독일과 일본, 중국, 남아프리카 등 해외에서 이뤄진 학문 주체화 사례들을 다룬 논문과 내재적발전론·민족경제론, 분단시대론, 민중 등 광복 후 국내 학계에서 학문 주체화를 시도한 대표적 사례들을 살펴본 글, 이병천 강원대 경제무역학부 교수의 ‘개발자본주의론’ 처럼 한국사회의 주요 측면들에 대해 최근 새롭게 개념화·이론화에 들어간 작업들을 해당 연구자가 직접 소개하는 논문 등으로 구성돼 있다.

-서구의 근대학문과 우리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지만, 사실 우리 학문의 대외 종속성은 근대나 서구와의 관계로만 한정되지 않고 훨씬 더 뿌리가 올라가고 복잡한 문제다. 따라서 필진으로 참여한 12명의 노력이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낯설게 비쳐보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가진 의미는 인정받을 가치가 충분하다(*이를 계기로 '우리 학문의 (불)가능성에 대한 보다 진전된 논의가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06. 07. 03.

P.S. 러시아 사이트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들을 찾아보다가 발견한 한반도 지도 한 장을 옮겨놓는다. 동아시아사에 대한 내용 중 7세기 삼국시대의 한반도 모습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양편으로 황해와 동해가 러시아어로 표기돼 있다. 암튼, 이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 우리 안의 보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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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퇴전문 2006-07-04 04:37   좋아요 0 | URL
당면한 현실과 문제들을 스스로의 머리로 고민하지 않는 한국적인 무언가를 식민과 냉전-분단 체제 탓으로 결론 짓는 것도 차츰 망설여집니다. 지적인 전통과 토양이란 것에 대해 알면 알아갈수록 답답한 심사도 함께 느네요. 가령 거대 제국이 공급해주는 담론들을 끽 소리 않고 받아들여서 오히려 더 교조적으로 울궈먹는 모습도 조선조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전통인가 싶고, 대전제는 결코 건드리지 않는 안전한 개설서를 주로 내놓는 모습도 당시 유생들이나 지금 교수들이나 뭐가 다를까 싶죠. 때론 한국이 뒷방 구석의 작은 냉장고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통 기한이 지난 수입 식품들을 오롯히 저장해두는.

공부가, 평생 남이 퍼질러 놓은 대변이나 분석하다 끝나는 것이 아닌가.. 그게 나 하나 잘 하고 열심히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곧 죽어도 능력 없다곤 인정 안 하죠;), 가끔씩 서늘해지는 거겠죠. 초면 불구하고 몇자 남깁니다.

로쟈 2006-07-04 07:39   좋아요 0 | URL
'뒷방 구석의 작은 냉장고'란 비유가 절묘하네요.^^ 이게 한 개인의 역량과 무관한 듯싶은 문제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떼로 돌파할 수 있는 문제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게 됩니다. 누군가 좀 뚫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오늘자 조간신문들의 문학란은 대부분 중국계 프랑스 작가 샨사의 방한기사로 채워져 있다.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방한소식을 기사를 통해 처음 접하고 나는 두번 놀랐다. 나이가 나보다 많이 어리다는 사실에 한번 놀라고, 그럼에도 외모는 나이가 더 들어보인다는 사실에 한번 더 놀랐다. '놀랐다'고 적었지만 그냥 '의외였다'고 해야 맞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의외인 것은 이 '중국 여성'이 불어를 배운 지 4년만에 쓰기 시작한 소설들로 프랑스 문단을 뒤흔들고 있다는 사실. 이게 사실은 가장 '놀라운' 일이다! 비록 당분간은 그녀의 소설을 읽을 일이 없을 듯하지만, 안면 정도는 터둔다는 의미에서 관련기사 몇 편을 옮겨둔다(일부 중복되는 내용은 조정했다).   

세계일보(06. 07. 03) "천안문 사태가 내 인생 전환점"

-감각적인 문체와 진중한 서사로 국내에도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한 중국계 프랑스 작가 샨사(34·사진)가 지난 1일 ‘현대문학’ 초청으로 방한했다. 1972년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나 천안문사태를 겪은 후 17세에 파리로 건너가 불어를 배운 지 불과 4년 만에 불어 소설을 집필, <천안문> <바둑 두는 여자> <측천무후> 등을 잇달아 펴내면서 프랑스 고교생들이 선정하는 ‘공쿠르 데 리세앙’상 수상을 비롯해 뜨거운 호응을 얻어낸 작가. 입국 당일 기자와 만난 작가는 일본에서 다양한 매체와 인터뷰를 하고 난 직후여서인지 다소 피로한 듯했지만 맑은 눈동자에 빛나는 투지를 담고 있었다.

 

 

 



―불어로 쓴 첫 소설이 <천안문>인데, 천안문사태는 당신에게 어떤 경험이었나?

당시 고교생이었기에 적극적으로 낄 자리는 없었다. 하지만 시위대에게 물을 가져다 주고 여러 가지 물품을 공급하는 정도의 일은 했다. 나는 그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프랑스 정부 장학금을 받아 파리로 건너갔는데, 개를 데리고 산책을 다니는 파리지앵들을 보면서 비극적인 사태로 인한 심리적 내상까지 지니고 있던 나는 난파선에서 살아남은 듯한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도 천안문사태를 매체를 통해 접했겠지만 고통이란 공유되기 힘든 것이었다.”

―왜 중국어가 아닌 불어로 소설을 썼는가.

“프랑스에 가기 전까지 따로 불어를 배운 적은 없다. 하지만 나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도전하는 걸 좋아한다. 틀리건 맞건 간에 ‘쓰겠다’는 용기를 냈던 게 주효했던 것 같다.”

―독자들이 당신 소설에 열광하는 이유는?

좋은 소설이기 때문일 것이다(*다른 인터뷰에서도 드러나지만 그녀의 자신감과 도도함은 하늘을 찌른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소설이란 자기 만족을 위한 에고이스트 소설이 아니라, 보편적인 주제를 통해 감동과 함께 작가의 생각이나 감정을 공유하는 소설이다. 내 소설은 공간이 특별하고 오감을 건드리는 심포닉한 불어를 쓰기 때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를 보는 것 같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당신 소설에서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 배경은?

내 소설은 꿈꾸게 하는 소설과 공포나 잔인함, 생의 막다른 골목을 드러내는 소설로 나뉜다. <측천무후>나 <버드나무의 네 번째 삶>이 전자이고, <바둑 두는 여자> <천안문> <음모자들>이 후자일 것이다. 이 두 부류의 작품들을 번갈아 쓰면서 내 안의 균형을 유지하는 편이다.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흔히 성공한 여자들을 ‘악마’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이런 여자들이야말로 ‘불꽃 위를 나는 새’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미 불꽃을 건너 날아가는 새다.”

-그림도 병행하고 있는 샨사는 소설을 쓸 때는 하루에 15시간씩 매달리며 수도자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단문을 전략적으로 구사하는 그는 단어를 신중하게 선택해 단칼에 문장을 요리하는 스타일을 선호한다. 단어를 사람처럼 대한다는 그는 “단어마다 각기 다른 기질과 관능이 배어 있는데 주방장이 향신료를 적절히 활용해 좋은 요리를 만들어내듯 내가 애정을 가지는 그 단어들로 소설을 완성해낸다”고 말한다.

-프랑스에서 한국인들도 많이 접했다는 샨사는 “한국인은 다이내믹하고 창의적인 민족 같다”며 “한국영화는 셀 수도 없이 많이 봐서 제목조차 기억 못할 정도”라고 한국과의 친연성을 드러냈다. 한국에서는 낭송회(4일 오후 7시 교보문고 잠실점)와 사인회(5일 오후 3시 교보문고 광화문점)를 비롯해 각종 매체와의 바쁜 인터뷰 스케줄로 꽉 차 있다. 1주일 후에는 부모가 사는 베이징으로 날아가 영화 계약을 해야 한다. 이렇게 바쁜 생활 속에서 사랑은 언제 하나.(*소설은 언제 쓰나, 라고 질문했어야 하지 않을까?)

“사랑은 불가능합니다. 사랑은 우리 각자의 가장 훌륭한 부분, 서로 만나기로 되어 있는 두 존재의 완전한 융합입니다. 그러나 삶은 그 존재들이 서로 만나지 못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사랑은 짧은 순간들 속에서만 존재합니다.”(글·사진 조용호 기자)

동아일보(06. 07. 03) "‘베이징의 별’…중국계 프랑스인 작가 샨사 내한"

-소녀는 작가가 되리라는 걸 알았다. 여덟 살 때 시를 쓰기 시작해 10대 시절 이미 세 권의 시집을 냈고 ‘베이징의 별’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베이징대 진학을 앞둔 17세에 소녀는 톈안먼(天安門) 사태를 맞는다. 도저히 공부할 상황이 아님을 알고는 프랑스행을 결심했다. 파리에 도착한 그는 얀니(閻c)라는 원래의 이름 대신 샨사(山颯)라는 이름을 쓰기로 한다. 아들을 낳으면 이름에 ‘사(颯·바람소리를 뜻함)’를 쓰려고 했다는 아버지의 얘기를 일찍이 들었기 때문이다.



-중국계 프랑스인 소설가 샨사(34)가 1일 처음 내한했다. 국내에선 2002년 소설 <바둑 두는 여자>가 처음 소개된 뒤 대표작 <측천무후> 한 종만 8만 부가 팔린 인기작가다. <바둑 두는 여자>는 고등학생들이 가장 읽고 싶은 책으로 뽑혀 공쿠르 데 리세앙 상을 받았으며 <측천무후>는 프랑스 출판사 두 곳이 판권을 놓고 법정 분쟁까지 벌였다.

-놀라운 것은 그가 파리에 도착했을 때 프랑스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몰랐다는 사실. 그랬던 그가 파리 생활 7년 만인 1997년 프랑스어로 쓴 첫 소설 <천안문의 여자>를 냈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창작을 감행한 이유를 묻자 샨사는 “나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해냈을 때 희열을 느낀다”고 답했다.

-샨사 소설의 문체는 아름답지만 단문으로 쓰여 속도감 있게 읽힌다. 그는 “(소설을 쓸 때) 사전 속 단어를 찾아보면서 ‘언어의 관능’을 느낀다”고 했다. 단어를 정교하게 직조하되 “단칼에 치듯” 문장을 쓴다고도 했다. 소설의 주인공은 여성이지만 전쟁, 음모 같은 남성적인 주제를 다룬다. 샨사는 “권력, 두뇌의 힘, 사상의 대립과 충돌을 지켜보기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프랑스로 귀화한 그는 “서양인, 동양인 중 어디에 속한다고 생각하나”라는 물음에 “나는 중국이 벼려내고 서양의 불 속에 담금질된 칼”이라고 답했다.



-순식간에 스타덤에 오른 만큼 질시도 따랐다. 공쿠르상 등 각종 문학상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심사위원들에게 ‘샨사는 중국 스파이’라는 투서가 잇따랐을 정도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얘길 들려줬지만 이내 “거기서 소설 <음모자들>의 모티브를 얻었다”며 웃었다(<음모자들>은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중국 스파이와 미국 CIA 요원의 사랑을 다룬 소설이다).

-그는 아침마다 태극권으로 몸을 단련하고 서예를 하며 정신을 가다듬는다. 창작에 매진할 때면 하루 15시간씩 소설을 쓰거나 그림을 그린다(그는 개인전을 수차례 연 화가이기도 하다). 일하느라 바빠 연애할 시간이 없다면서도 샨사는 “사랑은 운명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소설은 읽어본 적이 없지만 <형사> <태극기 휘날리며> 등 한국 영화를 많이 봤으며 임권택 감독을 좋아한다고 했다. 수년 전 임 감독 등 한국 영화 제작진과 우연히 만나 저녁식사를 함께한 적이 있는데 ‘보드카 폭탄주’를 만드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며 웃었다.(김지영 기자)

한국일보(06. 07. 03) 中 태생 佛작가 샨사 방한 "동서고금 아우른 세계문학 추구"

-"단어는 하나하나가 영혼을 가진 존재입니다. 저는 그 영혼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그 존경과 사랑이 단어와 저를 매개합니다." 중국 태생의 프랑스 작가 샨사(34)는 앙가슴이 드러나는 드레스 차림이었다. 그리 크지않은 키에 둥근 몽골리언 골격, 서글서글한 눈매와 푸근한 웃음은 그의 문장이 지닌 섬세한 힘과 언뜻 조화되지 않는 듯했지만, 소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대목에 이르자 측천무후의 위의(威儀)처럼 도도하고 당당했다.

-베이징에서 나서 문학 신동이라 불리며 8살 때부터 시를 썼고, 18살에 프랑스 정부 장학금으로 파리 유학, 7년 만에 불어로 장편소설 <천안문의 여자>(원제 <천안문>)를 써낸 작가. 이후 <바둑 두는 여자> <측천무후'>등 그의 작품은 발표될 때마다 프랑스 문단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고, 미국과 일본에도 번역 출간됐다. 이번 한국 방문은 책 출간 홍보와 <측천무후> 등의 영화 제작 협의차 중국과 일본을 들르는 김에 이뤄진 것이라고 했다.

-"저는 완벽주의자예요. 문장이 마음에 안 들면 10번이고 20번이고 고쳐 씁니다." 그 노력이 2차 언어로 직조한 그의 문학을 토종 프랑스문학에 꿀리지 않게 한(때로는 압도하게 한) 힘일 것이다. "스포츠에 비유하자면, 유러피언의 산문은 복싱입니다. 그만큼 몸과 발과 팔동작이 복잡하다는 의미지요. 반면 저의 글은 검도예요. 머뭇거림 없이 단칼에 내려치는 것이지요." 그는 자신의 문학이 지닌 장점을 "독창적인 문장과 강렬한(강력한) 인물 설정, 그리고 현실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현실을 벗어나게 하는 묘사의 힘"이라고 말했다.

-부모는 중국에 있고 매년 한두 차례 고향을 방문한다. 6년 전 중국 국적을 포기하고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지만 그의 소설은 다분히 중국적이다. 작품 소재로서의 역사가 그러하고, 문화적 맥락이 그러하다. 하지만 그는 "나의 문학은 세계 문학"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9월쯤 출간될 신작 <알렉산더와 알레스트리아>는 중국 역사와 무관한 작품이죠. 전 보편적인 문학을 추구합니다." 그는 근작의 내용을 잠깐 소개했다.

-"스키타이 일족 가운데 여전사 부족이 있었고, 그 부족 여왕과 알렉산더가 만났다는 기록이 그리스 문헌에 등장합니다. 물론 사료적 근거는 없는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은 그 둘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알렉산더를 선택했냐는 질문에, 사뭇 진지하게 "알렉산더가 나를 택한 것"이라고 말할 만큼 당당한 이 작가는 독자사인회와 인터뷰 등 일정을 마친 뒤 7일 출국한다.(최윤필기자)

06. 07.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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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07-03 19:28   좋아요 0 | URL
샨샤의 작품은 몇 개 읽어보았는데, 좀 실망했었습니다. 천안문을 소재적 차원에서만 다룬다는 느낌도 있었고, 오리엔탈리즘을 무기로 혹은 화장으로 공허함을 감추는 것도 같았고요.
하지만, '고통이란 공유되기 힘든 것이었다'라는 말은 가슴에 울리네요...
우리의 박완서나 임철우의 글들이 생각납니다. 망각에 저항하며 상처를 쥐어뜯는 사람들.
퍼갑니다 ;)

로쟈 2006-07-03 20:04   좋아요 0 | URL
<천안문>이 데뷔작이라면 가장 약한 소설일 수도 있을 거 같네요. 프랑스 출판사들이 난리였다는 걸 보면, 그래도 뭔가 '대중적인' 무기를 갖고 있지 않나 싶고. 저는 그녀의 '도도함'이 눈에 띄길래 옮겨왔습니다...

stella.K 2006-07-04 13:05   좋아요 0 | URL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나온 사진하고 지금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살도 많이 찌고. 전 천안문 읽어 봤는데 나름대로 괜찮던데, 그후 읽을 기회를 못 갖고 있기는 한데 그래도 꽤 기대가 되요. 15시간이라...전 좀 더 노력해야겠군요. ㅋㅋ. 가져갑니다.^^

로쟈 2006-07-04 13:06   좋아요 0 | URL
조만간 '광화문'이 나오는 건가요?^^

비자림 2006-07-04 13:19   좋아요 0 | URL
기인님 서재에서 얘기하다 왔어요. 님이 올리신 글이었군요.
앗, 님도 소설을 읽으시나요???? 저는 어려운 책만 읽으시는 줄 알았다는.. 호호

로쟈 2006-07-04 13:36   좋아요 0 | URL
그래도 제 전공이 '문학'인데요(^^;). 샨사의 소설들은 아직 읽은 바 없지만...
 

교수신문에서 '학문비평' 기사 중 '엘리아데의 신화연구, 어떻게 볼 것인가'를 옮겨온다(필자는 최장순 기자이다). 종교학 강의를 들을 때 '멀치아 엘리아데(1907-1986)'란 이름으로 처음 각인된 이 걸출한 종교학자는 각인 효과 때문인지 여전히 나에겐 친숙하고 중요한 학자로 남아있다. 그가 유럽의 변방인 루마니아 출신의 지성인/작가라는 점도 친근감을 갖게 한다. 어쨌든 종교학에서 이 '시카고 마피아'의 거두에 대한 이런저런 시각들을 아래 인용기사에서 참조해볼 수 있다.

교수신문(06. 07. 02) 엘리아데, 어떻게 볼 것인가

-미르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 1907~1986)는 이미 하나의 ‘현상(現象)’이다. 엘리아데는 이미 종교학 연구자라면 한번쯤 읽고 넘어가야할 고전이 돼버렸으며, 조셉 캠벨, 칼 융과 함께 종교학의 3대 스타로 군림하면서, 대중들에게 하나의 문화적 트렌드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엘리아데를 찾는 이유는 뭘까.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일단 대중들의 신화에 대한 관심이 기반이 된 것”이라며 “엘리아데는 종교현상에 대한 보편이론을 구축함에 있어 풍부한 경험적 사례를 제시해 재미를 더한다”고 분석했다. 이론이 이론으로만 그치지 않고 생생한 사례를 통해 증명되고 있어 독자들이 찾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인기가 일방적 찬사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 해 박규태 한양대 교수(일본언어·문화)는 <세계종교사상사 3>를 번역하고 나서, “반역사주의, 환원주의, 독단적이고 주관적인 신학, 은폐된 오리엔탈리즘, 비학문적 픽션, 애매모호한 직관주의, 실증성과 정밀성을 결여한 제너럴리스트, 또 하나의 종교로서의 엘리아데 종교학 등, 엘리아데 비판에 흔히 따라다니는 수식어”를 소개한 바 있다. 비판의 차원은 너무나 다양해서 어느 것부터 검토해야할지 난감한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러한 비판적 수식어들이 하나의 논점, 즉 “엘리아데 종교학과 해석학은 非역사적”이라는 비판을 중심으로 정렬된다는 것(*그건 '현상학' 자체의 문제점 아닐까? 종교현상학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을 듯하다).

 

 

 

 

-엘리아데는 항상 태고적 ‘그 때(illum tempus)’를 염두에 두고 있으며, 여기서 인간이 본받고 따라야 할 하나의 ‘原型(archetype)’을 발굴함으로써 원형으로부터 일탈해 삶의 의미를 상실한 근대인과 그 문명을 비판했다. 엘리아데의 눈에는, 근대인의 이러한 ‘일탈’은 곧 죄악으로의 붕괴(Verfall)였던 것. 이러한 ‘몰락’이 못마땅했던 그는 근대인을 종교의례와 신화를 통한 세계의 聖化에 동참시켜 ‘새로운 휴머니즘’을 구현하고자 했다. 문제는 여기서 비롯된다.

-이창익 한국종교문화연구소(이하 한종연) 연구원은 “‘모든 사물을 聖化시키려는 경향성’이 ‘성현의 변증법’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고 “사물을 성화시킨다는 것은 사물을 ‘원형’으로 환원하여 결국 사물로부터 ‘역사’를 제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한다(‘엘리아데와 차이의 해석학’). 엘리아데 비판이 시작되는 지점은 바로 그가 ‘역사’를 넘어서려는 바로 그 순간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엘리아데 종교학의 비역사성을 정치적으로 해석한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한국학)의 비판이 눈길을 끈다(‘엘리아데가 선택한 ‘부드러운 파시즘’’). 박 교수는 엘리아데의 극단적 관념주의가 “계급 개념 자체를 부정”했다고 지적한다. 이어 그는 “공산주의뿐 아니라 모든 진보적 사상들이, 교회를 중심으로 한몸처럼 움직이는 ‘유기적 사회’인 엘리아데의 이상을 위협하는 존재”였으며, 결국 엘리아데는 이러한 위협을 퇴치하기 위해 “독재자 살라자르(Salazar) 치하의 당대 포르투갈이나, 무솔리니 치하의 이탈리아 같은 종교적 색채가 강한 ‘부드러운 파시즘’을 택했다”는 것.

-하지만, 지난 24일 열린 ‘한일 종교학 공동세미나’에서 츠루오카 요시오(鶴罔賀雄) 도쿄대 교수(종교학)는 “엘리아데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러한 지적은 ‘정치지상주의’적 단정에 불과”하며 “종교를 정치적 수준으로 ‘환원’해버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엘리아데 종교학의 성격을 보다 종교학적으로, 냉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창익 연구원은 “엘리아데는 당시 지나치게 실증주의적, 역사주의적 시각에 대한 반발로서, 자기 나름의 현상학적·해석학적 대안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며 “엘리아데의 학문적 가면 너머에 도사린 정치적 미소는 과연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한편, 엘리아데에 대한 신화학적 비판도 제기됐다. 정재서 이화여대 교수(중문학)는 “엘리아데는 끊임없이 동일한 패턴으로 신화를 분석해 신화 자체가 갖는 이데올로기적 측면을 소홀히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 정 교수는 “에누마 엘리쉬 신화에서는 당시 사회 권력관계의 변천 및 신구세력의 갈등을 읽어낼 수도 있는데, 엘리아데는 초월의 측면만을 보여주고 있어 현대문명의 고질적 병폐를 신화로써 치유할 수 있다는 ‘신화 만능주의’를 야기시킨다”고 비판했다.

-또한 김현자 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연구원(중국신화)은 “뒤메질이나 레비스트로스의 경우 신화가 담겨있는 문화적 컨텍스트를 철저히 파악한 후, 역사와 문화 전체 속에서 신화를 해석하는 반면, 엘리아데는 그렇지 않다”며 엘리아데의 신화분석이 지니는 지나친 일반화를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곰’과 다른 나라의 ‘곰’이 지니는 문화적 가치는 상이한데, 엘리아데의 형태론에서는 동일하게 의미화된다는 지적이다. 또한, “엘리아데의 경우 이미 연구된 신화들을 통해 일반적 보편성을 추출하기 때문에 문헌학적 엄밀성이 결여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 대한 반비판도 적지 않다. 엘리아데 종교학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 대해 김윤성 한신대 교수(종교문화학)는 “엘리아데의 주요개념이나 방법들에 대한 오독으로부터 일방적인 비판이 이뤄지기도 했다”고 전했으며, 박규태 교수는 “비역사성과 관련한 여러 비판들의 일면성은 보다 심화된 엘리아데 연구를 통해 드러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아직 학계에서도 엘리아데 연구가 부족하다는 것일까.

 

 

 

 

-엘리아데와 찰스 롱에게서 사사한 아라키 미치오(荒木美智雄)는 1980년대 엘리아데 연구의 단편적 경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을 가한다(‘새로운 휴머니즘을 요청하며’): “일본에서는 엘리아데의 학설의 여러 단편, 예를 들면 '성과 속' '샤머니즘' ‘원형(archetype)’ 등의 개념이 그의 종교학 전체의 문맥으로부터 단절되어 논의되는 경우가 많았고, 그 결과 (중략) 엘리아데 학문의 근본문제가 전체적으로 고찰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스무 해를 넘긴 아라키 미치오의 이러한 지적은 현재 우리나라 종교학계에도 유효하다.

-신광철 한신대 교수(종교학)에 따르면, 엘리아데의 저서 중 24권이 번역됐다. 엘리아데의 저서는 모두 38권. 저서의 63%가 번역된 상황이다. 하지만, 번역의 엄밀성에 대한 비평이 거의 부재한 상태인데다가, 엘리아데와 관련해서는 연구논문(33편), 석사논문(13편), 단행본(2권) 등 그 실적이 부진하다. 게다가 학문의 실증성과 과학성이 강조됨에 따라, 엘리아데는 학계에서 한걸음 물러나 있다.

-조철수 서강대 강사(종교학)는 “엘리아데의 이야기는 아무리 읽어봐도 맞는 일반적인 이야기”라며 “이를 후대 연구자들이 더 이상 재생산해서는 안된다”고 전한다. ‘엘리아데’는 교양서 정도로 읽어야 한다는 것. 게다가 조철수 강사는 “엘리아데 종교학의 한국적 적용이 얼마나 타당한지 모르겠다”며 “그건 시작부터 틀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시작부터 틀린 것’에 왜 연구자들이 매달리고 있는 것일까. 엘리아데는 ‘종교형태론’의 서문에서 “코끼리를 현미경을 통해서만 연구하는 자연과학자가 과연 그 동물을 충분히 알았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푸앵카레의 말을 인용하면서 “종교현상은 그 자체의 고유한 차원에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엘리아데를 비판하기에 앞서, 그를 “그 자체의 고유한 차원에서 파악”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06. 07.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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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의 감동을 기리며'는 작가 성석제(1960- )의 <소풍>(창비사, 2006)에 '책머리에'라고 붙어 있는 서문이다(그러니까 이 또한 곁다리텍스트이다). 요일로 치자면 '소풍'에 해당하는 일요일 아침에 우연히 들춰보게 됐는데, 그것만으로도 거의 '브랜드화' 된 성석제를 읽을 수 있었다. 아니 이 경우엔 '맛볼 수 있었다'라고 적어야겠다. 한국 작가들의 책을 읽는 데 다소 소홀한 내가 그의 산문집으로 마지막에 읽었던 건 아마도 <쏘가리>(가서원, 1998)이었던 듯한데, 뒤져보면 쏘가리 매운탕에 관한 글도 산문집 어딘가에서 얼큰한 맛을 내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대체로 음식에 관한 이 책은 '구수한 사람' 성석제의 '맛깔진 세상이야기'에서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 거기에 덧붙은 서문은 아마도 '입가심' 같은 글이겠다. 그걸 맨처음 읽을 독자들에게는 '입맛다심'일테고. 그걸 약간만 따라가보겠다. 그러고픈 생각이 든 것은 이 서문이 작가의 문학관을 응축해 놓고 있어서이다.

"이 책에 든 글들은 대체로 음식에 관한 것이지만 음식만 이야기하려 한 것은 아니다. 음식을 통해서 새삼 깨닫게 되는 사람과 세상에 관해 썼다. 소풍 가서 나무 그늘에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고(食) 샘물을 마시는(飮)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낌(感)이 움직이는(動) 것을 공유하고 싶었다(*그러니까 이 글의 취지는 '식음감동'의 공유이겠다). 숙제를 해치우듯 먹어본 음식은 맛을 느낄 수 없었고 그렇게 해서는 음식이야기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음식을 먹는 것이 소풍이라면 음식이야기 역시 소풍이며, 무릇 이야기란 또한 우리 삶의 소풍과 같은 것이다."(6쪽, 강조는 나의 것) 

그러니까 음식은 책에서 (수사법으로 치자면) 일종의 제유로 쓰였다. 사람과 세상에 관한 이야기 '전체'를 대신하는 한 '부분'이란 뜻이다. 더불어 그가 제안하는 건 '음식을 먹는 것'과 '음식이야기를 하는 것' 모두 소풍이라는 은유이다. 그걸 더 확장시켜서 그는 '무릇 이야기란 우리 삶의 소풍과 같다'라는 직유까지 동원한다. "거기에 소풍 가서 나무 그늘에 둘러앉아..."라는 문장은 환유적 연상에 기초하고 있다.

요컨대, 이 한 문단에 시의 주요 수사법이라 할 은유, 환유, 직유, 제유가 총동원되고 있는 것. 그들이 마치 동원예비군에 소집된 예비군 아저씨들처럼 모여서 작당하고 늘어놓는 음식이야기가 바로 <소풍>이라 해도 억지는 아니겠다. 그리고, 그들이 주거니받거니 하는 잡담 속에서 도달하게 되는 결론은 '우리 삶은 소풍이다'라는 것(동원훈련을 소풍 가는 기분으로 가지 말라는 법은 없다).

자, 그럼 소풍이란 무엇인가? "먹고살기에 급급한 때가 있었다. 살기 위해 먹는 처지에 좋은 것과 나쁜 것, 마음에 들고 들지 않고를 가릴 형편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우리는 단지 배를 채우기 위해서 음식을 먹지는 않는다. 좋아하는 음식을 찾아서 맛을 본다는 건 바로 소풍 같은 것이다."(5-6쪽)

즉, 소풍이란 먹기에 좋은 것과 나쁜 것, 마음에 들고 들지 않고를 가릴 만한 형편이나 처지를 전제로 한다. 그것은 필요, 곧 먹고사는 문제로부터 적어도 일시적으로나마 해방됨을 의미하는 것. 거창하게 말하자면, '역사의 종말' 이후가 되겠다. 작가의 제안대로, '소풍'을 '문학'으로 환치하면 어떻게 되는가? "요즘 우리는 단지 배를 채우기 위해서 소설을 쓰는 게 아니다. 좋아하는 소재를 찾아서 즐감할 만한 물건을 만들어놓는 것이 문학이다." 

미식가란 일종의 쾌락주의자이며, 좋아하는 음식을 찾아서 기꺼이 얼마간의 수고를 감내하는 작가의 모습은 '구수한 쾌락주의자'의 그것이다. 이때 구수한 것은 그의 입담이지만, 그 입담은 필요를 벗어난/넘어선 곳에서 장기를 발휘하는지라 시류와 역사에 얽매이지 않는다. 종횡이다. 나는 거기에 성석제 문학의 공공연한 비밀이 있다고 생각한다.

시류와 역사야 말로 근대소설의 '본류'라는 의미에서 성석제의 '이야기'들은 소설과 무관하거나 소설의 무늬만을 갖고 있을 따름이다. 작가 김훈이 무늬만 소설인 에세이들을 쓰듯이 시인으로서 먼저 등단했던 성석제는 무늬만 소설인 시를 여전히 쓰고 있는 것 아닐까? 이쯤에서 보다 '본격적인' 그의 문학론을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 한국일보의 인물탐구란에 연재됐던 글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이다. 옮겨놓고 나니까 예전에 읽었던 기억이 나는 글인데, 특이하게도 작가는 호랑이 발자국과 대면했던 체험담을 자기 문학의 '기원'에 놓고 있다(인용문의 강조는 모두 나의 것이다).

 

 

 

 

-내가 본 ‘호랑이 발자국’ 믿게 하려고 쓴다. 어느날 나는 호랑이 발자국을 보았다. 엉덩이를 돌려대고 발자국을 찍는 호랑이를 직접 본 건 아니지만 그 발자국은 호랑이가 남긴 것이었다. 스무 살의 싱싱한 직감과 생생한 정황에 의한 명백한 결론이었다. 그래서 그 뒤부터 나는 사람들에게 호랑이, 또는 호랑이 발자국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 것이었다.

-어느 때는 나마저도 남한에서 호랑이가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는 둥 호랑이가 왜 발자국 하나만 남기고 주변에는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았겠느냐는 둥 호랑이의 세력권이 천리인데 왜 천리 사방에 그런 이야기가 없느냐는 둥 해가며 그때의 그 발자국을 부정하는 대열에 합류하려고 했다. 이처럼 나는 내가 보고 겪은 것, 만난 사람과 그때의 느낌을 남은 물론이고 스스로 믿을 만한 것으로 여기게 하기 위해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더 범위를 넓혀 말하자면 누구나 인생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호랑이, 혹은 호랑이의 발자국 같은 ‘그 무엇’ 때문에 문학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성석제의 문학이 알레고리적 성격을 많이 띠게 되는 것은 이러한 '일반화'의 결과이지 않을까 싶다). 나의 호랑이 발자국은 내 고향인 경상북도 상주군 공성면 하고도 어느 산자락에 나 있었다. 1980년에서 81년 사이의 겨울이었는데 대략 81년 1월초였다. 12월 중순에 그 곳으로 들어간 건 알지만 산중에는 달력이 없어 날짜를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겨울에는 스님들이 큰 절로 가는 바람에 비는 자그마한 암자가 있었고 그에 딸린 요사채가 내 거처였다.

-요사채에는 창문이 하나도 없어 출입문을 닫으면 방안은 그대로 캄캄절벽이 되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불을 밝히려면 초를 켜야 했다. 그래서 문을 닫아놓고 있으면 밤인지 낮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문을 열면 어느 때는 눈에 반사된 겨울 햇빛이 눈에 시려서, 어느 때는 정말 눈이 시리도록 맑은 겨울밤의 별빛에 신음 소리를 내곤 했다. 그때는 사물과 사물의 경계선이 조리개를 한껏 조이고 찍은 사진처럼 선예도(線銳度)가 높았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물을 뜨러 양동이를 들고 요사채에서 백 걸음쯤 떨어진 계곡으로 향했다. 이틀에 한 번 정도는 가는 길이라 아무 생각 없이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길 가운데 무슨 발자국이 하나, 그 길이 자신의 소유임을 주장하는 낙인처럼, 아니 낙관이라 해도 좋고 문장(紋章)이라 해도 상관없다, 찍혀 있는 것이었다. 그 발자국을 보는 순간 나는 머리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것을 느꼈는데 그건 내 머리털이 곤두서는 소리였다.



-거대하고 압도적인 자연에 직면한 연약한 한 인간이 느낄 그런 공포, 양동이 하나로 온몸이 무기인 희대의 살인마를 상대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한 개인이 느낄 법한 전율이 그럴까(*그러니까 이 작가에게 트라우마적 역할을 하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거대하고 압도적인 자연'이다. 아마도 '운명'은 그것의 다른 이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석제 스타일의 최대치는 <노인과 바다> 류가 아닐까?).

-나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내 발을 그 위대한 발자국 위에 얹어 보았다. 길 위에 단 하나밖에 찍혀 있지 않은 그 발자국은 눈이 녹았다 얼었다 하면서 원래의 크기보다 훨씬 커졌을 것임을 감안하더라도, 컸다. 농구화를 신은 내 발이 쑥 들어갈 정도였으니까. 그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전속력으로 달리고 달려 방으로 뛰어들었다. 두께가 십 센티미터쯤 되는 굵은 나무로 테를 두른 육중한 방문, 도대체 절간의 요사채에 왜 그런 성문 같은 방문이 필요한지 알 수 없게 만들었던 그 방문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그로부터 이틀 동안 눈이 내렸다. 겁이 나서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물이 필요하면 방문을 살짝 열고 팔을 내밀어 코펠로 눈을 긁어 담아 녹여서 썼다. 다행히 요사채 부엌으로 나가는 문이 따로 있어서 황송하게도 부엌을 화장실 대용으로 쓸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식으로 살다가 행복하게 늙어죽을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사흘이 한계였다.

-나흘째 되는 날, 나는 가지고 온 옷을 몽땅 꺼내 입고 요사채 벽에 걸려 있던 암자 소유의 털옷까지 겹쳐 입었다. 싸구려 화학섬유로 만든 그 털옷은 백결선생(百結先生)이 두고 갔는지 온통 기운 자국이었고 한 번도 빤 적이 없는 듯 소 덕석 같은 냄새가 났다. 털옷까지 껴입은 건 날이 추워서가 아니었다. 호랑이가 혹시 나를 잡아먹으려고 들 때 고생 좀 하라고, 호두처럼 알맹이를 꺼내 먹기가 쉽지 않도록 하려고 껴입은 것이었다. 부엌에는 불을 땔 때 장작을 다듬기 위해 들여놓은 손도끼가 있었다. 또 전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해우소를 치울 때나 쓸 법한 장화를 마루 밑에서 찾아 신고 한 손에 손도끼를, 한 손에는 기특하게도 양동이를 들고 나는 호랑이 아가리 또는 발자취 속으로 몸을 던졌다. 의미를 모르는 이상한 고함을 내지르며.

-공포의 그 발자국은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워낙 단단히 얼어붙어 내린 눈이 쌓이지를 못하고 바람에 쓸려간 듯 했다. 나는 여전히 입속말로 ‘이이이이’ 하는 소리를 내며 그 발자국 속에 장화 신은 발을 들이밀었다. 이번에는 크기가 비슷했다. 무섭지 않았다. 사흘동안 그 발자국을 화두로 면벽수도를 한 뒤라 그런지 실물을 보니 반갑기까지 했다. 겨울산 오후의 잔양 속 어디고 호랑이, 혹은 호랑이 같은 존재의 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계곡으로 가서 물을 떴다. 방으로 돌아와 사흘 만에 밥을 지어 먹었다.

-배가 부르고 정신이 돌아오자 내가 본 것을 말해주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성석제 이야기의 기원이다!). 산중의 유일한 이웃인 고개너머 채석장에 갔더니 사람들은 일 나가고 없었고 밥 해주는 아주머니는 자고 있었다. 내친 김에 마을까지 내려갔다. 마을회관의 새마을 구판장에서 막걸리를 마시다 저녁이 되었고 동네 청년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청년들이 건네주는 고구마를 낫으로 깎아먹다가 손가락을 깊이 베었다. 피를 막고 붕대를 감고 소독을 하는 의미에서 한 잔 더 마시고 취해서 구석에 오그리고 자느라 바빴다. 그래서 소설적인 가감 없이 순수한 호랑이, 또는 호랑이 발자국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그 이후 나는 관념이나 정신의 모험은 일생 분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생각하면 진짜 도사는 못되었다. 자꾸 그 이야기를 떠들면서 허풍선이가 되는 데는 성공했다.’ 인용부호 속의 글은 ‘나는 왜 자꾸 집을 나가는가’라는 요지의 글의 일부분인데 글을 쓴 시기는 십여 년 전이다. 그때는 소설을 쓰지 않고 품고만 있었을 때다. 품고 있는지 몰랐을 때이기도 한데 그 겨울 그 호랑이 발자국을 본 때로부터 십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때 나는 시를 쓰고 있었다. 오로지 시만 생각하고 살았다고 할 수는 없어도 시가 제일의 의의였음은 확실하다. 그런데 일생 분의 모험, 진짜, 도사, 허풍선이 같은 단어들은 시적이지 않다. 이런 불순하고 수상쩍은 것들은 한 이틀 조용히 내린 눈처럼 순수한 세상에 조금만 섞여도 그 세상 자체를 불순하게 만든다. 돌아보니 그 때 이미 시에서도 삶에서도 불순은 각오하고 있었다. 지금보다 혈기가 방장해서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시는 불온하다고 어느 시인은 말했다. 나는 소설은 불순하다고 말하고 싶다(*나는 그가 '불순한 시'를 쓰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가 쓰는 소설은 불순하다고, 원래는 순수했는지 모르지만 웬 놈의 호랑이 발자국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가 물 뜨러 가는 길 위에 찍힌 이후, 모든 길이며 겨울 오후며 시며 소설이며 양동이며 부엌이며 요사채, 손도끼마저 불순해졌다고.

-90년대 중반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이제 제 길을 찾았다는 말을 참 많이도 들었다. 말을 듣는 김에 더욱 잡스러워지려고, 이른바 크로스오버로 놀아보려고 노력했다. 잡(雜)은 잡대로 재미와 의의가 있다. 불순이 내면적인 것이라면 잡은 외부의 조건이다. 또는 외부와의 관계에서 비롯하는 성향이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명제가 있다. 나는 잡스러운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잡의 세계에는 ‘세계 콤플렉스’ 따위는 아예 없기 때문이다.

-하늘의 섭리인지 잡종은 오래가지 못한다고 한다(*<소풍>에서 "무릇 이야기란 또한 우리 삶의 소풍과 같은 것이다"라고 말해놓으면, 그는 갈 데까지 간 것 아닐까?). 가령 내가 아는 최고의 멧돼지 전문 사냥개는 투견과 수렵용 개의 혼혈인데 자신의 형질을 물려받은 새끼를 낳지 못하고 있다. 지금 명견으로 이름을 떨치고는 있지만 그 명성도 당대에서 그치고 말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또 어떤가, 당대를 넘어설 그 무엇이 불순한 운명에 있을까. 내가 멧돼지 사냥개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더 사납고 더 예민하고 더 흉악스럽기를 바라겠다, 멧돼지에게만은.

-왜 소설을 쓰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한동안은 호랑이 덕분이라고 답할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내가 호랑이 등에 올라타 있는 건지, 호랑이 발자국에 가만히 발을 넣어보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작가는 호랑이 발자국을 본 자신의 체험을 "누구나 인생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호랑이, 혹은 호랑이의 발자국 같은 ‘그 무엇’ 때문에 문학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라고 일반화하지만, 그것이 그만의 지극히 개인적인, 그리고 특별한 체험이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더불어 그 체험은 성격상 소설적이라기보다는 시적이다('호랑이를 찾아서'라는 다큐를 구성한다면 보다 소설에 근접하겠지만). 비록 <호랑이를 봤다>(작가정신, 1999/2002)를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가 이야기라는 틀거리를 빌어서 불순하게, 혹은 잡스럽게 늘어놓는 것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이야기시에 가까울 듯하다. 

대범하게 말해서, 성석제의 이야기는 역사 이후, 탈역사 시대에 속하며(그가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건 시기적으로 사회주의 몰락 이후이다), 개인사적인 비유를 들자면 '현역소설'이 아닌 '예비군소설'의 범주에 든다(그런 점에서 그는 제대 후에도 '현역'임을 자임하는 이창동 류와는 얼마나 다른 것인가!). 그의 거리두기, 그의 풍자, 그의 냉소, 그의 입담, 그의 연민 등 모두가 역사의 부록 시대를 살아가는, 병역의 여생을 살아가는 예비군소설에 잘 부합하는 것 아닌가? 

먹고살기에 급급하지 않은 '예비군 소설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뭘 맛본다는 것, 맛을 기억하며 소요(逍遙)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이고 방심한 상태에 스스로를 처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개도 밥 먹을 때는 건드리지 말라는 말이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소요와 소풍이 그의 나날일 듯하다. 지난 10여년간 그는 한국문학 골목에 소문난 '맛집' 하나를 냈으며(이젠 그에게 '낯선 길'을 물을 게 아니라 낯선 음식점을 물어야 한다), 그로써 그 나름으로 자비행을 실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음식을 만들고 나누어 먹는 것이 바로 자비이며 삶의 일부를 교환하고 서로 느낌을 공유하는 행위"(6쪽)이니까. 

하지만, 세상엔 여전히/아직도 배가 고픈 이들이 있는 법이며, 그들에겐 맛집보다 하루의 끼니가 더 소중할 법하다. 그리고 삶이 두루 막막할 법하다. <초록물고기>(1997)에서 이제 막 제대하고 돌아온 막동이처럼 말이다. 서로에 대해 품고 있던 원망을 터뜨리는 바람에 엉망이 되어버린 이 막동이 가족의 '소풍' 풍경은 또 얼마나 잔인한 장면이었던가. 그러니까 예비역이라고 해서 다 같은 예비역은 아닌 것이다. 정리하자면, '초록물고기'와 '호랑이 발자국' 사이는 소설과 시(이야기) 사이이며, 역사와 탈역사 사이이고 삶과 여생 사이이다. 더불어 '니가 인생에 대해서 알아?'(문성근의 대사)와 '삶에 감사한다'(<소풍>, 7쪽) 사이이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어디 계십니까, 선배님?"  

06. 07. 02.

P.S. <소풍>을 소개하는 기사 두 개를 덤으로 옮겨놓는다.

한국일보(06. 05. 15) 소설가 성석제씨가 겉절이에 밥 비벼먹는 방법이다. “숟갈을 두 개씩 양손에 나눠들고 ‘썩썩’ 비빈다. 이 ‘썩썩’이 중요한 점이다. 황소가 풀을 먹을 때처럼, 싸리 빗자루로 마당을 쓸 때처럼 힘있고 숙달된 자세, 힘의 낭비가 없되 힘있게, 숨이 죽는 동안 삼투압 작용으로 겉절이에서 나온 물이 비비는 일을 쉽게 한다.(…) 향긋한 맛. 이건 참기름의 공로다. 산뜻한 질감. 이건 배추의 공덕이다. 혀를 바쁘게 하는 양감. 이건 밥의 은혜다.(…) 대부분은 과식을 한다.”

-그의 신작 산문집 <소풍>(창비 발행)의 한 대목이다. 그가 먹은 음식의 맛, 함께 한 사람들의 맛, 어울렸던 세월의 맛을 한 데 ‘썩썩 비빈’ 책이다. “소풍을 가듯 시간의 한 부분을 툭 끊어서 길을 떠났다. 뭘 맛본다는 것, 맛을 기억하며 소요(逍遙)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이고 방심한 상태에 스스로를 처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개도 밥 먹을 때는 건드리지 말라는 말이 있는지도 모른다.”(‘책 머리에’에서)

-위에서 인용한 군침 돋구는 겉절이 찬가 끝에 그는 1980년 휴교령으로 고향으로 내려가 친구들과 모내기를 돕다 논두렁에서 먹었던 겉절이 비빔밥 - 그야말로 ‘입속에 가득차는 환희 - 의 기억을 슬쩍 버무려 둔다. 그런 식이다. 그는 “음식을 만들고 나누고 먹고 이야기하는 것, 이 모두가 ‘음식’이라는 말로 뭉뚱그려진다고 할 때 음식은 추억의 예술이며(…) 감각 총체 예술이다. 음식에 관한 기억과 그에 관한 이야기는 필연코 한 개인의 본질적인 조건에까지 뿌리가 닿아 있다”고 적었다. 그리고, 음식의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숙제를 해치우듯’ 먹어서는 안 되며 ‘소요하듯’ 즐겨야 한다고, 그래서 ‘소풍’이라고 했다. “음식을 먹는 것이 소풍이라면 음식 이야기 역시 소풍이며, 무릇 이야기란 또한 우리 삶의 소풍과 같은 것이다.”

-너비아니 김밥 닭개장 부대찌개 등 끼니 음식(1부), 냉면 라면 등 국수류(2부), 김치 석화젓 등 곁다리 음식(3부), 국화차 소주 등 마실 거리(4부), 해서 그가 들려주는 음식 이야기는 50여 편이다. 미국 보스턴 월든 호숫가 소풍 길에 먹었던, 있는 대로 김과 밥과 김치로만 싼 소박한 ‘정신의 왕족 헨리 데이비드 소로 영감 김밥’의 맛, 이동갈비 2인분을 거의 혼자 다 먹어치우는 친구 이야기, 중국 베이징의 한 백화점 찻집에서 맛 본 국화차의 맛을 떠올리며 그는 “그 국화차는 어쩌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적고 있다. ‘같은 공간의 같은 침묵, 같은 순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 순간, 그 사람을 맛보았다는 느낌으로 행복하다. 슬프다.”

-지난 해 북한에서 열린 남북작가대회의 고된 일정 중 삼지연공항에 들렀을 때, 땡볕을 피해 그늘진 돌 바닥에 퍼질러 앉아 현지에서 산 북한 음식 자료들을 펼쳐놓고 흡족해 하던 그가 떠오른다.(최윤필 기자)

 

 

 

 

경향신문(06. 05. 16)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힘> 등을 통해 우리 시대 사람 사는 이야기의 풍요로움을 되살린 소설가 성석제씨가 음식에 얽힌 추억을 담은 산문집 <소풍>(창비)을 펴냈다. 저자는 “음식이란 추억의 예술이자 오감이 총동원되는 총체예술이며 필연코 한 개인의 본질적인 조건에까지 뿌리가 닿아 있다”는 지론을 펴며 평범하지만 추억이 깃든 한식 위주의 음식들을 한 상 가득 차려낸다.

-소설가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은 결코 정갈하고 비싼 요리가 아니다. 1,000원짜리 김밥, 양은냄비에 담겨 나오는 부대찌개, 클럽 앞 손수레에서 팔던 순두부, 겨울밤 이웃끼리 나누던 제삿밥, 도랑물을 받아 짚단에 불을 지펴 끓여 먹은 라면…. 음식이란 단순히 혀를 즐겁게 하고 살을 찌우는 것을 넘어서 사람과 장소에 얽힌 추억 한자락이자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자연스레 깨닫게 한다.

-너비아니부터 묵밥까지 한끼 식사로 적당한 음식이 1부에 담겼고 저자가 특히 좋아하는 냉면과 라면 같은 국수류가 2부에, 김치나 홍시·석화젓 등의 곁다리 음식과 국화차·소주 같은 마실거리에 관한 이야기는 3·4부에 나눠 실렸다. 식성대로, 글맛대로 골라 읽어도 무방하다. 책에 실린 글들은 사실에 기반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그동안 써 온 음식 관련 이야기를 다 모은 겁니다. 직접 겪은 것, 전해 들은 이야기, 허구가 골고루 섞였어요. ‘불순한 비빔밥’인 셈이죠.(웃음) 원래 음식 이야기는 허구가 좀 있어야 재미있잖아요. 책의 3분의 1 정도만 실화입니다.”

-음식에 관한 책을 썼을 정도니 식성도 남다를 것 같은데…, 역시 그랬다. “평생 안 먹던 것을 한번 입에 대기 시작해 몇 개월씩 매일 먹는 버릇이 있습니다. 지난 가을부터 굴을 먹기 시작해서 이른 봄까지 굴만 먹었고요, 스물 아홉 살 가을에는 처음 병어를 먹기 시작해서 그 겨우내 병어만 먹었어요. 일종의 벽(癖)이 아닌가 해요. 아직도 정복해야 할 음식이 많습니다.”

-성씨는 향후 차, 커피, 술 등 “배 안 부르면서 비싼” 기호품에 대한 산문도 쓸 것이라고 했다.(이상주 기자)

(*)솔직히 작가의 마지막 멘트는 약간 우려되기도 한다. '성씨' 또한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으로 빠지는 게 아닌가 싶어서이다. 그가 발을 담그고 있던 소설의 물이 얼마나 얕은 것이었나를 확인시켜주는 일은 아닐까? 그렇다고 '배 안 부르면서 비싼' 글을 쓰겠다는 작가를 건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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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4 11: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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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을 키워드로 검색하다가 읽게 된 글 하나는 철학아카데미 이정우 교수의 '지젝의 들뢰즈론(1)', "잠재적인 것과 가능적/상상적인 것 - 지젝의 들뢰즈론: 비판적 음미"(05. 05. 26)이다. 실제 강의된 내용인지는 모르겠으나 '잠재적인 것의 실재성(1)'이라고 소제목이 더 붙은 걸로 보아 'Organs without bodies'(2004)의 첫 소절('The Reality of the Virtual')을 자세히 '음미'하고자 했던 듯하다(하지만, 그 '음미'는 (1)에서 더 진척되지 않은 듯하다). 그가 읽고 있는 것은 본문의 첫 페이지, 첫 문단 정도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들뢰즈 전문가'의 의견인지라 그의 '음미'를 참조하면서 지젝의 첫 문단을 읽어보고자 한다. 최근에 나온 국역본 <신체 없는 기관>(도서출판b, 2006)에서 이 문단은 이렇게 옮겨져 있다.

 

 

 

 

"한 철학자에 대한 참된 사랑의 척도는 우리의 일상생활 도처에서 그의 개념들의 흔적을 알아보는 데 있다 최근에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이반 대제>를 다시 보면서 나는 제1부 도입부의 대관식 장면에 있는 멋진 디테일을 발견했다. 이반과 (당분간은) 제일 절친한 사이인 두 친구가 새로 기름을 부은 그의 머리 위로 커다란 접시들에 담긴 금화를 쏟아붓는다. 이때 관객들은 이 말 그대로의 금화 세례가 지닌 마술처럼 과도한 특성 때문에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접시 두 개가 거의 비어 있는 것을 본 이후임에도 우리는 다음 장면에서 이반의 머리에 금화가 계속해서 '비현실적으로' 중단 없는 흐름으로 쏟아지는 것을 본다. 이러한 과잉은 몹시 '들뢰즈적'이지 않은가? 그것은 물체적 원인을 넘어서는 생성의 순수 흐름의 과잉, 현행적인 것(the actual)을 넘어서는 잠재적인 것의 과잉이지 않은가?"(17쪽)

'음미'의 내용을 보다 명확하게 확정하기 위해서 원문 또한 옮겨놓는다: "The measure of the true love for a philosopher is that one recognizes traces of his concept all around in one's daily experience. Recently, while watching again Sergei Eisenstein's Ivan the Terrible, I noticed a wonderful detail in the coronation scene at the begining of the first part: when the two (for the time being) closest friends of Ivan pour golden coins from the large plates onto his newly anointed head, this veritable rain of gold cannot but surprise the spector by its magically excessivecharacter - eveb after we see the two plates almost empty, we cut to Ivan's head on which golden coins 'nonrealistically' continue to pour in a continuing flow. Is this excess not very 'Deleuzian'? Is it not the excess of the pure flow of becoming over its corporeal cause, of the virtual over the actual?"(3쪽)

여기서 지젝이 묘사하고 있는 영화 <이반 대제>(1944)의 장면은 아래의 장면이다. 이반에게 금화를 퍼붓는 두 친구는 나중에 그를 배신하기 때문에 '당분간은'이란 말이 들어가 있다. 참고로, 이 장면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롤랑 바르트의 '제3의 의미'(<이미지와 글쓰기>, 세계사, 1993)에서 이루어지고 있다(영역은 'Image-Music-Text'[1977]에 수록돼 있다). 영화기호학에 관한 필수적인 텍스트인데,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아무려나 일단은 이러한 영화 속 한 장면에서도 '잠재적인 것의 철학자(the philosopher of the Virtual)' 들뢰즈의 잠재적인 것/현행적인 것이라는 개념쌍을 알아보는 데 들뢰즈에 대한 지젝의 '참된 사랑'이 놓여 있다. 참고로, 에이젠슈테인(1898-1948)의 <이반 대제>는 3부작으로 기획되었지만, 2부까지밖에 완성되지 못했고 '전제주의의 일시적 진보성'을 다룬 1부와는 달리 노골적인 스탈린(=폭군 이반) 비판을 담은 2부(1946)는 상영이 금지되었으며(에이젠슈테인은 화병으로 일찍 죽는다) 그의 사후에야 상영될 수 있었다. 물론 스탈린(1879-1953)도 사망한 이후인 1958년의 일이다. 아래는 <이반 대제>의 포스터(이반 대제 역은 스탈린의 영화적 페르소나라고 할 만한 '니콜라이 체르카소프'가 맡아서 연기했다).

러시아사에서 흔히 '이반 뇌제'라고 불리는 이반 4세(1530-1584)는 전횡적 권력을 휘둘렀던 러시아 황제(차르)들 가운데에서도 폭군으로 유명하다(그 '악명'에 있어서 우리의 '연산군'에 비견될 만하다. 물론 연산군은 내면적으로 굉장히 유약했지만). '뇌제(雷帝)'라는 이름은 그래서 얻게 된 것이며, 이것을 영어로는 'Ivan the terrible'이라고 옮긴다. 세계사의 폭군들을 다룬 책 <권력과 광기>(말글빛냄, 2005)나 <폭군들>(이마고, 2005)에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할 정도. 그래서 영화의 국내 출시명이 <폭군 이반>으로 돼 있으며 이전에 EBS에서는 <이반 대제>란 타이틀로 방영한 적이 있다.

 


 

 

바실리 3세의 아들이었던 이반은 1547년 그러니까 그의 나이 17살에 스스로 즉위하면서 자신을 (러시아사에서) 최초로 '차르'라고 부른다('차르'는 로마의 황제 '케사르'로부터 차용한 단어이다). <이반 대제>의 첫머리에서 묘사되고 있는 것도 1547년 왕관을 자신이 직접 머리에 쓰는 젊은 황제의 대관식 장면이며, 금화 세례를 받는 것은 그러한 의식에 이어지는 장면이다. 국역에서 "새로 기름을 부은 그의 머리"(his newly anointed head)라고 직역된 대목은 "새로이 황제의 자리에 오른 그의 머리" 정도의 뜻이다.

이반 대제는 이후에 40년간 모스크바 공국 시대의 러시아를 통치하게 되는데, 생애 말기 그의 최대 비극은 자신의 아들을 왕홀로 쳐죽인 사건이다. 러시아 최대 화가 일리야 레핀의 그림 '1581년 11월16일 금요일의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1885)가 묘사하고 있는 장면(흔히는 '아들을 죽인 이반'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모스크바의 트레챠코프 미술관 소장). 이 그림의 초점을 잃은 늙은 황제의 모습에서 더이상의 광기는 읽히지 않는다. 이반 뇌제는 이후에 몇 해 지나지 않아 세상을 뜨게 되는데, 독살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대략 이 정도의 배경지식을 갖고서 다시 텍스트로 돌아가본다. 인용한 첫문단에 대한 이정우 교수의 요약은 이렇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광폭한 이반(Ivan the Terrible)>의 초반부에서 지젝은 매우 '들뢰즈적인' 장면을 포착해낸다. 대관식에서 이반의 친구들이 그의 머리에 금화들을 쏟아 붇는 장면이다. 금화가 거의 다 떨어졌는데도 영화는 금화의 흐름=와류를 계속 보여준다. 이 장면을 지젝은 'nonrealistically'라는 부사로 표현한다. 이 표현은 우리가 흔히 어떤 영화를 보고서 “리얼하다”라고 말하는 방식을 염두에 둔 표현일 것이다. 즉 <광폭한 이반>의 이 장면은 '리얼하지 않은' 장면인 것이다. 지젝에 따르면, 바로 이 점에서 이 장면은 '들뢰즈적'이다. 왜 들뢰즈적인가? 이 장면이 '생성의 순수 흐름이 물체적 원인을 초과하고(excess) 있기 때문'이다. 즉 '잠재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the actual)을 초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역본의 '현행적인 것(the actual)'은 이처럼 '현실적인 것'이라고 옮기는 게 이해하기 쉽다. 다르게 말하면, '사실적인 것', 혹은 '사실임직함'이다. 마치 무한정인 양 쏟아지는 금화의 흐름(=생성의 순수 흐름)은 분명 '물체적 원인' 혹은 '물질적 인과율'을 넘어선다. 바닥이 거의 다 드러난 접시로부터 끊임없이 금화가 쏟아진다는 것은 자연적 인과율로 설명되지 않는, 즉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까 이 장면에서 에이젠슈테인은 '현실적인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잠재적인 것'의 과잉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 계속적인 설명을 들어본다.

"사람들이 어떤 영화를 보고서 '리얼하다'고 할 때 그 'real'은 사실상 'actual'이다. 즉 ‘실재’를 뜻하기보다 ‘현실’을 뜻한다. 이것은 영화란 비현실적인 것이라는 전제 아래에 어떤 장면이 우리의 경험에 합치해서 매우 현실적으로 표현되고 있음을 뜻한다. 지젝도 이 점에 주의해서 'nonrealistically'라는 구절에 따옴표를 치고 있고, 그 후 현실적인 것을 뜻할 때에는 'the actual'로 쓰고 있다. 그렇다면 이 장면은 현실적이지 않은 어떤 것을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상상적인 것을 표현하고 있는가? 금화가 거의 다 떨어졌는데 여전히 폭포수 같은 금화의 흐름이 보인다면 그것은 하나의 환각적인 것, 상상적인 것에 불과한가? 지젝은 그렇지 않음을, 즉 그것은 상상적인 것이 아니라 들뢰즈적 의미에서의 잠재적인 것임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들뢰즈에게서 잠재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은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어떤 점에서 <광폭한 이반>의 이 장면은 들뢰즈적인가?"

참고로, <이반 대제>에서 그러한 잠재적인 것의 과잉을 보여주는 형상은 아래와 같은 이반의 거대한/과장된 그림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그로테스크한) 그림자들 또한 '현실적인 것'을 초과하는 '잠재적인 것'의 순수한 과잉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그러니까 이러한 '과잉'의 영상화는 에이젠슈테인에게서 전략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정우 교수의 설명: "들뢰즈에게서 잠재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은 아니지만 엄연히 실재적인 것이다. 즉 그것은 우리의 경험에 드러나는 현실적인(actual) 것이 아님에도 분명 '실재하는(real)' 것이다. 이 점에서 들뢰즈의 사유 틀은 근대적이기보다는 차라리 고대적이다. 경험을 넘어서는 것을 인간 주체에게서 찾기보다는 경험 너머의 실재에게서 찾고 있기에 말이다. 들뢰즈는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존재론자이며, 칸트처럼 주체의 의식의 틀을 탐구하기보다는 차라리 그가 ‘물자체’로 남겨둔 그 자리에 ‘잠재적인 것’을 놓고 있다 하겠다. 즉 들뢰즈는 인간 주체가 어떻게 그에게 나타난 현상들을 구성하는가를 탐구한 것이 아니라 실재적인 것이 어떻게 현실적인 것으로서 나타나는가를 탐구한 것이다."(강조는 나의 것)

이에 대한 지젝의 설명: "들뢰즈에게 중요한 것은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 아니라 잠재적인 것의 실재성(The reality of the virtual, 곧 라캉의 용어로는 '실재the Real')이다. 가상현실 그 자체는 다소 초라한 곤념이다. 현실을 모방한다는, 인공적 매체 속에서 현실의 재생한다는 관념. 반면 잠재적인 것의 실재성은 잠재적인 것 그 자체의 실재성을, 그것의 실재적 효과와 결과들을 나타낸다."(17쪽) 

다시 이정우 교수: "들뢰즈에게 가능적인 것과 잠재적인 것은 구분된다. 잠재적인 것은 실재이다. 그러나 가능적인 것은 인간 주관이 그의 경험 결과를 자의적으로 재구성한 것에 불과하다. 즉 사물의 지각을 통해서 형성된 심상(=이미지)을 머리 속에서 이리저리 굴려 상상(=이메지-네이션)하는 것이다. 즉 들뢰즈에게 ‘가능적인 것’은 곧 ‘상상적인 것’이다. 들뢰즈에게서 세계의 실재로서의 잠재적인 것과 인간 주관의 산물로서의 가능적인=상상적인 것은 분명히 구분된다. 따라서 가상현실을 뜻하는 ‘virtual reality’에서의 ‘virtual’은 들뢰즈적 잠재성이 아니라 차라리 가능성=상상적인 것에 해당한다. 들뢰즈 사유의 핵심은 잠재적인 것에 있지 상상적인 것=가능적인 것에 있지 않다."

여기까지는 두 사람 사이에 의견차이가 없는 듯하다. 차이는 <이반 대제>에 나오는 문제의 장면이 과연 '들뢰즈적인' 장면인가 하는 것: "이렇게 볼 때 지젝이 들었던 장면은 과연 '들뢰즈적인' 장면인가? 이 장면은 '리얼하지 않은' 장면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꼭 '들뢰즈적인' 장면인 것은 아니다. 일견 이 장면은 잠재적인 장면이라기보다는 상상적인 장면이기에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장면은 이반의 심리이든, 대관식 참여자들의 심리이든, 감독의 심리이든, 관객의 심리이든, 일단 어떤 심리가 투영된, 즉 상상적인 장면으로 생각될 것 같다. 두 가지 가설이 가능하다. 첫째, 지젝은 이 영화를 다른 방식으로 읽고 있다. 둘째, 지젝은 들뢰즈의 잠재성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첫 번째 가설의 경우, 이 영화가 표현하고 있는 장면을 단순히 상상적인 것으로 보기보다 더 근본적인 어떤 것, 즉 현실을 넘어서는 잠재적인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꼭 옳다고 할 수는 없다 해도 하나의 의미 있는 독해일 수 있다. 즉 에이젠슈타인이 여기에서 자신의 상상을 투영한 것이 아니라 피상적인 현실 이상의, 그 아래에 깔려 있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어떤 것을 순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어쨌든 이 독해 자체는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두 번째 가설을 보자. 지젝이 이 장면을 '들뢰즈적인' 장면으로 보는 것은 여기에서 '생성의 순수 흐름이 물체적 원인을 초과하고(excess) 있기 때문'이다. 즉 지젝은 물체적 원인을 ‘현실적인 것’으로, ‘생성의 순수 흐름’을 잠재적인 것으로 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규정은 매우 거친 규정이다. 들뢰즈에게서 ‘물체적 원인’은 오히려 잠재성의 차원에 위치한다. 현실적인 것은 물체적 원인의 결과들로서의 현상들, 사건들, 이미지들이다. 여기에서 들뢰즈의 ‘물체’ 개념은, 물체와 물질이 분명하게 구분되는 상식적-물리학적 사유에서와는 달리, 물질/물체의 구분 이전의 스토아 학파의 ‘소마’이고 스피노자의 ‘사물’이다. 지젝은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 요컨대, 필자에 따르면 '물체적 원인'은 '잠재성의 차원'에 위치하기 때문에 지젝이 이 둘을 대비시키고 있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  

"따라서 ‘생성의 순수 흐름’과 ‘물체적 원인’은 대조되는 개념들이 아니다. 들뢰즈에게서는 생성의 순수 흐름은 곧 물질=실체의 흐름이고 그것이 곧 물체적 원인의 차원이다. 그리고 그 표면효과들, 결과들이 사건들, 현상들, 이미지들이다. 아울러 들뢰즈의 잠재성을 ‘생성의 순수 흐름’으로 보든 ‘물체적 원인’으로 보든 이런 식의 표현은 매우 일반론적이고 성긴 표현들이라는 점도 지적해 두자."

내가 보기에 문제로 걸려 있는 것은 잠재적인 것의 해석이 아니라 는 '물체적 원인(corporeal cause)'의 해석인 듯하다. 지젝은 '물체적 원인'을 '현실적인 것'에 위치시키는 반면에 이정우 교수는 '잠재적인 것'의 차원에 위치시키고 있는 것. 그렇다면, 그에게서 '현실적인 것(=상징적인 것)'의 자리는 어디인가?

"지젝은 상상적인 것과 잠재적인 것에 관한 들뢰즈의 구분을 정확히 지적해 주면서도, 잠재적인 것의 이해에는 난점을 드러내고 있다. 왜일까? 그것은 지젝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상상적인 것이며(지젝 스스로는 그것을 ‘실재적인 것’이라고 하겠지만), 때문에 들뢰즈를 독해하면서 그가 자꾸만 잠재적인 것에 상상적인 것을 투영하기 때문이다. 지젝의 들뢰즈 독해는 매우 흥미진진하면서도 철학적으로 정확하지는 않다."

그러니까 지젝이 가장 강조해마지 않는 실재, 혹은 실재적인 것(the Real)이라는 게 필자가 보기엔 (실제적으론) '상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으며, 둘을 혼동하고 있다는 것이 되겠다(지젝이 맨날 보로메오 매듭처럼 얽혀있는 RSI의 3항조를 얘기하지만, 실제로 그가 떠들어대는 것은 SI 2항조뿐이다?). 그래서 정작 실재적인 것(=잠재적인 것)에다 상상적인 것을 투영한다는 것('자꾸만'의 근거는 무엇인지?). 이러한 지젝 독해는 다소간 흥미롭지만 얼마나 정확한지는 의문이다('지젝, 너 또라이지?'라는 거 아닌가?).

다만, 내가 잠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필자에게서 들뢰즈에 대한 '이해'는 넘쳐나지만 '참된 사랑(true love)'은 부족하지 않은가, 라는 것. 그가 '자꾸만' 찾아내는 것은 '꼭 들뢰즈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대부분의 들뢰지안들이 염려하는 것은 들뢰즈적인 것의 '과잉'인 듯싶다. 그들에게 들뢰즈는 함부로 손댈 수 없는 것, 언터쳐블(the untouchable)이다. '니들이 들뢰즈를 알아?'라는 물음은 라캉주의적 '케보이Che Vuoi?'(도대체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대응물이자 차폐막이 아닐까? 그런데, 넘쳐나는 건 왜 들뢰즈가 아니라 들뢰지안들일까?.. 

06. 07. 01.

P.S. 이제껏 읽은 건 지젝의 첫 문단이다. 짐작에 '지젝의 들뢰즈론(1)'의 필자 또한 그 글이 씌어진 시점에서는 더 읽었을 성싶지 않다. 이후에 지젝은 보다 많은 걸 말하고 있으며 따라서 지젝에 대한 여하한 비판 역시 보다 많은 뒷받침을 통해 예증되어야 할 것이다. 철학은 '일견'에 의한 예단은 아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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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스 2007-01-06 01:42   좋아요 0 | URL
국내 최고 수준(?)의 들뢰즈 전문가의 지젝 비판 치고는 너무 소략하고 좀 심하게 말하면 '치졸'하군요. 작은 얘기를 꺼낸 게 잘못이라는 뜻이 아니라, 작은 얘기로부터 시작해서 더 근본적인 비판, 이를테면 지젝-라캉(-헤겔) 계보의 근본적인 맹점 같은 것을 지적하는 데까지 이르러야 마땅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이 정도에서 맺을 얘기였으면 아예 시작하질 말던가...

로쟈 2007-01-06 01:50   좋아요 0 | URL
'서재 투어'를 시작하셨나 봅니다.^^ 제 생각도 보다 '본격적인 비판'이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입니다. 철학을 화두로 대신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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