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당의 새해 예산안 날치기 처리로 정국이 경색돼 있는데,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연평도 포격 때문에 묻힌 감이 있는) '민간인 사찰'이 뇌관이 아닌가 싶다. 두 가지 사안을 연결시켜서 짚고 있는 칼럼이 있어서 스크랩해놓는다. 대표적인 보수논객인 이상돈 교수의 시론이다. '비판적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는 필자는 4대강 사업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반대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열혈 보수주의자가 보기에도 '정권의 말로'는 이미 시작됐다... 

 

 경향신문(10. 12. 10) [시론]정권의 말로 예고하는 ‘민간인 사찰’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과 관련이 있는 국무총리실 내의 한 조직이 정권에 걸림돌이 될 만한 사람들을 은밀하게 사찰했다는 의혹이 점차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노무현 정부에 의해 임명된 공기업 임원 등 구 여권 인사뿐 아니라 한나라당의 비주류라고 할 수 있는 국회의원 여러 명도 사찰 대상이었음이 거의 확인되어 있고, 박근혜 전 대표도 사찰을 당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직계이지만 이상득 의원과 대립각을 세웠던 정두언 의원이 사찰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나선 대목은 특히 곱씹어볼 만하다.

사찰 대상의 동향을 파악하는 수준이 아니라 휴대폰을 상시적으로 도청했다는 의혹마저 제기되어 있어 사찰의 배후가 간단치 않으며, 사찰의 규모 또한 알려진 것보다 더 광범했을 것이라는 의심이 든다. 사찰의 초점이 구 정권 인물에서 한나라당 의원으로 옮겨간 것으로 보이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사찰 대상이었다는 부분은 현 집권세력이 여당 의원들의 이탈을 무엇보다 경계하고 있을 것이라는 그간의 가정(假定)을 확인시켜 준다. 국회가 미디어법과 세종시 문제를 처리할 때 여당 내 반대 때문에 곤혹스러웠던 집권세력이 임기말의 ‘권력 누수’를 막기 위해 사찰이란 불법수단을 동원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4대강 사업 등과 관련해서 정권에 비판적이던 몇몇 한나라당 의원과 박근혜 전 대표가 사찰 대상이었다는 의혹은 그런 점에서 납득이 간다.

대통령의 큰형과 관련 조직 윤곽
엊그제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여당 단독으로 예산안과 문제 법안들을 통과시킨 데서 보듯이, 집권세력은 대화와 타협이란 정치를 포기한 지 오래다. 간혹 쓴소리를 했던 한나라당 의원들도 꼼짝 못하고 이런 폭거에 동참한 것을 보니 사찰이 갖고 있는 ‘위협적 효과(chilling effect)’를 알 수 있다. 박연차와 연루되었다고 보도된 의원들이 기소되어 곤욕을 치른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의원들은 ‘보이지 않는 손’의 뜻을 알아서 새길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도 사찰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검찰이 수사를 덮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는 점에서 ‘민간인 사찰’은 닉슨 대통령을 사임으로 몰고 간 워터게이트보다 훨씬 심각하다. 워터게이트는 일과성 사건이었지만 ‘민간인 사찰’은 정권 초부터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권 내 비선조직이 정권 반대세력과 여당 의원을 불법으로 사찰했다면 그 나라는 ‘독재국가’다. ‘독재정권’이 ‘국격’을 논하고 ‘G20’ 운운하고 있는 만화 같은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

상황이 이렇지만 의석수가 부족한 야당은 탄핵은커녕 국정조사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이런 수모를 당한 여당 의원들이 먼저 들고 일어나서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검찰에 수사를 요청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들은 돌부처처럼 얼어붙어 있으니, 측은한 생각이 들 뿐이다.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이러고도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를 하겠다는 집권세력과, 자신들은 비주류라서 현 정권의 실정(失政)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는 한나라당 내의 일부 세력이다. 이런 난정(亂政)을 하고도 훗날 무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집권세력도 한심하고, 침묵으로 동조함으로써 침몰하고 있는 배에서 탈출할 수 있는 구명정을 차버린 비주류도 한심하다. 하도 한심해서 이들이 혹시 영구집권을 할 묘책이라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여당의원까지 포함, 독재의 상황
이제 공은 ‘국민’에게 넘어왔다. ‘민간인 사찰’은 물론 ‘4대강’, 종편 배정 등 이 정권이 벌이고 있는 일은 목적과 내용은 물론 방법과 절차에서도 올바른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국회는 마비되어 있고, 검찰이나 감사원 등에도 믿을 구석이 없으니 불법을 바로잡을 장치가 완전히 망가져 있는 형국이다. 내년에는 선거가 없어서 민의를 밝힐 기회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민주주의를 이룩하고 또 그 열매를 향유했던 우리 국민이 이러한 독재상황을 감수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1987년 6월혁명 때도 그러했고, 1960년 4월혁명 때도 그러했다. 그만큼 민심은 무서운 것이니, 집권세력은 그것을 알아야 한다.(이상돈 |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0.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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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0 17: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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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0 17: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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