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뻔한 일인지도 모르죠
사랑한 사람들과 사랑할 뻔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모르는 인연이죠
모르는 꽃들도 향기를 뿜는 것처럼
잊혀진 사람들도 자국을 남겨요 여기
이렇게 잊혔노라 때로는 그때에 잊혔노라
어제도 오늘도 아니 잊고 그때에
그런 건 아니에요
내게 시슬레 소녀는 절반만 잊혀진
잊혀지다 만 소녀죠
언젠가 시슬레의 초원을 선물해주고 떠난 소녀
알프레드 시슬레를 가장 좋아한다고
시슬레의 풍경화를 좋아한다고
구름과 목책이 있고 초원이 펼쳐진 그림을
방문에 붙여놓았죠
아침마다 풀밭에서 잠이 깼어요
술을 마신 날도 마시지 않은 날도
초원으로 걸어가듯 하숙방을 나서서
구름들과 하루를 배회하고
풀꽃들의 안부를 물었죠
아침마다 중얼거렸어요 시슬레
마네 모네 드가 시슬레
언제나 넘버 포였어요 시슬레
풀꽃 향기가 날 것 같은 소녀를 나는
다시 만나지 못했어요
뻔한 일이었는지도 모르죠
풍경을 좋아하진 않았어요 그녀는
버섯을 좋아했죠 자원식물을 사랑했죠
소녀를 사랑했느냐고요?
모르는 인연이에요 다정하게
만나고 배웅하고 다시
만나지 않았어요 내겐
시슬레만 남았죠 시슬레의 초원만
남아서 시슬레 소녀를 기억했죠
그런 이야기예요
그렇게 잊혀졌죠 그녀에게
그녀가 나를 기억할까요?
우리에겐 저 구름이 전부일 뿐이에요
전부일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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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8-04-26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업상 좋아하는 소설보다 건강관련책을 읽고 라디오음악프로
대신 정치 팟캐를 듣는 현실에서, 유일한 즐거움은 아침출근길 차창너머 보는 초목. 올핸 작년에 안보이던 등나무꽃이 연보라빛으로
피어 있더군요. 그 화사함을 닮은 로쟈님의 시^^ 좋아하는 활동 중 퍼즐맞추기. 인상주의 풍경의 1000피스 액자가 거실에 걸려있어요. 올리신 그림, 퍼즐로
딱인데!^^*

로쟈 2018-04-26 13:05   좋아요 1 | URL
네 퍼즐로도 있을 것 같은데요.~

two0sun 2018-04-26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어 없어진 연애세포처럼,
잊어 사라져 버린
아련함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시네요.

로쟈 2018-04-26 22:51   좋아요 0 | URL
30년 전 얘기가 떠올라 적은 시예요.~
 

도스토예프스키(도스토옙스키)의 마지막 걸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880)의 새 번역본이 나왔다. 김희숙 교수가 옮긴 문학동네판이다. 내달부터 이진아도서관에서 진행하는 강의에서 새번역판을 읽을 예정인데, 겸사겸사 지난 30년간 내가 읽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도 회고하게 된다(제목은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로도 번역되었다). 



고3 때이므로 30년도 더 전에 내가 처음 읽은 번역본은 김학수 선생이 옮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었다. 



당시에 읽은 삼성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판이었는데, 현재는 범우사판 <카라마조프의 형제>로 남아 있다. 



이어서 열린책들의 도스토예프스키 전집판으로 나온 이대우 교수 번역의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이 있다. 이 번역본 역시 전집판에서 세계문학전집판까지 여러 차례 표지 갈이를 해왔다. 



그리고 최근까지 강의에서 주로 읽은 민음사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로 김연경 박사의 번역이다(민음사판 <죄와 벌>과 <지하로부터의 수기>도 옮겼다). 그밖에 동서문화사판을 비롯해서 몇몇 번역본이 더 있고 어린이용으로 다수의 책이 나와 있지만, 현재로서는 이 네 종이 독자의 선택지로 보인다. 나로선 범우사판을 제외한 세 종을 강의에서 읽었고, 읽을 예정이다. 


문학동네판 이후의 번역본이 더 나올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로 충분하다고도 생각된다. 약간의 감상을 섞어서 말하자면 '내 생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여기까지다. 그리고 여기까지가 30여 년이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대한 강의는 내년까지 책으로 내려고 한다. 일단은 그렇게 일단락지으려고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몫은 거기까지...


18. 0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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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강의차 내려가는 길에 가방에 넣은 책 몇 권 중에는 시집도 들어 있다(시집은 무엇보다 가볍다). 손에 잡힌 시집이 서대경의 <백치는 대기를 느낀다>(문학동네). 2012년에 나왔고 지난해에 5쇄를 찍었다. 황유원 시인과 밥 딜런의 시집(혹은 노래전집), <밥 딜런: 시가 된 노래들>을 공역했다(번역가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도 겸해서 주목하게 된 두 시인.

대부분의 시가 피리어드(.)만 찍는다면 그냥 묘사다. 카프카의 산문소품 같은(카프카는 얼마나 많은 분량의 시를 쓴 것인가!). 그게 시로서 강점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예 피리어드를 찍고 산문시나 산문세계로 진입해들어가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 그런데 한편으로 시 형태로 쓰인 시들은 또 서대경스럽지 않다. 아무 시편이나 상관없지만 가령 ‘낮달‘.

당신이 웃을 때
나는 당신의 운명이 바뀌는 소리를 듣지

당신이 한순간 허공으로 존재할 때
수없이 지나가는 인파 속에서
당신의 웃음은 터져나오지

그럴 때 당신의 어깨는 유난히 작고
당신의 가방은 낮달처럼 가볍지

당신이 순간 사유를 잃고
당신이 순간 동작을 잃고
당신이 순간 음악이 될 때
당신이 홀연 가방을
공중으로 던질 때

시리도록 환한 슬픔이
하늘에 가득하지
나도 따라 가방을 던지면
어느새 당신은 없고
가방도 없지
(...)

시인의 첫시집으로 보이는데 ‘시리도록 환한 슬픔‘ 같은 표현은 습작풍이다. 독자가 ‘당신‘과 ‘나‘ 사이에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다. 시의 엔딩.

당신의 웃음이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
당신의 존재가 음악 속에서 지워지는 시간
당신의 환멸이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

당신의 웃음이
나의 운명을 들여다보는 시간

한번 더 확인하게 되는 것은 ‘존재‘니 ‘환멸‘이니 ‘운명‘이니 하는 말들은 집어넣어서 시를 만들기는 어렵다는 것. 시인의 진화를 엿보게 해주지만 시로서는 미흡하다. 서대경스러운 시로는 역시 아무 시편이나 상관없지만 표제시의 첫 연.

공장 지대를 짓누르는 잿빛 대기 아래로 한 사내가 자전거를 타고 고철 더미가 깔린 비탈길을 느릿느릿 오른다 사내는 담배를 물고 한 손으로 자전거 핸들을 잡고 있다 한쪽 팔이 잘려나갔는지 작업복의 빈 소매가 바람에 세차게 펄럭인다 사내는 담배연기를 빨아들이며 허공을 올려다본다 바람의 거친 궤적이 잿빛 구름을 밀어내면서 거대한 하늘 위로 새파란 대기의 띠가 몇 줄기 좁은 외길처럼 파인다 사내는 서리가 앉은 허연 머리를 허공을 향해 한껏 치켜들고서 광인처럼 기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는 더듬더듬 속삭이고 있는 것 같다 어떤 단순한 이름들을, 추위로 가득한 대기의 이름들을 겨울, 거대한 하늘, 서리의 길, 춤춘다

이런 묘사가 서대경 시의 원목 같다. 추위로 가득한 대기를 느끼고 있으므로 노르웨이산이나 시베리아산이라고 해도 좋겠다. 그게 어떻게 시라는 가구가 될는지는 더 두고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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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펀트는 코끼리인데 코끼리는
육중하고 엘리펀트는 불가해하다 왜
엘리펀트일까 모스크바에서
언제던가 구스 반 산트의 영화를 보면서
나는 손인지 발인지 코가 손인지
무엇이 코로 들어가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지
콜럼바인 고등학생 둘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친구들을 사냥했지
아무렇지도 않게 난사했지 아니
조준했지 울면서 벌벌 떨기도 했었나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엘리펀트처럼
두 친구는 친구답게 냉정하고 무자비했다네
나는 아이다호의 구스 반 산트를 보러 갔다가
이런 구스 반 산트 같으니
이것이 엘리펀트인가 엘리펀트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하지만
영화에서 난 코끼리를 본 건지 기억이 없는 건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방관했지 우리는 모두가 목격자였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숨죽이고 있었다네 여기는 모스크바
콜로라도가 아니라오
두 친구가 돌아보기 전에 우리는 입을 씻기로
아무도 공중전화로 달려가지 않았다네
아무일도 없었던 그날
콜로라도 하늘엔 흰구름 떠가고
모든 상황은 민방위훈련처럼 종료되었지
왜 엘리펀트인가 묻지 않았네
그런데 이제 와서

엘리펀트, 그러니까 코끼리가 지구를
떠받치고 있다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날
모스크바의 하늘에도 흰구름 떠가고
나는 불가해한 일들에는 불가해한
표정으로 응대하는 법을 배웠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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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배송받은 책 가운데 두 권은 조성기의 소설들이다. 장편소설 <라하트 하헤렙>과 소설집 <통도사 가는 길>이다. 두 권 모두 ‘오늘의 작가총서‘ 버전이다. <라하트 하헤렙>은 1985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고 <통도사 가는 길>은1992년에 나왔는데 1991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우리시대의 소설가‘가 수록돼 있다. 바로 1991년에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으로 과내 동아리 세미나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내가 문학이론 세미나의 교사였다).

다시 읽어볼 생각이 든 건 조남현 교수의 신작 <소설의 본질>(서정시학)을 읽다가 조성기 소설이 언급된 걸 보아서다. 조성기는 곧이어 <욕망의 오감도>(1993)와 평역 <삼국지>(2002) 등을 발표했고 나로선 작가로서 변절이라고 생각해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시대의 소설가‘ 정도는 90년대 소설의 상황과 지형도 되짚어보는 데 유익할 것 같아서 주문한 것. 27년전에 읽은 작품을 다시 보면 어떤 느낌이 들지도 궁금하다.

<소설의 본질>은 저자의 <소설신론>(서울대출판부)의 연장선상에서 읽어볼 만한데 소설에 대해서 너무 폭넓게 정의하고 있는 게 불만이다(나는 최대한 좁게 정의하는 게 더 생산적이라고 생각한다. ‘부르주아 계급의 서사시‘로 정의한 루카치가 좋은 사례다). 그럼에도 저자의 식견과 통찰은 유익한 참고가 된다. 나로서도 러시아문학 관련서를 몇 권 내고 나면 문학일반론(시론과 소설론)도 생각을 정리볼 계획이다. 더이상 미룰 수 있는 나이도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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