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눈으로 보았을까
너의 그 눈이 아니었다면 나는 나도 볼 수 없는
눈을 가졌다네 하늘도 보고 하늘의 언저리도 보고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보고 보다 말아도 보고
그래도 나는 볼 수 없는 만지기만 할 뿐 볼 수 없는
너의 눈동자 속의 나를
네가 보는 나를
이불 속에서도 이불 밖에서도 길 밖에서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네
밥 먹으면서도 커피를 마시면서도
그러다 눈을 감아도 다시 눈을 떠도
앉아도 주저앉아도 가끔은 눈에 안약을 넣어도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았음에도
잃지 않았음에도
나는 보지 못하네
네가 보는 나를
너의 그 눈이 아니었다면 보지 못했을 나를
너의 눈동자 속의 나를
이제 다시는
이제 다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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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8-04-24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통 주변에 널린 책들을 집어서 읽지만, 가끔 옛날에 본 책이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얼마전엔 서점에서 페이퍼미니북을 보고 반가와서 몇
권 챙겼지요. 고전문학. 어릴 적, 시각적 묘사가 풍부한 작품을 좋아했
나 봐요^^ 로쟈님 시 내용이 시각을 추구하지만 대만영화 장면이 계속
떠오르는 ...암튼 기이한...

로쟈 2018-04-24 22:37   좋아요 1 | URL
어떤 대만영화인가요? 저는 홍콩영화.^^

로제트50 2018-04-25 09:03   좋아요 0 | URL
오래전 본 거라 제목이
생각 안나요.
빈집에 숨어 지내는 남자, 부동산업자가 들어와 침대 밑에 숨은 상황.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1978)를 강의에서 읽었다. 이번이 세번째. <에투알 광장>(1968)으로 데뷔한 10년차 작가에게 공쿠르상을 안겨준 작품. 한데 예외적으로 한 작품이 아니라 모디아노의 전작에 주어졌었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가 여섯 번째 소설이지만 그의 작품 전체가 한권의 작품을 구성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모디아노 자신의 생각이 그렇다. 그 여섯 편은 아래와 같다.

<에투알 광장>(1968)
<야간순찰>(1969)
<외곽 순환도로>(1972)
<슬픈 빌라>(1975)
<호적부>(1977)*번역본 제목은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1978)

이 가운데 ‘점령 3부작‘으로 불리는 첫 세 편이 아직 번역되지 않아 유감스럽다고 밝힌 바 있는데(이유도 모르겠다) 그 이후에 나온 몇 편 대신에 먼저 번역되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여하튼 이 3부작을 제외하면 그 이후론 상당수의 작품이 번역된 상태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모디아노의 동생 뤼디와 아버지에게 헌정되고 있는데 나는 이 점이 작품 이해의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뤼디를 위한 소설이면서 아버지를 위한 소설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살 터울의 동생 뤼디는 1957년에 세상을 떠나고 애증의 대상이었던 아버지 알베르 모디아노는 1977년에 타계한다. 모디아노에게는 삶의 일단락이 지어지는 셈인데 작품으로는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가 그 일단락에 해당한다.

모디아노 작품세계의 원천이 되는 가족사는 그가 뒤에 발표하는 <혈통>(2005)을 참고할 수 있다. 이 자전소설 에서 모디아노 소설의 중핵이 되는 경험을 민낯에 가깝게 읽을 수 있다. 곧 다른 소설을 읽는 데 준거로 삼을 수 있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이후에도 많은 작품을 발표하지만 같은 주제의 반복과 변주로 읽히기에 일단은 기본형을 확인해두는 게 요긴하다. 점령 3부작을 참고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호적부>(번역본 제목은 원제를 살리는 게 좋았겠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그리고 <혈통>을 기본으로 읽는 수밖에. <슬픈 빌라>는 걸출한 영화 <이본느의 향기>의 원작소설로도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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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4-24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화영은 한강연에서 <혈통>,<추억~>,<외곽~>,<감형>을 추천~
번역도 안되어 있는 책을 추천하는건~~

로쟈 2018-04-24 17:20   좋아요 0 | URL
네 분량도 많은게 아닌데 소개되지 않는이유가 납득불가.
 

어제가 ‘세계 책의 날‘이었지만 우천으로 기념행사들이 취소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비의 날‘에 밀린 것(나부터도 잊고 있었으니). 부랴부랴 수습 차원에서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에 대해 인사치레를 한다. 알다시피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책의 날은 두 작가의 기일(1616년 4월 23일)에 맞춘 것이다.

셰익스피어에 관해서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로 나온 황광수의 <셰익스피어>(아르테)가 ‘셰익스피어 문학기행‘을 겸하기에 전담하는 걸로 하고 세르반테스에 대해서는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돈키호테 성찰>(을유문화사)을 고른다. <돈키호테>의 번역자 안영옥 교수의 <돈키호테의 말>(열린책들)을 곁들이면 어울릴 만한 차림이다.

흐린 날인지 개인 날인지 분간하기 어렵지만 세계 책의 날 다음 날에도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를 손에 드는 에티켓을 발휘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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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다른 나라에서 온 손님처럼
어제와 다른 아스팔트에 낯설어 하고
바닥에 닿자 튀어오르고
우리의 어색함에도 이럴 땐 탄력이 붙어
스쳐갈 것도 없는 인연이면 인연일 것도
없는 인연인가 아스팔트 바닥엔 물이 고이기도 한다
언제는 튀어오르고 또 언제는 고이고
손님의 마음은 어색하고도 가벼운 마음
작별도 없이 지난주엔 목련이 졌고
인사도 없이 라일락 향기가 번졌지
계절은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는 법
사진 한 장 찍고서 이내 지웠다
손님 같은 마음이 들어
가로등을 쳐다 보려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이 세상에 다정한 손님이란 없어요
가끔 튀어오르는 흉내를 낼 뿐
단 한번의 기회인 것처럼
그러고는 시무룩해졌다

비는 다른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비의 나라가 있겠지
다정한 듯 바라보다가
마음이 젖었다

이럴 땐 국적이 다르다고 말하지
작별의 말도 없었다
그때
다른 나라에서 온 손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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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3 1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23 2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제트50 2018-04-23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로쟈님이 쓰신 문장인가요?
‘좋네....‘ 주욱 글을 올리다가
맨 아래 응당 있어야 할 지은이가
안보여서~^^
고딩때 국어쌤이 소개해주신 시와
비슷한 분위기, 비오는 퇴근길 버스
안에서, 문득 그때가 떠오릅니다.
가끔 치열한 평론 사이에서
이런 단상도 새롭습니다^^*

로쟈 2018-04-23 22:09   좋아요 0 | URL
네 오후에 비도오고 해서.~

sprenown 2018-04-23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오는 날, 감성폭발!...이런 날은 막걸리가 제격이죠 ^^.

로쟈 2018-04-23 22:09   좋아요 0 | URL
막걸리가 제 취향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종일 비가내리네요.~

two0sun 2018-04-23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의 시를 읽게 되다니
손님같이 왔다가는 것이 어디 비뿐이겠습니까~

로쟈 2018-04-24 00:06   좋아요 0 | URL
20년만에 쓴 듯하네요.~
 

세계문학 독자(전문독자나 열성독자)에게 큰 산처럼 버티고 있는 작가로 발자크나 디킨스를 나는 첫 손에 꼽는다. 소설사에서 중요한 작가들이라 안 읽을 수는 없고 읽기엔 너무 작품이 많은 대표 작가들이다. 그래서 '어디까지 읽을 것인가'를 매번 생각하게 되는데, 디킨스의 초기 대표작 <데이비드 코퍼필드>(1849)도 그에 해당한다. 자전적 소설이고 디킨스 스스로는 가장 아꼈다는 작품이니까 안 읽어볼 수는 없는데, 일단 분량이 상당하고 그간에 마땅한 번역본도 없었다.



소설가 신상웅 번역의 동서문화사판 정도가 있었을 뿐인데,이번에 '비꽃 세계 고전문학 시리즈'로 번역돼 나왔다. 이 시리즈는 김옥수 번역가의 1인 번역 시리즈로 주로 조지 오웰과 디킨스의 작품이 목록을 채우고 있다. 새 <데이비드 코퍼필드>는 3권짜리. 강의에서 다룰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선택지가 생겨서 반갑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그럴 것 같은데, 나도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때문에, <데이비드 코퍼필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호밀밭의 파수꾼>보다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먼저 읽었거나, 혹은 <데이비드 코퍼필드>만 읽은 경우는 희소하지 않을까. 우리가 기억하는 홀든의 이야기 서두는 이렇다.


"정말로 이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아마도 가장 먼저 내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끔찍했던 어린 시절이 어땠는지, 우리 부모님이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와 같은 데이비드 코퍼필드 식의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이야기들에 대해서 알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난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지가 않다. 우선 그런 일들을 이야기하자니 내가 너무 지겹기 대문이고, 그렇게 시시콜콜하게 이야기 했다가는 부모님이 뇌출혈이라도 일으킬 것 같기 때문이다.


좀 우습긴 하지만 '데비이드 코퍼필드 식의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읽어야 하는 것. 



디킨스의 작품으로는 <위대한 유산>과 <두 도시 이야기>, 그리고 <어려운 시절>을 주로 강의에서 읽는데, 욕심을 내자면 대표작의 하나로 꼽히는 <황폐한 집>도 다루고 싶다. 문제는 역시나 현재로서는 동서문화사판밖에 없다는 점.이 또한 다른 선택지가 있었으면 싶다. 


 

참고로 김옥수판으로는 <올리버 트위스트>, <두 도시 이야기>, <위대한 유산>, <어려운 시절>, <크리스마스 캐럴> 등 국내에서 읽히는 디킨스의 대표작들이 모두 나와 있다. <황폐한 집>도 추가되면 좋겠다...


18. 0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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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4-23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 산이 너무 많다는 것과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이야기(큰 산들의)까지 읽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문제네요

로쟈 2018-04-23 14:58   좋아요 0 | URL
인생 길지않아서.^^;

2018-04-23 1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24 0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Joeasdd 2018-04-24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서문화사판은 번역이 좋지 않은가요?

sprenown 2018-04-24 21:08   좋아요 0 | URL
동서문화사는 악명높은 출판사입니다
베끼기 전문!

로쟈 2018-04-24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 번역이고 휴대가 불편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