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로 들어섰다. 숙소까지는 좀더 가야 하지만 도시 입장료를 내는 것으로(버스 통행세인 모양이다) 대면을 시작한다. 저녁 7시쯤이라 어둠은 진작에 내렸고 기온은 현재 18도. 호텔에 여장을 푸는 대로 저녁식사를 하게 될 것 같다. 아직 도심에 들어서기 전이라 피렌체라는 인상은 받기 어려운데 이틀 뒤에는 ‘나의 피렌체‘가 될 것인지 두고볼 일이다.

문학기행을 준비하며 피렌체에 관한 책만 10여 종 이상 을 구입했는데 가방에는 가장 얇은 레오나르도 브루니의 <피렌체 찬가>(책세상)만 넣어왔다. 나머지는 모두 피렌체 여행 이후에나 읽어볼 참. 국내서가 상당히 많은데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나중에 정리를 해봐야겠다. 베네치아에서도 그랬지만 곧 그림 속으로 들어가겠다.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라는 그림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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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마리 비둘기가 사라졌다
라벤나의 어느 골목 안쪽의 작은 광장
한 잔의 커피를 마시는 사이
나의 시간이 먼저 비둘기와 함께 사라지고
나도 곧 사라질 시간
아직은 물을 뿜지 않는 분수와 눈을 맞춘다
사랑하기엔 이른 시간이라오
라벤나에서 나는 두 발로 걷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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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는 현재 오후 3시를 향하고 있다. 라벤나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1시간 남짓 자유시간을 갖고 있는데 나는 휴식시간으로 쓰기로 하고 조용한 카페를 찾았다. 건물로 둘러싸인 작은 광장 가운데 작은 분수가 있고 비둘기 두 마리가 나외 비슷한 처지인지 한가한 오후를 즐기고 있다. 자유시간이 끝나면 다시 버스를 타고 피렌체로 이동하게 된다(피렌체에서 2박, 그리고 로마에서의 2박이 남은 일정이다).

라벤나는 인구 17만의 작은 도시로 피렌체의 절반 크기다. 한때는 이탈리아의 중심도시였는데 6세기가 전성기였으니 ‘오래 전‘이란 말도 멋쩍을 정도로 오래 전이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단테의 무덤이 있기 때문. 설명을 들어보니 단테의 유골이 발견된 것도 사후 훨씬 나중의 일이다. 피렌체에서 추방된 단테가 정치적 망명자로 여러 도시를 전전하다가 라벤나에 안착한 것이 1318년, 그의 나이 53세 때의 일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1321년에 세상을 떠났다. 1302년 피렌체를 떠난 지 20년, 그는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1315년 피렌체가 사면를 조건으로 그의 귀환을 제안했지만 단테는 거부했다).

잠시 주문한 커피맛을 보았다. 에스프레소가 이탈리아식 커피이고 에스프레소에 물을 탄 게 아메리카노인데,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니까 에스프레소 커피에 더운 물을 함께 가져다 준다. 물을 부어서 셀프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마시는데 맛이 좋다.

단테의 무덤과 접하여 아주 크지는 않은 단테박물관이 있었다. 원래는 수도원 건물이라고 하는데 그 일부를 단테박물관으로 쓰고 있었다. 짐작에 생가가 있는 피렌체에는 훨씬 큰 규모의 문학관이 있을 것이다. 피렌체는 단테의 무덤도 마련하여 사후의 단테라도 귀환시키려 했지만 실패했다. 곧 피렌체에는 단테의 빈 무덤이 있다. 단테의 삶이 반으로 쪼개졌던 것처럼 사후의 삶도 피렌체와 라벤나가 나눠갖고 있는 셈이다.

단테의 무덤을 전후로 방문한 곳은 라벤나의 몇몇 성당들이다. 특히 비잔티움 양식의 모자이크화로 유명한 산비탈레 성당을 아침에 찾았는데 대단한 규모는 아니었지만 정교한 모자이크화들이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빈의 화가 클림트가 영향을 받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오늘로써 절반의 일정이 마무리된다. 다행히 오늘은 빡빡하지 않은 일정이어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바람이 조금 불지만 쾌청한 오후. 라벤나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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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돌라를 타고 베니스의 수로를 지나는 동안 사공(곤돌리에)이 몇몇 건물을 가리키며 안내를 한다. 내가 들은 개인집은 두 곳인데, 마르코 폴로와 카사노바의 집이다. 두 사람은 베니스가 낳은 대표적 명사이기도 하다. 이유는 다르지만 감옥살이를 한 점도 공통적이다. 카사노바의 탈옥 경험이 차이라면 차이일까.

오스트리아 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대표작에 <카사노바의 귀향>이 있고 강의에서 몇 차례 읽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탈리아 문학기행에 카사노바를 포함하지 않은 건 무엇보다도 그의 회고록이 절판 상태여서다. 현재 참고할 수 있는 건 슈니츨러의 소설과 츠바이크의 평전 정도.

카사노바의 회고록은 <카사노바 나의 편력>(한길사)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지만 절판되었다. 만약 절판되지 않았다면 그의 고향 베니스는 카사노바 투어의 의미 있는 장소가 될 수도 있었다. 편견 때문에 그를 배제한 건 아니라는 점을 굳이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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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베네치아)에서의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수상버스에 올랐다. 오전에는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생전에는 그녀의 저택)에서 컬렉션(피카소, 브라크, 뒤샹, 몬드리안, 마크리트, 폴록 등)을 감상하며 설명을 들었고 오후에는 산마르코 성당과 광장을 중심으로 베니스 투어를 진행했다.

자유시간에는 45분간 곤돌라를 타보기도 했다(흥정가였는데 6인승에 1인당 20유로를 지불했다). 가장 높은 전망탑에 올라가보기도 했다(엘리베이터 탑승비용이 1인당 8유로다). 낮에 잠시 해가 난 걸 제외하면 내내 흐린 날씨였지만 골목을 걸어다니며 베니스의 느낌을 몸에 저장하는 데 장애가 되지는 않았다. 하루종일 그림이나 사진 속 베니스에 들어선 느낌이었는데, 사실 베니스를 찾는 모든 여행자가 그러하리라. 어딘지도 모르고 우연히 베니스에 들를 수는 없을 것이기에.

이탈리아 여행의 길잡이라고 할 괴테 역시도 그러했다. 1786년 이탈리아 여행에 나선 괴테는 베로나를 경유하여 베니스에 들러서 2주 남짓 머물렀다. 최종 목적지는 로마였던 걸 고려하면 베니스에서 꽤 긴 시간을 보냈다고도 할 수 있다. 베니스를 배경으로 한 가장 유명한 작품은 내가 아는 한,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이다(번역본은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들고 왔다). 산마르코 광장에서 괴테의 이탈리아기행과 토마스 만에게서 베니스가 갖는 의미에 대해 짧게 소개했다.

언제 다시금 베니스를 찾을 날이 있을까. 햇빛이 쨍쨍한 어느 날에 흐린 날의 베니스를 상기할 수 있기를. 이제 우리는 단테가 묻혀 있는 곳 라벤나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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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맘 2019-03-07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종일 베니스의 그림 엽서 속으로 들어선 느낌이라 하시니,
와 얼마나 좋았으면,싶으네요ㅎㅎ
저 사진이 쌤 맘속에 저장될 흐린날의 베니스인가봐요~
두고두고 상기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