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그렇다. 프루 쇼의 <단테의 신곡에 관하여>(저녁의책). 이탈리아 여행에서 단테의 생가(추정이라고 한다)와 무덤까지 방문한 뒤라 단테에 관한 책이 더 각별하게 여겨진다. 여행 전에 나왔더라면 역시나 책가방에 넣었을 책인데, 뒤에 나온 것도 나쁘진 않다. 이제 <신곡>에 대해서도 다시 읽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단테에 관해서는 기본 참고문헌만 약 5만 종에 이른다고 하는데, 당연하게도 그걸 두루 섭렵하는 건 전공자도 불가능하다. 하물며 일반 독자라면 어디까지 읽을 것인지 한정하는 수밖에 없는데, <신곡>의 번역본들을 제외한 <신곡> 읽기로는 <단테의 신곡에 관하여> 외에 이마미치 노모도부의 <단테 신곡 강의>(안티쿠스)와 월리스 파울리의 <쉽게 풀어 슨 단테의 신곡 지옥편>(예문) 등을 참고할 수 있다(이마미치 교수의 책이 품절된 게 아쉽다). 수년 전에 <신곡>을 강의하면서 관련자료들을 좀 읽었었는데, 기억을 더듬으며 다시금 업데이트하려고 한다. <단테의 신곡에 관하여>를 좋은 길잡이로 삼아야겠다... 


19. 0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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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의 '책과 생각'에 실은 칼럼을 옮겨놓는다. 이번 이탈리아 문학기행을 기획하게 해준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에 대해서 적었다. 당연히 여행가방에 넣고 갔던 책이었고, 현지에서 다시 음미해본 책이었다. 


















한겨레(19. 03. 15) 이탈리아 여행에서 찾은 위대한 것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통해 독일에서 일약 가장 유명한 작가가 된 괴테는 스물일곱의 나이에 바이마르 공국의 고문관으로 초빙받는다. 그리고 십년이 지난 1786년 가을, 중년의 초입에서 괴테는 오랫동안 벼르던 이탈리아 여행을 감행한다. 바이마르의 대공에게조차 행선지를 숨긴 비밀여행이었다. 이탈리아 로마를 목적지로 한 그랜드투어는 당시 유럽 귀족층의 유행이었고 괴테의 아버지도 결혼 전에 일년간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와서 이탈리아어로 쓴 여행기를 남겼다. 서른일곱 살 괴테로서는 더는 미룰 수 없는 필생의 과제가 이탈리아 여행이었다.


휴양지 칼스바트에서 출발한 괴테는 이탈리아 북부 볼차노와 트렌토를 거쳐서 베로나와 베네치아에 이른다. 그의 최종 목적지는 제국의 기억을 간직한 ‘세계의 수도’ 로마였는데 베로나에서 유적 가운데는 처음으로 원형극장을 보고서 경탄한다. 원형극장은 “민중들로 하여금 자신이 대단한 존재라는 기분이 들게 하고 자신들의 모습을 보고 스스로 즐기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평지에서 많은 사람이 무언가를 보려면 서로 높은 위치에 서려고 다투게 되지만 원형극장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모두에게 시야가 확보되는 극장에서는 모두가 주인이 된다. 괴테는 원형극장 자체가 ‘위대한 작품’이라고 말한다.


각자가 주인이 되는 원형극장은 이탈리아 여행의 목적과도 무관하지 않다. 괴테는 그 목적이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고 “본연의 나 자신”을 깨닫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위대한 것, 아름다운 것이라면 기꺼이 존경하려는 마음이 그의 타고난 성격이었다. 그렇다면 그에게서 행복한 삶은 그렇듯 위대한 것, 아름다운 것과 매일매일 접촉하면서 사는 삶일 수밖에 없다. 그가 오랫동안 로마를 꿈꿔온 이유다. 목표한 날짜에 로마에 닿기 위해 괴테는 피렌체를 포함해 여러 도시를 주마간산 격으로 지나친다. 그리고 마침내 로마에 입성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장관과 파괴의 흔적과 마주하여 경탄을 아끼지 않는다. 그는 마치 “커다란 학교”에 들어선 기분을 느낀다. 그러면서 “정신은 무미건조하지 않은 엄숙함과 기쁨이 넘치는 안정에 도달한다.”
















첫번째 로마 체류 기간까지를 다룬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1부는 실제 여행으로부터 30년이 지난 1816년에 출간된다(이탈리아 남부 여행의 기록까지 담은 최종판은 1829년에야 나온다). 여행시의 메모와 기록, 일기와 편지를 정리한 것이어서 세월의 경과에도 불구하고 생생한 실감이 구현되어 있다. 어쩌면 그 30년의 시간은 이탈리아 여행이 경험하게 해준 진정한 재생, 제2의 탄생에 견주면 사소한 의미만을 갖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경우 중요한 것은 언어가 아니라 경험이다. <이탈리아 기행>이 여러 종의 번역본으로 나와 있지만 이 책의 용도는 읽기 위한 것이 아니라 손에 들고 다니기 위한 것이 아닐까.


이달초에 이탈리아 남부여행까지는 따라가보지 못했지만 밀라노를 경유하여 베네치아에서 로마까지 괴테의 동선을 따라가며 <이탈리아 기행>을 손에 들고 수시로 펼쳐보았다. 괴테처럼 장기 체류를 감행할 형편은 아니었지만 위대한 것과 아름다운 것이 실재한다는 것을 체감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괴테는 “마흔이 되기 전에 위대한 것을 연구하고 습득해서 나 자신을 성숙시키고자 한다”고 서른일곱에 적었다. 각자가 자신을 성숙시키는 과제에 나이 제한이 있을 성싶지 않다. 마흔 이후에도 우리는 위대한 것을 연구하고 습득할 필요가 있다.


이탈리아 여행 이후에 완성한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서 괴테는 예술과 여행 경험이 시민계급이 귀족계급과 대등하기 위해서 갖춰야 할 필수적인 요건이라고 말한다. <이탈리아 기행>은 그 경험의 가치를 실증해준다.


19. 03. 15.
















P.S. <이탈리아 기행>이 책으로 출간된 것은 실제 여행으로부터 30년 뒤인데(기사에서는 '20년 뒤'라고 나갔는데 착오다), 그것은 괴테가 1811년부터 발표하기 시작한 자서전 <시와 진실>의 연장선상에 놓이기 때문이다(전체 4부로 구성된 <시와 진실>은 괴테 사후인 1833년에 완간된다). <시와 진실>은 출생부터 1775년 바이마르에 부임하기까지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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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바티칸에는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가 있고
갈매기도 있다 천지창조 천장화에서
아담과 하느님이 손가락을 갖다댈 때
아 이제 보니 그건 정지화면인지
스톱모션인지 창조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천장에서만
고개를 젖힌 인파를 내려다보며
포즈로만
그러다 밖으로 나오면
베드로성당 광장을 나는 갈매기
어쩌면 바다갈매기
끼룩끼룩
천상의 소리는 아니어도
정겹게 들린다
미켈란젤로는 누굴 모델로 그렸을까
공중부양한 하느님은
누가 받치고 있었을까
그러고 보면 아담이야말로
편안한 자세로 손가락만 내밀고
그게 시작이라는 거지
아담의 창조
그때도 성당 광장에서
천지장조의 바깥에서
갈매기가 끼룩끼룩
천지창조의 순간
미켈란젤로가 주저앉은 콧등에
땀을 흘릴 때
로마 바티칸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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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공지다. 나보코프의 <창백한 불꽃> 출간을 기념하여 4월 4일 저녁에 특강을 진행한다. 관심 있는 분들은 신청페이지(http://blog.aladin.co.kr/culture/10731743)에 댓글로 신청하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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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a9609 2019-03-14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강이 당첨이 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나~ 행운의 여신이 내게 임하길 기도해봅니다~^^

로쟈 2019-03-14 22:16   좋아요 0 | URL
초대인원이 많아서 가능하실 것.~

김진홍 2019-03-15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명 신청합니다. 강의도 잘 하고 글도 잘 쓰고 아는 것도 많고 항상 부럽습니다.

로쟈 2019-03-15 16:45   좋아요 0 | URL
아, 신청은 링크된 신청페이지에 해주세요.~
 

이번주 주간경향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이탈리아 문학기행 중에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다시 읽고 적었다. 비록 직접적인 배경인 리도 섬에까지 가보지는 못했지만 베네치아의 풍광 속에서 작품의 주제를 음미해볼 수 있었다.  


















주간경향(19. 03. 18) 휴양지에서 만난 아름다운 소년


이탈리아 문학기행에 나서 베네치아에 들렀다. ‘바다의 도시’ 베네치아를 다룬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필두로 해 많이 있지만 20세기 작가의 작품으로는 단연 토마스 만의 중편소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1912)을 꼽을 수 있다. 독일문학 작품임에도 그의 책을 가방에 챙겨온 이유다. 나이는 차이가 나지만 주인공인 중견작가 아셴바흐에게는 집필 당시 30대 후반이던 토마스 만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그리고 독자는 그 아셴바흐의 모습에서 자기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므로 작가와 독자는 그렇게 독서를 매개로 이심전심이 된다.

토마스 만의 또 다른 대표작 <토니오 크뢰거>(1903)에서 주인공 크뢰거가 뮌헨에서 만의 고향인 뤼벡과 햄릿의 고향 헬싱괴르로의 동선을 보여준다면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에서 아셴바흐는 뮌헨에서 남쪽 베네치아로 떠난다. 북쪽으로의 여행이 자기인식과 극복을 위한 여정이라면 남쪽으로의 여행은 탈출과 방임을 위한 여정이다. 평소 창작에 대한 압박에 시달리던 아셴바흐는 기분전환에조차도 소극적이었지만 어느 날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다는 충동에 몸을 맡긴다. 그가 향한 곳은 아드리아해의 한 섬. 바로 베네치아의 리도 섬이다. 



휴식차 떠난 여행이었지만 아셴바흐는 예기치 않게도 휴양지에서 완벽한 외모의 미소년 타치오을 보게 된다. 놀랄만큼 아름다운 소년에게서 에로스 신까지 떠올리며 아셴바흐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정말이지 나를 기다린 건 바다와 해변이 아니었어. 네가 여기 있는 동안 나도 여기에 있어야겠어!” 그렇지만 그는 강렬한 유혹을 뒤로 하고 섬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만약 그가 결심한 대로 섬을 떠났다면 이 소설은 이성과 의지가 관능과 정념의 유혹을 극복해낸 이야기로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플라톤의 사랑관을 그대로 반복한 ‘플라토닉 러브’의 서사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셴바흐는 운명의 짓궂은 희롱에 말려든다. 호텔에서 짐을 엉뚱한 곳으로 부치는 바람에 그의 체류는 부득이하게 연장된다. 떠나려던 숙소로 다시 되돌아온 아셴바흐는 타치오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열정에 빠져든다. 그의 사랑은 일방적인데, 거의 온종일 가까이에서 타치오를 바라보면서도 아셴바흐는 타치오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다. 오십을 넘긴 중년의 작가는 미소년을 오직 바라보기만 하면서 숭배한다. 아셴바흐는 타치오의 존재 자체에 압도당하며 도저한 열정에 몸을 떤다. 베네치아에 전염병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떠나가는 와중에도 사랑에 빠진 자로서 그는 타치오만을 염려하며 타치오가 떠날까봐 두려워한다. 마침내 아셴바흐는 전염병에 걸려 숨을 거둔다는 것이 소설의 결말이다. 

주인공의 죽음으로 끝나는 줄거리만 보자면 정념의 파국을 보여주는 교훈적인 작품으로도 읽힌다. 하지만 토마스 만의 계산법은 복잡하다. 그는 아셴바흐의 입을 통해서 그러한 예술의 교육적 이념에 대해서도 냉소를 아끼지 않는다. “예술을 가지고 대중과 젊은이를 교육하겠다는 생각은 해서는 안될 대담한 발상이야.” 천성적으로 타락의 심연에 빠져드는 성향은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이다. 토마스 만 자신의 동성애로 인한 은밀한 고충을 엿보게 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이성과 욕망 사이의 항구적인 갈등에 대한 성찰도 이끌어낸다. 

베네치아의 유혹을 뒤로 한 채 나는 베네치아를 빠져나오는 바포레토(수상버스)에 바삐 몸을 실었다. 

19. 0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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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dai 2019-03-14 18: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8. 03. 13이라 하셔서 잠시 작년에 쓰신 글인 줄 알았습니다.ㅎ

로쟈 2019-03-14 22:17   좋아요 0 | URL
네,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