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코입이 멀쩡하면서, 열도 나지 않은 상태에서 몸의 통증을 느끼는 건 아주 드문 일이라 며칠째 희소한 경험을 하고 있다. 근인은 다른 데 있겠지만 원인을 따지자면 몸이 시간을 겪는 일의 한 가지가 아닐까 싶다. 시간에 대한 의식을 자주 할 수밖에 없는 나이가 중년이어서 그런 생각이 드는지도 모르겠고(노년이라면 느낌이 또 다를 듯싶다). <당신의 시간을 위한 철학>(경당, 2015)이란 제목에 눈길이 가는 것도 자연스럽다. 왠지 '당신'에 호명된 것 같으니까.  

 

 

찾아보니 저자는 1938년생으로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버클리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서 오리건대학에서 영문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현재는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작은 (영문학 혹은 비교문학 전공이라는 경력에 비추어 이채로운) <디자인과 진실>(북돋음, 2011)인데, 2010년에 펴낸 것이니 72세 때이다. <당신의 시간을 위한 철학>(원제는 <시간과 삶의 기술>)은 그보다 훨씬 앞서 1982년에 출간한 책이다(영어판은 현재 절판됐다). 저자가 44세 때. 실제로 집필한 것은 안식년을 맞았던 1978년과 1979년에 걸쳐서라고 한다. 마흔이라는 (요즘으로는) 인생의 반고비를 넘어가면서 쓴 시간에 대한 성찰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뒷표지에는 '이 시대의 몽테뉴, 로버트 그루딘의 자유에 관한 단상'으로 되어 있지만 그 정도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저자로 보이지는 않는다. 번역본이 나오지 않았다면 책의 존재는 물론 저자에 대해서도 내가 알 일은 거의 없었을 것 같다. 그럼에도 손앞에 놓인 책의 현존은 저자의 삶과 사색으로 바로 이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갑작스레 인연이 맺어진 것과 같다. 시간의 어느 고비에 이런 인연이 운명처럼 숨어 있었던 것일까.

 

처음부터 읽을 필요가 없는 사색록인지라 잠시 이쪽저쪽 훑어보다가 읽은 대목(실상 이런 대목이 미더워서 이 페이퍼까지 적는다).

미래는 친절한 이방인과 같아서, 예의 바르고 인내심 많으며, 우리와 친해지려고 영원히 노력하지만 영원히 퇴짜를 맞는다. 우리가 하루에 30분씩 운동한다면 우리의 힘과 건강, 아름다움, 기대수명은 크게 향상될 것이다. 하루에 한 시간씩 공부한다면 비교적 빨리 외국어를 배우고 방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새로운 직업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루에 1달러씩 현명하게 투자한다면 30년 후에는 상당한 부를 주무르게 될 것이다. 만약 스스로가 자유 시간을 계획한다는 너무나도 단순한 영광을 부여한다면 우리는 전혀 새로운 자유의 차원 속에서 우리 자신을 확장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우리는 이 가운데 하나도 해내지 못한 채, 미래를 몹시 경멸하고 우리 자신을 심하게 무시해버린다. 대부분의 우리에게 미래의 자신을 대면하는 건 매우 불쾌한 경험일 것이다. 굽은 팔다리, 진물 나는 눈, 늘어진 턱살을 떠는 자신의 영혼을 본다는 시각적 충격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건 부끄럽게도 우리가 날마다 부당하게 취급했던 개인을 만난다는 도덕적 충격 때문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미래의 자신과의 조우를 자신이 부당하게 취급한 이방인과의 만남으로 묘사한다. 그 충격은 도덕적 충격이다! 이 정도면 물론 일독해도 좋은 성찰이고 에세이다. 시간에 관한 좋은 에세이의 하나로 꽂아둘 준비가 나는 돼 있다. 당신은 어떤지?..

 

15. 0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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