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책이지만, 부제는 '세상을 보는 가장 큰 시선들의 대립'이다. 샤피크 케샤브지의 <왕비와 수도사와 탐식가>(궁리, 2015). 이름에서 어림할 수 있지만 저자는 인도인이다(인도인이지만 케냐 출생이고 스위스에서 목사와 교수로 재직했다 한다). 찾아보니 영어권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저자로 좀 알려진 듯하다. 책은 불어로 썼다.
그렇다고 국내에 처음 소개된 저자는 아니다. 이미 <세계 종교 올림픽>(궁리, 2008)이 나왔었기에. 원제는 <임금과 현자와 광대>. 제목만 보아도 <왕비와 수도사와 탐식가>의 짝이란 걸 알 수 있다. 직접 이어지는 내용은 아니더라도. 그리고 생소한 저자를 같은 역자가 계속 옮긴 걸로 보아 역자가 적극적으로 출간을 주선한 게 아닌가 싶다(역자는 독일에서 공부하고 프랑스의 고등학교에서 종교문화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어떤 효용에 주목한 것일까.
슬하에 네 자녀를 두었던 샤피크 케샤브지는 2005년 백혈병에 걸린 만 13세 아들 시몽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게 된다. 그 경험 이후로 그는 ‘삶과 죽음’을 주제로 한 우리 인생의 이야기를 구상하기 시작했고, 10년여 간의 성찰과 숙고의 시간을 지내고서 이 책 <왕비와 수도사와 탐식가>를 펴내었다. 정치학과 신학을 공부하며 다양한 철학과 사상들에 정통한 저자는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의 이야기 형식을 책 속에 도입하여, 자칫 어렵고 묵직할 수 있는 우리네 삶의 크고 작은 철학적 주제들에 대한 사상·종교의 입장과 논쟁점, 죽음과 이별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인생의 희비를 오가는 사람들의 심정 등을 심도 있게 묘사하며 객관적이고도 재미있는 종교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핵심은 '종교 이야기꾼'이라는 데 있는 듯싶다. 특정 종교의 편에 서지 않고서 다양한 신앙과 신념들간의 토론을 주선할 수 있는 역량이 종교 이야기꾼의 역량이다. 이 역량은 머리가 굳은 기성세대보다는 한창 성장하는 청소년들에게 더 요긴하게 다가갈 듯싶다. 혹 역자가 프랑스 학생들에게 이 책을 교재 삼아 강의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는 종교판(내지는 신념판) <소피의 세계>로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왕비와 수도사와 탐식가>의 토론 배틀 참여자는 각각 일심론과 일체론, 유물론의 세계관을 대표한다. '아무 생각없이 산다'주의자가 아니라면, 이 '신념토론대회'의 참관인이 돼 보아도 좋겠다...
15. 05.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