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S. 엘리엇의 시집이 오랜만에 나왔다. <사중주 네 편>(문학과지성사)로 네 편의 장시와 희곡을 묶었다. 아마 과거 전집판에만 실렸던 작품들. 모더니즘의 대표 시인이지만 번역본의 부재로 강의에서 다루기가 어려웠는데(물론 번역된다고 해도 시는 강의에 많은 제약이 따른다) 일단 나온 만큼 검토해봐야겠다.

사실 더 기대한 건 ‘황무지‘의 새 번역본인데, 이번 시집에는 빠졌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프르프록의 연가‘(제이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사랑노래)는 미국 대표시선집 <가지 않은길>에 따로 실려 있어서 역시 다루기에 불편하다. 분량으로는 한권에 다 담을 수 있는 시들이다.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엘리엇의 에세이와 비평 선집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역시나 오래 전에 절판된 전집에나 들어 있었다. 20세기 시인 엘리엇이 이제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인지. 그럼에도 세계문학 강의자의 입장에서 그 공백이 유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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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의 새 산문집이 번역돼 나왔다.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푸른숲). 중국 당대문학 간판작가의 한 명이면서 한국에서는 가장 많이 읽히는 중국작가의 문학견습기로도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기회가 닿아서라기보다는 기회를 만들어서 그의 장편소설을 대부분 강의에서 다루었는데, 내가 내린 결론은 그가 소설가라기보다는 이야기꾼이라는 것이다. 현대소설로서의 기대와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야기로서는 얼마든지 제값을 할 수 있는데 그의 ‘소설‘들이 그렇다.

소설과 산문을 통틀어서 그의 가장 좋은 책은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문학동네)인데, 나는 그의 산문(이 경우에는 에세이다)이 소설들과 합쳐져야 제대로 된 작품을 구성한다고 생각한다(에세이와 같이 합해져야 작품을 구성하는 쿤데라의 프랑스어 소설들도 비슷한 경우다). 다르게 말하면 소설의 공백을 채우고 있는 게 위화의 에세이다(<형제>의 공백을 채우고 있는 게 <사람의 목소리>다. 이 둘은 합쳐져야 제대로 된 작품을 구성한다).

공식으로 표현하면 ‘위화의 소설=이야기+에세이‘이고, 통상 소설로 분류되는 그의 작품들은 여기서 ‘이야기‘에 해당한다. 그의 산문이 소설과 별도로 일가를 이룬다는 견해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그건 중국 현대소설이 충분히 숙성(성숙)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고(당대 사회현실을 묘사하고 재현한다는 당위론의 차원에서), 다른 외인이 있어서일 수도 있다.

내가 소설로서 더 읽고 싶은 건 <마사지사>의 작가 비페이위의 신작이다. 위화가 무엇을 더 쓸 수 있을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비페이위는 기대를 갖게 한다. <마사지사> 정도의 작품을 써내긴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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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2 0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로쟈 >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13년전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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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9-09-06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제목부터 마음에 안들어서ㅎ
감자와 고구마가 등장하는 시를 좋아하신다는 말에
감자와 고구마와 샘의 접점이 뭘까 생각해봄.

로쟈 2019-09-06 22:36   좋아요 0 | URL
감자, 고구마의 유익에 감사해야.
 

허먼 멜빌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얼마전에 새번역 <모비딕>(1851)도 출간되었지만 내게는 올해 멜빌 강의 일정이 없다. <필경사 바틀비>에 대해서만 한 차례 강의하는 것 말고는. 지난해 미국문학 강의에서 할 만큼 했기 때문인데, 그래도 여전히 숙제는 남아있다. <모비딕> 이전과 이후에 대해서 다루는 것. <모비딕> 앞으로는 다섯 편의 장편이 있고(<타이피>만 예전에 번역본이 나왔었다) 뒤로는 두세 편이 있다. 먼저, <모비딕> 이전.

타이피(1846)
오무(1847)
마르디(1849)
레드번(1849)
하얀 자켓(1850)

이들 가운데 첫 소설 <타이피>만 유일하게 해양모험소설로 좀 팔린 것으로 안다(당시 독자들은 실제 모험담으로 생각했다고). 그에 고무돼 연거푸 작품을 써댔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고, 알려진 대로 <모비딕>은 재앙과 같은 실패작으로 남았다. 물론 얼만큼 팔렸느냐는 기준으로. 이후 소설에 대한 열정을 지속적으로 갖기란 어려운 일이었고 멜빌은 1866년부터 세관 공무원생활을 20년간 하게 된다. <모비딕> 이후의 주요작은(<빌리버드> 같은 후기 문제작을 빼면) 두 작품이다.

피에르 혹은 모호함(1852)
사기꾼(1857)

<피에르, 혹우 모호함>(시공사)이 옃년전에 출간되었는데 같은 역자에 의해 <사기꾼, 그의 가면무도회>(지식의날개)도 이번에 나왔다. 19세기 미국문학을 다시 다룰 순번이 되면(2-3년 뒤가 되지 않을까 한다. 세계문학강의가 3-4년의 로테이션 주기를 갖고 있어서) 필히 읽어보려고 한다. 페이퍼를 예고편으로 미리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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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도서관에서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계기 삼아서 알베르 티보데의 <귀스타브 플로베르>와 <미친 사랑의 서>에서 플로베르 장을 읽었다. 플로베르와 그의 정부 루이즈 콜레의 관계에 대해서 좀더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주고 받은 편지가 플로베르 서간집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보이는데(플로베르 서간집은 영어판의 경우 두 권으로 나와있다), 조르주 상드와 주고받은 편지와 비교해서 어느 쪽이 더 많은지 모르겠다(짐작엔 둘다 책 분량은 된다).

<감정교육>의 아르누 부인의 모델인 엘리자 슐레쟁제가 플로베르 인생의 여인으로 얘기되지만 엘리자는 꿈속의 연인이자 문학적 형상에 가깝고 실제 현실에서의 연인은 루이즈 콜레였다. 두 사람의 관계는 1846년부터 대략 8년간 지속되었다. 엘리자와 루이즈, 모두 1810년생으로 플로베르보다는 열한살 연상이다. 말년에 긴밀한 교분을 나눈 조르주 상드는 1804년생으로 플로베르보다 열일곱 살이 더 많다. 이렇듯 연상의 여인과 연하남의 관계가 프랑스식 ‘감정교육‘의 기본모델이다(<프랑스식 사랑의 역사> 참조).

플로베르보다 더 적극적인 정부였던 루이즈 콜레와의 관계는 서로에 대한 환멸과 증오로 일단락된다. 결혼을 혐오했던 플로베르는 가끔씩의 만남과 편지교환 상대로서의 정부만을 필요로 했을 뿐이었다(여러 가지로 플로베르는 카프카의 롤 모델이다). 플로베르의 허락 없이 그가 창작에만 열중하며 칩거해 있던 크루아세를 방문했다가 콜레는 냉대를 받기도 했다. 아무튼 슐레쟁제와 콜레, 그리고 상드를 플로베르 인생의 세 여인으로 꼽을 수 있을 듯하다(어머니와 조카딸 같은 가족을 제외하면). 이 여성들이 플로베르의 작품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는 나중에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오후에 몇 자 적으려고 했던 글인데 핸드폰을 몇 시간 유실했다가 찾게 되는 바람에 늦어졌다. 피로하기도 하여 짧게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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