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왕가위와 레르몬토프

역시나 14년 전에 올려놓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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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4 06: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4 2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로쟈 > 병사 이반 촌킨의 삶과 이상한 모험

14년 전에 쓴 글이다. 보이노비치의 <병사 이반 촌킨의 삶과 이상한 모험>(문학과지성사)은 재작년(2018)에야 번역돼 나왔다. 그리고 그해 작가 보이노비치도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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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가 평소보다 적은 주임에도 이번주의 라인업 역시 만만찮다. 플로베르와 졸라, 톨스토이, 나보코프, 제인 오스틴 강의가 줄지어 있어서다. 게다가 톨스토이의 단편들은 처음 다루는 작품들이어서 방심할 수 없다. 작품과 항께 읽을 거리들이 있는 것.

내달부터는 양재도서관에서 러시아문학 강의를 진행할 예정인데(6주 일정이고 아직 공지가 나가지 않았다) 톨스토이도 이번에는 단편집을 골랐다. 중장편 위주로만 강의해온 터라 조금 다른 작품을 고르고 싶었다. 단편집 외에도 희곡이 선택지가 될 수 있지만 그의 희곡은 현재 <어둠의 힘>과 <계몽의 열매> 정도만 읽을 수 있는 상태. 세계문학전집판으로 나올 수 있는지는 불투명하다.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 강의책을 차례로 낼 예정인데 준비상황으로는 올해 도스토예프스키. 내년에 톨스토이가 될 것 같다. 규모에 대해서 확정짓지 않아서 전작에 가까운 수준으로 다룰지 대표작만 다룰지 미정인데, 아무튼 내달부터 도스토예프스키 전작 읽기 일정에 들어간다. 내년이 탄생 200주년이라 나대로 뭔가 의미있는 매듭을 지어보고 싶다.

이번에 진행하는 톨스토이 강의도 전쟁과 평화는 4주 강의라 나름대로는 최대한 예우하는 게 된다. 언젠가 대학에서 4주간 읽은 적이 있는데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그때의 강의가 부끄럽게 여겨질 만큼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해에 진전이 있었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는다.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 강의를 책으로 내게 되면 무엇이 과제로 남을까. 러시아문학 강의도 바야흐로 여생만 남겨놓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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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마음 2020-01-07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현대문학과 함께 도스토예프스키 올해 저에게는 큰선물입니다.작년까지 공부하는게 있어서 책읽을 시간이 부족했는데 작년에 계획한 공부를 끝냈기에 올 한해는 편하게 책읽을수 있는데 때마침 로쟈님 책이 계속나온다니 기쁠 따름입니다^^

로쟈 2020-01-08 08:4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wingles 2020-01-07 2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나오기 전에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를 열심히 읽어놔야 겠군요^^

로쟈 2020-01-08 08:43   좋아요 0 | URL
^^

stella.K 2020-01-08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양재도서관요? 저희 동넨데...

로쟈 2020-01-08 22:13   좋아요 0 | URL
들러보셔도.~
 
 전출처 : 로쟈 > 브로드스키의 성탄절

14년 전, 러시아식으로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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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1358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투르게네프의 소설들을 다시 강의하는 차에 첫 장편 <루진>에 대해서 적었다. 투르게네프의 소설들을 다시 강의하면서 그간에 견해를 일부 조정할 수 있었던 게 성과다. 리뷰에도 일부 반영하고 있다...
















주간경향(19. 12. 30) 자신의 운명 탄식하는 ‘잉여인간의 초상’


한국 근대문학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 이반 투르게네프는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본격적인 문을 연 작가로 평가된다. 애초에 낭만적 서사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하지만 농노제 하의 러시아 현실을 다룬 단편집 <사냥꾼의 수기>(1852)로 명성을 얻는다. <사냥꾼의 수기>가 불러일으킨 반향은 1861년에 단행된 농노제 폐지에도 기여했다고 알려진다.


장편소설 작가로 투르게네프의 이력은 <루진>(1856)부터 시작되는데, 이후 마지막 장편소설 <처녀지>(1877)에 이르기까지 투르게네프는 여섯 편의 사회소설을 통해 19세기 후반 러시아 사회의 실상을 기록했다. 다만 그가 그려낸 실상은 주로 러시아의 시골 영지로 제정시대의 수도 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다룬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1866) 같은 작품과는 차이를 보인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이 발자크와 디킨스 같은 서구 작가들의 소설에서 많은 영감을 얻으면서 동시에 러시아적 변형을 보여준다면, 투르게네프의 소설은 러시아식 사회소설의 전형을 발명했다고 여겨진다.


러시아식 사회소설이라는 표현은 투르게네프가 ‘잉여인간’이라는 독특한 형상의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가 <루진>에서 그려내고 있는 것 역시 대표적인 잉여인간이라고 할 주인공 루진의 초상이다. 루진은 서른다섯 살가량의 인물인데 한 부유한 여지주의 시골 별장에 예기치 않은 손님으로 처음 등장했을 때 좌중을 압도하는 지성과 논리적인 언변으로 사람들을 매혹시킨다. 특히 여지주 다리야 미하일로브나의 딸 나탈리야는 루진의 웅변에 감동해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다. 나탈리야는 루진이 가진 높은 이상을 존경하며 급기야는 열렬한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루진과 나탈리야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쓴 나탈리야는 루진의 아내가 되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정작 루진은 뒤로 물러서며 운명에 순종해야 한다고 말한다. 풍부한 지적 교양과 고상한 이상을 품고 있음에도 루진은 그것을 현실로 옮겨놓을 수 있는 의지와 결단력을 갖추지 못한 인물이다. 그는 나탈리야를 떠나며 남긴 편지에서 자신의 운명에 대해 이렇게 탄식한다. 

“그렇습니다, 자연은 내게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내 힘에 걸맞은 일을 아무것도 못 하고, 어떠한 유익한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죽을 겁니다. 모든 풍부한 재능은 헛되이 사라지고, 나는 내가 뿌린 씨앗의 열매를 보지 못할 겁니다.” 

이렇듯 무력해 보이는 잉여인간의 형상은 1860년에 작가가 추가한 에필로그에 의해서 그 의미가 복잡해진다. 에필로그에서 루진은 1848년 6월 프랑스 파리의 바리케이드 봉기에서 정부군의 총에 맞고 죽는다. 이국의 실패한 혁명에 참여해 익명으로 죽는 루진은 그의 예언대로 오직 씨앗만 뿌렸을 뿐 열매는 보지 못한다. 종종 무의미한 죽음으로 폄하되기도 했지만 <루진>의 예기치 않은 결말은 혁명, 혹은 사회변혁의 역량이 충분하지 않은 시기에 가능한 선택지를 시사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천고의 뒤에 올 초인을 위해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렸던 시인을 나는 루진과 겹쳐서 떠올린다. 


19.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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