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중세문학의 고전이 출간되었다. '중세 러시아의 영웅 서사시' <이고리 원정기>(뿌쉬낀하우스). 아주 오래전 러시아문학사 시간에 접했던 기억이 난다. 러시아 중세문학(러시아에서는 '고대문학'이라고 부른다) 가운데 돌올한 작품으로 후대에 나온 작품보다 문학성이 뛰어나 위작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12세기 후반, 중세 러시아의 이고리라는 공후의 실패한 원정을 다룬 작품이다. 오늘날 러시아의 조상격인 키예프 루시의 공후였던 젊은 이고리 공은 자신들을 침입하는 이교도 유목민에 대해 군사를 일으켜 원정에 나섰으나, 오히려 패배하여 포로로 2년이나 억류되었다가 탈주했다. 500행 정도의 시적 작품으로 재구성될 수 있는 이 사회적 영웅 서사시는 이고리의 원정에 동행했으며 궁정시인의 신분으로 추정되는 익명의 작가가, 원정 실패 직후 이고리 공의 패배를 분열된 키예프 루시의 극단적 상황의 한 단면으로 인식하고 공후들의 내분 종식과 외적에 맞선 단합을 주창하는 내용으로 완성시킨 작품이다."


고대 러시아문학과 관련해서는 러시아의 국민석학 리하초프의 <고대 러시아문학의 시학>(한길사)이 번역돼 있다. 국내서로는 조주관 교수가 <고대 러시아문학의 시학>, 같은 제목의 책을 펴냈다. 조주관 교수는 <고대 러시아문학 선집>(열린책들)도 번역했는데, <이고리 원정기>로 완역돼 있거나 발췌역 되어 있을 것이다. 절판된 지 오래 된 책.
















그밖에 러시아학자 구드지의 <고대 러시아문학사>(한길사)와 김문황 교수의 <고대 러시아문학사> 등이 러시아 고대문학에 관한 참고서들이다. 일반 독자가 손에 들 일은 거의 없을 듯싶지만(나 또한 강의할 일이 없기에 장서로만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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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국립극장 소식지 미르(364호)에 실은 글을 옮겨놓는다. 애초에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발레 공연과 관련하여 원작 해제 성격의 글을 청탁받았으나 공연은 코로나 사태로 취소되어 글만 남았다. 에이프만의 발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유튜브에서 일부 장면을 볼 수 있다...


미르(20년 5월호)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의 모색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서양문학사의 3대걸작을 꼽으면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함께 바로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들었다. 개인적인 선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건 이 작품들이 부친살해라는 공통주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로이트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해설 제목이 '도스토옙스키와 부친살해'이기도 하다. 이때 부친살해는 단지 한 가지 주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류사의 전개와도 연결되는 핵심 주제다. 















인류사의 전개라고 하면 다소 거창하지만 소포클레스보다 조금 더 거슬러올라가서 그리스비극의 첫번째 거장 아이스킬로스와 만나보자(알려진 대로 그리스비극의 계보는 아이스킬로스에서 소포클레스로, 다시 에우리피데스로이어진다). 아이스킬로스의 대표작 '오레스테이아 3부작'은 언속적인 복수혈전의 드라마다. 3부작을 구성하는 첫 작품 <아가멤논>은 트로이 원정을 떠난 그리스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이 딸을 제물로 바친 일에 앙심을 품고서 10년만에 돌아온 남편을 아내가 살해하는 이야기다. 두번째 작품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에서는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가 세월이 흐른 뒤 아버지에 대한 복수로 어머니를 다시 살해한다. 마지막 작품 <자비로운 여인들>에서는 복수의 여인들에게 쫓기던 오레스테스가 아테네 법정에서 무죄판결을 받고서 풀려난다. 

결과적으로 아이스킬로스의 3부작은 아들이 아버지의 복수를 통해서 부권적 질서와 법의 통치체제를 구축하는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이에 대해 엥겔스는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라고 평했다. 인류사가 원시 모권 사회에서 부권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을 아이스킬로스의 비극이 포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류사의 단계에 대응하여 부친살해 이전에 모친살해가 있었다. 모친살해와 함께 여성이 정치적 장에서 배제되고 권력은 아버지와 아들의 상속-계승관계로 환원된다. 부친살해라는 주제는 이러한 문명사적 전환을 배경으로 한다.

프로이트가 3대걸작으로 꼽은 <오이디푸스왕><햄릿><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부친살해 테마의 변주이면서 각 국면에 대응한다. <오이디푸스왕>과 <햄릿>이 부친살해 테마를 각각 자기인식의 과정과 개인으로서의 자기발견에 대응시키고 있다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부친살해 이후 형제애(인류애)의 가능성 탐색이라는 과제를 다룬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대한 가장 흔한 독법은 이 작품이 무신론의 도전에 맞서 기독교적 인간 구원론을 변호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주제는 좀더 복잡하게 해석돼야 한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는 먼저 타락한 아버지 표도르가 등장한다. 호색한인 그는 두 아내에게서 얻은 세 아들, 드미트리와 이반, 그리고 알렉세이를 방치했는데, 이들이 장성하여 차례로 그를 찾아온다. 장남 드미트리는 어머니의 유산 문제로 아버지와 법적 분쟁을 벌이던 차에 아버지가 점찍은 여성을 두고서도 아버지와 연적으로 대립한다.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인 둘째 이반은 드미트리로부터 중재역을 부탁받고, 막내 알렉세이는 신앙이 깊은 청년으로 조시마 장로의 암자에서 지낸다.

작품에서 무신론의 주제는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라는 이반의 사상으로 표현되며 이는 그의 서사시 '대심문관'에 집약돼 있다.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것은 어떠한 금지도 가능하지 않다는 의미이며 이것은 도덕의 불가능성을 함축한다. 부친살해 금지는 가장 강력한 도덕적 금지의 하나인데 그것이 허용된다는 뜻이고 표도르의 사생아 스메르쟈코프는 이를 직접 실행에 옮김으로써 이반의 하수인을 자처한다. 말하자면 이반은 부친살해의 이론적, 논리적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부친살해의 사주자가 된다.

드미트리도 직접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지만 표도르가 피살되자 그에 대한 혐의를 받고 체포된다. 그리고 재판에서 농민 배심원단의 오판으로 말미암아 유죄판결을 받고 시베리아 유형길에 오를 처지가 된다. 이반이 직접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지만 사주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처럼 드미트리 역시 범죄의 책임에서 아주 벗어나지는 못한다. 아버지 표도르에 대한 살의를 공공연하게 내보이고 다닌 인물이 다름아닌 드미트리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신의 책임을 부인하면서 정신분열 상태에 빠지게 되는 이반과 달리 드미트리는 책임을 기꺼이 수용하면서 갱생의 가능성을 얻는다.

아버지와 아들들간이 대립 속에서 주로 심부름꾼 역할을 하는 알렉세이는 조시마 장로의 생애전을 기록하며 그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한다. 그런 알료샤도 시험을 겪게 되는데 성자처럼 존경해온 조시마 장로가 세상을 뗘난 뒤 기적을 기대하지만 좌절된다. 장로의 시신에서 향기는커녕 더 심한 악취가 나면서 알렉세이조차도 회의에 빠지게 된다. 이반이 '대심문관'에서 지적한 대로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신앙을 갖기 위해서는 '기적과 신비와 권위'가 필요하다. 다르게 말하면 "기적이 없다면 신앙은 불가능하다"가 될 것이다. 조시마 장로의 유훈대로 더 넓은 세상에 나가게 될 알렉세이는 기적 없이도 신앙이 가능하다는 것을 긴 우회를 거치더라도 입증해나가야 할 것이다(이것이 쓰이지 않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두번째 이야기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 부친살해 이후 형제애의 가능성을 모색한다는 것은 신의 죽음 이후에도 사랑은 가능한지를 탐색한다는 것과 같다. 흥미롭게도 프로이트는 <토템과 터부>에서 그 윤곽을 제시해놓았다. 여자들을 독점한 강한 원초적 아버지에 맞서서 아들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그를 살해한다. 하지만 그로 인한 죄책감에 살인을 금기한다. 두 가지 형태의 인간관계가 여기서 제시되는데 하나는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부자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수평적인 형제관계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신과 인간이라는 부자관계를 다시 회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고 평등한 형제적 관계를 모색하려는 시도로서 더 의미깊은 작품이다.

러시아의 세계적 안무가 보리스 에이프만의 발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995) 내한 공연이 5월에 예정돼 있었지만 전세계를 휩쓴 코로나19 사태로 취소됐다. 하지만 추후 무대에 오를 작품을 심도 있게 이해하려면 원작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따라서 도스토옙스키의 원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문제성과 의의에 대해 고민해 봤다. 연극과 발레 등의 공연작품으로 활발하게 무대에 올려지고 있지만 아무래도 대작 장편의 일부만을 무대화할 수 있을 뿐이어서 사건의 전체 내용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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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네바 강의 환각"

15년 전에 쓴 페이퍼다. 도스토예프스키 강의 시즌1을 엊그제 마쳤고 다담주부터는 시즌2 강의에 들어가서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죄와 벌>까지 읽게 된다. 책을 통한 여행이지만 도스토예프스키와 함께 시베리아에서 다시 페테르부르크까지 따라가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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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예술이란 무엇인가>의 새 번역본이 나왔다. 제목이 살짝 바뀌었는데, 박홍규 교수가 옮기고 주석을 붙인 <예술은 무엇인가>(열린시선). 


















현재 시중에 두 종의 번역본이 선택지로 있었는데(얼마 전인가, 문예출판사판 표지 사진이 톨스토이가 아니라 그의 아들이라는 페이퍼를 적었었다), 주석까지 포함해서 분량이 늘어났지만(가격도 올라갔다) 제3의 선택지가 생긴 셈이다. 더불어 강의에서 다룰지도 고려해봐야겠다. 


"톨스토이의 사상이 담긴 저술은 문학작품 못지않게 현대적 의의를 갖는다. 특히 그의 예술론은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1834~1896)의 예술론과 함께 예술 민주주의의 선구적인 예술론으로 삼을 만하다. 하지만 톨스토이 예술론은 내용이 난해하여 충실한 주석을 필요로 하지만 지금까지 톨스토이 책들의 한국어 번역은 주석 없이 문장에 해석의 그쳤다. 이 책은 이러한 점을 극복하고자 역자가 상세한 주석을 붙였고 정확한 번역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역자 박홍규 교수가 특별히 모리스를 언급한 것은 <윌리엄 모리스 평전>의 저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에코토피아 뉴스>를 옮기기도 했다). 모리스 평전의 결정판은 에드워드 톰슨의 <윌리엄 모리스>와 같이 읽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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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예술과 책임

14년 전에 바흐친의 예술관에 대해 적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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