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마스터스 오브 로마 1부 + 2부 세트 - 전6권 (본책 6권 + 가이드북) - 로마의 일인자 1~3 + 풀잎관 1~3 마스터스 오브 로마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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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만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가 선호하는 로마 남자가 더 있다. 시오노는 매력남의 조건을 ‘성공하는 남자의 조건’이라는 수필에 공개했다. 이 글은 《남자들에게》(한길사)라는 책에 있다. 시오노는 성공하는 남자의 몸 전체에 밝은 빛이 있다고 말한다. 형광등 100개를 켜 놓은 듯한 아우라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조용한 동작 하나에서 은은한 분위기를 띠는 밝음을 의미한다. 이런 분위기를 이탈리아어로 ‘세레노(sereno)’라고 한다. 이탈리아어 사전에 찾아보면 ‘밝은, 평온한, 깨끗한’이라고 씌어 있다. 시오노는 한니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스키피오 장군을 그런 매력적인 성품을 들며 ‘담백하고 소탈한 분위기가 풍겨 나오는 남자’로 묘사했다.

 

그러나 이 지구상의 남자 중에 ‘세레노’에 가까운 사람을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시오노는 ‘세레노’에 고뇌와 상처가 없는 산뜻한 매력을 부여한다. 뭐지? 이건 뭐 에피큐리언(epicurean)이 되라는 건가. 살면서 마주치게 될 온갖 정념(情念)을 완벽하게 피할 수만 있다면 심란하지 않은 마음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시오노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다. 그녀는 자신이 이탈리아 남자와 결혼해서 살고 있어서 로마 남자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앎의 깊이가 그리 깊지 않은 듯하다. 그녀가 고대 로마 남자들의 진짜 성격을 알고 있으면 밝고 평온한 세레노를 다른 인물에게서 찾아야 했다. 스키피오는 물론이고, 로마 남자들은 세레노와 거리가 먼 종족들이다.
 
나는 로마 남자를 한 단어로 정의하고 싶다. 로마초(Romacho). 로마(Roma)와 마초(macho)를 합쳐서 만든 단어다. 로마 남자들은 마초였다. 로마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키비스 로마누스(civis Romanus), 즉 ‘로마 사람’으로 살아간다. 특히 로마 남자들은 ‘로마 사람’으로서의 자부심을 마음껏 표출했다. 어디든 가면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기세당당한 자세로 상대방을 대면했다. 자신감이 넘친 로마 남자들은 여자보다 모든 것을 지배하고 싶은 욕망이 더 컸다. 여자뿐만 아니라 같은 남자들에게도 우월성을 과시했다. 남들 앞에 순종적인 자세나 행동을 보이면 수치스러운 일로 간주했다.

 

콜린 매컬로의 《로마의 일인자》와 《풀잎관》의 주연 마리우스와 술라는 ‘로마초’ 기질을 가진 로마 사람이다. 혹자는 마리우스가 세레노에 적합한 인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설득력이 있는 인물평이다. 그는 자신의 신부가 된 율리아의 제안을 수용하기 때문이다. 마리우스는 율리아의 노후 생활을 보장해주기 위해서 그녀와 함께 재산을 공동 소유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 역시도 상대방 앞에서 굽히는 모양새를 싫어하는 전형적인 로마 남자다. 그의 남자다움은 자기 아들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집안의 절대 권력자인 가장은 가족 구성원들이 자신을 복종하도록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었다.

 

 

아이의 큼직한 회색 눈은 대담하게도 아버지를 평가하고 있는 듯했다. 마리우스가 보기엔 예절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달라질 것이다. 이 장난꾸러기 녀석에게, 아버지란 아들이 함부로 지배하고 조종할 사람이 아니라 존경하고 우러러봐야 할 사람임을 알려줄 작정이다. (《로마의 일인자》 1권 310~311쪽)

 

 

마리우스는 시라아의 무녀 마르타의 예언에 집착한다. 칠순에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일곱 번째 집정관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한다. 결국, 자신이 로마를 이끄는 유일한 지휘자라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원로원에서 시커먼 오물 같은 권력욕의 온상을 여러 차례 목격했음에도 침착하지 못한 행동을 보인다. 마리우스는 자신이 포르투나(fortuna)의 도움을 받는다고 믿었다. 그것은 운명적인 힘이다. 하지만 그의 심장 한가운데 세워진 포르투나는 자만심과 우월감이 빚어낸 어설픈 조각상에 불과하다. 마리우스는 한때 로마를 사랑했고, 사랑하는 조국의 건강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 시절에 마리우스는 원로원 의원들에게 최하층민들도 키비스 로마누스가 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크게 높였다. 여기서도 마리우스는 로마인 특유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우리는 모두의 존경을 받으며, 외국으로 여행할 때면 사람들은 우리의 의견에 따릅니다. 비록 최하층민일지언정, 자신을 로마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조차 다른 어떤 부류의 사람보다 낫습니다. 너무 가난해서 단 한 명의 노예도 없을지라도, 그는 세상을 지배하는 무리 중 하나입니다. 노예 한 명 없어 직접 천한 일을 할지라도 그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로마인이다, 나는 그 외 다른 모든 인간들보다 낫다!’” (《풀잎관》 1권 373쪽, 글쓴이가 발췌 편집했음)

 

 

그의 정의로운 사자후는 늙은 오만한 여우로 변했다. 광기 어린 여우는 이성의 기운이 쇠약해진 늙은 마리우스의 심장을 물어뜯었다. 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늙은 지도자는 자신이 다른 모든 집정관을 능가하는 로마의 일인자라고 생각한다.

 

 

 

 

“등짝을 보자!”

로마 남자들은 동성애로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했다.

 

 

 

술라는 마리우스보다 ‘로마초’ 기질이 심하다. 그는 젊은 시절에 남성성을 억눌린 채 살아왔다. 의붓어머니 클리툼나, 애인 니코폴리스와 함께 매일 방탕한 쾌락의 밤을 보낸다. 두 여자는 술라를 자신 곁에 두려고 적극적으로 유혹의 손짓을 보낸다. 두 여자의 기세에 지쳐버린 술라는 아름다운 소년 메트로비오스를 만난다. 술라의 동성애는 쾌락을 위한 남색 행위라기보다는 자신의 남자다움을 마음껏 과시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다. 로마 남자들의 남근은 남녀 불문하고 꼿꼿하게 솟았다. 침대 위에서도 남성성을 과시하고 싶었다. 그들은 타인이 자신에게 복종해야 직성이 풀렸다. 술라는 메트로비오스를 만나 복종을 요구하는 남성성을 마음껏 표출한다. 술라는 한집에 사는 두 여자를 멀리해서 잃어버린 자존심을 회복하는 동시에 권력의 사다리로 올라갈 기회를 호시탐탐 노린다.

 

매컬로는 술라를 ‘뼛속까지 배우’ 같은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그렇지 않다. 마리우스를 포함한 원로원 의원들 모두 ‘완벽한 로마 남자’라는 배역을 완벽하게 연기하면서 살아왔다. 모두가 ‘로마 사람’들이다(All the People of Rome). 이들은 상황에 따라 맞춰 쓸 수 있는 가면이 얼마든지 준비되어 있다. 로마 남자들에게 허세를 빼면 시체다. 남들 앞에 우월한 척해야 자신의 존재감이 드러난다. 로마 남자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딱 한 가지가 있다. 정력이 사라지는 것. 그렇게 자신만만한 남자들도 노화의 섭리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어쩌면 자존심 많은 로마 남자들은 자신이 늙고 병들어가는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마리우스의 장인 카이사르는 투병으로 고생하다가 인간 아니 로마 남성의 존엄성이 무너져버린 상황을 깨닫고 자결한다. 로마 남자들은 남들 앞에서 남성성의 가면을 벗는 걸 두려워했다. 아, 마리우스가 딱 한 번 가면을 벗은 적이 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한참 지나서야 로마에 귀국했는데, 아버지의 죽음에 슬퍼서 율리아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 (《로마의 일인자》 1권 311쪽) 그가 슬피 울기 전까지만 해도 아들을 제대로 가르치려는 권위적인 가장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로마 남자들은 눈물을 함부로 흘리지 못했다. 눈물을 흘리면 나약한 남자로 놀림 받는다. 로마 사회에 성공하려면 남성성이 철철 넘치는 남자가 되어야 했다.

 

로마 남자들이 이토록 권력에 집착하고 과시하고 싶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남성성을 공공연히 드러내야만 했던 특수한 사회 풍조 때문이었다. 시대가 영웅과 괴물을 키워내지 않았다. 로마 남자들은 그 시대 풍조에 적응하면서 살았을 뿐이다.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 영웅 혹은 괴물이 되는 길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양쪽 길을 모두 포기하면 사회에서 낙오된다. 그들은 ‘두 얼굴을 가진 배우’로 살아가느라 고생했다. 24시간 내내 남성성의 가면을 쓰고 다녔다. 알고 보면 로마 여자들뿐만 아니라 로마 남자들도 괴롭게 살다가 진토가 되었다. 우린 정말 로마에 태어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 이 글은 해당도서 서평 대회 참여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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