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테오도르 몸젠(Theodor Mommsen)이 태어난 지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가 쓴 《로마사》(푸른역사, 2013~2015, 2017년 현재 번역본이 3권까지 출간됨)는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책이다. 몸젠은 이 책으로 1902년 독일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된다. 현재 최고령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88세의 도리스 레싱(Doris Lessing, 2007년 수상)이다. 레싱이 상을 받기 전에는 최고령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몸젠이었다. 1902년에 몸젠의 나이는 85세였고, 이듬해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몸젠의 《로마사》가 번역되지 않았던 시절에 우리나라 독자들은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의 역사소설 《로마인 이야기》(한길사, 1995~2007)에 열광했다. 양심 고백을 하자면 나도 ‘로마인 이야기 열풍’에 맹목적으로 휩쓸러 갔던 사람이다. 그녀의 작문 솜씨가 교묘해서 내용 자체도 소설처럼 흥미진진하지만, 《로마인 이야기》는 신뢰할만한 역사책이라고 볼 수 없다. 딴딴한 로마 덕후 또는 로마 전공자 앞에서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를 언급하다간 탈탈 털릴 수 있다.

 

 

 

 

 

 

 

 

 

 

 

 

 

 

 

 

 

 

 

 

 

 

 

 

 

 

 

 

 

 

 

 

 

 

*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2》 (민음사, 1998)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도서출판 숲, 2005)

* 오비디우스 《로마의 축제들》 (도서출판 숲, 2010)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 (휴먼앤북스, 2010)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전집 (상)》 (현대지성, 2016)

 

 

 

 

《로마인 이야기》에 실망한(혹은 ‘역사서로 둔갑한 역사소설’에 속아 넘어간) 독자들은 철저히 실증적으로 로마를 접근한 몸젠의 책에 후한 평가를 내렸을 것이다. 몸젠은 역사적 근거자료들을 토대로 로마와 관련된 구전 자료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로마의 건국신화에 따르면 로물루스(Romulus)와 레무스(Remus)는 전쟁의 신 마르스(Mars, 그리스 신화의 아레스(Ares)와 동일)와 인간인 레아 실비아(Rhea Silvia) 사이에 태어난 쌍둥이 아들이다. 부적절한 관계였던 두 사람은 이들을 바구니에 태워 티베레스 강(테베레 강의 라틴어 명)에 버린다. 형제는 팔라티움 언덕의 동굴에서 늑대 젖을 먹고 자란다. 형제는 팔라티움 언덕 기슭에 로마를 건국하지만 권력 다툼을 벌여 로물루스가 레무스를 죽이고 왕이 된다. 《로마사》 1권을 보면 역사학에 남아있는 로마 건국신화의 흔적을 지워버리고 싶은 몸젠의 단호한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

 

 

 

로마가 자리 잡은 지역(팔라티움 언덕-cyrus 주)은 라티움 지방의 옛 정주지들과 비교할 때 오히려 위생 면이나 농업생산력 면에서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는 로마 근교에서 잘 자라지 못했으며, 근교에는 풍부한 수원지도 없었다. 티베리스 강의 잦은 범람은 늪을 만들어냈다. 알바롱가의 왕족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영도 아래 알바롱가로부터 일단의 사람들이 도망쳐 로마를 건설했다는 신화는, 이상하게도 그렇게 불리한 장소에 로마가 생겨난 이유를 설명하는 동시에 로마의 시초를 라티움 지방의 거대도시와 연결시키려는 역사적 설명의 소박한 시도라고 하겠다. 스스로 ‘역사’이기를 희망하지만 그다지 훌륭할 것 없는 단순한 설명에 불과한 이런 신화를 역사학은 다른 무엇보다 먼저 배제해야 할 것이다. [1]

 

 

 

《로마사》는 확실히 로마 역사를 공부할 때 꼭 읽어야 책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책이 나온 연도가 19세기 중반이다. 《로마사》 1권은 1854년에 출간되었다. 여러 번의 개정이 있었지만, 내용에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18세기 역사가가 로마를 보는 관점과 현재의 역사가가 로마를 보는 관점은 차이가 있다. 《로마사》가 발간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백 오십여 년 동안 역사학자들은 로마와 관련된 수많은 정설에 도전했다. 그 과정에서 오랜 세월 동안 학계에 자리 잡고 있던 정설이 뒤집히기도 했다. 로마 역사의 수수께끼를 밝혀 줄 새로운 자료가 발견된다면 몸젠이 《로마사》를 통해 제시한 정설 또한 뒤집힐 수도 있다. 따라서 몸젠의 《로마사》를 ‘유일무이한 로마 역사서’로 극찬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다. 이 책은 현시점에 눈높이를 맞춰서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 과거 19세기에 통용되던 인식과 정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몸젠은 로마에 유행한 전염병의 원인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이 내용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라티움 지방 평야는 거대한 자연의 각축장이었다. 천천히 형성된 하천 지형과 굉장한 화산 폭발 등이 한둘씩 지층을 형성했으며, 이 지층 위에 장차 세계 패권을 쥐게 될 민족이 결정되었다. (중략) 대지가 끊임없이 요철처럼 굴곡을 반복하는 가운데 겨울이면 그 사이에 늪이 형성되는데, 여름의 뜨거운 태양 아래 늪에 가득한 유기물이 부패하면서 각종 유독 가스가 발생한다. 여름철이면 이런 유독 가스는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과거에도 그 지역에 전염병을 발생시켰다. 로마 공화정 말기의 농경 피폐와 황제의 실정으로 야기된 농경 피폐로 인해 전염병이 발생했다는 견해는 잘못된 것으로, 사실 그 원인은 다만 강수량의 부족에 있으며 그것은 수천 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마찬가지다. [2]

 

 

몸젠의 주장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이렇다. ‘늪에서 발생하는 유독가스는 로마의 대재앙이 된 전염병의 원인이다. 그러므로 로마의 전염병의 원인을 설명한 기존의 주장(황제의 실정, 농경 피폐)들은 잘못 됐다.’

 

 

 

 

 

 

 

 

 

 

 

 

 

 

 

 

 

 

 

* 최석민 《초대하지 않는 손님, 전염병의 진화》 (프로네시스, 2007)

* 로버트 H. 욜켄, E. 풀러 토리 《우리는 모두 짐승이다》 (이음, 2010)

 

 

 

전염병은 로마 제국의 멸망을 재촉한 원인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은 로마를 덮친 전염병의 영향으로 날마다 5,000명의 로마인이 죽었다고 기록했다.[3] 고대 로마인들은 전염병의 원인과 치료방법을 알지 못했고 말라이아, 페스트 등 전염병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 다니엘 푸러 《화장실의 작은 역사》 (들녘, 2005)

* 칼 세이건 《혜성》 (사이언스북스, 2016)

 

 

 

이미 눈치를 챈 분들도 있을 것이다. ‘독가스가 전염병을 유발한다’는 몸젠의 주장은 과학적이지 않은 구시대적 내용이다.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로베르트 코흐(Robert Koch) 등이 ‘세균’의 실체를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전염병의 원인을 ‘독가스’라고 생각했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늪에서 생기는 악취, 밤하늘을 지나는 혜성의 꼬리에서 나오는 독가스를 ‘미아스마(miasma)’라고 명명했다. 의학자들은 의학의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었고, 이로 인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허술한 주장을 그대로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1910년에 핼리 혜성이 지구를 스쳤을 때 대부분 사람은 지구에 충돌하는 혜성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었다. 혜성의 꼬리에 나오는 독가스가 지구를 덮칠까 봐 두려워했다. 히포크라테스의 미아스마설은 19세기 중반까지 널리 신봉되었고, 몸젠도 미아스마설을 믿고 있었다.

 

 

 

 

 

 

 

 

 

 

 

 

 

 

 

 

 

 

 

* 재러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문학사상사, 2005)

* 김동진 《조선의 생태환경사》 (푸른역사, 2017)

 

 

 

생태환경사 관점으로 몸젠의 주장을 수정하자면, 전염병을 일으킨 진짜 범인은 ‘늪에 서식하는 세균’이다. 범람이 잦은 강은 늪이 발생하기 쉬운 최적의 환경 조건이다. 그렇지만 이 땅에 세워진 국가가 강대국으로 발전하려면 반드시 이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15세기 조선도 티베레스 강이 낀 초창기 로마와 비슷한 상황을 겪는다. 선조들은 강 주변의 늪을 개간하여 벼농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분변을 거름으로 삼아서 지은 논에는 세균이 우글우글하다. 논 주변에 사는 마을 사람들은 이질과 같은 전염병에 시달려야 했다. 조선에 창궐한 전염병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재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 전염병성 세균의 진화를 유리하게 해준 큰 행운이 농경 발생이고, 더 큰 행운이 도시의 발생이라고 주장한다.[4] 몸젠은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을 지켜낼 줄 알고, 전쟁으로 빼앗은 땅을 비옥한 땅으로 일구어내는 로마인의 농경문화를 ‘위대한 로마’로 발전할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으로 꼽았다. 하지만 그는 농경문화가 만든 그림자, 그 어둠속에 서식하면서 인류를 끊임없이 괴롭혀 온 세균의 위력을 몰랐다. 세균은 강력한 제국을 초토화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세균의 힘을 빌려서 패권 국가의 위치를 점하려는 시대가 올 수 있다. 인류의 전쟁은 세균을 기쁘게 해주는 ‘세 번째 행운’이다.

 

 

 

 

 

[1] 《몸젠의 로마사 1》 66~67쪽 (글쓴이가 임의로 편집했음)

[2] 같은 책, 47쪽과 49쪽 (글쓴이가 임의로 편집했음)

[3] 로버트 H. 욜켄, E. 풀러 토리 《우리는 모두 짐승이다》(이음, 2010) 66~67쪽

[4] 재러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반양장본) 299~3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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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8 1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0-18 17:49   좋아요 0 | URL
재미는 확실히 <로마인 이이야>가 최고입니다. <로마인 이야기>에 익숙한 독자가 <로마사>를 읽으면 지루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

2017-10-18 1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0-18 17:53   좋아요 1 | URL
우리나라에서 역사는 다른 문명의 장점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공부하는 학문으로 전락했어요. 이렇다 보니 문명의 쇠퇴를 초래한 약점이나 문제점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역사를 공부할 때 인물이나 문명의 약점도 진지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장점만 보게 되고, 특정 인물이나 문명을 과대평가하는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

감은빛 2017-10-19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후배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역사책으로 인식하고 열심히 읽길래,
그건 소설에 가깝다고 말해줬더니 받아들이지 못하더라구요.

[몸젠의 로마사] 읽고 싶긴 하지만, 당분간 아니 꽤 오랫동안 읽을 시간이 없을 것 같아요.
[조선의 생태환경사]도 나오자마자 사뒀는데, 아직 손도 못 댔네요.

cyrus 2017-10-20 15:03   좋아요 0 | URL
시오노 나나미의 책이 재미있는 건 누구나 인정해요. 그런데 재미있는 책에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페크pek0501 2017-10-20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총 균 쇠》를 꼭 읽으려고 했는데 아직 구입하지 못했다는...
내용을 대충 알고 나면 그 책이 덜 궁금해지는 면이 있어요.

cyrus 2017-10-20 15:05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랬어요. 반값 할인 제도가 있었던 시기에 주문했는데, 바로 읽지 않았어요. 글을 쓰기 위한 자료를 찾기 위해서 읽는 일이 많아요. ^^;;
 
극한의 경험 - 유발 하라리의 전쟁 문화사
유발 하라리 지음, 김희주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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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이 힘이다.’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금언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실감케 하는 말이다. 이 말의 배경에는 과학이 예술이나 종교와는 달리 주관적 가치 판단에서 벗어나서 사물의 본질과 현상의 구조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과학관이 깔려있다. 서구 문명은 이성을 가진 인간의 등장에서 시작된다. 데카르트(Descartes)생각하는 나’, 즉 이성을 가진 인간을 존재하는 대상에 관한 모범 답안으로 제시한다. 이성을 가진 인간은 자신의 이성을 무기 삼아 자연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그렇게 세계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자, 이제 인간은 세계를 인간을 위한 세계로 개조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른다. 그렇게 성립한 것이 바로 인본주의.

     

유발 하라리(Yuval Harari)에 따르면 과학혁명은 인간이 신(종교)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결정적인 전환점이다. 이제 인본주의가 세계를 지배하는 종교로 자리 잡게 되고, ‘중심의 중세사회에서 인간중심의 근대사회로 이행한다. 하라리는 근대 사회에서 지식을 얻는 방법을 한눈에 보여주는 자신만의 공식을 내세운다.

 

 

 

     

지금까지 소개한 내용은 하라리의 사피엔스(김영사, 2015), 호모 데우스(김영사, 2017)에 나오는 것들이다. 최근에 나온 하라리의 신작 극한의 경험(김영사, 2017)을 읽기 전에 이 두 권의 책을 먼저 읽는 것이 신작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사실 극한의 경험따끈따끈한 신작이라고 소개하기가 애매하다. 극한의 경험사피엔스호모 데우스보다 먼저 나온 책이다. 극한의 경험2008년에 출간되었고, 2014년과 2016년에 각각 사피엔스호모 데우스가 나왔다. 하라리의 전공 분야는 중세사와 군사 역사다. 하라리는 자신의 두 가지 전공 분야를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엮어 나가면서 인류에게 영향을 끼친 전쟁 문화가 무엇인지 살핀다.

     

하라리는 근대인들이 전쟁에 대해 낭만적으로 접근한 것에 주목한다. 근대 이전 중세 사회에서 전쟁은 지옥을 방불케 하는 재앙이다. 중세 사람들은 전쟁을 일으켜 패배하면 신의 노여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전쟁을 피하거나 전쟁터에서 살아남고 싶어서 자신에게 신의 은총이 내리길 간절히 기도했다. 18세기 후반부터 낭만주의가 등장함으로써 전쟁을 바라보는 근대인들의 눈이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나온 전쟁 회고록을 살펴보면 대다수 전쟁을 혐오하지 않는 관점을 취한다. 오히려 전쟁 회고록 글쓴이들은 전투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치중한다. 이러한 글쓰기 전략은 전쟁이 인간의 감정을 압도하는 특별한 경험이라는 점을 부각한다. 낭만주의자들은 자연에서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황홀한 감정을 숭고로 명명했고, 숭고의 개념을 광활한 자연이 아닌 전쟁터에서 찾으려고 했다. 참전 군인들은 참호에서 생활하고, 군사 훈련을 받고, 전우와 적군이 총탄에 맞아 쓰러져가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본다. 군인은 마음이 아닌 몸으로 전쟁 경험을 체득한다. 총소리만 듣고도 무서워서 벌벌 떨었던 곱상한 청년이 오랫동안 전쟁터에서 생활하면 극한의 고통을 견딜 수 있는 강인한 전사가 된다.

 

하라리는 군인들이 전쟁 경험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깨닫거나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게 되는 특이점을 계시라고 말한다. 이제 인간은 더 이상 신의 눈치 받지 않고 전쟁을 일으킬 수 있게 된다. 전쟁을 긍정적 계시 경험[1]으로 받아들인다. 종전 이후에 참전 군인들은 나라를 지킨 영웅으로 대접받고, 전사자들은 나라를 위해 한 몸 바쳐 희생한 영웅으로 칭송받는다. 사회는 참전 용사, 전사자들의 전쟁 경험권위를 공적으로 부여한다. 전쟁을 경험한 자는 전쟁 회고록을 써서 전쟁이 숭고한 경험을 느낄 수 있는 긍정적인 극한 상황이라고 묘사한다. 그러나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자는 전쟁의 교훈을 느끼지 못한다. 결국,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자는 전쟁에 대한 낭만적 환상을 품게 되고, 억제된 감정의 해방을 분출하기 위해 직접 전쟁터에 뛰어든다. 앞서 소개한 지식=경험X감수성 공식이 전쟁을 바라보는 인식까지 바꿔 놓은 것이다. 베이컨의 금언을 빌리자면 근대인들은 전쟁을 아는 것이 힘이라고 생각했다.

     

하라리는 전쟁의 역사를 지식=경험X감수성공식으로 설명한 서술 방식에도 결함이 있다고 밝힌다. 나는 이 책에서 하라리가 놓친 변수 하나남성성(masculinity)’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전쟁 회고록 집필에 열중하는 낭만주의자 남성들의 모습은 군대 경험담을 로 푸는 한국 남성의 모습과 조금 비슷하다. ‘국가의 아들이 된 한국 남성은 각종 군사 훈련을 받는 동안 간접적으로나마 전쟁 분위기를 느껴보고, 국가 수호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국방의 의무를 질 수 있는 건장한 남자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들이다. 군대를 경험한 남성들은 자신들이 국방의 의무를 지켰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당연히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인식한다. 군대가 가지는 남성성의 강요 및 군대 자체가 만들어내는 남근주의적 인식이 군대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들’, 즉 군 미필 남성, 성 소수자 그리고 여성의 사회 참여를 배제한다. 군대를 경험한 남성이 군 가산점제 도입을 반대하는 여성을 비난하는 전략은 매번 한결같다. “여성은 군대 경험을 하지 않았으니, 군대 생활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른다.” 군 가산점제 찬성하는 남성들의 주장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2]는 낭만주의자들의 금언과 일맥상통하다. 이 말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는 보편적 남성성으로 남아 있다. 전쟁을 특별한 경험적 계시로 미화하는 시각이 오늘날까지도 끊임없이 재생산되게 하는 변수가 바로 군대와 남성성의 찰떡같은 조합이다. 따라서 나는 하라리의 공식에 '새로운 변수'를 추가해서 이렇게 바꾸고 싶다.

 

 

지식 = 경험 X 남성성

 

 

 

 

 

[1] 극한의 경험391

 

[2] 같은 책, 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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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7-09-08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성은 과거에도 존재했고 현재도 있죠.
말씀처럼 남성이 아닌 남성성이 문제인거 같습니다.
남성성도 인본주의 영향인지 궁금해집니다. ^^

cyrus 2017-09-09 07:28   좋아요 0 | URL
남성성과 인본주의의 관계는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

2017-09-08 2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9-09 07:33   좋아요 1 | URL
최근 북핵 위기가 고조되니까 ‘전쟁을 하자‘, ‘우리나라도 핵무기를 개발하자‘ 등 호전적인 주장의 댓글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이런 주장들이야말로 ‘행동없는 지식‘입니다. 사실 ‘지식‘이라고 보긴 어렵고, 생각없는 개소리입니다. 전쟁을 너무 쉽게 생각하면 저런 개소리들이 나옵니다.

sprenown 2017-09-12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피엔스 밖에 읽어보지 못해서 저자의 정확한 의도가 무엇인지는 잘모르겠습니만,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자’는 전쟁에 대한 낭만적 환상을 품게 되고, 억제된 감정의 해방을 분출하기 위해 직접 전쟁터에 뛰어든다.라는 표현은 너무 지나치지 않나 생각합니다.(전쟁에 참여하는 남성들은 애국적 지원병보다 강제징집병들이 훨씬 많지 않았을까요? 또, 2차대전시 레지스탕스와 일제강점기 우리 무장독립군도 환상과 경험을 위해 전쟁터에 뛰어 들었을까요?) 저도 물론 현역으로 전방에서 군복무를 했습니다만, 전쟁은 두렵고 무섭습니다.포탄이 난무하고 총알이 빗발치는곳에서 언제죽을지 모르는데 두렵지요..제가 남성성이 부족한, ‘찌질한 남자‘여서 그럴까요? 요즘 여기 알라딘서재에 웬 페미니즘 바람이 불어서 인지, 기획에 의한 마케팅(책을 구매하는 20대후반내지 30초반의 여성들을 타킷으로하는)인지 페미니즘관련서와 그에 대한 의도된 서평들이 지나치게 많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성평등이슈를 공론화해서 이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겠다는 순수한 의도에서 그런거라면 적극 찬성합니다만...

cyrus 2017-09-10 19:07   좋아요 1 | URL
《극한의 경험》을 비판하는 독자평도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sprenown님처럼 저자의 입장에 문제를 제기한 분이 있었습니다. 이 책이 서양 전쟁사에 국한되어 있어서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저는 남성성(강하고, 용기 있고, 마초 같은)이 없다고 해서 ‘찌질한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자들만 있는 사회 집단 내에서 ‘남자‘로 인정받으려면 ‘남성성‘을 드러내야 했습니다. 예를 들면 ‘남자는 부엌에서 요리를 하면 안 된다‘, ‘남자는 울면 안 돼!‘ 등이 있어요. 이를 어기면 ‘남자답지 않은 여자‘로 놀림거리 받았어요.

페미니즘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남성성의 실체와 문제점을 바라보기 위해서입니다. 사회가 은연중에 강요하는 남성성은 남성, 여성 그리고 성 소수자들 모두 악영향을 끼칩니다. 저나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성을 비판하는 것이지 ‘남자‘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성성에 갇혀 있거나 남성성이 낳은 편견에 사로잡힌 남성은 비판합니다. 그러나 이를 남자 전체를 비난하고, 혐오한다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지금도 페미니스트들의 순수한 의도를 부정적인 시선으로 매도하는 인식이 남아있습니다.

sprenown 2017-09-12 08: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뿌리깊은 문화적 전통이라는게 의식변화에 가장 큰 걸림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서양문화의 뿌리라 할수 있는 기독교, 성경자체가 굉장히 남성우위, 가부장적으로 기술되었고, 우리나라 역시 조선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가 내훈을 편찬한 이후 급격히 남존여비사상이 확산되었죠. 결국 의식의 확장과 공감을 통한 제도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민법상 호주제폐지나 형법상 혼인빙자간음죄, 간통죄폐지,정책상의 양성평등제도 등도 성평등을 위한 제도적 보완이었다고 할수 있겠습니다만 보다 많은 분야에서 제도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겠죠. 관심있는 시민사회단체간의 연대를 통한 입법화,제도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얘기가 되겠지만 여성스스로도 통렬한 자각을 통해 스스로의 자존을 무너뜨리는 언행을 삼가는 것도 필요하리라 봅니다.

cyrus 2017-11-16 16:56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남존여비사상의 기원과 그 배경을 거의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남성이 사회적 · 문화적 전통이 낳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아야 남녀가 처한 부당한 상황의 원인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자유주의 페미니스트인데요, ‘공감을 통한 제도화’에 찬성합니다.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차별적인 제도를 보완하는 대안을 주장합니다만, 급진적 페미니스트가 지적하는 한계가 되기도 합니다.

sprenown 2017-09-12 15: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그러나 희생은 하지 마세요.

cyrus 2017-09-12 15:12   좋아요 1 | URL
sprenown님.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생각날 때마다 페미니즘 관련 글을 쓰려고 합니다. 비판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

sprenown 2017-09-12 17: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관련 서적 한권 읽지도 않았는데...땡길때 몇권 읽고,공부도 좀 해서 비판다운 비판해 보겠습니다.

cyrus 2017-09-12 19:45   좋아요 1 | URL
sprenown님을 만나기 전에는 글 쓰는 것에 매너리즘을 느꼈어요. 최근 sprenown님을 만나게 되니까 의욕이 생깁니다. 저는 적극적인 ‘반응‘을 원했습니다. ^^
 
대한민국의 설계자들 - 학병세대와 한국 우익의 기원
김건우 지음 / 느티나무책방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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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익은 크게 보면 보수주의로 불린다. 한국에서는 한국전쟁 이후 ‘빨갱이 콤플렉스’가 형성되면서 좌파보다는 좌익이라는 개념으로, 우파보다는 우익이라는 개념이 고착되게 되었다. 중장기적으로 보면 우리 사회에도 성숙한 이념논쟁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우리 실정에서는 정책적 쟁점을 중심으로 채 논쟁도 하기 전에 ‘가짜 뉴스’를 동원한 ‘이념 갈등’이 시작된다. 이 ‘이념 전쟁’을 보면서 우리는 도대체 무엇이 좌파이고 무엇이 우파인지, 진보가 무엇이고 보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혼란스러워한다. 그것은 이념논쟁을 벌이는 측에서 명확한 자기 정의 없이 좌파와 같은 개념이 한국의 특수적 상황에서 가지는 부정적 이미지만을 상대방에게 덧씌우려 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극우파들은 자신들과 다른 입장을 표명하면 무조건 ‘적’이라는 극단적인 사고를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그래서 이념적으로 가장 오른쪽에 치우쳐 있던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자신들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모든 입장들은 좌파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기에 《대한민국의 설계자들》(느티나무책방 · 2017)의 저자는 무지와 왜곡, 오류로 뒤범벅이 된 대한민국 현대사를 바로잡는다. 그리고 장준하, 안창호, 김교신, 류달영, 류영모, 함석헌, 강원용, 김수환 등 20세기가 배출한 걸출한 지식인들의 삶과 노선, 업적을 통해 대한민국 우익 계보를 재정립한다. 한국에서 현대적 의미의 이념 갈등은 일제 식민지배 시기에 시작됐다. 독립 운동가들이 광복 후 대한민국의 미래상을 그리면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수립을 지향하는 우익과 사회주의국가의 수립을 지향하는 좌익으로 나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분단의 씨앗은 이미 이 시기에 뿌려졌다고도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은 평안도와 황해도를 아우르는 서북 지방을 중심으로 독립운동 및 종교 활동을 전개한 지식인과 종교인들에 주목한다.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1950년대 초반까지 종교계의 월남행렬이 줄줄이 이어졌다. 이는 북한의 종교탄압과 직접 관련이 있었다. 특히 평안도를 중심으로 번창한 우익 기독교 세력이 대거 월남 길에 오르면서 남한의 우익 세력과 만나게 되는데, 이들 세력에게는 모두 ‘반공’이라는 공통된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해방 이후 건국과 통일의 방략을 놓고 좌우익 이념대결은 치열하게 벌어졌다. 결국, 반공 · 친미의 깃발 아래 대한민국의 건국을 지지하는 이승만 세력이 주도하게 된다. 여기에 친일파들은 친미세력으로 모습을 변신했고, 그 이후에는 이승만 세력에 협조하며 기득권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들은 친일 행적의 치부를 덮기 위해 반대 노선을 좌우합작과 남북협상을 통해 한반도에 단일국가를 세우자는 김구 세력을 ‘용공’으로 몰아세웠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이승만 노선이 사실상 ‘국시(國是)’로 받아들여졌고 김구 노선은 김구의 본질적 보수성에도 불구하고 ‘용공’으로 분류되었다. 이 혼잡한 해방 전후기 속에 ‘학병 세대’가 대한민국 건국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는 적격자로 등장했다. 학병 세대가 대학에 입학할 즈음은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몰려 학병이나 징용으로 징발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피하고자 몸을 숨기거나 탈영하여 광복군에 합류하기도 했다. 이들은 친일과 용공 세력과 거리를 두었기 때문에 대한민국 건국 활동을 주도할 수 있었다. 학병 세대의 대표적인 사람들이 장준하김준엽이다. 이 두 사람은 1950~60년대 우리나라 지성계를 이끌었던 월간지 <사상계> 창간을 주도한 핵심 인물이다. <사상계> 발행인 장준하를 비롯한 잡지 편집 및 필자로 참여했던 김준엽, 함석헌 등은 모두 평안도 출신이다. 이들은 안창호가 강조한 민족주의와 ‘실력양성론(개인의 수양을 통해 민족의 힘을 기르자는 독립 운동 전략)’을 계승하여 민족의 문화, 사회, 경제적 자강을 목표로 하는 대한민국의 미래상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흑역사’가 있다. 함석헌을 제외한 일부 <사상계> 그룹은 박정희의 5 · 16 군사 쿠데타를 4 · 19혁명의 연장으로 이해했다. <사상계>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서북 출신 우익 지식인들은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배척당했고, 야당 세력으로 밀려났다. 그들은 박정희 정권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국가와 민족의 근대화’를 달성할 수 있을 거로 봤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우익의 혁신 세력을 철저히 탄압하면서 이승만 정권의 ‘국시’를 부활시켰다. 서북 출신 우익 지식인들은 ‘반공’이라는 명분으로 민주주의적 자유를 억압하는 유신 정권과 맞서 싸웠지만, 그들의 ‘근대화론’이 유신 정권의 ‘근대화 프로젝트’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줬던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극우파들은 박정희 정권이 조국 근대화에 기여했고, 군사 쿠데타를 국가와 국민을 가난과 부정부패에서 구한 ‘구국의 혁명’이라고 찬양한다. 친박 세력은 박정희가 이루려 한 근대화의 핵심은 박정희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전두환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박정희의 조국 근대화 과업을 자신이 완성했다고 자평했다. 지랄도 풍년이다. 제2공화국 장면 내각제 시절에 이미 경제개발계획이 입안되었다. 제2공화국의 경제개발계획에 서북 출신 우익 지식인들도 직접 관여했다. 그 당시 지식인과 정치인들은 경제개발계획에 대한 공감대를 가지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은 장면 정권이 추진하려고 했던 경제개발계획을 이어서 진행했다. 이러한 ‘사실’이 분명히 남아 있는데도 여전히 박정희를 ‘근대화의 영웅’으로 미화하고, 기념하는 세력들은 김씨 일가를 ‘북조선 민족의 영웅’으로 떠받드는 북쪽 세력과 다를 바 없다. 역사를 망각한 사회는 전망이 없다. 현대사는 국가 정통성의 자랑스러운 증거가 될 수 없다.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진상이 많은데도 너나 할 것 없이 더 잘 안다고 주장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그리고 극우파들은 자신과 반대되는 역사관을 ‘빨갱이’라고 매도한다. 그래서 ‘이념 색깔’로 덧칠되어 보이지 않았던 현대사의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의 가치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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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9 2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8-30 13:51   좋아요 1 | URL
역사를 더 공부해야하지만, 제가 봐선 진짜 보수는 안창호, 장준하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들에게도 한계가 있어요. 웃긴 게 가짜 보수들이 진짜 보수를 좌파처럼 비난하는 태도입니다. 가짜 보수가 가르치는 역사를 배운 사람들은 김구, 장준하가 이승만, 박정희의 정책에 반대한 좌파 세력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겨울호랑이 2017-08-29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극우세력들은 현실과 맞닿아있는 현대사들에는 무관심한으로 왜곡하고, 고대사는 자랑스러운 민족역사라는 명분으로 곡해하고 있는듯합니다... 보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역사가 조명되어야하는데 많이 아쉽네요..

cyrus 2017-08-30 13:56   좋아요 1 | URL
국익과 애국심을 강조하는 역사관이 문제입니다. 이러한 역사관 때문에 국가에 희생된 사람들이 잊혀집니다.

sprenown 2017-08-30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욕의 역사이지요. 객관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성숙한 의식이 절실합니다. 이제는 더이상 국수주의,애국주의로 호도할 때는 지났습니다.

cyrus 2017-08-30 13:57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국수주의로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나와같다면 2017-08-30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젠 기억에서도 생소해진 ‘주사파‘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프레임을 씌우려는 그들을 보며 쓴 웃음이 나왔습니다..

cyrus 2017-08-31 12:41   좋아요 0 | URL
주사파.. 정말 오랜만에 들어봅니다. 현대판 ‘빨갱이‘었죠.

transient-guest 2017-08-31 0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에서 진정한 ‘보수‘란 것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보통 보수는 조용한 것 같고, 보수를 표방하는 수구세력의 활동이 활발한 것 같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지만, 분명이 ‘보수‘와 트럼프세력은 구분이 가능합니다...

cyrus 2017-08-31 12:43   좋아요 1 | URL
자신을 정통 보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보면 정상적인 보수가 아니었어요.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을 이럴 때 씁니다.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김민철.김승은 외 지음, 민족문제연구소 기획 / 생각정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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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청사는 일제가 1916년 경복궁 궐내에 지은 건물이다. 해방 이후 중앙청과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됐다. 일제 잔재 청산과 경복궁 복원 정비계획의 일환으로 1996년 역사적인 철거 사업이 시작됐다. 역사의 흉물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 일제 잔재가 사라졌다며 쾌재를 부른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조선총독부가 사라지면서 일제 잔재를 말끔히 청산한 것일까? 친일파 연구와 일제 잔재 청산 운동을 주도한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한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을 읽고 내리게 된 답은 분명 ‘아니다’다.

 

해방된 지 반세기 가까이 흐른 오늘날까지 식민통치 기간 중 일본이 저지른 만행의 절정을 이뤘던 강제연행의 실상은 아직도 거의 밝혀지지 않고 있다. 동아시아 전역을 지배하기 위해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의 총알받이로 수천여 명의 젊은 조선인이 동원되었고, 이중 절반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이국땅에 잠들어 있다. 일본군의 점령지 전역에 버려져 있는 유해의 수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피맺힌 한을 안고 숨져간 조선인들의 유해 발굴과 송환은 물론 강제징용에 관한 실태조사 등을 위한 별다른 노력이나 관심조차 없었던 게 오늘의 엄연한 현실이다. 지금도 일본, 중국, 러시아 땅은 물론 국내에서 강제징용이나 징병, ‘일본군 전용 성노예’ 등 여러 형태로 일제에 끌려갔던 피해당사자나 그 가족들이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불치의 병으로 혹은 가난으로 고통과 시련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은 강제연행 희생자 및 그 유가족들이 겪고 있는 시련과 고통의 실상, 일본 곳곳에 남아있는 강제징용 · 징병의 현장 등에 대한 탐사를 통해 작성되었다. 이 책은 무엇 때문에 강제연행의 실상이 뒤늦게나마 밝혀져야 하는지, 그리고 왜 일본 정부의 전쟁책임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는지를 밝혀 보려는 노력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억울한 희생자들을 부끄러운 과거 역사의 한 부산물로만 간주, 은폐와 망각의 세월 속에 묶어 두려는 우를 범해 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일청구권협정은 일제강점기 피해 역사의 실체를 규명하는 작업에 걸림돌이 되는 ‘만악의 근원’이다. ‘경제문제 해결’, ‘군부가 일으킨 정권의 적법성 인정’이라는 박정희 정권의 필요와 ‘식민지 피해청산’의 부채를 경제협력이라는 포장지를 씌워 해소하려는 일본의 요구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박정희 정권은 ‘역사적 소명의식’에 따라 한일협정을 타결했다고 강변했으나, 청구권 자금 3억 달러에 민족의 자존심을 판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때문에 박정희 정권은 한일협정을 규탄하는 극렬 반대 데모를 계엄령으로 잠재운 상태에서 협정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한일협정은 미국의 중재가 주효한 결과이기도 했다.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통합 전략의 목적으로 한일 양국을 종용해 국교 정상화를 서둘렀으며 실제 이를 뒷받침하는 외교문서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뉴라이트(New Right) 또는 몰상식한 ‘가짜 보수’들은 불행했던 과거사를 강조하는 일은 한일 양국 관계발전에 걸림돌이 될 뿐이라고 주장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과거사 청산 노력을 ‘색깔론’으로 덧씌우기 시작했다. 그들은 일본 극우 세력의 역사관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아베 정부와 일본 극우 세력들은 침략전쟁을 오히려 정의로운 전쟁으로 미화한다. 아베 정부는 야하타 제철소, 나가사키 미쓰비시 조선소, 해저 탄광이 있던 하시마 섬(군함도) 등을 묶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군수 산업의 중심지로 ‘침략의 역사’를 증언하는 곳이다. 하지만 일본은 ‘근대화를 일궈낸 일본 산업의 역사’로 보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미쓰비시는 일본 제국주의와 함께 성장하며 세계사에 큰 해악을 끼친 전범(戰犯) 기업이다. 일본 근대화의 기초를 닦은 산업 발상지라는 점을 들어 세계유산 등재를 책동하는 것은 일본의 저급한 역사 인식을 증명한다. ‘수인번호 503번’과 뉴라이트 세력들은 1965년 한일협정이 과거사 청산에 발목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한일협정을 맺은 지 정확히 50년 후에 ‘수인번호 503번’은 위로금 10억 엔(한화 100억 원)을 받으려고 ‘한일 위안부 합의’를 받아들였다. 역시 그 아버지에 그 딸이다. 뉴라이트는 ‘전범 기업’이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본 기업들로부터 정치자금을 지원받은 박정희를 ‘근대화를 일궈낸 구국의 영웅’으로 미화한다.

 

영화 <군함도>로 불거진 논란이 당분간은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나는 현재 상황이 걱정스럽다. ‘군함도’는 우리에겐 뼈아픈 역사의 현장인 건 분명하다. 그렇지만 ‘군함도’는 강제징용의 역사를 상징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다.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타지로 끌려와 강제노동으로 혹사당했던 가슴 아픈 현장들이 많다. 홋카이도에서 류큐(오키나와)까지 일본 어디를 가나 강제동원 현장이 아닌 곳이 없다. ‘동양의 하와이’라고 불리는 중국 하이난 섬이 우리 민족의 한이 깊게 서린 곳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나는 이 책을 통해 ‘하이난 섬의 학살’을 처음 알았다. ‘군함도’가 알리기 시작하면서 강제징용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아직도 이역만리에서 떠돌고 있는 ‘조선인들’이 있다. 영화 한 편을 둘러싼 논란이 점화될수록 우리는 지금부터 기억해야 할 그 ‘무엇’을 못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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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8-07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군함도가 현재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되어 있다고 들었다.
진실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등재를 철회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면 그게 조선인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걸 재확인하던가.
앞으로 그렇게 되려나?

난 조선총독부 청사 저렇게 없애도 되는 건가?
회의스럽더군.
독일은 유대인 수용소 아직도 보존되어 있다잖아.
그건 어찌보면 일본과 친일파들에겐 손 안 대고 코를 플게 해준 건
아닌가 싶기도 하더군.
그러니 맨날 일본에 당하고 친일파 청산 못하는 거 아니겠니.쩝

cyrus 2017-08-07 15:14   좋아요 1 | URL
등재 철회가 불가능해요. 일본이 미국 다음으로 유네스코에 지원금을 부담하고 있어요.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가 일본 정부에게 일본 근대 산업시설이 군사적 필요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리도록 권고했습니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올해 12월까지 권고 조치를 따라야 하고, 이 권고 조치를 반영한 보고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아베가 버티고 있다면, 무시하고 넘어갈 것 같습니다.

transient-guest 2017-08-08 10:29   좋아요 2 | URL
한일관계의 상당부분은 미국의 영향을 받는 것 같습니다. 한동안 위안부이슈가 세계적으로 한국에 유리하게 공론화 되었던 것도 결국 정치적인 이유가 컸다고 봅니다.
조선총독부청사는 일단 지어진 위치가 나빠서 철거 아니면 이전 이렇게 두 가지로 갈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는데요, 김영삼 대통령이 원래 그리 생각이 깊은 사람이 아니라서 그랬는지, 정치적인 쇼였는지 암튼 그리 됐네요. 한 마디로 좀 mixed opinion이 있어요 저는.

2017-08-07 15: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8-07 15:24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과거서 청산이 더딘 이유가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과거사 청산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친 것이 결정적인 실패 요인이고요. 정부는 손 놓고 있는데 민간단체들은 일본이 은폐한 역사를 찾아내서 널리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7, 80년대 민주화 운동으로 국내 상황이 어수선했을 때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조선인들 그리고 일본의 과거사를 인정하는 소수의 일본인들이 모여 과거사 진상 규명에 나섰고, 집회를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과거사뿐만 아니라 수십 년 전부터 과거사 진상 규명에 나선 분들의 노력도 알아야 합니다.

표맥(漂麥) 2017-08-07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봤습니다... 이런저런 평은 생략하고... 전 송준기보다 소지섭의 이미지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cyrus 2017-08-07 15:26   좋아요 0 | URL
저는 영화는 안 봤어요. 이 책을 읽으니까 영화를 봐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어요. ^^;;

레삭매냐 2017-08-07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군함도가 시장에서 빠른 속도로 외면
받고 있는 상황에서, 픽션은 거둬내고 역사
적 사실만이라도 바로 볼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일본이 유네스코 권고안을 아직까지도 시행
하지 않고 버티는 걸 보면 정말 할 말이
없네요.

cyrus 2017-08-07 16:14   좋아요 0 | URL
유네스코에 돈줄을 대고 있는 나라가 일본입니다. 그리고 503번 정부가 일본 앞에만 서면 작아져서 일본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에 소극적으로 저항했습니다. 이러니 일본 정부가 떳떳했던 겁니다.

syo 2017-08-07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레카님의 글과 같이 읽으니 저 작자들의 몰염치는 도대체 장르를 가리지 않고 그저 거대하고 거대하다는 느낌입니다.

cyrus 2017-08-07 18:23   좋아요 0 | URL
한일협정의 문제점을 알게 됐을 때 여러 번 화가 났습니다. 여태까지 그걸 몰랐던 제 자신이 화가 났고, 박씨 부녀가 싸놓고 간 두 개의 똥을 쉽게 처리할 수 없다는 점에 화가 났습니다. 그 똥을 좋다고 우기는 극우세력들이 한심해 보였습니다.

기억의집 2017-08-07 1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군함도만이 아니고 오키나와에 간 적 있는데 그 곳 전시관옆에 수많은 우리나라 청년들이 태평양전쟁의 희생자로 묻혀있다는 것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류감독이 군함도를 찍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역사 공부가 필요한 것이 아니였나 싶어요. 우리 나라 주류 역사학자들이 절대 발설하지 않았던 제국주의 시대의 희생을 이제 우리가 추적해가야하지 않을까 싶어요.

cyrus 2017-08-07 18:28   좋아요 0 | URL
만약에 국정교과서가 통과되었으면, 학생들은 1965년 한일협정의 장점만 나열된 내용을 배울 겁니다. 여기에 탄력 받은 뉴라이트 세력들은 한일협정의 한계를 밝힌 교과서를 ‘좌편향 교과서’라고 우겼을 거예요.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그림입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역사를 쉽게 공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방식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역사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 영화나 드라마로 역사를 이해한다면, 허구와 사실을 혼동할 수 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8-07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이들이 한국 고대사의 왜곡을 말하는 반면, 현대사 왜곡은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네요... 역사 문제에 대한 인식이 시급한 과제라 여겨집니다...

cyrus 2017-08-08 12:10   좋아요 1 | URL
친일파의 후손 대부분이 기득권입니다. 그들은 권력을 내세워서 숨기고 싶은 조상의 과거를 끝까지 숨길 겁니다.

transient-guest 2017-08-08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지난 이명박그네 정권이 그렇게 교과서 바꾸고, 여론조작을 했겠지요. 민족주의적인 시각을 미래세대부터라도 말살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cyrus 2017-08-08 12:12   좋아요 1 | URL
가짜 보수들의 빅픽처, 이명박그네. 탄핵을 일찍 했어야 했습니다. 그들이 싼 똥이 너무 많습니다.
 
신화와 예술로 본 기형의 역사
게르트 호르스트 슈마허 지음, 이내금 옮김 / 자작나무(송학)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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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기형아의 탄생은 불길한 소식이었다. 16세기 중반 독일에 머리 부분과 상체 부분이 붙은 쌍둥이가 태어났다. 이 쌍둥이는 태어나자마자 네 시간 만에 사망했다. 그러나 기형아의 출산 소식을 소개한 팸플릿을 본 군중은 겁에 질렸다. 팸플릿에 기형아를 주제로 쓴 시가 적혀 있었다. 중세 사람들은 신의 징벌을 받으면 기형아가 나온다고 생각했다.

    

 

죄에 대한 징벌이 나타났으니

한 여자와 남자가

명예와 수치심을 짓밟아버렸음이라

이에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에 따라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기괴한 인간상을 만들어 놓으셨도다.”

 

(게르트 호르스트 슈마허 인용, 81)

    

 

오늘날의 과학은 기형의 원인을 유전 질환에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 유전자는 한 개만 변형되더라도 태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고대 그리스의 학자들도 기형아에 대해 연구를 했다.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는 태아의 발육 단계에 나타난 결핍으로 인해 기형아가 나온다고 봤다. 고대 그리스 · 로마 시대에 태어난 기형아들은 죽을 운명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신체적으로 연약한 기형아를 키우지 못하도록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세네카(Seneca)는 신생아가 기형으로 확인되면 죽여도 된다고 생각했다. 기형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시대의 사람들은 기형아를 신의 분노를 뜻하는 불길한 징조, 또는 인간으로 살아갈 수 없는 비정상적 존재로 받아들였다.

 

기형이 과장된 상상력을 만나면 그로테스크한 형상을 만들어 낸다. 낯설고 생경함, 정형의 틀을 벗어난 기이함. 예술가들은 기형에서 비현실적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기이한 것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력의 조합은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 미학으로 발전한다. 하지만 기형학의 역사가 그리 밝지만 않다. 기형학의 역사를 살핀 게르트 호르스트 슈마허는 인류의 잔혹한 면모를 증명해주는 영예롭지 못한 부분(147)까지 공개한다. 19~20세기 유럽에 공공장소에서 기형인들을 전시하는 일이 성행했다. 기형인들은 괴이한 동물로 취급받았고,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 1938년 독일에서 기형인들을 공공장소에 전시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생겼다. 그렇지만 상업적 목적으로 기형인들을 동원하는 악습이 여전히 남아 있다.

 

 

 

 

 

 

90년대 초반 미국 최대 프로레슬링 단체 WWE(World Wrestling Entertainment)에 난쟁이 레슬러들이 링 위에 등장한 적이 있다. 신장 132cm의 난쟁이인 딜런 포슬(Dylan Postl)은 혼스워글(Hornswoggle)이라는 닉네임으로 WWE에 활동하여 챔피언 벨트를 획득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세계 최고의 링 위에 오른 대부분 난쟁이 레슬러들은 관중의 이목을 끌기 위한 이벤트성 경기에 출전하는 데 그쳤다.

 

 

 

 

 

신화와 예술로 본 기형의 역사(도서출판 자작, 2001)은 기형에 대한 과거 문헌과 역사적 자료를 확인할 수 있는 귀한 책이다. 눈으로 보기 불편한 삽화와 도판이 몇 개 있어서 비위가 약한 독자라면 피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만 기형을 그저 혐오스러운 것으로 봐서는 안 된다. 4년간 청와대를 아늑한 안방처럼 사용했던 분은 바른 역사를 못 배우면 혼이 비정상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철장에 갇힌 그분은 바른 역사를 배우지 못해서 생긴 자신의 비뚤어진 역사관을 죽을 때까지 고집할 것이다. ‘혼이 비정상은 그분의 주옥같은 어록으로 남게 되었지만, 기형의 역사가 바른 역사라고 생각한다면 혼이 비정상이 틀린 말은 아니다. 이 책에 나오는 기형의 역사는 기형을 바라보는 인류의 진실한 눈이 만들어 낸 흔적이다. 이 흔적 중에 좋은 점을 눈곱만큼 찾아보기 어렵다. 기형을 바라보는 시선에 편견과 지나친 상상력이 더해지는 바람에 기형은 늘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들이 있었기에 선천성 · 후천성 기형의 원인을 알게 됐다. 기형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곧 인간이라는 존재가 탄생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일이다. 이 바른 역사를 모르는 사람은 기형을 편견과 차별의 눈으로 바라볼 뿐이다. 그 사람들의 혼이 비정상이다.

 

    

 

 

Trivia

헤르모드(헤르메스)아버지인 제우스의 팔족마(八足馬)를 타고 다니는 신들의 전령이다. 8은 헤르모드가 죽은 자들을 다른 세상으로 옮길 때의 신속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123)

 

헤르모드(Hermóðr)는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신이다. 그는 주신 오딘(Óðinn)의 아들이며 신들 중에 가장 민첩하다. 그리스 신화의 헤르메스(Hermes, 주신 제우스의 아들)와 흡사하다. 123쪽에 헤르모드를 제우스의 아들로 잘못 소개된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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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6-28 20: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기형 자체가 일반적이지 않아서 기피하게 되는 것 같네요... 우리가 추하다고 여기는 것도 일반적인 사태라면 , 그래도 우리가 같은 것을 보고도 피할 지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cyrus 2017-06-29 13:02   좋아요 1 | URL
비정상적인 대상을 낯설게 느껴지는 감정은 자연스러운 본능이라서 문제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본능의 감정이 과장되면 비정상적인 대상을 왜곡해서 바라보게 됩니다. 《추의 역사》를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

syo 2017-06-28 21: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툴루즈로트렉이 생각나네요. 그래도 그 사람은 나름 사랑받고 살다 간 것 같던데. 사회 전체의 시선도 문제겠지만 주변 사람의 시선이 확실히 크리티컬한것 같아요.

cyrus 2017-06-29 13:04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주변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dys1211 2017-06-28 2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형은 선택이 아닌데 선택인양 대하는 사회의 시선이 항상 아쉬움을..

cyrus 2017-06-29 13:08   좋아요 0 | URL
옛날에 기형인들은 살아갈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당했습니다. 몸이 불구라는 이유로 기형아를 버리거나 죽이는 비정한 일이 많았습니다.

yamoo 2017-06-28 2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 책도 있었군요! 찾아 보니...품절..OTL
알라딘 중고 서점에 나오면 얼른 데려와야 겠습니다!
책 이미지를 보니, 읽어 보고 싶군요~ 사실 책 타이틀 ‘~~의 역사‘라는 것만 띠면 사재기하는 습성이 있는지라..ㅎㅎ

cyrus 2017-06-29 13:10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습니다. ‘~역사‘라는 타이틀이 붙은 책 중에 특이한 소재와 내용인 것도 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