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전에 곰곰생각하는발님의 글에 달린 흥미로운 내용의 댓글을 접했다. 그 댓글을 작성한 분은 수다맨님이다. 수다맨님의 설명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사아드 알 비쉬는 13년 넘게 사형집행관을 맡았다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사형 방식은 참수형이다. 즉 무함마드 사아드 알 비쉬의 직업은 우리말로 하면 ‘망나니’다. 온갖 잡다한 지식이 정리된 ‘나무위키’에 무함마드 사아드 알 비쉬에 대한 짤막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이제부터 언급될 내용은 나무위키에 참고한 것이다.

 

무함마드가 십 년 넘게 망나니를 하는 이유가 그의 일을 대신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사형집행관은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보수를 넉넉하게 받는 직업이다. 무함마드는 죄인 한 사람씩 목을 자를 때마다 오랫동안 피땀 흘리면서 번 돈보다 더 많이 받는다. 그런데 그는 현지 인터뷰에서 자기 일이 알라가 용서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도 사람인지라 사람을 한 번에 죽이는 일에 죄책감을 느꼈다. 테러를 일삼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때문에 이슬람이 살상이 허용된 위험한 종교로 오해받는다. 그런데 이슬람은 생명을 중시하는 종교다. 이슬람의 경전 꾸란은 살인의 경우를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특히 명분 없는 살인을 하지 말라고 밝히고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꾸란의 구절을 마음대로 인용, 해석하여 자신들의 테러 행위를 정당화한다.

 

 

 

 

 

참수형에 사용된 도구는 장검과 도끼다. 초기의 참수형은 지체 높은 사람들, 즉 왕족이나 귀족들이 받는 형벌이었다. 강도, 절도, 간통 등 단순 범죄자들은 교수형을 받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참수형의 권위적인 의미가 잃기 시작했고, 왕족이 아닌 사람도 참수형을 받았다.

 

 

 

 

 

 

 

 

 

 

 

 

 

 

 

 

 

 

참수형이 기계화로 발전된 것이 바로 단두대, 즉 ‘기요틴(guillotine)’이다. 단두대는 프랑스 혁명사를 논할 때 절대로 빠져선 안 되는 필수 요소다. 프랑스 혁명 말기 자코뱅당이 주도한 공포정치 시대를 ‘단두대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포정치 시대는 단두대로 시작해서(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처형) 단두대로 끝났다(로베스피에르 처형). 단두대의 이름으로 남게 된 기요틴 박사는 흔히 단두대를 발명한 사람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단두대를 새로운 사형 방식으로 도입하자고 국민의회에 제안했다. 기요틴 박사는 고통 없이 ‘인간답게’ 목을 치는 인도적인 사형 방법을 원했다. 기요틴의 등장으로 사형집행자는 사형수의 목을 향해 검과 도끼를 내려치지 않아도 되었고, 사형수는 목이 잘려나가는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런데 취지는 그럴 듯했지만 진행 상황은 그리 인간적이지 않았다. 단두대에서 공개 사형이 진행되는 날에는 인간 본성과 거리가 먼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다. 군중들은 참수된 인간의 피가 불치병을 낫게 해준다는 미신을 믿었다. 사형이 집행된 후에 군중들이 단두대 주변으로 몰려왔다. 사형집행관의 조수들은 잘려나간 머리나 목 없는 시신에 흘러나오는 피를 컵에 받거나 손수건에 적셔서 군중들에게 돈을 받고 팔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사형집행관을 천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망나니’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에는 ‘망나니’는 성직이 포악한 사람을 비난할 때 쓰는 단어가 되었다. 그렇지만 실제 사형집행관은 우리가 생각하는 망나니에 가까운 인성을 가지지 않았다. 무함마드 사아드 알 비쉬는 자기 일이 이슬람 교리에 어긋날까 봐 걱정했다. 그리고 자식들이 자신처럼 사형집행관의 길을 걷지 않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프랑스 혁명 당시 최고의 사형집행관이었던 샤를 앙리 상송이라면 무함마드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해주고 남았을 것이다. 상송은 루이 16세를 포함하여 수천 명의 목을 잘랐다. 그의 가문은 증조부 때부터 대대로 사형집행인으로 활동한 집안이었다. 상송 가문의 증조부가 사형집행인의 딸을 만나 결혼하지 않았으면 상송 가문은 훌륭한 귀족 집안이 되었을 것이다. 아무나 하기 힘든 직업이 으레 그러하듯, 상송 가문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받았다. 그래서 상송은 자신의 회고록에 사형제가 폐지되기를 밝혔다.

 

 

 

 

 

 

 

 

 

 

 

 

 

 

 

 

 

 

 

과거의 공개 사형은 군중을 겁주고 일벌백계의 효과를 거두기 위해 시작됐다. 그렇지만 잔혹한 처벌의식의 잔인성은 군중을 길들여 놓았다. 사형이 집행되는 날은 축제 분위기다. 공개 사형은 황홀한 구경거리다. 권력자가 단두대에 오르면 군중은 일상에서는 맞설 수 없었던 권력에 대해 조롱을 하거나 돌팔매질까지 한다. 그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인간의 역사를 보면 사형장에 끌려가는 사람에게 조롱하는 군중이 자주 등장한다. 미셸 푸코의 분석대로, 누군가를 하나의 속죄양으로 삼고 타자화함으로써 사회의 어두운 면을 개인 탓으로 돌릴 수 있다. 여러 문제가 중첩돼 벌어진 사건을 한 개인에게 향한 분노로 표출된다면, 무고한 사람이 억울하게 희생되는 비극적인 과정을 보지 못한다. 사형이 또 하나의 살인인가 아니면 마땅한 정의의 실현인가를 판단하는 일은 쉽지 않은 과제의 하나다. 사형집행인을 구하는 일도 쉽지 않다. 사형집행인조차 호기심 어린 구경거리의 일부로 보고, 그를 비하하는 태도는 인간의 존엄성에 상처를 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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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1-16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인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요..그런데 군중의 화풀이용으로 사용되어질텐데요..문제는 그 화풀이의 대상이 자신이 되어졌을 때는 빽 돌아갈 일이죠...

cyrus 2017-01-16 15:55   좋아요 1 | URL
정말 억울하고, 통탄할 노릇이죠. 억울한 희생자의 가족들이 겪어야 할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stella.K 2017-01-16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수다맨님 그 댓글 봤어.
좀 놀랐지. 그런 직업이 아직도 있다는 게.
우리 여자들은 환호했을 거야.
가끔 누가 성폭력 했다고 그러면 저런 놈들은
광화문 광장에 매달아 놓고 총살을 시켜야 한다.
거길 거세해야 한다 막 그러거든.
사람은 조용히 말로해서 못 알아 듣는다고 생각하는 거야.

기요틴 하니까 옛날에 보았던 <길로틴 트래지디> 영화 생각났어.
내용은 기억이 안 나는데 암튼 수작이었지. 그것도 19세기 사형을 다룬 영화거든.
다시 한 번 보고 싶은데 올레 tv는 없는 것 같기도하고...

cyrus 2017-01-16 18:55   좋아요 0 | URL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인간이길 스스로 거부하는 범죄자들은 가혹하게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인권이라는 이유로 범죄자들이 법적 보호의 그늘 속에 있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2017-01-16 16: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1-16 18:57   좋아요 0 | URL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늘 끝까지 변명하는 최순실이 80년대식 고문을 당해봐야 한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1-16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페이퍼 재미있네요. 전 이상하게 이런 잡학에 흥미롭더군요.
역사도 거시보다는 미시학에 관심이 높고 말이죠..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7-01-16 19:00   좋아요 0 | URL
수다맨님과 곰발님 덕분에 저도 흥미로운 내용을 알았습니다.

나무위키라는 사이트에 들어가면 정말 다양한 잡식이 많습니다. 다만 잘못된 정보도 있긴 합니다만 가끔 심심할 때 들어가서 보면 재미있어요. ^^

겨울호랑이 2017-01-16 16: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럽에서 청조말 중국에서 사형수들의 살점이 돈으로 거래된 것을 비인간적이라고 비난했다고 하던데, cyrus님 글을 읽으니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네요

cyrus 2017-01-16 19:04   좋아요 1 | URL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인종 학살은 정당한 행위로 주장하고, 아시아나 아프리카인을 야만인으로 규정합니다. 내로남불이죠.. ^^;;

북프리쿠키 2017-01-16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망나니는 현재로 치면 공무원이네요^^;

cyrus 2017-01-16 19:04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사형집행관은 특별한 대우를 받을 만한 특수 직업입니다. ^^

블랑코 2017-01-16 19: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존재하는 직업인지 몰랐어요. 저도 이런 잡학 좋아하는데요. ^^

장르 소설인 ‘사형집행인의 딸‘ 시리즈를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꽤 자세하게 중세 사형집행인의 이야기가 나와요. 후손이 자기 조상의 직업과 기록에 상상력을 더해 쓴 소설인데 장르적 재미가 뛰어나진 않지만 당시 생활상을 알게 되는 재미가 아주 커요.

cyrus 2017-01-16 19:07   좋아요 1 | URL
문예출판사에서 펴낸 소설을 말씀하시는군요. 제가 그 책을 발견하지 못했어요. 사실 사형을 주제로 한 책이 그리 많지 않아요. 관련 도서를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 미국 인디언 멸망사
디 브라운 지음, 최준석 옮김 / 길(도서출판)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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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의 유별난 총기 애호는 미국의 역사와 전통적 자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총기 사건이 일어날 때면 많은 이들이 고통과 비탄에 잠긴 채 총기 규제 문제에 대한 논란을 벌이지만, 지식인 중 누구도 나서서 규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대다수 미국인은 총기소지가 허용 돼야 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 이들은 영국의 식민통치에 이어 인디언의 투쟁 과정 중 총의 힘으로 조국을 건설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아메리카 원주민(Native American)을 보통 ‘인디언(Indian)’이라 부른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인도로 착각하는 바람에 아메리카 원주민을 인디언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들이 인도인이 아니란 걸 알게 됐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들을 인디언이라고 부른다. 아메리카는 유럽인의 입장에서는 ‘신대륙’이지만, 아메리카 원주민에게는 오랜 보금자리였으며, 결코 새로울 것이 없는 땅이었다. 평화롭게 잘살고 있는 아메리카 원주민을 쫓아내고, 남의 둥지에 깃들면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온 미국도 결코 새로울 것 없는 바탕에서 발전했다. 분명한 것은 한때 세계를 주름잡았던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에 대한 달콤한 시대의 꿈이 무너져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위상 이면에는 ‘내가 곧 정의’라는 미국의 독선과 오만이 깔렸다. 미국인들의 의기양양한 태도는 아메리카 원주민 멸망사 곳곳에 발견된다.

 

아메리카에 정착한 백인들은 자신의 침략을 정당화하려고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라는 단어를 내세운다. 이 단어의 의미가 참으로 억지스럽기 짝이 없다. 백인들은 자신이 신대륙을 지배하는 명백한 운명을 가졌기 때문에 당연히 원주민의 땅을 소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인들이 흔히 내세우는 ‘프런티어 정신’은 백인 입장에서는 모험과 용기, 인내를 의미하는 진취적 이념이었지만,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는 땅과 목숨을 빼앗아가는 파괴와 탐욕의 정신이었다. 백인들은 야만적이고 비열한 방법으로 원주민의 땅을 강탈했다. 그 비참한 억압에 쫓겨 밀려난 원주민들은 사람이 살기 힘든 척박한 땅으로 이동했다. ‘가장 문명화한 부족’으로 알려진 체로키족 역시 강제 추방령이 담긴 인디언 이주법의 영향을 피할 수 없었다. 체로키족을 포함한 미국 남부의 원주민 부족은 땅을 잃고 서부로 이동하는 ‘눈물의 행렬’이 시작되었다. 강제추방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서부 개발이 시작되며 백인들은 야생들소를 멸종시키며 인디언의 식량 공급원을 차단해 추방했던 땅까지 빼앗았다.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을 지휘한 찰스 노드스트롬 중위는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뿐이다”라고 말했다. 백인들은 그토록 아메리카 원주민을 멸시했다. 그리고 그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을 만큼 잔악한 학살을 자행했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짓이지만 이처럼 야만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이 미국의 진짜 얼굴일지도 모른다. 아메리카 원주민을 학살하고 피로 얼룩진 대지 위에 세워진 나라. 허상의 실체가 드러나면 권위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과거는 ‘묻지 마세요’라고 해서 물어지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과거는 그것이 어떤 과거이든 사라지지 않는다. 역사의 진실이 있다고 하지만 해석에 따라 어떤 것은 전면에 나서기도 하고 어떤 것은 전면에서 뒷면으로 물러서기도 한다. 체로키족은 백인들처럼 흑인 노예를 부린 적이 있다. 한때 순혈주의를 주장하는 체로키족이 흑인의 피가 섞인 혼혈 출신 사람들을 부족 혈통에 제외해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흑인의 관점에서는 체로키족도 인종차별의 가해자로 볼 수 있다.

 

 

 

 

 

 

기억해서 좋은 것이 있고, 잊어야 좋은 것도 있다. 수치스럽고 굴욕적이며 아픈 과거일수록 그렇다. 어느 나라 역사든 영광으로 가득 차 있는 역사는 없다. 자랑스러운 것과 부끄러운 것, 선과 악,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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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2 2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12-23 09:01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이주민의 공격을 받은 원주민이 이주의 기로에 서게 되면 또 다른 원주민들과의 충돌이 불가피하죠.

북다이제스터 2016-12-23 2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cyrus 2016-12-24 09:1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북다이제스터님도 크리스마스 휴일 잘 보내세요. ^^

북프리쿠키 2016-12-23 2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16 서재의달인 축하드립니다.
메리크리스마스 되세요^^;

cyrus 2016-12-24 09:13   좋아요 2 | URL
이번에 제가 알고 지내는 분들이 서재의 달인으로 선정되었더군요. 북프리쿠키님도 축하드립니다. 크리스마스 휴일 잘 보내세요. ^^

yureka01 2016-12-23 2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즐겁고 해피한 크리스마시 되시길~~ㅎㅎㅎㅎ^^..

cyrus 2016-12-24 09:14   좋아요 0 | URL
유레카님. 올해 누추한 제 서재에 자주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서니데이 2016-12-23 2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2016 서재의달인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크리스마스 되세요.^^

cyrus 2016-12-24 09:15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도 서재의 달인으로 선정되셔서 축하드립니다. ^^

transient-guest 2016-12-24 05: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저렇게 사과할 때 반대진영에서 폭력이나 정치력을 동원해서 stop시키지 못하는 점이 미국의 저력이라고 봅니다. 어린 시절 제7기병대라는 소설을 읽고서 커스터가 영웅인 줄 알다가 미국에 와서 보니 인디언 학살자라는 것을 알고 약간 충격을 받은 경험이 있어요. 이미 확립된 정사와 수정주의가 적절히 균형을 이룬 사관을 갖는 것이 쉽지는 않아요..ㅎ

서재의 달인 축하 드려요.

cyrus 2016-12-24 09:19   좋아요 0 | URL
일본에도 과거 자국의 잘못된 역사를 반성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 세력의 힘이 미미한 점이 아쉬워요.

t-guest님도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

블랑코 2016-12-24 2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 님, 따뜻한 크리스마스와 연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서재의 달인도 축하드려요!!!! ^___^

cyrus 2016-12-25 11:03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블랑코님. 서재의 달인 축하드리고, 주말 잘 보내세요. ^^

페크pek0501 2016-12-26 14: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16서재의달인, 축하드립니다.
한 해 열심히 하셨습니다.

cyrus 2016-12-26 18:57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페크님. 솔직히 페크님도 서재의 달인으로 선정될 자격이 있습니다. 이번 해 서재의 달인 선정 기준이 애매합니다. 페크님처럼 글을 꾸준히 남기신 분들이 서재의 달인, 북플의 달인에 선정되지 못한 점이 의아스러워요.
 
10월 항쟁 - 1946년 10월 대구, 봉인된 시간 속으로
김상숙 지음 / 돌베개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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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파 못 살겠다, 쌀을 달라!”

 

(《10월 항쟁》 70쪽)

 

 

1946년 10월 1일 노동자를 비롯한 빈민들이 대구부청(현재 대구시청) 인근에 모여들었다. 빈민들은 오랫동안 굶주렸다. 광복 직후, 대구에 정착한 미군정은 식량난을 해결하지 못했고, 자신들의 힘을 강화하기 위해 친일 보수 세력을 끌어들이기에 바빴다. 최악의 상황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빈민들은 미군정에 향한 불만을 표출하기에 이르렀다. 과거에 ‘대구 10·1 폭동’으로 알려진 ‘대구 10월 항쟁’의 시작이었다. 오후에 들어서자 시위 군중은 4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대치하던 경찰이 끝내 발포했다. 격렬한 대치 속에 경찰의 발포로 민간인 1명이 사망하자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에 분노한 군중과 파업 노동자들은 다음날에도 대구부청과 대구역 광장으로 모여 시위를 벌였다. 그들을 해산시키려는 경찰이 또 한 번 총을 쐈다. 경찰의 위협에 희생된 민간인은 스무 명 이상이었다. 미군정은 대구에 계엄령을 선포했고, 몇 시간 만에 시위가 진압되었다. 그러니 민중 항쟁은 경북으로 번져 멈추지 않았다.

 

우파는 대구 항쟁을 ‘폭동’으로 규정지었다. 이 사건은 폭동의 요소와 항쟁의 요소가 때와 곳에 따라 혼재되어 있어 한마디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 그러나 빈민과 학생 그리고 노동자 등 계층을 초월한 민중이 참여한 이 이틀 동안의 시위는 ‘지역 민중 운동’이다. 즉 지도부 없이 민중이 능동적으로 전개한 대중 운동이다.

 

 

 

 

 

 

그런데 최근에 공개한 국정교과서에는 대구 항쟁을 공산주의자들의 선동으로 일어난 것처럼 소개했다. 이는 민중 항쟁의 의의를 무시하고, 왜곡했다. 대구 항쟁은 소련은 물론, 광복 직후 당시 대구에 조직 활동을 펼친 조선공산당 중앙조직의 개입이 없었다. 현재로썬 조선공산당 중앙조직이 대구 항쟁을 지도한 사실을 증명해주는 사료가 남아 있지 않다. 운동의 주체를 좌파적 시각으로만 바라본 탓에 대구 항쟁의 진상을 규명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총탄에 맞아 숨진 일부 희생자의 이름이 잊혔다. 언급하는 일 자체가 금기였다. 뒤이은 한국전쟁과 군사정부 시절, 그들의 후손은 조상의 죽음을 하소연하지 못했다. 해방공간부터 진행된 반공주의와 공산주의라는 극단주의의 갈등이 민중 운동의 흔적을 제거한 이유이다. 항쟁과 한국전쟁 전후 무고한 많은 민간인이 군경이나 인민군에 끌려가 죽임을 당했지만, 반공주의에 의한 트라우마 때문에 누구도 감히 학살의 얘기를 드러낼 수 없었다.

 

대구 항쟁, 경북 일대에서 일어난 민중 봉기 그리고 1948년 여순 사건 등을 진압하고 수립된 남한 정부는 반공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포장함으로써 지배할 수 있었다. 1987년 6월 시민항쟁까지 반공은 군정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작동했다. 이 때문에 대구에 극단주의 반공주의가 내면화돼 좌익 운동의 중심지로서의 역사마저 완전히 잊혔다. 1960년대 이후의 한국 현대사에 익숙한 사람들은 대구를 ‘보수의 성지’로 생각한다. 요즘 대구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최악이다. ‘나라를 엉망진창으로 만든 지도자가 태어난 지역’, 그리고 그 지도자를 뽑아주고, 열렬히 그 지도자를 찬양하는 ‘꼴통’ 시민들이 사는 지역. 다른 지역 사람들은 늘 ‘1번’으로 향하는 대구 민심을 싫어한다. 그렇지만, 미군정이 대구를 완전히 지배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조선공산당과 조선인민당 등 좌익 세력의 정당 조직이 활동했다. 그뿐만 아니라 좌우세력이 함께 건국 운동 준비를 시도한 적이 있었고, 공동으로 정치집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대구에 짧게나마 이념적 갈등을 넘어선 대중정치가 안정적으로 정착된 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속절없이 흘러간 과거가 너무나도 아쉽게 느껴진다. 미군정과 친일 세력이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대구가 좌우 세력이 공존하여 민중을 위한 정치문화가 본격적으로 싹 틔우기 시작한 지역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현재 유럽의 정치무대처럼 대구에 자유롭게 활동하는 진보세력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대구,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뿌리는 영광스럽지도 건강하지도 않다. 한마디로 말하면 썩었다! 불행하게도 대구와 대한민국은 미군정과 친일파들이 지배해왔다. 1946년 10월 이후부터 민심의 맥박과 함께 움직였던 대구의 시계는 멈춰진 상태다. 이 시계가 원상 복구하려면 친일 세력으로 인해 썩어버린 뿌리를 제거해야 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뜨겁게 숨 쉬었던 대구의 그 시간, 1946년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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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8 16: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12-08 19:30   좋아요 1 | URL
정말 간신히 살아남으셨군요. 이승만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민간인 학살의 주범이 누군인지 관심 없어하는 반응입니다. 그들은 좋은 것만 보려고 하죠.

저 방금 서구청 앞에 갔다 왔습니다. 제가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런지 오늘 촛불 집회에 실망을 많이 했습니다. 역시 대구는 새누리당 그늘에 벗어나기 쉽지 않은 지역입니다.

낭만인생 2016-12-08 2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민주화의 중심이 대구였는데.... 두환씨가 잔머리 굴리면서 지역감정으로 찢어 놓고 이렇게 되 버린 것은 아닌지.....

cyrus 2016-12-08 22:29   좋아요 1 | URL
이승만과 친일 세력이 대구를 포함한 남한 전지역 좌파 세력을 억압했고, 여기에 반공주의를 박정희가 이어받아서 대구는 그렇게 박정희를 찬양하는 지역이 되었죠. 그리고 낭만인생님 말씀처럼 전두환이 지역감정을 부추겼어요.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안인희 옮김 / 돌베개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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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국민은 신과 인간에 대한 책임을 자각하고 합일된 유럽의 동등한 권리를 갖는 구성원으로서 세계평화에 기여할 것을 다짐하며 헌법 제정 권력에 의해서 이 기본법을 제정하였다.”

 

Im Bewußtsein seiner Verantwortung vor Gott und den Menschen, von dem Willen beseelt, als gleichberechtigtes Glied in einem vereinten Europa dem Frieden der Welt zu dienen, hat sich das Deutsche Volk kraft seiner verfassungsgebenden Gewalt dieses Grundgesetz gegeben.

 

 

이렇게 시작되는 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은 통일 이전 서독 기본법의 연방정부 구성 원리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독일의 기본적 국가 구성 원리는 1870년 비스마르크의 첫 도이치 제국 통일 후 만들어져, 바이마르 공화국, 히틀러의 나치 정부,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 후 동독과 서독의 분단 상황을 거친 오랜 역사적 실험과 경험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연방정부의 새로운 기본법은 나치 독일의 쓰라린 상처를 안고 세계평화에 이바지할 것을 다짐하며 동서독의 통일과 유럽연합정부의 이상을 수용하고 있다.

 

패전국이 되었다는 것, 그것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과거이다. 비스마르크의 도이치 제국에 패배한 프랑스가 제1차 세계 대전이 오기까지 와신상담의 시간을 보냈고, 1차 세계 대전에 패배한 독일이 나치즘으로 접어들었던 과거를 볼 때 마음속에서 끝나지 않은 전쟁은 끝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보불전쟁, 1차 세계 대전, 나치즘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 등 이 긴 전쟁의 시대는 독일이란 단일 민족국가가 프랑스, 미국 등의 연합국에 무릎을 꿇는 것으로 끝났다. 그런데 이 시기 전체가 독일 역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패자인 독일의 입장에서 본다면 전쟁의 시대는 자멸의 길로 인도하게 한 과오의 시대였다. 독일의 언론인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독일이 전쟁 제국으로 팽창하는 과정을 되돌아보며 몰락의 원인을 파헤친다. 비스마르크와 히틀러. 시대를 초월한 다소 어리둥절한 조합이지만, 한때 독일제국의 위대한 영웅으로 숭배되었던 이 두 사람은 독일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과 혈(), 그리고 뛰어난 외교술로 독일 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고,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의 유럽 지도를 만들었던 인물. 비스마르크를 21세기, 그것도 독일이 유럽연합(EU)의 맹주로 자리 잡은 이 시기에 불러내는 작업은 쉽지 않다. 비스마르크의 주변이 항시 적과 동지로 나뉘었듯 그에 대한 평가도 극으로 갈린다. 자유주의자들은 그를 나치 등장의 전조로 지목한다. 독일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극단적 전체주의를 경험해야 했던 파행과 굴절의 이면에는 독일 제국의 권위주의 전통이 뿌리내리고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비스마르크와 미국의 대통령 트럼프에게 닮은 점, 닮은 환경이 없진 않다. 혹자는 트럼프의 등장을 히틀러의 부활이라고 냉소적으로 조롱하지만, 나는 그가 히틀러보다는 비스마르크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현재 미국이 친 트럼프(대안 우파)’반 트럼프로 분열돼 있다시피 한 것처럼 당시의 도이치 제국도 크게 보면 보수적인 구() 프로이센 진영과 민족주의 진영으로 나뉘어 있었다. 통일 도이치 제국 역시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프너는 비스마르크의 도이치 제국이 20여 년 동안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트럼프가 대선후보로 등장하면서부터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일명 트럼프 쇼크. 비스마르크가 들고나온 철과 혈도 당시 유럽인들에겐 충격이었다. 그러나 제국 통일 이후 비스마르크 2기는 달랐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비스마르크는 유럽 정복의 야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제국을 팽창하는 것만으로는 독일 내부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 수 없었다. 오로지 순수 독일 민족이 사는 작은 독일을 건설하는 것이 비스마르크의 원대한 꿈이었다. 그래서 비스마르크는 내부 분열의 잡음을 줄이기 위해 철과 혈 대신 실리와 실용’, ‘외교와 중재를 받아들였다. 그랬기에 비스마르크 2기 체제가 거의 반세기를 풍미할 수 있었다. 내년부터 트럼프가 내년부터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통령 권한을 행사할지 아직 알 수 없다. 워낙 자신감에 차 있고, 백인 민족주의를 천명한 그의 공약이 비스마르크의 정치적 노선과 다르지 않다. 대선후보 시절 무모할 정도로 강경한 자세로 자신의 공약을 주장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당선 이후 일부 변화의 모습을 보인다. 정치 경험이 전무한 트럼프가 실리를 추구하는 정책을 펼칠지 지켜봐야 한다.

 

프랑스 황제에 올라 유럽제패를 꿈꾸었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한 국가의 정치는 그 나라의 지리로부터 나온다는 말을 남겼다. 정치현상이 이뤄지는 공간적인 실체, 즉 영토를 중시한 발언이다. 작은 독일제국으로 한정된 환경과 지리는 정복 열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최적의 조건이었다.작은 독일제국은 자신 주변에 둘러싸인 유럽 연합의 힘을 상당히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독일 제국은 유럽 연합의 힘에 밀려 고립될까 봐 두려웠다. 독일 제국의 민족주의자들은 이 뒤숭숭한 분위기를 극복하고, 민족적 자존심을 고취하기 위해서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생존 방식을 선택한다. 제국의 극단적인 논리는 나치스의 인종차별과 게르만 민족의 세계지배 이론을 뒷받침하게 된다.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긴 했으나 사민주의적 이상주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바이마르공화국 헌법을 가진 독일은 20세기 전반기 이미 시민사회가 발달한 선진국이었다. 이때 독일은 민주주의를 재건해야 했다. 그런데 히틀러는 민주주의적으로 집권해 전쟁을 일으켰고, 유대인을 학살했다.

 

비스마르크는 정치를 이념이 아닌 힘의 논리로 파악했다. 그것은 유럽 정복이 아니라 독일 제국이 평화적으로 발전하기 위해 선택한 차선의 방법이었다. 그러나 비스마르크는 덴마크, 오스트리아, 프랑스를 차례로 통일 독일제국의 제물로 삼아 평화로운 제국의 이득을 취했다. 그는 자신의 시대가 정복의 야욕을 불러일으키게 한 중대한 배경이 되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1871년 비스마르크의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진 이후부터 독일 제국에 제국주의적 야망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비스마르크는 자신은 절대로 제국주의자가 아니라고 밝혔지만, 비스마르크의 작은 독일 제국을 키워 준 토양은 역설적이게도 나라를 더 크게 만드는 제국주의의 거름이 되었다. 비스마르크는 전쟁이든 정치적 모험이든 단 한 번의 승부에 국가와 자신의 미래를 걸지 않았다. 절제를 알았고 한계를 알았다. 그런데 히틀러는 자신의 열망을 조절하지 못했고, 위험한 망상에 사로잡혀 유럽 전체를 아비규환으로 만들었다.

 

독일은 다시 한번 유럽의 패권 국가가 되려는 야망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철저한 사과로 전쟁 책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처럼 보였던 독일에서도 여전히 미해결의 문제들이 남아 있다. 네오나치 단체들은 여전히 히틀러의 제3 제국 질서를 그리워하고, 나치의 상징인 하겐 크로이츠(Hakenkreuz)에 향수를 느낀다. 히틀러는 독일 국민의 좌절감과 무력감을 교묘하게 자극하고, 거기에서 자란 정치적 허무주의를 발판으로 역사상 전대미문의 절대 권력을 장악, 독일 국민을 죽음의 골짜기로 몰아갔다. 민족적 자존심을 내세운 기개는 너무 지나치면, 막상 대안 없는 변화가 몰아올 결과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독일이 과거에 만들어진 비스마르크와 히틀러, 두 개의 이름으로 남은 제국의 향수(鄕愁)를 말끔히 씻어내지 못하면, 4제국으로 꾸미려는 위험한 향수(香水)가 될 수 있다. 독일의 역사를 보면서 우리가 지금 걱정해야 할 것은 정치에 대한 국민의 좌절감과 무력감이 자칫 정치적 허무주의를 가꾸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1970년대에 제조된 박정희 향수를 못 잊고 있다. 허무주의의 기운이 이미 흘러간 시대의 향수를 자극하여 시대착오적인 강력한 지도자에 대한 환상을 키울까 봐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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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0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12-01 18:39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요즘 히틀러를 중심으로 한 독일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독일 역사를 계속 공부하게 되면 비스마르크까지 관심의 폭을 넓혀볼 생각입니다. ^^

2016-12-02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02 1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낭만인생 2016-12-02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정희 향수... 전라도 사람들 조차 박정희는 좋게 평가하시는 분이 많아 걱정입니다.

cyrus 2016-12-02 14:38   좋아요 1 | URL
과거 지도자를 선호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지도자의 업적만 찬양하고, 문제점을 모르거나 무시하는 건 올바르지 않습니다.

yureka01 2016-12-02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일단..도종환 시인의 시집 하나 들고 갈 작정입니다..오시면 꼭 싸인 받고 싶어요 ㅎㅎㅎ

cyrus 2016-12-02 14:39   좋아요 1 | URL
시인께서 바쁘시더라도 꼭 오셨으면 좋겠어요.. ^^

2016-12-02 14: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02 14: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메두사를 잡은 영웅 페르세우스는 보기만 해도 돌이 되어버리는 괴물을 잡기 위해 거울을 사용했다. 추악한 자신의 모습을 비춰줌으로써 메두사의 공포를 잠재울 수 있었다. 자신도 놀랄 추악한 이면을 그제야 메두사가 본 것이다. 본래는 미녀였으나 신의 저주로 괴물이 돼버린 메두사, 그 스스로 바라본 공포는 자신마저도 돌로 만들어버렸다. 메두사의 공포를 거울이 비추듯, 이성을 저버린 폭력의 추악한 본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전부라고 말할 수 없겠지만, 문명은 자연의 상태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기괴한 폭력을 만들어냈다. 여기에는 유형의 폭력보다 더 잔혹한 무형의 폭력도 포함된다. 문명이 온라인 공간으로 확대될수록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폭력이다. 언제 누가 휘두르는지 알 수조차 없는 이 폭력은 갈수록 정교하고 악랄해져 간다. 인터넷의 대중화는 갖가지 무형의 폭력이 번식하는 좋은 환경이 되었다.

 

암살은 인간의 불확실성이 취약할 때 드러나는 유형 또는 무형의 폭력이다. 암살은 종종 역사에 깊은 흔적을 남길 정도로 엄청난 나비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역사를 봐도 그렇다. 1914년 6월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페르디난트 부부가 사라예보에서 암살된 사건으로 촉발된 제1차 세계대전이 있다. 평범한 주부였던 코라손 아키노는 야당 지도자였던 남편 베니그노 아키노 상원의원이 암살당하자 정계에 뛰어들었다. 그녀는 20년 마르코스 독재 정부를 무너뜨리는 등 비폭력 시위의 세계적인 선구자가 됐다. 길게 언급하지 않겠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 사건도 한국의 운명을 바꿔버린 결정적인 사건이다.

 

 

 

 

 

세기의 암살자들 대부분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우리나라는 사실상 사형제 폐지 국가이다. 인권이 인류의 삶을 보호하는 공통의 가치로 자리 잡았음에도 사형제를 추진하는 사람들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범죄에 대한 형벌이라면 으레 교도소에 구금하는 징역과 같은 자유형을 떠올린다. 자유형은 신체의 자유를 박탈한다는 의미에서 붙인 말이다. 피해자뿐 아니라 국민도 범죄자가 징역을 살지 않으면 처벌이 적정하지 않은 것처럼 인식하기 일쑤다. 그러나 자유형이 주된 형벌이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오히려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신체형과 사형이 주된 형벌이었다. 사형은 유사 이래 가장 오래된 형벌이다. 최초 성문법인 바빌로니아 함무라비 법전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복수원칙을 비롯해 25개 죄에 대해 사형으로 처벌토록 했다. 그만큼 사형은 인류 역사와 함께 한 형벌이었다.

 

 

 

 

 

 

 

 

인간의 잔혹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인간 심리를 파악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사실 인간의 잔혹성이 문명의 발달과 함께 줄어들 것이라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어떤 형태의 폭력이나 잔혹성은 사라져가고 있어도 모양이 다른 폭거는 여전히 인간사회에 감춰져 있음을 보게 된다.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잔혹성이 어느 수준에 도달했는지 알고 싶으면 내가 직접 특별한 이름을 붙여준 ‘죽이는 책’들을 보면 된다. 서론이 쓸데없이 길어지고 말았는데, 책에 대한 내용의 50%가 서론에 소개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1. 콜린 윌슨
《잔혹》 (구판)
《인류의 범죄사 : 인류의 시작부터 현대까지 방대한 범죄의 역사》 (개정판)
《현대살인백과》

 

 

 

 

 

 


《아웃사이더》로 영국 문단에 충격을 준 콜린 윌슨은 왕성한 집필 활동을 펼치면서 살인, 불가사의 등 특이한 분야에 관심을 보였다. 《잔혹》(작년에 나온 개정판 제목은 《인류의 범죄사 : 인류의 시작부터 현대까지 방대한 범죄의 역사》)과 《현대살인백과》는 《아웃사이더》의 엄청난 명성이 뿜어낸 빛에 가려졌지만, 평소에 접하기 힘든 어두운(?) 지식이 궁금한 독자들에게 흥미를 선사해줄 수 있는 저작물이다. 윌슨은 살인 또는 암살 사건에 관련된 각종 자료를 수집하면서 인간의 잔혹성을 분석하여 자신만의 결론을 도출한다. 그는 살인이 자기 통제와 자기 파괴의 메커니즘을 통해 발생한다고 봤다. 자기 존재를 각인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살인 또는 암살이다. 연쇄살인범과 암살자는 이러한 자기 파괴를 통해 과시욕을 느낀다. 1980년 존 레논의 암살범 마크 채프먼은 암살 직후 “모든 사람이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이 레논을 죽임으로써 자신이 유명해질 것으로 생각했다. 자신의 삶 그리고 천재 뮤지션의 삶까지 파괴하려는 그의 끔찍한 선택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과 존 레논 그리고 《호밀밭의 파수꾼》을 세상에 널리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2. 칼 시퍼키스 《암살》

 

 

 

무슨 이유에서인지 저자에 대한 소개가 빈약하다. 역자의 말에 따르면 저자가 UIP 통신의 사회부 기자로 한때 몸담았고, 프리랜서 작가로 전향했다고만 소개했다. 이 책의 주제와 내용 구성면만 봐서는 콜린 윌슨의 책과 유사하다. 칼 시퍼키스의 《암살》 역시 콜린 윌슨의 《잔혹》을 펴낸 하서출판사의 책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마하트마 간디, 에이브러햄 링컨, 장 폴 마라, 명성황후, 박정희, 육영수, 제임스 1세 암살을 기도한 가이 포크스, 케네디 형제 등 굵직한 인류사의 중심을 관통한 암살 사건들이 백과사전식 형태로 정리되어 있다. 이 책의 장점이라면 역사 교과서에서도 보기 어려운 암살 사건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으로부터 백여 년 전, 암살자의 총탄에 맞아 쓰러지기 직전인 미국 뉴욕 시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은 사진도 실려 있다. 이 사진의 진실을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미국인들도 이 사건을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중남미,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테러 사건까지 소개되었기 때문에 사건항목별 내용이 비교적 적은 편이다. A4용지 1장 절반 분량이다. 어차피 이 책은 절판되었고, 암살의 역사를 정리한 책들이 많이 나왔으니 사서 보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3. 카를 브루노 레더
《세계 사형 백과》 (구판)

《사형 : 사형의 기원과 역사, 그 희생자들》 (개정판)

 

나와 유미오 《일본 고문형벌사》

 

 

 

 

 

이 책도 하서출판사에서 나왔다. 그래서 1990년에 나온 구판의 제목이 《세계 사형 백과》였다. 아마도 이때 출간된 콜린 윌슨의 《현대살인백과》과 짝을 맞추려고 의도적으로 이런 이름이 붙여진 듯하다.

 

인간의 생명가치를 신성시하는 사상은 필연적으로 사형 폐지 쪽으로 이어진다. 사형제 폐지론자들은 아무리 흉악한 살인자라도 사형은 그보다 더 잔혹하고 비인도적이며 인간의 존엄을 깎아내리는 제도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오판, 인종적 사회적 차별과 편견이 개재될 위험도 높다. 하지만 사형제 유지 찬성론자들의 주장 또한 완고하다. 강간, ‘묻지마 살인’ 같은 흉악 범죄에 대한 사형은 사회 안정에 기여함은 물론 살인자는 생명으로 죗값을 치러야 세상의 이치와도 맞는다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범죄를 억제한다’는 통념에 비추어볼 때 사형 폐지는 범죄 피해자들에게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충격을 줄 수 있다. 독일의 방송 극작가인 저자는 《사형 : 사형의 기원과 역사, 그 희생자들》을 통해 사형의 부당성을 부각해 사형제가 권력에 의한 살인행위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일본 고문형벌사》는 다양한 일본의 전통 고문 방식을 집대성한 책이다. 주로 에도 시대의 고문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에도 시대 때 그려진 고문 장면을 묘사한 그림도 실려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괴롭게 느껴지는 그림들이 있으나 흑백 도판인 데다가 크기가 크지 않다. 고어 영화의 잔혹한 장면에 익숙할 정도로 비위 강한 독자는 시기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고문 장면을 묘사한 그림 대부분은 여성들이 가혹하게 당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벌거벗은 상태의 여성이 고문당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도 있다.

 

 

우리는 폭력을 증오한다. 누구도 폭력 앞에서 겪은 공포와 수치를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폭력을 가한 상대를 오랫동안 기억하며 증오하고 저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에 열광하는 전근대적인 모습을 재현한다. 우리는 폭력을 증오하는 동시에 동경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단두대 주변에 모여 사형수의 목이 뎅강 잘려나가는 모습을 구경하는 과거 사람들과 우리는 과연 얼마나 다른가. 폭력이 한갓 호기심 어린 구경거리로 만드는 것은 살아 있는 자의 존엄성에도 상처를 내는 것으로 어떤 명분이든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속에서 여전히 들끓는 폭력에 대한 증오와 의존의 이중적 감정을 조정하기가 쉽지 않다. 애초부터 악마는 없다. 거울에 비추어 보면 누구라도 추악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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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11-11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아,,, 잔혹 이거 진짜 끝내주는 책인데....

cyrus 2016-11-11 18:18   좋아요 0 | URL
콜린 윌슨의 책을 좋아해서 절판본을 구하는 중입니다. ^^

북프리쿠키 2016-11-11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보다보니 평소 잘 몰랐던 단두대가 떠오르네요ㅎㅎ
프랑스혁명에 관해 잘 쓰여진 책 한권 추천부탁드립니다. 나폴레옹과 마리앙투아네트까지 잘 곁들여진 재미난
바이블이 없을까요?

cyrus 2016-11-11 18:21   좋아요 1 | URL
어려운 질문이군요. 프랑스 혁명 관련 책 중에 읽은 게 《오늘 만나는 프랑스 혁명》입니다. 프랑스 혁명부터 나폴레옹의 등장까지의 역사를 소개한 책입니다. ^^

블랑코 2016-11-12 0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 가는 책들이 많은데 전자책으로는 절대 안 나오겠죠? ㅠㅠ

cyrus 2016-11-12 17:23   좋아요 0 | URL
살인, 범죄 주제의 책은 많이 팔리지 않아서 일찍 품절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현대살인백과》는 한동안 품절되었다가 다시 판매되기 시작한 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