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시대에 읽는 한국여성사
정현백 외 지음 / 사람의무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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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한다. 불과 30여 년 전만 돌아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미흡한 구석이 남아 있다.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아직도 상당 부분 개선해야 한다. 남성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회 구성원이 육아와 가사는 여성이 담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가장 쉽게 떠오르는 문제다. 잘못된 사회 구조와 의식이 성 불평등을 일으킨다. 여성은 생명의 뿌리이자 역사의 대지였다. 이름 없는 꽃이자 면면히 흐르는 생명의 물결이었다. 아쉽게도 역사 속에서 그 목소리, 그 모습을 쉽게 보고 듣지 못했다. 역사의 언어 바깥에서 흘러왔기 때문에 제대로 기록되고 평가되지 못한 채 여성들의 삶은 잊혀졌다.

 

이 책은 그러한 여성의 삶과 정신을 역사의 수면 위로 올려놓는 작업이다. 한국사를 관통하며 강인하고 폭넓은 정신으로 자기 세계를 일구어낸 여성의 역사를 정리해 공식적 역사로서 정당한 자리매김을 시도한다. 한국 여성사를 쓰는 것은 일반적인 역사 쓰기와 구별된다. 역사를 여성주의 관점으로 보는 작업이다. 유명한 여성인물 중심도, 사건 중심도 아닌, 일반적인 역사에서 보지 못했던 여성들의 삶을 고대부터 시작해서 현대까지 총체적으로 되살리는 것이다.

 

고대 모계사회에서 다산(多産)은 가장 중요한 생산력이었다. 여자가 많은 아이를 생산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수렵보다 채집이 안정된 생산을 보장했던 선사시대에서 생리적으로 채집에 유리한 조건을 가진 여성이 중심이 되는 모계사회는 당연했다. 하지만 노동력이 요구되는 농경사회에 진입하면서부터 남성들이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고, 그 결과 가부장 사회로 진입했다. 고구려, 고려 시대에는 시집살이가 일반적인 풍습이었다. 흔히 쓰는 ‘장가간다’는 표현은 ‘사위가 장인의 집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고려 시대에는 형제, 자매들이 유산을 골고루 상속받아 해마다 돌아가며 제사를 지냈다. 아들이 없으면 딸과 사위 혹은 외손이 모계 쪽 제사를 지냈다.

 

하지만 처가살이와 모계사회의 흔적은 조선 시대 중기 이후 유교식 가부장제가 뿌리내리면서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남존여비와 남아선호 사상이 굳어지면서 딸의 상속권도 인정받지 못했다. 조선 시대의 여성들은 집안을 벗어난 사회 활동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었을 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가부장제라는 남성 중심의 규율에 따라 생활에 많은 제약을 받았다. 그러나 가부장제의 희생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두운 상황 속에서도 당당히 자신의 삶을 살아간 여성들도 있었다. 특히 여성들이 배운 한글은 자신의 존재를 부각해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었다.

 

 

 

근대사회로 넘어오면서 봉건적 모순이 결집한 결혼제도에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여성평등문제가 구체적으로 제기된 것은 동학 농민전쟁 때 동학군이 과부의 재가허용을 요구한 것이 처음이다. 이후 재가허용, 조혼, 이혼의 자유 요구는 남녀평등문제의 핵심으로 제기됐다. 이와 함께 전통사회에서 교육의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했던 여성들에 대한 제도교육의 필요성도 지적됐다. 이후 여학교 교육을 받은 이른바 신여성들이 1920년대 들어 늘어났다. 신여성들은 여성의 직업 활동과 함께 자유분방한 연애, 이혼의 자유를 주장하고 몸소 실천함으로써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한국 근대 여성사를 논할 때 국권 회복을 위한 항일여성운동을 빠져선 안 된다. 최근 의병장으로 활동한 윤희순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반가운 일이다. 윤희순은 항일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의병가를 직접 지어 부르고, 군사훈련에 참여했다.

 

여성이 시대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예견되는 지금까지도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여성의 삶은 여전히 감추어져 있다. 역사의 갈피마다 배어 있을 여성의 활동을 조명하기에는 기록이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남자의 글과 책 속에 묻혀버린 여성의 목소리와 삶을 재조명하는 작업이 절실하다. 여성의 활동을 보존한 기록을 발굴하는 과정 중에 과거의 못된 남자들의 생각도 함께 발견하게 된다. 놀라운 점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자들을 가볍게 보는 남자들의 시선이다. 1920년 처음으로 여성 전화 교환수가 등장했다. 이들의 고충은 성희롱이었다. 조선의 남성 고객, 일본 남성들은 여성 전화 교환수들에게 성희롱을 일삼았다. 꼭 기억되어야 할 역사 속에는 이처럼 남자들이 부끄럽게 여기는 이야기가 있다. 뭐 부끄러워도 좋다. 역사 속에서 더 많은 여성의 삶을 불러내야 한다.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삶의 현장에 도전하고 승리했던 여성들에 대한 기록을 모으고 정리하여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일이 바로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국정교과서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런 건 불쏘시개로 쓰고, 역사 속의 여성을 발굴하고 보존한 국사 교과서를 보고 싶다. 미래의 아이들이 이순신, 세종대왕 같은 남자 위인보다 여자 위인을 많이 찾는 날이 올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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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6-11-08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 의병장 이야기는 정말 처음 들어 보는 것 같습니다. 역시 책 세계 이야기는 그 깊이를 가늠 할 수 없네요.

cyrus 2016-11-08 15:47   좋아요 0 | URL
특정 분야를 깊이 파고든 사람이 아닌 이상 많이 알려지지 않은 지식이나 정보를 알아내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
 

 

 

 

 

 

 

 

 

 

 

 

 

 

 

 

 

 

 

 

최순실 대통령의 시녀 박근혜는 우주의 기운이 도와줄 때까지 청와대에 나갈 생각이 없는 듯하다. 최순실 게이트를 보도한 뉴욕 타임스는 “무속인이 남한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고 전했다. 최순실이 포함된 비밀모임 ‘팔선녀’가 막후에서 국정개입은 물론 재계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언론 보도마저 나왔다. 무속신앙과 정치권력의 결탁으로 인해 우주의 기운이 오기는커녕 국가의 기운이 빠져버리고 말았다. 영생교를 둘러싼 최순실과 박근혜의 연결고리 그리고 이와 관련된 음모론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을 보면 디트리히 에카르트와 히틀러와의 관계가 떠올린다.

 

 

 

 

 

디트리히 에카르트는 히틀러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별 볼 일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탕진하고, 노숙자 신세를 졌다. 에카르트는 헨리크 입센의 희극 《페르 귄트》를 독일어로 각색하여 대박을 터뜨렸다. 그는 자신과 알고 지낸 히틀러에게 《페르 귄트》를 헌정했다.

 

 

 

 

히틀러는 에카르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에카르트는 히틀러를 위해 멋진 프렌치코트 한 벌 사줬고, 베를린 왕립 극장의 연극 공연을 보여주기도 했다. 사실 히틀러는 남들보다 책을 많이 있었어도 글쓰기 실력은 형편없었다. 전문적으로 글을 썼던 에카르트는 히틀러의 ‘빨간펜 선생님’이 돼 주기도 했다. 히틀러는 여러 차례 연설할 기회를 가졌고, 반유대주의적 정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히틀러의 서재에 보관되었던 장서들을 조사하여 히틀러의 생애를 추적한 《히틀러의 비밀 서재》의 저자 티머시 W. 라이백은 히틀러가 에카르트의 각본에 따라 ‘가장 악명 높은 반유대주의자 역할’을 맡았다고 주장했다.

 

 

 

 

 

 

 

 

 

 

 

 

 

 

 

 

 

 

 

히틀러의 주임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Albert Speer, 1905~1981)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히틀러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썼다. 히틀러는 자신의 추종자나 심복이 많음에도 사적인 친밀감을 느끼기 어려운 폐쇄적인 성격이었다. 슈페어는 루돌프 헤스(Rudolf Hess, 1894~1987)의 증언을 토대로 히틀러와 가깝게 지낸 에카르트를 주목했다.

 

헤스는 당시에 단 한 사람만이 히틀러와 친밀한 인간관계를 맺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디트리히 에카르트였다. 그러나 둘의 관계는 히틀러의 입장에서 보면 우정이라기보다는 연장자에 대한 예의였다고 보는 편이 옳다. 그는 반유대주의 계열에서 가장 저명한 작가였다. 1923년 에카르트가 사망하자, 히틀러가 친한 친구끼리 사용하는 호칭 ‘Du’(2인칭의 친근한 표현, 너)로 부르는 사람은 네 사람이 되었다. 그들은 헤르만 에서, 크리스티안 베버, 율리우스 슈트라이허, 에른스트 룀이다. (《알베르트 슈페어의 기억》 174쪽)

 

 

에른스트 룀(Ernst Röhm, 1887~1934)은 나치돌격대(SA) 참모장으로 히틀러의 권력 장악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룀은 히틀러의 2인자가 될 자격이 충분했다. 히틀러는 그런 ‘친근한’ 룀의 존재감을 부담스러웠다. 1934년 6월 30일 이른바, ‘장검의 밤’(Nacht der langen Messer)이라는 사건이 일어나 룀 세력과 나치돌격대 일원 모두 체포, 살해했다.

 

티머시 W. 라이백은 히틀러의 서재에 발견된 오컬티즘(Occultism) 관련 서적이 히틀러가 오컬트와 신비주의 등에 심취한 사실을 알려주는 증거로 봤다. 히틀러 음모론 중 절대로 빠지지 않은 필수 요소가 바로 ‘히틀러와 오컬트의 연관성’이다. 박근혜가 ‘우주의 기운’을 믿었다면, 히틀러는 순수 혈통으로 이루어진 아리안(Aryan) 족의 우수성을 믿었다. 두 사람이 간절히 믿었던 대상은 실제로 성립 불가능한 것들이다. 히틀러는 순수한 아리안 혈통이 더럽혀지는 것에 대한 강박에 사로잡혀 유대인을 ‘세상의 질병’으로 매도했다. 오컬트 마니아들은 히틀러가 ‘신비주의 밀교 조직’에 가입하여 자신을 지배한 사탄을 위해 세계를 파괴하는 음모를 꾸몄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그래도 히틀러가 ‘신비주의 밀교 조직’ 비슷하게 분위기를 띤 단체와 밀접하게 관련 있는 점은 사실이다.

 

 

 

 

 

 

 

 

 

 

 

 

 

 

 

 

 

1918년 뮌헨에 창설된 툴레 협회(Thule-Gesellschaft)는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모임이지만, 정식 명칭이 ‘고대 게르만족에 관한 연구 모임’이다. 툴레 협회 일원들이 공통으로 연구하는 것은 신비주의인데, 이들은 영적인 힘을 빌려 ‘아리안의 부활’을 기도했다.

 

 

 

 

 

툴레(Thule)는 원래 고대 문헌 및 지도에 언급된 극북(Far North) 지역의 섬을 의미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학자들은 온갖 상상력을 동원하여 툴레의 정확한 위치를 추정했다. 툴레 협회 일원들은 현실에 없는 섬에 관한 고대 전설에 매료되어 그곳이야말로 아리안 민족의 요람지로 믿었다. 히틀러가 툴레 협회에 가입해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는지 불명확하지만, 히틀러와 툴레 협회의 관심사는 똑같다. 반유대주의자이자 히틀러의 ‘빨간펜 선생님’ 에카르트는 물론, 루돌프 헤스, 하인리히 힘러(Heinrich Himmler, 1929~1945), 알프레트 로젠베르크(Alfred Rosenberg, 1893~1946) 등이 툴레 협회 회원이었다.

 

 

 

 

알프레트 로젠베르크는 나치즘 옹호 이론가로 활동하여 《20세기의 신화》라는 책을 발간하여 독일 나치스(Nazis)의 중요 인사로 승승장구했다. 이 책은 히틀러의 《나의 투쟁》 다음으로 독일 제3제국을 대표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나, 앞에 서술했듯이 《20세기의 신화》 역시 잘못된 편견과 망상이 만들어 낸 ‘불쏘시개’에 가깝다. 《20세기의 신화》는 나치스의 이념인 국가 사회주의의 기초를 정립한 문헌이다. 그래서 에카르트와 로젠베르크 등이 활동한 툴레 협회를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NSDAP) 즉 나치스의 전신으로 보기도 한다. 하겐크로이츠가 툴레 협회의 공식 엠블럼과 유사하다.

 

로젠베르크는 히틀러에게 존경을 담아 《20세기의 신화》를 헌정했는데, 정작 히틀러는 이 책에 큰 매력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 책에 나온 내용은 수십 년간 독서를 통해 히틀러가 이미 정립했던 것들이다. 아니면 누구보다 열등감이 강했던 히틀러가 로젠베르크의 필력에 질투했을 수 있다. 《나의 투쟁》 초판은 겨우 팔릴 정도였다. 실패작에 가까운 책은 권력에 힘입어 히틀러 시대의 필독서로 급부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히틀러는 자신의 한계를 알았다. 자신 스스로 《나의 투쟁》을 형편없는 책으로 평가했다.

 

 

 

 

 

 

 

 

 

 

 

 

 

 

 

 

 

 

독일의 역사학자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히틀러의 삶 전체를 이해하는 데 도움 되는 주석으로 ‘결핍’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했다. 히틀러는 중급 공무원에 불과한 친아버지보다 작가로서 부와 명성을 거머쥔 에카르트에 더욱 기대어 의지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가 준비한 각본을 믿고 따르며 정치가로 변신한 히틀러는 ‘실패한 화가’라는 굴욕적인 인생의 명함을 떼어내는 데 성공했다. 에카르트는 히틀러를 평생 괴롭히는 상처가 될 ‘결핍’을 채워준 중요한 존재이다. 그렇듯이 최순실은 박근혜의 ‘결핍’을 채워주기 위해 그녀를 도와주었고, 박근혜는 평생 꼬리표로 달라붙은 ‘박정희의 딸’, ‘만년 2인자’를 18대 대선에 승리하여 떼어냈다. 그렇게 의기양양한 최순실은 박근혜를 위해 옷 입은 것부터 시작해서 연설문 작성 등 모든 일에 관여했다. 다만, 최순실이 박근혜에게 가르쳐주지 못한 것은 작문 방식이다.   

 

에카르트는 히틀러의 나치스가 독일을 지배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만약 에카르트가 건강해서 히틀러의 곁을 지켰다면, 괴벨스(Goebbels, 1897~1945)는 선전장관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히틀러는 에카르트는 ‘나치 운동의 북극성’이라고 치켜세웠다. 히틀러는 에카르트라는 북극성의 기운을 받아 독일을 장악했다. 제바스티안 하프너의 말을 빌리자면 “좋든 싫든 독일 제3제국은 히틀러의 작품”이었다. 여기서 더 크게 보면, 에카르트의 작품이었다. 독일 제3제국은 극작가 디트리히 에카르트가 원하던 세상의 무대이며, 그 무대 위에 선 주인공은 히틀러였다. 지금까지 박근혜가 청와대에서 연극했던 4년의 시간은 좋든 싫든 최순실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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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쥐의 독서일기 2016-10-30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요일 11시쯤에 하는 서프라이즈의 단골 주제가 히틀러거든요. 워낙 띄엄띄엄 봐서 연결이 잘 되지 않던 이야기를 쫙 정리해주시니까 이해가 잘 되네요. 근데 왜 마지막에는 열이 확 받는지.. 그간 찝찝한 부분이 드러나서 이제 시원(?)한 부분도 있는데 그 이상의 분노가 생기는 요즘입니다.

cyrus 2016-10-31 10:13   좋아요 0 | URL
<서프라이즈>가 문헌이나 인터넷 정보를 수집해서 방송 분량을 만드는 것 같은데, 문제는 인터넷 정보 대부분이 음모론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가끔 <서프라이즈>를 보긴 합니다만, 모든 방송 내용을 다 믿진 않습니다. 번거로워도 관련 서적 여러 권 읽는 것이 정확한 지식을 얻는 데 도움이 됩니다. ^^

yureka01 2016-10-30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틀러도 웅변술이 일가견있죠.

그에 반해...원고 없이는 안된다는 게,
기자회견 라이브에 질답이 예약이었던걸 보면 뭐..ㄷㄷㄷ

cyrus 2016-10-31 10:16   좋아요 0 | URL
그 분이 기본 능력조차 없는 걸로 봐서는 우주가 그 분을 외면한 것 같습니다.
 
친일과 망각
김용진.박중석.심인보 지음 / 다람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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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일제 강점기 35년에 비하면 해방 후 지금까지의 71년이 훨씬 긴 세월이다. 36년의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그 후의 71년은 더욱 뼈아프다. 친일청산 문제는 아직도 풀지 못한 우리의 숙제였다. 1948년 반민족행위처벌법을 근거로 반민특위가 구성돼 단죄활동이 이루어졌으나 2년 만에 흐지부지됐다. 친일파를 정권의 큰 축으로 삼았던 이승만 정권은 이 문제에 확고한 의지가 없었다. 친일 청산은커녕 친일파가 오히려 득세할 수 있었다. 그른 것이 옳은 것을 몰아냄으로써 가치 전도 현상을 초래해 우리 사회에서 민족과 국가보다는 오로지 개인의 영달을 위한 부정과 비리가 끊이지 않게 만들었다.

 

어느 사회나 이익집단은 있다. 개인이나 기업의 집합인 이들 이익집단은 일단 형성되면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익집단은 지배 권력을 향해 조직적으로 타협, 협상 등의 방법을 통해 이익에 매진한다. 이익집단이 지나치게 많으면 그만큼 그 사회는 폐쇄적일 가능성이 높고 발전의 기회는 줄어든다. 문제는 그 이익집단의 형성 과정에 청산하지 못한 우리들의 부끄러운 과거가 스며들어 있다는 점이다. 광복 이후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도 온갖 이익집단이 성쇠를 거듭했지만, 친일 인사들은 이후 새로운 이익집단들 속에서 이합집산을 반복했다.

 

376. 우리는 지금까지 이 숫자의 실체를 모르고 있었다. 무슨 숫자일까? 기업인으로 활동하는 친일파 후손들의 숫자다. 탐사보도 전문 언론 뉴스타파는 1,177명의 친일파 후손들을 찾아내서 굳건한 인맥으로 형성된 기득권 세력의 실체를 조사했다. 친일파는 사라졌어도 그들의 후손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깊숙이 뿌리내려 기득권을 누리고 있다. 반면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에게 가난은 숙명이 됐다. 친일파 후손들은 광복 후에도 최적의 교육환경을 누리면서 잘살고 있지만,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해방 후에도 배우기는커녕 빈곤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도 있을 정도다. 사회 지도층의 일부가 여전히 친일의 전력에서 문제가 되는 사회이다 보니 민중의 기득권 사회에 대한 냉소적 경향이 남아 있다. 명예, 부, 권위 등에 대해 존경하기보다 뭔가 구린 것이 그 배후에 있지나 않을까 하는 의심의 눈길이 남아 있는 사회에서 정상적인 사회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강력한 기득권의 주류로 자리 잡은 친일파 후손들의 힘은 참으로 막강하다. 그들을 따르는 추종자들의 힘도 무시 못 한다. 우리 사회 일각에는 아직도 색깔론, 민족 전체 책임론을 들먹이며 과거사 청산을 저지하려는 세력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다. 그들은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일제와의 협력이 불가피했다거나 아니면 ‘당시에는 모든 사람이 다소간 친일했다’는 식의 억지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친일 세력 옹호론자들의 논리에 따르면 친일파들은 대세에 영합해서 실리를 찾은 사람들이다. 대세를 따른 친일파들은 민족자치를 얻어낸다는 명목으로 일제에 협력해 수많은 아들, 딸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이게 바로 대세론자들의 살아가는 모습이다. 대세론자들이 양심을 버리면서까지 비열한 삶을 살아간다. 대세를 따르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세론의 영향은 정치권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사회 전반에 미치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강자들을 향한 줄서기이다. 친일파의 권력에 기생한 자들도 대세를 따르면서 강자에 빌붙어 살아왔다. 친일파 청산 작업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 역시 대세론과 무관하지 않다. 대세를 좇는 이 나라의 많은 학자님이 친일파의 후손들을 친자식처럼 감싸주고, 공격을 가로막아주는 호위병 역할을 해주고 있다. 가질 것은 다 가진 그들에게 맞서 역사의 진실 하나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현재의 과거사 청산은 어느 의미에선 어른과 아이의 싸움처럼 힘겨울 수밖에 없다.

 

우리는 위안부 문제를 외면하는 일본의 태도를 볼 때마다 그들에게 사죄와 반성을 요구한다. 그러나 사죄를 요구할 당당한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객관적이고 엄정한 친일청산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지금까지 친일파의 후손들은 고백의 성사를 보이지 않았다. 이준식 친일재산조상위 상임위원은 친일파 후손들이 선대의 친일 행적을 인정한다면, 비난 대신에 격려해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넬슨 만델라는 흑백 자유 총선에서 승리한 후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만들어 인종차별의 역사를 청산했다. 먼저 진실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사면을 했다. 만델라는 “진실 규명만이 과거를 편히 쉬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단죄보다 진실이 중요하다. 단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실과 반성에 바탕을 둔 올바른 역사를 후손에 물려주어야 한다.

 

친일 세력 옹호론자들로부터 변명을 듣는 것은 관용의 낭비다. 그들의 궤변은 가치의 혼란이며 정의의 포기다. 그들은 옛날 일을 왜 끄집어 내냐고 반박한다. 과거사 청산운동은 결코 과거에 얽매이는 퇴행적 사고에서 추진되는 작업이 아니다. 과거를 따지는 것은 과거의 노예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보다 건강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정지 작업이다. 자랑스럽든 치욕적이든 역사의 진실 규명은 새로운 출발과 변화를 위한 선결조건이다. 이제 묻혀진 역사, 왜곡되고 감추어진 부끄러운 역사를 과감히 발굴하여 온전한 민족사로 복원해야만 한다.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어떤 사람의 미래를 알고자 한다면 그 사람이 걸어 온 자취를 거슬러 볼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한 사회의 미래 역시 그 사회의 역사를 보고 판단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지난 역사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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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0-13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6년이란 시간이 너무 길었죠..프랑스가 독일치하에서 비씨 정부에 가담한 자들을 철저히 응징한거랑 많이 비교되는 부분입니다..

cyrus 2016-10-14 14:15   좋아요 1 | URL
친일 청산 반대하는 사람들은 프랑스의 사례를 인용하는 것조차 무시합니다.

transient-guest 2016-10-14 06: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옹호론을 펼치는 부류는 크게 두 개로 보는데요, 하나는 조상이 직간접적으로 친일을 한 경우고, 또 하나는 남북대립의 이념전의 연장선상에서 이들과 loose하게 또는 아주 강고하게 함께 온 사람들 같습니다. 물론 둘 다 똥덩어리라는 점에서는 궤를 같이 합니다만, 후자의 부류가 좀더 고약한 것 같습니다.

cyrus 2016-10-14 14:19   좋아요 0 | URL
반민특위가 해체되기 전에 이승만 정권은 친일파 청산 작업을 공산주의자의 계획으로 선전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색깔론을 내세우는 모습은 여전합니다.
 
옛날 책도 가끔은 쓸모가 있지 - 옛 사람들이 알려주는 인생의 기술
엘리자베스 아치볼드 지음, 서민아 옮김 / 스윙밴드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사람들 사이에서 가면올빼미로 알려진 여자 예언가들이 젊음을 되찾기 위해 아기들 피를 뽑았다고 하는, 흔하게 전해 내려오는 옛이야기가 있다. 이 여자들은 마치 거머리처럼 왼쪽 팔의 정맥을 살짝 절개해 1~2온스의 피를 뽑은 다음 곧바로 같은 양의 설탕과 와인을 첨가했다고 한다. 이것을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를 때, 그리고 달이 차오를 때 마셨다.

 

(‘젊음을 유지하는 법중에서, 55)

    

 

마치 지어낸 이야기 같다. 그런데 이런 끔찍한 이야기가 실용 지식으로 여겼던 시절이 있었다. ‘젊음을 유지하는 법은 신비주의학자 마르실리오 피치노가 1489년에 쓴 <인생의 책 3부작>에 있는 내용이다. 불로초를 찾아 장생불사의 꿈을 이루려 했던 중국 진시황이 기원전 3세기 사람이니, 늙지도 죽지도 않는 비법을 찾아다닌 인류 역사는 꽤 연원이 깊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 각종 황당무계한 장수법이 판을 쳤다.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에도 사람들은 회춘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 아기의 피를 먹으면 효과가 있다고 이를 행동에 옮기는 등의 혐오스러운 비법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피치노는 여자 예언가들이 건강하고 젊은 사람들의 피를 뽑지 않는 것에 의문을 품었다. 그 역시 피에서 젊음이 나온다고 믿었던가 보다. 실제로 젊은 남자의 피를 수혈하는 장수비법을 시도한 사람이 있었다. 교황 이노센트 8세는 어린 소년 3명에게서 피를 받았지만, 며칠 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수혈해서는 안 될 혈액형의 피를 받았던 탓으로 보인다.

 

동서양 가릴 것 없이 처녀나 아이들과 동침하거나 그들의 피를 마시면 회춘한다는 속설이 전해져 왔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국가 원수나 재벌이 자신의 혈액을 젊은 사람의 피로 바꿔 회춘했다는 소문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전문가들은 젊은 피 수혈이 회춘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수혈된 피는 곧 자기 피로 정착되기 때문에 젊은 피라는 의미가 없다. 더욱이 비위생적인 시설에서 피를 교체하면 회춘은커녕 오히려 에이즈 같은 치명적인 질병을 얻을 수 있다. 최근에 미국 유명 대학교 소속 과학자들이 젊은 피가 청춘을 되돌릴 수 있다는 중세의 속설을 확인시켜줬다. 연구팀은 젊은 쥐의 피를 늙은 쥐에 다시 주입했더니 뇌와 근육이 젊어졌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그렇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성급한 결론이라고 반박한다. 쥐 실험에서 나온 연구 결과가 사람들에게서도 똑같이 나올지는 미지수다. [참고 1]

 

역사학자 엘리자베스 아치볼드는 옛날 책들에 기록된 실용 지식에 흥미를 느껴 수집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녀는 도서관 속에 오랫동안 잠들어있는 고서들을 들춰보면서 잊혀진 실용 지식을 발굴했다. 그다음에 자신이 발견한 것들을 공유하려고 블로그까지 만들었다. 블로그에 공개한 자료들을 정리한 책이 바로 옛날 책은 가끔 쓸모가 있지. 누군가가 이론적 지식은 쓸모없는 것이고 실천이 따라야 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치볼드의 책을 보게 되면 그 격언의 의미를 재고해 봐야 한다. 책에 나오는 옛날 실용 지식 대부분은 쓸모없다. 책 제목처럼 가끔쓸모가 있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옛사람들의 충고가 말보다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하나둘씩 빠지는 머리카락을 보면서 허탈해하는 탈모 인들은 탈모를 치료할 방법이라면 할 수 있는 건 다 해본다. 옛날 사람이 말하기를, 양파를 갈아 문지르면 대머리 치료에 좋다고 한다. 양파. 먹지 말고 머리 피부에 양보하세요. 방송인 홍석천 씨는 방송에서 한참 탈모로 고민할 때 양파즙을 머리에 바른 적이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나 양파즙을 머리에 바르는 민간요법은 전혀 근거가 없으니 금물이다. 오히려 양파의 황화합물이 두피를 자극하여 염분을 유발할 수 있다. 아까 한 말은 농담일 뿐 따라 하지 말자.

 

 

 

 

 

 

 

 

시비 거는 사람을 혼내주기 위한 호신술이 있다. 먼저 왼손으로 시비 거는 사람의 뒷덜미를 잡는다. 그리고 나머지 한 손은 가랑이 사이의... 그러니까 거 있잖소? 남자의 급소! 옛날 남자들도 급소가 최대 약점이라는 걸 알았는지 급소를 보호하는 샅 주머니(Codpiece, 코드피스)를 입고 다녔다. 샅 주머니 부위를 꽉 잡고, 번쩍 들어 올려 넘어뜨린다. 이 호신술이 민망하다면, 냅다 발로 차면 된다. 특히 여자에게 집적대면서 시비 거는 남자들은 영 좋지 않은 곳이 불능 되도 싸다.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게 바로 사람들의 욕망과 관심사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세상이 급변할수록 과거에 알던 지식은 순식간에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옛날 사람들의 생각이 황당하고 쓸모없는 것으로 판단할 자격이 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혁신적인 지식의 절반은 10년마다 쓸모없어진다. [참고 2] 부끄럽게도 우린 언제가 무용지물이 될 지식이 고정불변한 진실로 믿고 있다. 가끔이지만, 옛날 사람들의 말이 틀리지 않을 때가 있다. 언제 필요할지 알 수 없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하다. 우신 예찬을 쓴 당대 최고의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는 방귀 뀔 때도 인문주의적 정신을 발휘했다. 방귀를 예의 있게 배출하는 에라스무스에게 인간적인 면모가 느껴진다.

    

 

사내아이에게 복부의 가스가 새어나가지 않게 하려면 엉덩이를 꽉 조이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다. 예의바르게 보이도록 노력하는 건 좋지만 이렇게까지 괴로워야 한다면 품위 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잠시 자리를 벗어나도 좋다면 혼자 살짝 나갔다 오게 하고, 그럴 수 없다면 옛 속담을 따르도록 하자. 기침으로 방귀를 감출 것.

 

(‘방귀 뀌는 법’, 33)

 

     

 

 

[참고 1] <회춘의 열쇠, "젊은 피에서 찾았다"... 실험쥐 통해 기억력 젊어지는 방법은>

(한국경제 201455)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5&aid=0000094923

 

<생쥐를 너무 믿지 마세요> (강석기의 과학카페 176, 동아사이언스 201456)

http://www.dongascience.com/news/view/4402

 

[참고 2] 지식의 반감기(새뮤얼 아브스만 저, 책읽는수요일,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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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9-19 1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남동녀 삼천명을 석선(돌배)에 태워 불로초를 구하러 보냈다는 전설은 진시황이니 가능했을 법도 하네요.왕으로 영원히 산다라면 존재 자체가 지옥같다면 이 건뭐 지루해도 죽지 못하는....인간이 유한해서 가치는 의미가 영원한 것 보다는 많을텐데 말이죠..지구도 수명이 있는데 어느 별의 행성으로 이주할 수 있다하더라고 그게 어떤 의미인지 참 모를 일입니다. 허무 맹랑한 속설이 참 많기도 하죠.^^. 어떻게 연휴..좋은 시간 되신건지요...

cyrus 2016-09-20 17:05   좋아요 0 | URL
연휴 마지막 이틀은 집에서 보내니까 연휴가 끝나도 아쉬운 마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ㅎㅎㅎ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믿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특이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6-09-19 1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긴 말도 안 되는 속설이 옛날에는 진짜인 줄 알았죠.
옛날에는 조개는 새가 죽으면 환생한 것이라 여겼습니다...
정약전의 현산어보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cyrus 2016-09-20 17:06   좋아요 0 | URL
말도 안 되는 속설이나 풍습을 정리한 책을 보면 재미있긴 해요. 지금 우리들은 아주 오랜 옛날의 속설을 신기하게 생각하잖아요. ^^

뽈쥐의 독서일기 2016-09-23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부관리에 관심을 가지면서 각종 주사를 찾았던 때가 있었는데요, 그 중 기억에 남는 게 아기주사랑 연어주사가 있어요. 연어주사는 연어의 정소에서 뭔가를(?) 빼서 피부를 좋게한다고 하고요, 아기 주사는 갓 태어난 아이 중에 포경 수술하는 아이의 살갖에서 피부에 좋은 성분을 추출한다고 하더라구요. 아무리 아기 피부가 좋다해도 글치..ㅠㅠ 남들한테 잘 보이려고 피부관리하는 주제에 사람들한테 정이 똑딱 떨어졌었다는....
아기 피 수혈로 젊음을 되찾는다고 하니까 갑자기 생각이 났어요. ㅎㅎ

cyrus 2016-09-23 18:07   좋아요 0 | URL
연어 주사와 아기 주사는 처음 들어봅니다. 연어 주사가 많이 사용된다면 연어의 개체 수가 줄어들겠어요. 아기 주사 이야기는 생각만 해도 이상합니다. 사람들이 갓 태어난 아이가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

fledgling 2016-09-23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글 읽으면서 두 번 웃고 갑니다. ㅎㅎ 혈액이야기도 참 흥미롭네요.

cyrus 2016-09-24 11:07   좋아요 0 | URL
책에 황당하고 웃긴 내용이 많습니다. ^^
 

 

 

 

 

 

 

 

 

 

 

 

 

 

 

 

 

 

2009년 군대에 있었을 때, 중대장실을 청소했다. 중대장실 안에 훈련 교본과 국군 관련 잡지 등이 잔뜩 꽂힌 책장이 있었다. 청소를 하면서 중대장의 책장에 저절로 눈길이 갔다. 거기에 특별한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군대에 역사교과서를 보게 될 줄이야. 처음에는 신기했다. 이 책으로 오랜만에 역사 공부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런데 책을 보려면 중대장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 중대장과 너무 가까이 지내면 남은 군 생활이 피곤해진다. 공부하고 싶은 마음을 단번에 접었다.

 

 

 

 

 

 

 

 

 

 

 

 

 

 

 

 

 

 

 

 

 

 

 

 

 

 

 

 

 

 

 

 

 

 

 

 

전역 후 학교를 다시 다녔다. 한국 현대사를 주제로 한 과제를 준비했다. 한국 현대사 관련 자료를 찾던 중에 드디어 군대에 만났던 교과서를 입수했다. 책이 학교 도서관에 있었다. 《대안교과서 한국 현대사》도 있었다. 난 처음에 대안교과서가 엄청 대단한 책인 줄 알았다. 그런데 책 내용을 검토하면서 적지 않은 문제점을 발견했다. 그리고 교과서 편찬을 주도한 ‘뉴라이트’의 실체도 알게 되었다.

 

오늘 같은 뜻 깊은 날에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은 광복절을 ‘건국절’로 해야 한다고 우길 것이다. 그들은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된 8월 15일보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을 더 중요한 기념일로 여긴다.  

 

해방의 진정한 의미는 1948년 자유, 인권, 시장 등의 인류 보편의 가치에 입각하여 대한민국이 세워짐으로써 비로소 확보될 수 있었다. 광복절의 역사적 의미를 미래지향적으로 고쳐 생각해야 한다. 종래 광복절을 해방절로만 기억해 온 것을 지양하고, 보다 중요하게 건국절로 경축해야 한다.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144쪽)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대한민국헌법)

 

 

뉴라이트의 건국절 집착은 헌법 전문에 명시된 3.1 운동과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깎아내린다. 이승만 정부 출범부터 대한민국 역사를 다시 쓰려는 뉴라이트의 숙원은 극단적인 역사 왜곡이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60주년은 그것을 '건국'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에게는 '잔치'지만, 그것을 '분단'으로 간주하는 부류에게는 일제의 한국 지배는 한국인의 정치적 권리를 부정한 폭력적 억압 체제였다.

 

국내외의 한국인들은 불굴의 투쟁으로 독립의 권리를 끝내 쟁취하였다. 그 시기는 억압과 투쟁의 역사만은 아니었다. 근대 문명을 학습하고 실천함으로써 근대국민국가를 세울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이 두텁게 축적되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78쪽)

 

식민지 한국의 경제통계가 1980년대 말부터 한국과 일본의 경제학자들에 의해 정비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1910~1940년에 한국에서 일본과 동일한 속도로 연간 3.6%의 경제성장이 있었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오늘날 국내외 대부분 학자는 식민지 한국을 비정상적 형태이기는 하나 근대화된 자본주의사회로 이해하고 있다.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96쪽)

 

 

식민지근대화론과 수탈론의 논쟁은 치열하고도 질기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접점을 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뉴라이트 경제학자들은 일제 식민지를 암흑기가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 성장의 뿌리로 본다. 그들의 주장을 반대한다고 해서 경제성장이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경제가 발전하고,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분명 가장 기본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경제성장을 기준으로 역사를 본다면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비판하는 기준이 모호해진다. 식민지 조선의 근대화 촉진을 옹호하는 논리는 일본 우익의 역사 왜곡 논리와 닮았다.

 

이승만의 정치이념과 정책은 자유민주주의, 반공주의, 반일정책, 북진통일로 요약된다. 이승만의 정치이념은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였다. 자유민주주의에 철저했던 만큼, 그는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다. 그의 비타협적 반공주의는 신생 대한민국을 정치적으로 통합하고 동질적 국민의식을 배양하는 데 기여하였다. 하지만, 반공의 이름으로 반대파가 탄압되거나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인권이 부정되는 부작용을 피할 수 없었다. 이러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그는 공산주의 국제세력의 공세로부터 대한민국을 방어하고, 대한민국의 기틀을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체제로 올바로 잡는 데 동시대 어느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커다란 공훈을 세웠다.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158쪽)

 

그(박정희)는 민족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는 데 소수 엘리트의 지도적 역할을 중시하였다. 그는 민주주의에 관해 개인의 이기심에 기초한 서양식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족과 국가에 대한 헌신에 기초한 민주주의로서 민족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는 데 도움이 되는 민족적 또는 행정적 민주주의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의 권위주의적 통치는 한국 사회에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온 성장의 잠재력을 최대로 동원하는 역설적 결과를 낳았다.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186쪽)

 

뉴라이트의 우상은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 각각 ‘시장경제의 토대를 마련한 건국의 공로자’, ‘근대화의 주역’으로 규정한다. 해방 직후 친일파 처단을 위한 반민족특위가 조직됐지만 반공 이데올로기를 내건 이승만 정권에 의해 와해했다. 해방 뒤에 친일파를 처벌하고 민족정기를 세워야 할 일이 지배 우파세력의 이익 때문에 당장 정쟁이 되어버렸다.

 

 

 

 

 

 

 

 

 

 

 

 

 

 

 

 

 

지금 와서도, 마땅한 역사적 과제인 ‘친일 잔재 청산’이 공론화되는 순간 바로 특정 정파 편들기 또는 죽이기가 되어버린다. 뉴라이트는 이승만 정권이 체제를 위협하는 좌파 공산주의자들의 위협을 막고, 내부 단결을 강화하기 위해 친일파를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승만 정권의 과오를 알면서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정치이념을 ‘반일정책’이라고 강조한다. 친일파를 권력의 기반으로 삼았음에도 강한 반일을 견지했던 이승만 정권의 타협 흔적마저 나 몰라라 한다.

 

대안교과서에 이승만 전 대통령을 ‘자유민주주의에 철저했던 만큼, 그는 철저한 반공주의자’라고 규정하는데 이는 민주주의의 대척점이 공산주의라는 잘못된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민주주의의 반대말이 공산주의라고 믿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민주주의는 정치 체제를 의미하는 단어이고, 공산주의는 경제 체제다.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권력이 소수에게만 있는 독재 전체주의다. 유신체제는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전체주의’에 유사한 체제였다. 전체주의는 세상의 모든 구성원은 하나(국가)가 되어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데올로기다. 그런데 뉴라이트는 박정희 정권의 전체주의를 ‘민족과 국가에 대한 헌신으로 기초한 민주주의’로 미화했다.

 

대안교과서 집필진은 한쪽 전체를 할애하면서까지 이승만과 박정희의 업적을 찬양했다.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기여한 기업 및 기업인에 대한 설명도 비중 있게 다루었다. 안창호, 김구, 윤봉길 등 독립운동에 기여한 인물들에 대한 설명이 작게 배치된 것과 비교된다. 이승만과 박정희 우상화 작업에 몰두하는 뉴라이트의 모습은 과거 권위주의 시절을 방불케 하고 있다. 이는 북한 따라 하기와 다름없다.

 

 

이승만 정부는 야당과 언론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 의도로 강한 반발을 무릅쓰고 1958년 12월 국회에서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승만에 대한 개인숭배도 강화되었다. 초등학생들은 조회 시간에 대통령 찬가를 불렀다. 대통령의 업적을 찬양하는 편지쓰기 같은 행사가 강요되었다.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163쪽)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뉴라이트 성향의 단체 자유경제원은 이승만 전 대통령을 찬양하기 위해 ‘이승만 시 공모전’을 주최했다. 그리고 알다시피 ‘세로 드립’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을 비판한 내용의 시 두 편이 수상작에 선정됐다가 취소되는 일이 일어났다. 뉴라이트는 권력에 기생하여 역사의 진실을 무시하면서까지 자신들의 입지 기반을 다지려고 하는 세력이다. 이런 세력은 ‘진짜 보수’라고 말할 수 없다. 뉴라이트는 자신들의 주장을 비판하는 의견을 좌파의 공격적인 태도로 매도한다. 그들은 대안교과서 서문에서 비판을 관대하게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이 책은 모든 종류의 모든 수준의 비판에 열려 있다. 사실이 잘못 소개된 곳이 있으면 기꺼이 고치겠다. 역사관이 편향되었다면 바로잡음에 망설이지 않겠다. 이 책이 열려 있음은,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결국 좀 더 정확하고, 좀 더 유익하고, 좀 더 성찰적인 역사로 가득 찬 교과서를 만들어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한다는 큰 뜻에서, 너의 내가 따로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 2008년 3월, 교과서포럼 일동 (책을 내면서, 7쪽)

 

 

뉴라이트 역사관은 퇴행적인 역사 인식이다. 5·16 세력이 산업화·근대화에 큰 업적을 남겼다고 해서 헌정 질서를 뒤엎은 쿠데타마저 정당화할 수는 없다. 역사도 공과 과를 함께 안고 있기 마련이다. 또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판단과 평가는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와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훼손하는 편견을, 그것도 교과서에 기술하는 것은 재고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대안교과서에 향한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교과서를 고칠 생각도 하지 않는다. 역사를 지우고, 권력을 그리려는 사람들과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없다. 교과서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책이 버젓이 서점에 팔리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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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6-08-17 0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소가 필요합니다. 쓰레기 청소가...극단적이지만 맘 같아서는 싹 긁어모아서 어디 외딴 무인도에 떨어뜨려놓고 배틀로얄이라도 시키고 싶어요...그러면 안되겠지만...(되려나??)ㅎㅎ

cyrus 2016-08-17 12:07   좋아요 0 | URL
한 곳에 모이면 자신들만의 구역을 만들어 활동할 사람들입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