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게 만든 사람은 알라딘 서재의 골드문트님이다. 그의 리뷰 (무려 두 편)에서 시대 배경과 맛깔나는 인물 묘사를 읽고 나면, 아, 이건 이 가을의 책이다! 라는 생각이 들어버린다. 그런데. 그런데. 


'어둠 속의 사건'은 내겐 아주 지루한 소설이었다. 첫 장에서 능숙하게 풀어놓는 묘사와 시대배경, 그 11월의 공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러니까 농장 관리인 미쉬가 백작 아가씨네 성으로 달려간 그 첫번 째 어두움이 가시기 전에 매력을 잃는다. 미쉬라는 이 인물은 졸라가 그려내는 악착맞은 혁명파 출신 농꾼이나 이기심의 양다리 악당 이상의 정체를 품고 있었는데, 이 점이 내내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왜?? 미쉬가 그래야하지? 더해서 첫 어둠의 사건에서 그렇게 용감했던 여백작 로랑스가 사랑이라는 챕터에 와서는 맥빠진 소녀로 변한다. 발자크는 젊은 여성의 사랑은 잘 그릴 수가 없나? (그의 다른 단편들에서 얼마나 생생하게 젊은 여성들을 죽였는지 떠올려본다. 아니 그러지 말자) 생뚱맞은 미쉬 만큼이나 로랑스 주변의 네 귀족 청년의 묘사 역시 작위적이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젊은 경찰과 말랭은 끝까지 제 할 일을 해낸다.  


두번째 어둠 속 사건이 이 소설의 소재일 '납치사건'인데 그때 함께 '금보따리' 이동이 벌어지며 긴장감을 높인다. 더해서 마지막 어둠 사건일 재판과 그 배후의 여러 정치적 약속들을 읽다보면 이미 작위적 주인공 미쉬나 로랑스 보다는 더 중요한 진짜 주인공, 역사를 생각할 수 밖에 없다. 30년 후, 이 사건들의 마무리 모습을 읽으면 발자크에게는 개개의 인물들 보다는 계급과 사회의 비중이 더 크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발자크의 작품으로는 '고리오 영감'을 매우 오래전에 아주 힘겹게 숙제 하면서 읽었고, '13인당 이야기'는 그 살벌한 저속함에 치를 떨었는데, 이번 소설은 그 중간 즈음에 있는 것 같다. 생생한 사건 진행과는 대조적으로 인간들 관계 묘사는 투박하고 구식이라 자꾸 위고와 졸라의 소설 생각이 났다. 하지만 역자의 작품 해설을 읽으면 이 모든 걸 이해하고 싶어진다. 본 식사나 와인은 뒤죽박죽 조화롭지 않지만 상냥한 갸르송의 안내와 훌륭한 디저트로 기꺼이 식사 비용에 팁도 얹어 계산했다. 표지의 저 인물이 미쉬라고 보기는 어렵고, 누굴까, 누굴까, 계속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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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0-11 13: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음 그러면 저는 결국 제가 읽어봐야 알겠군요. 믿어마지 않는 두분의 의견이 다르니 말입니다. 역시 책세계의 취향은 넓고도 깊습니다. ^^

유부만두 2022-10-11 16:19   좋아요 0 | URL
흥미로운 역사소설이에요. 그런데 전 로랑스라는 강인한 여성 캐릭터가 용두사미로 그려져서 실망했어요. 그리고 액션, 스릴러 부분도 있지만 배경 역사 설명이 많거든요. 그래서 지루하게 느꼈어요. 취향을 타는 소설이에요.

잠자냥 2022-10-11 15: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 아 참 이러면 정말 당장 읽어봐야 할 거 같은 ㅋㅋㅋㅋㅋㅋ
문트냐 만두냐 그것이 문제로다! ㅋㅋㅋㅋ

얄라알라 2022-10-11 15:27   좋아요 2 | URL
ㅋㅋㅋ이런.....냥님, 이건 ㅎㅎ이런 택일이라니, 심지어 라임도 촥촥 맞는 듯해요...
절 웃게 해주시는 잠자냥님^^

알라딘 서재 리뷰 thanks to 선 그어보면, 발원지(?)로 골드문트님 유부만두님 자주 출현 하실듯.

유부만두 2022-10-11 16:20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제가 감히 골드문트님과 겨루는 입장이 되었나요? (신난다)

페넬로페 2022-10-11 16: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문트냐, 만두냐!
이것이 문제로다^^

유부만두 2022-10-11 16:20   좋아요 1 | URL
문제라니요??? 그냥 만두를 고르십....

레삭매냐 2022-10-11 17: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놔, 이 책도 사서 닐다가
말았는데 - 마저 읽을 책들이
넘넘 많습니다.

유부만두 2022-10-13 08:01   좋아요 0 | URL
첫 장면의 가을날 묘사가 기막히죠. 더 추워지기 전에 시도해 보세요.
(그런데 무리는 마시고요)

Falstaff 2022-10-11 18: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이 글쎄 재미나다니까요! ㅋㅋㅋㅋ
뭘 망설이세요! 다만 발자크가 19세기도 아니고 18세기 태생이란 것만 염두에 두시면 충분히 즐기실 수 있습니닷! 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2-10-13 08:00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재미있어요. 한 밤중에 말 달리고 경찰 따돌리고 비밀의 장소 나오고요. 그런데 발자크는 제게 워낙 미운 작가 전력이 있어서 말이죠. ^^;;;;
 

https://youtube.com/watch?v=mZHSWmdoPBM&feature=share

http://m.artnstudy.com/n_lecture/LecDetail.asp?Lessonidx=hdna001&Displayidx=

전체 20강 중 첫강의 유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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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10-05 1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료강의인데 지금은 유튜브로 볼 수 있는거네요. 들으면 좋겠어요.
유부만두님, 정보 감사해요^^

유부만두 2022-10-05 11:07   좋아요 2 | URL
첫강만 유툽 공개고 나머지는 유료인 것 같아요. ^^

페넬로페 2022-10-05 11:14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ㅎㅎ
 

전혜진 작가의 “오마주” 소설로 메리 셸리의 사생활을 읽고 만수르 감독과 엘르 패닝이 빚은 메리, 그리고 그녀의 격정적 (더하기 지저분한 불륜남 애인) 셸리를 만난다.

우여곡절 끝에, 끝까지 이름 없던 괴물의 창조자로 메리 셸리는 드디어 이름을 남긴다. 아부지와 (결국 남편이 된) 셸리 덕에. (영화의 셸리는 소설에서 보다는 낫게 .. 그래봤자 천하제일 망나니 바이런의 졸개로 나온다.) 어머니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어머니 무덤이 메리의 창작력과 연애의 장소로 그려지지만 꿈결에 그녀가 듣는 (낮은에코) 목소리는 아버지의 부르심, 라이언 킹 심바가 초원의 방랑기에 들은 바로 그 ‘아버지 계보’로의 초대이다.

별 기대가 없었는데 영화는 은근 재미있다. 물론 짜증나는 먹물 남자 세계 이야기라 참을성이 필요하다.

https://naver.me/GdJBT49V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메인 예고편
출처 : 네이버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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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걸작에 대한 오마주 단편집 <책에 갇히다>에 수록된 전혜진 작가의 <푸르고 창백한 프로메테우스>를 읽었다. 구픽 출판사의 <책에 갇히다>의 후속으로 <책에서 나오다>라니 의미심장하다.  



전혜진 작가는 이전 단편집의 <모든 무지개를 넘어>에서 암울한 미래 세계에서도 책을 찾아 읽는 어린 아이를 보여주면서 (지루했지만), 책에서 어떤 해결을 바라지만 결국 책에 갇히고 마는 사람들 (어쩌면 나도 그렇고) 이야기를 했다. 여러분, 책에선 밥도 돈도 안 나온다. 그리고 단행본 <여성, 귀신이 되다>는 옛 설화와 문헌에 남은 한 많은, 하지만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번에 전혜진 작가의 오마주 대상은 메리 셸리와 <프랑켄슈타인>이다. 그녀의 이름에 '셸리'가 붙게되는 바로 그 결혼식 전날 밤에 메리는 악몽에 소스라친다. 퍼시 셸리의 전부인의 유령을 보고 자신의 행동이 불러온 결과를 고민한다. 자유연애의 시기, 낭만파 시인 퍼시의 주변에 수많은 여인들. 그녀들은 퍼시의 발목을 잡고 사회 규약과 함께 그의 자유를 막는 '괴물'이 된다. 하지만 <다락방의 미친 여자>에서 다루는 괴물의 의미와 차이가 있다. 이 단편에서는 <프랑켄슈타인> 집필 직전의 상황, 특히 퍼시 셸리와 바이런경이 얼마나 많은 여인들의 삶을 흔들고 그녀들의 목소리는 무시했는지 '다소 한국 드라마 같은 분위기로' 상상해본다. 이 소설의 메리는 (그리고 저자도) 사회의 인정에 끝까지 매달린다. 소설에는 낭만 시인들의 여성 편력이란 너무 익숙하고 지저분한 이야기, 여성들에겐 덫과 같은 공식들을 펼쳐져 있다. 좀 지겨워 지려할 때, 전혜진 작가는 푸른 수염 같은 셸리, 성적 사회적으로 유린당하고 괴물의 모습으로 죽고 그 후에도 박제되는 메두사 같은 자신(더해서 셸리의 전부인 해리엇)을 내세운다. 바이런의 전처와 딸, 앤 이사벨라 밀뱅크와 아다 러브레이스의 빛나는 업적은 <진리의 발견>에서 읽은 바 있어서 찌질한 바이런의 푸념 부분을 읽을 땐 풋, 하고 웃어주었다. 사생활 속의 딜레마에 빠진 (자유사상가이지만 남자에게 매인) 메리 셸리를 아주 가깝게 만난 느낌이 들지만 그녀를 그저 만 16세 '소녀'로 칭하는 것과 제목에 '남편'을 올려 놓은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프랑켄슈타인> 오마주는 시작하려다 만 느낌. 궁금하면 읽을 수도 있겠지만 뭐 굳이 .... 란 감상. 



남자의 오명이 뒤집어쓴 오물 같은 것이라면, 여자의 오명은 낙인찍히는 것이었다. - P207

퍼시가 무어라 말하든, 해리엇은 합법적인 아내이자 피해자였고, 그에게서 남편을 빼앗은 괴물은 메리와 그 자매들일 터였다. 한 집안의 세 자매가 번갈아 한 남자에게 유혹당하다니. ‘셸리부인‘의 눈에는 메리와 그 자매들이 마치 신화 속의 괴물 자매, 고르곤 세 자매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괴물이었을까.
우리는, 그리고 당신은, 어쩌다가 괴물이 되어 버린 걸까.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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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들마치>의 도러시아가 겪는 속박과 탈출의 딜레마를 설명하며 <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거의 평생 갇혀 살았던 앨리스 제임스를 소환한다.




도러시아의 딜레마는 한 미국 여자가 겪은 곤경을 기이하게 반향한다. 그녀의 가족은 19세기 후반 미국 인문학을 대표했다. 앨리스 제임스는 자신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을 때‘ 의 감정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 나 자신을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거나, 은백색 머리카락의 자비로운 아버지가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쓰고 있을 때 그의 머리를 부숴버리고 싶은 격렬한 충동이 갑자기 온갖 형태로 나의 근육을 덮치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 모든 공포와 고통을 느꼈지만, 다만 광인과 다른 점이라면 내몫의 의사나 간호사의 의무와 구속복이 있다는 것이었다." (877)


결국 엘리엇은 여성의 포기를 지지하고 있다. 그것이 적절하게 여성적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적 분노의 파괴적인 잠재력을 강렬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엘리엇은 분노를 부정해야 할 필요성과 실제로 그럴 수 없다는 절대적 불가능성을 동시에 예증한다. (878)



앨리스 제임스와 조지 엘리엇의 관계는 주석에서


앨리스 제임스는 엘리엇을 싫어한다고 고백하지만, 자신이 마비되어 있으며 표출되지 못하는 분노를 가지고 있다는 인식은 기이하게도 엘리엇의 여주인공들의 투쟁을 떠오르게 한다. 유명한 윌리엄과 헨리 제임스의 여동생인 앨리스가 갇혀 지내는 환자의 생활을 마감했을 때, 그녀는 그녀의 가족이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활기와 해학적인 음조를 버리고 그녀의 간호사이자 동료인 캐서린 로링에게 자신의 일기 마지막 부분을 받아 적게 했다.


 "5일 토요일 내내, 밤까지, 앨리스는 문장을 만들고 있었다. 그녀가 나에게 한 마지막 말은 3월 4일의 문장, ‘도덕적인 불화와 신경과민적 공포‘를 수정하라는 것이다. 3월 4일의 이 지시가 종일 머릿속에서 들끓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매우 약해지고, 구술이 그녀를 지치게 하였지만, 그것을 다 쓸 때까지 머리를 쉬게 할 수 없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해방되었다."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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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9-28 13: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수잔 손택이 앨리스이야기를 쓴 이유를 잘 모르겠던데 다락방 읽으면 좀 알게될까요?

유부만두 2022-09-28 14:17   좋아요 1 | URL
다락방의 미친 여자에서는 여성의 ‘자발적‘ 감금+불능과 연결해서 조지 엘리엇 소설, 그것을 매우 싫어했던 앨리스 제임스 이야기를 해요. 매우 적절한 인용 같아요. 하지만 시대상 손택은 이 책에 등장하지 않고요. 후속작인 Still Mad에서 손택을 다루지만 검색해 보니 앨리스 인 베드는 언급되지 않는 것 같아요.

감금, 신경쇠약 등으로 앨리스 이야기는 연결해서 생각할 거리가 많아 보여요. 하지만 다락방 책에 나오는 건 제가 올린 이 포스팅 내용이 다에요.

페넬로페 2022-09-28 17: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미여에도 앨리스 제임스가 언급되네요~~
앨리스가 조지 엘리엇에 대해 싫어한 내용이 궁금한데 벽돌책에 또 벽돌책이네요 ㅠㅠ

유부만두 2022-09-30 07:51   좋아요 2 | URL
조지 엘리엇은 ‘다미여‘에서도 비판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많아요. 인용에는 ‘마조히스트‘라고 하는 글도 있더라고요. 조지 엘리엇이 여성 인물을 상황과 인습에 묶고 가둔 이야기라 앨리스가 싫어했을 수도 있어요. (연결점은 ‘미들마치‘로 보이는데 역시 벽돌책이네요)

단발머리 2022-10-10 12: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아! 이 페이퍼랑 이 댓글들 이해하고 싶은데요🙄 얼른 11월이 왔으면 좋겠어요. 근데 10월책도 아직 안 읽었음요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2-10-11 16:25   좋아요 1 | URL
그쵸??!!!
제가 얼마전 단발머리님의 파친코 노아 페이퍼를 읽을 때, 저도 아 파친코 읽고 이 페이퍼랑 댓글 의견을 따라가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주문 ㄱㄱ)

날이 차갑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