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원래 계획은 2시쯤 나와서 모임을 가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벽돌같이 경악스럽게도 두꺼운 저항과 반역의 기독교를 가방 안에 쏙 넣고 원피스에 구두 차림으로 쫄레졸레 서울랜드로 갔다. 서둘러 가서 보니, 부장집사님은 어제 야근의 여파로 아직 못오시고, K는 토요 출근. ㄷㄷ 선생님 둘과 몇몇 아이들이 서 있다. 

선생님은, 일찍 가신다고 했죠? 그럼 일반 입장권?
아. 도무지 그렇게 할 수가 없어졌다.

흠. 그냥. 자유이용권 끊어주세요. 

서울랜드 내 무슨 전시장에서 하는 한국의 사도행전이라는 이름만 봐도 어쩐지 뭔지 딱 알 것 같은, 그 전시 및 영상 상영 관람 이후에 아이들의 자유로운 여정이 허락되어 있는 상황이었기에 먼저 전시장에 들어가 그림을 보는데, 한 신학교 3학년쯤 되는 알바생이 성가대복같은 옷을 입고 설명해준다. 아이들은 몸을 배배꼰다. 새로온 아이 하나가 아. 재미없다. 라고 말한다. 내가 쳐다보자 슬쩍 눈치를 본다. 나는 아이에게 귓속말로 슬쩍 말한다. 

나도 재미 없어 죽겠어, 얼른 보고 나가서 놀자

급 반가운 표정을 짓는 아이. 하지만 우리의 바람은 순탄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다시 자리를 옮겨 이번에는 신대원 1학년쯤 되어보이는 성가대복 학생이 설명하는 한국 교회의 역사를 들어야했다. 그래. 한국 교회의 역사 중요하지. 근데 왜 우리가 들어야 하는 역사는, 늘, 한쪽 시각에서 포장되고 부풀려진 역사여야만 하는거지? 누가 어떤 탄압을 어떻게 견디어오면서 교회가 견뎌냈는지, 이런 것이 교회의 역사의 전부라고 들어야 하는 거지? 교회가 정권과 어떻게 야합했는지, 도대체 언놈들이 한국 교회의 정신머리를 이딴 식으로 만들어놨는지, 우리는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도무지 배울 기회가 없는지. 진짜 오늘의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한쪽의, 매우 크고 중요한 역사를 손가락으로 가린채, 우리 입맛에 맞는 역사만을 우리의 역사라 강요하는 일은 다분히 폭력적이다. 나는 화가 나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재미없어하는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놀다가 밥먹다가 1시 영상 시간을 놓치고 1시 40분 영상을 보기로 했는데 밥먹고 40분이나 뜨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 나는 영상을 다섯시쯤 보고 일단 애들을 다시 놀 수 있도록 해주자고 C에게 연락을 했다. C는 그렇게 하자고 하고 나는 아이들과 오락실로 갔다. 그 중 두 녀석은 오락실보다 놀이기구가 좋다며 88열차를 타러 갔다. 아이들과 열심히 펌프를 하고 있는데 (구두까지 벗고 오랜만에 컴백을 뛰었으나 F - 이재현이 터키행진곡을 켰을 땐 도무지 따라할 수가 없어서 부끄러워서 구두라도 신어야 덜쪽팔린다는 심정으로 얼른 다시 구두를 신었다.) 극구 40분 영상을 봐야 한다며 선생님들이 다시 왔다. 이게 오늘 모임의 주 행사이기 때문에 먼저 하고 놀아야 한다는 것이 오늘 모임을 주관한 S집사님의 변이다. 휴. 영상은 안봐도 되지 않느냐는 나와 C의 말에 영상이 참 괜찮다며 꼭 봐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ㅜㅜ 

그래, 뭐 우리야 오락실에 있었으니 괜찮지만 문제는 청룡열차를 타러 간 아이들. 이 아이들은 교회에 다니는 아이들도 아닌, 전도로 새로 온 아이들인데, 이미 먼 길을 가서 30분 정도를 기다렸을텐데, 다시 오라고 해야 하는 상황이니 참 난감하다. 그 아이들에게 가도 된다고 이야기했던 건 바로 나였고. 나는 그 아이들은 나중에 영상을 보게 하고, 일단 우리끼리 보자고 했으나 완고하게도 꼭 아이들이 와야 한다고 하신다. 나는 미안해서 계속 동동거리는 마음이다. 밖에서 서성서성 기다리는데 아이들이 온다. 아. 얘들아. 진짜 미안해. 정말 화났지. 미안해. 미안해. 흑. / 아니에요. 이따가 다시 타러 가면 되죠 - 아. 감동. 니들 정말 착한 아이들이구나. 미안해. 내가 꼬래비 선생님이라 힘이 없어. 흑. 우리 이따가 꼭 같이 타러 가자.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들어와 본 영상은
 
지독하게도. 재미가. 없었다. 

주기철 목사님의 고문을 주제로 했던 연극을 비디오 카메라로 촬영한 것과 터키에서 있었던 순교에 대한 영상. 아. 도무지. 언제까지 이런 진부한 것들로 아이들의 발목을 잡아놔야 하는 걸까. 내가 보기에도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재미없고 촌스러운 것들. 전혀 통하지 않는 소통 방법이다. 전시를 보고 상영을 보는 일에만 함께 참여하고 나머지는 아이들 따로 놀게 하는 일보다는 아이들과 청룡열차를 다섯번쯤 타는 것, 그 긴긴 기다림의 시간동안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같이 열번쯤 웃어주는 일이 훨씬 나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한다. 구두를 신은 발이 부르트도록 아이들의 뒤를 쫓아다니면서. 같이 물을 맞고 소리를 질러대면서. 피곤해죽겠다는 애들한테 젊은 청춘이 그러면 안된다고, 나는 늙은 서른살이라 너희들보다 삼십배쯤은 힘들다고 자학도 해가면서. 같이 비를 맞고 마법의 양탄자를 타면서. 재미없는 착각의 집에서 비틀비틀거리면서. 자신도 모르게 누나, 언니, 라고 나를 부르는 아이들에게 니가 드디어 미쳤구나, 라고 이야기하면서, 하지만 사실은 좋아하면서. (앗싸) 

맥주를 파는 곳 앞을 지나면서 N은 나 들으라는 듯, 와. 맛있겠다. 라고 말한다. 내가 그럼 안되지 N아. 라도 할 줄 알았나보다. 후훗. 그러게. 라고 말하는 나를 보고 더 세게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선생님 맥주는 콜라같지 않아요? 라고 말한다. 웃겨, 어디 맥주를 콜라 따위와 비교해? 훨씬 맛있지. 라는 나의 말에 자못 놀라며 졌다는 표정. 이봐. 나 이래뵈도 알콜중독이라고. ㅋㅋ

행사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동동거리고 아이들을 전도하고, 하는 이 모든 일은 S집사님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나는 그것도 늦게, 몸만 얹어서 아이들과 신나게 놀기만 했다. 어찌 보면 숟가락 하나만 얹은 셈이지. 아이러니하게도 저 S집사님의 손길이 없었다면, 나는 절대 이런 행사를 하자고 할 인간이 아니므로, 이 행사도 없었겠지. 어쩌면 이게 우리가 이 청소년부에 함께 존재하는 이유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나조차 답답하고 재미없는 프로그램 속에 아이들을 넣는 일이, 그리고 옳고 바른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그것들이 강요되는 일이, 나는 퍽 불만스러웠다. 게다가 더욱 난감한 것은 진정성이다. (요즘 나를 제일 난감하게 하는 것이 바로 진정성이다) 내가 아는 하나님은 분명 기뻐하지 않으실 것 같으면서도, 이 정성어린 손길과 마음을 어찌 외면하실까 싶기도 한 거다. 아무튼, 내년에 청년부에 올라오는 S와 J를 데리고 같이 기독교 역사를 제대로 공부해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으나 아. 나 내년에 교회 옮길거지. 흔들리지 말게. 그대도 살아야지. 라고 다시 결론을 낸다. 

참. 바이킹을 타고 나오는 길에 다리가 후들후들거리는 스스로를 보고 좀 놀랐다. 꼭대기에서 아래로 내려갈 때 가슴을 쓸어내리는 나를 반대편에서 본 J가 계속 선생님 실망이에요,를 외쳐댄다. 이해해. 난 서른살이잖아. 응? 

2

아무 힘이 없어 그저 놀아줄 수밖에 없던 나는, 대신 각개전투에 강하다. ㅎㅎ 서울랜드에서 돌아오는 지하철역에서 S를 꼬신다. 우리 커피 한 잔 하고 들어가자. 

로하스에 앉아 S와 커피를 마신다. S는 고3. 목사님 딸. 그녀를 처음 알았던 건 그녀 나이 12세. 초등학교 5학년 시절. 

- 나는 아직도 가끔, 교회에서 친구들과 비욘세 노래에 맞춰 웨이브를 하던 네가 생각나곤 해.
- 아. 선생님. 손발 오그라들어요. 얘기하지 말아주세요.
- 하하. 나는 니가 오십살이 되도 그걸 기억할 것 같아. 사실 나도 너가 그렇게 교회 앞에 나가 춤을 추던 그 똑같은 나이에 교회에서 친구들과 춤을 췄었어. 

그래. 교회라고 앞에 찬송 하나 넣고 구색 맞추던 것까지 어쩜 그렇게 똑같았을까. 그 때를 생각하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까지도. 그런데 결국 우리는 과거의 당당했던 시간들을 오글거림으로 바꿔가면서 한걸음씩 성큼성큼 가는 거잖아. 나는 그런 오글거리는 역사 하나 없이 반듯하게만 자라온 사람보다는 마음속에 오글거림이 충만한 사람들이 더 좋더라, 그래서 나는 그때의 네 모습을 기억하는 게 참 재밌고, 또 좋아. 

라고 말하려다가 어쩐지 또 마음이 오글거리는 것만 같아 그만둔다. 하하. 

암튼, 그렇던 S가, 세상에나. 나와 같이, 

루시드폴을 좋아하고, 브로콜리 너마저를 좋아하고, 오지은을 좋아하고, 인디스페이스에서 영화를 보고, 나희덕의 시를 읽고, 김연수의 소설을 읽고, 그것들을 이야기하며 함께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사이가 되었다. 나는 그때랑 그렇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훌쩍 자란 누군가를 보는, 누구나 살면서 한 스무번쯤은 느끼게 될 그 보편적인 아련함의 세계로 나 역시 막 진입하고 있었다. 이것은 삼십대의 숙명?

- 선생님. 저는 교직이수를 해서 선생님이 되고 싶은데, 음악은 특히나 비정규직 교사를 쓰는 일이 대세여서 너무 걱정이에요.
- 그러게, 사람들이 참 나쁘지. 사람이 사람을 쓰는 일을 참 쉽고 편하고 즉각적으로, 자기 유리한대로만 하려고 하잖아. 

- 선생님, 저희 친구들은 사실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도 걱정이에요. 특히나 예체능은 학비도 너무 비싸고요, 그런데 요즘은 대출 금리도 정말 비싸서 학자금 대출도 정말 어렵거든요.
- 그러게. 너희 정말 안됐어. 공부도 잘해야지, 사회경험도 있어야지, 게다가 돈도 벌어야되지. 지들은 그렇게 편하게 살아놓고. 무슨 슈퍼맨이 되라는 것도 아니고 말야. 

아. 누가 이 아이들에게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든건지. 

- 선생님, 이명박도 노무현도 저는 둘다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데, 저희 선생님은 자꾸만 이명박과 노무현을 극과 극에 놓고 대조를 하거든요. 물론 이명박이 나쁜 건 알겠지만, 선생님이 그렇게 극단적으로 아이들에게 강요를 하면 선생님에 대한 반감만 더 생겨요.
- 너희가 어떤 세대인데. 그렇게 강요를 하시는지 모르겠다. 그치만 선생님 마음에서 어떤 진정성 같은 건 느껴줬으면 좋겠다. 사실, 난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건 이명박이 태어나서 처음이야. 

- 선생님. 그런데 다른 교회 목사님들은 자살해도 괜찮다고 얘기하기도 한데요.
- 선생님도 그건 그렇게 생각해.
- 저는 저희 이모가 그렇게 힘들게 돌아가셨는데,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생명을 포기하는 것에 대해 화가 나요.
- S야. 너는 좋은 부모님을 만나서 운이 좋게도 건강한 몸과 건강한 마음으로 자랄 수 있었잖아. 그래서, 너의 건강한 마음으로는그게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자살의 80% 이상은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병으로부터 비롯한 거야.
- 성적 떨어졌다고 비관자살 하는 애들은요?
- 그건 사회적 타살이라고 봐야지. 그렇지 않고서는 견뎌낼 수 없는 사회를 만들고 있잖아. 자살은 하나님께서 매우 슬퍼하실 일이긴 하지만, 죄라고 교리적으로 규정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어. 특히나 죽은 사람 면전에 대고, 자살이 죄라고 말하는 건, 더욱 말이 안되는 거지. 

부비작부비작. 작업도 시작해본다. 그러고보니, 그녀의 오빠인 H를 망쳐놓은(?) 것도 이맘때쯤부터 아니었나 싶네. ㅎㅎ. 앞으로 얼마나 S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참 묘한 기분이랄까. 다음엔 또다른 고3, J와 같이 영화라도 한편 보자고 해봐야겠다. 흐흐. 

얘들아. 잘 자라다오
라는 바람이 피어오르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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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07-11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릴적에 웬디양님처럼 괜찮은 어른이 주변에 있었다면, 누군가 방향을 잘 잡아 주었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어른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몰라요.

네, 그러니까 제가 지금 결국 '이정도밖에 안되는'그런 인간이 될 수 밖에 없었다는 일종의 핑계죠. 킁킁.

웽스북스 2009-07-14 01:15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지금의 다락방님보다 더 나은 어른이 되는 거 난 반대요-
그럼 저같은 것, 안만나주셨을 거 아니에요!

(아. 두번째 문장은 아무래도 오늘, 영광과 양현의 손발오그라드는 러브러브멘트들을 본 영향인 것 같아요-ㅋㅋㅋㅋ)

Jade 2009-07-12 0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야. 너는 좋은 부모님을 만나서 운이 좋게도 건강한 몸과 건강한 마음으로 자랄 수 있었잖아. 그래서, 너의 건강한 마음으로는그게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자살의 80% 이상은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병으로부터 비롯한 거야"

아, 저도 웬디양님처럼 말해줄 수 있었다면!

웬디양님과 S와의 대화를 보니 왠지 아직 저는 덜 자란것 같아요. >.<

웽스북스 2009-07-14 01:16   좋아요 0 | URL
에이 말도안돼요 제이드님. 제가 제이드님만큼만 똑똑하고 똑부러지고 자기 앞가림 잘하는 사람이었으면 제 인생이 조금은 더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는걸요.

네꼬 2009-07-12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시를 보고 상영을 보는 일에만 함께 참여하고 나머지는 아이들 따로 놀게 하는 일보다는 아이들과 청룡열차를 다섯번쯤 타는 것, 그 긴긴 기다림의 시간동안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같이 열번쯤 웃어주는 일이 훨씬 나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한다. 구두를 신은 발이 부르트도록 아이들의 뒤를 쫓아다니면서. 같이 물을 맞고 소리를 질러대면서.

이 부분이 너무 좋아서 읽고 또 읽었어요. 웬디양님이 아이들과 함께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게 눈 앞에 훤하게 그려져요. 정말 좋은 선생님이야, 웬디양님. 정말 좋은 분이야. :)

웽스북스 2009-07-14 01:17   좋아요 0 | URL
어. 88열차에서 물맞고 내려와서 앞머리 다 뭉치고 화장 번진 모습까지 떠올리신 건 아니죠 ㅜㅜ

마냐 2009-07-12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의 오빠 H를 망쳐놓으셨다....몇명 더 하시죠. 힘 내시구요. 전 도무지 저 스토리속의 어르신들 참아내지를 못하겠는데, 웬디양님은 정말 맘도 넓으셔라. (죄송. 전 기독교도 안 좋아하고, 교회는 더 안좋아하고, 저런 식의 교육은 더 안 좋아해서요...) 하여간에...그래도 님 덕분에 조금 마음을 넓혀두겠슴다. 그 안에서도 이런 좋은 싹들을 틔우고 계시네요.

웽스북스 2009-07-14 01:19   좋아요 0 | URL
아. 마냐님. 교회와 저런식이 교육과 기독교라는 틀은 잘 모르겠지만,
암튼, 제가 믿는 하나님은 꽤 매력적인 데가 많은 분이세요. 세상사람들이 합심해서 자기 손바닥으로 막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고 계셔서 그렇지. 흑. 아니 이거 왠 전도멘트랍니까. ㅋ

마냐님이 마음을 넓혀두셨다는 말이 참 기쁘고 고마워요. 저는 교회에서는 전도도 못하고, 애들한테 이상한 소리나 하는 선생님이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마음을 넓혀줄 수 있다니, 이게 스무배쯤은 더 기쁘고 좋은 것 같아요-

사과나무 2009-07-13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 그럼 우리 J, H, S와 함께
(아..작은 S는 어떡하지?)
거국적으로 맥주를?

웽스북스 2009-07-14 01:21   좋아요 0 | URL
후훗. 교회를 나오는 것보다는
쫓겨나는 게 더 빠르다는 계산인 겁니까? ㅋㅋㅋㅋ

H랑은 이미 맥주 마셔보았는데, 안마시더이다.
그게 H아니겠습니까.
작은 S는 그래도 돌은 지나야하지 않겠습니까. 쿨럭.

작은S의엄마 2009-07-16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손발이오그라드는댓글과댓글의댓글을작성하면서
서른즈음에술맛을알아버린큰S와,
기저귀를찰대부터봐왔던S와엉덩이를두들겨주었던H,
모두가떨어져있어도한세상에몸이담가져있으니,
세상은정말물과같구나.갑자기살빠진S가보고싶다.

웽스북스 2009-07-20 00:24   좋아요 0 | URL
아. 살빠진 S는 무려 요즘 제가 정려원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어릴적 얼굴이 나오는걸 보니,
아, 역시 살이 중요하구나, 온몸으로 느끼는 중 ;;;

얼음동자 2009-07-21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웬지 위로가 되는 이야기들이고, 참 공감이 가는 이야기라서 좋아요. 맞아요. 성서가 가만보면 하느님 뜻대로 못 산 이야기들 투성이거든요. 그런데 우리네 교회는 왜 늘 잘할것만 이야기할까요. 사실 못한게 더 많은데요. ^^

저도 웬디양님 같은 분이 계셨으면 안 쫒겨나고 그 안에 계속 있었을가요? ^^

참 좋은 교사란 그래서 필요한가 봅니다. ^^
 



비. 비. 비.
좋아.

우리의 마르탱파주아저씨는 이런날의 마음을 시적무정부상태라고 매우 적절하게 표현해주셨다. 아. 정말. 그렇다. 어제까지 나를 지배하고, 나를 11시까지 야근씩이나 하게 만들었던 그 정부가 사라져 오늘 나의 손에는 아무것도 쥐어지지 않는다. 노닥노닥. 음악을 찾아들으며 슬금슬금 무언가를 읽고 또 끄적인다. 이럴 거면 어제 왜 야근을 한걸까. 라고 묻는 내게 선아야, 그래도 그건 달라, 라고 해주는 K가 있는, 참 좋은 날이다. 그래. 어제의 쩔고 상쾌한 야근후 기분은 그 나름의 재미가 있는 거지.

C는 비가 와서 삼겹살을 먹고 싶다고 했다가 남자친구에게 경제관념이 없다는 구박을 받았다고 한다. 비와 삼겹살과 경제관념의 상관관계를 전혀 모르겠는 나로서는, 흠, 좀있다가 통계프로그램 열어서 상관분석이라도 돌려봐야하나, 하는 기분이고.

언니, 그럼 비오는 날에는 뭘 먹어야 되나요? 라고 물어보는 그녀에게, 나는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먹고 싶은 걸 먹는 거야, 라고 답해 삼겹살을 먹고 싶은 그녀의 마음에 힘을 더해주었다. 비에 어울리는 음식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음식보다 더 먹고 싶은 게 있다면, 그게 오늘에 어울리는 음식 아니겠니. 그녀는 힘차게 삼겹살을 먹으러 갔다. N은 오늘 저녁에 라면을 끓여먹겠다고 한다. 사실, 나는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쌀국수를 먹고싶다. 하지만 나는 너무 착하니까,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는 K의 바람을 들어주어 김치찌개가게로 갔는데, 예상치 못했던 오이지가 나왔다. 오이지를 먹을 때마다 나는 조상님들의 지혜에 감탄한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음식 중 하나. 결국 오이지를 두접시나 비우고 기쁜 마음으로 우산을 쓰고 언덕을 내려오는데, 쌀국수 집을 지나던 K의 말. 아. 쌀국수 먹을걸. 생각을 못했네. 이런. ㅜ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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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07-09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말할걸 그랬어요. 세상엔 말하지 않아서 그냥 넘어가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다음부터는 먹고 싶은 건 꼭 말해요!!

그나저나 오이지, 오이지는 제 완소반찬. 오이지 정말 사랑해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는,,,제가 오이지를 더 좋아하는지, 웬디양님을 더 좋아하는지..잘 모르겠어요. 미안해요. 흑 =3=3=3=3

웽스북스 2009-07-09 13:45   좋아요 0 | URL
어쩌죠? 다락방님이 오이지를 좋아하신다니, 전 다락방님이 더 좋아졌는데- 전 다락방님을 살리기 위해서는 앞으로 평생 오이지를 먹지 말아야 한다면 오이지를 버릴 것 같은데

아. 버림받은 기분. ㅜㅜ

다락방 2009-07-09 14:00   좋아요 0 | URL
아, 미안해요 웬디양님.

그렇지만 내마음,
그거 나도 어쩔 수 없는거잖아요..흑(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뒤돌아서 뛴다)

보석 2009-07-10 09:30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은 오이지> 웬디님, 웬디님은 다락방님>오지지. 결국 다락방>오이지>웬디 이런 관계가 형성되는 건가요?ㅋㅋㅋㅋ 웬디님 분발하셔야겠어요. 오이지한테 지지 않으려면.

웽스북스 2009-07-10 01:25   좋아요 0 | URL
저 아까 양치질을 하면서 다락방님과 저, 그리고 오이지가 등장하는 동화도 상상했어요. 매우 슬픈 비극 동화에요. 매우 짧은데 이거 쓰고잘까? ㅋㅋ

보석님, 제가 그렇게 좋아하는 오이지가 제 경쟁상대가 될 거라고는 저는 정말이지 상상도 못했어요-

다락방 2009-07-10 09:04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
양치질하면서 생각하는 동화라니. 궁금해요, 웬디양님!!!!

네꼬 2009-07-12 14:07   좋아요 0 | URL
오이지 좋아한다고 내가 먼저 말할걸!!!! 아깝도다! (땅을 친다)

라주미힌 2009-07-09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이 초절임이 좋아요.. 아삭아삭.. 시큼달콤... 쩝쩝..

웽스북스 2009-07-10 01:25   좋아요 0 | URL
아니야. 아니야. 오이지가 최고야. ㅋㅋㅋ

레와 2009-07-09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오이지 잘 담그는데.. 큿~ (쌩뚱~ 쌩뚱~)

웽스북스 2009-07-10 01:26   좋아요 0 | URL
어머어머어머어머 전혀 안쌩뚱.

저는 오이지는 잘 담근거든 못담근거든 무조건 좋아하지만
아 레와님이 오이지를 잘 담그신다니. 아아아. 너무 부러워요-
저도 험한세상 살아가기 위해서 오이지 잘담그는 법 정도는 알고 있어야
먹고 살 수는 있을텐데 말이죠-

보석 2009-07-09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와 삼겹살과 경제관념의 관계를 모르겠어요. 그냥 먹고 싶은 거 먹고 싶을 때 먹는 거 아닌가요?; 겁나 비싼 음식 먹겠다는 것도 아니고 삼겹살인데!!! 전 웬디님이 삼겹살 드시고 싶으시다면 옆에서 같이 김치도 굽겠어요!

웽스북스 2009-07-10 01:27   좋아요 0 | URL
와와와와 보석님.
마늘도 양파도 고추도 못먹는 저는 삼겹살 먹을 때는 무조건 무조건 김치에게 러브러브를 보는데, 아, 아, 어떻게 아신 거에요? 네? 흐흐 저 김치에 삼겹살 같이 먹는 거 너무 좋아요- 흐흐흐흐흐. (아, 입안에 차오르는 이 습기는, 혹시... 침? ㅋ)

hnine 2009-07-09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가 오는 날은 글 쓰고 싶어지는 날이기도 한가봐요. 비와 관련된 글들이 눈에 많이 뜨이네요.
비가 오는 날 먹고 싶은 것 말해보라면 '아이스크림' 이라고 말하는 사람, 바로 접니다 ㅋㅋ
쌀국수, 저는 아직 안먹어 봤어요.

웽스북스 2009-07-10 01:2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는 좀 심하게 비오는 날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막, 비만 오면, 지금 나는 너무 좋다. 비가와서 좋다. 라고 막 말하고 싶어져요. 완전 유치하기도하지. 비오는 날 아이스크림이라. 훗. 다음에는 꼭 해봐야겠는데요- ㅎ 근데 비랑 쌀국수는 정말 잘어울려요.
 


MBTI를 하면서
분명 온라인 상 테스트에서는
내가 E라고 나오긴 하지만 

스스로 이런저런 성격을 읽어볼 때
나는 ENFP보다는 INFP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내가 목소리좀 크고 제스쳐좀 크고 좀 활발하다, 라는
말도안되는 이유로 나를 E로 평가하는 것이 불만이었다.


오늘 팀장님이 조용히 MBTI를 하고 계시기에
나는 이거 테스트하면 계속 ENFP가 나오지만
스스로 INFP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다, 라고 이야기했다가
완전 비웃음을 당했는데 (ㅜ_ㅜ)

MMDI라는 것을 찾아냈다.
각 유형별로 본인의 성향이 얼마나 포진되어 있는가, 뭐 이런 것 같은데
자세한 설명은 영어라 읽어보지 않았다.


MMDI에 따르면 내 성격은 아래와 같다.



역시 나는 이거였던 것이지. ㅋㅋㅋㅋㅋ.



혹시나 궁금하신 분들은.

http://blog.naver.com/unrz?Redirect=Log&logNo=69807672
여기서 찍고 가세요~ (번역되어있는 블로그)



* 참고 / INFP

INFP형

정열적이고 충실하며 목가적이고, 낭만적이며 내적신념이 깊다.
마음이 따뜻하고 조용하며 자신이 관계하는 일이나 사람에 대하여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하다. 이해심이 많고, 관대하며 자신이 지향하는 이상에 대하여 정열적인 신념을 가졌으며, 남을 지배하거나 좋은 인상을 주고자 하는 경향이 거의 없다.

완벽주의적 경향이 있으며, 노동의 댓가를 넘어서 자신이 하는일에 흥미를 찾고자하는 경향이 있으며, 인간이해와 인간복지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기를 원한다. 언어, 문학, 상담, 심리학, 과학, 예술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한다.

자신의 이상과 현실이 안고 있는 실제 상황을 고려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  일반적인 특성 ■  

☞ 현실감각이 둔하다. - 가계부를 소설로 쓴다
☞ 몽상가적 기질이 많으며 인간과 종교(정신세계)에 관심이 많다
☞ 분위기를 잘 탄다. (분위기가 좋으면 끝까지 남는다)
☞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악, 도덕과 비도덕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 신념이 뚜렷하여 겉으로는 주장을 안해도 속으로는 열정이 있다
☞ 가치 있는 일에는 생명도 바친다
☞ 내면의 세계를 추구하여 늘 무엇을 갈구하고 추구해 나간다
☞ 규칙을 몸서리 치듯 싫어하며 반복되는 일상적인 생활을 싫어한다
☞ 맡겨진 일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완벽주의 적으로 나가는 경향이 있다
☞ 즉흥적이며 변화가 비슷하다
☞ 내면의 갈등이 심하여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 일을 잘 벌이나 마루리가 서툴다
☞ 여행을 좋아하고, 영화, 음악, 책을 좋아한다
☞ 계절의 변화와 상대방의 말에 민감하다
☞ 어느 부분에 대해서는 융통성이 아주 없는 편이다
☞ 상대방을 배려하여 빙빙 돌려서 은유적으로 의사를 표현한다
☞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면 밤을 새워가며 이야기한다
☞ 논리적이지 못하고 감정적이며 감정 조절이 미성숙하다
☞ 아이디어가 많으나 실행에 잘 옮기지 못한다

■  개발할 점 ■  

☞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는 능력이 필요
☞ 대인관계에서 가치관에 맞지 않는 것이라도 융통성을 보일 필요가 있다.
☞ 꾸준함을 기르기 위해서 아주 작은 일부터 통제력을 갖는 것이 필요

■  자녀의 특성 ■  

☞ 책을 좋아한다.: 연작 소설, 고전, 동화, 공상 소설, 러브 스토리등
☞ 도서관이 제일 좋아하는 곳이다.
☞ 이미 알고 있는 것과 배우는 것을 연결하려고 노력한다.
☞ 초등학생때부터 창작 이야기를 쓴다.
☞ 비유와 은유를 좋아한다.
☞ 새로운 미술, 만화 그리기, 발레와 같은 것을 배우고 싶어한다.
☞ 한 명의 제일 친한 친구와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매우 헌신적이어서 단점을 못보거나 관계를 이상화할 수 있다.
☞ 다른 사람들이 한 말이나 행동으로 쉽고 깊게 상처받는다.
☞ 똑같은 것을 반복해서 할 때 지루해 한다.
☞ 열쇠, 숙제, 배낭 같은 것을 자주 잊어버린다.
☞ 늘 조화로움을 추구하며 의도적으로 무례하지는 않지만 자기 중심적일 수 있다.

 

MMDI 처음 알았는데 일단 사람을 하나로 규정하지 않아서 좋다. ㅎ
아래는 펼치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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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처럼 다시 해보는 MBTI
    from 비블리오테카 라우렌치아나 2009-07-02 20:36 
     과외 다녀와서 알라딘에 들어와 봤더니 웬디님의 MBTI 페이퍼가 보여서 따라했다. 사실 중학교 이후로 심리테스트나 혈액형, MBTI 같은 종류의 테스트에 무심했는데,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다.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그런데 역시나 예상한 대로 특별히 도드라지는 측면이 없다. 한때는 나름 튀어오르는 인간성의 측면이 없지도 않았지만, 이제는 그저 적당적당히 다듬어야 한다고 믿으며 살고 있는 탓일까. 실은
 
 
사과나무 2009-07-03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테스트 해 보니까, 의외로 S가 높아져서 놀랐다는...
나이 들고 일상에 치이다 보니 현실감이 커졌다는 건지...

ENFP 79%, INFP75%, E와 ISFP 72%
T와는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는... 하아...-_-

그리고 엉성한 심리학도로서 이해하는 E와 I의 차이는
판단의 준거나 행동에 필요한 정보를
밖에서 가져다 쓰느냐, 안에서 끄집어 내느냐.. 정도?

웽스북스 2009-07-03 12:31   좋아요 0 | URL
저도저도 한없이 작아져만가는 저 TJ들 앞에서 손발이 오그라들어요
그나저나 우리 성격이 굉장히 많이 비슷하군요
하하하하. 역시 제가 느꼈던 이유없는 동질감은 다 이유가 있는 거였어
그런 거였어. 아. 기쁘다. ㅋㅋㅋㅋㅋㅋㅋㅋ

(S땜에 놀란 것까지 똑같애 ㅋㅋㅋㅋㅋ)

사과나무 2009-07-03 16:40   좋아요 0 | URL
하지만 십수년 전에 했던 첫 MBTI 결과는 ISTJ 였지요. 크하하
이번 MMDI에선 29%로 가장 거리가 먼 유형이 되어 버렸지만

웽스북스 2009-07-05 22:46   좋아요 0 | URL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십수년전의 사과나무님, ㅋㅋㅋㅋ

블리 2009-07-03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난 역시 온통 JJJJ ㅠㅠ
J땜에 스트레스 받는데 바꿀 수가 없다.
우리 좀 섞어보자. P의 수혈이 필요해.

웽스북스 2009-07-05 22:46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언니 저도 J좀 주세요.

toon_er 2009-09-20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놔. 나 원래 ENTP인데
이거 하니까
ISTJ 52%
ISFJ 55%
INFJ 65%
INTJ 62%
ISTP 65%
ISFP 72%
INFP 76%
INTP 69%
ESTP 43%
ESFP 46%
ENFP 56%
ENTP 53%
ESTJ 32%
ESFJ 39%
ENFJ 43%
ENTJ 36%

라는군.
결국 나도 INFP.
게다가 영문 내용도 웬젤이랑 같아. 이건 뭐니?ㅋ

ENFP(20) -> ENTP(25) -> INFP(30)

괄호 안은 나이. ㅡㅡ;



웽스북스 2009-09-20 19:27   좋아요 0 | URL
나도 스무살 때는 ENFP였지. ㅋㅋㅋㅋㅋㅋㅋ
 



어제 청소년부 대표기도를 준비하다보니 올해도 벌써 반년이 다 지난 거다.

올해를 시작하며 결심한 것, 다짐한 것을 돌아보며 다시 또다른 절반을 시작하는 시기이기 원합니다. 지난 시간들을 지혜롭게 바라보며 성찰할 수 있는 저희가 될 수 있도록 함께해 주세요. 또한 저희가 지난 반 년간,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성실했는지, 낮은 자들과 함께 얼마나 아파했는지, 불의한 것들 앞에서 얼마나 분노했는지 함께 바라보게 하시고, 남은 반 년은 하나님 앞에서 더욱 합당한 이로 살아갈 수 있게 되길 기도합니다.

라고 기도했는데, 나는 얼마나 그러하게 살았는지, 다시금 생각해보며 지난 반년을 정리해본다.


1. 성경공부 개근

우와. 나는 이거 제일 칭찬해주고 싶다. 매주 목요일 7시마다 시간을 내는 일은 쉽지 않은 건데, 흐흐. 올해 큰맘 먹고 시작한 일인지라, 이렇게 기특하게 해낸거다. 벌써 창세기부터 이사야까지 진도를 나갔다. 다행히 8월 한달은 방학이라 한숨 돌릴 수 있게 된 것 같다. 스스로 베이스라인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알기에 그 자가진단에 따른 것이었고, 결과는 꽤 만족스러운 편이다.

2. 나름 웹진 다섯개의 창간준비호 

이건 뭐, 총대한번 맸다가 맡은 편집장 자리이긴 했지만 은근 부담이 컸다. 2주 발행에서 결국 1개월 발행으로 바뀌고, 그도 힘들어 한 호 쉬어가긴 했지만, 암튼 다섯개의 창간 준비호가 무사히 나왔다. 웹진을 만들고 발간한 것도 그렇지만 그를 통해 자꾸만 연결되는 새로운 관계들이 또 재밌다. 이제 하반기에는 창간도 하고, 글의 범위도 좀 넓혀보고, 이러저러한 기획도 좀 만들어내보고 싶은데 잘 되려나.

3. 영화/공연/전시회 등등 관람

무슨 강박증 환자처럼 영화나 전시회등을 찾아보고 친구 잘 둔 덕에 좋은 공연도 많이 만났다. 올 상반기에 봤던 영화 중에는 다우트, 더리더, 레볼루셔너리로드, 마더, 김씨표류기, 요시노 이발관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히힛. 그리고 영화제도 다녀왔고. ^-^ (영화제에 충실한 영화제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공연은 얼마전 봤던 고곤의 선물의 감흥이 여전히 잊혀지지 않으며, 박근형 작인 너무 놀라지 마라,도 참 좋았다. 그리고 상반기에 국내에서 있었던 굵직한 미술 전시회를 클림트 전만 빼고 모두 갔었는데 한국 근대미술걸작전과 인도 현대미술전이 좋았다. (국립미술관 만세) 하반기에 있는 보테로 전은 꼭 다녀올 생각이고 르누아르전은 여전히 고민중인데 그 이유는 그림들이 너무 행복해보여서...랄까. 하하하. ;;;;;

4. 책, 책모임...

1월에 굉장히 많은 책을 읽고는 다소 주춤. 특히 이것저것 벌여놓은 모임들이 많아서 그것들 따라가기에도 조금 벅찼던 것 같다. 그렇지만 우여곡절 끝에 토지모임도 어느덧 18권까지 나갔고, 그 외에 이러저러한 책들을 즐겁게 읽었다. 상반기에 읽었던 책 중 김승옥의 책들이 참 좋았고, 권정생 선생님의 우리들의 하느님이나 나쓰메소세키의 마음, 그리고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도 참 인상적이었다. 특별히 학부 친구들과 하는 모임 덕에 조르바와 걸리버를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참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5. 커피..커피..술..술...

나의 길티플레져, 커피를 끊으려 무던히 노력했으나, 뭐, 대략 두달 정도, 아니 명확히는 한달, 기특하게 지키고 나머지는 그저 패배자의 쓴 웃음을 짓게 하는 상황들 뿐. 그 좋은 걸 왜 끊느냐는 말에 명확한 대답을 못찾고, 일단 커피값이라도 좀 줄여보자는 목적 하에 가루커피를 구매해서 타서 마시고 있다. 커피를 끊고 술이 늘었다. (이런 일반화. 상관성은 입증할 수 없음 ㅋ) 암튼 이래저래 알콜중독 소리까지 들어가며 일주일에 2회 정도는 음주를. 하하. 뭐, 마신 양으로 치면 한달치가 남의 하루치일 수는 있겠다만, 슬로우앤스테디하게 꾸준히 마셨다는 게 중요. 게다가 엠비님 덕에 입도 걸어져서 이제 가끔 막말도 한다. 하하하하.

6. 그리고, 하반기.

뭔가 관심있던 분야에 대한 스터디를 시작하게 될 것 같다. 7월부터. 매주 금요일. 한 3개월 정도 잡고 있는데, 잘 모르겠다. 그리고 미국에 있는 민정언니와 책을 통한 교류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세계문학전집을 한권씩 읽는 모임인 <내가 읽는 책 이야기>라는 것도 시작할 예정. 다음 블로거 분들의 모임인데 나는 알라딘 블로그에 올리겠다고 이야기했다. 블로그에 새로운 손님들이 생긴 셈이다. 토지모임은 9월에 있는 내 생일에 마지막 모임을 하기로 했다. 다른 책을 읽는 모임이 될지 역사속으로 사라질지는 모를 일이다. 하하. 그리고 아까 말했듯 나름에도 뭔가 재밌는 코너들을 기획중이다. 그리고 국내/외 여행을 각 1회씩 다녀올까 생각중이다. ^-^


이건 아무리 봐도 백수의 스케줄인데, 하하하. 뭐, 뭐든, 적당히 할 생각이긴 하다. 일단 집에 오면 나는 쓰러져 아무것도 못하니 금요일날 있을 스터디모임의 첫 발제도 도무지 어찌해야할지. 배째라째라 모드이긴 하다. 흙.

그간 바빠 알라딘에 소원했으나, 하반기에는 좀 이것저것 많이 끄적여볼 생각이다. 흐흐.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글은 안써도 늘 들어와서 다 봤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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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9-06-30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르누아르전의 그림들, 말씀대로 행복해보이는 그림들이 대부분 맞아요. 르누아르는 그런 식으로 자기 삶의 행복하지 않은 부분을 극복하며 살아갔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6번의 하반기 계획들이 흥미진진하네요 ^^

웽스북스 2009-07-01 01:53   좋아요 0 | URL
아. 그런 눈으로 볼 수도 있군요 사실 제가 르누아르의 삶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hnine님이 추천해주시는 그림들은 늘 좋아하니 르누아르전에 대한 시선도 좀 달라지려고하네요- 하반기에는...끙! ㅋㅋㅋ

무해한모리군 2009-06-30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화는 좀 소원했고, 몇몇 미술전시와 음악회만 간신히 다녀왔습니다. 아휴 직장인이니 갈때마다 사람이 인산인해라 감상에 큰 지장을 받았답니다 ㅎㅎㅎ 선배 언니와 아기와 함께 7월 14일날 보테르전에 다녀올 생각입니다. 권정생 선생님과(우리들의 하느님은 작년에 순오기님이 선물로 주셨어요) 나쓰메소세키는 늘 즐겨 읽는 작가이고,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은 작년에 읽었으니 우리는 앞서니 뒷서니 하며 비슷비슷한 책들과 장소를 오가면서 보냈네요 참 신기합니다 ^^

우리 하반기에도 이런저런 얘기를 함께 많이 나누어 봅시다. 건강조심!!
요즘 아침에 일어나는게 힘겹네요.

웽스북스 2009-07-01 01:54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 정말요. 저도 휘모리님 페이퍼 읽으면서 공감했잖아요. 아침에 일어나는 거 정말 힘든데, 저희 출근시간이 30분 늦춰져서 앗싸좋구나 하고 있어요. (하지만 퇴근시간도. 흑)
후훗. 그나저나 책 리스트들은 저도 반가운데요- 미술관은 가능하면 평일에 가자, 주의인데 이번에는 어떻게될런지 잘 모르겠어요. 흙.


치니 2009-06-30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시는 웬디양님에게 감탄을 금치 못하며...저질 체력 치니는 물러나옵니다. 전 어차피 못할거니까 다른 스케줄은 대강 보다가 '9월에 있는 내 생일'에서 눈이 커졌습니다. ㅋㅋ

웽스북스 2009-07-01 01:56   좋아요 0 | URL
아. 치니님. 치니님은 넘 가녀리셔서 그래요. 정말!!
제 스케줄 또 가만가만 들여다보면 그리 살인적이지는 않아요. 그냥저냥 살만하긴 한데, 하반기는. 흠. 크크.

그나저나 치니님 생일은 언제일까, 괜히 궁금하구 그런데요. 흐흣.

LAYLA 2009-06-30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년의 반이란걸 이 페이퍼 보고서야 알아차렸네요. 벌써 엄청나게 많이 온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요. 남은 반이 어떻게 지나갈지 기대되서 가슴이 두근거려요!!

웽스북스 2009-07-01 01:57   좋아요 0 | URL
와. 두근거린다니. 이거 굉장히 긍정적인 모습인데요 ^-^
저도, 올해가 엄청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가도, 또 한참을 보낸 것 같아 까마득하기도 하고 그래요- 하지만 지금까지 온만큼만 지나면 이제 한살 나이를 더 먹는다는 사실은 슬퍼요. 흑.

Jade 2009-06-30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은 드립커피를 끊고 가루커피로 전환하고 있어요! ㅋㅋ

나쓰메 소세키 마음과 수전손택 타인의 고통은 저한테도 참 인상적이었어요. ㅎㅎ

웽스북스 2009-07-01 12:42   좋아요 0 | URL
(ㅋㅋㅋ 어제 저 위까지 댓글달고 제이드님 글에 덧글 못다는 마음을 안타까워하면서 잤어요 ㅋㅋㅋㅋㅋㅋ)

제이드님도 드립커피 끊었구나. ㅎㅎ 이게 뭐 일단 다른 건 몰라도 편하긴 엄청 편한 것 같아요- 제이드님 추천 가루커피는 뭐에요? (음. 일단 이구아수 2통 다 마시고 ㅋㅋㅋㅋㅋ)

두책 다 참 좋죠. ㅎㅎ 제이드님 좋아할 것 같으네. 방학 잘 보내요!

니나 2009-06-30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성경공부 하다 말았고 나름에 글도 쓰다 말았고 걸리버도 읽다 말았고 그저 술만 격렬하게... ;; 페이퍼 보고 니나는 반성중 ㅋㅋ

웽스북스 2009-07-01 12:42   좋아요 0 | URL
ㅎㅎㅎ 너처럼 열심히 사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너처럼 성실하게 산 사람에게!!!!!)
절대절대 반성하지마, 그럴 필요 전혀 없음 ㅋㅋㅋㅋㅋㅋㅋ

넌 저위에 써 있는 '잘만난 친구'잖아. ^-^

메르헨 2009-06-30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그런 비밀이 있어요.하하핫..글은 안써도...계속 들어와 본다는...^^
웬디양님~~~~올만에 뵈니 좋아욤...^^

웽스북스 2009-07-01 12:43   좋아요 0 | URL
어머어머 품절녀 메르헨님 ㅋㅋㅋㅋㅋ
(이거봐요 계속 보고있다니까 ㅋ)

같은 비밀을 간직한 우리 (아 이제 간직이 아닌가. 다 말했으니 ㅋ)
자주뵈어요. 흐흐.

바람돌이 2009-07-01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간 소원하셧던 것 맞죠? ^^ 늘 참 열심히 사시는구나 싶어 웬디양님보면 저도 에너지가 팍팍 솟는듯하네요. ^^

웽스북스 2009-07-01 12:45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님. 예린이 해아 모두 잘 있죠? 흐흐.
사진 보니 많이 큰 것 같아요. 특히 우리 해아. ㅋㅋ

웬디언니가 보고싶어한다고 전해주세요.

순오기 2009-07-02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월엔 웬디양의 생일이 들어 있어요.^^
기본 체력이 짱짱한 에너지 여사 버금가는 웬디양의 스케줄에 화이링!ㅋㅋ
우린 닮은데가 있다는 말 이젠 믿지요?^^
하하 토지 모임은 9월에~ 난 8월말에 토지문학관에 가 있을 듯...

웽스북스 2009-07-03 00:23   좋아요 0 | URL
와와. 그렇군요- 토지문학관 저도 갔다왔는데.....
(언제 갔다왔다고 쓰려고하는데 그게 도통 언젠지 기억이 안나는 후후)

하지만 전 오기여사님 절대 못따라가요. 어휴. 영화보러 부산까지 납시는분이신데요- 고작 서울이나 안양 좀 왔다갔다하는 사람과는 비교도 안되죠.

순오기 2009-07-05 08:12   좋아요 0 | URL
하하~ 예전에 토지문학관 사진 올린거 보고 댓글도 달았지요.^^
부산은 영화보러 갔다기보단 좋은 사람들을 만나러 간 거지요.ㅋㅋ
하지만 에너지여사니까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우리 큰딸도 인정한...ㅋㅋㅋ
 


대학 시절 선생님께서 작업하신 책이 출간되어 제자들이 함께 이를 기념하는 모임을 가졌다. 책에 대한 질의와 응답을 하던 도중 나는 선생님께 이런 질문을 드렸다.

"지금 이 세계를 살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대안이라는 것을 이룩해나가기 위해서는 중간에 타협이라는 지점을 한 번 거쳐야 하는 현실이 참 안타까워요. 선생님. 그저 순수한 치열함만으로는 무언가를 이루어나가는 것조차도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언제부턴가 '지혜'라는 말에 담긴 그 묘한 어감이 몸서리치도록 싫어졌다. 특히나 어른들이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정의하고 강요하는 지혜라는 말은 세월에 의해 마모된 자기 자신의 곡학아세를 지혜라는 이름으로 교묘히 치장하는 도구로 쓰여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내가 살아봤더니, 세상은 꼭 그런 게 아니더라, 내가 살아봤더니, 순수함만으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더라, 내가 살아봤더니, 내가 살아봤더니, 내가 살아봤더니. 그 말은 어른들이 스스로의 마모를 위로하는 고도의 자기위로이자, 그들보다 어린 열정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놀라운 힘을 지닌 말이다. 물론 그들이 삶으로 쌓은 경험을 깡그리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해버리고 싶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경험이 쌓인다는 것이 꼭 더 나은 방향으로 흐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리하여 내가 그들보다 조금 더 가지고 있었던 마땅히 분노하는 마음들이 그저 한 순간의 치기어림으로 제단되는 순간에, 나는 좀 더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살면서, 이명박 옆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황석영을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라고는 정말이지, 꿈에도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이런 미미한 일기를 쓰는 나도, 이 사소한 일기 속 다짐조차 삶으로 살아내지 못하면서, 작가로서 좋아하는 이들의 글과 삶을 분리하는 일은 내게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던 것 같다. 그는 내게, 삼포 가는 길을 쓴 작가였고, 오래된 정원을 쓴 작가였고, 손님을 쓴 작가였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였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좋아하던 작가였다. 나는 순수하게도, 그 책들을 통해 그가 하는 말들이 고스란히 그의 삶이고, 그의 신념일 것이라 생각해왔던 것이다. 얼마 후, 그가 손학규 지지를 선언했을 때, 네이버에 소설 연재를 시작했을 때,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을 때, 나는 설마설마 하며 그의 세계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사실은 저 분의 삶의 노선은 미시적으로, 당시의 세계 안에서, 가장 주목받을 수 있는 경로를 좇아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 결국 조심스레 가졌던 의혹이 눈앞에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설마설마하던 것이라 하여 결코 착잡함이 덜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이명박의 중앙아시아길 순방에 동행한 그는 자신은 남북관계를 풀려는 순수한 의도에서 그런 일을 했다며 자신을 변호한다. 그의 지혜에 의거하면, 그것은 자신이 생각하는 대안을 이루어나가기 위한 어떤 안착 지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생각하는 것이 맞는 것이라면, (나는 남북관계에 대한 지식은 미미하기에 그가 주장하는 것이 남북 관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얼마나 바람직한 대안이고 비전인지 판단하기 어려우므로 이에 대해서는 유보해 둔다.) 이렇게 타협하는 것만이 그가 생각해낼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손잡지 않고 싸우기를 택하는 것이 얼마나 멀고, 지난하고, 위험한 길인지, 너무나 지혜로운 그는 아마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어른의 지혜가 곡학아세로 이어지는 일은 매우 자연스러웠다. 묵묵히 그 멀고, 지난하고, 위험한 길을 걷고 있던 이들이 한 순간 '바보'가 되어버리는 것 역시 당연한 귀결이었다. '몰랐어? 여기, 지름길이 있잖아. 응?' 그렇게 말하는 것이 지혜라면 나는 그런 지혜 같은 것, 죽을 때까지 거부하겠다.

함께 성경을 공부하는 이들끼리 '잠언'에 대해 나누면서 '지혜'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나는 지혜란 그 시대를 가장 현명하게 사는 법을 지칭하는 것이기에, 시대의 논리에 부합하는 경우가 많고, 하여 현 시대의 지혜란 처세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이야기하며, (비슷한 이유로 나는 잠언서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시대를 초월하는 진정한 지혜란 그 시대를,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바보같이 사는 삶에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 어쩌면 그가 사는 동안 끝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길, 영영 없어질 지도 모르는 길,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하게 그 길을 걷는 그 마음이 곧 지혜인 것 같다고. 그래서 살아서 바보소리를 들었던 노무현의 죽음이 우리에게 이토록 큰 울림을 주는 것 같다고. 어떤 소설가의 말처럼, 그는 멈춰버린 수레바퀴를 말없이 힘겹게 끌고 가던 바보였으니까. 지난 5월은 실은 바보였던 한 지혜자 때문에, 또 지헤자였던 한 바보 때문에 참 많이 속상하고, 참 많이 먹먹했던 것 같다.

여전히 내 책장 한구석에는 아직 읽지 못한, 그러나 문학적으로 훌륭할 것이 분명한, 그래서 더욱 속상한 황석영의 중단편들이 꽂혀 있다. 아. 진작 읽었어야 했다. 이제는 아무리 객관적으로 보려 해도 그 작품들을 대하는 마음이 전과 같을 수는 없기에. 그저 안타깝고, 또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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