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비. 비.
좋아.

우리의 마르탱파주아저씨는 이런날의 마음을 시적무정부상태라고 매우 적절하게 표현해주셨다. 아. 정말. 그렇다. 어제까지 나를 지배하고, 나를 11시까지 야근씩이나 하게 만들었던 그 정부가 사라져 오늘 나의 손에는 아무것도 쥐어지지 않는다. 노닥노닥. 음악을 찾아들으며 슬금슬금 무언가를 읽고 또 끄적인다. 이럴 거면 어제 왜 야근을 한걸까. 라고 묻는 내게 선아야, 그래도 그건 달라, 라고 해주는 K가 있는, 참 좋은 날이다. 그래. 어제의 쩔고 상쾌한 야근후 기분은 그 나름의 재미가 있는 거지.

C는 비가 와서 삼겹살을 먹고 싶다고 했다가 남자친구에게 경제관념이 없다는 구박을 받았다고 한다. 비와 삼겹살과 경제관념의 상관관계를 전혀 모르겠는 나로서는, 흠, 좀있다가 통계프로그램 열어서 상관분석이라도 돌려봐야하나, 하는 기분이고.

언니, 그럼 비오는 날에는 뭘 먹어야 되나요? 라고 물어보는 그녀에게, 나는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먹고 싶은 걸 먹는 거야, 라고 답해 삼겹살을 먹고 싶은 그녀의 마음에 힘을 더해주었다. 비에 어울리는 음식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음식보다 더 먹고 싶은 게 있다면, 그게 오늘에 어울리는 음식 아니겠니. 그녀는 힘차게 삼겹살을 먹으러 갔다. N은 오늘 저녁에 라면을 끓여먹겠다고 한다. 사실, 나는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쌀국수를 먹고싶다. 하지만 나는 너무 착하니까,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는 K의 바람을 들어주어 김치찌개가게로 갔는데, 예상치 못했던 오이지가 나왔다. 오이지를 먹을 때마다 나는 조상님들의 지혜에 감탄한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음식 중 하나. 결국 오이지를 두접시나 비우고 기쁜 마음으로 우산을 쓰고 언덕을 내려오는데, 쌀국수 집을 지나던 K의 말. 아. 쌀국수 먹을걸. 생각을 못했네. 이런. ㅜ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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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07-09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말할걸 그랬어요. 세상엔 말하지 않아서 그냥 넘어가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다음부터는 먹고 싶은 건 꼭 말해요!!

그나저나 오이지, 오이지는 제 완소반찬. 오이지 정말 사랑해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는,,,제가 오이지를 더 좋아하는지, 웬디양님을 더 좋아하는지..잘 모르겠어요. 미안해요. 흑 =3=3=3=3

웽스북스 2009-07-09 13:45   좋아요 0 | URL
어쩌죠? 다락방님이 오이지를 좋아하신다니, 전 다락방님이 더 좋아졌는데- 전 다락방님을 살리기 위해서는 앞으로 평생 오이지를 먹지 말아야 한다면 오이지를 버릴 것 같은데

아. 버림받은 기분. ㅜㅜ

다락방 2009-07-09 14:00   좋아요 0 | URL
아, 미안해요 웬디양님.

그렇지만 내마음,
그거 나도 어쩔 수 없는거잖아요..흑(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뒤돌아서 뛴다)

보석 2009-07-10 09:30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은 오이지> 웬디님, 웬디님은 다락방님>오지지. 결국 다락방>오이지>웬디 이런 관계가 형성되는 건가요?ㅋㅋㅋㅋ 웬디님 분발하셔야겠어요. 오이지한테 지지 않으려면.

웽스북스 2009-07-10 01:25   좋아요 0 | URL
저 아까 양치질을 하면서 다락방님과 저, 그리고 오이지가 등장하는 동화도 상상했어요. 매우 슬픈 비극 동화에요. 매우 짧은데 이거 쓰고잘까? ㅋㅋ

보석님, 제가 그렇게 좋아하는 오이지가 제 경쟁상대가 될 거라고는 저는 정말이지 상상도 못했어요-

다락방 2009-07-10 09:04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
양치질하면서 생각하는 동화라니. 궁금해요, 웬디양님!!!!

네꼬 2009-07-12 14:07   좋아요 0 | URL
오이지 좋아한다고 내가 먼저 말할걸!!!! 아깝도다! (땅을 친다)

라주미힌 2009-07-09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이 초절임이 좋아요.. 아삭아삭.. 시큼달콤... 쩝쩝..

웽스북스 2009-07-10 01:25   좋아요 0 | URL
아니야. 아니야. 오이지가 최고야. ㅋㅋㅋ

레와 2009-07-09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오이지 잘 담그는데.. 큿~ (쌩뚱~ 쌩뚱~)

웽스북스 2009-07-10 01:26   좋아요 0 | URL
어머어머어머어머 전혀 안쌩뚱.

저는 오이지는 잘 담근거든 못담근거든 무조건 좋아하지만
아 레와님이 오이지를 잘 담그신다니. 아아아. 너무 부러워요-
저도 험한세상 살아가기 위해서 오이지 잘담그는 법 정도는 알고 있어야
먹고 살 수는 있을텐데 말이죠-

보석 2009-07-09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와 삼겹살과 경제관념의 관계를 모르겠어요. 그냥 먹고 싶은 거 먹고 싶을 때 먹는 거 아닌가요?; 겁나 비싼 음식 먹겠다는 것도 아니고 삼겹살인데!!! 전 웬디님이 삼겹살 드시고 싶으시다면 옆에서 같이 김치도 굽겠어요!

웽스북스 2009-07-10 01:27   좋아요 0 | URL
와와와와 보석님.
마늘도 양파도 고추도 못먹는 저는 삼겹살 먹을 때는 무조건 무조건 김치에게 러브러브를 보는데, 아, 아, 어떻게 아신 거에요? 네? 흐흐 저 김치에 삼겹살 같이 먹는 거 너무 좋아요- 흐흐흐흐흐. (아, 입안에 차오르는 이 습기는, 혹시... 침? ㅋ)

hnine 2009-07-09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가 오는 날은 글 쓰고 싶어지는 날이기도 한가봐요. 비와 관련된 글들이 눈에 많이 뜨이네요.
비가 오는 날 먹고 싶은 것 말해보라면 '아이스크림' 이라고 말하는 사람, 바로 접니다 ㅋㅋ
쌀국수, 저는 아직 안먹어 봤어요.

웽스북스 2009-07-10 01:2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는 좀 심하게 비오는 날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막, 비만 오면, 지금 나는 너무 좋다. 비가와서 좋다. 라고 막 말하고 싶어져요. 완전 유치하기도하지. 비오는 날 아이스크림이라. 훗. 다음에는 꼭 해봐야겠는데요- ㅎ 근데 비랑 쌀국수는 정말 잘어울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