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三을 위한 나라는 있었는데 없었던 건 그저 三의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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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알라디너들이 목을 빼고 기다리시는 三의 고백 관련 소식이다. ‘고백’ 관련 소식이라고 적은 데서 벌써 짐작하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맞습니다. 아직 ‘고백’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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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viously on Three.
三을 회사에 꽂아줬던 전 이사님이 그를 연애에도 꽂아주겠다는 생각에 소개팅을 주선해주셨으니 이사님이 첫 번째 보살님이시다. 그리고 저 말 없고 재미없고 눈치 없고 배려도 없으며 소개팅하고 들어온 날 잘 들어가셨느냐, 즐거웠다, 잘 주무시라, 내일도 좋은 하루 보내시고 다음에 또 만나자, 이런 정리 카톡을 보내는 게 당연하다는 것조차 syo가 알려주기 전까지 몰랐던 소개팅 오랑캐 三과 무려 여섯 번이나 만나주신 K씨가 두 번째 보살님이시다. 그리고 그 무지렁이를 그래도 사람처럼 입히고 말을 가르치고 인의도덕을 주입하여 여섯 번이나 그 자리에 내보낸 syo님이 바로 마지막 보살님이시다…….
보살님s의 무한한 노력에도 멍청하게 그냥 주말마다 출근하듯 만나러 가기만 하지 도통 다음 스텝을 밟지 않던 三. 이러면 이거 사람 아니라는 주변의 압박에 못 이겨 다섯 번째 만남에 드디어 고백을 준비했는데, 이게 우물쭈물 타이밍 놓치고 준비해 간 멘트 놓치고 정신줄도 놓치고 하여튼 놓칠 수 있는 건 다 놓치는 바람에 고백 멘트는 뭔가 고백이 아닌 것처럼 두루뭉수리하게 되어 버렸고, 결론적으로 K씨가 그걸 고백으로 인지하지 못했다. 고백은 망했고 바로 그날 손이라도 잡아보고 싶었던 三의 욕망도 함께 망함.
그래서 여섯 번째 만남에는 그냥 다이렉트로 좋아한다 만나자를 꽂아넣기로 하고 나갔는데, 이 빙구는 또 언제 말하지 언제 말하지 언제 말하지 하면서 그날의 데이트 7시간을 통째로 날렸고, 결국은 9시 반, 헤어지는 지하철역에서, K씨가 마지막으로 화장실에 다녀오기 전인가 다녀오고 나서인가 하여튼 이거나 저거나 망했기는 매한가지인 그 두 타이밍 가운데 하나에 좋아한다 만나자를 투척함. 대답 : 생각해 볼게요. 그게 지지난 토요일.
여기까지가 지난 시간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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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일월화, 그때 우린 대구에 있었고 三은 그냥 아주 카톡만 기다렸다. 핸드폰에 진동만 오면 2초 만에 들여다봤고, 엄마면 실망했고 스팸이면 분노했다. 저게 저렇게 감정이 많은 인간이었다니. 화요일, K씨 성격에 대뜸 먼저 생각해봤는데요… 하면서 말을 거는 건 생각하기 어려우니, 니가 먼저 간단한 말을 붙여서 판을 깔아보라고 조언했더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지금 태풍 때문에 난리니까 거기서 시작해보라고, 어차피 무슨 말을 걸어도 걸기만 하면 니가 왜 그 말을 걸었는지 저쪽에서 얼추 알아챌 거라고 이야기했다. 三은 대답이 없었다. 그날 저녁, syo가 물었다. 야 그래서 뭐라고 하디? 까였냐? 三이 대답했다. 말 안 걸었는데……. 이런 식이니 여러분은 이제 K씨와 syo가 보살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인정 못하시겠다구요?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요.
수요일에는 성남에 있었다. 아직 말도 못 걸어본 상황. 三은 초조했다. 놀리는 재미가 있었다. 그래도 싫었으면 여섯 번이나 만났겠어? 이러면서 희망회로를 돌린다 싶으면 “제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요, 아무래도 우린 아닌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이렇게 말해주었다. 아, 근데 이렇게 대답이 없는 거 보니까 진짜 아닌가보다 이러면서 머리를 쥐어 뜯을 때는 “야 그래도 싫었으면 왜 여섯 번이나 만났겠냐. 그리고 하루나 이틀 지나면 말했겠지. 안녕히 계시라고.” 이렇게 위로해주었다. 그때마다 일희일비하는 모습을 보는 게 쏠쏠했다. 건 뭐 처음에 고백 종용할 때는 ‘내가 얘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며 쎈척하더니, 이제는 완전 그냥 반쯤 사람꼴이 아니었다. 이것이 진정한 밀땅이로구나.
하여튼, 또 그놈의 회사에서 유해한 과장인지 부장인지로부터 전화가 왔고, 방에 들어가서 한 20분 동안 통화하고 나온 三은 의자에 앉으면서 뻘소리를 시작했다. 주된 맥락은 이럴 거면 손이라도 잡아 볼걸- 뭐 그런 거였는데, 듣는 순간 나는 빡쳤다. 그거 아니라고 내가 이야기했잖아. 그랬더니 三曰, 아니, 다들 내가 손도 하나 못 잡고 등신 같다고 말하니까 내가 진짜 뭔가를 잘못하고 있나 싶어서 그렇잖아. 그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할 걸 그랬나?
툭- 하고 머릿속에서 인내의 끈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는 식의 표현을 읽을 때마다 유치하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툭- 하고 뭔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이지 이건 뭐랄까, 분노와 서운함과 한심함이 어우러져 한탕 걸쭉한 춤을 추는데……. 나는, 정말이지 네가 잘 됐으면 하는 마음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을 했다. 내 경험만으로는 안 될까 봐 주변에 물어보기도 했다. 남자 입장에서 나올 수 있는 답이 비슷할 것 같아서 여자 인맥을 총동원했다. 여친, 여사친, 여동생은 물론이고 하여튼 ‘여’자만 들어가면 여의봉(?) 여의주(??) 여진구의 여드름(???)한테도 물어보겠다는 심정으로 여기저기 물어보고 다녔고, 취합해서 너한테 알려줬다. 그런데 너는 9시 반의 지하철 화장실 앞에서 고백하는 븅신이었고, 지금 니가 이 모양 이 꼴인 건 니가 그런 븅신이어서인데, 이제 네가 이렇게 나오겠다면 나는 이 일에서 손을 뗀다. 아디오스 친구여.
三은 거의 조아리면서 용서를 빌었고, 나는 그 허망한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자 三은 핸드폰을 들었다. 40분 후 호랑이치킨이 배달되었다. 우리 집에는 다시 웃음과 평화가 깃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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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서 K씨에게 카톡을 보냈다. 별말 안 하고 그냥 평소처럼 주말에 만나자고 했고, 토요일에 식물원 가자고 했는데 OK 사인이 떨어졌다. 야, 이런 말씀은 얼굴 보고 드리는 게 예의인 것 같아서 만나자고 했어요. 우린 아닌 것 같아요. 사요나라- 이럴 것 같았으면 식물원 앞에서 만나자 할 때 그러자 했겠어? 그냥 카페 같은데서 잠깐 이야기하자 했겠지. 아무래도 이건 오케이 각인데? 이랬더니 신나서 대답하는 三. 야, 가자, 대부도 가자!
……응?
대구에 내려가기 전, 갑자기 바지락칼국수가 너무 먹고 싶어서, 대구 갔다 오면 수요일이나 목요일쯤에 대부도 가서 바지락칼국수나 먹고 오자고 지나가듯 말한 것인데, 화요일 저녁 대구에서 바지락칼국수 맛집에 다녀오는 바람에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 말을, 심지어 지가 카톡 기다리며 일희일비할 때는 지도 모른 척하던 그 약속을 갑자기 꺼낸다고?
오케이 각 잡히자마자 데이트코스를 물색하는 三이었다. 언젠가는 K씨와 갈 거라며 그 전에 미리 답사하자는 것. 하여튼 이놈은 이게 문제다. 고백도 화장실 앞에서 겨우 말 꺼낸 놈이 대부도 생각부터 하는. 손을 잡니 허리를 감니 뭐 이런 소리에 팔랑거리는 게 다 이새끼 천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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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남자 둘이 대부도를 갔다고 합니다. 시화나래 전망대도 올라가고, 메타세쿼이아 길도 걷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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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막상 약속 날 K씨 바빠서 약속 한 주 밀림. 이번 주 토요일이 D-Day네요. 그때는 과연 三의 ‘고백’ 관련 소식이 아닌 ‘연애’ 관련 소식을 전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 읽은 ---
하도 오랜만에 쓰는 페이퍼라, 오늘은 읽은 책이 좀 많다.
310. 아주 편안한 죽음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 강초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 인간에게 닥친 일 가운데 그 무엇도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는 그 자체로 세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하지만 각자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사고다. 심지어 자신이 죽으리라는 걸 알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에 해당한다.
_ 시몬 드 보부아르, 『아주 편안한 죽음』
311. 나를 뺀 세상의 전부
김소연 지음 / 마음의숲 / 2019
syo는 시인이 쓴 에세이를 참 좋아한다. 에세이 속에서도 그들은 시인이기 때문이다. 시인이라는 자각을 남기려는 에세이는 물론, 시인이 아니라 에세이스트로서 써야지 하는 느낌이 나는 글에서도 ‘시인이 아니라’ 하는 순간 이미 시인의 에세이가 되는, 이 기묘한 마법이 가능한 이유는 뭘까. 대체 시인이 뭐길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다. 시인의 산문은 대부분 아름답고 그 시인이 김소연 시인이라면 아름다움은 당연의 영역이다. 40문단 정도를 훔쳤는데, 대체 하나같이 아름다운 이놈들 중에서 뭘 여기에 옮겨놔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그래도 기왕이면 시에 대한 고민이 담긴 대목을,
어째서 다시 시집이 읽히고 시집을 선물하는 시대가 돌아오게 된 걸까. 사람을 만나도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겨를이 없어서일까. 진지한 얘기를 꺼내면 놀림받는 분위기 때문에 진지함은 혼자만의 시간에서나 누려야 할 은밀한 영역이 되어버린 탓일까. 매정한 시대에 건조한 표정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 감성의 영역이 복용해야 마땅할 영양제가 된 탓일까. 인간의 얼굴이 도무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실제로 만나는 얼굴들로부터는 확인받을 길이 없어서 가장 내면의 얼굴을 엿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 것일까. 시는 잠깐잠깐 한 편씩 읽을 수 있는 것이어서 늘 시간이 없는 우리에게 용이하게 읽히는 걸까. 말에 대한 피로함과 침묵의 시간에 대한 소중함을 동시에 해갈할 수 있는 영역이어서일까. 어제를 복제한 듯한 오늘을 사는 일이 파리해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목소리 한 자락을 듣고 싶은 간절함 때문일까. 아니면, 출구가 모두 봉쇄된 듯한 시스템 안에서 지리멸렬함을 견디다 견디다 자유에 대한 감각이 마비되어 시를 통해서라도 인공호흡을 해보려는 마지막 도전 같은 것일까.
독자는 가장 듣고 싶은 말이 적혀 있는 시집을 찾아 헤맨다. 꼭 듣고 싶은 한마디가 시에 적혀 있기를 바란다. 이 시대에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사랑한다는 말도, 희망이 있다는 말도, 인간을 믿어보자는 말도, 세상은 그래도 아름답다는 말도 뻔히 거짓말인 줄 다 아는 시대다. 어쩌면 뻔한 거짓말이 거짓말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다시 한번 고려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시가 다시 읽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한 번 사람을 믿어보겠다며 다른 방식으로 고백해보고 싶어서 시집을 선물하게 되는 건 아닐까.
_ 김소연, 『나를 뺀 세상의 전부』
인류애가 생겨나는 기분이다.
312. 에드문트 후설, 엄밀한 학문성에 의한 철학의 개혁
박인철 지음/ 살림 / 2013
- 일독(1712xx)
- 재독(210823)
이 책은 진짜 기가 막힌다. 후설의 주요 개념을 연결해서 물 흐르듯 좔좔 설명하는데, 읽다가 근데 이게 된다고? 싶어서 고개를 갸웃하면 어찌 알았는지 바로 다음 문단에 "그런데 이게 된다고? 싶을 것이다. 후설은 그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하는데…" 하고 대답하는 점쟁이식 구성이다. 처음 읽기는 이걸로. 다음은 조광제 선생님의 <의식의 85가지 얼굴>이라든가, 이남인 선생님의 <현상학과 해석학> 정도가 좋겠다. 박이문 선생님 전집 중에도 현상학에 대해 할애된 부분이 있다.
물론 지평은 우리의 일상적 삶 속에 무수히 그리고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무엇을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지평의 범위와 내용은 달라질 수 있다. 자연과학자들이 보는 세계도 그 나름의 특수한 지평적 세계다. 그런데 지평은 의미의 연관성만 있다면, 기본적으로 부단히 확장 가능하다. 이때 모든 가능한 개별 지평들을 포괄하는 궁극적 보편적 지평을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이 이른바 ‘보편적 지평으로서의 세계’, 곧 후설적 의미에서의 ‘생활세계’다. “모든 이 세계의 주어짐은 지평의 방식 하에서의 주어짐이다. 지평들 속에 그 이상의 또 다른 지평들이 함축되어 있으며, 따라서 궁극적으로 모든 세계적으로 주어진 것은 세계지평을 지니게 되고, 단지 이를 통해 세계적인 것으로 의식된다(『위기』, p.146).”
_ 박인철, 『에드문트 후설, 엄밀한 학문성에 의한 철학의 개혁』
313. 수전 손택의 말
수전 손택, 조너선 콧 지음 / 김선형 옮김 / 마음산책 / 2015
이것저것 뒤지고 찾아내서 엄청 준비를 많이 해온 인터뷰어와 그냥 평소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그 모든 질문에 유연하고도 유려하게 대답하는 인터뷰이. 손택 멋있쪙.
자, 내가 원하는 건 내 삶 속에 온전히 현존하는 것이에요. 지금 있는 곳에, 자기 삶 '속'에 자기 자신과 동시에 존재하면서 자신을 '포함한' 세계에 온전한 주의를 집중하는 것 말입니다. 사람은 세계가 아니고 세계는 사람과 동일하지 않지만, 사람은 그 안에 존재하고 그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지요. 그게 바로 작가의 일입니다. 작가는 세계에 주의를 기울여요. 저는 머릿속에 모든 게 다 있다는 유아론적인 관념에 반대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사람이 그 속에 있든 없든 항상 거기 그 자리에 엄연히 존재하는 세계가 정말로 있어요. 그리고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내게는 글쓰기를 지금 현재 내게 벌어지는 일과 연결하는 쪽이 그 경험에서 물러나 다른 일을 하려는 것보다 훨씬 쉬워요. 안 그러면 그냥 자기 자신을 두쪽으로 나누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_ 수전 손택, 조너선 콧, 『수전 손택의 말』
314. 내 마음과 거리 두기
설기문 지음 / 좋은습관연구소 / 2021
당신은 감정체가 아니며 감정 또한 당신이 아니다. 감정은 그냥 당신이 경험하는 것일 뿌니다. “나는 우울하다”고 할 때 “나는 우울이다”의 뜻이 아니라 “나는 우울한 감정을 경험하고 있다”라고 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슬프다”는 “나는 슬픔이다”라는 뜻이 아니라 “나는 슬픔의 감정을 경험하고 있다”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다. 감정 자체가 아니라 감정의 에너지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느 그 에너지가 나쁜 것이라고 판단하고 그것을 좀더 쉽게 털어낼 수 있다.
_ 설기문, 『내 마음과 거리 두기』
그냥 저게 핵심이다. 감정에서 나를, 아니, 나에게서 감정을, 아닌가? 감정에서 나를-인가? 모르겠다, 하여튼 감정 그것과 나를 분리하는 것. 그러라고 이런저런 방법들을 제시하는데, 그게 어떤 것들인지는 목차에 짜르르 나온다. “잠재의식 속 진짜 원인 찾기”처럼 딱 듣는 순간 그렇게 해야겠다는 건 알겠지만 뭐 어떻게 하는 건지는 모르겠는 기술부터 “드론이 되는 상상해보기” 같은 초보적인 것도 있다. “죔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해보기” 이런 것도 있다. 허허.
315.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
하재연 지음 / 문학과지성서 / 2012
바람이 지나가고
벚꽃잎이 떨어진다
이 기차는 나를 어디엔가는
데려다줄 것이다
떨어진 벚꽃 위로
떨어지는 벚꽃의 얼굴이 한순간 반짝인다
나는 올려다본다
스카 라스카 알라스카
단단하고 하얀 이름이 입속에서
조금씩 녹아내릴 때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또렷한 목소리로
너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한 꽃송이였다가 흩어지는 벚꽃잎들
이 기차는 나를 언제인가는
데려다줄 것이다
어떤 약속도 없이 매달려 있는 벚꽃잎의
무성한 색깔
스카 라스카 알라스카
바람이 지나가지 않아도
벚꽃잎이 떨어진다
반짝임이 사라지고
기차는 종착역에 닿는다
내가 불렀던 너의 이름이
벚꽃잎의 색깔과 함께 흩어지듯이
우리가 만났던 도시가 녹아내려
지구의 물이 되듯이
_ 하재연, 「언제인가 어느 곳이나」
그러니까 얘네는 헤어진 모양이고,
이곳은 플라나리아의 나라
너와 나의 무성생식은 평화롭고 순조롭게
명료한 얼굴과 침착한 미소로
우리들은 밤의 튜닝을 시작한다
노이즈는 제멋대로 흘러들게 내버려두고
우리들은 천을 짜기 시작한다
아홉 가지 색깔의 실을 걸고
열두 가지 향기의 실을 짜 넣으면
이 밤의 퀼트는 완벽해진다
이곳은 플라나리아의 나라
우리들은 밤의 숨결에
땀과 설탕을 흘려 넣는다
불안정한 빛의 색깔들에 의해
나는 반죽되고 몸뚱아리는 늘어난다
아름다운 인형들의 눈에 눈동자를 붙이는
밤의 작업과도 같이
_ 하재연, 「고요한 밤의 증식」
얘네는 한 모양이다.
같은 애들일까?
쉽고 예뻤다. 아름답고 잘 읽혀서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시집 독서라는 것은 뭔 소린지 잘은 모르겠지만 하여튼 멋있는 말을 만났을 때도 즐겁지만, 지금 내 역량으로 이게 대충 어떤 상황이고 무슨 말이고 마음인지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는 시들을 몇 편 연속으로 읽었을 때도 뿌듯한 즐거움을 준다. 오늘의 나는 2012년의 하재연 선생님이구나.
316. 런던을 걷는 게 좋아, 버지니아 울프는 말했다
버지니아 울프 지음 / 이승민 옮김 / 정은문고 / 2017
원문을 본 건 아니지만 울프의 문장이 실은 읽기에 만만치는 않다. 다른 책들도 좀 그랬던 걸 보면 원래 좀 길고 빡빡한 문장을 구사했었나 보다. 워낙 늘어지는 만연체를 즐기는 syo인지라, 이런 문장들을 수월치 않게 읽을 때면 두 가지 방향으로 죄책감이 든다. 1. 무려 울프가 써도 읽어내기 만만찮은 게 긴 문장인데, 한낱 syo나부랭이가 그런 걸 써도 되는 걸까? 2. 혹시 남들은 좔좔좔 읽어내는데 나만 저는 거 아냐? 아, 아직도 독서가 부족하구나…….
왜 그래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늘 쓰는 사람의 눈으로 읽는 게 습관이 되버린 syo에게 울프의 에세이가 던져주는 교훈은 크다. 시야에 잡히는 모든 것이 글이 된다. 그건 포착, 섭취, 소화, 배출의 4행정 엔진이 완벽하게 맞물려 동작할 때 겨우 달성할 수 있는 경지다. 그리고 어떤 필사적인 마음 없이는 유지할 수 없는 습관이다. 멋있다.
그런즉 런던을 단순히 멋진 구경거리로, 시장과 궁과 산업의 중심지로 알지 않고 사람들의 만남과 대화, 결혼과 죽음, 글과 그림과 공연, 통치와 입법이 이뤄지는 장소로 이해하려면 꼭 크로 부인을 알고 지내야 했다. 부인의 응접실에서라면 이 거대한 메트로폴리스의 무수한 파편들이 하나로 합쳐져 비로소 납득이 되고 호감이 가는 생생한 유기체로 거듭나는 듯했다. 여러 해 동안 떠나 있던 여행자들, 인도나 아프리카 혹은 맹수와 야만이 득실대는 외딴 모험지에서 방금 돌아온 형편없는 몰골의 사내들이 다시 문명의 품으로 성큼 들어서기 위해 이 조용한 거리의 소박한 집으로 직행한 것도 이런 까닭이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런던이라고 해도 크로 부인을 영원히 살게 할 힘은 없었다. 결국 시계가 다섯 시를 울려도 크로 부인이 난로 옆 안락의자에 앉지 않고 마리아가 문을 열지 않으며 미스터 그레이엄이 장식장 옆을 지키지 않게 되는 날이 왔다. 크로 부인은 세상을 떠났고 런던은, 아니 비록 런던이 여전히 존재하더라도 다시는 예전과 같은 도시가 아닐 것이다.
_ 버지니아 울프, 「어느 런던 사람의 초상」
317. 밤에 읽는 소심한 철학책
민이언 지음 / 쌤앤파커스 / 2016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중요한 것은 지금 시작해야 하는 '미약'이다. 그럭저럭 여건을 다 갖춘 '나중'은 오지 않는다. 언제나 저 자신의 시점을 굳건히 지키면서 늘 '저기'에 자리할 뿐이다. 제대로 할 겨를이 없기에 아예 하지 않는다는 변명은 걷어치우자! 제대로 할 수 없기에 지금이 미약의 적기인지도 모르며, 당신이 버린 '짬짬이'와 '틈틈이'로 이루어낸 자들이 '천지빼까리'다. 절대 시간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아직 '나중'이 되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나중에 할 일을 지금 하지 않는 것뿐이다. 지금 뭐라도 해야, 무언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나중'도 도래하는 것 아니겠는가? 농사는 파종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씨앗을 뿌리기 이전부터 미리미리 지력地力을 걱정해야 한다.
미래는 현재 뒤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아니다. 지금의 시간을 짓이겨 다시 쌓아올려야 하는, 그 또한 현재다. 니체의 영원회귀 개념은 당신이 딛고 있는 순간의 성질을 묻는 것이다. 이 삶이 다시 반복되어도 기꺼이 다시 살아줄 수 있는 가치관으로 '지금'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어느 시제를 살아가던, 당신은 지금을 반복할 것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것이라 기대하지 마라! 오늘 지고 있는 태양도 돌아보지 않는 이에게 내일의 태양은, 내일 이 무렵에 세상 끝으로 사그라질 오늘의 하늘일 뿐이다.
_ 민이언, 『밤에 읽는 소심한 철학책』
아, 철학을 꼼꼼히 공부하면 이런 글을 쓸 수 있게 되는구나. 입을 헤 벌리고 무릎을 탁 치면서 보느라 윗도리는 침에 젖고 아랫도리는 무릎이 해어졌다. 그리고 자꾸만 뼈를 때려서 깁스를 했다. 소심하다 그래놓고 장쾌하게 공격한다. 훌륭하다. 얼마 전에 여자친구도 비슷한 말을 해줬다. 철학책 한 권 안보는 그녀가. 훌륭하다. 훌륭하다.
318. 민주주의의 발전과 위기
임혁백 지음 / 김영사 / 2021
헤테라키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정보 민주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정보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누구나 정보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주고, 서로 정보를 공유할 것을 장려한다. 또한 시민이 생산한 정보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만일 재산권을 통제할 수밖에 없을 때는 적절하게 보상해주어야 하나.
정보 민주화를 위해서는 소수의 ‘정보 귀족’들이 자신의 ‘영지’에서 정보를 독점하고 통제함으로써 정보가 일반인들에게 공유되거나 확산하지 못하는 ‘정보 봉건제’를 타파해야 한다. 정보를 독점한 특정세력은 시민들의 성적, 종교적, 정치적 성향을 모니터링하고 이를 바탕으로 시민을 감시, 통제하는 ‘데이터 감시국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_ 임혁백, 『민주주의의 발전과 위기』
요 대목만 보면 어쩐지 뜬구름 잡는 말을 하고 그를 뒷받침하기 위해 ‘귀족’, ‘영지’, ‘봉건제’ 같은 단순한 동시에 매콤한 단어를 갖다 붙이는 귀여운 청소년 도서 같아 보이지만, 짧은 분량에도 민주주의의 ‘발전’과 ‘위기’라는 제목에 걸맞게 발전상과 위기상을 깨알같이 설명해두었다. 휙휙 읽고 다른 책으로 넘어가면 좋다.
319. 우리는 영원하지 않아서
이낙원 지음 / 들녘 / 2017
엄마의 병을 다루던 병원에 친구가 일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나와서, 함께 재수를 했고, 같은 대학에 들어가 같은 하숙방에서 2년을 산 친구다. syo가 진로를 따라 멍청한 syo가 되는 동안 친구는 항로를 수정하여 의사가 되었다. 친구는 신장내과도 혈액종양내과도 아니었지만 병실 문턱(병실에는 문턱이 없다)이 닳도록 드나들며 엄마의 상태를 체크하고, 안심시키고, 나를 위로했다. 엄마가 돌아가시던 국면에서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전화를 했던 것도 그 친구였다. 친구는 급한 수술에 들어가는 길이어서 내려와 보지 못했고, 그 사이 엄마는 돌아가셨다. 다음 날 누구보다 먼저 분향소를 찾아온 친구는 조용히 울다 갔다. 이후 대구에 머무는 동안 몇 번을 더 찾아와줬고, 그때마다 그날 응급실에 혼자 서서 멍하니 엄마의 시신을 내려다보던 내 옆에 있어 주지 못했던 것을 미안해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러나 너는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했다. 아들보다 더 나은 아들친구였다. 엄마는 아들이 병실에 들어올 때보다 박선생이 병실에 들어오는 모습을 더 크게 웃으며 반기기도 했다.
많은 죽음이 그의 뒤에 있었고 앞에 있을 것이다. 슬프고 안타깝지 않은 것이 하나 없을 것이다. 엄마의 죽음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이 있듯, 그가 배운 것이 있겠구나 싶었다. 우리는 영원하지 않아서, 앞으로도 끝없이 슬프고 안타까울 그에게 감사와 경의 말고도 더 표현할 게 있을지 찾는 중이다. 엄마가 넥타이를 하나 사주라고 했는데 그게 일종의 유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죽음이 전문화, 의료화된 것도 문제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원에서 태어나고 병원에서 죽어가지만, 정작 병원에서는 임종을 병원의 업무로 이해하지 않는다. 의학은 아프기 이전의 삶을 회복하고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학문이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연구하지 않는다. 난 의사가 되는 과정에서 임종하는 환자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체계적으로 교육받지 못했다. ‘더 이상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란 말은 말기 질환으로 죽음에 임박한 환자들에게 의사들이 종종 하는 말이다. 나 역시 유 할머니의 아드님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는 말 외에는 어떤 것도 건넬 것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지만 의학은 또는 의사는 여전히 삶에만 집착하고 있지 않은지. 죽음이 일상화된 병원이지만, 아직도 병원은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덜 되어 있다.
_ 이낙원, 『우리는 영원하지 않아서』
320. 대불호텔의 유령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1
이제 더는 박지운을 찾아가지 않으리라. 이제는 내가 정리한 이야기 속의 박지운을 들여다보리라. 그런 방식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리라. 그렇게 이야기를 쌓고 쌓고 또 쌓다보면, 진짜 마음을 알 수 있겠지. 왜 그렇게 알고 싶어하느냐고? 왜 계속 쓰고 싶어하느냐고? 왜냐하면 그 마음이 결국은 나의 마음이니까. 내가 나를 이해하는 방식이니까. 나의 이야기니까. 그리하여 나는 나의 이야기를 또 상상한다.
_ 강화길, 『대불호텔의 유령』
사랑이라고 써도 되겠고 또 그래야 할 필요도 있을 것 같아서 이 책이 사랑에 관한 책이라는 맥락의 리뷰를 쓰긴 했지만, 사실 처음에는 이 책은 ‘쓰기’에 관한 책이라고 느꼈다. 천재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쓰는 사람의 삶에는 좌절과 방황, 환멸, 질투, 자기비하 같은 감정들이 사막의 크고 작은 모래언덕처럼 점멸한다. 구조적으로 보면 이 책은 쓰는 일에 실패하였다가 쓰는 일에 달리 성공하는 책이다. 안에서 벌어지는 서사는 그 서사대로 의미가 있겠으나, 읽기에 따라서는 저 문단이 설명하는 내용에 그대로 복무하는 것이기도 하다. 화자가 페이크 저자라는 이중 구조 내부에 액자식의 또다른 중첩 구조가 있는 책답게, 독서하는 입장에서도 여러가지 관점을 통해 책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듯하다.
321. 딱 이만큼의 경제학
강준형 지음 / 다온북스 / 2018
322. 사조영웅전 6
323. 사조영웅전 7
324. 사조영웅전 8
김용 지음 / 이지청 그림 / 김용소설번역연구회 옮김 / 김영사 / 2020
325.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4
326.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5
327.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6
328.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7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 2021
--- 읽는 ---
요리코를 위해 / 노리즈키 린타로
사는 게 고통일 때 쇼펜하우어 / 박찬국
SF가 세계를 읽는 방법 / 김창규, 박상준
소소하게, 독서중독 / 김우재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 임건순
마키아벨리 / 퀜틴 스키너
불평꾼들 / 제프리 유제니디스
장정일의 공부 / 장정일
소오강호 1 / 김용
구의 증명 / 최진영
데이트가 피곤해 결혼했더니 / 김수정
천국보다 성스러운 / 김보영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 이라영
모더니즘 / 피터 게이
사랑이 아닌 것은 별 / 사이하테 타히
예술 수업 / 오종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