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사거리 6

 

 

 

오목한 것이 있어서,

 

그 안으로 너와 내가 들어가고, 다른 것들도, 예를 들면, 바람과 그늘과 새소리도 들어가고, 키스와 건널목과 벚꽃잎도 들어가고, 시간과 중력도 들어가고, 9월도 들어가고, 소매를 걷어붙인 처음 보는 셔츠와 비 오는 날의 맛이 나는 커피 두 잔도 들어가고, 목소리와 미소로 흥건한 오르막과 내리막들도 들어가고, 낮과 밤과 모든 만져지는 것들과 만져지지 않는 것들이 다 함께 빙글빙글 말려 들어가는 오목한 것이 있어서,

 

그 부드러운 경계에 서면 사건의 지평선에 올라선 빛처럼 모든 것들이 그 안으로 안으로 쏟아지듯 허물어지듯 되돌아가듯 들어가도록 되어 있는 그런 크고 오목한 것이 만약 우리에게 있어서,

 

들숨 날숨 한 번씩 오가는 시간이면 우리가 충분하게 가득 채워낼 무한하고 오목한 것이 있어서, 우리가 제일 먼저 그 안에 있어서, 쏟아지듯 허물어지는 모든 것들을 다 받아내며, 다 비벼내며, 바람이 만드는 그림자를 새소리에 얹어내며, 건널목마다 벚꽃잎 모양의 입술 자국을 찍어내며, 시간이나 중력이나 9월처럼 알쏭달쏭한 것들도 어떻게든 한아름 껴안아내며, 만져지지 않는 것들을 만지지 않은 날 밤에는 만져지는 것들을 서로 만지고, 만져지는 것들을 만지지 못한 날 밤에는 만져지지 않는 것들을 함께 만질 수 있다면, 그런 아늑하고 오목한 것이 우리에게 있다면,

 

영영 그 안에서 나오지 않아도 우리는 좋아서,

 

 

 

그래서 우리는 늘 시작해버리고 만다. 그게 무엇이든. 어떻게 되든. 사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은 지금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렇지 않은가.

 

  악의? 그까짓 것들.

_ 강화길, 대불호텔의 유령

 

쇼바는 고개를 돌려 슈쿠마의 얼굴이 아닌 신발을 보았다. 그가 슬리퍼처럼 신는 낡은 모카신으로, 뒤축의 가죽은 항상 접혀 있었다. 그는 자신의 말에 쇼바가 조금 실망한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지그시 힘을 주었다. "왜 그랬는지, 이유를 말할 필요는 없어." 그녀가 다가앉으며 말했다.

  그들은 아홉 시까지 그렇게 함께 앉아 있었고, 그러자 불이 들어왔다. 길 건너편 집의 현관에서 몇몇 사람들이 손뼉 치는 소리가 들려왔고, 텔레비전들이 커졌다. 갔던 길을 돌아오던 브래드포드 부부는 아이스크림 콘을 먹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쇼바와 슈쿠마도 손을 흔들어주었다. 이어 둘은 일어나서 슈쿠마의 손이 여전히 쇼바의 손에 감싸인 채로 안으로 들어갔다.

_ 줌파 라히리, 일시적인 문제

 

타협하는 사람만이 '창조 이전과 같은 카오스인 사랑의 신비'에 상처 입지 않는다. 즉 그들은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대신 그들은 이 세상에 받아들여지고 이 세상의 인습에 의해서 지지되고 오래 살 수가 있다.

  그러나 무서운 사랑의 정열에 몸을 태우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서로가 자기의 초월을 상대방에게 맡겨 버리려고 생각하고 또한 그것을 영원화하려는 무모한 의도를 갖는다.

_ 전혜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읽은 ---



337.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

윤성근 지음 / 산지니 / 2018

 

헌책방이나 동네 서점을 운영하는 이야기를 엮은 책에는 고난과 역경, 무심한 편견의 공격, 수지타산의 어두운 수렁과 그로 인한 방황에 대한 이야기가 반드시 들어있었다. 그런 글을 읽으면 꺼질 듯 말 듯한 초를 손바닥으로 겨우 감싸고 바람 부는 길을 조심조심 걸어가는 마음이 된다. 꺼지지 마요, 망하지 마요, 힘을 내요……. 하지만 기도로 배가 부르면 세상 만사 걱정이 없겠지. 결국, 책을 덮을 때는 아, 이래도 되는가, 책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여 책으로 사람을 만나는 사람들이 이렇게 물심양면의 포화를 한껏 맞아가며 깎이고 바스라지는 세상이, 살만한 세상인가- 하며 혼자 착잡해지곤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좀 다르다. 역경? 편견? 적자? 맞아, 그런 거 다 있지. 하지만 나는 달린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이고, 누군가는 가야 할 길이니까. 달리는 내가 기껍다. 으하하하하, 위대할손 나의 끈기!!!!! 이런 패기가 문장 문장마다 깃들어 있어서, 독자가 지치지 않는다. 그게 이반 일리치 덕분일까?

 

이러나 저러나 독자로서 할 수 있는 말은 결국 선생님 화이팅- 이긴 하다.

그런데 가까이서 본 풍경은 조금 전과 완전히 달랐다. 꽃들은 바람이 부는 결에 따라 계속해서 흔들렸다. 아무것도 없는 듯 보였던 그곳엔 벌과 나비,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곤충들이 있었다. 그들은 제각기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지만 이 거대한 풍요로움의 일부분이기도 했다. 나는 그것들을 마주하며 처음으로 '평화로움'이라는 한 단어를 떠올렸다. 이 평화로운 풍경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끊임없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생명들로 가득한 시끌벅적한 곳이었다.

  살아오면서 그렇게 고통스러웠던 이유는 내가 바라보는 풍경 속으로 조금 더 걸어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저 이 멋진 풍경을 멀리서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했기 때문에 그 속에 깃든 수많은 비밀들을 외면했던 것이다. 이것이 고통의 원인이라는 결론에 닿았다. 그 후로 나의 목표는 '평화'가 되었다. 평화는 정지된 세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축제와도 같은 것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터전을 그런 풍경으로 만들어 볼 수는 없을까? 내 삶의 목표를 '통장'이 아니라 '꽃밭'으로 정해도 좋지 않을까?

_ 윤성근,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

 

 

 


338. 관자

신창호 지음 / 살림 / 2013

 

어릴 때는 노자 장자가 흥미로웠는데, 나이가 드니까 관자 묵자 한비자가 매력적이다. 지키는 새끼는 없고 지키라고 윽박지르는 새끼만 잔뜩 있던 게 공맹의 도가 지닌 역사다 보니 그쪽으로는 아무래도 눈길이 잘 가지 않고. 뭐든 새로운 주제에 흥미가 생기면 일단 살림지식총서 있는지 살펴보는 건 습관이다. 다 읽고 관자를 들였다.

 

 

 


339. 벽화

김영산 지음 / 창비 / 2004

 

  언제부터인지 밤이 편안하다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되고 시를 쓰지 않아도 된다

  커단 서른아홉의 중턱에서

  어느 시인은 서슴없이 꿈을 버린다 했는가

  나는 마흔을 바라 무엇을 버리는가

  애인이여 늙는 애인이여

  나는 밤을 괴롭지 않고 자고 일어나 어제처럼

  19층 아파트 젖은 벽을 타는

  눈 내리는 장엄을 볼 것이다

  나는 쏟아져내리는 흰 벽의 벽화를 그리겠고

  벽만 찬 벽만 바라보면 된다

  오래 머무르며 바라본 사람의 등이 그린

  벽화

  길을 가는 사람의 등이 그리는

  벽화

  모든 옛날의 눈 보내야 온다

  그러니 눈은 수직으로 내리지 않고

  벽을 어루며 온다

  벽화는 기울면서 그려진다

_ 김영산, 벽화 4

 

syo도 어느덧 마흔이라는 것이 코앞에서 알짱거리는 나이. 거울 속에는 어제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녀석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 녀석도 어제의 거울 속에서 그제의 그 녀석을 바라보며 자신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겠지. 또 하루 멀어져 가는 게 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또 하루 멀어져 간다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뭔가 아는 척했던 그 서른 즈음처럼, 어느덧 마흔에 대한 이야기를 모으는 시간. 알지 못하는 시와 노래들이 잔뜩 있다. 어떤 벽에 어떤 기울기로 기울어 어떤 마흔을 그릴 것인지, 거울에 대고 아무리 물어봐도 그 속에 든 애어른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340. 의 속삭임

루이자 메이 올컷 지음 / 김서령 옮김 / 폴앤니나 / 2021

 

하지만, 삼촌, 그건 신사답지 못한 거 아녜요? 전 아직 친절한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고요. 삼촌은 어린 조카의 소소한 부탁을 거절할 만큼 야박한 사람도 아니고, 어린 조카는 마음만 먹으면 애교 있게 조를 줄도 안단 말예요. 이제 그만 대답해 주세요, ?”

  이 정도면 꽤 당돌해 보이겠지? 나는 삼촌의 목에 팔을 두르고 세심하게 키스를 퍼부었다.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발칙하게 그의 무릎에 올라앉았다. 그는 잠깐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다니 갑자기 나를 껴안고 입술과 볼 그리고 이마에 찬찬히 키스를 퍼부었다. 열정적인 삼촌의 태도에 나는 그만 얼굴이 새빨개져서 그에게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쳤다. 수치심이 분노로 바뀌고, 단호하게 놓아달라 내가 말할 때까지 삼촌은 일그러진 얼굴로 웃고 있었다.

  “아직은 아니야, 꼬마 아가씨. 내 무릎에 앉을 땐 너 좋자고 그랬겠지만 이젠 나를 위해 여기 앉아있어야 할걸. 너를 좀 더 길들여야겠어. 그럴 필요가 있어 보이거든.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이런 쪽으론 내가 경험이 좀 있거든. 가이도 그랬어. 타고나길 야생 매 같았지만 이젠 내가 부르면 순한 비둘기처럼 날아온다니까. 뭐야! 뭐 이런 맹랑한 악마가 다 있어?”

  나는 정말 그랬다. 맹랑한 악마 같았다. 그의 냉담한 모습에 분노한 나머지 이성을 잃은 상태로 갑자기 허리를 숙여 내 두 손을 잡고 있던 그의 희고 아름다운 손을 물어버렸으니까.

_ 루이자 메이 올컷, 밤의 속삭임


시빌이 겪은 고초가 당연히 시빌의 잘못은 아니지만, 잘못이 있건 없건 사람의 진심을 가지고 장난을 치면 안 된다. 그런 짓을 하면 전혀 예측치 못한 방식의 체벌이 기다리고 있다. 당장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벌은 언젠가 반드시 찾아온다.

 

무난한 소품 같다. 루이자 메이 올컷 하면 아무래도 작은 아씨들일 텐데, 그걸 읽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접한 것이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씨들 마음은 기가 차게 잘 그려내겠구나 싶긴 하다.

 

 

 


341. 술 수업

오종우 지음 / 어크로스 / 2015

 

도대체 예술을 배워서 어디 쓰냐는 폭력적인 질문에 대한 길고 친절한 대답이다. 그러나 늘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대답이 필요 없는 사람들한테만 와닿고, 대답이 필요한 사람들은 대답을 들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애초부터 궁금해서 질문한 게 아닌 것처럼.

 

우리가 창의력, 창의성이라고 할 때는 보통 남과 다르게 생각하고 기존에 없던 것을 창조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렇게 단순히 새로운 시각만을 강조하는 것은 몹시 위험합니다. 그것은 자기 확대에서 비롯되는 자기 함몰, 즉 자신만의 세계에 유폐될 위험을 안고 있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자기 욕망의 발현에만 치중하는 탐욕을 부릴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죠. 창의성은 단순히 남들과 다른 자기만의 독특한 생각을 뜻하지 않습니다. 망상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진짜 창의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꼭 필요합니다. 먼저, 전문성입니다. 피카소가 대상을 보이는 그대로 정밀하게 그리다가 대상의 진실을 확보하기 위해 자기 예술세계를 열었듯이, 우선 이전부터 축적된 능력을 학습하고 익혀서 전문적인 단계에 이르러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그 대상을 향한 애착입니다. 애정 없이는 어떠한 대상도 제대로 볼 수 없으며, 그 일을 발전시킬 수도 없습니다.

_ 오종우, 예술 수업

 

 

 


342. 마키아벨리

퀜틴 스키너 지음 / 임동현 옮김 / 교유서가 / 2021

 

자신이 만났던 통치자들과 정치가들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을 기록으로 남길 무렵 마키아벨리는 그들 모두가 한 가지,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교훈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결과 그들은 자신이 착수했던 일에 실패했다. 그렇지 않고 성공을 거두었더라도 그것은 적절한 정치적 판단이 아닌 운으로 이루어낸 성공에 불과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공통적인 결점은 변화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체사레 보르자는 언제나 자만에 빠져 있었고, 막시밀리안 황제는 지나치게 조심스럽거나 우유부단했으며, 율리우스 2세는 늘 성급하고 충동적이었다. 그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깨닫지 못했던 사실은 그들이 자신의 성격이라는 틀에 시대를 끼워맞추려 노력하는 대신에 자신의 성격을 시대의 상황에 맞게 적응시켰더라면 훨씬 더 큰 성공을 거두었으리라는 점이다.

_ 퀜틴 스키너, 마키아벨리

 

이 책은 개정판이다. 한겨레출판에서 마키아벨리의 네 얼굴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던 이전 책을 syo는 너무나 사랑하였는데, 그것은 뭐랄까, 개론서의 표본 같은 존재랄까, 하여튼 미친 개론서 덕후의 포지션이 도무지 침착을 허락치 않는 책이었다. 알고 보니 그 책은 Oxford 대학 출판사에서 나오는 ‘A Very Short Introduction이라는 시리즈의 한 권을 옮긴 것이었는데, 최근 교유서가에서 그 시리즈를 선별적으로 번역하여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나오고 있는 중. 그렇게 마키아벨리의 네 얼굴마키아벨리로 옷을 갈아입고 다시 나타난 것이다.

 

마키아벨리에게 악명을 부여한 군주론이외의 다른 저서들을 조망하고, 그 책은 마키아벨리의 네 가지 얼굴 중 하나일 뿐이라는 관점을 제시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지옥에서 돌아온 양아치, 도덕으로 똥 닦은 남자의 이미지가 마키아벨리의 1/4, 그것도 왜곡된 1/4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훌륭한 점이겠다.

 

긴 말을 했지만 사실 긴 말 필요 없지. 미친 개론서 덕후가 인정하는, 한글로 읽을 수 있는 최고의 마키아벨리 입문서입니다.

 

 

 


343.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

 

잘한다! ,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부러 도망치지 말고 진즉 좀 읽어둘걸. 짧은 그림책이라 활자 수 대비 비싸긴 하지만…….

 

할아버지는 치매에 걸려 죽어가는 모양인데, 지금 할아버지와 손자가 있는 공간은 할아버지의 사라져가는 기억을 형상화한 점점 좁아지는 광장의 어느 벤치다. 이런 설정은 뻔하고 유치하기 쉬운데, , 글을 겁나 잘 써 버리니까, 이건 뭐 펀치가 어디로 날아올지 알지만 피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아서 그냥 이제 나는 얻어터지는 일만 남았겠구나, 언제쯤 도착하려나 그 펀치- 하는 마음으로 페이지만 넘기게 된다. 이런 대목. 이런 비유. 꼭 이런 식으로 나오신다면 제가 드릴 수 있는 거라고는 정주행뿐이겠군요, 배 선생님…….

 

  "선생님께서 어른이 돼서 뭐가 되고 싶은지 쓰라고 하셨어요."

  노아가 얘기한다.

  "그래서 뭐라고 썼는데?"

  "먼저 어린아이로 사는 데 집중하고 싶다고 썼어요."

  "아주 훌륭한 답변이로구나."

  "그렇죠? 저는 어른이 아니라 노인이 되고 싶어요. 어른들은 화만 내고, 웃는 건 어린애들이랑 노인들뿐이잖아요."

  "그 얘기도 썼니?"

  "."

  "선생님께서 뭐라고 하시던?"

  "과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너는 뭐라고 했니?"

  "선생님이 제 답변을 이해하지 못하신 거라고 했어요."

  "사랑한다."

_ 프레드릭 배크만,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344. 가까운 날들의 사회학

정인호 지음 / 웨일북 /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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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후반의 미혼여성들이 결혼하고 싶어 하는 연예인 1위는 누구일까? 이 질문에 대부분 사람들은 송중기’, ‘현빈’, ‘송승헌’, ‘박보검등을 답할 것이다. 그러나 정답은 <전국노래자랑>MC송해. 30대 후반 미혼여성들의 마음을 관찰해보면 이렇다. 송해 선생은 1927년생으로 나이가 아흔 살이 넘었다. 그런데도 잔병 하나 없이 너무나 건강하다. 후배 개그맨인 엄용수는 아직도 송해 선생님은 소주를 됫병으로 드신다고 한다. 나이 90세에 이토록 건강하니 무엇이 부러우랴. 또한 나이 90세에 직장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송해 선생은 30년 세월동안 <전국노래자랑>의 국민MC로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안정적 소득에 인기까지 먹고 살 수 있으니 여성들의 이상적 배우자로 꼽힐 만하다. 이러한 현상을 송해 효과라고 한다. 송해 효과는 지나친 긍정보다 오히려 현실적 부정을 강조해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가는 현상을 말한다.

_ 정인호, 가까운 날들의 사회학

 

이런 게 있다고? 싶어서 녹색창에 송해 효과를 검색해 봤는데, 나오지를 않는다. 송해 선생님이 어느 광고에 등장해서 그 회사 매출이 어떻게 되었다든가, 어떤 프로에 등장해서 패널들 눈물을 쏙 뽑아냈다든가 하는 식으로 송해 효과라는 표현을 쓰는 기사들이 몇 건 검색될 뿐이다. 그럼 이 송해 효과라는 말은 정인호 선생님이 이 책에서 만드신 말인가? 웃자고 하신 이야기인가? 모르겠다. 저 대목은 뭔가 약간 비꼬는 것 같기도 하고(니들 말대로라면 니들이 진짜로 원하는 사람은 바로 송해 선생님이겠네?)……. 모르겠다. 노명우 선생님의 세상물정의 사회학과 이 책을 같은 계통에 배치한다면 두 권 중에 어느 쪽을 권할지는 명확하다.

 

 

 


345. 보통의 우리가 알아야 할 과학

윤석만 지음 / 타인의사유 / 2020

 

그래도 최소한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말 속의 최소한한다에 대해 늘 생각이 많다. 처음에는 대체 그걸 누가 정하며 그걸 누가 정하는지는 또 누가 정하며- 뭐 그런 무한연쇄에 대한 고찰이었지만, 요즘은, 과연 뭔가를 최소한만 알고 지나가는 게 정말 되는 일인지가 궁금한 중이다. 관심이 없는 것은 아예 모르거나 알아도 자꾸만 잊어버리게 되고, 관심이 있는 것은 자꾸만 알고 싶고 알아도 더 알고 싶다. 세상에는 내가 알고 싶은 것들과 알든 모르든 상관없는 것들이 있어서, 후자에 대해서는 최소한알기 어렵고 전자에 대해서는 최소한알기가 어려운 것. 신학 시대의 과학뿐 아니라, 과학 시대의 과학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알면 좋지. 근데 실은 관심이 먼저다. 관심이 생기면, ‘보통의 우리가 알아야 할 것 이상의 것들을 가르쳐 주는 과학책을 알아서 뒤지겠지. 그러나 관심이 없다면? 그렇다면 이 책인가?

 

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읽는 과학책과 과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읽는 과학책 중 어느 책이 더 많이 읽히는 과학책이 될지를 생각해보면,

 

오늘날 다수의 종교인들도 지동설을 과학이 아니라 상식으로 받아들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진리라고 믿엇던 신념이 오랜 시간에 걸쳐 변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기의식으로 인지할 수 있는 만큼의 진리를 엿보고 있을 뿐입니다.

_ 윤석만, 보통의 우리가 알아야 할 과학

 

 

 

346. 소오강호 2

김용 지음 / 전정은 옮김 / 김영사 / 2018



바로 그때, 왼편 산자락 위로 별똥별이 쐐액 지나가며 어두운 하늘에 길고 긴 꼬리를 남겼다. 의림이 말했다.

  "의정 사저는 별똥별을 보고 옷고름을 묶으며 속으로 소원을 비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셨어요. 만약 별똥별이 사라지기 전에 옷고름을 다 묶으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던데, 정말 그럴까요?"

  "모르겠소. 한번 해봅시다. 그렇게 손이 빠를 것 같지는 않지만."

  영호충은 웃으며 대답하고 옷고름을 잡았다.

  "사매도 미리 준비하시오. 아차 했을 때는 늦소."

  의림도 그를 따라 옷고름을 잡고 까마득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름밤은 유달리 별똥별이 많았다. 금방 별똥별 하나가 하늘을 갈랐지만 너무 빨라 의림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전에 사라지고 말았다. 의림은 포옥 한숨을 쉬고는 좀 더 기다렸다. 두 번째 별똥별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길게 꼬리를 늘이며 나타났다. 의림은 재빠르게 움직여 매듭을 지었다.

  "잘했소, 정말 잘했소! 성공했군! 관세음보살님이 보우하사 반드시 소원을 이루게 될 거요."

  영호충이 기뻐하며 말했지만 의림은 도리어 한숨을 쉬었다.

  "매듭을 짓느라 소원 비는 것을 깜빡했어요."

  영호충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미리 생각해두시오. 속으로 외고 있다 보면 매듭 때문에 소원을 잊어버리지는 않을 테니까."

  의림은 옷고름을 잡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무슨 소원을 빌지? 무슨 소원을?'

  영호충을 흘끗 바라보는 그녀의 두 뺨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의림이 수줍어하며 고개를 돌리는데 그때 마침 별똥별 몇 개가 잇달아 하늘을 가로질렀다.

_ 김용, 소오강호 2

 

이렇게 신필 진선생은 알퐁스 도데 싸닥션을 가볍게 날린다. 왕복으로 훅훅. 옆에 멀뚱히 서 있던 생텍쥐페리도 얼결에 같이 한 대 맞았다.

 

 

 

--- 읽는 ---

빵 고르듯 살고 싶다 / 임진아

붉은 칼 / 정보라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 마리암 마지디

호모 비아토르의 독서 노트 / 이석연

하품의 언덕 / 문보영

살면서 한번은 경제학 공부 / 김두얼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 이치조 미사키

살인자의 건강법 / 아멜리 노통브

시작만 있고 끝이 없는 당신을 위한 책 / 이경수

미아로 산다는 것 / 박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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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09-09 21: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쇼님, 태그 만든거 왜 나 오늘 알았어요? 잘했어요, 잘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남자들이 살고 있습니다, 먼저 읽을거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21-09-09 21:00   좋아요 3 | URL
선캄브리아기부터 있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21-09-09 2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9-09 2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 2021-09-09 21: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쇼님! 三님 오늘 페이퍼에 출연 안하시니 허전,,,,, ㅎㅎㅎㅎㅎ

syo 2021-09-09 21:14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ㅋㅋㅋ 앞으로 그 꼴 지겹도록 보실 판인데요 뭐 ㅎㅎ

붕붕툐툐 2021-09-09 23: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왠지 모르게 읽고 싶은 책이 많아서 담아갑니다! 줌파 라히리 오랜만에 보니 반갑네용!^^

scott 2021-09-10 00:54   좋아요 2 | URL
툐툐님 줌파+ 전혜린도 추천 합니돵!ㅎㅎㅎ

붕붕툐툐 2021-09-10 08:03   좋아요 2 | URL
전혜린 메모메모
오! 제가 읽은 작품도 꽤 많이 번역하셨네요! 심지어 이 분 책을 읽은 듯도 합니다! 전혜린님 번역도 읽어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syo 2021-09-10 21:22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 알라딘의 진짜 AI scott님......

청아 2021-09-10 0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살인자의 건강법>재밌게 읽었어요ㅋㅋㅋ리뷰 고대하겠습니다😊

syo 2021-09-10 21:23   좋아요 1 | URL
앗 잠들기 전 시간대에 배치했더니 몇 쪽 읽다가 자고 몇 쪽 더 읽다가 자고 이래서 집어던지려고 했더니 안 되겠다 ㅋㅋㅋㅋㅋ

행복한책읽기 2021-09-10 00: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다 싶더니 책이 한가득.
웬일로 접근하고픈 책도 수두룩.
하여 주섬주섬 보관함에 쏘옥쏙. ^^

syo 2021-09-10 21:24   좋아요 2 | URL
오 라인마다 글자 수 맞추신 건가요 ㅎㅎㅎㅎㅎ

레삭매냐 2021-09-10 1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관자>는 제나라의 환공을 보좌한
그 관이오가 맞는지 궁금하네요.

그렇게혜윰 2021-09-10 14:12   좋아요 1 | URL
맞지 않을까요? 우리가 흔히 관중으로 알고 있는.

syo 2021-09-10 21:24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바로 그 관이오관중관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