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선斜線
1
은행이 익어가고 밤은 제법 쌀쌀하다. 약간 가을이고 가을 syo가 조금씩 오고 있다. 가을은 늘 책을 많이 읽는 계절이었다. 왠지 그냥 그랬다. 산책길도 커피도 가을에 더 맛있고, 하늘도 연인도 가을에 더욱 예쁜 법. 들여다보고 만질 것들이 잔뜩 있는 가을, 나의 가을. 아름다운 문장을 만나면 여름보다 겨울보다 조금은 더 오래 머물게 되는 아름답고 책 읽기 좋은 나의 가을. 사람은 겨울에 나이를 먹지만 읽고 쓰는 syo의 성장판은 항상 가을에 열리지.
1℃ 식어갈 때마다 1°씩 빗나가는 사람이 되는 옹골찬 가을이기를.
초보적인 배움은 무언가를 모방하는 것에서 시작하지만, 진정한 배움은 모방을 넘어서, 나와 전혀 닮지 않은 그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할 때 나 자신에게서 저절로 발생하기 때문인가. 나는 한 번도 인력거(친한 친구의 이름이다.)를 따라 하고 싶은 적이 없었다. 나는 그 점이 의아했다. 나는 늘 누군가를 어느 정도 따라 하고 싶어 하는데 말이다. 인력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녀에게서 많은 걸 배웠는데, 친구에게서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친구와 비슷해진다는 뜻이 아니라, 친구와 나 사이의 빈 공간에서 나의 것도 친구의 것도 아닌 새로운 무언가가 발생하고 우리의 영혼이 그 빈 공간에서 무언가를 먹고 잡초처럼 쉭쉭, 자라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결국 친구인 자들은 빈 공간에서 무언가를 배운다.
_ 문보영, 『일기시대』
나의 목소리가 매일
대기에 가까워진다.
내 입술은
내 목소리 바깥의 것들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아, 하고 입술이 동그래질 때
어, 하는 신음 소리와 함께
_ 하재연, <인어 이야기 2> 부분
따라오는 그림자 같은 것은 전혀 무섭지 않았다. 완만한 고개에 올라서자 멀리 떨어진 곳에 가로등이 보였다. 세 개의 가로등이 또 다른 모퉁이를 향해 점점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로 내려갔다. 불빛의 조그만 언저리 바깥은 대부분 어둠에 잠겨서, 공중에 떠 있는 길을 둥실둥실 가는 듯했다. 귀신일까요, 우리는, 귀신일지도 모르죠, 이 밤에, 또 다른 귀신을 만나고자 하는 귀신, 하고 말을 나누며 탁하게 번진 달의 밑을 걸었다.
어둠에 잠겼다가 불빛에 드러났다가 하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은교 씨.
하고 무재 씨가 말했다.
노래할까요.
_ 황정은, 『백의 그림자』
2
이탈리아에서는 여성 해방 운동이 좌파 및 학생 운동과는 다른 고유한 자율성을 구축했다. 그러면서 좌파와 학생 운동 진영에서도 분명 논의하고 있던 문제, 즉 사회 차원에서 어떻게 투쟁을 조직할지를 두고서는 그들과 충돌했다. 좌파가 제안하는 사회 투쟁은 공장 투쟁의 기계적 확장과 투영에 그치고, 이 투쟁을 이끄는 중심인물은 여전히 남성 노동자였다. 여성 해방 운동은 다른 무엇보다도 가정을 사회적 차원으로 간주하며, 여성을 사회 전복의 중심인물로 본다. 그리하여 여성들은 스스로를 자신이 놓인 정치적 틀의 모순점으로 상정하고, 정치 투쟁과 혁명 조직을 보는 전체 관점의 문제를 다시 열어젖힌다.
_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페미니즘의 투쟁』, 1. 「여성과 공동체 전복」 이탈리아판 서문 (24-25)
이 꼭지의 요지는, 가정이 사회로부터 분리/고립되어 있거나 혹은 열위적/종속적 구조물이라는 구도(이 구도에서 여성 해방은 ‘가정’으로부터 탈출하여 ‘사회’로 진입하는 개별 여성 단위에서 이루어지는데 그친다)를 거부하고, ‘가정’ 자체를 사회적 차원으로 해석하겠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가정에 사회적 의미를 새로이 부여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가정이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었음에도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호도되어 온 사회적 특성의 존재를 드러내겠다는 선언이다. 그렇다면 그 특성, 가정은 사회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가정으로부터 박탈하고 독점한 그 잊힌 차원의 좌표축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무엇이 사회를 사회로 만드는가. 그 힌트는 앞쪽 문단에 제시되어 있다.
자본주의에서 가족이 소비의 중심이자 숨은 노동력 예비군인 건 맞지만, 우리는 가족이 그에 앞서 생산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맑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 가족이 자본주의를 위해 생산하지 않고 가족이 사회적 생산의 일부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여성은 사회적으로 영향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집 안의 여성은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없다고 가정해, 이 여성들을 생산자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게 차라리 더 낫겠다. 하지만 만약 당신의 생각이 자본주의에 꼭 필요하다면, 생산 거부, 즉 노동 거부는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핵심 수단이 될 수 있다.
_ 같은 책, (23)
생산. 사회는 생산하는 곳이다. 정확히 말하면 사회는 ‘사회적으로 생산’하는 곳이다. 그래서 첫 번째 질문, 사회적으로 생산하는 곳이 사회라는 이 순환적 정의 속에 숨어 있는 것은 무엇일까. 또한, 가정에서의 노동 거부가 곧 ‘사회적 생산’의 거부로 이어진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질문, 그러니까, 어떤 생산의 중단이 끼치는 사회적 영향력을 측정하면 그 생산이 ‘사회적 생산’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는 뉘앙스에서 두 번째 질문이 생겨난다. ‘사회적 생산’을 판단하는 방법은 저런 귀류법歸謬法과 유사한 방식(없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뿐인가? 이것은 여러 판단 방법 중 하나에 그치는가? 그리고 이와 연결되어 나타나는 세 번째 질문, 만약 ‘사회적 생산’을 판단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라면, 가정 내의 여성의 생산적 노동이 사회적 노동인지를 판단할 때 다른 어떤 방법이 아닌 귀류법적 방식을 채택할 수밖에 없는 어떤 메타적 억압이 존재하는가?
이 세 질문을 염두에 두고, 두 번째 꼭지 「여성과 공동체 전복」을 읽는다.
3
三의 첫 소개팅은 미래의 어느 맥주맛을 위한 한 꼬집 농담으로 마무리된 듯하다.
"길게 늘어진 숲속의 산꿩 꼬리 기나긴 꼬리…… 정말이야, 밤이 깊으면 시간이 안 가. 죽죽 늘어져. 그러면 내가 살아온 날도 떠오르고 날 떠난 사람도 떠오르고. 긴긴밤을 그리며 나 홀로 뒤척일까…… 슌짱, 인생은 고독한 거야. 이만큼 살았는데도 어째서 이렇게 밤마다 외로울까?"
그날 밤 나는 독립한 따님이 쓰던 이층 작은방에 누워 잠을 청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치사짱의 쓸쓸한 모습이 나의 미래 같기도 하고, 모두의 인생 같기도 했다. 인간은 저마다 긴긴밤을 뒤척이며 홀로 걷고 있구나. 그런, 슬픈 동물이구나.
_ 정수윤, 『날마다 고독한 날』
"사람이 진짜 아는 건 자기가 길들인 것뿐이야. 이제 사람들은 아무것도 알 시간이 없어. 가게에서 다 만들어진 물건을 사거든. 하지만 친구를 파는 가게는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친구가 없지. 친구를 원한다면, 나를 길들여줘!"
"어떻게 하면 되는데?" 어린 왕자가 물었다.
"참을성이 아주 많아야 해. 먼저 풀밭에 그렇게, 나랑 조금 떨어져서 앉아. 나는 너를 슬쩍 쳐다볼 텐데 너는 아무 말도 하지 마. 말은 오해의 근원이야. 그 대신 매일 조금씩 더 가까이 앉는 거야."
_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 읽은 ---
347. 빵 고르듯 살고 싶다
임진아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
- 일독(1809xx)
- 재독(210910)
지금 이 마음. '오늘의 나'에게 딱 맞는 '오늘의 빵'을 찾는 마음. 쟁반에는 아직 아무것도 올려놓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풍요롭다. 이대로 아무것도 사지 않은 채 빵집을 나간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마치 죄인이 된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던 회의 시간의 내가 떠올랐다(물론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내 손으로 고를 수 없고 새롭게 시작할 수도 없는 인생 같았는데 그 순간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나답다고 느껴진다.
'당연히 이쪽이 맞아.'
아직까지 빈 쟁반을 든 처지이면서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이 되었든 내 삶의 온갖 선택 사항들도 이런 마음으로 고를 수는 없을까?
'아직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쟁반을 든 나'라는 인물로 한 발 한 발 나긋하고 점잖고 구수한 당당함을 지니고 싶어졌다.
물론 다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에,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자리로 돌아가야 하지만, 오늘 하루쯤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의 대화 정도는 '어차피 안 고를 빵'이라고 여겨도 되지 않을까.
어떤 빵집에서는 빈 쟁반인 순간이 오히려 반짝이니까.
_ 임진아, 『빵 고르듯 살고 싶다』
일독 때는 임진아 선생님의 문장에 굉장히 반했었는데, 지금 다시 읽으니까 그때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조막조막 귀엽긴 한데, 내가 그렇게 환장하며 좋아했었다고? 흐음…….
커피를 내리고, 빵을 고르고, 이런 소소하고 일상적인 활동으로 스스로를 톡톡 두드려보면서 이 순간의 내가, 오늘의 내가, 이달, 올해의 내가 무엇을 바라며 어디에 서 있는지를 점검하는 일. 계속 자기를 들여다보는 사람이 좋다. 그런 사람을 닮고 싶다.
348. 붉은 칼
정보라 지음 / 아작 / 2019
실은 표지에 확 끌려서 읽었다.
그래서 그녀는 붉은 비단 칼집 안에 숨겨진 칼날을 소년에게 보여주었다.
소년도 제국인들이 그러하듯 총은 알았으되 칼은 알지 못했다. 길고 가느다란 칼날이 배 밑바닥의 어스름한 불빛에 빛나자 소년은 넋이 나간 듯 매혹되어 손가락으로 만지려 했다. 그녀는 소년이 다칠까 봐 깜짝 놀라서 내민 손을 얼른 붙잡았다.
그것이 처음이었다. 소년의 손은 단단하고 거칠었으며, 따뜻했다.
소년의 입술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어둡고 차가운 배 밑바닥에서, 소년은 그녀가 이끄는 대로 붉은 비단 칼집에 감싸인 칼 곁에 누웠다. 소년은 그녀의 상처와 흉터와 흔적들을 모두 알고 있었으므로 그녀가 소년을 향해 몸을 열었을 때 소년은 몇 번이나 그녀에게 괜찮은지, 정말로 괜찮은지, 진심으로 원하는지 되풀이해서 물었다. 그때마다 그녀는 웃으며 그렇다고, 괜찮다고, 원한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소녀는 소년을 뜨겁게 껴안았다. 소년은 격렬하고 절박했고 그녀를 받아들이는 행위가 마치 쾌락이 아니라 고통인 것처럼 이를 악물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녀가 소년에게 괜찮은지 물었고 소년은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소년은 우주선에서 내리자마자 죽었다.
_ 정보라, 『붉은 칼』
요런 대목이 괜찮았다. 뜨거운 순간조차 맺음이 차가운 문장. 소설의 대부분은 전쟁 및 전투 신인데, 그보다는 사랑하고 주장하는 부분이 읽기 좋았다. 얼개는 신박함에 무릎을 탁 칠 정도는 아니었다.
349. 호모 비아토르의 독서노트
이석연 지음 / 와이즈베리 / 2015
독서는 모험과 낭만이라는 꿈을 향해 성실성과 결단력으로 인간 정신의 전역을 활보하고 측량하는 영혼의 고고학이자,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찾아 떠나는 내면의 여행입니다. 우리 시대의 석학 이어령 선생은 “독서는 씨뿌리기이며, 변화이며, 행동”이라고 했습니다. 한 권의 책을 읽은 사람과 백 권의 책을 읽은 사람의 인생이 같을 수가 없습니다. 아니, 같아서도 안 됩니다. 모험과 도전, 꿈과 낭만과 용기를 찾는 정신은 내면의 여행인 독서와 온몸으로 떠나는 독서인 여행으로부터 나옵니다.
_ 이석연, 『호모 비아토르의 독서노트』
나도 나만의 독서노트를 만드는 일에 착수했던 적이 있긴 하다. 왜 포기했더라. 그전에, 그걸 왜 만들기로 했더라.
독서에 대한 믿음이 저렇게 확고한 사람들은 멋있다. 하지만 그저 그런 마음만 가지고 어느 수준 이상의 책이 써지는 것은 아닌 듯. 독서에 대한 믿음에 더해 읽고 쓰기까지 잘하는 사람은 부럽다. “내면의 여행인 독서와 온몸으로 떠나는 독서인 여행”이라는 말은 내게 이석연 선생님이 멋있음을 넘어 부러움의 겨드랑이를 살짝살짝 건드리는 사람임을 알려주는 표현이다.
--- 읽는 ---
소오강호 3 / 김용
이까짓, 집 / 써니사이드업
냄비는 둥둥 / 김승희
페미니즘의 투쟁 /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일기 시대 / 문보영
냉장고를 여니 양자역학이 나왔다 / 박재용
진보의 상상력 / 김병권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 마리암 마지디
책Chaeg 2021.7.8. / (주)책(월간지) 편집부
Now Write 장르 글쓰기 1 : SF 판타지 공포 / 낸시 크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