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할배는 이미 모든 것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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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읽고 쓰는 일이 퍽 권태롭다. 눅눅해진 호밀빵 같다. 손이 잘 가지 않고 억지로 입에 구겨 넣으면 목이 턱턱 막히는 읽기. 베어 물 때마다 가루는 흩날리고 테이블은 어떻게 해도 깨끗해지지 않는 문장. 답지 않게 하루 한 권 읽는 데에도 꽤 많은 양의 아등바등이 필요한 중이고 한 주간 글을 쓰지 않았다.
2
별일은 없고, 그저 가을 오는 소리, 들리지 않는 그 소리가 한창 시끄럽다. 하늘은 매일 새로 그리는 그림 같다. 계절감이 난만하고 구름은 두텁지만 밝다.
3
지난 목요일에는 화이자 백신을 맞았는데 아무래도 부작용이 있는 것 같다. 며칠째 극심한 살찜을 앓고 있다. 그 전 주, 그러니까 명절 연휴 직전의 체중계와 이번 주의 체중계는 지나치게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입도 없으면서 한 LED로 두말을 하다니. 앉아 있을 때 배가 튀어나오는 일이야 오래 묵은 비극이지만, 그래도 서 있을 때는 어떻게든 밀어 넣을 수가 있었다. 완전히 감추어지지는 않아도 그 입체감을 평평한 아스팔트 위의 자기 주장 약한 과속방지턱 수준으로 깎을 수는 있었다. 그러던 것이, 백신 접종을 전후로 하여 그 귀엽고 애처로운 노력마저 부질없어진 상황. 논리적 추론과 인과적 사유가 아주 몸에 배어 있는 공대생 출신의 날카로운 뇌세포가 이 모든 악의 원흉이 백신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 말고는 다른 게 있을 수가 없지, 아무렴!
4
마르크스는 『자본』의 본문을 이런 첫 문장으로 연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부는 하나의 ‘거대한 상품 집적’으로 나타나고, 하나하나의 상품은 이러한 부의 기본형태로 나타난다.
_ 카를 마르크스 지음, 강신준 옮김, 『자본 I-1』
모든 마르크스 입문서나 개론서는 저 문장을 쎄게 다룬다. 왜 ‘자본’이나 ‘돈’이 아니라 ‘상품’에서 분석을 시작했는지, 진짜로 부의 형상이 ‘상품의 집적’으로 나타나는지 아닌지 등등을 경제적 · 사회문화적 논법을 동원해서 설명하곤 한다. 그런가 보다 했고 중요한가 보다 했다. 비문학 고전을 읽는 일은 대체로 그렇게 진행된다. 그런가 보다, 중요한가 보다.
토요일, 근 10년만에 코스트코에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syo는 저 문장이 경제학적 문장이 아니라 심리학, 심지어 정신분석학적 문장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돌아왔다. 그곳은 그야말로 엄청난 ‘상품의 집적’이었다. 14만원 단위로 묶어 파는 소고기 한 더미, 3L의 술이 들어 있는 유리병의 피라미드, 산처럼 쌓여 있는 호밀빵, 한없이 무한에 가까운 감자칩……. 그 어마어마한 상품의 벽에 둘러싸인 syo는 저 많은 것들을 살 수 있는, 14만원짜리 소고기를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카트에 담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저도 모르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곳에서 나를 둘러치고 있는 것들이 상품이 아니라 돈다발이었다면 아마도 나는 그냥 그 돈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부자가 되어서 돈을 가지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눈앞에 있는 그것들을 가지고 싶다고. 하지만 나를 둘러싼 것들이 돈이 아니라 상품이어서, 나는 바로 그것들을 가지고 싶은 게 아니라 그것들을 가질 수 있는 부를, 그러니까 그것들을 가질 수 있음을 가지고 싶었다.
견물하면 생심하는 모양이다. 견하는 물이 커지면 생하는 심도 비례하여 커진다. 누군가에게 물욕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방법으로, 양쪽에 무한한 종류의 상품이 무한에 가까운 양으로 쌓여 있는 복도를 걷게 만드는 것이 괜찮겠다. 물론 교보문고나 대학 도서관의 거대한 서가 사이를 거닐면서, 이미 나는 나에 대해 어느 정도 짐작하는 바가 있었다…….
--- 읽은 ---
369. 약국 안 책방
박훌륭 지음 / 인디고(글담) / 2021
세상엔 수많은 부탁과 거절이 상충한다. 하루에도 수없이 거절을 당하는 사람도 많을 텐데, 그 사람은 아마 엄청난 자존감 하락에 시달릴 거라 예상한다. 모르긴 해도 하고 있는 일이나 더 크게는 삶에 대한 의욕마저 없을지도 모른다.
모두들 거절당하는 데 익숙해지면서 한 가지를 잊고 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나 자신을 거절하고 있다는 거다. 특히 내 욕구,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거절한다. 난 다른 이에게도 거절당하는데 내 자신까지 거절해야 할까? 우리 삶의 목표는 무엇일까? 가족의 행복, 중요하다. 인류의 평화,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내 자신의 행복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_ 박훌륭, 『약국 안 책방』
한번 들으면 도저히 까먹을 수 없는 이름의 소유자 박훌륭 선생님을 처음 발견한 것은 전작이자 선생님의 첫 번째 책, 『이름들』에서였다. 선생님은 공대생이 되어서 약사가 되더니 책방 주인이 되었다. 기이한 삶이다. 기이하지만 탐나는 삶이다. 심지어 글도 좋았다. 한국에서 제일가는 공대를 나온 공대생이 약사이면서 책방 주인인데 글도 잘 썼다. 욕이 나왔다. 까야지. 『이름들』은 좋으니까 못 까겠고, 다음 책 나오면 어떻게든 까야지, 하는 삐뚜름한 마음을 먹고 기다렸는데, 나왔다. 『약국 안 책방』이. 가만두지 않겠다- 하고 덤벼들었다. 그리고 좀 애매해졌다.
사실 syo가 그렸던 건, 『약국 안 책방』도 『이름들』만큼이나 훌륭해서 아, 역시 박훌륭 선생님, 졌다 졌어, 훌륭하게 져버렸어, 이러면서 함박웃음과 함께 마무리되는 그림이었다.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호기로울 수 있었던 것이다. 말릴 사람이 두 명 이상일 때만(왼팔 오른팔을 잡혀줘야 하므로) 말리지 마, 이거 놔 봐,를 시전할 수 있기 때문에 안심하고 맘껏 호기로워지는 사람처럼, syo가 그랬던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 『약국 안 책방』이 『이름들』만큼 괜찮지 않았다. 완전히 망한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뭐랄까, 말릴 사람이 딱 한 명 있는데 걔는 너무 비실거리고 고분고분해서 내가 말리지 마- 하면 어 그래 그럴게 하면서 바로 말림을 포기할 것만 같아서 도리어 세게 굴지 못하겠는 사람이 된 기분이랄까…….
370. 나를 살리는 철학
알베르트 키츨러 지음 / 최지수 옮김 / 클레이하우스 / 2021
이런 식이다.
마음에는 두 가지 모습이 있답니다. 일상에서 최선을 다해 삶에 대처하려는 마음과, 그런 마음을 지켜보면서 돕는 마음이죠. 철학자들이 돕는 마음이 바로 후자입니다. 일상의 문제에서 한 발짝 떨어져 완전히 분리된 관점으로 바라보는 거예요. 좋은 치료법과 마찬가지로 좋은 철학은 당장의 증상을 완화하는 치료에만 매달리지 않아요. 원인과 뿌리를 찾아 제거하고자 합니다. 그 뿌리가 깊다면 깊이 파내야 하고요.
삶의 기쁨을 다시 찾을 수 있다고 확신을 가지세요. 인내하고 꾸준히 연습하고 올바른 생각을 하게 되면, 내게 남은 다른 선택지가 있음을 알게 되고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도 깨닫게 될 겁니다.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사는 사람은 없어요. 누구나 자신에게 던져진 운명적인 조건들을 받아들여야 하죠.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날이 있더라도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그 시간도 결국 지나갈 겁니다. 그런 순간에도 인내심을 가지세요.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처럼 시간이 되면 오고가는 기분이라고 생각하세요.
_ 알베르트 키츨러, 『나를 살리는 철학』
여러분께 괜찮은 책이 될지 아닐지는 요 샘플 한번 발라 보고 판단하시기를.
출제범위는 고대 그리스 · 로마 시대의 철학자들까지다. 사실 그때까지의 철학자들이 마음 치료에 쓰기 좋다. 특히 스토아학파 사람들은 그냥 신자유주의 시대에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즉효로 먹힐 만한 말들만 왕창 쌓아놓고 건너간 사람들이니까. 스토아학파의 철학만으로 멘탈 멘토링하는 책도 꽤 많다. 개인적으로는 그쪽이 좀 더 든든하긴 했다.
371. 스물넷, 약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주연 지음 / 미래북 / 2021
스물넷에 약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인가?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스물넷이면 무엇이든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보면 제목을 붙인 이가 나이라는 것을 대하는 태도가 드러난다. 예를 들어, ‘스물, 약사가 되기로 결심했다’라는 제목이 달렸다면, 그 나이에 그런 결심을 하는 것은 하나도 특별할 것이 없기 때문에, 어 그랬나 보구나- 하고 넘어가거나, 그게 뭐 별일이라고 제목에까지 달아놨지- 하고 갸웃하거나 하겠지. 제목이라는 것은 그냥 뽑는 것이 아니어서, 평생 쌀밥 먹는 사람은 ‘어제도 쌀밥을 먹었습니다’하는 제목을 달지 않는다. 그런 제목은 하루에 고작 한 끼를, 그것도 라면으로 겨우 해결하며 힘든 삶을 살던 사람이 어느덧 평범한 삶을 영위하게 된 이야기랄지, 금식과 미음을 오가며 몇 년 투병을 하던 사람이 완쾌하고 드디어 쌀밥을 먹기 시작하면서 그 평범함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이야기랄지, 뭐 그런 이야기에 달릴 만한 제목이다. 그러니까 이야기가 평범하면 제목이 특별하고, 제목이 평범하면 그 제목이 실은 평범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려주는 특별한 이야기가 들어있고, 뭐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제목을 뽑은 이는 스물넷에 약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고 생각하는 듯한데, 이제 마흔을 코앞에 둔 하릴없는 백수의 꼬이고 꼬인 마음에는 제목 자체가 그다지 곱지 않다. 서른일곱은 어쩌라고.
제목 놓고 잡설이 길었는데, 책 자체에서는 그다지 특별함을 찾지 못했다. 수없이 많은 유학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제목에서 벌써 가재눈을 떠서 그런가, 사람들이 ‘동기 부여’라고 부르기를 좋아하는 그 노오오오오오력 뽐뿌가 생기지도 않았다.
372. 미래를 위한 새로운 생각
마야 괴펠 지음 / 김희상 옮김 / 나무생각 / 2021
프랭크 보먼과 윌리엄 앤더스와 제임스 러벨은 달을 촬영하기 위해 우주로 나갔다가 지구 사진을 가지고 귀환했습니다. 나중에 ‘나사NASA’가 ‘지구돋이Earthrise’라는 시적인 제목을 붙인 이 사진은 인류가 촬영한 가장 중요한 사진 작품 가운데 하나일 뿐만 아니라, 지금껏 촬영된 환경 사진들 중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자랑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사진은 우리의 환경 전체를 담은 유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별 외에 우리는 다른 환경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사진은 근본적으로 인류가 이미 500년 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을 다시 확인해주었을 뿐입니다. 지구가 편평하지 않고 둥글다는 것은 적어도 최초의 세계 일주 이후 누구나 알았던 사실이지요. 또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점, 이로써 인간이 만물의 중심일 수 없다는 깨달음 역시 이미 오래전부터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사진 덕분에 지구의 유한함과 특이성은 손에 잡힐 것처럼 분명해졌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경험은 이런 커다란 맥락을 보여줄 수 없으니까요.
인간이 어떤 사안을 두고 그리는 그림은 반드시 그 사안과 들어맞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림은 인간이 어떤 관점으로 사안을 보는지 알려줄 뿐입니다. 이런 차이는 결코 사소하다고 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그림의 간극은 매우 커서 오늘날 우리가 갈등하는 모든 문제를 낳기 때문이지요.
_ 마야 괴펠, 『미래를 위한 새로운 생각』
지구가 부서져 가고 있음을 주장하는 이들과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의 싸움은 어떻게 되는 중일까. 목소리는 전자가 큰데 권력은 후자가 커서 도무지 결착이 나지 않는 것일까? 이제는 더함도 덜함도 없이 딱 이만큼만 쓰고 버리고 내뿜으며 나아가더라도 망할 수밖에 없는 멸망의 궤도에 지구는 이미 들어선 것일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전에, 무엇을 하려는 의지가 내게 있을까? 나는 오늘도 고기를 먹고, 플라스틱과 비닐을 이용하고, 물 쓰는 데 위기감이 없고, 여름에 에어컨을 줄여도 그건 지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통장 잔고를 위해서 그러는 건데……. 하지만 읽는 책이 늘어날수록 점점 마음도 따라 불편해지는 것을 보면 내 양심이 남산위의저소나무처럼 철갑을 두른 것만은 아닌 것도 같고……. 하여튼 계속 읽어볼 일이다.
373. 수학을 배워서 어디에 써먹지?
루돌프 타슈너 지음 / 김지현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1
오늘날에도 스스로 공식을 세우고 전문적인 수학자나 수학 전공자처럼 공식을 활용해 보라는 시험 문제가 출제되기는 한다. 그러나 이는 학생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것을 바라는 어른들의 욕심이다. 음악이나 미술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수학적 재능을 가지지 않은 아이들은 이러한 문제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지식이 한정되어 있다. 공식을 자유자재로 변형시키는 연습도 좋지만 그보다는 공식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먼저다.
외국어와 문학에 대한 재능이 없다면 영어 시간에 엄청난 산문이나 시를 써낼 수는 없다. 하지만 글을 읽고 이해하며 줄리엣의 말에 젖어드는 경험을 하는 것은 가능하다.
모두에게 셰익스피어처럼 글을 쓰라고 요구하는 것은 잔인무도한 일이다. 반대로 영어 수업에서 오직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영어에만 초점을 맞추어, 어린 시절에 훌륭한 글을 접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_ 루돌프 타슈너, 『수학을 배워서 어디에 써먹지?』
선생님, 계산기가 있는데 수학을 배워서 도대체 어디에 써먹어요- 라는 질문은 만고불변 만국공통인 것 같다. 유독 수학만 그런 취급을 당하는 것은 수학 자체가 지닌 악독한 난이도 탓도 있겠지만, 수학이 중요하다는 것을 체감하기 위해서는 수학을 어느 정도 해야 하는데 거기까지 도달하는 것이 쉽지 않다 보니 일단 무조건 윽박질러서 끌고 가려는 교육의 탓이 있다. 그러나 사실 국민교육 체제에서 피교육자의 필요를 교육자(체제)의 필요보다 우선시하여 존재하는 과목은 없다. 피교육자가 얻는 것들은 일종의 외부효과에 불과하다. 따라서 어떤 과목이 내게 왜 필요하고 중요하냐는 질문은 공교육 체제 하에서 기본적인 모순과 맞닥뜨린다. 당신은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과목이 무엇인지를 결정할 권리를 박탈당하는 대신 공교육 체제에 들어설 입장권을 얻은 것이다.
그래서 수학을 왜 배워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은 더욱 의미가 없다. 많은 책들은 수학적/논리적 사고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수학을 추켜세우지만, 그런 데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은 이런 책을 읽을 시간에 수학책을 읽고 문제 풀이에 매달린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수학 공부가 중요한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그건, 수학 성적이 좋은 사람들이 가는 학과가 제공하는 직업이 더 높은 소득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수포자인가 아닌가가 문/이과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문과 계열의 과에 입학한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수학을 기반으로 하는 학문을 복수로 전공하지만, 그 반대의 일은 흥미와 성향의 영역에서 일어난다. 최소한 이 나라에서 수학을 배워서 어디에 써먹느냐 하면, 돈 버는 데 쓴다고 대답해도 무방한 것이다.
그렇지만 수학 공부에는 저자가 주장하는 장점들도 분명히 있다. 입시와 관련 없이 수학을 공부하고, 시간을 들여 방정식을 풀어가며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을 나는 많이 만나보았다. 일하면서 느끼는 건데, 학교 다닐 때 수학 좀 열심히 할 걸 그랬어- 하는 말은 이제 조금만 더 들으면 지겹겠다.
374. 미아로 산다는 것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
박노자 선생님 맘은 왜 늘 내 맘 같을까. 아니지, 내 맘은 왜 늘 선생님 맘 같을까. syo는 늘 그것이 궁금했다. 사회, 정치 그런 거는 그냥 내가 선생님을 읽다가 저도 모르게 쫄래쫄래 따라간 거라고 생각하면 끝이지만, 하다하다 이제 이런 대목까지 쌤맘내맘 할 줄이야.
인간은 좀 특이한 동물입니다. 지능이 높은 만큼 뇌를 쉬게 해야 하죠. 그래서 인생에서 3분의 1은 수면 시간인 데다가,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은 어떤 '도취'의 체험입니다. 도취의 종류는 정말 다양합니다. '할렐루야'를 외치면서 눈물을 흘리는 방법도 있고, 자주 섹스하면서 오르가슴을 즐기는 방법도 있고, 대마초를 피우는 방법도 있습니다. 바흐나 스크랴빈의 음악을 들으면서 음악 감상의 삼매에 들어가는 방법도 있고요. 요즘 같으면 헬스장에서 운동하면서 일종의 오르가슴 같은 환희의 기분에 빠지는 사람들도 있겟죠. 정말 각양각색의 방법들이 있습니다. 그중에는 정신에 위험할 수 있는 방법도("할렐루야"), 심신에 모두 안 좋은 방법도(대마초, 주류), 몸에 좋은 방법도(헬스), 정신에 유익한 방법도(독서, 음악 감상), 심신에 모두 좋은 방법도(요가와 명상, 사랑하는 사람과의 성관계) 있습니다. 사회의 과제는 구성원이 어릴 때부터 나쁘지 않은 도취의 방법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예컨대 독서삼매의 유쾌함을 일찌감치 학교교육에서 보여준다든가, 사랑과 섹스가 마음과 몸에 얼마나 좋은지 일찌감치 성교육 과정에서 가르친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_ 박노자, 『미아로 산다는 것』
자, 도취의 체험으로서 최고의 자리, ‘심신에 모두 좋은’ 것에 무엇이 있는지를 살펴보면…… 아, 선생님이시여.
375. 당신이라는 책, 너라는 세계
박진희 지음 / 앤의서재 / 2021
생각해보면 읽기라는 것이 대체로 그렇다. 각자에게는 각자의 읽기가 있고, 그래서 모든 책은 모두에게 저마다 다른 책이라는 말은 정론이기도 하고 멋있기도 해서 자주 입길에 오르지만, 막상 저마다의 책 읽은 글을 읽어보면 실제 차이는 그리 크지 않게 느껴진다. 그것은 독창적 책읽기가 보통의 내공으로 도달할 수 있는 쉬운 경지가 아닌 탓도 있겠고, 자기가 읽은 것을 읽은 대로 쓰는 데에 필요한 공력이 막대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실은 다른 사람이 책 읽은 글을 우리가 읽는 행위 역시 ‘읽기’이기 때문에 그렇다. ‘모든 책은 모두에게 저마다 다른 책’이라는 말 만큼이나 인기 있고 폼나는 말이 있다. ‘모든 독해는 일종의 오독이다.’ 그러니까 어떤 ‘책 읽은 책’이 같은 장르의 다른 책들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을 때, 이 책이 독창적인 독해를 제공한다기보다 평범한 독해에 독창적인 경험을 어설프게 접붙여서 독창성의 총량을 겨우 맞춘다는 느낌이 들 때, 우리는 세 개의 수문을 점검해봐야 하는 것이다. 저자의 독해, 저자의 글, 우리의 독해. 그러나 그 점검은 너무도 품이 많이 드는 데다 해 봤자 1, 2단계에서 벌써 걸려든다는 느낌만 얻기 십상이라, 그냥 대체로 아래와 같이 말하고 만다.
이 책은 무난하다. 알라딘에 이런 글 하루에도 몇 개씩 올라온다.
376. 책chaeg 2021. 9.
(주)책(월간지)편집부 지음 / (주)책(잡지) / 2021
--- 읽는 ---
세 개의 달 / 듀나 외
개념어 사전 / 남경태
의대생 공부법 / 박동호 외
60세부터 인생을 즐기기 위해 중요한 것 / 쇼콜라
어쨌든 미술은 재밌다 / 박혜성
투자의 본질 / 박세익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 요나스 요나손
생명과학 교과서는 살아 있다 / 유영제 외
별게 다 행복합니다 / 명로진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 이동진
백조와 박쥐 / 히가시노 게이고
루디크러스 / 에드워드 니더마이어
페미니즘의 투쟁 /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선의 언어 / 손민호
불공정사회 / 이진우
베드타운 / 하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