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봄선물로 뮤지컬 '레 미제라블'을 보게 되었다.

영화에서 본 감동보다 훨씬 더, 어김없이 또 눈물이 흘렀다.

쟈베르가 강물에 투신하는 장면의 연출이 특히 돋보였고 에포닌의 죽음도 안타까웠다.

정성화는 저녁 공연에 나온다 하여 다른 배우의 '쟝 발쟝'을 보았는데 처음엔 가사 전달이 잘 안 되는 느낌이었지만

곧 익숙해졌다. 마지막에 코제트와 마리우스가 포옹하고 있는 뒤에서 쟝 발쟝이 자신이 누구인가 울음 울며

혼자 노래 부르던 중 유난히 귀에 들어온 대사

 

"누군가를 사랑하면 신의 얼굴이 보이지."

 

쟝 발쟝은 미리엘 주교의 한없는 사랑으로 새 삶을 살았고 새 사람이 되어 사랑을 베풀었다.

꼬제트를 키우며 그 사랑에 보답하고 자신 또한 신의 얼굴을 보았을까.

꼬제트와 마리우스도 서로 사랑하며 신의 얼굴을 보겠지.

신은 자애롭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 질투와 원망도 서슴치 않는 존재가 아닐까, 새삼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무자비한 듯 깊이를 모를 그 얼굴을 보며 한없이 '나'가 작아지고 '나'의 연약함을 통감하고 복종할 수밖에 없는,

더 아낌없이 사랑하고 더 '나'를 내어주라고 이끄는, '나'가 거역할 수 없는 어떤 무한의 힘과 조롱같은 숙명의 입김.

변신을 거듭하는 신의 얼굴은 어떤 굴욕에도 흔들리지 말고 그저 믿고 사랑하라고 '나'를 내려다 보고 있는 게 아닐까.

 

 

 

읽고 있는 책에 이런 대목이 있다.

 

"무한이 있습니다. 그것은 저기에 있습니다. 만약 무한에게 자아가 없다면, 그 자아가 무한의 한계일 것입니다.

그럴 경우 그것은 무한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있습니다.

따라서 무한에게는 자아 하나가 있습니다. 무한에게 있는 그 자아, 그것이 신입니다."

 

- <레 미제라블> 펭귄클래식, 77p

 

 

죽어가는, 예전의 혁명의회 의원이 그를 방문한 미리엘 주교에게 하는 말이다.

여러번 읽어도 나로선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무한에게 있는 자아, 그것이 신이라니.. 신의 한계는 무한한 것이란 말일까.

 

혁명전사와 주교의 만남, 이 대목에서 나는 거룩한 분위기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순에 조국의 부름을 받고 혁명에 가담하여 악습에 맞서 싸운 그 사람은 이제 여든여섯의

병든 몸이 되어 지난 시간 받았던 박해, 조롱, 음해, 모욕, 저주를 떠올리며 무지하고 가엾은

군중이 자신의 얼굴을 저주 받은 얼굴로 여김에도 그 누구도 증오하지 않는지라,

증오에서 비롯된 자신의 고립을 받아들인다고 고백한다.

왕당파에 기울어졌었던 미리엘 주교가 무릎을 꿇고, 혁명의회 의원의 얼굴은 더욱 엄숙해지며

숨을 거둔다. "그 이후, 주교는 어린아이들과 고통받는 이들에게로 향한 자애로움과 사랑을

한층 더 증대시켰다.(79p)"

 

 

 

 

특히 돋보였던 장면,

쟝 발쟝의 손에서 풀려나 도망친 쟈베르 경감이 강물에 몸을 던지며 한 대사도 기억에 남는다.

"쟝 발쟝, 당신은 나를 살려주었지만 나를 죽인 것이라네."

영화에서도 나는 쟈베르 경감이 투신하던 장면이 인상 깊었는데 이번에도 그렇네.

뮤지컬 속 쟈베르 역을 맡은 배우는 마스크도 꽤 이국적이었다.

좋은 좌석에서 보게되어 배우들의 미세한 표정이 잘 보여서 더욱 좋았다. 게다가,

떼나르디에 부부의 익살맞은 연기와 우스꽝스러운 몸짓이 장중한 서사에 양념 같은 역할을 했다.

떼라르디에 부인 역에는 박준면이 그 퉁퉁한 몸과 걸쭉한 목소리로 제대로 웃겨 주었다.

 

 

 

 

소향아트센터 3시, 2013, 3, 1

 

 

같이 본 동생의 친구는 남편이 프랑스 사람이다. 오늘 처음 만날 기회가 되었는데 한국말을 아주 잘해서

우리의 모든 농담과 경상도 사투리까지 다 너무나 잘 알아듣고 빵빵 터졌다. 쟝 발쟝과 레 미제라블, 모두 원어로

말해보라고 하니 겸연쩍어 하면서 발음하는데 꺅~ ^^  본국에서 여러번 본 뮤지컬이지만 한국어로 하는 걸 봐도

또 눈물이 나더라고 말했다.  함께 식사하면서도 동행한 사람들에게 자상하게 웃어주고 배려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돌아오는 길에 프랑스 유학 가고 싶다고 동생에게 말하니, 아이구 유학까지씩이나.. 그냥 관광으로 만족하지, 이런다.ㅜㅜ

나이가 너무 많은가. ㅎㅎ 왜 그래 진짜.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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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3-02 0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대한 작품은 작품의 내용도 그렇지만 저렇게 오랫동안 여운을 남길만한 문장 혹은 대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다른 보통의 작품들과 구별되는 것 같아요.
'누군가를 사랑하면 신의 얼굴이 보인다' 그냥 지니치지 못하고 읽는 사람의 마음을 잠시 붙잡아두는 문장 맞지요. 모든 사랑이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러기엔 너무나 자기 중심적이고 계산적이고 쉽게 포기하는, 그런 사랑들 속에서 만나는 저런 문장은 다시 우리를, 나를 되돌아보게 하지요.
전 이 뮤지컬을 좀 오래전에, 2-3년에 걸쳐 세번 보았는데, 볼때마다 울었어요. 지금도 노래를 들으면 뭉클해져요.

프레이야 2013-03-02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님, 영어뮤지컬을 보셨겠군요. 세번씩이나. 역시 대단한 공연은 그런가봐요. 님의 말씀에 아직도 받으셨던 감동이 전해져오네요. 동생친구가 뮤지컬 매니아라 좋은자리를 할인하여 잘 감상할 수 있었어요. 신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랑에대한 생각을 함께 나눠주셔서 고마워요. 늘 깊은 마음^^ 행복한 토요일 보내세요.

다크아이즈 2013-03-02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님 기어이 보셨군요. 당연히 보실 줄 알았지만 ㅋ
전 네 가족 다 보느라 돈이 없어 C석 3층에서 보느라 정성화 비롯 등장인물들이 아련한 안개로 다가오더라는 ㅠ.
숨소리,발소리,침 튀기는 모습, 땀내 나는 열연을 맛봐야 뮤지컬 봤다는 소리 할 만할텐데, 이건 뭐 잘 차려놓은 밥상 앞에서 허공에 숟가락질한 느낌이랄까요. 그래도 월매나 좋았으면 저도 페이퍼 올렸겠어요. ㅋ

프랑스 본토말로 정말이지 <장발장>,<레 미제라블> 한 번만만이라도 듣고 싶어요.
프레님, 꺅 하실 만 했겠어요.
부럽부럽^^*

프레이야 2013-03-02 20:12   좋아요 0 | URL
쟝 블쟈앙~~, 레 미제허블르~ 뭐 이런 식 ㅎㅎㅎ
유머러스하고 귀여웠어요.
뮤지컬은 비싸서 저도 포기하고 있었는데 동생 덕분에 완전 선물 받았지요.^^


blanca 2013-03-02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 부러워요. 원작도 영화도 뮤지컬도 못 봐서 입맛만 다시고 갑니다.^^

프레이야 2013-03-02 20:22   좋아요 0 | URL
입맛만 쩝 ㅎㅎㅎ 빵 터져요.
원작이 제일 잘 어울릴 듯한 아름다운 블랑카님^^
고즈넉한 토요일 저녁이에요^^

2013-03-03 0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03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3-03-03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성화, 남경주 주연 라카지 보고는 정성화 매력에 빠졌는데 레미제라블에도 나왔군요.
아 보고싶다, 보고싶다! ㅎ
쟈베르 경감. 이런 우직한 경찰도 필요하죠.

프레이야 2013-03-03 12:22   좋아요 0 | URL
세실님, 보고싶다ㅎㅎㅎ
쟈베르 경감의 투신 장면에서 저도 격해지더라구요.
남경주는 몇 번 공연에서 봤는데 정성화는 못 봤어요.
휴일날이라 2회를 하는데 저녁에는 그분이 나오고 저는 낮에 봐서 다른 배우가..

소나무집 2013-03-03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 나온 김에 프랑스로 유학도 가세요~~~ㅎㅎ

프레이야 2013-03-03 16:08   좋아요 0 | URL
보내주실래요?? ㅎㅎㅎ
정말 마구마구 그러고싶어요. 망상만 늘어가네요.ㅋ

드림모노로그 2013-03-06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미제라블, 그야말로 감동이었어요 ^^ 전 이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눈물이 흐르더라구요
교회를 안나간지 오래되서 더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ㅋㅋ ,
마음 속 깊은 심연을 건드리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ㅎㅎ
"누군가를 사랑하면 신의 얼굴이 보이지."
좋은 글귀 마음에 담아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프레이야 2013-03-07 11:20   좋아요 0 | URL
저도 교회는 잘 안 나가지만 늘 무언가가 그에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있어요.
그런 게 이런 작품을 보다가 또 확 다가오구요.
신을 섬기듯 사람을 섬겨야겠지요. 어려운 일이지만요^^
 

페이퍼의 제목은 김선우의 책에서 가져왔습니다. 이 말이 참 다정하게 들리지 뭐에요.

오늘은 3월의 첫날! 어김없이 새로운 마음, 이를테면 시작이라든가, 희망이라든가, 출발이라든가

뭐 그런 파릇한 말들이 떠올랐고 열심히 배우고 두루 씩씩해지자고 다짐도 해봅니다. 

어느 벗의 안부말처럼 몸과 마음의 먼지 툭툭 털고 일어나야 어울리는 3월입니다.

네가 잘 하는 분야고 쌓아놓은 내공이 있으니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친구의 말 한 마디,

글 한 줄로 위안 받고 힘을 얻는 나는 아직도 멀었습니다. 함민복 시인의 싯구처럼

중심을 잘 잡기 위해 몸을 좌우로 조금씩 흔들며 다리에 힘을 주는가 봅니다. 고질병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기대고 살아가는 내 마음이 나쁘지 않습니다. ^^

 

 

요즘 서재에 북호더(마중물님 페이퍼에서 알게 된 단어에요)를 스스로 기쁘게 질책하는 글들이 많지만

나도 그런 혐의에서 벗어나질 못하지요. 그래도 즐겁지 않나요. 즐거운 북호더를 마다할 이유는 없을 듯^^

지난 주에 가까운 알라딘 중고샵에 예정없이 가게 되어 또 10권을 건졌어요. 중고샵 나들이의 기쁨은

이런 뜻밖의 만남에 있는 것 같아요.  업어온 책들~

 

 

1.

시인 김선우가 오로빌에서 보낸 행복편지.

오로빌은 '새벽의 도시'라는 뜻으로 인도 남부 코르만젤 해안에 위치하고 있다.

모든 인간이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이상을 꿈꾸던 인도의 사상가 스리 오로빈도의

신념에 따라 1968년 첫 삽을 떴다. 전 세계 40여 개국 2천여 명이 모여 평화와 공존을

실험하고 있는 생태 공동체이자 영적 공동체이다.

 

3년 만의 인도였다.  밤 1시. 첸나이 공항에 내리는 순간 훅 끼쳐오는 남국의 열기와

특유의 인도 냄새. 배기가스와 각종 향신료와 향 냄새, 사람냄새 뿐 아니라 소와 개

같은 동물 냄새 등이 뒤섞여 만드는 묘한 인도 냄새가 제일 먼저 후각을 자극한다.

(첫, 내 마음의 지도 25p)

 

 

 

2

1950년 멕시코시티에서 태어난 라우라 에스키벨이 쓴 독특한 소재로 쓴 장편소설로선

처녀작. 1992년에는 작가 자신이 각색하고 남편 알폰소 아라우가 감독을 맡아 영화로

완성.  영화도 찾아봐야겠다.

 

1월 크리스마스파이

만드는 방법

양파는 아주 곱게 다진다. 양파를 다지면서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다면

자그마한 양파 조각을 머리 위에 얹는다. 양파를 다질 때 눈물이 나오면 우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게 그러니까, 한번 눈물이 나왔다 하면 양파를 다지는 동안

내내 울음을 멈출 수 없다는 게 영 안 좋다. (첫, 11p)

 

 

 

 

3.

민음사 전집에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완성 못한 걸 다시 불끈!

집에 사둔 민음사 책들 옆에 일단 두고 낭독녹음 도서로도 찜해둔다.

 

이 책에는 공포, 베짱이, 베로치카, 거울 등 10편의 단편이 수록돼있다.

 

어느 멋진 저녁, 이에 못지 않게 멋진 회계원 이반 드미트리치 체르뱌코프는

객석 두 번째 줄에 앉아서 오페라글라스로 '코로네빌의 종'을 보고 있었다.

(관리의 죽음, 첫문장, 7p)

 

 

 

 

 

 

 

4.

펭귄클래식에서 나온 '아서 코난 도일' 셜록 홈즈.

집에 있는 것 중 '주홍색 연구'는 빠져있어서 업어오고 나서도 잘 했다 싶다.

더구나 펭귄클래식 모음에도 일조하고.  현재 '레미제라블 5권'과 '이반 일리치의 죽음'

옆에다 일단 두고 흐뭇. 예전에 아서코난도일과 애거사크리스티에 빠졌던 기억도 나고^^

 

나는 1978년 런던 대학교에서 의학 공부를 마치고 네틀리로 가 계속해서

군의관이 되기 위한 과정을 밟았다. 그곳에서 학업을 마친 나는 정식으로 노섬벌랜드

화승총 제5연대에 군의관으로 배속되었다. 부대는 당시 인도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내가 합류하기도 전에 제2차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벌어졌다.(첫, 9p)

 

물론 여기서 '나'는 존 H. 왓슨이다.

 

 

 

5

무려 '위대한 개츠비'를 펭귄클래식으로.

게다가 피츠제랄드 문학의 심리적 초상인 자전적 에세이 <무너져 내리다>가

수록되어 있고, 20세기 미국문학의 대표작으로서의 '위대한 개츠비'를 조명하는

토니 태너의 서문을 길게 많은 분량 수록해두었다.

표지의 저 여인, 화려한 불빛만을 좇는 데이지.

아주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추억을 더듬어 즐독할 것 같다.

 

내가 지금보다 더 어리고 상처받기 쉬웠던 시절에 아버지가 충고를 해주신 적이 있는데

나는 그때 이래로 그 말씀을 마음 속에 되새겨 왔다. 아버지는 내게 말씀하셨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어질 때면, 네가 지닌 이점을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누리고

있지는 못하다는 걸 꼭 기억하려무나."  (첫, 77p)

 

 

 

6.

이 수기의 필자도 이 '수기' 자체도 물론 허구이다. 그렇지만 이런 수기의 필자와 같은

인물은, 우리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여러 조건을 고려한다면 얼마든지 이 세상에 존재

할 수 있을뿐더러, 오히려 존재하는 게 당연할 것이다. 나는 아주 가까운 과거의 시대에

속하는 성격 중의 하나를 보다 뚜렷이 뭇사람 앞에서 내세워보고 싶은 것이다.(하략)

- 표드르 도스토예프스키 (4p)

 

나는 병적인 인간이다...... 나는 심술궂은 인간이다. 나는 남의 호감을 사지 못하는

인간이다. 이것은 아무래도 간장이 나쁘기 때문인 것 같다. 하기는 나 자신의 병에

관해선 아무것도 아는 게 없을 뿐 아니라 내 몸의 어디가 나쁜지 그것조차 확실히는

모르고 있다. (첫, 5p)

 

 

 

 

그리고 화르륵~ 시집 4권

 

 

 

 

 

 

 

 

 

 

 

 

 

 

한하운, 보리피리                김용택, 섬진강                  김행숙, 이별의 능력          김소연, 눈물이라는 뼈

 

 

 

 

생명의 노래

 

 

지나간 것도 아름답다

이제 문둥이 삶도 아름답다

또 오히려 문드러짐도 아름답다

 

모두가

꽃같이 아름답고

......꽃같이 서러워라

 

한세상

한세월

살고 살면서

난 보람

아라리

꿈이라 하오리

 

 

- 한하운 [보리피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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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1 16: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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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1 2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크아이즈 2013-03-01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저 6권의 첫문장 중에는 <나는 병적인 인간이다> 이게 맘에 들고요,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 책 제목도 마구 첫문장으로 넣어 주고 싶을 만큼 맘에 들어요.
프레님께도, 여린 프레님께도 아픈 데 없느냐고 안부 여쭙니다.^^*

프레이야 2013-03-02 00:00   좋아요 0 | URL
팜므님, 저도 그 문장이 마음에 들었어요.
김선우의 저 책은 참 좋은 것 같아요. '사물들'도요.
어디 아픈 데요?? 저는저는 마음이 아픈데요, 이것도 엄살일까요? ^^
팜므언니는 아픈 데 없으신지요?

2013-03-02 15: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02 2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03 1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03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03 1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03 16: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3-03-07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저도 <어디 아픈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읽는 중인데...
왜 또 눈물 나려고 하지. 제가 요즘 눈물이 정말 많아졌어요. 40년동안 참았던 눈물인가봐요.
내담자 만나서 얘기듣다가 제가 먼저 울컥하고, 별 이상한데서 울컥하고, 공감되면 울컥하고, 통했다 싶으면 울컥하고. 아마 나 사추기인가봐, 언니...

프레이야 2013-03-07 11:18   좋아요 0 | URL
억눌린 게 많은 사람은 어느 순간 눈물이 잘 나온다고 들었어요.
제가 그렇거든요. 노래할 때라든가, 들을 때라든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다고 격하게 공감될 때라든가.
달여우님도 사추기, 나도 사추기 ㅎㅎ 잘 지나가자구요^^
 

유난히 볕이 따스한 하루였다. 봄, 봄, 봄이구나, 봄이 왔어!

시콘서트를 들으며 점자도서관으로 가는 길, 고가도로 가드레일 담벼락에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바짝 붙어서 뛰어내리지도

못하고 발을 떼지도 못하고 주춤대고 있었다. 그 겁먹은 눈동자를 좇다가 앞 차를 박을 뻔했다. 차가 밀려서 굼벵이 걸음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오늘 시콘서트에는 신용목 시인이 손님으로 나와 생일(탄생)과 관련한 시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프로그램을 들으며 가는 길은 언제나 행복하다. 포근포근하니 마음에 햇살 가득 들어온다.

청취자 사연을 읽다가 오늘 탄생한 어느 어린 생명을 두고 신용목 시인은 "지구의 주인이 바뀌었군요" 라고 말한다!!!

 

시콘서트에 손님으로 나온 적이 있던 박성우 시인의 '배꼽'. 생명이 움텄던 그 자리, 배꼽!

봉글봉글 새로운 시작과 기쁨이 피어날 봄맞이 선물 같은 시다. 밝게 가슴을 열고 봄을 맞이하자.

낭송하는 강성연의 목소리가 화사하다.

 

 

 

       배꼽

 

 

                         박성우


살구꽃자리에는 살구꽃비
자두꽃자리에는 자두꽃비
복사꽃자리에는 복사꽃비
아그배꽃자리에는 아그배꽃비 온다

분홍 하양 분홍 하양 하냥다짐 온다

살구꽃비는 살구배꼽
자두꽃비는 자두배꼽
복사꽃비는 복숭배꼽
아그배꽃비는 아기배꼽 달고 간다

아내랑 아기랑
배꼽마당에 나와 배꼽비 본다

꽃비 배꼽 본다

 

 

 

고 작은 고양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내려왔을까. 차들이 틈새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어떻게 잘 건너 갔을까.

로드킬,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ㅜㅜ  은행일을 잠시 보고 빵과 카페라떼, 귤과 감자를 사고 도서관으로 올라갔다.

팀장님과 효쩡샘에게 귤 하나씩 드리고ㅋㅋ

오늘 녹음한 분량은 '갈맷길 700리' 등 <부산이야기> 세 꼭지와 ARS 건강상식 '이명' 그리고 <여울물 소리> 완료.

 

 

 

 

 

 

 

 

 

 

2012년12월 21일 녹음시작, 총 24시간 소요

2013년 2월 27일 녹음완료

 

 

 

까무룩하게 잠이 들었다가 얼마나 잤는지 문득 깨었다.

고요한 가운데 어디선가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눈 감고 있을 때에는 바로 귓가에서 들려오다가 눈을 뜨면 멀찍이 물러가서 아주 작아졌다.

가만히 숨죽이고 그 소리를 들었다. 여울물 소리는 속삭이고 이야기하며 울고 흐느끼다 또는

외치고 깔깔대고 자지러졌다가 다시 어디선가는 나직하게 노래하면서 흐르고 또 흘러갔다.

                                                                                          

  - 여울물 소리, 끝 488p

 

 

봄이 되면 얼었던 여물물도 녹아서 흘러야하지. 이야기가 그러하듯.

실패한 혁명과 그것을 전하는 한 이야기꾼(전기수, 글쟁이, 소리꾼 등 뭐든 이야기꾼이지)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레 미제라블>을 떠올렸다.  그들의 혁명은 과정과 결과가 좀 다르긴 했지만 19세기 초반과 후반,

지구 다른 곳에서 혁명이 일어났던 시기. 요즘 집에서 읽고 있는 책 <레 미제라블 1>.

드디어 156쪽, 도형장에서 풀려나온 쟝 발쟝이 숭고한 인간 미리엘 주교와 만났다.

(고맙게도 동생이 봄선물로 뮤지컬을 보여주겠단다. 영화는 봤지만 뮤지컬로 다시 그 감동을!!!)

 

 

 그리하여, 자신을 위해,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도 암시하기 위해, 위로하고 고통을 덜어주는

가장 좋은 방법들을 찾는 일에만 골몰하였다. 그 착하고 희귀한 사제에게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위로해 주려고 노력해야 할 언제나 슬픈 대상이었다. (......)

비앵브뉘 예하는, 신비한 문제들을 캐내려 하거나 뒤흔들거나 그것들로 인하여 자신의 영혼이

혼란스러워지는 일 없이, 그것들을 밖에서 확인하는 데 그치고, 현묘한 것에 대한 엄숙한 존경심을

영혼에 간직한, 하나의 평면한 인간일 뿐이었다.  (97,98p)

 

 

 

 

다음주에 녹음 시작할 도서로는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찜해두었다.

강상중의 두번째 고민, 불안과 좌절을 넘어서는 생각의 힘.

 

 연초에 읽은 빅토르 프랑클의 책에 이어 나에게도 '이유!'가 될 만한 책이다.

 

하지만 아들이 거듭나고 '회심'을 이루었다고 생각한 바로 그 때, 아들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것, 언제까지고 건강하기를, 안녕" 이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

한국사회는 학력이나 자산, 소득이나 지위의 극단적인 격차와 함께 행복과 불행의 차가

역력하여 과거 어느 때보다 사회 안에 르상티망(원한)이 깊이 퍼져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사회에서는 살아가는 의미를 찾지 못해 번민하며 고민을 계속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혹은 비참하지는 않더라고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것에서 적극적인 의미를

발견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죽은 아들과

내가 합작한 기도의 말이다.  -  2012년 10월 저자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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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02-27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성우의 배꼽, 자두나무 정류장에 나온 시였던 듯...
강남몽 이후 황석영 소설을 읽고 싶은 생각이 안 들어요.ㅜ
강상중도 <고민하는 힘> 이후로 같은 생각이고요.^^

한 아이가 태어나면 지구의 주인이 바뀌는거군요.
봄꽃이 피어나는 것도 지구의 주인이 바뀌는 거고요.^^

프레이야 2013-02-27 22:54   좋아요 0 | URL
네, 언니^^ 자두나무정류장,에 있는 시 맞아요.
전라도 말이 구수하니 재미나더라구요, 박 시인 말에요.
강상중의 책은 전 처음이에요. 황석영은 '개밥바라기별' 이후 안 읽었는데
이 책 '여울물 소리'도 그다지 흥미진진한 서사는 아니더라구요.
대사를 따옴표라든가 뭐 다른 식으로도 따로 처리하지 않아 낭독하는 데에도
자주 헷갈렸어요. 소리꾼의 긴 소리도 자주 나와 그 분위기 살리기도 힘들었구요.
그런 대목은 진짜로 소리 한 번 주욱 뽑아내는 걸로 녹음하면 좋겠더라구요.ㅎㅎ

지구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말, 참 신선했어요. 시인의 말은 어쩜 그렇게.. ^^

아무개 2013-02-28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 출근길 전철에서 살아야하는 이유를 읽기 시작했어요. 아들이야기 나오는 부분에서 울컥해서 아침부터 눈물 참느라 눈에 힘 팍 주고 있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저처럼 살아갈 이유와 의미를 찾아 헤메고 있는거 같네요.
어제 읽은 책에도 빅토르 프랑클이야기가 나오더니 오늘 이 책에 또 등장.

인간 아기의 탄생은 지구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찬사를 듣지만 그 가드레일 담벼락의 아가고양이는....

프레이야 2013-02-28 19:14   좋아요 0 | URL
마중물님, 읽으셨군요.^^
그 아기 고양이는 정말 가여워보였어요. 두려워하는 눈빛이 ㅠㅠ
차들 사이로 잘 빠져나갔을까요? 한참 도로가 밀려있던 시각이라..

하늘바람 2013-02-28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예쁜 배꼽이네요

프레이야 2013-02-28 19:14   좋아요 0 | URL
태은이도 동희도 하늘바람님도 그런 배꼽이 있지요.^^

꿈꾸는섬 2013-02-28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울물 소리 녹음 완료 하셨군요. 짝짝짝 박수를 보내요. 멋져요. 프레이야님.

프레이야 2013-02-28 19:15   좋아요 0 | URL
꿈섬님, 고마워요. *^^*
사실 쉽지 않았어요. 길고긴 대사도 그렇고 소리 뽑는 대목이 길게 나오던 대목들도 그렇구요.
귀명창이라도 되어야할텐데^^

2013-03-01 0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01 1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간의 기쁨 3 - 인정받지 못한 기쁨들의 밤 인간의 기쁨 3
당나귀 아빠 외 지음 / 인간의기쁨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문단의 말석에서 에세이를 쓴 지 강산이 한 번 변한다는 시간이 흘렀다. 지난 주 팜므느와르님과도 얘기한 바 있지만, 처음엔 뭣도 모르고 써댔다고 말할 수 있겠다. 말하고 싶었고 털어놓고 싶었다. 이해를 바라는 욕구가 발동했을 것이다. 뭘 알기 시작하고부터는 소재나 내용과 형식을 달리하며 몇 가지 시도도 해보고 문학관 탐방이나 필름미셀러니 등영역을 넓혀보려고 했다. 그런 글에도 자기고백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사실 시나 소설도 그런 점에선 다르지 않다. 한계를 느꼈다고나 할까. 어느 즈음인가부터 다른 장르를 꿈꾸며 창작문예수필에서는 손을 놓고 있는데 그런 마음의 기저에는 에세이란 가장 어려운 글이 아닌가, 내가 과연 에세이를 쓸 수 있는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이 있었다. 두사람은 그 부분에서 끄덕였다. 그럴 때 '어렵다'는 말은 에세이가 자기고백적일 수밖에 없다는 걸 전제로 한다. 성철스님의 말씀 '불기자심'처럼 남은 속일 수 있어도 자신을 속이기란 어려운 법, 자신을 속이지 않아야 진정 정직한 것이다. 서양의 에세이 개념이 아니라 미셀러니 개념의 에세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으니 더욱 그럴 것이다.

 

내가 소위 에세이를 쓰기 시작한 건 사람보다 관계와 화해하기 위해서였다. (그냥 우리식 수필이라고 부르자. 에세이는 서양식 중수필이 더 빨리 떠오르니)  어릴 때부터도 다소 불행한 관계맺기의 늪에서 허덕이는 나는 내가 그런 쪽에선 늘 약자요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는 일에 요령부득이고 타협할 줄 모르고 구미에 맞게 살랑댈 줄도 모르는 이기적인 성정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들었던 배신감이라든가 혼자 삼킨 아픔, 남몰래 가진 크고 작은 죄의식 같은 것도 내가 그저 감당해야하는 몫이었다. 수필을 쓰면서 그런 관계와 화해를 시도하고 모지라진 나와도 화해하기 시작했다. 행복했다. 그렇다고 모두 털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누구나 그렇듯 자기검열이 발동되는 건 당연하고 아직도 못다한 이야기는 많다. 이제는 삭히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쯤 안다. 더구나 중요한 것은 자기함몰의 우려가 되는 글보다 바깥으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는 점. 물론 이곳에 글을 쓰면서도 오래도록 행복하다. 글 쓰는 일은 숨을 쉬는 일과 다르지 않다, 나에겐.

 

우리는 늘 어떤 고개를 넘어야한다. 완전한 행복도 완전한 불행도 없다. 행복 너머의 불행을 넘겨보아야 한다. 불청객이 아니라 당연한 다음 손님이다. 무시로 회의가 들고 불안감이 밀려온다. 그마저도 손님이다. 거대한 의미의 행, 불행만이 아니라 소소한 것들의 연속선 상에 있는 행, 불행. 입김을 달리하는 바람이 시나브로 불고 계절마다 꽃이 피고 뭉게구름 먹구름 내려앉았다가 해도 뜨고 달도 뜨는 그 고개를 자연스럽고 긍정적으로 넘을 줄 아는 지혜가 나이 들어가며 터득해야하는 덤인 것 같다. 곧이 곧대로가 능사는 아니다. 맑기만 해서는 깊이가 없다. 그늘이 있어야 명창의 소리가 깊어지듯, 그늘을 잘 다스려야 잘 늙어간다고 말할 수 있듯. '나'를 포함한 대상을 비틀어 유머의 소재로 섬길 수 있는 여유, 그걸 해학이라고 부를까. 그런 마음의 여유와 연륜이 필요하다. 단지 쿨한 척하는 걸 말하진 않는다. 쿨함은 자신의 컴플렉스를 감추려는 자가 흔히 쓰는 방식이다. 나로선 제대로 쿨하지도 못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포함한 내 레이더에 든 대상을 해학적으로 비틀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결코 가벼우라는 말이 아니다. 내 문체상 가볍게 쓰지도 못한다. 비장(?)하게 한 번 써보자며 재작년 말부터 문제작가특집 코너에 싣고 싶다는 몇 번의 제의도 굳이 떨치고 있다. 세상의 허명을 좋아하는 성정도 아니고 경쟁이 체질에 맞지도 않고 부끄럽기도 해서다. 이래저래 나는 지금 또 하나의 고개를 넘으려고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고개는 살짝만 들고 오금에 힘을 기르고 있는 셈이다. 하기야 내려갈 때에 다리엔 더 힘이 들어간다. 숨이 좀 가쁠 수도 있지만 상쾌한 콧바람을 내뿜는 시간이 되길.

 

이런 즈음에 뜻밖에 내게 안겨온 <인간의 기쁨 3>은 정말 기쁨이었다.

 

'평범한 진리에서 기쁨을 찾는 사람들의 두근두근 아릿아릿 에세이 무크'를 내세우며 벌써 3집이 나온 <인간의 기쁨>의 이번 부제는 '인정받지 못한 기쁨들의 밤'이다. '기쁨'이라는 낱말만 봐도 기쁜데 인정받지 못한 기쁨이라니 호기심 이는 부제다. 세상에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슴에 담고 있었던, 소문 나진 않았지만 쟁쟁한 열서너 명의 글쟁이가 일인 출판사 '인간의기쁨'에서 나온 <인간의 기쁨>에 자리를 바꿔가며 글을 실었다. 3집, 여섯 명의 글 한 편 한 편이 모두 개성있고 생각거리와 재미를 동시에 안겨준다. 세상과 사람을 보는 시선 못지않게 소박한 사진도 보기에 좋다.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과 '생활불량자' 등 우리 주변의 소소하지만 그냥 넘겨선 안 될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에세이가 꼭 문예수필이어야할 필요는 없다는 걸 십년 전에는 몰랐던 아둔함이야 두말 해야 뭣할까.

 

특히 좋았던 글은 정용선 님의 만남, '프리모 레비의 이상한 미덕'이다. 나도 감동적으로 읽었던 책 '이것이 인간인가'를 쓴 프리모 레비를 돌아보며 그가 극한의 시공간에서 만났던 아름다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기성찰과 함께 푼다. 차분하고 진중하게 울림이 있는 글이다. 수필은 자기고백과 더불어 자기성찰이 있어야 울림을 준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기쁨>은 여러가지 면에서 신선하다. 수필 계간지가 많이 있지만 이런 상큼한 글들을 실은 에세이 무크는 처음 만났다. '시장논리의 압박으로부터 더 자유로울 수 있으니' 오히려 서로 말할 권리를 회복할 수 있게 되도록 만드는 역할에 충실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에 동의한다. 생각한대로 산다는 것은 '말한 대로 산다는 것'과 동의어라는 점에도.

 

<인간의 기쁨>은 오스트리아 화가이자 건축가,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의 판화 연작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 여섯 가지는 '꿈꿀 권리', '창조할 권리', '두 번째 피부', '창문을 가질 권리', '자연과의 평화협정', '인류애'라고 한다. 믿음이 가고 행보가 기대 되는 에세이 무크다. 한 가지 바람이라면, '영처 클래식' 코너에서 우리나라 수필가의 작품도 다루면 어떨까 한다. 이번 호에 실린 애드가 앨런 포우의 '가구의 철학 The Philosophy of Furniture'은 처음 읽었다. 미국식 천민물질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포우의 에세이가 있는 줄도 처음 알았다. 나로서도 좋은 발견이다.

 

 

서문에서 김현 님이 인용한 다음 글은 게으른 몽상가의 별에서 떠나지 못하는 나같은 사람에게 뼈가 되는 말이다.

그러나 백 퍼센트 인정하고 싶지 않기도 하니, 각자가 사는 별의 토양은 어쩌지 못하나 보다. ^^

 

현재는 약속도 대기실도 아니며 서문도 큰 희망의 발판도 아니다.

이른바 훈련기간은 돌이킬 수 없는 실제의 삶이다. 서문은 본문, 희망은 환상이다.

임의적인 것, 잠정적인 것, 덧없는 것, 변덕스러운 것이 삶의 참 내용이다.

지금껏 성취되지 않은 것은 영원히 성취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이 사실과 화해해야 한다.

조용히, 두려워하지 말고, 또한 가능하다면 절망하지 말고.

                                                                            - 스타니스와프 렘, <우주비행사 피륵스>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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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3-02-25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및 덧글을 달지 않을 수 없는 글입니다. 일찍이 프레이야님 글 내공이 상당한 줄 알았지만 이런 격조 있는 글은 함부로 공개하면 안 되는데. 너무 아까워서요.^^*
여독으로 힘들고 피곤했을 텐데 언제 이런 글 갈무리하셨을까요?
누가 에세이류가 쓰기 쉽다고 헛소리 한다면 마구마구 눈을 흘겨주고 싶습니다. 자신에 대해 '까질대로 까져야' 쓸 수 있는 고백적 성찰적 글을 어떻게 함부로 쓸 수 있을까요. 에세이 한 편 쓰고 나면 온몸에 진이 빠지는 느낌 프레님은 잘 아실거예요. 합법적(!) 구라 치는 소설보다, 비틀기나 낯설기 기법이 통하는 시보다 자기 내면에 정직해야 하는 에세이는 언제나 문학의 정수처럼 제게 다가옵니다.^^* 곱씹으면서 읽게 되는 글입니다.

프레이야 2013-02-26 15:17   좋아요 0 | URL
주말에 읽고 그냥 술술 쓴 거에요^^ (과찬이에요, 팜므님^^)
수필 장르에 애정을 갖고 한 길을 걷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그에 비하면 고민만 하는 부류지요.
김광균이 그랬던가요. 수필을 써보지 않고는 글을 썼다고 하지 말라던가요.
그래서 그런가봐요.

2013-02-25 2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3-02-26 15:20   좋아요 0 | URL
일년에 3번 간행되는 무크인데 저도 처음 봤어요.
상투적이지 않고 신선했어요.
늘 좋은 말씀, 행복을 주시는 말씀 고맙습니다.
님도 좋은하루 내내 이어가세요^^

순오기 2013-02-26 0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주에서도 말했듯이 에세이의 어려움...제대로 한 편 써보지도 않았으면서 그 무게는 안다고 말했던 게 부끄럽군요.
이런 글을 읽을 수 있어 알라딘서재와 소중한 내 이웃들을 사랑합니다!^^

프레이야 2013-02-26 15:21   좋아요 0 | URL
오기 언니는 충분히 자격이 되지요. 얼마나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시는 분인데요.
그냥 술술 적어보시기 바래요^^

드림모노로그 2013-02-26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대한 의미의 행, 불행만이 아니라 소소한 것들의 연속선 상에 있는 행, 불행. 입김을 달리하는 바람이 시나브로 불고 계절마다 꽃이 피고 뭉게구름 먹구름 내려앉았다가 해도 뜨고 달도 뜨는 그 고개를 자연스럽고 긍정적으로 넘을 줄 아는 지혜가 나이 들어가며 터득해야하는 덤인 것 같다.

프레이야님 글에서 빛이 나요 ^^ 가슴으로 쓰는 글이 무엇인지 깊은 울림을 전해주시네요
멋진 글 입니다 ^^

프레이야 2013-02-26 15:22   좋아요 0 | URL
드림님, 이곳은 오늘 잔뜩 흐려요.
나갈 일이 있었는데 그냥 주저앉았어요. 조용히 읽던 책을 더 읽어야겠어요.
매화 분재에 물을 줘야하는데 그걸 깜박 잊었네요. 돌볼 줄 모르는 저는 이래요 ㅎㅎ
오후 시간 즐거이 보내시길요^^

수양 2013-02-26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저도 정말 공감해요. 가장 어렵지만 또 가장 깊은 감동을 얻게 되는 것이 수필인 거 같아요. 결국 인간은 최종적으로 수필을, 혹은 수필적인 것을 써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늘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말, 가슴에 새기고 갑니다.

프레이야 2013-02-27 09:38   좋아요 0 | URL
수양님의 '생명연습'이요. 전 그 글이 너무 좋더라구요.
수필적인 글, 수필적인 삶을 생각해보게 되어요.
그늘을 잘 다스려야한다는 말은 이정록시인의 어머니 말씀을 빌어쓴 시에 자주 나와요.
나의 그늘도 잘 돌보고 다스려야 하겠다는^^
 

 

 

   등

 

 

 

  내 눈 밑으로 열을 지어 유유히 없는 길을 내며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내려다본 적 있다, 16층이었다

 

  기럭아, 기럭아

  나 통증도 없이 너의 등을 보아버렸구나

  내가 몹시 잘못했다

 

 

 

- 안도현 시집 [북항],에서

 

 

 

눈 아래로 저 멀리 물가에서 노니는 황조롱이들의 등을 내려다 본 적이 있다.

망원렌즈 속에 잡힌 그네들의 등이 포실하니 햇살을 받아 따사로운데

입술이 마르고 눈이 부신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등을 본다는 건 말할 수 없이 스미는 모종의 쓸쓸함을 마주하는 일이다.

이별을 밥 먹듯이 하는 질긴 인연의 등이거나,

혼자 밥술을 뜨는 사람의 어두운 등이거나,

하루치 다이어리를 쓰고 있는 여윈 어깨에 이어내려온 얇은 등이거나,

갈수록 곱사등이가 되어가는 등을 짊어지고도 미모의 시절 지녔음직한 도도함을

내려놓지 못하는 늙어가는 사람의 등이거나,

두려운 일이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일이다.

그 소리 철렁, 들릴까 봐

획 돌아서지도 못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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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3-02-16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할머니가 되어 남들이 전혀 알아주지도 않는 도도함으로 혼자 헤매일까 두렵기도 합니다. ㅋㅋㅋ

프레이야 2013-02-17 18:33   좋아요 0 | URL
세실님은 좀 도도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라로 2013-02-16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등을 보는 일이 쓸쓸하기도 하더군요,,,요즘 남편의 등을 보면 괜히 애처로와요,,,많이 늙은건가요???ㅎㅎㅎㅎㅎㅎ

프레이야 2013-02-17 18:34   좋아요 0 | URL
젊어서도 그랬던 것 같아요. 전 고3때 엄마의 등이 잊혀지지 않거든요.
중학생 때 본, 원피스 입은 엄마의 등도 그렇고요.^^

이진 2013-02-16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심히 시를 읽고 등가죽이 위로 바짝 당겨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나비님 말처럼 등은 통증의 부위이군요. 쓸쓸할 뿐더러 이면적인, 늘 그림자져있는, 그러한 부위.
안도현의 시는 언제나 가슴을 날카롭게 찌르는 구석이 보여서 좋아요.

프레이야 2013-02-17 18:35   좋아요 0 | URL
안도현의 '북항'은 이전의 시와는 좀 다른 느낌으로 와요.
저 시는 그중 상대적으로 짧게 찌르는 시였어요.
등을 사랑하자구요^^

다크아이즈 2013-02-16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님 제 버전은요,
<내 통증만 살피느라 너의 등을 못 보았구나
기럭아,내가 몹시 잘못했다> 입니다.

눈썰미 좋은 모든이들은 시인입니다. 휴~~

프레이야 2013-02-17 18:36   좋아요 0 | URL
팜므님의 버전이 제 마음이기도 하네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누군가의 등골을 빼먹고 살아온 모든 우리들..

순오기 2013-02-17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 등을 볼 수 없다는 게 모두에게 주어진 축복이기도 하다는...
21일엔 우린 어떤 등을 갖고 만날까 기대도 하는...

프레이야 2013-02-17 18:42   좋아요 0 | URL
전 자주 제 등을 봐요. 거울 비춰서요.^^
남의 등도 제대로 못봐주고 사니 자기 등은 오죽할까요.
등 밀어주는 사람이 제일 좋아요 ㅎㅎ
그날 등 토닥여주며 만나요 우리.

2013-02-17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7 1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3-02-18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 님, 오랜만에 들려요. 잘 지내시죠?

사랑하는 사람에겐 자신의 등을 보여서는 안 된다, 라는 글을 어디서 읽은 적이 있는 듯해요.^^
그럼 잠을 잘 때도 마주 보고 자야 되나요?ㅋ


프레이야 2013-02-18 13:10   좋아요 0 | URL
페크님, 그말이 정답이에요^^
사랑한다면 등을 보며선 안 되죠!! ㅎㅎ
그래서 배신하는 행위를 등돌린다는 말로 대신하나 봐요.
일상의 소소한 배신들, 조심해야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