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볕이 따스한 하루였다. 봄, 봄, 봄이구나, 봄이 왔어!
시콘서트를 들으며 점자도서관으로 가는 길, 고가도로 가드레일 담벼락에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바짝 붙어서 뛰어내리지도
못하고 발을 떼지도 못하고 주춤대고 있었다. 그 겁먹은 눈동자를 좇다가 앞 차를 박을 뻔했다. 차가 밀려서 굼벵이 걸음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오늘 시콘서트에는 신용목 시인이 손님으로 나와 생일(탄생)과 관련한 시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프로그램을 들으며 가는 길은 언제나 행복하다. 포근포근하니 마음에 햇살 가득 들어온다.
청취자 사연을 읽다가 오늘 탄생한 어느 어린 생명을 두고 신용목 시인은 "지구의 주인이 바뀌었군요" 라고 말한다!!!
시콘서트에 손님으로 나온 적이 있던 박성우 시인의 '배꼽'. 생명이 움텄던 그 자리, 배꼽!
봉글봉글 새로운 시작과 기쁨이 피어날 봄맞이 선물 같은 시다. 밝게 가슴을 열고 봄을 맞이하자.
낭송하는 강성연의 목소리가 화사하다.
배꼽
박성우
살구꽃자리에는 살구꽃비
자두꽃자리에는 자두꽃비
복사꽃자리에는 복사꽃비
아그배꽃자리에는 아그배꽃비 온다
분홍 하양 분홍 하양 하냥다짐 온다
살구꽃비는 살구배꼽
자두꽃비는 자두배꼽
복사꽃비는 복숭배꼽
아그배꽃비는 아기배꼽 달고 간다
아내랑 아기랑
배꼽마당에 나와 배꼽비 본다
꽃비 배꼽 본다
고 작은 고양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내려왔을까. 차들이 틈새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어떻게 잘 건너 갔을까.
로드킬,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ㅜㅜ 은행일을 잠시 보고 빵과 카페라떼, 귤과 감자를 사고 도서관으로 올라갔다.
팀장님과 효쩡샘에게 귤 하나씩 드리고ㅋㅋ
오늘 녹음한 분량은 '갈맷길 700리' 등 <부산이야기> 세 꼭지와 ARS 건강상식 '이명' 그리고 <여울물 소리> 완료.
2012년12월 21일 녹음시작, 총 24시간 소요
2013년 2월 27일 녹음완료
까무룩하게 잠이 들었다가 얼마나 잤는지 문득 깨었다.
고요한 가운데 어디선가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눈 감고 있을 때에는 바로 귓가에서 들려오다가 눈을 뜨면 멀찍이 물러가서 아주 작아졌다.
가만히 숨죽이고 그 소리를 들었다. 여울물 소리는 속삭이고 이야기하며 울고 흐느끼다 또는
외치고 깔깔대고 자지러졌다가 다시 어디선가는 나직하게 노래하면서 흐르고 또 흘러갔다.
- 여울물 소리, 끝 488p
봄이 되면 얼었던 여물물도 녹아서 흘러야하지. 이야기가 그러하듯.
실패한 혁명과 그것을 전하는 한 이야기꾼(전기수, 글쟁이, 소리꾼 등 뭐든 이야기꾼이지)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레 미제라블>을 떠올렸다. 그들의 혁명은 과정과 결과가 좀 다르긴 했지만 19세기 초반과 후반,
지구 다른 곳에서 혁명이 일어났던 시기. 요즘 집에서 읽고 있는 책 <레 미제라블 1>.
드디어 156쪽, 도형장에서 풀려나온 쟝 발쟝이 숭고한 인간 미리엘 주교와 만났다.
(고맙게도 동생이 봄선물로 뮤지컬을 보여주겠단다. 영화는 봤지만 뮤지컬로 다시 그 감동을!!!)
그리하여, 자신을 위해,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도 암시하기 위해, 위로하고 고통을 덜어주는
가장 좋은 방법들을 찾는 일에만 골몰하였다. 그 착하고 희귀한 사제에게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위로해 주려고 노력해야 할 언제나 슬픈 대상이었다. (......)
비앵브뉘 예하는, 신비한 문제들을 캐내려 하거나 뒤흔들거나 그것들로 인하여 자신의 영혼이
혼란스러워지는 일 없이, 그것들을 밖에서 확인하는 데 그치고, 현묘한 것에 대한 엄숙한 존경심을
영혼에 간직한, 하나의 평면한 인간일 뿐이었다. (97,98p)
다음주에 녹음 시작할 도서로는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찜해두었다.
강상중의 두번째 고민, 불안과 좌절을 넘어서는 생각의 힘.
연초에 읽은 빅토르 프랑클의 책에 이어 나에게도 '이유!'가 될 만한 책이다.
하지만 아들이 거듭나고 '회심'을 이루었다고 생각한 바로 그 때, 아들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것, 언제까지고 건강하기를, 안녕" 이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
한국사회는 학력이나 자산, 소득이나 지위의 극단적인 격차와 함께 행복과 불행의 차가
역력하여 과거 어느 때보다 사회 안에 르상티망(원한)이 깊이 퍼져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사회에서는 살아가는 의미를 찾지 못해 번민하며 고민을 계속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혹은 비참하지는 않더라고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것에서 적극적인 의미를
발견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죽은 아들과
내가 합작한 기도의 말이다. - 2012년 10월 저자의 말,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