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은 대상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사랑은 언제나
대상과 합치하지 못한다. 사랑은 ‘결합된 사랑’ 조차도 대상화한다.


*

변용은 사랑 속에서 이루어진다. 변용은 사랑에 뒤따라온다.
그러나 변용을 위해 사랑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사랑을 위해
변용을 감수한다고 거짓말해야 한다.

*

사랑은 껍데기다. 가장 민감한 껍데기.
낭심의 피부처럼 유별나게 부드러운 껍데기.

*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대상의 윤곽을 지우는 것이다. 아니,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는 이미 우리 주위를 흐르면서 지워
져가는 부분적인 표정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

사랑은 처음에 온다. 지혜가 끝에 오는 것과 같이.
처음이든 끝이든 모든 공식은 감옥이다.

*

사랑의 방법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가.
방법을 가진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사랑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럽혀진 것에 대한 사랑은 그러나 순결할 수 있다.
사랑은 ‘무엇’에 대한 관계이지, ‘무엇’은 아니기 때문이다.

*

사랑의 전제(前提)는 떨어져 있음이다. 시 - 간신히 맞붙은 상처를
다시 한번 찢어발기기.

*

사랑은 언제나 죽음을 낳는다. 죽음이 있는 곳에 삶이 있다.

우리는 셋이서 산다 - 너와 나, 그리고 파산(破産) 혹은 끝장.




-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이성복 / 문학동네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7-10-25 16: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25 2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7-10-25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절구절이 다 마음에 와 닿지요?
요렇게 정리해주셔서 저도 한번 더 감상하며 감사~ ^^

프레이야 2007-10-26 00:23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소개로 알게 된 책이어요^^
짧은 글귀들 속에 결코 짧지 않은 생각들이 마음을 된통 흔들어댑니다.

2007-10-26 0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26 0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26 0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26 0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26 0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26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결 2007-10-26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런 책도 있었군요. 이성복 시인 참 좋은데요, 기억해둬야겠어요.
그나저나 몇 줄 아포리즘 읽으며 속수무책이네요;;

혜경님, 저무는 시월의 하루는 행복하게 보내셨나요?

프레이야 2007-10-27 09:12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저도 속수무책이에요^^
또 주말이에요. 즐기자구요~

바람결 2007-10-27 19:59   좋아요 0 | URL
해가 갈수록 더께오는 그리움들.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그걸 감내해내는 것이 사랑의 완성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어요.

고요한 저녁인데요, 저 산 위에 휘영청 밝은 달이 걸려있군요.
참 좋은 날입니다. 혜경님도 행복한 주일 보내세요~^^

프레이야 2007-10-27 20:52   좋아요 0 | URL
휘영청 밝은 달이요? 공원에라도 나가봐야겠어요.바람결님^^

누에 2007-10-29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상화'의 두 얼굴
'착함'의 두 얼굴
'사랑'의 두 얼굴
'나'의 두 얼굴

요즘 머리속에 자주 그리는 그림이에요.

프레이야 2007-10-29 20:17   좋아요 0 | URL
보는 각도에 따라 두 얼굴, 세 얼굴이 되다니요.. 놀랍지만
인정해야할 것 같구요. 적응은 잘 안되지만요..
누에님, 봉스와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