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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평점 :
우치다 타츠루의 <하루키씨를 조심하세요>의 독후감을 쓰면서 미처 하지 못한 말이 있다. 우치다 타츠루는 하루키 문학의 ‘위대성’에 대해 여러 가지 근거를 들어 제시한다. 그 중에 세계적으로 많이 팔리기 때문에 하루키 문학은 위대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평론가 모린 코리건 역시 많이 팔리기 때문에 피츠제럴드는 위대하다고 주장했었다. 과연 그럴까?
우치다 타츠루의 주장처럼 많이 팔리면 ‘좋은’ 문학일까? 거꾸로 물어보자. 안 팔리면 나쁜 문학이란 말인가? 우치다 타츠루의 말은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터무니없는 외침이자 소음에 불과하다. <실미도>는 천 만명이 봤으니까 좋은 영화고, <한공주>는 22만 명이 봤으니 나쁜 영환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선 작품의 내적인 가치보다는 오히려 외적인 환경이 판매를 좌우하기도 한다. 오프라인 서점 매대에 진열하는 책의 경우, 홍보비로만 3천 만원 이상이 드는 걸로 알고 있다. 인터넷 서점, 탑 화면에 홍보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광고, 홍보비가 드는 걸까. 아무도 홍보하지 않는데 저절로 팔리는 책은 거의 없다.
즉, 한마디로 판매량은 작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종의 기원> 많이 팔렸다지. 호평도 많길래 기대했다. 초반부가 짜증스러웠다. 앞부분만 그렇겠지? 책을 덮을 때까지 짜증스러웠다. 도대체 뭐가, 어디서, 어떻게, 재밌단 말이지? 뭘 즐기란 것일까? 정유정의 <7년의 밤>은 평론가들의 말대로 ‘압도적 서사’에 끌렸다. <종의 기원>에 그런 게 있나? 단편으로도 충분한 이야기 아닌가? 정유정 작가의 말대로 악을 탐구하고 싶으면 책을 읽어야지, 왜 책을 쓰고 자빠진걸까. 이렇게 빈약한 서사로 뭘 즐기라는 것일까. 아니 뭐 즐길 게 있어야 즐길 거 아닌가. 장어 사주겠답시고 꼬드겨서 꼼장어 사주는 거랑 뭐가 다르지? 꼼장어가 커봤자 꼼장어지 장어 되냐고? 수류탄에 초콜릿 바르면 수류탄이 초콜릿 되냐고?
좋은 소리 안 나올게 뻔하므로, 독후감 안 쓸려고 다짐을 했건만 너무 열 받아 결국 쓰고 말았다. 책을 읽으니, 독자인 내가 사이코패스가 되는 것 같다. (혹시 그게 작품의 숨은 의도?) 더 악평을 하기 전에 말을 말아야지. 이 책을 읽느니 영화 <어바웃 케빈>을 보시길. <종의 기원>과는 비교 불가할 정도로 좋은 작품이다.)
제목은 또 왜 <종의 기원>임? 감히 다윈을 욕 되게 하다니. 정유정은 포식자 대변인이 되고 싶었나??
이래저래 재수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