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학교에 근무하는 내내 동학년 선생님들과 마음을 잘 맞추어서 일하고 있다.

4년 동안 함께 근무한 살신성인 울 부장님.

3년 동안 함께 근무한 맘씨 좋으신 전 부장님.

2년 동안 함께 근무한 너무 근사한 예쁜 동생님.

 

이번 주에 실시할 현장체험학습을 애초 계획은 누리마루로 가기로 했는데,

해운대 해수욕장으로 가면 틀림없이 추운 것 상관하지 않고 발을 담그고 놀고 싶을 것 같아서

뒷감당이 자신없다.

뭐, 좋은 놀이활동 없을까?

그렇게 해서 알아본 것이 단체영화관람.

새로운 세계 백화점에서 조조 단체 관람을 4000원에 하고, 근처의 나루공원에서 놀기로 했다.

일반 시내버스를 탔을 경우,

"도대체 선생은 아이들 지도를 안 하고 뭐하노?" 하는 민망한 멘트를 꼭 들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아이들보고 40여분을 걸어서 백화점으로 가자고 했더니 다들 좋다 한다.

돌아올 때는 원하는대로, 버스를 탈 수 있다고 하니, 많은 아이들이 걸어 오겠다고 한다.

음... 그러면 우리는 영화관람-놀기-도보 이동이다.

 

사실, 이렇게 정해지기까지 예쁜 동생님이 정말 애써 주었다.

그냥, 우리 영화보러 갈래? 음 좋아. 그럼 가자. 고고씽~

이렇게 일이 마무리 되지는 않는 법이니 말이다.

자료 검색부터 시작해서 일의 마무리, 나아가서는 더 좋은 장소의 고민까지!

그리고 나온 말, 우리 보물찾기도 할까?

조그만 종이에 적힌 문구는

보물을 2장 이상 찾은 친구는 친구에게 나누어 주세요.

쓰레기를 3개 이상 주워 오세요.

보물과 쓰레기는 상품과 교환할 수 있습니다.

선물은 모두에게 기념품 형식으로 하나씩 돌아갈 수 있어야 할 것.

아이들에게 줄 기념품으로는 테이프형 화이트(수정 테이프)를 정했다.

작년 1학년 때는 1학기에는 굉장히 잘 지워지는 지우개(이 딴 거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아이 땜에 상처 하나 받고ㅜㅜ)

2학기 때는 고체 형광펜이었다.

 

아이들 수만큼 물건을 구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 예쁜 후배님이 홈플 2군데를 쓸면 가능할 거라 하면서

어차피 장을 볼 거니까 자기가 사 오겠다고 한다.

 

그리곤 전화가 왔다.

수가 안 돼서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걸로 섞어 사야겠다고.

참 마음에 드는 제품이 있는데 그건 원플러스원이라는 상품명이 맘에 걸린다고.

개별 포장되지 않고 3개씩 묶여져 있는 것은 아이들이 왠지 안 좋은 것 받는다는 느낌 들 수 있으니 낱개 포장할 수 있는 비닐도 사야겠다고.

낱개 포장된 것은 한 반으로 몰아주어야겠다고 해서 우리 반이 가지고 가겠다고 했는데,

아이들이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어제 선생님의 고생을 충분히 설명하면 될 것 같다고 자기가 가지고 간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돈은 1인당 1000원 정도밖에 배당이 안 되지만, (우리 주머니 조금만 털고)

그래도 준비하면서 겪은 여러 우여곡절도 아이들이 좋아할 것을 생각하니 작은 기쁨으로 승화된다.

혹 있을지도 모르는 조금 성격 안 좋은 (?) 아이들의 까칠 항변이 걱정되어 이런저런 세심한 배려까지 하는 모습이 마음 짠하다.

아, 재미있게 다녀와야지.

6하년 마지막 소풍이니까.

함께 하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 보장(팝콘, 음료수 금지)은 못 해주지만, 그래도 애쓰는 우리 마음 한 가닥 정도는

아이들이 느껴주기를~

하지만, 이것도 어쩜 욕심일지 모른다는 생각.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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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이혁이 2012-10-31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은 것 하나까지도 정성 쏟으시는 모습이 감동입니다~~^^ 영화보러 가서 팝콘과 콜라를 못먹게 한다고 저희 아이도 볼멘소리를 하지만 그건 그냥 해 보는 소리죠~~ 함께 하는 것이 더 좋았다고 이야기 하더라구요~ 아마 선생님의 아이들도 그러리라 생각합니다~ 한마디 해야 좀 으쓱해지는 그런 기분~~ 아시죠^^ ㅋㅋ

희망찬샘 2012-11-03 07:03   좋아요 0 | URL
영화보기 대성공이었답니다. 몰래 과자, 음료수 먹는 아이까지는 뭐라고 하지 말자 약속했는데, 나중에 나와서 물어보니 몇 명은 먹었더라구요. 그래, 너희들은 이 다음에 세상을 잘 살아가겠다~ 하면서 웃고 넘어갔지요.
 

독서란 무엇인가?

그것을 행복이며 소통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학교 도서관 하면 아주 유명하신 이성희 선생님.

그 분이 전국을 돌며 투어(?)중이시다.

인천 지역에서 주경야독 연수를 하시고 가까운 창원에서 연수를 하셨다.

그 때 창원까지 달려가나 마나로 아주 살짝 고민을 해 봤었는데,

이번에 부산에서 연수가 열린다하니 우리 집에서의 거리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일단 후배 둘을 꼬셔서 함께 가자고 연수비를 입금했는데, 당일날 한 명이 못 간다고 해서 살짝 아쉬웠다.

미리 연락 주었으면 다른 분이라도 섭외를 했을텐데...

일요일 하루를 온통 바쳐 연수를 받으시는 가슴 뜨거운 선생님들과의 만남은

강사님과의 특별한 만남 못지 않게 인상적이었다.

내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나를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해 주었다.

학교 도서관이 교육의 희망이니 학교 도서관만큼은 분회에서 꼭 지키자고 했고, 그래서 일을 자처해서 맡고 있다는 선생님,

연세는 있어 보이셨는데, 이 쪽으로 공부를 더 하고 싶지만 나이가 걸림돌이라 이런 연수를 많이 받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고 하시는 선생님.

연수를 주최하신 부산 모임에서 이런 저런 공부에 대한 고민을 하시는 모습들이 너무나도 감동적이었다.

부산모임 회장님이 준비하셨다는 맛있는 간식도 감사드린다.

이성희 선생님은 꾸러기가 많은 학교들만 돌아다니셨다고 한다. 14년 간의 교직 근무 동안 4번의 학교를 돌아다니셨고, 도서관 리모델링만 3번. (숫자가 하나씩 많았던 것도 같고???) 학교 도서관에 사서가 있어서 학교 도서관 운영과 독서 교육을 분리하고 싶으시다는 소망을 가지고 계시단다.

고립된 섬인 도서관에서만 있으면 자칫 사람들과 소통할 수 없을 수도 있기에 계획적인 만남을 시도한다는데...

아이들을 바꾸고 싶으면 먼저 선생님이 바뀌게 해야 한다는 것.

그 분들에게 다가가는 다양한 작전들! 쪽지 띄우기, 맞춤형 책보따리 들고 가서 찾아뵙기, 이벤트로 책선물 드리기...

그리고 도서관에 아이들을 오게 만드는 협력자로 그 분들을 포섭한다는 이야기. ㅎㅎ~

선생님 한 분의 마음을 빼앗아 오기는 참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는데,

이성희 선생님처럼 하면 웬만해서는 다 넘어오실 듯.

선생님이 하신 말씀 중 가장 오래 머리에 남아 있는 말은

꾸러기, 영혼이 맑은 아이들. 이라는 말이다.(문제아라는 말은 쓰면 안 돼욧!) 

선생님은 교직에 나와서 한 다짐이 3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아이들 이름 외워 부르기란다.

아이들은 책을 좋아해서 왕따가 되는 것일까? 왕따여서 책을 좋아하는 것일까? 물으셨다.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을 관찰해보면 교실에서 그림자 같은 아이들, 갈 곳이 없어 찾는 곳이 도서관일 때가 많다고 한다.

그 아이들에게 이름을 알고 다가가 불러주는 선생님이 도서관에서 책을 권한다면?

편식하는 아이들에게 도서 선정 권한을 주면 아이들은 더욱 신나한단다.

판타지를 좋아하는 아이들, 만화책만 보는 아이들에게 그 분야의 책을 선정하게 하면

아주 좋은 책으로 정확하게 잘 가려 온단다.

그 아이들도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나쁜 책인지는 알기 때문에 이상한 책을 선정하지는 않는다고.

그리고 아이들을 1:1로 만나 다른 류의 책을 살짝 권해보면서 한 명 한 명 포섭해 나가야 한다고.

 

자신의 에고그램을 통해 모둠을 편성하고 고른 성향의 아이들이 어울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시면서

우리들도 에고그램으로 모둠을 나누어 활동하도록 하셨다.

(우리 반 아이들의 마지막 모둠 구성은 에고그램으로 해 보고 싶다.)

나는 합리적, 판단적, 안전 지향적인 a 유형으로 나왔다.

내가 그런가? 했더니 후배는 딱 맞는 것 같단다.

모험과 도전이 필요하단다.

각 유형별로 먼저 앉아서 성격유형에 대한 해설을 들은 후, 다 다른 유형이 섞여 활동하도록 모둠을 구성하였다.

모둠 이름을 정하고(도서관과 관련되면 좋을 이름으로), 가장 동안인 사람으로 모둠장을 정하면서부터 놀이가 시작되었다.

몇 살처럼 보이냐고 해서 차이가 많이 벌어지면 많은 점수를 가져가는 것. 단, 더 많은 나이로 보이면 감점! ㅋㅋ~

 

도서관 놀이를 통해 아이들이 도서관 이용 교육을 받고,

책을 쓰다듬고, 책과 친구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많은 활동들을 보면서

'어, 내가 했던 활동들도 있네.'하며 신기했다.

마음이 통했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어떤 자료를 언젠가 본 것이 무의식에 잠재해 있다가

마치 내가 생각한 것처럼 기억하고 활동을 구상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과 도서관에 와서 주제어를 주고 책을 찾게 하고, 가장 두꺼운 책 찾게 하고, 가장 짧은 시 찾게 하고...

이런 비슷한 활동으로 제목이 가장 긴 책, 공룡이 가장 많이 나오는 페이지 찾기 등을 해 보았다.

여러 가지 놀이 중, 가위바위보로 점수 보정하기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놀이의 목적은 경쟁이 아님을 아이들이 몸으로 느끼게 해 주어야 한다는 말씀.

흥미를 위해 경쟁 방식을 도입했을 뿐~

다양한 놀이 중 북딩고 놀이와 할리갈리 놀이가 참 재미있었다. 만들어서 아이들과 함께 해 보아야겠다.

같은 시 찾아서 카드를 없애고, 마지막에 남은 시 모둠원이 함께 외우기,

문제에 맞게 책 표지 순서대로 배열하기,

단서를 보고 책제목 검색해서 찾기,

그림책의 장면 보고 그 장면 따라 연출한 후 사진 찍기,

돌발미션(모둠원끼리 하트를 만들어 사진을 찍어 선생님께 전송) 수행하기,

지는 가위바위보하기 등... 너무 많은데 활동하느라 바빠 제대로 정리가 안 되어 며칠 지났다고 고새 까먹어 버렸다.

 

참 좋은 방법 하나,

연체자에게 어떻게 하냐고?

도서 대출 정지 하지 않냐고? 도서관의 목적이 뭐냐고?

아이들 책을 읽게 만들어야하는데 읽지 못하게 하는 벌이 옳은가 물으시면서

연체일만큼 페이지 수를 늘려 책을 읽게 하고,

그것을 해내면 연체를 풀어주는 방법도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기억해 두어야겠다.

 

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시대를 넘어서

이제는 바다를 미치도록 그리워하게 만들라 말씀도 다시 되내어 본다.

바다를 그리워 하는 아이들이라면 어떤 아이는 수영선수로,

어떤 아이는 배를 만들어,

어떤 아이는 비행기를 만들어 그곳을 가지 않겠는가 하는.

 

이 많은 일을 담당할 곳이 학교 도서관이며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임을 생각하게 한 참 좋은 시간이었다.

 

무엇보다도 신 나는 일은

선생님이 지금까지 모아두신 방대한 자료를 다 줄테니

많이많이 써서 도서관을 살려보자고 하셨다.

14년간의 노하우가 축적된 그 많은 자료를 언제 다 읽겠냐마는

아직 받지도 않았건만, 주신다하니

생각만으로도 맘이 든든하다.

 

다음에는 심화연수도 계획하고 계신다는데... 기회가 된다면 그 연수도 놓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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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이혁이 2012-10-31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정과 에너지가 글에서 느껴집니다~~ 학교 도서관이 정말 더 발전해서 아이들이 가장 머물고 싶은 곳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도서관에 아이들이 많아지면 그리고 도서관이 더 커지면 친구를 괴롭히고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늘 발전하시는 선생님~ 화이팅입니다^^

희망찬샘 2012-11-03 07:04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도서관이 할 일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학교에서도 책 잘 읽는 아이들 보면 감성이 풍부하고 마음이 따뜻해요.

수퍼남매맘 2012-11-03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존함을 처음 듣지만 학교도서관이야말로 가장 좋은 자리에 위치해야 하고, 가장 중요한 곳이라고 생각해요.
이를 전국도서관담당자 모임에서 열정을 가지고 하시고 계시다고 알고 있어요.
저도 지난 학교에서 3년간 도서관 담당을 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긴 하였지만 도서관 일이 진짜 많은 곳이라
다시 하라 그러면 선뜻 나설 용기는 없네요.
그냥 담임으로서 열심히 아이들 도서실 보내는 일만 하고 있어요.
연수 자료 받으시면 저에게도 주실 수 있으신가요?
왕따를 당하는 아이들이 도서관을 찾는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2012-11-04 0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 둘을 데리고 공부를 조금 도와주고 있었다.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웬 청년 하나가 교실로 쓰윽 들어온다.

'아, 또 어느 보험회사 신입사원이지?' 하며 인상이 살짝 구겨지려고 하는데...

"선생님~"하고 부르는 얼굴에서 제자의 모습이 보인다.

"우와, 만호야~" 하면서 와락***까지는 못하고, 덥석 악수!

나의 첫 제자들. 그들과의 특별했던 만남들.

남보다 늦게 교대에 갔고, 중간 발령에서 정말 별난 아이들을 만나 된통 고생을 겪은 후, 늦은 발령에 제자를 빨리 가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6학년 자원했다가 눈물바람 했던 그 시절로 고고씽~

아이들은 나를 좋아해 주었다. 하지만, 말은 엄청 안 들었다는! 돌이켜보니 내가 너무 미숙해서 아이들을 확 휘어잡지도 못했고, 공부도 단디 가르치지 못했던 것 같다. 조금 더 이해하고 바라보았더라면, 더 많은 조언으로 바르게 이끌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이들 말이 공부시간에 배웠던 것은 선생님이 잘 가르쳐주었는지 아닌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 그저 재미있고 신 났던 일만 기억이 난다고.)

경찰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발령 대기 중이라는 만호군은 힘겹게 나를 찾았다고 했다. 전화번호가 바뀌어서 연락처를 모르는데 스승찾기에 검색해도 내가 안 나오더라는 거다. 한 2~3년 스승찾기 미공개를 해 두었었다. 이유는... 뭐, 그냥.

그러다가 친구랑 이야기하다 또 내 얘기가 나왔고, 그래서 한 번 더 찾아보자 생각하고 스승찾기 해 보니 나오더라고. 혹시나 다른 사람일지도 몰라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한 번 더 해 보니까 내 얼굴이 나왔단다.

이 아이들이랑은 중학교 입학 이후 매년 스승의 날 때 해마다 만났다. 고3 때 한 해 쉬었고, 아이들 군대 간다고 대대적으로 한 번 모인 후 소식이 끊어졌었다. 해마다 스승의 날이면 한 두통씩 걸려오던 전화도 이제는 뜸해질 무렵~ 아이들은 취직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리고 다들 사회 일꾼으로서 열심히 뿌리를 내리려 하고 있다.

희망이가 엄마 제자들이 몇 살이냐 해서 27살이라 했더니 "그럼 대략 30살이고 엄마는 대략 40살이니 10살 차이밖에 안 나네요." 한다. 하나는 올리고, 하나는 버린 계산법이지만, 젊다는 이유로 다른 반 아이들의 관심까지 받았던 그 시절이 새삼 떠오른다.  

다른 친구들 소식도 전해 주었다. 모두들 다 잘 되었다고.

현대, 삼성과 같은 대기업에 취직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내 일처럼 기뻤다.

왕군이 현대 연구원으로 있는데 교육차 내려와 있어서 선생님 뵙고 싶어해서 자기를 먼저 파견했다는 만호군은 나와는 조금 더 특별한 아이다. 나를 울리는 바람에 오만 아이들의 눈총을 다 받았는데, 그 때 그 일을 미안해 하면서 혼자서도 찾아온다. 사실, 혼자서 찾아 나서기가 쉽지 않은데 말이다. 다른 학교에서 근무할 때 어린이날 직전에 운동회를 했는데, 그 때 우리 반 아이들 관리하고 있는데, 스윽 한 번 나타났다가 내 심부름 이것저것 해 주고, 그리고 함께 학교 급식도 먹었었는데...

다들 잘 커 주어서 고마웠다.

자기들끼리도 서로 전화번호 바뀌고 해서 연락처가 없었는데 이리저리 알아보고 3명을 더 찾았다며 모두 5명이 모였다.

그 때도 의젓했던 왕군은 여전히 멋있었다. 점잖아서 여학생들에게 썩 인기는 없었지만, 나라면 이런 아이를 좋아하겠다 생각할 정도로 꽉 찬 느낌이 드는 아이! 전교 어린이회의를 하고 돌아오다 선생님들이 안 보여서 복도에서 뛰어 봤는데, 그 때 묘한 쾌감을 느꼈다는 말을 듣고 뛰지 말라고 하면 안 뛰는 정말 모범 어린이였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자기 말로는 무서워서 안 뛰었다 했지만. 몇 마디 나눈 대화를 통해서도 여전히 꽉 찬 아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기특, 대견~

하군은 당시 여학생들에게 어찌나 인기가 많았는지. 얌전했지만 그놈의 인기는 식을 줄 몰라서 이 다음에 어머님은 걱정좀 되시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당시 우리 반에는 남학생들이 얼굴도 많이 잘 생겼고, 키도 다들 컸는데, 날 만나러 온 아이들 키가 거의 180에서 왔다갔다! 하군은 키는 더 큰 듯, 일하느라 힘든지 살이 쪽 빠졌다. 어제 날짜로 정직원이 되었다고해서 축하박수 짝짝~

너무나도 얌전했던 류양은 들어오면서부터 경쾌한 웃음과 함께 하이소프라노로 줄곧 이야기를 하는데, 참 밝게 변했구나하는 생각에 너무 좋았다. 물리치료사로 일하고 있나 보다. 이제 시작한 연애가 한창 재미있을 시기.

차양은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열심히 이야기를 했다. 모교의 방과후 컴퓨터 교사를 한다는데 아이들과의 생활의 고충이 많이 이해되었다.

다들 제 자리에서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뻐근해지면서 기분이 좋았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잘 자라 주는데, 공부해라, 숙제해라 잔소리 하지 않아도 잘 클 것을 그리 애닯아 했을꼬?" 했더니 왕군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잘 가르쳐주셔서 저희가 이렇게 큰 거 아니겠습니까!" 하고 교과서적 멘트를 훅 날리는데 또 어찌 그리 이쁠꼬~ 만호군이 날 찾는다고 검색하다가 책을 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왕군은 그 소식을 듣고 기뻐하면서 책 제목을 메모해서는 늦게 온 아이들에게 기쁘게 소식을 전한다. 모두 멀뚱멀뚱~ 왕군이 선배들께 이 책을 사서 선물하면 좋겠다고 하면서 제목을 적어갔으니 책이 몇 권은 더 팔리겠구나~ ㅎㅎ 더 많이 기특해지는 왕군~

1년 동안 번 돈은 실컷 써 보기로 부모님과 의논했다는 왕군. 저녁은 자기가 살 거라고 해서 먼저 계산하려다 자리를 빼앗겼다. 자리에서 살짝 일어나 나오는데 달려나와서 자기가 계산을 하길래~ "음, 사회생활 잘 하겠군." 하면서 웃었다.

날 위해 우리 동네까지 찾아온 아이들에게 천사커피집에 데려가서 차 한 잔씩 계산해주면서 먹으면서 이야기 더 하고 가라고 하고 나는 먼저 들어왔는데...

예의 바르게도 만호군이 이제 마쳤고, 다들 잘 들어갔다고, 다음에도 종종 찾아뵙겠다고 인사 전한다.

아, 오늘 아침 학교에 가면 반 아이들에게 자랑해야지. 까불면 경찰아저씨 삐뽀삐뽀 출동한다고. ㅋㅋ~

가끔 지금 아이들의 모습에서 그 때 그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 곧 또 보내야 할 이 아이들과도 더 잘 지내도록 노력해야 할 시간이구나. 어제 괜히 화를 많이 냈던 것도 같으다. ㅜㅜ

오늘은 즐겁게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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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남매맘 2012-09-25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뭇한 이야깁니다. 이렇게 날 잊지 않고 기억해 주고, 찾아와 주기 까지하는 제자가 있다는 건 진정 행복한 일입니다.
많이 기쁘셨겠어요. 아무튼 6학년을 해야 제자가 생기는 것 같아요. 저의 첫 제자들은 저랑 띠동갑이라서 지금은 30대네요.

희망찬샘 2012-09-26 09:08   좋아요 0 | URL
이 맛이지요?!

처음처럼 2012-09-26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흐뭇하시고 힘 받으셨겠습니다^^

희망찬샘 2012-09-26 09:08   좋아요 0 | URL
든든하네요. ㅎㅎ
 

#정품이란 말이야~

"야야, 선생님한테 함 물어봐."하면서 두 녀석이 달려온다.

"이거 보세요. 이거 중국산이지요? made in china라고 적혀 있잖아요. 그럼 중국산이라는 거지요."

하는데...

사연을 들어보니 새 운동화를 산 녀석 하나가 친구한테 정품 아디다수라고 자랑을 했나 보다. 라벨을 보니 중국에서 만든 거다. 그게 왜 정품이고... 했다는 것.

"에고, 짱깽이가 만든 거 신으면서 뻐기기는..." 하는데

"그게 말이지, 중국에서 만들었지만, 아디다수는 아디다수인 거지. 그게 OEM방식이라는 건데 말이야... 결론을 말하자면, 친구가 새 신발을 사서 좋아하고 있으면 멋지다, 예쁘다 칭찬해주면 된다는 거지." 했더니

"근데, 얘가 막 잘난척하잖아요."

하면서 강도를 높여 약올린다.

다행인 것은 둘은 친한 친구라서 서로서로 웃으면서 이야기를 주고받아 다행. 함께 웃으면 되는 거지.

"그래, OME가 뭔가 하는 그거, 그거도 다 정품이란 말이야~"로 마무리 지으면서 둘이서 룰루랄라 집으로 갔다는...

 

#귀찮아서 그런 거예요.

교원능력개발평가가 시작되었다. 학생만족도 조사를 우선 실시하는데, ICT 시간에 함께 하면 참여도가 올라간다 해서 오늘 작업을 하는데, 로딩이 잘 안 되어서 기다리지 못하는 아이들이 열을 좀 받았다. 그래도 몇은 인내하면서 열심히 참여. "잘 좀 부탁한다."는 말에 아이들 모두 높은 점수를 주는 듯. 5점 매우우수에 클릭하는 아이를 보면서 "우와, 훌륭하네. 점수가 후한 마음이 넓은 어린이인걸~" 하고 농담처럼 말하긴 했지만, 참 민망한 장면이다. 선생님이 도깨비 눈을 뜨고 보고 있는데, 우리 선생님 점수를 5점이 아닌 보통에 주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겠다. 집에 컴터가 말을 안 듣는다 해서 남아서 하라고 했더니 전담 선생님께도 영양사 선생님께도 모두 좋은 점수를 준다. 우와, 마음이 후하네~ 했더니 옆에 있는 친구 왈. "다른 뜻은 없어요. 그냥 문제 읽고, 이것저것 생각하기 귀찮아서 그런 거예요~" 한다. 음, 그런 거였구나.

 

#나이가 들면,

초등학교 은사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몇 년 전 반모임을 결성하면서 선생님 모시고서 식사를 했는데, 그때 학교에 있다고 말씀 드렸고, 이후 모임은 흐지부지 되었고, 선생님께 따로라도 연락 한 번 드리고 싶어 스승찾기로 찾아보니 퇴임을 하셨는지 계신 곳이 없어서 궁금하던 차, 학교에 있다는 끈으로 나를 찾으신 거다. 2007년도에 퇴임을 하셨다는 선생님은 취미생활 하며 지내신다 하셨는데, 혹시 모임을 계속하는지 궁금해 하셨다. 조금 심심하셨나 보다. ㅋㅋ~

나도 나이가 들텐데, 그나마 지금은 아이들이랑 이야기도 좀 통하는 것 같은데, 이제 얼마 안 있음 아이들 대하기도 점점 힘들어지겠다는 생각을 해보니 마음이 싱숭생숭~

후배는 아이들과 소통할 무언가(책)가 있어서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래도 나이들면 다르지 않을까 하는 걱정.

후배 하는 말. "괜찮아요. 개콘 열심히 보고 최신폰 갖추고 있으면 아이들과 어느 정도 소통할 수 있어요."

그러고 보니 그러네.

최신폰으로 바꾸고 나서 갑자기 내 인기가 쑤욱 올라간 느낌~

옆반 친구들까지 아는 척 한마디!

의사소통이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되는 거라면 얼마나 좋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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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9-18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렇게 되는군요, 나이가 들면~~~~
그래도 나이 드니까 좋은 것도 많던걸요.ㅋㅋ

희망찬샘 2012-09-19 06:12   좋아요 0 | URL
아름답게 나이들기~ 멋지게 나이드시는 분들 보고 배우고 느끼지요. 근데, 아이들이 나이 든 선생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동학년에 제일 언니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해하세요. 좀 더 젊은 선생님 만났으면 아이들이 더 신났을텐데 하시면서요. 그런 맘이 많이 이해된답니다.

순오기 2012-09-19 09:16   좋아요 0 | URL
세상이 어른 대접을 하지 않으니, 나이 든 것이 미안해지는 세상이 되네요.
나이 든 사람은 살아있는 백과사전이고 지혜창고인데~~ ㅠ

희망찬샘 2012-09-19 20:08   좋아요 0 | URL
아는 사람은 다 그거 아니까 힘내면서 나이들 수 있어요. 그죠?!

saint236 2012-09-19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찮아서요...최곱니다.^^

희망찬샘 2012-09-19 20:1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제 서재에서 처음 뵙는 것 같아요.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멋진 서재도 구경 잘 하고 왔습니다. ^^
 

지난 토요일, 반 아이의 카쓰에 올라온 태풍 염원 글을 보면서 씁쓸했었다.

제발 태풍이 이곳을 강타하여 휴교령이 내리기를 원한다는 내용이었다. 태풍으로 재산뿐만 아니라 사람 목숨을 잃는 사례도 많은데, 꼴랑 학교 하루 안 가자고 태풍을 빌고 있으니 한심한 마음이 가득했다.

그러면서도 얼마나 학교가 재미없었으면 학교 가기 싫다는 주문을 이리 외우고 있을꼬 하는 생각에 반성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도 조금 했다.

어쨌거나, 아이의 바람대로 어제 저녁 부산시 교육청은 초중학교의 휴교령을 내렸다. (고등학교는 학교장 자율에 맡긴다고!)

어린 자녀를 둔 교사들은 아이들을 집에 두고 올 수도 없어서 데리고 학교로 출근한다. 유난히 어린 아이가 많은 우리 학년은 지난 번에도 한 교실이 작은 놀이방이 되었었는데, 오늘도 비슷한 상황이다.

나는 그래도 희망이가 제법 컸다고 둘이를 집에 두고 나왔다.

타이머 맞추어 둘테니 밥이 되면 밥을 꺼내어서 꼬마김밥을 싸 먹으라고 이야기했다. 철철 남는 시간을 조금 더 지겹지 않게 쓰기 위해 엄마가 싸 두지 않고, 직접 싸 먹게 하기, 싸 먹는 것도 나름 재미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학교 수업 시간에 맞추어서 하루종일 책 읽고, 쉬는 시간에는 TV를 보든지, 알아서 하라고 했더니 갑자기 찬이의 눈이 반짝인다. 평일 TV 보기는 우리 집 시간표에 없는지라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희망이는 그 도막 시간을 모아서 한 시간을 보는 게 좋겠다고 한다. 좋을 대로~

어제 도서관에 가서 고고씽 시리즈를 빌려 왔는데, 앉은 자리에서 다 읽더니 이번 주 내도록 되풀이해서 읽어서 내용을 다 외울 작정이란다.

창작을 주로 보는 희망이에게 역사서를 읽히기가 쉽지 않아서 한국사 편지를 이번 주 내로 다 읽으면 책 한 권 사주기로 약속했는데, 오늘 그거 다 읽으면 오늘 사 줄 거냐고 묻는다.

방학 중 하루종일 책만 읽는 날 하루 정하자 하고, 이것 저것 하느라 실천 못한 것이 아쉬웠는데 오늘 원없이 책 읽으라 하니 좋아한다.

걱정되는 점은, 찬이가 긴 시간 책읽으려면 힘들텐데... 하는 거.

연락해보니 잘 지내고 있다 해서 안심.

아, 그러고보니 정말 많이 키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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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2-09-17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많이 키우셨네요.
경기도 고등학교도 오늘은 2시 하교라고 공문 왔습니다.

희망찬샘 2012-09-18 19:02   좋아요 0 | URL
여기는 고등학교는 학교장 자율이라해서 조카는 학교에 갔다 하더라구요. 고등학생은 어른 취급 ㅋㅋ~

책읽는나무 2012-09-17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특하네요.
저희들끼리 김밥 싸 먹고,책 보고,쉬는 시간 몰아서 텔레비젼 보고~~^^
오늘 우리도 휴교령 떨어져(지난번 볼라벤 불어댈땐 10까지 등교했었어요.울학교만.ㅠ)
완전 종일 아이들 뒷바라지 해주고 있네요.
덕분에 집 안은 완전 난장판이구요.ㅠ
힘드네요~~

희망찬샘 2012-09-18 19:02   좋아요 0 | URL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이지요. 텔레비전 보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는 말로 하루를 마무리 했답니다. 엄청 많이 봤다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