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둘을 데리고 공부를 조금 도와주고 있었다.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웬 청년 하나가 교실로 쓰윽 들어온다.

'아, 또 어느 보험회사 신입사원이지?' 하며 인상이 살짝 구겨지려고 하는데...

"선생님~"하고 부르는 얼굴에서 제자의 모습이 보인다.

"우와, 만호야~" 하면서 와락***까지는 못하고, 덥석 악수!

나의 첫 제자들. 그들과의 특별했던 만남들.

남보다 늦게 교대에 갔고, 중간 발령에서 정말 별난 아이들을 만나 된통 고생을 겪은 후, 늦은 발령에 제자를 빨리 가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6학년 자원했다가 눈물바람 했던 그 시절로 고고씽~

아이들은 나를 좋아해 주었다. 하지만, 말은 엄청 안 들었다는! 돌이켜보니 내가 너무 미숙해서 아이들을 확 휘어잡지도 못했고, 공부도 단디 가르치지 못했던 것 같다. 조금 더 이해하고 바라보았더라면, 더 많은 조언으로 바르게 이끌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이들 말이 공부시간에 배웠던 것은 선생님이 잘 가르쳐주었는지 아닌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 그저 재미있고 신 났던 일만 기억이 난다고.)

경찰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발령 대기 중이라는 만호군은 힘겹게 나를 찾았다고 했다. 전화번호가 바뀌어서 연락처를 모르는데 스승찾기에 검색해도 내가 안 나오더라는 거다. 한 2~3년 스승찾기 미공개를 해 두었었다. 이유는... 뭐, 그냥.

그러다가 친구랑 이야기하다 또 내 얘기가 나왔고, 그래서 한 번 더 찾아보자 생각하고 스승찾기 해 보니 나오더라고. 혹시나 다른 사람일지도 몰라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한 번 더 해 보니까 내 얼굴이 나왔단다.

이 아이들이랑은 중학교 입학 이후 매년 스승의 날 때 해마다 만났다. 고3 때 한 해 쉬었고, 아이들 군대 간다고 대대적으로 한 번 모인 후 소식이 끊어졌었다. 해마다 스승의 날이면 한 두통씩 걸려오던 전화도 이제는 뜸해질 무렵~ 아이들은 취직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리고 다들 사회 일꾼으로서 열심히 뿌리를 내리려 하고 있다.

희망이가 엄마 제자들이 몇 살이냐 해서 27살이라 했더니 "그럼 대략 30살이고 엄마는 대략 40살이니 10살 차이밖에 안 나네요." 한다. 하나는 올리고, 하나는 버린 계산법이지만, 젊다는 이유로 다른 반 아이들의 관심까지 받았던 그 시절이 새삼 떠오른다.  

다른 친구들 소식도 전해 주었다. 모두들 다 잘 되었다고.

현대, 삼성과 같은 대기업에 취직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내 일처럼 기뻤다.

왕군이 현대 연구원으로 있는데 교육차 내려와 있어서 선생님 뵙고 싶어해서 자기를 먼저 파견했다는 만호군은 나와는 조금 더 특별한 아이다. 나를 울리는 바람에 오만 아이들의 눈총을 다 받았는데, 그 때 그 일을 미안해 하면서 혼자서도 찾아온다. 사실, 혼자서 찾아 나서기가 쉽지 않은데 말이다. 다른 학교에서 근무할 때 어린이날 직전에 운동회를 했는데, 그 때 우리 반 아이들 관리하고 있는데, 스윽 한 번 나타났다가 내 심부름 이것저것 해 주고, 그리고 함께 학교 급식도 먹었었는데...

다들 잘 커 주어서 고마웠다.

자기들끼리도 서로 전화번호 바뀌고 해서 연락처가 없었는데 이리저리 알아보고 3명을 더 찾았다며 모두 5명이 모였다.

그 때도 의젓했던 왕군은 여전히 멋있었다. 점잖아서 여학생들에게 썩 인기는 없었지만, 나라면 이런 아이를 좋아하겠다 생각할 정도로 꽉 찬 느낌이 드는 아이! 전교 어린이회의를 하고 돌아오다 선생님들이 안 보여서 복도에서 뛰어 봤는데, 그 때 묘한 쾌감을 느꼈다는 말을 듣고 뛰지 말라고 하면 안 뛰는 정말 모범 어린이였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자기 말로는 무서워서 안 뛰었다 했지만. 몇 마디 나눈 대화를 통해서도 여전히 꽉 찬 아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기특, 대견~

하군은 당시 여학생들에게 어찌나 인기가 많았는지. 얌전했지만 그놈의 인기는 식을 줄 몰라서 이 다음에 어머님은 걱정좀 되시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당시 우리 반에는 남학생들이 얼굴도 많이 잘 생겼고, 키도 다들 컸는데, 날 만나러 온 아이들 키가 거의 180에서 왔다갔다! 하군은 키는 더 큰 듯, 일하느라 힘든지 살이 쪽 빠졌다. 어제 날짜로 정직원이 되었다고해서 축하박수 짝짝~

너무나도 얌전했던 류양은 들어오면서부터 경쾌한 웃음과 함께 하이소프라노로 줄곧 이야기를 하는데, 참 밝게 변했구나하는 생각에 너무 좋았다. 물리치료사로 일하고 있나 보다. 이제 시작한 연애가 한창 재미있을 시기.

차양은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열심히 이야기를 했다. 모교의 방과후 컴퓨터 교사를 한다는데 아이들과의 생활의 고충이 많이 이해되었다.

다들 제 자리에서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뻐근해지면서 기분이 좋았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잘 자라 주는데, 공부해라, 숙제해라 잔소리 하지 않아도 잘 클 것을 그리 애닯아 했을꼬?" 했더니 왕군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잘 가르쳐주셔서 저희가 이렇게 큰 거 아니겠습니까!" 하고 교과서적 멘트를 훅 날리는데 또 어찌 그리 이쁠꼬~ 만호군이 날 찾는다고 검색하다가 책을 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왕군은 그 소식을 듣고 기뻐하면서 책 제목을 메모해서는 늦게 온 아이들에게 기쁘게 소식을 전한다. 모두 멀뚱멀뚱~ 왕군이 선배들께 이 책을 사서 선물하면 좋겠다고 하면서 제목을 적어갔으니 책이 몇 권은 더 팔리겠구나~ ㅎㅎ 더 많이 기특해지는 왕군~

1년 동안 번 돈은 실컷 써 보기로 부모님과 의논했다는 왕군. 저녁은 자기가 살 거라고 해서 먼저 계산하려다 자리를 빼앗겼다. 자리에서 살짝 일어나 나오는데 달려나와서 자기가 계산을 하길래~ "음, 사회생활 잘 하겠군." 하면서 웃었다.

날 위해 우리 동네까지 찾아온 아이들에게 천사커피집에 데려가서 차 한 잔씩 계산해주면서 먹으면서 이야기 더 하고 가라고 하고 나는 먼저 들어왔는데...

예의 바르게도 만호군이 이제 마쳤고, 다들 잘 들어갔다고, 다음에도 종종 찾아뵙겠다고 인사 전한다.

아, 오늘 아침 학교에 가면 반 아이들에게 자랑해야지. 까불면 경찰아저씨 삐뽀삐뽀 출동한다고. ㅋㅋ~

가끔 지금 아이들의 모습에서 그 때 그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 곧 또 보내야 할 이 아이들과도 더 잘 지내도록 노력해야 할 시간이구나. 어제 괜히 화를 많이 냈던 것도 같으다. ㅜㅜ

오늘은 즐겁게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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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남매맘 2012-09-25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뭇한 이야깁니다. 이렇게 날 잊지 않고 기억해 주고, 찾아와 주기 까지하는 제자가 있다는 건 진정 행복한 일입니다.
많이 기쁘셨겠어요. 아무튼 6학년을 해야 제자가 생기는 것 같아요. 저의 첫 제자들은 저랑 띠동갑이라서 지금은 30대네요.

희망찬샘 2012-09-26 09:08   좋아요 0 | URL
이 맛이지요?!

처음처럼 2012-09-26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흐뭇하시고 힘 받으셨겠습니다^^

희망찬샘 2012-09-26 09:08   좋아요 0 | URL
든든하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