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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송어낚시
리차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평점 :
어떤 책을 읽고 나면 리뷰와 상관없이 어떤 글이든 한 편 당장 써갈기고 싶을 때가 있다.
<미국의 송어 낚시>는 엊그제 받자마자 단숨에 읽었는데 컴 앞에 바로 달려오고 싶었고,
손이 근질거렸다.
이 책의 무엇인가가 내 마음속의 깊은 곳을 슬쩍 건드렸다는 말이다.
손창섭이라는 작가의 일절로 기억하는데,오래 전 '혈서 쓰듯 하루를 살고 싶다'는 구절을 읽다가
책을 떨어뜨릴 뻔했다. 너무 놀라서.
혈서라니, 끔찍해라!
소설이든 실제든 나는 그런 자세를 좋아하지 않는다.
건들거리고 딴전 부리는 듯한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스타일이 딱이다.
일찍이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의 회귀성에 대해 윤대녕, 안도현, 신경숙을 비롯하여
수많은 작가들이 이야기하고 강산에는 노래까지 만들어 불렀지만, 사실 나는
연어든 은어든 송어든 문절망둥어든 상관없다. 맛만 있다면......
문절망둥어는 히라시노 게이고의 <백야행>에서 처음 만난 물고기 이름.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이 대목에서 써먹네.)
--에스키모인들은 평생 얼음 속에서 살지만 그들의 말에는 '얼음'이라는 말이 없다.
(<인간, 그 첫 100만 년>, M. F. 애슐리 몬테규)
--인간의 필요를 표현한다면, 나는 언제나 '마요네즈'로 끝나는 책을 쓰고 싶었다.(231~ 232쪽)
언제 어떤 책(아마도 하루키?)에서 옮겨 적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의 송어낚시>의 이 구절은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의 마지막은 '마요네즈 주는 걸 깜빡 잊었어. 미안해!'라는
편지의 추신으로 끝나니 '마요네즈로 끝나는 책을 쓰고 싶었다'던 말을 작품 속에서
그대로 실행한 것. 나는 똑똑히 눈으로 확인했으니 됐고.
보충설명과 작가 인터뷰가 부록으로 달려 있었지만 아무튼 본문의 마지막 페이지를 탁 덮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서랍 한 개가 정리된 기분?
그 정도로 이 책이 궁금했다는 말이다.
--1967년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대학생들은 이 소설에 담겨 있는 반체제 정신,
기계주의와 물질주의 비판, 목가적 꿈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허무감 등에 매료되어,
마치 성서처럼 이 책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책 날개의 작가 소개)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책을 읽은 영혼의 절반은 이미 히피인 그 젊은이들이
2년 뒤 전설적인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군중이고, 또 베트남전쟁을 반대하는 시위대의
맨 앞에 서지 않았을까?
잠시 그런 기분좋은 상상을 해본다.
'자연 보호'나 '문명 반대'의 직접적인 메시지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데,
송어낚시를 위해 발명한 회전낚시 미끼 이름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라거나
송어하천을 피트당 얼마에 파는 가게(폭포는 옵션으로 따로 판다)를 구경하다 보면
실실 웃음이 나온다.
보내는 족족 출판사들에서 퇴짜 맞은 이 원고를 거둔 것이 <제5도살장>의 커트 보네거트라니,
말끝마다 '그렇게 가는 거지!'라고 하여 배꼽을 잡게 했던 작가답다.
쓰다보니 멋진 에세이는커녕 '마요네즈 병에 꽂힌 시든 꽃' 같은 리뷰가 되어버렸구나.
아무튼 '마요네즈'로 마무리했으니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