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공간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로컬리티 번역총서 5
오토 프리드리히 볼노 지음, 이기숙 옮김 / 에코리브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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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상처받기 쉽다                                                                                               




부제 : 한국 여성은 왜 불행한가



 

 

 

 


 

최근 고려대에서 진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성이 결혼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행복감'은 2년 정도'라고 한다. 2년이 지나면 행복감은 찌는 더위에 눈 녹듯 사라지고 결혼 전 수준으로 추락한다는 것. 결혼 생활이 인생에 있어서 반평생'에 해당되는 길고 긴 세월'이라고 했을 때, 고작 " 당신과 함께 한 행복한 2년 " 을 얻기 위해서 결혼을 한다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반면 남성은 대체로 결혼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행복 기간'이 결혼 내내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정적인 성 공급과 가사 노동을 공급받기 때문이다. 이 결과를 두고 " 히스테리아 " 와 " 멜랑콜리아 " 같은 여성 특유의 기질 탓으로 돌리기 전에, 이 연구를 진행한 로버트 루돌프 국제학부 교수의 진단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 한국 부부들이 결혼으로 발생하는 이득을 동등하게 배분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여성 행복 만족도가 낮은 이유는) 높은 성 불평등 때문일 것 " 이라며 " 이와 달리 영국과 독일의 경우 결혼을 통한 이득이 동등하게 배분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 고 말했다. 이처럼 행복이라는 이름을 가진 피자 조각 배분이 공정하지 않으니 여성 입장에서 보면 결혼은 남성에게 유리한 제도'라 할 수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죽음으로 인한 사별이나 이혼으로 인한 이별 시, 한국 남성은 여성보다 훨씬 더 많은 고통과 상실감을 호소한다는 결과가 나오지만 영국이나 독일은 이별에 따른 남녀 간 고통 지수'가 동일하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홀아비는 이가 서 말이고 홀어미는 은이 서 말이라는 속담이 통계적으로 증명된 꼴이다.

이 정도면 한국 남성은 < 주부 > 가 여러 계급 가운데 가장 저평가된 우량주'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옛부터 집은 여성을 지시하는 직유'였다. < 家 > 라는 한자는 크게 두 갈래 뜻을 가지고 있는데 첫째는 집이고, 둘째는 여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 여자 고' 와 姑 : 여자 고'는 통자 桶子'다. < 家 > 는 이미 오래전부터 집과 여성을 하나로 인식한 것이다. 한국어도 마찬가지'다. 집은 곧 여성'이었다. < 집사람 > 이란 단어'는 아내를 지시하는 낱말로 남성에게는 사용할 수 없다. 집사람에 속하는 이는 남편, 시부모, 자식도 아닌...... 오직 아내뿐이었다. 이러한 인식은 서양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민코브스키는 논문 << 공간, 친근감, 주거 >>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독신 남성의 집은 편안해 보이지 않으며, 아내와 사별한 남자는..... 전에 그의 집을 지배했던 편안하고 친근한 기운을 결코 만들지 못한다. 그의 집에서는 차츰 이 분위기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삶을 일구어가고 자기 주변과 사람들 사이에 친근감을 만들려면 우리는 인간의 숙명에 따라 둘이서 살아야 옳다.

 

- < 인간과 공간 > 에서 인용한 것을 재인용

 

 

여성이 부재하는 집에 사는 남성은 결핍을 경험하게 된다. 하여튼, 동양 홀아비나 서양 홀아비'나 이가 서 말이다, 시바. 흥부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흥부가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온다. 11명이나 되는 자식'들이 몰려와 시끄럽게 재롱을 부린다. 흥부 아내'는 집에 없는 모양이다. 집구석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던 흥부가 자식들에게 말한다. " 다들 어디 갔니 ? 집이 왜 이리 훵해 ! " 주부 시청자를 타겟으로 설정한 << 아침마당 >> 같은 프로그램에서 종종 소개되는 이야깃거리'다. 어깨가 축 쳐진 한국 주부'를 위한 위로'이지만 진심은 느껴지지 않는 말'이다. 방송이란 게 원래 위하는 척하는 흉물'이다. 하지만 흥부가 툭, 내뱉은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집안이 아무리 왁자지껄해도 아내가 없으면 휘휘하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티가 나는 법이니까. 이때 흥부는 집을 < 찬 곳 > 이 아닌 < 빈 곳 > 으로 인식한다. 훵하다는 말은 속이 비었다는 뜻이니 공간 空- : 빌 공'인 셈이다. 속이 빈 대나무로 지은 집이라고나 할까 ? 이처럼 집을 장소가 아닌 공간'으로 인식하게 되면 집에 대한 장소애(장소에 대한 애착) : topophile, 바슐라르, << 공간의 시학 >> 는 줄어들게 된다. 집이라는 공간은 이제 단순히 잡동사니를 채우기 위한 다락방이나 지하실 역할을 할 뿐이다. 집이 제 기능을 잃고 다락방이나 지하실 신세로 전락하게 되면 거주자는 답답함을 호소하게 되는데, 그 원인은 다락방이나 지하실은 창문이 없기에 감옥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집(가정)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말하던 남자는 어느새 이렇게 내뱉는다. " 시바, 내 이놈의 집구석을 그냥 !!! "

그렇다고 해서 이 글이 아버지의 자리'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아니다. 집을 기준으로 했을 때 어머니에 비해 아버지의 중요도'가 떨어진다는 것을 강조할 뿐이다. 아이들에게 아버지나 어머니는 모두 동일한 보호자이다. 생택쥐페리'는 " 모든 집은 위협받고 있다 " 고 말했다. 그만큼 집은 안전한 장소이면서 동시에 위험받는 공간'이기도 하다. 집은 타자에 의해 꾸준히 공격받고, 심지어는 가족 내 구성원에 의해 공격받기도 한다. 집은 충만이면서 결여'인 존재'다. 공포 영화나 재난 영화에 등장하는 십대는 대부분 결손 가정'이 많은데 이들은 대부분 편부 슬하'이거나 편모 슬하'다. 혹은 가정 불화'에 시달린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한 영화 << 죠스 >> 에서 주인공 가족은 엄마가 부재하고,  << 이티 >> 에서는 남편이 부재 중'이다.

뿐이 아니다. 영화 << 캐리 >> 와 << 엑소시스트 >> 에서도 사춘기 소녀들'은 모두 아버지'가 부재한다. 부모의 부재는 결국 집을 휘휘한 공간'으로 만들고, 이 빈 자리'를 공포가 채운다. 공포 영화'가 집요하게 다락방이나 지하실을 자주 보여주는 이유는 다락방과 지하실이 < 만남의 장소 > 가 아니라 < 은폐(수납)의 공간 > 이라는 데 있다. < 만남의 장소 > 는 있으나 < 만남의 공간 > 이란 없지 않은가 ?  오토 프리드리히 볼노는 << 인간과 공간 >> 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내 집은 가장 가깝고 당연한 공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먼 곳이다. 우리는 집에서 살면서도 먼 곳에 존재하기 때문에 집은 상처받기 쉽다1 " 따라서 " 우리는 집을 좋아해주어야 한다. " 이 감동적인 문장은 " 남성은 여성과 함께 살면서도 먼 곳에 존재하기 때문에 아내는 상처받기 쉽다. 따라서 우리는 아내를 좋아해주어야 한다 " 라고 표현해도 된다. 

 

남편이 " 집안일 " 을 함께하는 것은 가정 주치의가 청진기로 몸 상태를 살피고 치료하는 일에 해당되지 않을까 ? 오래되어 누수가 진행되는 수도관을 고치는 일은 상처 난 아내 손에 밴드를 붙이는 일이요, 막힌 하수도를 뚫는 일은 혈전을 막는 일일 것이다. 집은, 은유보다는 직유에 가까운 여자의 몸이니까.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이 연출한 << 길 >> 에서 짐파노는 젤소미나'가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겨울 바람에 휘청거리는 나무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내는 깊은 밤, 느닷없이 오열한다. 사랑하는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집을 잃는다는 슬픔. 영화 << 파이란 >> 에서도 최민식은 방파제에 앉아 짐파노처럼 오열한다. 여자를 잃는다는 것을 집을 잃는다는 슬픔. 그는 3류 외지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갈 결심을 한다. 먼 곳에 있는, 아주 먼 집.

 

오토 프리드리히 볼노의 << 인간과 공간 >> 은 공간사회학 관련 서적'이지만 상당히 문학적'이다.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좋은 책과 마음에 드는 애인'은 서로 닮은 구석이 많다. 여러 사람에게 소개하고 싶으니 말이다 ■

 

 

 

 

 

 

에필로그

 

글 쓸 때 참고하려고 바슐라르의 << 공간의 시학 >> 을 찾는데 보이지 않는다. 눈어림으로 훑었다가 다시 꼼꼼하게 살폈다.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낮게 소리쳤다. " 시바, 이놈의 집구석...... "





 

  1. 인간과 공간, 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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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5-04-22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 생활이 남녀에 비대칭이라는 것은 우리나라의 속담 ; 할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신 할머니는 할아버지 몫까지 살고, 할머니가 먼저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따라 간다는 말이 있죠.

곰곰생각하는발 2015-04-22 12:01   좋아요 0 | URL
솔직히 할머니들은 할아버지를 수발 들어야 하니 안 계시면 일손 더는 거죠.. 뭐.
영국이나 독일 같은 경우 이별에 따른 고통 지수가 남녀 동등하게 , 비슷하게 나타나는 걸 보면 평소 가사 노동 분담이 이루어진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남자다 미래(?)를 대비하여 설것이도 하고 밥도 하고 그래야 할 거 같습니다. ㅎㅎㅎ

stella.K 2015-04-22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남자들 집에 있는 게 진짜 꼴보기 싫더라구요. 좀 나가 줬으면 좋겠어요.
그러다 저녁이나 밤에 들어오는 그런 구조...ㅋㅋ
별로 집에서 크게 되움이 안 되거든요. 진짜 말씀하신대로 집에서 이것저것 봐주면 모를까.
그렇다고 뭐라고 할 수는 없고.
나이가 들면 남녀 호르몬의 역전이가 일어난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더라도
남자가 집에 있으면 여자가 나가게 되있더라구요.
여자가 좋아하는 남자는 일식이고, 패가망신 자초하는 사람은 삼식이라잖아요.
그래서 남자들도 요리를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오늘 글에서 곰곰발님은 장가 가시면 각시한테 잘하실 것 같군요.ㅎ

마지막 글이 상상히 끌립니다. 요즘 곰곰발님한테서 좋은 책을 많이 소개받는군요.
모르긴 해도 이 글 아니면 지난 번에 쓰신 예감은 틀리지...에서 이달의 당선작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5-04-22 11:59   좋아요 0 | URL
글만 그렇게 쓰지 실천은 글쎄요... ㅎㅎㅎㅎㅎㅎㅎ.
사람들 우스개로 송해야말로 1등 신랑이라고 하던데
각자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편도 집에 있더라도 서로 개인적 시간이 필요한 거 아닌가 싶습니다.

2015-04-22 1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5-04-22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이비드 화이트하우스의 <침대>라는 소설을 보면 주인공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면 다락방으로 혼자 들어가서 목재재료를 가지고 놉니다. 그냥 톱질, 대패질을 했던 것 같습니다. 2년 전에 읽은 소설이라서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소설 속 아버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뚱뚱한 아들은 매일 침대에 눕고, 어머니는 힘들게 뚱보 아들을 수발해요, 이렇다 보니 집안이 점점 콩가루가 됩니다. 아버지와 둘째 아들은 아들만 챙기는 어머니 때문에 불만을 가집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집안이 시끄러우면 불만을 잔뜩 표출하고 다락방으로 올라갑니다. 소설 속 아버지가 불쌍했어요. 가장으로서의 권위가 없었죠. 대신 소설에서 가장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뚱뚱한 아들입니다. 침대에 눕기만 하고, 24시간 어머니의 수발을 받는 모습이 마치 권위적인 남편과 늘 그를 위해서 복종하는 아내의 모습이 연상되었어요.

어쨌든 곰발님의 글을 읽으니까 예전에 읽은 소설 줄거리가 막 생각났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4-23 09:57   좋아요 0 | URL
검색창에 찾아보니 섹스 실전 기술.. 뭐 이런 게 뜨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용 들으니 저도 갑자기 생각난 소설이 있는데 제목이 생각이 안납니다.
그 작품도 침대`라는 것 같았는데..... 한국 작가가 쓴....
아, 가물가물..........

곰곰생각하는발 2015-04-23 09:57   좋아요 0 | URL
검색창에 찾아보니 섹스 실전 기술.. 뭐 이런 게 뜨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용 들으니 저도 갑자기 생각난 소설이 있는데 제목이 생각이 안납니다.
그 작품도 침대`라는 것 같았는데..... 한국 작가가 쓴....
아, 가물가물..........
 

 

 

 

 


안티고네와 반 마리                                       

 

 

 

 

코러스 : 그 아버지에 그 딸이시군요 ! 성격이 아버지처럼 그렇게 막무가내인가요. 적 앞에서 도무지 굽힐 줄 모르시는군요 !

- 안티고네 中

 

 

 

 

 

 

 

 

 

 

 

 

 

 

 

발단은 " 반 마리 " 때문이었다. 이태임과 예원 사이에 오고간 말풍선'을 언어유희의 대왕인 셰익스피어가 소포클레스 풍으로 각색한다면 다음과 같다. " 오, 말 ! 말 ! 말 ! 예원이여, 애원해도 소용없나니, 네 말'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지어다. 세 말' 하면 입 아프고, 두말하면 잔소리니, 일말의 주저없이 한 말 또 하련다. 어디서 반말'이니 ? " 오고가는말풍선'에 반말이 끼어든 것. 쌍둥이 형제'에도 위와 아래를 구분하는 나라에서 반말은 예민한 문제'다. < 반말 > 에서 반이 半 : 반 반' 이라는 한자이기에 반말의 반댓말은 한말'이다. 나이 서열에 따라 한 마리와 반 마리'는 정해진다. 그것은 한반도에서 오랜 세월 쌓은 암묵적 합의와 사회적 결의'다. 하지만 예외는 존재하는 법. 나이 서열을 무너트리는 것이 바로 족보'다.

희끗희끗, 흰 머리 난 어른이 새파랗게 어린 사람에게 삼촌이라며 어른 대접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뿐인가 ? 돈과 권력이야말로 반말의 좋은 친구'다. < 완장 > 을 찬 사람은 나이 서열'에 관계없이 한 마리'를 1/2 등분 잘라먹는다. 하지만 권력 피라미드'에서 상층부를 차지할수록 말은 점점 짧아지는 경향이 있다. 2/3 등분, 3/4등분, 4/5등분, 5/6등분, 7/8등분, 9/10등분.......  < 욕 > 은 반말보다 더 짧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 육시랄 戮屍 - " 은 < 이미 죽은 시체를 다시 한 번 찌르다 > 는 말이고, " 젠장 " 은 젠장칠의 준말로 < 곤장으로 볼기를 친다 > 는 의미이며, " 오라질 " 은 < 오라(포승줄)로 묶여 갈 > 이란 뜻이다. 이처럼 < 반말 > 이 짧은 말이라면 < 욕 > 은 반말보다 더 짧은 말에 속한다. 그러니까 말이 짧다며 욕을 하는 사람은 더 짧은 말로 대응하는 것이다. 이처럼 길이가 점점 짧아지다가 결국에는 말을 아예 하지 않는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 

그것은 반말'은 아니지만 반말'보다 무서운 공말(空-)이다. 여기서 공말은 빈말'보다는 不言에 가까운 말이다. 영화 < 대부 > 에서 말론 브란도'는 말을 하는 대신 눈짓과 손짓으로 대화를 나눈다. 무릎 꿇은 사람은 말론 브란도의 눈짓과 손짓에 따라 목숨이 왔다갔다한다. 수많은 조폭 영화'를 보라 ! 오야붕은 말이 없다. 오야붕 밑에 있는 놈이 말을 오야붕을 대신해 험악한 말을 많을 뿐이다. 오야붕 밑에 있는 넘버2는 관상가이고, 넘버2 밑에 있는 넘버3는 중국어 통역관이며, 넘버3 밑에 있는 넘버4는 집행관이다. 그들은 오야붕의 몸짓 언어'를 이해하고 실행에 옮긴다. 관상가와 통역관은 오야붕의 용안 龍顔 을 살핀 후, 이마에 석 삼(三)이 있는지 미간에 내 천(川)이 있는지에 따라 행동한다.

통역관은 오야붕의 용안에 새겨진 < 三 > 를 " 아따, 시부럴 새끼 ! 확 눈깔을 뽑아부러 ? " 로 해석해서 아랫것들에게 통역하고, < 川 > 은 " 아야, 으째스까나. 배를 확 째서 창자로 줄넘기를 해부러야것다 ! " 로 해석해서 통역한다. 결국 권력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오야붕은 말 한마디 없이도 의사 소통이 가능한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 알아서 척척, 일을 진행하는 관상가와 통역관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대통령은 거짓말은 해도 반말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심성이 곧기 때문이 아니라 반말을 굳이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각하 아래 관상가와 통역관은,  지천으로 널렸다. 뜬금없는 말처럼 들리겠지만 < 오이디푸스 > 는 슬하에 자식이 네 명'이었다. 딸이 둘이요, 아들이 둘이었으니 부부금실이 좋았던 모양이다. 

오이디푸스 자식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은 안티고네'다. 눈먼 아버지를 보살피고 왕의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죽은 형제를 매장한 이도 안티고네'였다. 그녀는 형제의 시체를 땅에 묻었다가 결국에는 생매장 당하는 여성이었다. 소포클레스의 < 안티고네 > 에서는 자매 간 서열과 남자 형제 간 서열이 불분명하다. 그래서 잠시 오이디푸스네 가족 나이 서열에 집착한 적이 있었다. ( 한국에서는 편의상 안티고네가 이스메데의 언니'로 설정되었으나 작품에서는 서열을 제시하지 않는다. 남자 형제도 마찬가지'다. )

 

 

 

 

" 폴리네이케스가 형이야, 에네오클레스가 형이야 ? 안티고네가 언니야, 이스메데가 언니야 ? "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 궁금증은 나이 서열을 중시하는 한국인이기에 가능했던 궁금증이 아닌가 싶다. 영어에서 불알더(brother)는 형이자 오빠이기도 하며 또한 남동생'을 의미하지 않은가. 시스터도 마찬가지다. 언니이자 누나이자 여동생을 통틀어 sister'라고 한다. 그러니까 서양에서는 나이 서열이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는 왜 나이 서열이 중요한 것일까 ?  한국어가 높임말과 반말을 구분하기에 그렇다. 상대방보다 한 살 많으면 " 반 마리 ㅡ 카드 " 를 꺼낼 수 있다. 처음 보는 자리에서도 대뜸 " 몇 살이세요 ? " 라고 묻는 데에는 반말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높임말을 써야 하는지 물어보기 위한 사전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 마, 실례를 무릅시고 마... 묻것습니다만, 나이가.... "  

따위로 예의를 갖추는 척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실례'다. 무릎이 시리면 무릎 담요을 덮으세요 ! < 한 살 더 산 게 > 훈장이라고 생각하다 보면 결국에는 꼰대'가 된다. 술자리에서 멱살 잡고 싸울 때 " 너 몇 살이야 ? " 라고 묻는 사람이 꼰대'다. 꼰대는 대부분 자신이 쌓은 세월에 대한 자부심과 경험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이 < 왕년에 ~ > 라는 말머리로 시작하는 회고담은 화려하다. 듣다 보면 난닝구와 삼각 빤스만 입고 명동 거리를 돌아다녀도 " 스똬일 " 이 완성될 거 같다. 하지만 회고담은 "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1 " 일 뿐이다. 나쁜 것은 지우거나 고치고 좋은 것은 과장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 내가 해봐서 아는데... " 다. 이명박이야말로 꼰대의 전형이다.

한국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언어 체계를 하나로 통일해야 한다. 높임말만 쓰든 반말만 쓰든 말이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지 보다 평등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될 가능성은 ?  없다. 누군가는 위아래 구분도 없이 반말로 통일한 영어를 빗대 높임말이 있는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이도 있던데, 이 진한 국뽕 앞에서 할 말을 잊게 만든다. 태양이 떠오르면 그늘이 생기는 법. 반말이 있기에 존댓말도 있는 것 아닐까. 가끔은 복거일'의 황당한 영어공용어 주장'이 이해가 간다. 내가 보기엔 복거일은 적어도 꼰대'는 아니다. 그는 리버럴리스트'다. 봄비 오는 새벽에 깨어, 깊은 밤에 반 마리'를 생각하다가 안티고네를 생각하다가 복거일로 끝맺음한다. 이 밤에 닭 한 마리 뜯고 싶다, 시바.






덧대기

 

 

 

 

 

 

 

 

 

 

 

 

 

 

 

오이디푸스는 테베'에서 태어났으나 이웃 나라'인 토린토스에서 성장했다. 출생지와 성장지'가 다른 경우'다. 오이디푸스는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자신을 토린토스 사람으로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이방인이면서 그 나라의 왕이 된 경우는 히틀러가 있다. 그는 독일 사람이 아니다). 성인이 된 오이디푸스가 테베로 떠난 이유는 다들 아시다시피 어머니와 동침할 운명이라는 아폴론의 신탁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았을 때 그는 신탁을 실현하기 위해 테베'로 향한 꼴이 되었다.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에서 adrian finn 은 영국 런던으로 전학 온 학생으로 소개된다. 그에게 영국 런던은 연고지'가 아니다. 여기서 finn 은 핀란드 사람 혹은 북서 러시아 부근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에이드리언 핀'은 오이디푸스처럼 영국 런던으로 흘러들어온 이방인'이었던 셈이다.  그는 신탁의 저주( 토니'가 보낸 편지 ) 를 피하기 위해 베로니카를 떠나 베로니카의 어머니 곁에 머문다. 결과만 놓고 보았을 때 에이드리언은 신탁을 실현하기 위해 (베로니카 어머니가 거주하는) 켄트'로 향한 꼴이 된다. 그렇다면 kent라는 장소성이 말하고자 하는 상징은 무엇일까 ? kent는 고대 왕국이라는 뜻과 함께 투르크어로 도시'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두 텍스트 간 유사성에 방점을 찍자면 베로니카의 어머니 사라 포드는 에이드리언의 상징적 어머니'다(그는 홀아비 슬하에서 자랐다는 점을 주목하자). 이 셈법이 맞다면 베로니카'는 안티고네인 셈이다.  


 



 

  1.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줄리언 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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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4-20 0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덩달아 닭 반마리를 생각케 하십니까! 이 새벽에도 배고프게T.T
동물의 생존전략과 기본심리를 생각해 볼 때 위계문화는 대대손손 큰 변화는 없을 듯합니다. 인간 사회는 좀더 복잡해서 더 골치아플 뿐(성차별, 인종차별, 노동자차별, 갑을관계, 종교문화, 민족주의 등등등 파생상품이 참 많지요...)
˝만일 누군가 거대한 과녁의 정곡을 찾아내기만 한다면, 스물 다섯 살짜리의 젊은이는 대체로 쉬운 표적이 됩니다.˝ (필립 로스)
필립 로스처럼 그럴싸하게 말 안해도 꼬맹이들부터 자기보다 어리고 만만해 보이면...이하 생략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4-20 11:13   좋아요 0 | URL
닭은 세월호 1주년에 남미 한복 패션쇼 하러 갔겠죠 ?
궁금해요. 도대체 옷이 몇 벌인지 말이죠.
제가 알기로는 메르켈 총리는 만날 똑같은 옷 입고 다닌다고 하던데
무슨 외교가 패션쇼인지.....

언어의 평등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애초에 글렀습니다.
몇 살 아리다고 반말 찍찍하는 사람 보면 재수없죠...

samadhi(眞我) 2015-04-20 1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곰발님 말놀이는 언제나 유쾌합니다. 저도 늘 양놈문화에서 가장 부러운 게 모두가 반말하는 거예요. 상하,고하. 따위를 일일이 따지고 재수 삼수 빠른 몇 년생임을 침튀겨가며 얘기하는 예.의.지.국.의 전통(?)이 창의성과 소통을 가로막아 왔다고 생각해요. 반말이 정 거슬리거든 채현국 선생처럼 높임말을 쓰든가요. 그분은 반대로 나이 든 사람에게 반말을 쓰신다고 하는데.

곰곰생각하는발 2015-04-20 11:11   좋아요 0 | URL
말놀이 좀 유치하지 않나요 ? 삭제할까 하다가 그냥 삽입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
사실. 서양말이 반말은 아니잖아요. 어쩌면 전부 존대말인지도 모르는 거죠....
저번에 누가 서양 놈은 예의가 없다고 하길래 왜 그러냐고 했더니 위아래도 모르고 서로 반말한다...
어이가 없어서 그냥 대꾸도 안했씁니다.

뽈쥐의 독서일기 2015-04-20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 언제나 꼰대 관련 글은 재밌어요. 근데 왜 웃다가 울게 되지요? 곰발님, 저.. 맘에 안들죠?

곰곰생각하는발 2015-04-20 11:09   좋아요 0 | URL
네에, 맘에 안 드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싸울 때 너 몇 살이야, 라는 것과
어른들이 어린이놀이터 정자에 앉아서 아이들에게 시끄럽게 뛰어다니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아니 시끄럽게 떠들고 먼지 풀풀 날리면서 놀라고 만든 게 어린이놀이터인데
어린인놀이터에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 보면 좀 미친 사람 같아요...

2015-04-22 0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22 0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한 초기 걸작 블록버스터 영화 << 죠스 >> 는 국내 개봉 시 << 아가리 >> 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다고 한다. 오락 프로그램에서 종종 이 사연이 소개되는 것을 보면 제목이 꽤나 웃겼던 모양이다. 모두 다 희희낙락. 하지만 나는 아가리'라는 의역 작명이 탁월해서 무릎 탁, 치고 아, 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당신이 우, 할 때 나는 오, 했고,  워, 할 때 와, 했다.  B급 영화'라면 제목 또한 B급스럽게 달아야 맛이 난다. 번역 작업이 오리지날에 충실해야 되는 것은 맞지만 직역 작명이 반드시 최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 의역'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재치 있는 의역 작명은 원제목을 한글 독음 그대로 제목으로 차용하는 작품'보다 낫다.

한글 독음 표기 제목 가운데 가장 어이없는 경우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사기꾼 연기를 했던 << Catch Me If You Can >> 이 아닐까 싶다. 한 낱말로 구성된 제목'이라면 모를까, 한 문장 전체'를 한글 독음으로 표기하는 경우는 어떤 심보일까 ? 영화 수입사'는 한글 독음 표기대로 << 캐치 미 이프 유 캔 >> 이라는 제목을 달았는데 한글이 뛰어난 소리글자'라고는 하나 이런 작명은 오리지날에 대한 예우 차원이 아니라 그냥 수입사 직원들이 게을러터져서 성의 없이 내놓은 결과물'이다. 코미디 영화'만큼 작명 작업할 때 쉬운 장르도 없다. << 나, 잡아봐라 ! >> 라거나 << 잡을 테면 잡아봐! >> 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독음 표기로 작명한 이유를 모르겠다. 보그병신체도 아니고 말이다. 굳이 의역을 하자면 사기꾼이 파일럿 행세를 하며 비행기 타고 뜬구름 위를 떠도니 << 뜬구름 잡기 >> 라는 제목도 근사하다.

개인적으로 직역에 가까운 의역 혹은 의역에 가까운 직역 제목을 좋아하는데 가장 탁월한 예가 테오 앙겔로플로스 감독이 연출한 << 황새의 멈추어선 걸음 / To Meteoro Vima Tou Pelargou >> 이다. 직역하자면 << 황새의 정지된 비상 >> 이라고 하는 모양인데 " 정지된 비상 " 보다는 " 멈추어선 걸음 " 이 보다 시적'이다. 이 제목은 예술 영화와 궁합이 잘 맞는다. 제목을 무조건 근사하게 작명한다고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다.  코미디는 코미디 장르에 맞는 작명이 필요하다. < 황새의 멈추어선 걸음 > 을 흉내 낸다고 죠스를 < 상어의 앙다문 입술, 앙! > 따위로 제목을 달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 의역 제목 가운데 최악은 제니퍼 린치 감독이 연출한 엽기 컬트 영화 << 'Boxing Helena >> 이다. 

 

헬레나를 (죽여서) 상자 속에 (구겨) 넣기'라는 뜻인데 놀랍게도 국내에서는 영화 내용과는 전혀 다른 <<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 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로맨스 영화인 줄 알고 봤다가는 낙담사 가서 공염불하기 딱이다. 낙담하기 일쑤라는 소리'다. 달달한 푸딩을 시켰더니 새빨간 사천 짬뽕이 배달되어 온 경우라고나 할까.  줄리안 반스 소설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는  원제가 " THE SENSE OF AN ENDING " 이다. 쉬운 단어로 이루어진 제목인데 막상 떠오르는 글감이 없다.  번역가는 " 결말의 느낌 " 정도로 직역하던데 내용과 연관지어 살펴보면 THE SENSE OF AN ENDING 는 비로소 " 뒤늦게 감을 잡다 " 라는 뉘앙스가 숨겨져 있다. 터널은 끝에 가서야 환해지듯이, 이 소설도 마지막 두 페이지'를 넘겨야 비로소 모든 퍼즐이 선명하게 보인다.

 

분명한 것은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라는 의역 작명이 내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주인공의 촉은 항상 틀렸기 때문이다.  차라리 << 그의 예감은 틀렸다 >> 라고 의역해야 본문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주인공은 모든 일에 둔해서 끝에 가서야 엄청난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비의 날개짓이 걷잡을 수 없는 태풍이 되어 돌아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까 원제 << THE SENSE OF AN ENDING >> 는 한치 앞도 못 보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난 참 빙딱'처럼 살았군요 ㅡ 라는 뉘앙스'를 가진 제목이다. 굳이 직역이 아닌 의역을 할 바에는 << 나중에 안 사실 >> 이나 << 뒤늦은 각성(예감) >> 이 적당할 것 같다. 아님...... 말고 ! 소설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벨레로폰의 편지 이야기를 차용한다. 

 

편지'라는 소품은 배달 사고를 일으키기 위한 장치'다. 여기서 배달 사고'란 LETTER(편지)가 유통 과정에서 LITTER(잡동사니,쓰레기)로 변질되는 경우를 말한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벨레로폰테스는 " 벨로로스를 죽인 사람 " 이라는 뜻이다. 별명처럼 그는 벨로로스 사람을 죽인 죄로 쫒겨나 프로이토스 왕에게 몸을 의탁한다. 그런데 왕비가 젊은 벨레로폰에 욕정을 품고 왕 몰래 사랑을 고백했으나 벨레로폰은 이를 거절한다. 이에 앙심을 품은 왕비는 왕에게 거짓으로 벨레로폰을 모함한다. 왕은 고민 끝에 리키아 왕 이오바테스에게 편지를 쓰고는 벨레로폰에게 그 편지를 전달해 줄 것을 부탁한다.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편지를 가지고 가는 자를 없애 주십시오. 그는 제 아내이자 당신 딸을 겁탈하려고 한 자입니다.” 

 

이처럼 수상한 편지가 봉인에서 해제되는 순간 어마무시한 일이 벌어진다. 벨레레폰 입장에서 보면 이 편지는 수신인이 봉인을 해제하면 안된다. 이 신화는 셰익스피어 희곡 ①<< 햄릿 >> 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덴마크 왕 클로디어스는 벨레로폰의 편지 전략을 써서 햄릿을 죽일 계략을 꾸민다. 하지만 햄릿은 이 계략을 간파하고 편지지'로 바꿔치기 해서 위기를 모면한다. 결국 수신인은 클로디어스의 편지가 아닌 햄릿이 조작한 가짜 클로디어스 편지'를 받게 된다. 위험한 편지 ㅡ 서사'는 매우 다양한 형식으로 소비된다. ② << 도둑 맞은 편지 / 포우 단편 >> 은 정인情人이 간직해야 할 편지가 엉뚱하게 정적政敵에게 배달된다. 이 편지를 소유한 사람이 권력을 쥔다. 편지는 일종의 권력 반지'다. 그런가 하면 ③ << 낯선 여인의 편지 / 슈테판 츠바이크 단편 >> 에서 편지 수신인'은 러브레터의 발신자'가 누구인지 모른다.

 

반면 영화 ④ << 파이란 / 송해성 감독 >> 과 ⑤ << 러브레터 / 이와이 슈운지 감독 >> 는 죽은 애인'에게서 뒤늦은 러브레터가 도착하고, ⑥ << 속죄 / 이언 맥큐언 >> 은 저속한 표현이 담긴 편지지를 쓰레기통에 구겨서 버린다는 것이 그만 실수로 편지 봉투에 담아 보낸다. 봉투는 그대로인데 편지지'가 바뀐다는 점에서 햄릿과 유사하다. 이들 텍스트는 모두 엇박자'다. 편지지'가 바뀌거나①⑥, 수신자가 바뀌거나②, 죽은 자에게 편지를 받는다. 그들은 산 자였다가 죽은 자'가 되었다는 점에서 신분이 바뀐 것이다 ③④⑤. 띵동 ! 저승에서 편지 왔어여~ 이처럼 벨레로폰의 편지, 왕비의 연서(도둑 맞은 편지), 클로디어스의 국서國書(햄릿), 뒤바뀐 편지지(속죄)는 봉인을 해제하는 순간 불행이 찾아오는 판도라의 상자'다.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에서 토니는 에이드리언의 편지를 받는다. 한때 토니의 여자친구였던 베로니카와 사귀어도 되냐는 내용이었다. 문장 하나하나 예의를 갖춘 편지였다. 1인칭 화자인 토니는 소설 1부에서 그때 자신이 보낸 답장을 기억해 낸다. 그는 자신이 쓴 답장을 다음과 같이 기억하고 있다. " 이십일일자로 온 자네의 서신을 수령하면서, 본인은 모든 것을 유쾌하고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명시하고자 상찬과 기원을 간절한 마음으로 바치네. 벗이여. ( 77쪽 ) " 이 정도면 애인을 빼앗은 친구에 대한 답장치고는 예의바르다. 하지만 2부에서 실제로 복원된 편지'는 그가 기억했던 내용과는 정반대였다. 화가 난 토니는 온갖 악담을 편지 속에 담는다. " 언니, 나 마음에 안 들죠 ? " 라고 말하자 어디서 반말이니, 라고 반격하는 모양새'다.

 

 


에이드리언에게, 아니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에게.

(베로니카, 개같은 년. 잘 지냈나 ? 너도 함께 이 편지를 읽도록)

........

그러니, 베로니카, 에이드리언의 새끼손가락만한 자지에 듀렉스를 끼워줄 때마다 빈틈없이 잘 씌우려무나. 아, 아직 그 단계까지는 안 갔으려나 ? ....... 썩을, 그 여자는 만사를 제멋대로 휘둘러야 성에 차는 종자라서 ....... 너희에게 계절 인사를 보낸다. 그리고 기원컨대 너희의 관절과 성유를 바른 머리통에 산성비가 쏟아지기를.

 

토니

 

 

말 그대로 토니가 에이드리언에게 보낸 편지는 LETTER 이 아니라 LITTER 가 된 셈이다. 님이라는 얼굴에 점 하나를 찍으면 막장 드라마 << 前애인의 유혹 >> 이 시작된다. 그 편지는 봉인을 해제하는 순간 읽은 이에게 저주가 내리게 되는 마법에 걸린, 행운의 편지'였다. 읽는 순간, 저주는 실행된다. 마치 클릭 하는 순간 악성 바이러스가 유포되는 수상한 이메일처럼 말이다. 줄리언 반스'는 치밀한 구성으로 씨줄과 날줄을 엮는 솜씨가 탁월하다. 사소한 듯 지나친 문장은 결국 의미심장한 의미가 되어 돌아온다. 작가는 토니'라는 인물을 내세워 조작된 기억과 망각'을 통해 "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 (34쪽) " 이라고 고발하면서 "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미래를 꾸며내고, 나이가 들면 다른 사람의 과거를 꾸며내는 것(141쪽) " 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꼰대가 흔히 말하는 " 왕년에 ~ " 로 시작되는 추억담은 조작된 기억과 망각'이 만들어낸, 기억의 습자지 위에 기록된 문서본에 불과하다. 그것은 오리지날이 아니라 지우고 덧대고 도려낸 사본이다. 줄리안 반스 장편소설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를 읽고 나서 곰곰 생각했다. 초면인 데도 어디서 낯이 익은 얼굴'이라고나 할까. 개성이 강한 얼굴'이라 흔한 얼굴'은 아닌데 어디서 많이 본 얼굴. " 어디서 봤더라 ? " 잠시 후, 무릎 탁, 치고 아, 했다.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는 막장의 원조, 소포클레스 희곡 << 오이디푸스 왕 >> 과 유사했던 것이다. 이 말은 마치 변희재와 진중권이 알고 봤더니 이란성 쌍둥이였더라, 라는 소리처럼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두 작품이 가지고 있는 유사성을 비교 검토하고 나면 아, 하고 무릎 탁, 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 작품은 주인공 토니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소설'이다.

 

하지만 방향을 바꿔 에이드리언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후 전개하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튀어나온다. 주인공 에이드리언은 시골 촌구석, 저 어두컴컴한 변두리 고등학교 4인방 가운데 가장 똑똑한 친구'다. 아는 게 많다는 소리'다. 수컷인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는 선망의 대상이며 학교 선생들도 그가 영민한 학생'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는 조 헌트 선생과 " 오고가는말풍선 " 게임에서도 절대 밀리지 않는 말빨'을 보여준다. 될 놈은 어릴 때부터 눈에 뜨이는 법. 그는 고교를 졸업하고 캐임브리지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고 다닌다. 여기서 주인공 에이드리언 핀'을 오이디푸스라고 가정하자. 만약에 당신이 왜, 라고 되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 " 이 글은 에이드리언이 오이디푸스라는 가정 하에서 전개되는 글이오 ! "

 

희랍어로 Oida가 " 알다 " 라는 뜻이니,  오이디푸스는 " 퉁퉁 부은 발 " 이라는 뜻도 있지만 " 많이 아는 사람 " 이라는 뜻도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억지로 짜맞춘 느낌은 들지 않을 것이다. 이 가설은 100% 추론이지만 내가 보기엔 줄리언 반스'는 이 작품을 쓸 때 << 오이디푸스 왕 >> 을 염두에 두었던 것 같다. 아님 말고 !  이 작품에서 토니가 에이드리언에게 보낸 저주의 편지는 신탁  신이 사람을 매개자로 하여 그의 뜻을 나타내거나 인간의 물음에 대답하는 일   에 해당된다. 그러니까 토니'라는 인물은 신의 신탁을 에이드리언(오이디푸스) 에게 전달하는 우편배달부'이다. << 오이디푸스 왕 >> 에서는 신탁 내용이 오, 오오 !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할지어다 풍으로 고상한 어투를 사용했지만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에서 신탁 내용은 현대 작품답게 욕이 팔 할이다.

  

이 작품을 << 오이디푸스 왕 >> 을 새로운 스타일로 각색한 소설이라고 가정했을 때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 사이에는 근친 관계'가 성립되어야 한다. 서로 좋아하는 남녀 관계에서 아이가 생긴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서는 예상하지 못한 불운에 속할 수 있겠으나 그것을 대대손손 이어질 저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되기 위해서는 " 너희들의 운우지정 " 이라는 표현에서 " 너희들 " 이란 복수'가 최소한 " 가족 관계 " 가 성립되어야 한다.  내가 보기엔 베로니카의 엄마 사라 포드'는 에이드리언의 상징적 어머니'다. 캐임브리지 대학 장학생 에이드리언이 홀아비 밑에서 자랐다는 설정'은 줄리언 반스'가 치밀하게 준비한 근친상간 비극의 서막인 셈이다.

이 소설'을 읽은 독자가 쉽게 간과한 대목이 바로 사라 포드'가 낳은 아들 이름이 에이드리언과 이름이 같은 에이드리언'이라는 점이다. 헷갈리겠지만 사라 포드의 아들'은 에이드리언'이고 에이드리언의 아빠 또한 에이드리언이며, 당연한 말이겠지만 사라 포드의 정부 또한 에이드리언'이다. 줄리언 반스'는 결정적 힌트'를 아무렇지도 않게 방치했지만 독자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마치 포우의 << 도둑 맞은 편지 >> 에서 중요한 편지'가 아무렇지도 않게 책상 위에 놓여서 그 누구도 의심을 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장관의 < 책상 위 > 는 " 아무도 " 보면 안 될 편지'를 " 아무나 " 봐도 될 편지'로 둔갑시키는 마술 장소'다. 평범한 책상은 곧 letter를 litter(잡동사니)로 바꿔치기한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에게 족쇄처럼 걸린 <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하게 되리라는 ㅡ 신탁 > 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고향을 떠나 먼 타지'로 향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타지'가 바로 자신이 태어난 고향이었듯이, 에이드리언 또한 저주의 신탁을 피하기 위해 베로니카를 떠나 사라 포드 곁에 머문 꼴이 되었다. 신탁이 오이디푸스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그는 테베'로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고, 에이드리언도 토니의 편지가 아니었다면 사라 포드를 만나러 가지 않았을 것이다. 에이드리언이 손목을 그은 행동은 오이디푸스가 눈을 찌른 것과 동일한 자기 징벌'이다. 줄리언 반스 장편소설 << 플로베르의 앵무새 >> 가 플로베르의 단편 << 단순한 마음 >> 를 모티브로 한 메타픽션이라면,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는 소포클레스 희극 << 오이디푸스 왕 >> 를 바탕으로 한 메타픽션인 셈이다.

 

이 소설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 모르는 게 약이다 " 다. 알면...... 그래요, 다친다! 이런 식으로 해석하면 수수께끼처럼 보였던 제목이 박하사탕처럼 환하게 보인다. 제목 << THE SENSE OF AN ENDING >> 에서 줄리언 반스'가 이야기나 영화에서의 결말을 뜻하는, " end " 가 아닌 " ending " 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을 보면 이 소설은 오이디푸스 왕' 이라는 연극이 끝나고 난 소감 = sense 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끝으로 노래 한 곡 듣고 쫑내자. " 걸 밴드, 레인보우가 부릅니다. 연극이 끝난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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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잇 2015-04-17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감한 친구들]도 몇 페이지 읽었을 뿐인데..심상치 않아요^^ 두 인물, 아서와 조지를 병치시키면서 서술해가는데..묘사나 단락들에 군더더기가 없어요. 또 뒤통수 맞을까봐 찬찬히 읽어보려고.. 읽다 뒀습니다;; ㅋㅋ `뒤늦은 각성`,,, 그딴 거 안하고 살다 갔음 좋겠네요ㅜ.

곰곰생각하는발 2015-04-17 15:47   좋아요 0 | URL
오, 욤감한 친구들... ㅋㅋㅋㅋ. 제가 좋아하는 작가가 내가 좋아하는 홈즈 이야기를 푸니
엄청 땡기네요. 플로베르의 앵무새부터 알아봤지만
대단한 작가입니다.

라로 2015-04-17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발님은 타고난 글쟁이에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4-17 15:46   좋아요 0 | URL
나비 님, 과찬이십니다. 이 책 안 읽어보셨으면 함 읽어보십시오.
꽤 재미있습니다. 반스 문장력은 확실히 반할 정도입니다.

stella.K 2015-04-17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래에 보지 못한 곰발님의 제법 긴 글이군요.ㅋ
언제부턴가 극장가에 외국영화 간판거는데 그냥 소리나는대로 쓰더군요. 그리고 옆에 영문으로 쓰고.
직역이든 의격이든 번역해서 간판거는 것도 나름 좋다고 생각하는데 뭔가를 포기한 것 같기도 하고
암튼 성의없어 보이긴 하더군요. 그래도 아가리는 좀 그렇다... ㅋ

예감은 틀리지 않다가 거기서 나온 거군요. 전 나름 좋다고 생각했는데...
암튼 오늘도 유익한 글이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4-17 15:44   좋아요 0 | URL
예감은... 요거 사둔 지 2년 만에 읽었네요. 앞으로 전 신간 안 살렵니다.
신간 사면 신간 읽고 나머지를 읽어야 하는데 그동안 읽지 않은 책 읽느라 막상 신간은 1,2년 후에나 읽고 있으니..... 용감한 사내들인가요 ? 신간 ?! 고거 보고 문득 생각나서 예감 읽었네요... ㅎㅎㅎㅎ.
오늘은 아모스 오즈의 블랙박스 읽을 참인데 요 책은 산 지 한 5년 된 거 같습니다.. ㅋㅋㅋㅋㅋㅋ
이게 무슨 짓인지.....

stella.K 2015-04-17 16:10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저는 10년 바라보는 책도 있어요.
어떤 건 하도 안 읽어 중고샵에 넘긴 것도 있구요.
또 그 안에 절판된 책도 있어서 이건 그냥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거구나
그런 책도 있어요. 저도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어요.ㅠ
전 신간 안 사는 게 아니라 못 삽니다. 이러다 언젠간 절판될지도 모르죠.
확실히 책도 연이 있어야 읽게되는 가 봅니다.ㅠ

곰곰생각하는발 2015-04-17 16:14   좋아요 0 | URL
이상하게 사고 싶지 않다가도 절판되는 순간 살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오고는 하죠..
그래서 안 읽은 책이 많은 데도 미리 사두는 모양입니다.

짹짹 2015-05-11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볼까 하고 검색해보던 중 발견했어요 양들의 침묵 리뷰?도 읽었구요 저도 이런 글을 쓰고싶네요 반하고갑니당!

곰곰생각하는발 2015-05-11 16:31   좋아요 0 | URL
반하고갑니당`이시군요. 저도 새누리에 대항하기에는 새천년민주당은 힘이 약해 보입니다. 반하고갑니당`이라 신선한 야당이네요.. 허허.. 이 소설 재미있습니다.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짹짹 2015-05-11 16:40   좋아요 0 | URL
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친해지고싶어요 곰발님이라고 부르면 되는거에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5-11 23:18   좋아요 0 | URL
네, 곰곰발`이라 불러주십시오 !

짹짹 2015-05-11 23:19   좋아요 0 | URL
네 곰곰발님ㅋㅋ 좋은밤되세요~
 

 

 

 

 

 

 

 

 

닭'을 잡는다 !                                  




 

 

 

 

 

 

 

 

 

 

 

 


 

 

 



가물치도 아니면서 책 제목이 가물가물하니 일단은 단순하게 " 고서 " 라고 해두자. 조선시대 백탑파 가운데 한 명이었던 이덕무'가 쓴 책이므로 고서'가 맞긴 맞다. 이덕무가 쓴 " 古書 " 를 보면 쥐'가 닭을 잡아먹는 장면'이 나온다. 닭이 쥐를 잡는 것이 아니라 쥐가 닭을 잡아 ?!  의아스럽게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정말로 쥐'가 닭을 잡아먹는다. 이덕무는 자신이 본 희한한 광경을 차분하게 기술한다. 내용은 이렇다. 캄캄한 밤이 되면 쥐는 닭장 속에 갇힌 닭 뒤꽁무니 쪽으로 몰래 다가간다. 그리고는 똥구멍'을 살살 핥는다. 일종의 오럴섹스'다. 황홀해진 닭은 오르가슴에 도달할 때까지 엉덩이'를 더욱 쥐새끼 입 쪽으로 들이민다. 뜨거운 혓바닥이 아.......  좀더...... 아, 좀.... 더......깊게........ 드루와 ~ 드루와 ~ 

그런데 놀라운 것은 쥐는 핥는 것이 아니라 똥구멍을 갉아먹는다는 사실이다. 닭은 죽는 순간까지도 이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결국 닭은 속이 파여 내장이 끊어지는 고통도 모른 채 황홀한 죽음을 맞이한다. 말 그대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단장 斷腸 : 끊을 단, 창자 장  의 고통'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 내용은 << 이목구심서 >> 라는 책에 나오는 대목일 가능성이 높다. 오래전, 도서관에서 서서 눈어림으로 대충 훑은 내용이라 정확한 복기는 아니라는 점을 미리 밝혀두는 바이다. 이 책은 << 耳目口心書 >> 라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이덕무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거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풍문이 된 것들을 담은 수필 형식'이다. 이덕무는 조선 후기 문인으로 독서광이자 메모 예찬자'였다.


그는 왕족 출신으로 방계혈족 傍系血族 이나 서자였으니 사돈의 8촌의 5촌 당숙의 이웃 같은 존재였을 터. 그는 애초에 출세에 대한 욕심을 버린 채 소박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평소 작고 사소한 것에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라 양반이 체신머리도 없이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식물이나 물고기, 곤충 따위를 오랫동안 관찰하고는 했다고. 흑산으로 유배 떠난 정약전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오랫동안 물고기를 들여다보는 낙으로 살았던,    외로운 사내. 그와 겹쳐진다. 이덕무가  평생 읽은 책이 2만 권'이요, 스스로 남의 책을 직접 손으로 필사한 것만 해도 수백 권이라 하니 책을 읽는 선비를 떠나 책에 미친 바보'라 할 만하다. 당시 책이 귀하던 시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2만 권'은 어마어마한 독서 경력이 아닐 수 없다.


2만 권'이나 되는 장서를 보관하려면 대궐 같은 공간이 필요할 터인데 작은 머릿속에 그 어마어마한 장서를 모두 보관했으니 놀라울 지경이다. 그는 스스로를 간서치 癡 : 지나치게 책을 읽는 데만 열중하거나 책만 읽어서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라고 불렀으나, 사실 그는 모든 분야에 박학다식했고 문장 실력이 누구보다도 뛰어났던 문필가'였다. 한때 교양서 베스트셀러'였던 << 책에 미친 바보 >> 가 바로 이덕무가 쓴 글을 묶어 간략하게 소개한 책이었다. 이덕무의 책은 " 고서는 따분할 것 " 이라는 내 선입견을 단박에 부셨다. 박물학적 잡학 에세이'가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을 보여준다. 궁금하다면 커피 한 잔과 함께 문학의 향기 속으로 드루와, 드루와 !

내가 불쑥 쥐가 닭 뒤꽁무니를 갉아먹는 이야기로 말머리를 여는 까닭은 요즘 여의도에서 제작한 << 인정상, 사정할 수 없다 >> 라는 최신 영화를 구경하다가 문득 이 冊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박근혜와 친박이 떨어진 지지율을 회복할 속셈으로 각하와 친이'를 치기 위해 마련한 것이 성완종 카드'인데 돌발 변수가 발생해서 각하와 친이'가 박근혜와 친박을 궁지에 모는 상황이 벌어졌다는 게 정치 드라마를 보고 훈수 두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놓은 중평'이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둔 경우다. 이 의혹이 사실이라면 성완종 데쓰노트 목록에 오른 홍준표나 이완구는 성姓을 바꿔야 한다. 홍준표는 안준표로, 이완구는 미완구'로 말이다. 상황을 조금 더 지켜봐야 하겠으나 히든 카드로 준비한 " 성완종 토끼몰이 전략 " 은 결국 도끼로 자기 발등을 찍는 꼴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토끼 굴 속으로 도망친 토끼를 잡겠다며 동굴 앞에서 요란법석을 떨며 불을 피우다가 동굴 속에서 토끼 대신 호랑이가 튀어나온 꼴이라고나 할까 ? 알고 보니 토끼 집'이 아니라 호랑이 굴이었던 셈이다. 성완종은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 만만치 않은 사람이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는 이덕무처럼 꼼꼼한 메모광'이었다.  그가 < 죽음 > 과 < 폭로 > 를 서로 맞바꾼 것은 자신의 말'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극한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지금 한국 정치'는 이 사람이 던진 " 다잉-메시지 " 에 주목하고 있다. 3천만 원짜리 자양강장제'로 추정되는 < 비싼 500 > 를 마시며 느긋하게 토끼 사냥을 즐기던 늑대 입장에서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토끼를 " 소탕 " 하려다가 호랑이 " 소굴 " 을 만나더니 이제는" 토끼 " 잡으려다가 " 토껴 " 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꼴이다.

알기 쉽게 정리하자면 닭띠 왈패가 쥐띠 왈패를 잡으려다 오히려 쥐띠 왈패에게 닭띠 왈패가 된통 당한 꼴이다. 요즘 대세인 닭띠 왈패 앞에서 쥐띠 왈패가 찍소리도 못하고 벌벌 떨줄 알았는데 벌벌 떨기는커녕 눈알 불알이면서 " 드루와 ~ 드루와 ~ " 라며 호기롭게 맞짱을 뜨는 중이시다.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이 싸움도 결국에는 기승전(친)박의 위대한 정신 승리'로 끝나는 막장 드라마'일 가능성이 높지만  막장이란 결과가 뻔해도 욕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지 않은가. 옛 선비'는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라고 했으나, 여의도 정치판에서 백로는 멸종된 지 오래'인 것처럼 보인다. 여의도(島)에 까마귀가 날아드니 하늘이 온통 거무퉤퉤하구나. 오로라, 통재라. 성완종 리스트 목록에 올라온 지옥의 8인에게 온힘을 다해.......

" 알밤구(球) : 국어 순화 정책에 따라 야구 스포츠 용어인 빈볼 beanball 은 알밤구로 대체한다. 관련 어휘로는 비슷한말인 꿀밤구와 밤톨구가 있으나 한글 맞춤법 시행령에 따라 알밤구로 통일한다. 투수가 고의적으로 타자 머리를 때릴 목적으로 던지는 공을 빈볼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bean이 콩이라는 뜻과 함께 머리를 때리다'라는 의미가 있으니 이와 유사한 한국어 단어가 알밤'이다. 견과류 열매를 뜻하지만 동시에 머리를 쥐어박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으니 bean과 알밤은 유유상종'이다. 저잣거리 입말의 예 : " 봉중근 투수, 안경환 타자를 향해 고의로 알밤구 날렸나요 ? 안경환 타자 가자미 눈이 되어 봉중근 투수를 째려보자 봉중근 투수  드루와 ~ 드루와 ~ 라고 도발하는군요. 일촉즉발, 아....... 흥미,  진진합니다. 이 맛에 야구 봅니다. " ㅡ 자료 출처, 오소리깻잎사전. 형설시공사 제공.     던지고 싶다 ! "

" 옛날에 말이야. 나가사키 가카'란 분이 계셨다. 대단한 분이셨지. 소 뿔도 단숨에 뽑아버린 분이셨어. 너, 너너너너 소야 ? 나, 나나나나나가사키'야. 나카사키 준뻬이 가카 ! 홍단, 초단, 풍단 종합 9단. 그리고는 뿔을 잡고 존나게 내리치는 거야. 존나게. 뿔이 뽀개질 때까지 !!! 이게 바로 무대포 정신이다, 무대뽀 ! "

 

지금 쥐가 닭의 똥구멍을 갉아먹고 있다.

 

 

 

 

 

 

 

+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이덕무 책을 갈무리한 << 청장관전서 >> 세트'를 구입할 생각으로 알라딘과 접선을 시도했더니 " 품절 " 된 상태'라고 한다. 도서관에서 눈어림으로 짐작한 바로는 이덕무의 산문은 탁월했다. 무엇보다도 읽는 재미'가 있었다. << 태백산맥 >> 마저 고리타분해서 읽지 못하는 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 책을 읽었으니 말이다. 여러 경로를 통해 << 청장관전서 >> 세트(11권)을 구하는 것은 그닥 어렵지 않겠지만 카잔차키스 전집 세트(40권)을 사두고서 아직까지 한 권도 읽지 않은 것을 보면 망설여진다. 관상용으로 전락한 전집 - 포비아'라고 할까 ? 그나저나 카잔차키스 전집은 언제 다 읽을 수 있을까 ? 꼴도 보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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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5-04-15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완구 총리가 만일 자신이 돈을 받았으면 생명ㅡ정치 생명이 아니고 진짜로 목숨ㅡ을 내놓겠다고 국회에서 발언하더군요. 사태 파악 할줄 모르는 도박판의 호구를 보는 것 같아 혀를 차게 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4-16 04:59   좋아요 0 | URL
완구 보면 영구 생각납니다. 내일이면 들통날 거짓말을 오늘 천연덕스럽게 말하고, 발각되면 말을 바꾸고....
코미디언 같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5-04-16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량장난감 완구세트가 만든 토이스토리 대한민국 청와대서 절찬상영

곰곰생각하는발 2015-04-16 17:14   좋아요 0 | URL
토이 스토리... ㅎㅎㅎㅎㅎ 맞는 말입니다.

오쌩 2015-04-16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만 성행위를 에로시티즘으로 승화시킬수 있다고 생각했는데,닭과 쥐의 오랄섹스라....
쾌락은 계속되는 자극에 갱신되고 유지,
그것이 불행을 낳았네요 ㅎ

닭은 자승자박인데
신기한게 mb는 무슨 천운이 따라주는지...운도 반복되면 실력이라고..
이쯤되면,능력?이 대단허다고 인정해야할지....ㅉ


곰곰생각하는발 2015-04-16 17:14   좋아요 0 | URL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이 정도면 이젠 실력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술수의 제왕이라고나 할까요... 기막힌 자임...

samadhi(眞我) 2015-04-20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 미친 바보]를 보면 이덕무의 솔직함에 놀라게 돼요. 역시 글을 쓰는 사람이구나 싶었지요. 체면에 압사할 것 같던 그 시대에 말이죠. 까면 깔수록 까도까도 또 나오는 그네네 사람들. 정말 ˝난˝ 놈들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4-20 11:07   좋아요 0 | URL
이덕무 가만 보면 김수영과 닮은 점이 있죠. 성격은 반대지만 솔직함을 닮았습니다. 아, 이전집 어디서 좀 구했으면 좋았을 것을 아쉽습니다.

samadhi(眞我) 2015-04-20 11:24   좋아요 0 | URL
전집 구하시고 장식용으로 두시게 되거든 저한테 버려주세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4-20 11:29   좋아요 0 | URL
메모해두겠습니다. 이거 절판되어서리.... 헌책방 함 뒤져볼까요 ? 뒤져보긴 했는데 없더군요... ㅎㅎ

samadhi(眞我) 2015-04-20 12:53   좋아요 0 | URL
곰발님의 뽐뿌질에 제가 더 불이 붙었는데요. 책욕심 나서 검색했는데 죽어도 없네요. 아주 오래전 출간본만 있고 ㅠㅠ

곰곰생각하는발 2015-04-20 19:09   좋아요 0 | URL
전 도서관에서 잠깐 읽었는데아, 재미있떠라고요... 그때느 지금이나 사람 사는 거 비슷하구나 이런 느낌 들고 말이죠. 전집 구비했으면 좋았을 것을... 이런 것을 출판사들이 출간하고 그래야 하는데 말입니다.
 

 

 

 


콩bean과 공ball  : 김성근과 장동민




bean : 콩, [타동사][VN] (美 비격식) 머리를 때리다

beanball : (야구) 야구 경기에서 투구가 고의적으로 타자의 머리 근처를 겨냥해 던지는 공




1. 김성근


지난 4월 12일 롯데-한화 경기'에서 빈볼(beanball) 시비'가 벌어졌다. 이동걸 구원 투수'가 황재균을 향해 던진 1구'가 몸쪽으로 바짝 붙었다. 누가 봐도 의심할 만한 투구였다. 황재균이 표적이 되었다는 느낌이 왔다. 전 타석에서도 고의성이 의심되는 데드볼'로 출루했던 황제균이 아니었던가 ! 반신반의, 하지만 두 번째 공도 몸쪽 높은공이었다. 황제균이 피하지 않았다면 데드볼이었다.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제3자가 지켜보아도 티가 나는데 하물며 타자'가 모를 리 없다. 아니나 달라, 3구는 황제균의 엉덩이에 꽂혔다. 육탄전은 불가피했다. 몸과 몸이 뒤엉키는 육체의 향연이 펼쳐지리라. 양 팀 선수들이 우르르 나오고, 심판진은 이동걸 투수'가 고의로 공을 던졌다고 판단해 그를 퇴장시켰다. 여기까지가 롯데-한화 경기에서 벌어진 빈볼 시비의 약사 略史다.

화살은 김성근 감독에게 날아갔다. 이동걸 투수가 자발적으로 빈볼을 던질 확률은 떨어지기 때문이다. 몇 년 동안 2군 무대에 있던 투수가 절치부심하여 처음으로 1군 경기 마운드에 올랐는데 고의로 사구 死球를 던진다 ?! 투수가 고의로 사구'를 던지면 출장 정지'를 당하고 다시 2군 무대로 돌아가야 하는데 과연 이동걸 투수가 그럴 수 있을까. 당연히 김성근 감독에서 가자미 같은 째진 눈꼬리'를 던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하필 황제균이 표적이 되었을까 ? 여러 설'이 많으나 중요한 것은 데드볼 지시의 주체가 김성근 감독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김성근 감독은 7,80년대 야구를 한다. 사람들은 김성근 야구를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김성근 감독이 뛰어난 승부사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가 선보이는 야구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 야신 " 으로 불릴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춘 승부사'이지만 그가 펼치는 야구 스타일'은 비호감이다. 내가 그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선수를 승리'를 위한 소모품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선발 투수 5일 로테이션'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다반사'다. 유창식 투수는 3일 만에 등판해서 다시 공을 던졌고, 불펜 투수 권혁은 중간 계투로 나와 51구나 던졌다. 선발 투수가 51구 던지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5일 로테이션 없이 아무 때나 던져야 하는 불펜 투수에게 51구는 치명적이다. 불펜 투수는 20구 안팎이 적당하다. 저런 식으로 던지면 어깨가 망가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승리를 위해서라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는 승리라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라면 과정은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내가 엘지 팬이면서 전 엘지 감독이었던 김기태'를 싫어했던 이유는 선수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선발 투수가 잘 던졌든 못 던졌든 한 이닝 대량 실점이 아니라면 감독이 투수에게 5이닝을 채워주는 것은 선수에 대한 예의에 속한다(선발 투수는 5이닝을 채워야 비로소 승리 요건을 갖추니 감독이 배려 차원에서 5이닝을 책임지라고 하는 것은 야구 예절에 속한다). 하지만 김기태는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도 종종 4회나 5회 때 투수를 교체하고는 했다. 투수 입장에서 보면 열받을 상황'이다. 김성근 감독도 마찬가지'다. 그는 승리에 집착한 나머지 선수의 미래에 대해서는 가차없다. 몇 년 동안 2군 무대에서 절치부심하다가 1군 마운드에 첫 등판한 이동걸 투수'는 빈볼 시비로 어쩌면 영원히 1군 무대를 밟지 못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항상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야구를 관람할 때는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김성근 감독은 황제균 타자가 1회 때 많은 점수 차이에도 불구하고 도루를 했기에 상대 팀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정작 야구 예절을 벗어난 사람은 김성근 감독이다. 승리에 집착하는 것은 감독의 훌륭한 자질일 수 있으나 승리에 눈이 멀면 맹목盲目이 된다는 점 또한 명심해야 한다. 야구인이라면 공ball과 콩bean은 구별해야 한다. 어떤 감독은 선수와의 예절을 지키기 위해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놓치기도 한다. 야구는 종종 그런 패배'가 아름다운 결실을 맺기도 한다.







2. 장동민


 

야구 용어 가운데 " 빈볼 " 은 " (가득) 찬볼 " 의 반대말이 아니다. 공이 대부분 속이 빈 구조'이기는 하지만 여기서 < 빈 > 은 알맹이 없는 껍데기'라거나 속이 비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 bean > 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빈볼은 " beat ball "  이 아니라 " bean ball " 이다. < bean > 이 콩'이라는 의미로 널리 쓰이지만 " 머리를 때리다 " 라는 뜻도 있으니 빈볼'이란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헤드샷'을 말한다. 사족이지만 빈볼을 굳이 한국말로 번역하자면 알밤구'라고나 할까 ? 머리를 쥐어박는 일을 두고 알밤을 먹이다, 라고하니 말이다. 하지만 투수가 고의로 던지는 공이 모두 머리를 향하지는 않는다. 투수가 고의로 던지는 데드볼은 크게 두 종류'가 있다. (맞아도 그닥 아프지 않은) 엉덩이를 맞추는 데드볼과 맞으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사람 머리를 향해 던지는 헤드샷'이 있다.

고의로 던진 빈볼에 두고 잘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굳이 비교를 하자면 전자는 타자에 대한 배려이고, 후자는 타자에 대한 증오'다. 엉덩이는 살이 많기 때문에 그닥 아프지 않을 뿐더라 맞아도 뼈가 부러지지는 않기 때문에 부상 염려가 별로 없다. 이동걸 투수가 황제균 타자 엉덩이를 맞췄다는 것은 던지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던져야 하는 상황에 대한 미안함이 묻어난 결과였다. 황제균도 투수가 억지로 던진 공'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구속을 낮췄다는 점과 공이 엉덩이를 향했다는 점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그래서 그는 항의의 몸짓만 취했을 뿐 주먹다짐을 하지는 않았다. 홀아비 사정은 과부가 아는 법이니까 말이다. 만약에 알밤구'가 머리를 향했다면 주먹다짐을 했을 것이다. 황제균의 항의'는 이동걸을 향한 게 아니라 김성근을 향한 것이다.

욕도 마찬가지'다 엉덩이를 맞추는 욕과 머리를 향해 날아가는 욕이 있다. 장동민이 여성을 비하하는 욕설'에는 타자 머리를 향한 경멸과 증오가 엿보인다. " ① 카더라 " 통신 찌라시'나, 출세하더니 많이 "② 컸더라 " 뒷담 그리고 " ③ 그럴 줄 알았어 " 스토리'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과격한 언행을 선보이는 장동민 같은 경우는 언젠가 사달이 벌어질 줄 알았다. 언어 폭력뿐만 아니라 그가 종종 유세윤이나 유상무에게 보이는 습관적 신체 폭력( 그가 장난스럽게 상대방 머리를 때리거나 발로 엉덩이를 차는 모습 ) 을 볼 때마다 그가 선보이는 싸가지없는 캐릭터가 극중 캐릭터가 아니라 실제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연예인에게 방송은 밥줄이니 그에게 방송에서 하차하라고 요구할 마음은 전혀 없지만

그가 이 사건으로 인해 방송에서 하차한다고 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는 않을 것 같다. 그가 전에 함께 일했던 코디네이터를 향해 창자를 꺼내 구워서 그 여자 엄마에게 택배로 보내야 한다고 말했을 때 그것은 < 웃기고 싶은 욕심 > 차원이 아니라 < 개같은 인성 > 의 문제였다. 사람들은 그러한 언어 폭력을 술자리에서나 있을 법한 말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러한 말은 술자리에서도 하면 안 되는 말이다. 장동민 말투를 흉내 내서 아무리 " 개 같은 년 " 이라고 해도 창자를 꺼내 구워먹을 정도'인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남성이 여성 혐오 발언을 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하다고 믿는 부류와 다른 하나는 여성이 남성보다 사회적 혜택을 많이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류'이다.

하지만 그 어느 지표를 보아도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으며, 그 어느 지표를 보아도 한국 여성이 남성보다 사회적 혜택을 많이 받고 있다는 자료 또한 찾을 수 없다. 반대로 여성 불평등 자료'는 수없이 많다. 욕으로 흥한 장동민이 욕으로 흥한 박명수와 다른 점은 박명수에게는 나약함을 숨긴 " 위악 " 의 냄새가 엿보이지만 장동민에게는 " 위악 " 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박명수가 내뱉는 < 버럭 > 은 평균 이하'인 약자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위장술'처럼 보인다. 하지만 장동민이 내뱉는 < 버럭 > 은 약점을 보면 물고늘어지려는 들짐승의 사나운 본능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장동민에게는 위악'이 아니라 폭력처럼 보인다. 가식적이지 않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정직한 사람은 아니다. 직설은 때론 가식보다 좆같은 경우가 허벌나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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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4-14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콩이면 홍진호 아닙니까? ㅋㅋㅋ 저는 김성근 감독의 업적과 야구에 기여한 공로는 인정하지만, 감독 스타일은 선호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도 김성근, 장동민 관련 기사 때문에 성완종 리스트와 세월호 추모가 관심 밖이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4-14 21:25   좋아요 0 | URL
장동민 논란은 이미 한물 가지 않았나요 ? ㅋㅋㅋ.
그나저나 장동민은 버럭으로 먹고살았는데 이젠 함부러 여성에게 버럭 할 수 없으니 개그 소재가 거덜난 운명에 처했군요.

오쌩 2015-04-14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구는 잘 모르지만, 이해하는 무리는 없네요 ㅎ 입으로 흥한자 입으로 망한다 하더니, 장동민 ㅉㅉ 안타깝네요.ㅎ

곰곰생각하는발 2015-04-15 08:29   좋아요 0 | URL
가만 보면 이완구도 입으로 흥한 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목숨 내놓겠다. 이런 결전의 말투를 쓰고는 하는데
바로바로 거짓말이란 게 탄로나더군요. 아마 그도 곧 입 때문에 망할 것 같다능....

samadhi(眞我) 2015-04-20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동렬이 때문에 기아가 아작(?)이 난 상황에도 김성근이 기아 감독으로 오기를 바라지는 않았어요. 그렇게 재미없는 야구를 볼 자신이 없었거든요. 김성근이 망가뜨린 투수만 해도 몇 인지. 그래서 망가진(?) 송은범이 기아에 와서 얼마나 속이 터졌는지. 한화의 희망(?)이었던 이태양이 설마 혹사 때문에 수술을 하는 것은 아닌지. 이태양이 동향 출신이라 더 마음이 가는데... 곰발님이 싫어라하는 김기태를 보아야 하는 기아빠인 것이 슬픕니다. 특히, 몸매가 이쁜^^ 대형이를 버려서 으찌나 욕했는지. 그래도 2루베이스 앞에 누웠을 때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5-04-20 11:05   좋아요 0 | URL
꼴찌였던 엘지 김기태 들어와서 4위했을 때부터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남들은 구세주다 하는데 하는 꼴 보니 재수없더군요. 며철 전이었죠. 3:2로 지고 있을 때 기태 역시나 4회 시작하자마자 교체하더군요. 남의 팀이지만 뚜껑열렸습니다. 예의가 없는거죠. 선발은 빅이닝으로 대량 실점 하지 않는 이상은 5회 이상 던지게 해야 합니다. 이게 무슨 선수를 위한 감독의 배려입니까. 김성근도 같아요. 벌떼 야구 말이 좋아 작전이지 ...
권혁 선수 보십시오. 매일 50구씩 던지는 거 같아요. 아작납니다. 아작.....

samadhi(眞我) 2015-04-20 11:25   좋아요 0 | URL
저도 엊그제 잘 던지던 선발 내렸을 때 도저히 이해가 안 가서 애꿎은 남편한테 성질을 냈죠. 잘 던지고도 승도 못챙기는 선발은 얼마나 열 받을 지. 준비 없이(?) 올라왔을 계투들은 얼마나 속이 탔을 지. 이런 감독들 정말 싫어요~~. 경문형아 경익 횽아 같은 감독 또 없나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4-20 11:29   좋아요 0 | URL
한편으로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뭐 4강 가도 성적 부진으로 짜르니 말이죠. 발등의 불이라고
성적에 급급하다 보니 선수 챙기는 문화가 없는 거죠.
반면 메져리그 보십시오. 만년 꼴찌해도 몇 십 년 한곳에서 감독하는 경우도 있짢아요.
사대주의가 아니라 그런 건 좀 보고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메져리그보면 두들겨맞아도 선발은 5회까지는 끌고가더군요.
어차피 야구는 투수놀음이고 투수가 지면 그 게임을 졌다는 심정으로 관리를 해야지 앙을까요...
글고 보면 경문형아 참... 신사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