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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한 초기 걸작 블록버스터 영화 << 죠스 >> 는 국내 개봉 시 << 아가리 >> 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다고 한다. 오락 프로그램에서 종종 이 사연이 소개되는 것을 보면 제목이 꽤나 웃겼던 모양이다. 모두 다 희희낙락. 하지만 나는 아가리'라는 의역 작명이 탁월해서 무릎 탁, 치고 아, 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당신이 우, 할 때 나는 오, 했고, 워, 할 때 와, 했다. B급 영화'라면 제목 또한 B급스럽게 달아야 맛이 난다. 번역 작업이 오리지날에 충실해야 되는 것은 맞지만 직역 작명이 반드시 최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 의역'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재치 있는 의역 작명은 원제목을 한글 독음 그대로 제목으로 차용하는 작품'보다 낫다.
한글 독음 표기 제목 가운데 가장 어이없는 경우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사기꾼 연기를 했던 << Catch Me If You Can >> 이 아닐까 싶다. 한 낱말로 구성된 제목'이라면 모를까, 한 문장 전체'를 한글 독음으로 표기하는 경우는 어떤 심보일까 ? 영화 수입사'는 한글 독음 표기대로 << 캐치 미 이프 유 캔 >> 이라는 제목을 달았는데 한글이 뛰어난 소리글자'라고는 하나 이런 작명은 오리지날에 대한 예우 차원이 아니라 그냥 수입사 직원들이 게을러터져서 성의 없이 내놓은 결과물'이다. 코미디 영화'만큼 작명 작업할 때 쉬운 장르도 없다. << 나, 잡아봐라 ! >> 라거나 << 잡을 테면 잡아봐! >> 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독음 표기로 작명한 이유를 모르겠다. 보그병신체도 아니고 말이다. 굳이 의역을 하자면 사기꾼이 파일럿 행세를 하며 비행기 타고 뜬구름 위를 떠도니 << 뜬구름 잡기 >> 라는 제목도 근사하다.
개인적으로 직역에 가까운 의역 혹은 의역에 가까운 직역 제목을 좋아하는데 가장 탁월한 예가 테오 앙겔로플로스 감독이 연출한 << 황새의 멈추어선 걸음 / To Meteoro Vima Tou Pelargou >> 이다. 직역하자면 << 황새의 정지된 비상 >> 이라고 하는 모양인데 " 정지된 비상 " 보다는 " 멈추어선 걸음 " 이 보다 시적'이다. 이 제목은 예술 영화와 궁합이 잘 맞는다. 제목을 무조건 근사하게 작명한다고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다. 코미디는 코미디 장르에 맞는 작명이 필요하다. < 황새의 멈추어선 걸음 > 을 흉내 낸다고 죠스를 < 상어의 앙다문 입술, 앙! > 따위로 제목을 달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 의역 제목 가운데 최악은 제니퍼 린치 감독이 연출한 엽기 컬트 영화 << 'Boxing Helena >> 이다.
헬레나를 (죽여서) 상자 속에 (구겨) 넣기'라는 뜻인데 놀랍게도 국내에서는 영화 내용과는 전혀 다른 <<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 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로맨스 영화인 줄 알고 봤다가는 낙담사 가서 공염불하기 딱이다. 낙담하기 일쑤라는 소리'다. 달달한 푸딩을 시켰더니 새빨간 사천 짬뽕이 배달되어 온 경우라고나 할까. 줄리안 반스 소설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는 원제가 " THE SENSE OF AN ENDING " 이다. 쉬운 단어로 이루어진 제목인데 막상 떠오르는 글감이 없다. 번역가는 " 결말의 느낌 " 정도로 직역하던데 내용과 연관지어 살펴보면 THE SENSE OF AN ENDING 는 비로소 " 뒤늦게 감을 잡다 " 라는 뉘앙스가 숨겨져 있다. 터널은 끝에 가서야 환해지듯이, 이 소설도 마지막 두 페이지'를 넘겨야 비로소 모든 퍼즐이 선명하게 보인다.
분명한 것은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라는 의역 작명이 내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주인공의 촉은 항상 틀렸기 때문이다. 차라리 << 그의 예감은 틀렸다 >> 라고 의역해야 본문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주인공은 모든 일에 둔해서 끝에 가서야 엄청난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비의 날개짓이 걷잡을 수 없는 태풍이 되어 돌아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까 원제 << THE SENSE OF AN ENDING >> 는 한치 앞도 못 보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난 참 빙딱'처럼 살았군요 ㅡ 라는 뉘앙스'를 가진 제목이다. 굳이 직역이 아닌 의역을 할 바에는 << 나중에 안 사실 >> 이나 << 뒤늦은 각성(예감) >> 이 적당할 것 같다. 아님...... 말고 ! 소설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벨레로폰의 편지 이야기를 차용한다.
편지'라는 소품은 배달 사고를 일으키기 위한 장치'다. 여기서 배달 사고'란 LETTER(편지)가 유통 과정에서 LITTER(잡동사니,쓰레기)로 변질되는 경우를 말한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벨레로폰테스는 " 벨로로스를 죽인 사람 " 이라는 뜻이다. 별명처럼 그는 벨로로스 사람을 죽인 죄로 쫒겨나 프로이토스 왕에게 몸을 의탁한다. 그런데 왕비가 젊은 벨레로폰에 욕정을 품고 왕 몰래 사랑을 고백했으나 벨레로폰은 이를 거절한다. 이에 앙심을 품은 왕비는 왕에게 거짓으로 벨레로폰을 모함한다. 왕은 고민 끝에 리키아 왕 이오바테스에게 편지를 쓰고는 벨레로폰에게 그 편지를 전달해 줄 것을 부탁한다.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편지를 가지고 가는 자를 없애 주십시오. 그는 제 아내이자 당신 딸을 겁탈하려고 한 자입니다.”
이처럼 수상한 편지가 봉인에서 해제되는 순간 어마무시한 일이 벌어진다. 벨레레폰 입장에서 보면 이 편지는 수신인이 봉인을 해제하면 안된다. 이 신화는 셰익스피어 희곡 ①<< 햄릿 >> 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덴마크 왕 클로디어스는 벨레로폰의 편지 전략을 써서 햄릿을 죽일 계략을 꾸민다. 하지만 햄릿은 이 계략을 간파하고 편지지'로 바꿔치기 해서 위기를 모면한다. 결국 수신인은 클로디어스의 편지가 아닌 햄릿이 조작한 가짜 클로디어스 편지'를 받게 된다. 위험한 편지 ㅡ 서사'는 매우 다양한 형식으로 소비된다. ② << 도둑 맞은 편지 / 포우 단편 >> 은 정인情人이 간직해야 할 편지가 엉뚱하게 정적政敵에게 배달된다. 이 편지를 소유한 사람이 권력을 쥔다. 편지는 일종의 권력 반지'다. 그런가 하면 ③ << 낯선 여인의 편지 / 슈테판 츠바이크 단편 >> 에서 편지 수신인'은 러브레터의 발신자'가 누구인지 모른다.
반면 영화 ④ << 파이란 / 송해성 감독 >> 과 ⑤ << 러브레터 / 이와이 슈운지 감독 >> 는 죽은 애인'에게서 뒤늦은 러브레터가 도착하고, ⑥ << 속죄 / 이언 맥큐언 >> 은 저속한 표현이 담긴 편지지를 쓰레기통에 구겨서 버린다는 것이 그만 실수로 편지 봉투에 담아 보낸다. 봉투는 그대로인데 편지지'가 바뀐다는 점에서 햄릿과 유사하다. 이들 텍스트는 모두 엇박자'다. 편지지'가 바뀌거나①⑥, 수신자가 바뀌거나②, 죽은 자에게 편지를 받는다. 그들은 산 자였다가 죽은 자'가 되었다는 점에서 신분이 바뀐 것이다 ③④⑤. 띵동 ! 저승에서 편지 왔어여~ 이처럼 벨레로폰의 편지, 왕비의 연서(도둑 맞은 편지), 클로디어스의 국서國書(햄릿), 뒤바뀐 편지지(속죄)는 봉인을 해제하는 순간 불행이 찾아오는 판도라의 상자'다.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에서 토니는 에이드리언의 편지를 받는다. 한때 토니의 여자친구였던 베로니카와 사귀어도 되냐는 내용이었다. 문장 하나하나 예의를 갖춘 편지였다. 1인칭 화자인 토니는 소설 1부에서 그때 자신이 보낸 답장을 기억해 낸다. 그는 자신이 쓴 답장을 다음과 같이 기억하고 있다. " 이십일일자로 온 자네의 서신을 수령하면서, 본인은 모든 것을 유쾌하고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명시하고자 상찬과 기원을 간절한 마음으로 바치네. 벗이여. ( 77쪽 ) " 이 정도면 애인을 빼앗은 친구에 대한 답장치고는 예의바르다. 하지만 2부에서 실제로 복원된 편지'는 그가 기억했던 내용과는 정반대였다. 화가 난 토니는 온갖 악담을 편지 속에 담는다. " 언니, 나 마음에 안 들죠 ? " 라고 말하자 어디서 반말이니, 라고 반격하는 모양새'다.
에이드리언에게, 아니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에게.
(베로니카, 개같은 년. 잘 지냈나 ? 너도 함께 이 편지를 읽도록)
........
그러니, 베로니카, 에이드리언의 새끼손가락만한 자지에 듀렉스를 끼워줄 때마다 빈틈없이 잘 씌우려무나. 아, 아직 그 단계까지는 안 갔으려나 ? ....... 썩을, 그 여자는 만사를 제멋대로 휘둘러야 성에 차는 종자라서 ....... 너희에게 계절 인사를 보낸다. 그리고 기원컨대 너희의 관절과 성유를 바른 머리통에 산성비가 쏟아지기를.
토니
말 그대로 토니가 에이드리언에게 보낸 편지는 LETTER 이 아니라 LITTER 가 된 셈이다. 님이라는 얼굴에 점 하나를 찍으면 막장 드라마 << 前애인의 유혹 >> 이 시작된다. 그 편지는 봉인을 해제하는 순간 읽은 이에게 저주가 내리게 되는 마법에 걸린, 행운의 편지'였다. 읽는 순간, 저주는 실행된다. 마치 클릭 하는 순간 악성 바이러스가 유포되는 수상한 이메일처럼 말이다. 줄리언 반스'는 치밀한 구성으로 씨줄과 날줄을 엮는 솜씨가 탁월하다. 사소한 듯 지나친 문장은 결국 의미심장한 의미가 되어 돌아온다. 작가는 토니'라는 인물을 내세워 조작된 기억과 망각'을 통해 "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 (34쪽) " 이라고 고발하면서 "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미래를 꾸며내고, 나이가 들면 다른 사람의 과거를 꾸며내는 것(141쪽) " 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꼰대가 흔히 말하는 " 왕년에 ~ " 로 시작되는 추억담은 조작된 기억과 망각'이 만들어낸, 기억의 습자지 위에 기록된 문서본에 불과하다. 그것은 오리지날이 아니라 지우고 덧대고 도려낸 사본이다. 줄리안 반스 장편소설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를 읽고 나서 곰곰 생각했다. 초면인 데도 어디서 낯이 익은 얼굴'이라고나 할까. 개성이 강한 얼굴'이라 흔한 얼굴'은 아닌데 어디서 많이 본 얼굴. " 어디서 봤더라 ? " 잠시 후, 무릎 탁, 치고 아, 했다.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는 막장의 원조, 소포클레스 희곡 << 오이디푸스 왕 >> 과 유사했던 것이다. 이 말은 마치 변희재와 진중권이 알고 봤더니 이란성 쌍둥이였더라, 라는 소리처럼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두 작품이 가지고 있는 유사성을 비교 검토하고 나면 아, 하고 무릎 탁, 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 작품은 주인공 토니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소설'이다.
하지만 방향을 바꿔 에이드리언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후 전개하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튀어나온다. 주인공 에이드리언은 시골 촌구석, 저 어두컴컴한 변두리 고등학교 4인방 가운데 가장 똑똑한 친구'다. 아는 게 많다는 소리'다. 수컷인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는 선망의 대상이며 학교 선생들도 그가 영민한 학생'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는 조 헌트 선생과 " 오고가는말풍선 " 게임에서도 절대 밀리지 않는 말빨'을 보여준다. 될 놈은 어릴 때부터 눈에 뜨이는 법. 그는 고교를 졸업하고 캐임브리지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고 다닌다. 여기서 주인공 에이드리언 핀'을 오이디푸스라고 가정하자. 만약에 당신이 왜, 라고 되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 " 이 글은 에이드리언이 오이디푸스라는 가정 하에서 전개되는 글이오 ! "
희랍어로 Oida가 " 알다 " 라는 뜻이니, 오이디푸스는 " 퉁퉁 부은 발 " 이라는 뜻도 있지만 " 많이 아는 사람 " 이라는 뜻도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억지로 짜맞춘 느낌은 들지 않을 것이다. 이 가설은 100% 추론이지만 내가 보기엔 줄리언 반스'는 이 작품을 쓸 때 << 오이디푸스 왕 >> 을 염두에 두었던 것 같다. 아님 말고 ! 이 작품에서 토니가 에이드리언에게 보낸 저주의 편지는 신탁 : 신이 사람을 매개자로 하여 그의 뜻을 나타내거나 인간의 물음에 대답하는 일 에 해당된다. 그러니까 토니'라는 인물은 신의 신탁을 에이드리언(오이디푸스) 에게 전달하는 우편배달부'이다. << 오이디푸스 왕 >> 에서는 신탁 내용이 오, 오오 !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할지어다 풍으로 고상한 어투를 사용했지만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에서 신탁 내용은 현대 작품답게 욕이 팔 할이다.
이 작품을 << 오이디푸스 왕 >> 을 새로운 스타일로 각색한 소설이라고 가정했을 때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 사이에는 근친 관계'가 성립되어야 한다. 서로 좋아하는 남녀 관계에서 아이가 생긴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서는 예상하지 못한 불운에 속할 수 있겠으나 그것을 대대손손 이어질 저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되기 위해서는 " 너희들의 운우지정 " 이라는 표현에서 " 너희들 " 이란 복수'가 최소한 " 가족 관계 " 가 성립되어야 한다. 내가 보기엔 베로니카의 엄마 사라 포드'는 에이드리언의 상징적 어머니'다. 캐임브리지 대학 장학생 에이드리언이 홀아비 밑에서 자랐다는 설정'은 줄리언 반스'가 치밀하게 준비한 근친상간 비극의 서막인 셈이다.
이 소설'을 읽은 독자가 쉽게 간과한 대목이 바로 사라 포드'가 낳은 아들 이름이 에이드리언과 이름이 같은 에이드리언'이라는 점이다. 헷갈리겠지만 사라 포드의 아들'은 에이드리언'이고 에이드리언의 아빠 또한 에이드리언이며, 당연한 말이겠지만 사라 포드의 정부 또한 에이드리언'이다. 줄리언 반스'는 결정적 힌트'를 아무렇지도 않게 방치했지만 독자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마치 포우의 << 도둑 맞은 편지 >> 에서 중요한 편지'가 아무렇지도 않게 책상 위에 놓여서 그 누구도 의심을 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장관의 < 책상 위 > 는 " 아무도 " 보면 안 될 편지'를 " 아무나 " 봐도 될 편지'로 둔갑시키는 마술 장소'다. 평범한 책상은 곧 letter를 litter(잡동사니)로 바꿔치기한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에게 족쇄처럼 걸린 <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하게 되리라는 ㅡ 신탁 > 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고향을 떠나 먼 타지'로 향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타지'가 바로 자신이 태어난 고향이었듯이, 에이드리언 또한 저주의 신탁을 피하기 위해 베로니카를 떠나 사라 포드 곁에 머문 꼴이 되었다. 신탁이 오이디푸스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그는 테베'로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고, 에이드리언도 토니의 편지가 아니었다면 사라 포드를 만나러 가지 않았을 것이다. 에이드리언이 손목을 그은 행동은 오이디푸스가 눈을 찌른 것과 동일한 자기 징벌'이다. 줄리언 반스 장편소설 << 플로베르의 앵무새 >> 가 플로베르의 단편 << 단순한 마음 >> 를 모티브로 한 메타픽션이라면,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는 소포클레스 희극 << 오이디푸스 왕 >> 를 바탕으로 한 메타픽션인 셈이다.
이 소설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 모르는 게 약이다 " 다. 알면...... 그래요, 다친다! 이런 식으로 해석하면 수수께끼처럼 보였던 제목이 박하사탕처럼 환하게 보인다. 제목 << THE SENSE OF AN ENDING >> 에서 줄리언 반스'가 이야기나 영화에서의 결말을 뜻하는, " end " 가 아닌 " ending " 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을 보면 이 소설은 오이디푸스 왕' 이라는 연극이 끝나고 난 소감 = sense 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끝으로 노래 한 곡 듣고 쫑내자. " 걸 밴드, 레인보우가 부릅니다. 연극이 끝난 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