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공간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로컬리티 번역총서 5
오토 프리드리히 볼노 지음, 이기숙 옮김 / 에코리브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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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상처받기 쉽다                                                                                               




부제 : 한국 여성은 왜 불행한가



 

 

 

 


 

최근 고려대에서 진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성이 결혼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행복감'은 2년 정도'라고 한다. 2년이 지나면 행복감은 찌는 더위에 눈 녹듯 사라지고 결혼 전 수준으로 추락한다는 것. 결혼 생활이 인생에 있어서 반평생'에 해당되는 길고 긴 세월'이라고 했을 때, 고작 " 당신과 함께 한 행복한 2년 " 을 얻기 위해서 결혼을 한다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반면 남성은 대체로 결혼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행복 기간'이 결혼 내내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정적인 성 공급과 가사 노동을 공급받기 때문이다. 이 결과를 두고 " 히스테리아 " 와 " 멜랑콜리아 " 같은 여성 특유의 기질 탓으로 돌리기 전에, 이 연구를 진행한 로버트 루돌프 국제학부 교수의 진단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 한국 부부들이 결혼으로 발생하는 이득을 동등하게 배분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여성 행복 만족도가 낮은 이유는) 높은 성 불평등 때문일 것 " 이라며 " 이와 달리 영국과 독일의 경우 결혼을 통한 이득이 동등하게 배분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 고 말했다. 이처럼 행복이라는 이름을 가진 피자 조각 배분이 공정하지 않으니 여성 입장에서 보면 결혼은 남성에게 유리한 제도'라 할 수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죽음으로 인한 사별이나 이혼으로 인한 이별 시, 한국 남성은 여성보다 훨씬 더 많은 고통과 상실감을 호소한다는 결과가 나오지만 영국이나 독일은 이별에 따른 남녀 간 고통 지수'가 동일하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홀아비는 이가 서 말이고 홀어미는 은이 서 말이라는 속담이 통계적으로 증명된 꼴이다.

이 정도면 한국 남성은 < 주부 > 가 여러 계급 가운데 가장 저평가된 우량주'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옛부터 집은 여성을 지시하는 직유'였다. < 家 > 라는 한자는 크게 두 갈래 뜻을 가지고 있는데 첫째는 집이고, 둘째는 여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 여자 고' 와 姑 : 여자 고'는 통자 桶子'다. < 家 > 는 이미 오래전부터 집과 여성을 하나로 인식한 것이다. 한국어도 마찬가지'다. 집은 곧 여성'이었다. < 집사람 > 이란 단어'는 아내를 지시하는 낱말로 남성에게는 사용할 수 없다. 집사람에 속하는 이는 남편, 시부모, 자식도 아닌...... 오직 아내뿐이었다. 이러한 인식은 서양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민코브스키는 논문 << 공간, 친근감, 주거 >>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독신 남성의 집은 편안해 보이지 않으며, 아내와 사별한 남자는..... 전에 그의 집을 지배했던 편안하고 친근한 기운을 결코 만들지 못한다. 그의 집에서는 차츰 이 분위기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삶을 일구어가고 자기 주변과 사람들 사이에 친근감을 만들려면 우리는 인간의 숙명에 따라 둘이서 살아야 옳다.

 

- < 인간과 공간 > 에서 인용한 것을 재인용

 

 

여성이 부재하는 집에 사는 남성은 결핍을 경험하게 된다. 하여튼, 동양 홀아비나 서양 홀아비'나 이가 서 말이다, 시바. 흥부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흥부가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온다. 11명이나 되는 자식'들이 몰려와 시끄럽게 재롱을 부린다. 흥부 아내'는 집에 없는 모양이다. 집구석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던 흥부가 자식들에게 말한다. " 다들 어디 갔니 ? 집이 왜 이리 훵해 ! " 주부 시청자를 타겟으로 설정한 << 아침마당 >> 같은 프로그램에서 종종 소개되는 이야깃거리'다. 어깨가 축 쳐진 한국 주부'를 위한 위로'이지만 진심은 느껴지지 않는 말'이다. 방송이란 게 원래 위하는 척하는 흉물'이다. 하지만 흥부가 툭, 내뱉은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집안이 아무리 왁자지껄해도 아내가 없으면 휘휘하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티가 나는 법이니까. 이때 흥부는 집을 < 찬 곳 > 이 아닌 < 빈 곳 > 으로 인식한다. 훵하다는 말은 속이 비었다는 뜻이니 공간 空- : 빌 공'인 셈이다. 속이 빈 대나무로 지은 집이라고나 할까 ? 이처럼 집을 장소가 아닌 공간'으로 인식하게 되면 집에 대한 장소애(장소에 대한 애착) : topophile, 바슐라르, << 공간의 시학 >> 는 줄어들게 된다. 집이라는 공간은 이제 단순히 잡동사니를 채우기 위한 다락방이나 지하실 역할을 할 뿐이다. 집이 제 기능을 잃고 다락방이나 지하실 신세로 전락하게 되면 거주자는 답답함을 호소하게 되는데, 그 원인은 다락방이나 지하실은 창문이 없기에 감옥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집(가정)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말하던 남자는 어느새 이렇게 내뱉는다. " 시바, 내 이놈의 집구석을 그냥 !!! "

그렇다고 해서 이 글이 아버지의 자리'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아니다. 집을 기준으로 했을 때 어머니에 비해 아버지의 중요도'가 떨어진다는 것을 강조할 뿐이다. 아이들에게 아버지나 어머니는 모두 동일한 보호자이다. 생택쥐페리'는 " 모든 집은 위협받고 있다 " 고 말했다. 그만큼 집은 안전한 장소이면서 동시에 위험받는 공간'이기도 하다. 집은 타자에 의해 꾸준히 공격받고, 심지어는 가족 내 구성원에 의해 공격받기도 한다. 집은 충만이면서 결여'인 존재'다. 공포 영화나 재난 영화에 등장하는 십대는 대부분 결손 가정'이 많은데 이들은 대부분 편부 슬하'이거나 편모 슬하'다. 혹은 가정 불화'에 시달린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한 영화 << 죠스 >> 에서 주인공 가족은 엄마가 부재하고,  << 이티 >> 에서는 남편이 부재 중'이다.

뿐이 아니다. 영화 << 캐리 >> 와 << 엑소시스트 >> 에서도 사춘기 소녀들'은 모두 아버지'가 부재한다. 부모의 부재는 결국 집을 휘휘한 공간'으로 만들고, 이 빈 자리'를 공포가 채운다. 공포 영화'가 집요하게 다락방이나 지하실을 자주 보여주는 이유는 다락방과 지하실이 < 만남의 장소 > 가 아니라 < 은폐(수납)의 공간 > 이라는 데 있다. < 만남의 장소 > 는 있으나 < 만남의 공간 > 이란 없지 않은가 ?  오토 프리드리히 볼노는 << 인간과 공간 >> 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내 집은 가장 가깝고 당연한 공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먼 곳이다. 우리는 집에서 살면서도 먼 곳에 존재하기 때문에 집은 상처받기 쉽다1 " 따라서 " 우리는 집을 좋아해주어야 한다. " 이 감동적인 문장은 " 남성은 여성과 함께 살면서도 먼 곳에 존재하기 때문에 아내는 상처받기 쉽다. 따라서 우리는 아내를 좋아해주어야 한다 " 라고 표현해도 된다. 

 

남편이 " 집안일 " 을 함께하는 것은 가정 주치의가 청진기로 몸 상태를 살피고 치료하는 일에 해당되지 않을까 ? 오래되어 누수가 진행되는 수도관을 고치는 일은 상처 난 아내 손에 밴드를 붙이는 일이요, 막힌 하수도를 뚫는 일은 혈전을 막는 일일 것이다. 집은, 은유보다는 직유에 가까운 여자의 몸이니까.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이 연출한 << 길 >> 에서 짐파노는 젤소미나'가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겨울 바람에 휘청거리는 나무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내는 깊은 밤, 느닷없이 오열한다. 사랑하는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집을 잃는다는 슬픔. 영화 << 파이란 >> 에서도 최민식은 방파제에 앉아 짐파노처럼 오열한다. 여자를 잃는다는 것을 집을 잃는다는 슬픔. 그는 3류 외지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갈 결심을 한다. 먼 곳에 있는, 아주 먼 집.

 

오토 프리드리히 볼노의 << 인간과 공간 >> 은 공간사회학 관련 서적'이지만 상당히 문학적'이다.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좋은 책과 마음에 드는 애인'은 서로 닮은 구석이 많다. 여러 사람에게 소개하고 싶으니 말이다 ■

 

 

 

 

 

 

에필로그

 

글 쓸 때 참고하려고 바슐라르의 << 공간의 시학 >> 을 찾는데 보이지 않는다. 눈어림으로 훑었다가 다시 꼼꼼하게 살폈다.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낮게 소리쳤다. " 시바, 이놈의 집구석...... "





 

  1. 인간과 공간, 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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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5-04-22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 생활이 남녀에 비대칭이라는 것은 우리나라의 속담 ; 할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신 할머니는 할아버지 몫까지 살고, 할머니가 먼저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따라 간다는 말이 있죠.

곰곰생각하는발 2015-04-22 12:01   좋아요 0 | URL
솔직히 할머니들은 할아버지를 수발 들어야 하니 안 계시면 일손 더는 거죠.. 뭐.
영국이나 독일 같은 경우 이별에 따른 고통 지수가 남녀 동등하게 , 비슷하게 나타나는 걸 보면 평소 가사 노동 분담이 이루어진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남자다 미래(?)를 대비하여 설것이도 하고 밥도 하고 그래야 할 거 같습니다. ㅎㅎㅎ

stella.K 2015-04-22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남자들 집에 있는 게 진짜 꼴보기 싫더라구요. 좀 나가 줬으면 좋겠어요.
그러다 저녁이나 밤에 들어오는 그런 구조...ㅋㅋ
별로 집에서 크게 되움이 안 되거든요. 진짜 말씀하신대로 집에서 이것저것 봐주면 모를까.
그렇다고 뭐라고 할 수는 없고.
나이가 들면 남녀 호르몬의 역전이가 일어난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더라도
남자가 집에 있으면 여자가 나가게 되있더라구요.
여자가 좋아하는 남자는 일식이고, 패가망신 자초하는 사람은 삼식이라잖아요.
그래서 남자들도 요리를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오늘 글에서 곰곰발님은 장가 가시면 각시한테 잘하실 것 같군요.ㅎ

마지막 글이 상상히 끌립니다. 요즘 곰곰발님한테서 좋은 책을 많이 소개받는군요.
모르긴 해도 이 글 아니면 지난 번에 쓰신 예감은 틀리지...에서 이달의 당선작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5-04-22 11:59   좋아요 0 | URL
글만 그렇게 쓰지 실천은 글쎄요... ㅎㅎㅎㅎㅎㅎㅎ.
사람들 우스개로 송해야말로 1등 신랑이라고 하던데
각자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편도 집에 있더라도 서로 개인적 시간이 필요한 거 아닌가 싶습니다.

2015-04-22 1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5-04-22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이비드 화이트하우스의 <침대>라는 소설을 보면 주인공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면 다락방으로 혼자 들어가서 목재재료를 가지고 놉니다. 그냥 톱질, 대패질을 했던 것 같습니다. 2년 전에 읽은 소설이라서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소설 속 아버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뚱뚱한 아들은 매일 침대에 눕고, 어머니는 힘들게 뚱보 아들을 수발해요, 이렇다 보니 집안이 점점 콩가루가 됩니다. 아버지와 둘째 아들은 아들만 챙기는 어머니 때문에 불만을 가집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집안이 시끄러우면 불만을 잔뜩 표출하고 다락방으로 올라갑니다. 소설 속 아버지가 불쌍했어요. 가장으로서의 권위가 없었죠. 대신 소설에서 가장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뚱뚱한 아들입니다. 침대에 눕기만 하고, 24시간 어머니의 수발을 받는 모습이 마치 권위적인 남편과 늘 그를 위해서 복종하는 아내의 모습이 연상되었어요.

어쨌든 곰발님의 글을 읽으니까 예전에 읽은 소설 줄거리가 막 생각났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4-23 09:57   좋아요 0 | URL
검색창에 찾아보니 섹스 실전 기술.. 뭐 이런 게 뜨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용 들으니 저도 갑자기 생각난 소설이 있는데 제목이 생각이 안납니다.
그 작품도 침대`라는 것 같았는데..... 한국 작가가 쓴....
아, 가물가물..........

곰곰생각하는발 2015-04-23 09:57   좋아요 0 | URL
검색창에 찾아보니 섹스 실전 기술.. 뭐 이런 게 뜨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용 들으니 저도 갑자기 생각난 소설이 있는데 제목이 생각이 안납니다.
그 작품도 침대`라는 것 같았는데..... 한국 작가가 쓴....
아, 가물가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