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항에 대하여 1






피해자는 용서보다는 복수를 원합니다. 반면에 가해자는 복수보다는 용서를 원합니다. 비지니스 프랜들리한 용어로 표현하자면 소비자의 니즈 " 가 서로 다른 겁니다. 그렇다면 피해자도 아니고 가해자도 아닌 관객(혹은 독자)는 누구 편을 들어야 할까요 ? 당연히 피해자 손을 들어줘야 합니다.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복수보다는 용서가 상위 개념'입니다. 그래서 종교 영화는 주제가 대부분 " 용서 " 이기에 피해자에게 용서를 강요합니다. 


신도여, 용서하면 마음의 평화가 찾아옵니다아. 할렐루야. 아멘.  옛 속담에도 때린 놈은 모로 자고 맞은 놈은 편히 잔다고 하죠 ?  정말 그럴까요. 오히려 맞은 놈은 분해서 잠 못 이루고 때린 놈은 발 뻗고 자는 것 아닐까요 ? 옛날에는 신분제 사회였습니다. 신분은 불변입니다. 주로 신분 높은 놈이 신분 낮은 놈을 때렸습니다. 복수의 기회따윈 없는 겁니다. 맞을 짓을 해서 맞으면 억울하지는 않죠.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조낸 맞는 겁니다. 그 시대는 맞짱이 불가능한 사회였죠. 그러다 보니 약자에게는 자기 위로의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때린 놈은 모로 자고 맞은 놈은 편히 잔다는 속담은 바로 자기 위로의 기술이 반영된 것이죠. 그래야 억울해서 분통이 터지는 2차 피해는 막을 수가 있었던 겁니다. 기독교에서 용서하면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는 주장도 이와 비슷합니다. 일종의 방어 기제인 셈입니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해서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 해서 가해자가 지옥에 빠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피해자의 용서로 인하여 가해자가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는 서사는 인간을 지나치게 순수한 시각으로 바라보거나 악인을 과소 평가하는 것입니다. 한 번 개새끼는 끝까지 개새끼일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3자가 피해자에게 가해자를 용서하라고 말하는 이를 보면 시속 167km의 속도로 등짝 스매싱 열 대를 날리고 싶습니다. 며칠 전, 중앙일보 [ 중앙시평 ] 에 실린 김규항의 << 콤플렉스 민족주의와 역사 청산 >> 란 글을 읽고 나서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한때 안티조선일보 운동에 앞장섰던 b급 좌파 김규항이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한 번 놀라고, 그가 중앙일보에 칼럼을 연재하며 밥벌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두 번 놀라고, 일베의 극우 논리를 그대로 베껴 쓰고 있다는 사실에 세 번 놀랐습니다. 칼럼의 시작은 << 백범일지 >> 를 읽고 나서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김구는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한 사람이다. 나는 그렇지 않은 축에 속하는데, 오래전 『백범일지』를 처음 읽으며 받은 충격 때문인 것 같다. 감옥살이의 고통스러움을 한껏 토로하며 그는 적는다. “아내가 나이 젊으니 몸을 팔아서라도 맛있는 음식을 들여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도 난다.”

[중앙시평] 콤플렉스 민족주의와 역사 청산



글을 읽다 보면 김구 선생은 마치 매춘부의 피를 빨아먹는 기둥서방 같은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가 이 책을 읽지 않고 일베의 주장을 그대로 베껴쓰기 했거나 아니면 휘뚜루마뚜루 읽었을 것이라 추정합니다. 하지만 인용한 문장이 나오는 전체 맥락을 살펴보면 다른 내용입니다. 내 기억으로는 김구는 상상할 수 없는 잔인한 고문으로 인하여 육체와 정신이 무너지자 정상이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고백한 내용입니다(오래 전에 읽은 책이라 정확한 진술은 아닙니다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굶다 보면 사람도 잡아먹습니다. 그렇다면 김규항은 왜 이 문장만 짜집기해서 사실을 왜곡하는 것일까요 ? 


그는 이 칼럼에서 김구와 같은 아버지 남성 세대들이 일본에 딸을 팔아서 굶주린 배를 채웠다고 주장하기 위해서입니다. 항일 독립 투쟁의 상징적 인물을 폄훼하고 일본군 위안부는 일본의 강제 동원이 아니라 한국인의 자발적 참여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고도의 기교입니다. 위안부 피해자는 한순간에 자발적 매춘부가 됩니다. 사실 왜곡으로 시작한 글은 억지 논리를 펼치기 시작합니다. 



일본 지배계급(제국주의 세력)과 조선 민중 사이에서 일이었다. 대다수 일본 민중 역시 전쟁에 동원되고 착취당하는 피해자였으며, 조선의 지배계급은 일본 지배계급과 공조하며 안락을 유지했다.
 

[중앙시평] 콤플렉스 민족주의와 역사 청산


그는 전쟁 범죄를 일으킨 일본인 전체를 가해자라고 규정하면 안된다고 말합니다. 소수의 가해자가 있을 뿐 대다수 일본인도 전쟁 피해자'라고 주장합니다. 전쟁에 동원되어 전쟁 범죄를 일으킨 일본 민중은 일본 지배계급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거죠. 그렇다면 나치에 부역해서 처벌을 받은 수많은 독일인들도 피해자란 공식이 성립됩니다. 그들도 독일 지배계급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니 말이죠. 하지만 그는 20년 넘게 글을 쓰면서 나치 부역자를 피해자라고 주장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일로독불, 일본 국민이 하면 로맨스이고 독일 국민이 하면 불륜인가요 ? 


피해자와 가해자의 서사 중에서 가장 악질적인 서사는 가해자를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것입니다. 가해자의 시선으로 사건을 재구성하는 이야기보다 더 악질적인 방식이죠. 김규항의 이 칼럼은 가해자를 피해자로 둔갑시킨 전형적인 곡학아세입니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순간, 위안부 피해자는 복수는커녕 그 알량한 용서(할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을 당한 꼴이 되었습니다. 이 막장의 끝은 이렇게 끝납니다. 


민족은 실재하며 무시될 수 없다. 그러나 보편성을 잃은 민족주의는 언제나 예외 없이 악용된다. 콤플렉스 민족주의가 만연할 때, 지워지는 건 민족 내의 계급 현실이다. 그리고 계급 현실의 보편성에 기반을 둔 인류애다. 평범한 한국 노동자의 친구는 동족 이재용인가, 평범한 일본 노동자인가. 콤플렉스 민족주의를 벗고 보편적 인류애를 가진 개인들로 설 때도 되었다. 오늘 한국 시민은 당연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 아이들은 처음부터 그렇게 살아가도록 도와야 한다. 그게 진정한 역사 청산이며 회복이다.


[중앙시평] 콤플렉스 민족주의와 역사 청산



그가 이 칼럼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한국 피해자와 일본 피해자의 피해자 연대'입니다. 일본 위안부 문제과 역사관에 대해 서술하던 그는 느닷없이 노동자'라는 이름을 거론합니다. 그리고는 보편적 인류애를 들먹이며 노동자 연대 (계급투표)를 역설합니다. 피해자라는 단어가 노동자로 바뀌었으니 노동자 연대는 곧 피해자 연대죠. 위안부도 피해자이고 일본 지배 계급에 의해 군에 동원된 일본군도 피해자이니 위안부와 일본군은 동지적 관계가 됩니다. 전쟁 범죄를 보편적 인류애로 전환하는 이 창발적 문장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칼럼을 읽고 육두문자를 남발하고 싶지만 참겠습니다. 그래요, 우리 김규항 씨, 팔뚝 참..... 굵어요, 존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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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하면 지치고 지치면 변절한다  :











김규항에 대하여 2






주먹 대신 입으로 싸우고 행동 대신 말로 먹고 사는 것이 정치인이라지만 정치인의 말은 믿을 것이 못 됩니다. 진심이 없다 보니 감동이 없고 변심이 들끓다 보니 통찰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기억 속에 오래 남는 정치인의 말은 이해찬이 한 말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죠. " 거창하면 지치고, 지치면 변절한다 ! " 


정치적 스펙트럼에서 가장 오른쪽이거나 가장 왼쪽에 있는 사람일수록 대의명분이 거창한 법입니다. 나보다는 우리, 우리보다는 집단, 집단보다는 국가, 국가보다는 세계에 집착하는 특징을 보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시적 담론입니다. 거시적 담론의 끝판왕은 독수리 5형제입니다. 그들은 우주의 평화를 위해 싸우죠.  세계 평화도 아니고 우주 평화라...... 후훗.  저는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대만 감독 차이 밍량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 인류의 먼 미래를 걱정하는 영화는 나쁜 영화이고, 나의 내일을 걱정하는 영화는 좋은 영화다 ! " 


입만 열었다 하면 자유, 국가, 미래, 평화를 남발하는 인간치고 좋은 놈 못 봤습니다. 김규항은 자신을 가장 아래 그리고 가장 왼쪽에 서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지정학적 위치로 보자면 좌파 중에서도 가장 왼쪽인 셈이죠. 그는 자신이 비주류 강성 좌파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스스로 b급 좌파'라고 합니다. 그런데..... 참, 신기합니다. 예수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그는 최하층 민중 노동자를 대변한다면서도 그가 쏟아낸 글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부르주아 살롱 언어였습니다. 배운 자가 아니면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였죠. 그는 누구보다도 거시적 담론에 집착하는 논객이었습니다. 


그를 새롭게 보기 시작한 계기는 2002년에 발생한 페미니즘 논쟁이었죠.  이 논쟁의 시작은 김규항이 < 씨네21 > 에 쓴 << 그 페미니즘 >> 이라는 글이었습니다(김규항을 둘러싼 페미니즘 논쟁은 아래 링크를 걸어두었습니다).  그는 이 글에서 페미니스트 최보은을 공격하면서 페미니즘을 " 중산층 인텔리 여성의 지적 놀이(터) " 로 치부했습니다. 일종의 티타임 살롱 페미니즘이라고나 할까요 ?  그는 주류 페미니즘이 하층 여성 노동자를 배제했다면서 그들의 페미니즘은 기만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최보은을 공격하면서 지적했던 중산층 인텔리의 지적 유희'라는 말은 사실일까요 ?  그렇지 않습니다. 최보은은 김규항의 글에 대한 답글을 쓰면서 자신은 농부의 아내로써 겨우 월급 60만 원 받고 육아와 살림 모두를 책임지는 가난한 여성 노동자일 뿐 아니라 매 맞는 아내였다고 김규항을 직격했습니다. 김규항이 공격한 중산층 인텔리 여성의 주류 페미니즘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것이죠. 그는 가족사까지 공개한 최보은에게 사과를 했을까요 ?  무엇보다도 제가 그의 글에서 주목한 것은 그가 자신의 주장을 펼치면서 싸지른 거시적 언어들이었습니다. 


한겨레 토론마당의 어느 독자는 그의 거시적 언어를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 지평, 조망, 겸손, 연대, 보편, 인간, 해방, 좋은 단어는 많이 적어놓았으나, 이 문장이 뭘 가리키는 지는 흐릿합니다 " 매우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글의 주장이 궤변일수록 추상적 단어를 남발하게 됩니다. 한국의 주류 페미니즘이 하층 여성 노동자의 권익을 배제시켰다면서 두 눈 부릅뜨고 화를 냈던 김규항은 세월이 흘러흘러흘러흘러 중앙일보에 주기적으로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그는 << 콤플렉스 민족주의와 역사 청산 >> 이라는 칼럼을 통해서 일본군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부로서 일본군과는 동지적 관계에 있었다고 공격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여성이야말로 가난한 기층민중를 대표하는 피해 여성 노동자인데 말입니다. 김규항 페미니즘 논란 그 후의 언행이 궁금하여 찾아보니 그는 이런 말들을 쏟아냈습니다.  " 윤석열에 대해서는 그 연배의 아재 중에서는 드문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이준석의 당선은 한국 보수 세력이 70년 이상 유지해 온 반공주의가 시효를 다했음을 상징한다 ! " 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이재명의 점령군(미군) 발언에 대하여 이준석은 색깔론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당신이 말하는 반공주의와의 빠이빠이인가요 ?  맨밑바닥에서 가장 왼쪽이라고 스스로를 명명했던 그가 이제는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을 지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스스로 강성 진보라고 자부하던 그가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이준석을 진보라고 말하는 그 용기가 가상합니다. 불후불흑/不厚不黑 이라고 하죠. 얼굴은 두껍고 마음은 검다. 변심이라는 표현은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변신이라고 말하기에는 지나치게 문학적이어서 저는 그의 코페루니쿠스적 전환을 변태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49%의 진담과 51%의 농담을 섞어서 당신의 위안을 걱정합니다. 잘 먹고 잘 사세요, 벽에 똥칠할 때까지. 건투를 빕니다. 





▷ 김규항, 페미니즘 


▷ 콤플렉스 민족주의와 역사 청산









​                               


■  덧대기




김규항은 중앙일보 칼럼 < 중앙시평 : 콤플렉스 민족주의와 역사 청산 > 이라는 글에서 콤플렉스 민족주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콤플렉스 민족주의는 한국 남성 특유의 가부장적 피해의식과 관련이 있다. 일본에서 역사 관련 발언이라도 나오면 다짜고짜 발끈하기부터 하는, 일본과 스포츠 경기를 ‘전쟁’(대일전)으로 규정하며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피해의식 말이다. "  여기서 그가 말하는 대표적 스포츠 경기는 축구일 겁니다. 그는 한국 대중이 콤플렉스 민족주의에 함몰되어서 정치적 / 역사적 맥락으로 스포츠를 이용한다고 비판을 합니다. 그런데 그는 2002 한일 월드컵이 한창일 때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 꿈도 희망도 없는 고단한 일상에 찌들 대로 찌든 사람들이 제 나라 축구팀이 세계 16강 진출이라는 목표치를 두 번이나 경신했다고 너도나도 광장으로 뛰쳐나오는 일이야 너무나 당연하지 거기에 무슨 의식성이 있고 혁명이 있다는 겁니까(2002.07.18 씨네21) " 그가 이 글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스포츠는 단순한 오락거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경기 결과를 두고 스포츠를 정치적/역사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지적입니다. 정반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저는 그가 썼던 문장으로 그가 쓴 문장을 반박하도록 하겠습니다. " 이봐요, 김규항 씨 ! 그냥 한일전을 두고 거기에 무슨 의식성이 있고 혁명이 있고 콤플렉스 민족주의가 있다는 겁니까 ? 그냥 축구는 축구예요. 한갓, 오락거리를 두고 질척질척대지 좀 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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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1-07-06 1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란 카피가 생각나요~ -.-;;

곰곰생각하는발 2021-07-06 21:28   좋아요 0 | URL
그러면 사랑이랑 양심은 같은말이네요. 양심도 움직이는 거니...

다다 2021-07-06 2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이~곰곰생각하는발 님 너무 하셨어요. 님 글만 읽으면 김규항씨가 윤석열 지지 선언이라도 한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요. 제가 좀 찾아봤어요. 그냥 나는 김규항이 싫다 한 문장이면 족할 것을요. 아무리 싫어도 그렇지 사실이 아닌 걸 왜곡해서 사람을 매도 할 필요는 없잖아요.

0.
곰곰님 : 그는 << 콤플렉스 민족주의와 역사 청산 >> 이라는 칼럼을 통해서 일본군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부로서 일본군과는 동지적 관계에 있었다고 공격합니다.

김규항의 글 : ˝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를 민족의 성녀라 추켜올리거나 자발적 매춘여성이라 깎아내리는 일도 그렇다. 위안부의 가장 주요한 정체성은 빈곤과 여성이다. 부유한 위안부도, 남성 위안부도 없다. 위안부는 ‘가난한 집 딸들’이었다. 딸을 파는 가난한 아버지들이 많았다. 김구의 말에서도 비치듯,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매매를 중계하는 조선인 업자들도 많았다.

팔려가는 딸들의 역사는 일본군 위안부로 끝나지 않았다. 해방 후 미군 위안부와 전쟁에서 한국군 위안부의 역사로 이어진다. 연구자들은 한국 정부가 미군 위안부와 한국군 위안부를 매우 적극 관리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팔려가는 딸들, 여성 인신매매는 그 후로도 매춘 산업의 주요한 공급 방식이 된다.˝ [중앙시평] 콤플렉스 민족주의와 역사 청산

다다: 이 글 어디에 자발적 매춘부를 긍정하며 동지적 관계라고 서술했으며 위안부를 공격하는 내용이 나오는가요?

1.
소위 김규항-최보은 논쟁은요. 최보은씨가 지자체 선거와 대선을 쌍으로 맞은 정치적 시점에서 여성정치가 아예 의제가 되지 못하는 현실을 주시하다가, ‘박근혜를 여성의 눈으로 보자’, ‘여성이 여성을 찍자’는 주장을 먼저 했었고, 이에 김규항씨는 여성주의의 특정한 경향˝ 90년대 이후 주류 여성운동의 분위기가 중산층 인텔리 여성 중심의 탈계급적 운동의 성격을 보인다˝을 비판하면서 한 예로 최보은의 박근혜 연대론을 들었지요. 그 이후 최보은씨가 그 비판을 자신에 대한 비판으로 규정하고 반박글을 쓰며 자신의 사적인 부분을 서술했죠. 그 이후 페미니스트 저널<IF>의 이숙인씨와 남성 페미니스트인 권혁범 교수, 여성주의 저널<일다> 편집장 조이여울씨 등등이 논쟁에 참여하면서 김규항씨 글에 대한 여러 반론이 나왔구요. 이게 논쟁의 흐름인데, 이건 누가 누구에게 사과하고 말고의 문제라기보다 의견의 차이인거죠.


2.
곰곰님 : 맨밑바닥에서 가장 왼쪽이라고 스스로를 명명했던 그가 이제는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을 지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스스로 강성 진보라고 자부하던 그가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이준석을 진보라고 말하는 그 용기가 가상합니다. 불후불흑/不厚不黑 이라고 하죠. 얼굴은 두껍고 마음은 검다. 변심이라는 표현은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변신이라고 말하기에는 지나치게 문학적이어서 저는 그의 코페루니쿠스적 전환을 변태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 이준석 당선의 사회적 역사적 의미는 세대 교체가 아니라 이념 교체이다. 그의 당선은 한국 보수세력이 70년 이상 유지해 온 반공주의가 시효를 다했음을 상징한다. 그것은 ‘문재인은 사회주의자’라고 말하는 멍청이들이 보수에서 사라지는 변화이자, 동시에 보수(국힘)와 리버럴(민주) 정치 구도의 변화이다. 반공주의는 두 세력의 마지막 변별성이었기 때문이다.

두 세력이 레토릭으로서 아닌 실제 정책 차원에서 시장주의 우파로 동일화한 건 20년이 넘었다. 그럼에도 ‘보수:진보’ 정치쇼를 고수하며 그들만의 기득권 경쟁에 전력한 결과, 사회가 이 지경이 되었다.

그들과 맞서는 좌파정치 세력이 없다시피하다는 문제가 남아 있지만(진보 이준석들의 분발을!), 한국 제도정치의 가장 오랜, 가장 고질적인 병폐 하나가 해결된다는 건 그 자체로 희망적인 일이다. <2021년 6월 11일 김규항의 페이스북>

- 직무가 정지됐던 윤석열 검찰총장이 복귀한 걸 두고 “상식의 회복”이라고 하셨더군요.

“윤 총장에 대한 직무정지는 한 진영의 검찰 장악이라는 의도가 뻔히 보이는 일이었어요. 저는 윤석열이라는 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없습니다. 굉장히 고지식한 사람 같다는 생각은 합니다. 그 연배의 ‘엘리트 아재’ 중에는 드문 태도를 갖고 있다고 봐요. 하지만 그의 이념과 세계관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단, 그에 대한 직무정지는 누가 봐도 정략적이고 공공성이 결여된 짓이었죠. 그러니 윤 총장이 업무에 복귀한 건 상식에 해당하는 일이죠.” <2021년 3월 신동아 김규항 인터뷰 중>

김규항씨는 기본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검찰을 둘러싼 일련의 공방을 ˝엘리트 권력끼리의 기득권 싸움˝으로 보고, 검찰을 어느 쪽이 장악하느냐의 문제로 보는 사람인데, 진보 혹은 좌파들 중에 이런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곰곰님은 김규항씨가 변절이라도 한 양 ‘변태‘라고 조롱하시는데, 민주당과 국민의힘 선지 말고, 선지 바깥에 답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정치적 상상력을 봉쇄한다는 점에서 한국 정치의 비극(진영논리)이고, 곰곰님 글은 진영논리의 앙상함을 간명하게 폭로해 주신다고 보입니다. 비오는 밤 편안하시길요 :)

곰곰생각하는발 2021-07-07 10:55   좋아요 1 | URL

기억의집 2021-07-07 0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1-07-07 09:53   좋아요 1 | URL
네. 오랜만이죠 ?

기억의집 2021-07-07 10:01   좋아요 1 | URL
지난 번에도 댓글 남겼는데요!!! ㅎㅎ 흔히 저런 사람들 너무 많어요 목수정 페북 보고 놀랐다는.. 본인들이 좌파 어쩌고 저쩌고 해 놓고는 문재인 욕 엄청 하면서 윤석렬 치켜세우는… 원체 못수정 이상하다 했지만.. 전여옥처럼 국쌍 되기 일보직전~

곰곰생각하는발 2021-07-07 10:56   좋아요 1 | URL
목수정... 코로나 음모론으로 지랄을 하시더니 그냥 멘탈이 나가셨어요...
 


















나는 쥴리가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가 소환한 사람은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였습니다. 그는 왜 가난한 사람들이 자기 이익에 반하는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진실을 알게 되면 올바른 선택을 할 것이라는 계몽주의적 신념은 순진한 착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정치적 언어에서 중요한 것은 진실 추구가 아니라 프레임 구성으로 보았습니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 제가 요며칠 이름이 햄버거인지 셀렌버거인지 하는 사람이 쓴 <<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 이라는 책에 대하여 쌍욕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아이 다섯 명 중 한 명은 기후 위기에 대한 악몽을 꾼 적이 있다는 설문 조사를 바탕으로 환경론자들이 기후 위기를 지나치게 과장해서 아이들에게 공포심을 유발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런데 이 설문 조사'를 가지고 다른 식으로 말할 수도 있습니다. 80%의 아이들은 극단적 환경론자의 협박에도 존나 아랑곳하지 않는다 ! 


즉, 보는 관점(프레임)에 따라서 다른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겁니다. 조지 레이코프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_ 라고 말하는 순간 코끼리만 생각하게 된다고 지적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  A가 B에게 뜬금없이 이렇게 말합니다. "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 그리고는 냉장고를 가리키며 말합니다. " 이 커다란 냉장고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 " B는 제일 먼저 코끼리를 생각하죠. 조지 레이코프의 프레임 이론을 정교하게 구성한 영화가 바로 << 유주얼 서스펙트 >> 입니다. 전설적인 지하 범죄 조직의 두목 카이저 소제는 일종의 코끼리인 셈입니다. 카이저 소제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순간, 관객의 머릿속에는 온통 카이저 소제뿐이죠. 


그러다 보니 사건의 핵심 용의자라 할 수 있는 5인의 유주얼 서스펙트(사건 용의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사실은 영화 제목 자체가 스포일러입니다. 다섯 명의 유주얼 서스펙트 중 한 명이 범인이니까요. 하지만 관객은 오로지 카이저 소제'라는 인물이 누구인가 _ 라는 질문에 골몰합니다. 그 결과, 이 영화는 반전 영화의 걸작으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안철수가 말했습니다. " 내가 MB 아바타입니까 ? " 그 순간, 유권자의 머릿속에 안철수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 MB 아바타 " 였습니다. 프로이트는 말했죠.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말입니다. 


뭐, 어려운 말이 아니에요. 한국 속담에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조지 레이코프는 중도층이란 말은 허구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는 중도층을 " 이중개념주의 소유자(biconceptualism) " 라고 말합니다. 쉽게 말해서 보수이지만 중도인 척하거나 진보이지만 중도인 척한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진보 정치인이 중도 확장을 위해서 오른쪽으로 가는 것은 필패라고 보았습니다. 왼쪽 깜빡이 켜고 우회전 하지 말라는 소리입니다. 만약에 안철수가 이 책을 읽었다면 MB아바타라는 둥 극중주의라는 둥, 정신나간 헛소리는 하지 않았을 겁니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정치인이라면 이 책은 필수입니다. 


어제 윤석열 부인 김건희(김명신)가 인터뷰에서 " 나는 쥴리가 아니다 " 라고 말했을 때 제가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워터게이트 사건이었습니다. 닉슨은 티븨에 나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저는 사기꾼이 아닙니다 ! " 그 순간, 사람들은 닉슨 하면 사기꾼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마찬가지로 김건희가 " 나는 쥴리가 아닙니다 ! " 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김건희 하면 쥴리 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쥴리가 누구인가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녀가 텐프로의 전설적 인물인지 반대 진영에서 만들어낸 허구인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쥴리라는 이름은 정치 언어로 둔갑하여 부정적인 이미지로 대중에게 소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건희의 쥴리 발언으로 인하여 이제는 저잣거리에서는 떠돌던 이야기가 지상파 방송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서 민망한 텐프로 서사가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노출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안철수가 MB아바타 발언으로 인생을 종쳤듯이 윤석열은 아내의 쥴리 발언으로 쭁났습니다. 그가 노무현을 흉내 내며 " 제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 ? " 라고 외쳐도 이미 버스는 떠났습니다. 윤나땡(윤석열 나오면 땡큐)이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책 한 권 읽지 않고 등장한 것을 보면 그는 정치판을 장기판으로 이해한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졸인 거죠.  하지만 여의도 정치인 중에서 자신을 졸로 생각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조지 레이코프의 <<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라는 책은 그리 어려운 책이 아닙니다. 그에게 칼 슈미트, 한나 아렌트, 조르조 아감벤의 정치 철학을 공부하라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도리도리잼잼 엉덩이 총장 윤석열 씨, 이제 집에서 개나 키우십시오. 소는 제가 키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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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 2021-07-02 15: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존경하는 고 김대중 대통령도 살아생전 ˝빨갱이˝라는 꼬리표로 엄청난 곤욕을 치뤘죠. 민주당 지지자들이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정치인의 가족에 대해 여성혐오적인 소설을 써대며 소비하는 모양새를 보고 참 보기 딱하더군요. 호주제 폐지를 이끈 왕년의 여성운동가 선생님은 말 할 것도 없구요. 비판하는 것도 좋고 조롱도 좋지만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있다고 봅니다. 정말 민주당의 재집권을 간절히 바란다면 어떤 방식으로 말을 하고 글을 써야 도움이 될 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을 설득하고 유혹해서 한 표라도 더 얻을 수 있는지를 고민할 거라고 봅니다. 근데, 요즘 민주당 지지자라고 하는 양반들 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아, 이번엔 정말 어렵겠구나. 안될 수도 있겠구나. 다들 민주당 망하게 하는 x맨인가 싶더라구요. 그 정도로 사람 질리고 밥 맛 없게 만듭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1-07-02 16:56   좋아요 3 | URL
뜬금없이 ˝ 존경하는 김대중 ˝ 이라는 표현은 왜 사용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보기엔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내 말 잘 들어.. 뭐, 이런 표현 같습니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어떤 표현을 사용했는지 저는 잘 모르지만, 정치인 가족에 대한 의혹을 말하는 게 왜 여성혐오적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식이라면 박근혜와 최순실, 그리고 그 딸에 대한 수많은 지적도 여성혐오적입니까 ? 그냥 대상이 여성이면 무조건 여성혐오적인가요 ? 이런 웃긴 논리가 어디있습니까 ? 여성은 무소불휘입니까요.

다다 2021-07-02 17:18   좋아요 2 | URL
전 역대 대통령 중에 김대중 대통령을 가장 존경합니다. 그만한 정치 지도자가 없었죠. 자신의 정치적 상상력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남의 마음을 함부로 넘겨짚지 마시길...물론, 오독은 자유입니다만...

˝ 떡열아...
용감하더구나.
무식. 무공감의식. 무역사의식.
무판단력. 무...
그러니 쥴리랑 사는 거겠지.
그래서 교수부인에게 열등감 느낀 건희? ˝ (고은광순)

이건 하나의 징후적 예시에 불과합니다만 제가 활동하는 온/오프라인 커뮤니티에서 만나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정서와 태도를 잘 보여주고 있어요. 사실 이건 약과고, 더 한 막말과 추잡한 표현이 나와도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 누구 하나 이것은 잘못이라고 말 하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따봉을 찍었으면 찍었지.

제가 말씀 드렸잖아요. 비판도 비판 나름이라구요. 박근혜 최순실 정유라에 관련해서도 정당한 문제제기가 아닌 가십성 태도와 여성혐오적 표현에 대해선 당연히 문제라고 보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21-07-02 17:26   좋아요 3 | URL
고은광순의 저 글은 비열한 표현이 맞습니다. 저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죠.
그리고 저는 민주당 지지자가 아닙니다. 스펙트럼으로 보자면 정의당 쪽이죠.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찍은 적도 거의 없고 말이죠.
하지만 조국을 향한 윤석열의 칼질은 혐오적이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1-07-02 17:28   좋아요 2 | URL
갑자기 궁금해서 그러는데 따봉은 누구입니까요 ?

다다 2021-07-02 17:30   좋아요 1 | URL
아, 따봉은 ‘좋아요‘의 다른 이름입니다.

기억의집 2021-07-03 03:31   좋아요 2 | URL
저는 열혈 민주당 지지자인데.. 님 댓글도ㅠ밥맛 없어요. 저런 표현은 혐오 스럽고 국힘당이 접대부를 영부인 만들고 싶어 비단주머니 세개 준비한다는 표현은 혐오스럽지 않나 보네요. 왜 민주당 지지자들의 표현은 쎄고 수준 낮으면 안 되나요???? 민주당 지지자라고 언제나 수준 높은 언어와 낮은 자세로 임해야 하나요?? 국힘당 국정 감사때 어떡해 하는지 유튜브로 보세요. 저런 표현은 암 것도 아녀요. 얼마나 저질인데 국힘 지지자들은 그걸 강성이라고 표현하죠. 저는 민주당 지지자로서 저런 표현 조롱이라고 생각합니다. 왜요??? 님의 시각에선 혐오인가요??? 저는 오히려 민주당 지지자로서 더 강한 표현 더 쎈 지랄들을 안 해서 불만인 사람입니다.

다다 2021-07-03 09:58   좋아요 1 | URL
네...후지고 구린 국민의 힘과 계속 경쟁하세요. 누가 누가 더 시민들을 밥 맛 없게 하는가...준거집단인 국민의 힘 없었으면 어쩔 뻔 했어? ㅋ

포스트잇 2021-07-02 21: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쥴리든 건희든 그녀가 무슨 일을 했든 그 일로 비난하는 건 별로 하고 싶지 않습니다. 검증과 비판은 그녀가 자신의 재산을 쌓아올린 과정, 그리고 여러 혐의를 받으면서 늘 빠져있게 된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고 봅니다.
이미 거짓말들이 드러났고 탐사보도에서도 한두차례 다룬 적이 있지만, 조국 가족을 다룰 때하고 비교하면 감히 공정, 정의 따위를 편취해서 쓸 수 있는지,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들을 모욕하고 능멸하는 거죠.
알라딘 같은 곳에서 윤석열 검찰과 언론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헤아리지도 못하는 인사들을 보는 것도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21-07-06 21:30   좋아요 0 | URL
검증은 철저히 해야죠. 팝콘각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흥미진진해요...ㅎㅎ

초란공 2021-07-03 2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 7월이 되니 July도 쥴리로 읽힙니다.-.-;; 이젠 본격적으로 ‘윤씨의 시간‘이 되겠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21-07-06 21:29   좋아요 0 | URL
7월의 쥴리인가요 ? ㅎㅎㅎㅎㅎㅎ
 















                              


정   말       고   뤠    ?  :











석유는 고래를 춤추게 한다






책은 전문가가 씁니다. 철학자가 철학책을 쓰고 과학자가 과학책을 쓰고 민병철이 헬로우 에브리바디 !  전문가란 무엇일까요. 1만 시간의 법칙을 통과한, 그 분야의 달인'을 뜻합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들이 쌓은 지식을 훔치고 경험을 간접 체험하는 것과 같습니다.  책은 가장 숭고한 인류의 유산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하여 동의해야 합니다. 그렇게 배웠으니까요.  네에, 그렇고 말고요. 저는 강북 변두리. 저, 어두컴컴한 방구석에서 책을 열심히 읽어서 대한민국 독서력 상위 1% 라는 타이틀을 획득하기도 했습니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책이었죠. 


백수 생활을 했을 때에는 1년에 1.000권을 읽은 적도 있습니다.  아마 지금까지 10.000권은 족히 읽었을 겁니다.  책은 살이 되고 피가 된다고 하죠 ?  하지만 독서 행위가 반드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독서 경험을 통해서 내가 내린 결론은 SF작가 시어도어 스터전이 내린 결론과 같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 SF 소설의 90%는 쓰레기다.  하지만 모든 것의 90%도 쓰레기다. "  여러분은 전문가의 말을 얼마나 믿습니까 ?  저는 49%만 믿습니다.  51%는 의심을 하죠.  책을 읽다가 의심이 들면 구글 검색창을 통해 펙트 체크를 합니다. 


21세기에는 인터넷이야말로 거대한 도서관 역할을 하니까요.  펙트 체크, 어렵지 않아요.  그런데 말입니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책을 읽으면서 의심이 드는 대목이 나오면 사실 확인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책은 전문가가 쓰고 독자는 그 전문가의 권위를 맹신하고 복종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덧대어 글로벌한 유명인의 추천사가 붙고 출판사 직원이 밤 새워 작성한 찬양 문구가 첨부되면 끝장이죠.   빌 게이츠가 감탄사를 연발하고 하버드 대학 교수가 동의하는 추천사를 쓰면 저자의 권위는 하늘로 치솟고 독자는 납작 엎드려 빠떼루 자세를 취하죠. 


그러면 전문가의 권위라는 이름을 가진 덩치 큰 놈이 내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넣어 가슴을 쥐어뜯고는 뒤집으려고 하죠. 아흥, 아흥. 싫단 말이야. 내가 허락하지 않는 프리허그를 당하는 그 심정,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 에서 저자는 원자력이 안전한 에너지원이라며 이렇게 주장합니다. " 27만 명이 걷다가 죽고, 135만 명이 운전하다 죽고, 230만 명이 일하다 죽고, 420만 명이 대기오염으로 죽고, 반면 원자력은 사망자가 100명 정도이다. " 어디서 많이 듣던 논리죠 ?  네에, 일베들이 세월호 희생자를 모욕하기 위해 교통사고와 세월호 사고를 비교했던 그 논리입니다. 


이런 방식의 논리가 악의적인 것은 단순한 수의 비교 우위를 통해서 사고의 중대성을 별것 아닌 것으로 폄하한다는 점입니다. 사고사로 죽는 사람보다 병사로 죽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사고사는 별것 아닌 것일까요. 마찬가지로 병사에 비해 자연사가 압도적으로 많기에 병사는 걱정할 것이 안되는 걸까요 ? 저런 식이라면 이런 식으로 말대꾸하겠습니다.  70억 인구는 모두 다 숨 쉬다가 죽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 모든 사건 사고는 숨 쉬다 결국에는 늙어서 죽는 것보다 별것 아닌 죽음입니까 ?  하나 마나 한 소리라는 거죠.  피폭 사고는 교통 사고와는 달리 비가시적 현상이기에 인과관계를 법적으로 증명하기에 매우 어렵습니다. 


눈으로 직접 방사능 보신 적 있으세요 ?  피폭 사고는 인과 관계를 증명하기 어렵기에 국가에서 인정한 공식적인 피폭 사망자는 100명에 불과한 겁니다.  하지만 상관관계를 들여다보면 매우 심각합니다.  피폭 이전과 이후의 암 발병률은 매우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체르노빌 원자력 사고를 조사한 과학자들은 사고로 인한 피해액을 285조 1725억 원으로 계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국방부와 환경부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같은 7등급 원자력 사고가 발생하면 피해액은 프랑스 GDP의 3배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석유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주장도 얼척이 없습니다. 값 싼 석유가 값 비싼 고래기름을 대체했기에 석유가 고래를 살렸다는 주장이죠. 이 주장은 아이큐 70만 돼도 충분히 반박 가능합니다. 옛날에는 바람의 힘으로 범선이 움직였습니다. 그러다가 석탄이 발견되면서 증기선이 등장했죠. 증기선은 범선보다 빠르긴 하지만 연료인 석탄은 무겁고 부피를 많이 차치하며 빨리 소진되기에 바다 항해 중간중간에 석탄을 공급받기 위하여 다시 내륙으로 되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로 연안어업과 근해어업 중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석유가 발견되면서 먼 거리를 항해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원양어업의 시대가 도래한 겁니다. 먼 바다에 사는 고래를 쉽게 사냥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석유 산업이 발달함에 따라 어업은 가파르게 기업화가 되고 기계화가 되었습니다. 석유는 어업의 대형화, 기계화, 산업화를 양태한 직접적인 동력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고래가 대학살되는 원인을 제공한 것이죠. 이 사실은 완벽하게 감춘 채 비싼 고래기름을 값 싼 석유가 대체해서 고래는 오래오래 살았답니다 _ 라고 선동하고 있는 겁니다. " 정말 고뤠??!! "


무엇보다도 이 사람은 굉장히 멍청해요. 석유가 고래를 춤추게 해요 _ 라고 말하고서는 바로 다음 문장에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 하지만 고래 사냥은 다시 훨씬 더 큰 규모로 재개되었다. 1904년에서 1978년, 고래잡이들은 100만 마리의 고래를 사냥했고 이는 과거의 세 배에 달하는 수이다. " 에너지 측면에서 보자면 20세기는 " 석유의 시대 " 였습니다.  미국인 조지 비셀이 펜실베니아에서 석유 시추를 통해 석유를 뽑기 시작한 때가 1859년 8월 29일의 일입니다. 석유 산업은 19세기에 기초를 다지기 시작하다가 20세기에 와서 화려하게 불꽃을 피웠습니다. 


그리고 석유는 곧 무기가 되었습니다. 저자는 석유시대(1904~1978) 때 죽은 고래가 과거 석탄시대의 3배가 된다고 지적하면서도 석유가 고래를 춤추게 한다고 말합니다. 이 얼마나 비논리적입니까. 악의마저 느껴집니다. 석유가 향유(고래기름)을 대체한 것은 맞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석유가 고래를 구했다는 것은 완벽한 거짓말입니다. 그가 사실과 거짓을 뒤섞는 이유는 그래야 그럴싸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가짜 뉴스는 거짓말을 진짜처럼 보이게 만들기 위해 팩트 한 조각을 거짓 속에 살짝 끼워넣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 플라스틱은 진보다 !!!!!! " 


맙소사, 플라스틱을 향한 플라토닉 러브'인가요 ? 이 책은 축산업, 토건업, 원자력 종사자에게는 성경에 비견되는 명저일 겁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책에 대해서 실망했다기보다는 이 책을 읽은 독자의 반응에서 실망했습니다. 이 책을 읽은 독자는 의심을 하지 않아요. 반복해서 말하지만 수많은 추천사와 텍스트의 권위에 짓눌렸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고 경탄과 감탄을 남발했던 독자가 이 글을 읽는다면 위에 발췌한 문장에서 제가 논리의 오류'라고 지적한 것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시기 바랍니다. 석유는 정말 고래의 생명을 살렸습니까 ?  다시 묻습니다. 플라스틱은 진보입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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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1-06-29 20: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최근 많이들 읽고 별 넷 다섯과 함께 뭔가 새로운 현실에 눈을 떴다는 평을 잔뜩 남기시길래 훌륭한 책이겠거니 했는데, 깜짝 놀랬네요. 저렇게 말했는데도 독자들이 홀렸다니 도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1-06-29 22:46   좋아요 2 | URL
책 사서 읽어 보시지는 마시고 ㅋㅋ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어 보세요. 오류투성이입니다.

meguriya 2021-08-07 1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침묵의봄 이래로 가장 탁월한 업적이라니……무서워요. 이런책들이 나오는걸보니

곰곰생각하는발 2022-03-23 11:55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침묵의봄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이잖아요.
 















                                

플라스틱 플라토닉 사랑 예찬 :












궤변에서 개변으로











고백합니다. 저는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이완용을 친일파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친일파라기보다는 친한파'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비록 그가 돈에 눈이 멀어서 나라를 팔아먹는 이기적인 결정을 했지만 인과율을 따지자면 대한제국이 일본에게 백기 투항한 것은 결과적으로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한 꼴이 되었습니다. 만약에 대한제국이 일본에 대항하여 결사 항전을 했다면 수많은 백성이 전쟁으로 사망했을 겁니다. 당시 일본의 군사력은 막강했으니까요. 이유를 막론하고 이완용은 조선 백성의 생명을 구한 꼴이 되었습니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은 법이잖습니까. 


어줍잖게 허리 꼿꼿이 세우고 만주 벌판에서 결사 항전을 불사했던 독립 투사들이야말로 비난을 받아 마땅합니다. 독립운동가 나부랭이들이 독립 운동 한답시고 설치다가 얼마나 많은 백성이 죽었습니까 ?  친애하는 이웃 여러분, 제 주장에 동의하시렵니까 ? 그럴 듯하잖아요. 이완용이 나라 팔아먹어서 전쟁을 하지 않게 되었고, 백성의 생명을 구했으며, 일본 자본으로 철로를 놓지 않았습니까. 아마도 제 의견에 동조하는 분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제 주장은 궤변이거든요. 궤변을 궤변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이런 엉터리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궤변을 궤변으로 인지하지 못한다는 사람입니다. 


궤변을 분별하지 못하면 스스로 개변(ㅡ便)이 됩니다. 개똥 같은 인간이 된다는 것이죠. 마이클 셀렌버거는 << 지구를 구한다는 착각 >> 이라는 책에서 이와 똑같은 궤변을 늘어놓습니다. 그는 석유와 석유 파생 상품인 플라스틱이 고래와 바다거북의 생명을 구했다고 지적합니다. 독자의 궁금증을 폭발시키는 도발적 주장입니다. 그는 펜실베니아에서 발견된 값싼 석유가 고래를 멸종에서 구했다고 주장합니다. 석유와 그 파생 상품이 고래 기름과 자연 상품을 대체해서 더이상 고래를 잡을 필요가 없어졌다는 겁니다. 해양 생명을 죽이는 살인 도구가 생명을 구하는 백신으로 둔갑하는 순간입니다. 


그렇기에 플라스틱 해양 오염으로 바다 생물이 죽는 경우는 단순히 지엽적인 문제라는 겁니다. 이 궤변을 받아들인다면 이완용은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가 아니라 백성을 살린 애국노가 됩니다. 주권 포기 각서로 인하여 지엽적인 저항은 발생했지만  넓게 보자면 항전 대신 항복을 선택함으로써 대다수 백성의 목숨을 구했다는 겁니다. 동의하십니까 ? 일베에서 통용되는 수준의 궤변입니다. 그렇다면 석유와 플라스틱은 고래를 구했을까요 ? 방법은 간단합니다. 석유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했던 시기와 그렇지 않았던 시기의 차이를 분석하면 됩니다. 


석유를 에너지원으로 미친듯이 사용했던 1904년에서 1978년, 고래잡이들은 100만 마리의 고래를 죽였습니다. 이는 석유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지 않았던 과거보다 3배나 많은 수치입니다. 이 결과는 저자의 주장과는 정반대입니다. 값싼 석유의 발견으로 인하여 고래는 더 많이 죽었습니다. 이 사실은 저자가 이 책에서도 지적한 대목입니다. 그는 석유가 고래 생명을 구했다고 주장하고서는 뒤이어 이런 소리를 하고 자빠졌습니다. " 하지만 고래 사냥은 다시 훨씬 더 큰 규모로 재개되었다. 1904년에서 1978년, 고래잡이들은 100만 마리의 고래를 사냥했고 이는 과거의 세 배에 달하는 수이다. 


이것은 그가 앞에서 주장했던 내용을 180도로 뒤집는 내용입니다. 그가 지적한 1904~1978년은 석유가 절대적인 에너지원으로 자리잡은 시기였습니다. 석유 자원은 단순한 자원이 아니라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무기였습니다. 1,2차 석유 파동이 발생한 해는 바로 1970년대였죠. 유럽의 대항해 시대가 아프리카 흑인에게는 지옥의 홀로코스트 시대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석유 시대는 고래에게 있어서는 해양판 홀로코스트였던 셈입니다. 뒤집기 신공을 선보이는 저 위의 발췌 문장은 저자의 은유입니까, 풍자입니까. 아니면 자아 비판입니까. 이 정도면 저자야말로 찐따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 주장의 궤변을 독자들이 알아듣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문해력의 수준이 지하 밑바닥인 겁니다. 그들은 이 책을 읽고 감명한 나머지 플라스틱 천국 환경론자 지옥을 외치고 있습니다. 여러분, 플라스띡을 믿슙니까 ? (독자 일동) 네에. 믿슙니다 !!!!!!!!!!!    아니 시발. 이 정도 문해력을 가지고 있다면 도대체 책은 왜 읽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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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6-28 14: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부키에서 나온 거 보고 부키 자체에 실망감이 크게 들더라고요.
책 표지에는 심지어 레이첼 카슨 운운.... ㅠ_ㅠ
상금 크게 걸고 리뷰대회도 했던데, 아무리 상금이 탐나도 그렇지 빨아줄 책이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21-06-28 14:44   좋아요 4 | URL
이 책의 논조는 그런 겁니다. 몇 년 후에는 이런이런 문제가 발생해.
야,, 이 바보야. 몇 년 후에 그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 발명될 거야. 걱정 쌈 싸드셔.. ㅎㅎㅎ

이런 태도로 일관해요. 원자력 고장나면 걱정하지 마. 사람들이 들어가서 고칠 테니까.. 걱정 붙들어매셔잉.. 이런 태도.. 뭐라더라 ?

˝ 설령 사용 후 핵연료가 대기 중에 다소 노출된다 한들 세상이 멸망하거나 하지 않는다. 그런 일에 대응할 수 있는 인원들이 늘 대기 중이다. ˝

아니 이게 과학 에세이가 할 소리입니까. 고장난 원자력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다들 노동자이고 대부분은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들어가는데 태연하게 누군가는 들어가겠지.. 헤헤.. 이러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