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않는 하루 - 두려움이라는 병을 이겨내면 선명해지는 것들
이화열 지음 / 앤의서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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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이 좋은 에세이를 쓴다











소설가는 굳이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다. 소설은 어차피 " 구라의 세계 " 이니 구라쟁이가 빛을 발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도둑보다 도둑놈 심보를 잘 아는 이는 없지 않은가 ! 그렇기에 소설가의 사람 됨됨이로 작품을 평가하는 것은 꽤나 웃긴 일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문학 작품에 있어서 좋은 태도보다 앞서는 것은 좋은 문장이다. 


반대로 에세이는 사정이 다르다. 좋은 에세이스트가 갖춰야 할 것은 좋은 문장보다 좋은 태도에 있다. 평소에 갑질하는 사람이 갑질을 비판하는 칼럼을 쓴다면 그 칼럼이 좋은 칼럼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조지 오웰의 에세이를 으뜸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평소 작가가 실천한 삶에 대한 좋은 태도 " 에 있다. 내가 하루키 문학 작품을 좋아하지는 않으나 하루키 에세이는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이유도 평소 작가의 건강한 생활 태도에 있다. 좋은 사람이 좋은 에세이를 쓴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에서 나뒹구는 에세이는..... 팔 할이 쓰레기'다. 


직설하자면  :  신달자(with유안진st)나 김미경 류의 에세이는 좋은 글이 아니다.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고, 입증보다는 간증에 집착하고, 교사보다는 선생이 되어서 ㅡ 질(선생질) 을 남발한다. 이런 책들은 서로 다른 사연을 제각각 이야기 하고는 있으나 내 눈에는 모두 다 똑같은 내용으로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  말 그대로 천편일률( : 천 권의 책이 모두 한 가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음. 죽 모든 사물이나 글에 차이점이 없이 똑같음)적이다. 하 _ 하는 한숨을 내쉬다가 결국에는 하악질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나, 알고 보니 고양이였엉 ?  


지금보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책을 읽는 이도 있다는데 이런 책 읽고 나서 사람-되기는커녕 하악질을 남발하는 고양이가 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독자를 고양이로 만드는 책은 나쁜 책이다. 이화열 에세이집 << 지지 않는 하루 >> 는 신형철의 지적대로 한국식 에세이의 나쁜 관습이 말끔히 제거된 책이다.  동정이나 연민을 이용해서 자신이 착한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지 않고,  자신의 불행을 쓰빽따끌한 간증의 서사로 이용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작가의 좋은 생활 태도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좋은 태도와 함께 좋은 문장도 돋보인다. 


이 책 첫 번째에 수록된 < 트라디시옹 > 이란 에세이는, 박완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구슬 같은 작품이다. 이 글이 너무 좋아서 열 번은 읽은 듯하다. 작가는 빵집에서 트라디시옹이라는 프랑스 전통 빵(바게트와 비슷한 빵?)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 사이, 이런저런 생각과 대화가 오고 간다. 주문한 빵이 나오고 그는 따스한 빵을 겨드랑이에 끼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냄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 오늘도 빵 머리를 뜯고 만다 ".  집에 오면 제품 사용설명서 같은 남편이 기다렸다가 한마디 한다. 이에 아랑곳할 그녀가 아니다. 


파먹힌 빵 한 귀퉁이를 잘라주며 말한다. " 오늘은 진짜 더 맛있어. 얼른 먹어봐. "  일상이라고 말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일상적인 풍경을 묘사한 글이지만 묘하게도 감동적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빵 만드는 사람의 기분처럼 빵 가게 빵 맛은 매일 똑같은 맛이 아니다. 하지만 단골이라면 어쩔 수 없이 가끔은 망한 트라디시옹을 감수한다. 만약 매일 완벽한 빵을 산다면 완벽한 맛에 대한 경탄은 당연함과 식상함으로 바뀔 터이니.


음식 맛의 민감한 변화에도 노발대발하는 백종원이 읽었다면 고기를 씹다 뱉는 버릇처럼 이 책을 냅킨에 싸서 쓰레기통에 버렸을지도 모른다. 이건 아니쥬 ! 이건 초심을 잃은 거유. 소비자가 뭔 잘못이래유 ? 그래유,안 그래유 ?  그에게는 " 단골이라면 어쩔 수 없이 가끔은 망한 트라디시옹을 감수 " 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녀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공장에서 찍어내서 슈퍼마켓에 파는 바게트의 일정한,  천편일률적인 맛보다는 가끔은 단골 가게의 망한 트라디시옹을 옹호한다. 그래야지 " 오늘은 진짜 더 맛있 " 는 빵을 먹는 즐거움을 덤으로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에세이를 읽는 내내 레이몬드 카버의 단편 <<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 이 떠올랐다. 레이몬드 카버가 생활 에세이를 쓴다면 아마도 이런 문장과 분위기였을 것이다. 평소 좋은 책은 맛있는 초콜릿이 든 과자 상자와 비슷해서 아껴 먹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유감스럽게도 하루 만에 다 읽었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으련다. 좋은 책과 초콜릿 상자의 차이점 중 하나는 좋은 책은 텅 빈 초콜릿 상자와는 달리 다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저자의 쾌유와 건투를 진심으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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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21-02-10 0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은 책으로 장바구니에 넣어 두었는데 곰곰님 리뷰까지 읽고 나니 더이상 구매를 미룰 수가 없군요.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21-02-10 18:50   좋아요 1 | URL
네에. 얼른 구매하셔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메리크리스마스 ~

수이 2021-02-14 02: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나왔네요! 두근두근

곰곰생각하는발 2021-03-06 17:07   좋아요 0 | URL
댓글이 늦었네요... ㅎㅎㅎ 좋은 에세이집입니다. 강추 ~
 





















겨울 곡간에서 가을 곶감을 빼먹듯이 








영화 << 타짜 >> 에서 운전기사는 한숨을 푹 쉬면서 보스 곽철용에게 올림픽대교가 막힐 것 같다고 걱정을 한다. 그러자 곽철용이 대수롭지 않은 듯 툭, 되받아친다. " 마포대교는 무너졌냐, 새꺄 ? "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플랜B를 제시하기보다는 걱정부터 앞서는 나는 전형적인 운전기사 캐릭터'다. 만약에 마포대교가 무너졌다고 한다면 나는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내비게이션에도 없는 삼천포로 빠졌을 것이다. 반면에 블로그 이웃인 이집주인 님은 곽철용 같은 캐릭터'다. 마포대교가 무너졌다 한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 서강대교는 무너졌냐, 색햐 ! " 나는 그가 투병 중이란 사실을 고백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투병 중이란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지나간 소식을 전하면서 무심한 듯 시크하게 그 사실을 알렸기에 나는 그것을 단순히 감기 정도로 오해했기 때문이었다.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대목. 그는 불행 앞에서 쉽게 좌절하지 않으며 스스로에 대하여 깊은 연민에 빠지는 성격이 아닌 듯하다. 그가 쓰는 글도 그의 성격을 닮았다. 신형철 평론가로부터 " 한국식 에세이의 관습이 말끔히 제거되어 있는 글 " 이란 찬사를 받은 사실은 그의 에세이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 비록 신형철과는 앙숙 관계이기는 하나 그의 상찬에는 적극 동의한다. 오늘 동네서점에 들려 책을 예약 주문했다. 설 연휴에 읽기 좋은 책이(라고 자신한)다. 이번 설 연휴에 겨울 곡간에서 가을 곶감을 빼먹듯이 야금야금 읽을 생각이다. 한국식 에세이에 질려버린 독자'라면 이 책을 추천한다(신달자 에세이를 상상해 보라). 한 편의 잘 만든 독립 영화를 보는 기분이 들 것이다. 나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 할 것이다. "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따블로 가 ! "  내 지레짐작은 틀린 적이 없다. 느낌.....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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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2-06 19: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와! 곰발님이 이리 칭찬을 하시니 읽어보고 싶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21-02-06 19:13   좋아요 4 | URL
이 분 글을 정말 잘 쓰시는 분이십니다. 강추 ~~

라로 2021-02-08 15:24   좋아요 0 | URL
네네 꼭 읽을게요!!! 사게 되는 날 땡투도 곰발님께!!!👍👍👍👍👍

곰곰생각하는발 2021-02-10 18:51   좋아요 1 | URL
라로 님, 메리크리스마스 ~

붕붕툐툐 2021-02-06 21: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명절에 읽을 책을 두둑히 마련해야 하는 시기가 왔군요! 저도 읽고 싶은 책장에 담아갑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1-02-10 18:51   좋아요 1 | URL
네에. 메리크리스마스 ~
 











싱어게인에 대한 시대 유감 










영화 << 웬디와 루시 >> 에서 주인공 웬디는 낡은 차를 끌고 반려견 루시와 함께 알래스카를 향한다. 그곳에 가면 일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는 고장이 나 엔진이 멈춘다. 그녀에게는 500달러가 전 재산이지만 차 수리비는 그녀가 가진 돈으로는 턱없이 모자라다. 


이 우연한 불행과 불행한 우연 앞에서 그녀는 오리건 주 작은 마을에 발목이 묶여 오도 가도 못 가는 신세가 된다. 빈털터리가 된 웬디는 동네 마트에서 개에게 줄 싸구려 통조림 몇 개를 훔치다가 그만 식료품점 아르바이트 청년에게 발각된다. 식료품점 점원은 그녀를 점장에게 데리고 가서 그녀에 대한 처벌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 개 먹이도 구할 능력이 없는 주제에 개를 키우면 안 됩니다. 모든 규칙은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 용서 대신 처벌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점원의 주장을 받아들인 점장은 그녀를 경찰에 신고하고,  경찰은 웬디를 구치소에 가둔다. 


그 사이에 루시(개 이름)는 사라진다.  이 영화에서 악인다운 악인은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지만1)  능력주의와 공정주의를 강조하며 용서보다는 처벌을 강조하는 식료품점 아르바이트 점원은 악인보다 더 무자비해 보인다. 하나의 불행이 또 다른 불행을 낳고, 그 불행이 도미노처럼 자립의 기회를 연속으로 쓰러트릴 때 웬디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일까 ?  이 불행은 전적으로 웬디 개인의 능력 문제일까 ?  가난하다는 것은 시간의 속도가 느리게 흘러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절차는 부자보다는 가난한 자일수록 복잡하고 까다롭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난 루시는 임보자의 보살핌 아래 마당 넓은 집에서 지내고 있다. 그녀는 사랑하는 개 루시를 위해서는 무엇이 현명한 선택인가를 알고 있다. 돈 벌어서 다시 오겠다는 웬디의 다짐에는 힘이 없다. 마치, 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링 위에 오르는 복서처럼 말이다. 감독은 극빈층으로 전락한 웬디에게 자본주의의 도덕 강령인 능력주의와 공정주의가 얼마나 냉혹하게 그녀를 단죄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식료품점 아르바이트 점원처럼 공정을 강조하는 쪽은 공화당 트럼프 지지자였을까, 아니면 민주당 힐러리로 대표되는 진보 엘리트였을까 ?  


트럼프 지지자들은 현실은 불평등한데 공정만을 강조하는 진보 엘리트들의 위선에 넌더리가 났고, 그 결과는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괴물의 탄생이었다. 마이클 샌들은 << 공정하다는 착각 >> 이라는 책에서 " 공정함은 곧 정의 " 라는 통념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능력주의는 개인의 재능과 노력이 만든 능력을 높게 평가하면서 공정을 추구하지만 능력주의는 전혀 공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한다고 말한다.  마이클 샌들의 지적은 트럼프를 지지했던 저학력 백인 노동자의 불만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내가 JTBC 전국노래자랑 쇼 프로그램인 << 싱어게인 >> 을 불편하게 보는 시각도 마이클 샌들이 정의한 " 능력주의의 폭정2) " 과 맥을 같이 한다. 제작진은 이름을 지우고 번호를 부여한 무명 가수들에게 "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 " 라고 친절하게 말하지만 그들이 요구하는 능력은 착취의 다른 이름이다. 무명 가수가 부르는 아름다운 노래 때문에 돈을 버는 쪽은 방송국이다.  방송국은 상금 1억 원, 음반 제작 지원, 전국 공연 투어라는 상금을 내걸었지만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최후의 승자 1인'뿐이다.  나머지는 출연료조차 없다. 


음악 전문 채널을 강조하는 모 방송국의 노래 경연 대회에 참가해서 8강까지 진출했던 출연자가 받은 돈은 고작 3만 원이 전부였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 출연자는 식사는커녕 도시락을 제공받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가 방송국에서 받은 음식이라고는 차가운 김밥 2줄이 전부였다고 한다. 시청자인 우리는 언제까지 능력과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능력 착취 방송에서 희로애락을 느끼며 감동해야 할까 ?  이것은 과연 윤리적인 태도일까 ?  감동하지 마시라. 당신의 감동은 어떤 방식으로든 유죄다. 








​                          


1) 숲에서 만난 부랑자는 악인이라기보다는 정신 이상자에 가깝다. 

2) 능력주의에 대한 맹신이 야기한 천박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전여옥이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하면서 내뱉은 " 국졸 대통령 " 이라는 말일 것이다. 교육은 신분의 차별 없이 개인의 능력만으로 계층 이동이 가능한 제도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교육이 차별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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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2-01 21: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경연 프로그램의 무대 뒷편에는 기회를 미끼로 희망을 모아서 좌절로 주져앉혀 버리는 아픔이 있었네요!ㅠ
경연도전자의 건절한 마음이 노래에 덫입혀져서 이런 류의 프로그램을 좋아했는데 좀 더 의식하면서 봐야겠습니다! 즐건 저녁시간 되십시요!

곰곰생각하는발 2021-02-02 15:00   좋아요 1 | URL
나는가수다였다면 매니저와 가수에서 돈 1000만 원씩 출연료 지급했을 텐데... 단지 무명이라는 이름으로 0원. 일종의 열정 페이죠.

북다이제스터 2021-02-01 21: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무명 가수 덕택에 돈을 버는 건 방속국인 것처럼 요즘 주식 투자 광풍에 결국 돈버는 건 수수료 챙기는 증권사인 것 같습니다.
결국 다 누구 좋으라고 누군가는 놀아나는 것 같습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21-02-02 15:01   좋아요 0 | URL
ㅎㅎ 재주는 곰이 부리는데 돈은 조련사가 받는 꼴이라고나 할까요 ?

기억의집 2021-02-01 22: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넷플릭스라는 책을 읽으면 능력주의의 끝판왕 등장입니다. 읽는데 엄청 불편하더군요. 오로지 능력자만이 살아 남을 수 있는 곳이 넷플릭스였어요. 그 책 읽으면서... 왜 우리 같은 평범한 능력의 사람의 호주머니에서 월정액을 요구하면서, 능력최고주의만을 외칠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물론 기업은 능력을 발휘하는 게 맞지만.. 넷플릭스의 능력주의 모토(퇴직금을 더 주더라도 능력 안 되는 사람은 내보내라!!)는 좀 그랬어요. 센델의 저 작품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21-02-02 15:03   좋아요 0 | URL
소설 제목이 < 능력주의 > 였나 ? 그런 소설도 있었죠. 작가가 능력주의 엄청 까거든요. 그 사람의 예견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기억의집 2021-02-01 22: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미스터 트롯도 출연료 못 받고 상금이 전부 였다면서요! 참 날로 먹으려는 악덕 자본가들 천지예요.

곰곰생각하는발 2021-02-02 15:04   좋아요 0 | URL
이거 완전 도둑놈 심보 아닙니까 ? 출연자의 재능으로 돈을 버는 놈들이 정작 그 출연자들에게는 기본 소득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게 말입니다. 이 정도면 날강도죠.
 
돈키호테 1~2 (리커버 특별판 + 박스 세트) - 전2권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지음, 안영옥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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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촌이 땅 사는 소설 " 이 흥미 없는 이유










축소지향적으루다가 ㅡ 이사를 간다는 것은 꽤나 큰 스트레스다. 마당 넓은 집에서 마당 없는 집으로, 마당 없는 땅집에서 공동 주택으로, 축소에서 협소 주택으로 이사를 하다 보니 이사할 때마다 사는 공간이 무를 깍둑 썰기 하듯 깍둑싹둑 잘렸다. 가난으로 인해 " 나으 나와바리 " 가 점점 줄어들자 급기야 내 몸의 부피를 1/2로 줄이기 위해 일일일식을 하게 되었다(라는 말은 뻥이고 헤헤헤). 


문제는 책이었다. 협소 주택에 살면서 책을 몇 천 권씩 쌓아둔다는 것은 사치였다. 이사 갈 때마다 웃돈을 요구하는 이삿짐센터 직원의 태도도 나를 힘들게 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고 자기 살점을 도려내듯 책을 대량으로 처분해야 했다. 그리고 지금은 책을 사는 즐거움을 중단했다.  읽을 여력이 없다기보다는 책을 책답게 전시할 공간이 없다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요즘은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다. 예전에는 정독이라기보다는 속독에 가까웠지만, 첨언하자면 속독이라고 말하기에도 애매모호한 속도로 책을 읽었다면, 지금은 정독이라기보다는 지독(遲讀)에 가깝다. 


요즘은 세르반테스의 << 돈키호테 >> 를 반 박자 느린 호흡으로 읽고 있다. 그 전까지는 앞만 보고 달리느라 : 속독  뒤돌아볼 시간이 없었는데 지금은 천천히 읽다 보니 읽기를 잠시 멈추고 읽었던 내용을 곱씹어보는 여유도 생겼다. 그러다 보니 읽자 마자 잊어버리는 망각은 사라지고 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문득 " 너무 빨리 달리면 영혼을 잃어버린다 " 라는 인디언 격언이 떠올랐다.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리는 인디언은 잠시 말에서 내려 자신이 달려왔던 길을 오래 바라본다고 한다. 말을 타고 너무 빨리 달린 나머지 영혼이 자신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걱정 때문이란다. 


그래서 인디언은 자신의 영혼이 자신을 따라잡을 수 있도록 기다린다는 것. " 힘내, 내 영혼 ! "  속독도 그런 경우가 아닐까 ?  너무 빠른 속도로 읽으면 내용을 잃어버린다.  세르반테스의 << 돈키호테 >> 를 읽는다는 것은 행복한 경험이다.  이 행복감은 철저하게 속물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결과인데,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행복을 느꼈던 이유는 돈키호테의 삶이 불행했다는 데 있다. 육체는 쇄락하고 정신은 오락가락하다 보니 명색이 귀족이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쥐어터지기 일쑤다. 말이 좋아 방랑이요, 모험이지 알고 보면 정신줄 놓은 병자의 노숙 생활인 셈이다. 


내가 사랑한 문학은 모두 불행한 자의 서사'였다. 마담 보봐리, 안나 카레니나, 폭풍의 언덕, 백경, 죄와벌 등등에서 불행하지 않은 문학 속 주인공은 없다. 우리가 문학에서 위로를 받는 까닭은 그들이 불행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기에 문학을 읽는다는 행위는 결코 고상한 짓은 아니다. 오히려 속물 근성에 가깝다고 보아야 한다. 독자는 사촌이 땅을 사서 배가 아픈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을 읽어도 남이 잘되는 꼴을 엿보는 소설은 읽지 않는다. 나도 그렇다, 남이 잘될 때 아, 배아파 ! 그럴 때마다 나보다 더 불행했던 문학(속 인물)으로 도피하게 된다. 


타자의 불행을 다루는 것이 바로 문학의 본질이다. 1800페이지에 육박하는 << 돈키호테 >> 는 집요하게 돈키호테의 불행을 다룬다. 낄낄거리며 읽다가 어느 순간에 그의 불행 앞에서 숙연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문학에서 얻을 수 있는 " 구슬 같은 경험 " 일 것이다. 한마디로 이 소설은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로 " 압도적 걸작 " 이다. 근대 소설의 탄생을 알린 이 소설은 놀랍게도 현대 소설의 미학적 개념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대 소설이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시대를 앞선 작품이다. 읽을 때마다 놀라게 된다. 그리고 지금도 놀라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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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1-01-29 18: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진짜 공감!! 책은 어디로 이사가도 부담스러워요. 저도 이사 갈 때 마다 처분하고... 이젠 전자책에 매진하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ㅎㅎ 주인공이 불행한 이야기는 읽기 힘들던데요. 저는...

곰곰생각하는발 2021-01-29 18:49   좋아요 2 | URL
책 많은 사람들의 뭐.. 행복한 고민이랄까요.. ㅎㅎ
그런데 고전 문학은 대부분 주인공들이 불행하지 않나요 ? 유머 소설이 아니면 대부분 불행하더라고요.. 보봐리 부인, 차탈리 부인, 테스, 히스클리프, 롯테, 베르테르, 라스콜리니코프, 로캉탱, 등등등등등... ㅎㅎㅎㅎ

막시무스 2021-01-29 19: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캬! 타자의 불행을 다루는 것이 문학의 본질이라는 말씀은 카톡에 메인 메시지로 남겨두고 싶네요!ㅎ 좋은 글 감사합니다! 즐건 주말되십시요!ㅎ

곰곰생각하는발 2021-01-29 19:16   좋아요 4 | URL
저의 ˝ 문학에 대한 정의 ˝ 입니다. ㅎㅎ
개인적으로
역사는 세계의 불행을 압축하는 학문이고,
문학의 개인의 불행을 확장하는 학문이란 생각이 듭니다.

라로 2021-01-30 02: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늘 적당한 길이의 곰발님 글 좋아요!! 저는 소설이나 문학작품을 저대로 접해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말씀을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네요. 저 어제 퐉 질렀는데 이 글을 먼저 읽었다면 어제 안 질렀을 지도, 아닐지도, 암튼, 지르고 맘이 불편하긴 했어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키호테 저거 또 보는 순간 검색! 그런데 금가루 날린다고 해서 일단 멈춤. ^^;; 저 돈키호테 넘 좋아합니다. 맨 오브 라만차 뮤지컬도 넘나 좋아하고요. 곰발님도 좋아하신다니 괜히 기분 좋아. ㅋ

곰곰생각하는발 2021-01-30 15:25   좋아요 1 | URL
글이 너무 길어도 실례더라고요. ㅎㅎㅎ 그래서 길면 나눠서 올립니다. 같은 주제로 여러 번 글을 쓰는 경우도 그런 경우.

하여튼, 스페인어 제대로 알면 < 돈키호테 >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어유희가 상당하거든요.

가넷 2021-01-30 07: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전에도 거의 10년 가까이 지냈던 방을 떠나서 이사를 할때 너무 힘들었어요 책 처분한다고. 그래도 책들이 많이 남았지만, 웃돈을 요구받지는 않았죠. 책이 무겁더라도 그것 말고도 별로 옮길 것도 없기에 그랬던 것 같기도 하네요. 2년전 일인데 다시 책이 상당히 늘어버려서 또 걱정이네요. 이사해야 되는데...^^;;;

곰곰생각하는발 2021-01-30 15:27   좋아요 1 | URL
투덜투덜대시더라고요. 책이 많아서 인부 한 명 더 써야 한다... 즉, 이사 비용 더 달라는 거잖아요. 한편 이해는 갑니다. 책 짐 싸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릴 뿐만 아니라 무게도 많이 나가고, 또 풀어서 다시 진열해야 하잖아요. 제가 인부라도 질색일 것 같긴 합니다...ㅎㅎㅎ

꼬마요정 2021-01-31 15: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곰발님 글을 읽으니 저도 천천히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읽을 땐 제 상황이 꼬여 있어서 일도 안 하고 망상에 빠진 나이 드신 분이 재밌기도 화딱지 나기도 한 이야기를 술술 풀어간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때 전 정말 삐딱했어요ㅠㅠ) 책표지가 자꾸 예쁘게 바뀌어서 다시 사고 싶지만 말씀처럼 둘 데가 없어요. 슬프네요.

오늘도 배워갑니다. 참, <여인들의 행복백화점>의 드니즈나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벳은 나름 행복한 주인공들 아닐까 해요.^^

곰곰생각하는발 2021-02-01 20:30   좋아요 1 | URL
저도 이번에 이 책 세 번째 읽었습니다. 처음은 중학교 때 축약본으로, 두 번째는 이 책을 샀을 때, 그리고 몇 년 지나서 지금. 볼 때마다 관점이 조금 달라지더군요. 그전까지 희극으로 보았다면 이번에는 비극의 관점에서 이 소설을 읽으니 화아아악 와닿습니다. 돈키호테가 예수처럼 느껴져요.. ㅎㅎㅎㅎ
 









                                        


허투루 버릴 문장이 하나도 없다는 것 :











허투루 버릴 문장 하나 없다는 것 






1  김훈과 코맥 메카시


김훈의 << 칼의 노래 >> 를 읽었을 때 벼락 맞은 기분이었다. 황홀했다. 아, 이런 문장으로도 소설을 쓸 수 있구나. 한국 문학에 벼락 같이 쏟아진 축복이라는 찬사가 납득이 갔지만 또 한편으로는 의심도 품었다. 장편소설보다는 영웅을 노래한 대서사시에 가까운 형식을 내내 유지할 수 있을까 ? 나는 그가 언젠가는 밑천을 드러내어 결국에는 뽀록이 날 것이라는 막연한 상상을 했다. 첫 끗발이 개 끗발이 되는 경우라고나 할까. 코멕 매카시의 초기 작품은 대부분 만연체로 쓰여졌다(핏빛 자오선, 1985 / 모두 다 예쁜 말들, 1992 / 국경을 넘어, 1994 / 평원의 도시들, 1998). 


마침표를 찍을 때가 되면 느닷없이 쉼표를 찍고는 문장을 이어가는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젊은 시절의 작가가 독자에게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욕심을 내다 보니 문장이 길어지는 경우일 것이다. 하지만  내공이 쌓이고 나면 여유가 생기는 법. 코맥 매카시의 후기작인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005 >> 와 << 로드, 2006 >> 에서는 문체가 바뀌어 미니멀리즘을 지향한다. 김훈의 << 칼의 노래 >> 는 코맥 매카시의 후기작을 닮았다. 무슨 뜻이냐면  :  김훈은 인생 마지막에 썼어야 할 작품을 너무 일찍 선보인 것이다. 내 예상은 어느 정도 적중했다. 


최근 작 << 달 너머로 달리는 말, 2020 >> 은 뽀록의 정수였다. 그는 유리 공예 공장의 숙련된 노동자처럼 문장 속에 후카시를 작뜩 불어넣어 그럴싸한 문장을 만들었지만 이제는 그의 폼생폼사가 남루해 보인다. 허투루 버릴 글자 하나 없는 문장이지만 이상하게도 정이 안 간다. 김훈의 소설을 읽으면서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허투루 버릴 글자 하나 없는 문장이 반드시 훌륭한 문장은 아니구나. 인간의 희노애락을 다루는 소설에서 아름다운 문장이 반드시 좋은 문장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원빈의 잘생긴 얼굴이 다양한 배역을 연기하는 데 있어서 감점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과 같다. 






2 공지영과 박완서


자신이 쓴 문장에 대하여 자신이 없는 작가는 디테일이라는 이름으로 사족을 붙이기 마련이다. " 남자는 여자를 사랑했다 " 라고 쓰면 될 것을 굳이 " 그 남자는 그 여자를 너무 사랑했다 " 라고 강조한다. 그래도 그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 그 남자는 그 여자를 너무 미치도록 사랑했다 " 라고 고치다가 성에 안 차서 " 그 남자는 그 여자를 너무 미치도록 죽을 만큼 허벌나게 환장할 정도로 사랑했다. 사랑한다, 미안하돠 ~ " 라고 쓴다. 상황에 도취된 나머지 지지리궁상으로 빠지는 대표적인 작가가 공지영이다. 사랑에 대해서 구구절절 쓰는데 그럴수록 구질구질하다. 


공지영은 < 구구절절 > 과 < 구질구질 > 을 분간할 능력이 없는 작가'다. 그러다 보니 구구절절하지만 결국에는 구질구질한 러브-스토리가 탄생하는 것이다. 젊고 아름다운 엘리트 교수와 피에 굶주린 사형수의 러브 스토리를 다룬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는 구질구질한 신파의 끝판왕이었다. 술에 취해서 밤에 쓴 연애 편지 같았다. 이 세상의 모든 초고는 쓰레기이듯이(헤밍웨이), 술에 취해서 밤에 쓴 연서도 눈 뜨고는 못볼 신파에 불과하다. 아, 이렇게 써도 소설이 되는구나. 아따, 참......허벌나게 짠허요.   반면에 박완서 작가는 자신의 문장에 대하여 확신을 가진 소설가다. 


그는 << 그 남자네 집 >> 에서 이 애틋한 첫사랑 고백 장면을 " 그는 나를 구슬 같다고 했다. " 는 단순한 문장으로 생략한다. 이 문장에는 감정의 잔여가 없다. 나는 첫사랑을 구슬(주옥珠玉이 아닌)로 환유한 작가의 솜씨에 화들짝 놀랐다. 비싼 옥은 아니지만 예쁜 구슬.  예쁘지만, 잃어버려서 속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깝지는 않은 구슬.  예뻐서 모은 구슬이지만 세월이 지나면 버려지게 되는 것처럼 어쩌면 첫사랑은 그런 구슬 같은 것이 아닐까 ?  만약에 작가가 첫사랑을 구슬 대신 주옥 같은 보석으로 환유했다면 이 걸작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나를 구슬 같다고 했다. 애인한테보다는 막내 여동생한테나 어울릴 찬사였다. 성에 차지 않았지만 나도 곧 그 말을 좋아하게 되었다. 구슬 같은 눈동자, 구슬 같은 눈물, 구슬 같은 이슬, 구슬 같은 물결...... 어디다 그걸 붙여도 그 말은 빛났다. 그해 겨울은 내 생애의 구슬 같은 겨울이었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에서 인상 깊은 장면은 여자가 첫사랑 남자에게 자신의 결혼 청첩장을 건네는 장면이었다. 다른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여자 앞에서 남자는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니 _ 라는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보다가 격렬하게 흐느껴 울고, 여자도 따라 운다. 속물과 순정, 그 어딘가에 있을 소설 속 " 나 " 의 심정은 매우 복잡하다.  공지영 작가라면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져야 한다는,  아리송하지만 매우 상투적인 변명을 늘어놓겠지만 박완서는 질척거리는 감정의 잔여 없이 냉정하게 묘사한다. 황홀할 지경이다.  




휴전이 되고 집에서 결혼을 재촉했다. 나는 선을 보고 조건도 보고 마땅한 남자를 만나 약혼을 하고 청첩장을 찍었다. 마치 학교를 졸업하고 상급 학교로 진학을 하는 것처럼 나에게 그건 당연한 순서였다. 그 남자에게는 청첩장을 건네면서 그 사실을 처음으로 알렸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나서 별안간 격렬하게 흐느껴 울었다. 나도 따라 울었다. 이별은 슬픈 것이니까. 나의 눈물은 거짓은 없었다. 그러나 졸업식 날 아무리 서럽게 우는 아이도 학교에 그냥 남아 있고 싶어 우는 건 아니다.



예쁘고 소중하지만 그것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아깝지는 않은 구슬처럼 여자는 격렬하게 흐느껴 우는 남자를 보며 함께 울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남자를 따스하게 포옹하지는 않는다. 작가는 여자의 모순된 감정을 이렇게 묘사한다. " 나도 따라 울었다. 이별은 슬픈 것이니까. 나의 눈물은 거짓은 없었다. 그러나 졸업식 날 아무리 서럽게 우는 아이도 학교에 그냥 남아 있고 싶어 우는 건 아니다. "  울지만 포옹하지는 않는 태도에 대하여 여자는 학교 졸업식 날 서럽게 우는 아이의 마음과 같다고 고백한다. 여자는 자기 합리화에 성공하지만 끝끝내 가슴 한켠에 부채감으로 남았던 모양이다. 


첫사랑 남자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장례식장에서 여자는 우는 남자를 포옹한다. 그때 하지 못했던 것을 애도라는 이름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비로소 여자는 그 남자에 대한 부채감에서 해방된다. 



나는 그의 어깨가 요동치는 걸 보면서 어쩔 줄 몰랐다. 그를 보듬어 내 품안에 무너져 내리게 하고 싶었다. 그때 그가 바란 건 어머니의 품속 같은 위안이었을 지도 모르는데 나는 그렇게 해줄 자신이 없었다. 내가 감추고 있는 건 지옥불 같은 열정이었다......그 남자가 말끝을 흐렸다. 울고 있었다. 점점 더 심하게 흐느끼면서 불을 타고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나도 애끓는 마음을 참을 수 없어 그 남자를 안았다. 그 남자도 무너지듯이 안겨왔다. 우리의 포옹은 내가 꿈꾸던 포옹하고도 욕망하던 포옹하고도 달랐다. 우리의 포옹은 물처럼 담담하고 완벽했다. 우리의 결별은 그것으로 족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   나는 박완서 작가가 칠순 나이에 첫사랑에 대한 소설'을 썼다고 했을 때 반신반의했다. 첫사랑이라는 이야기를 하기에는 너무 올드한 나이가 아닐까 ?  하지만 내 판단은 틀렸다. 이토록 새련된 사랑 이야기라니.  내가 이 소설을 이 정도로 좋아할 줄은 몰랐다. 박완서 문학의 장점 중 하나는 다양한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점이다. 요즘 젊은 작가들이 강박적으로 묘사하는 레몬향 방향제 냄새에 질려버린 나는 박완서 작가가 다양하게 흝뿌려놓은 냄새에 빠지곤 한다. 밥 짓는 냄새, 젖은 흙 냄새, 카바이드 냄새, 흰 라일락 냄새. 그리고 간고등어나 꽁치의 비린내도 맛 볼 수 있다. 


식물과 음식에 대한 묘사에 있어서 박완서를 능가할 한국 작가는 없다. 굳이 해외 작가에서 찾는다면 마르셀 프르스트 정도 ?  만약에 내 이웃 중에서 이 소설을 아직 읽지 않았다면 꼭 읽어보시기 바란다. 부럽다구요, 아직 이 소설을 읽지 않았다는 것은 축복이다. 당신에게는 아직도 달콤한 초콜릿 과자가...... 남아 있다는 증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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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1-22 12: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이 글 읽으며 미소 짓고 눈물 핑 돌고 막 그랬어요. 아 놔~~.

곰곰생각하는발 2021-01-22 13:53   좋아요 2 | URL
박완서 작가는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다다른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허투루 사용한 단어 같지만 나중에 연결하다 보면 매우 적확한 단어 사용이라는 것을 볼 수 있죠. 구슬, 학교, 포옹.... 이게 다 서로 연결이 되잖아요. 기똥찬 문학입니다. 읽는 내내 감탄을 할 수밖에 없는... 물론, 저는 이 작품을 오래 전에 읽었지만, 새로 단장을 해서 기쁜 마음에 이 글을 쓰게 되었네요....작가가 구슬 같다, 라고 쓰는 순간, 게임 오버였습니다.

scott 2021-01-22 13: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밥짓는 냄새 흙냄새 ㅜ.ㅜ 그리운 작가님

곰곰생각하는발 2021-01-22 13:55   좋아요 2 | URL
현대 작가의 작품에는 없는 게 박완서 문학에는 있습니다. 현대 작가들이 주로 향기에 집착한다면(사실 향기도 아닌 방향제 냄새 같은)박완서 문학은 냄새가 매우 다채로워요. 읽다 보면 정말 그 냄새를 추억하게 된다는....

막시무스 2021-01-22 16: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부끄럽게도 최근에 들어서 엄마의 말뚝으로 박완서선생님을 처음접했습니다! 책을 읽고 표현할 수 없는 뭔가에 놀라고, 대단하다는 추상적 느낌이 압도했는데 곰발님의 글을 읽으니 그 느낌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이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신파조일거라는 편견을 왜 가졌는지 죄송할 따름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덕분에 선생님 타계 10주년을 즈음해서 작품을 좀 더 읽을수 있는 동력을 얻은것 같아요!ㅎ 즐거운 주말되십시요!

곰곰생각하는발 2021-01-23 08:56   좋아요 0 | URL
저도 똑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순애보와 신파, 그 특유의 애상이 지배할 것으로 보았는데 전혀 아니더군요. 오히려 현대 작가의 작품보다 냉정하고 날카롭고 문체는 세련되고, 문제 의식은 뛰어나고.... 깜놀의 연속이었죠. 그 경험이 새롭네요..

나와같다면 2021-01-23 0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이 뭐라고 눈물이 나지?

곰곰생각하는발 2021-01-23 08:53   좋아요 1 | URL
어, 그래요 ? 두 분이 제 글을 읽고 눈물바람이 났다고 하니.. 이번에는 내 글이 훌륭했던 것으로 결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