빤스에 관한 시에 이어서 20대에 쓴 시 한 편을 더 옮겨놓는다. 실상은 이 서재의 문턱을 조금 낮춰보자는 '계산'을 담고 있지만 달리 페이퍼를 쓸 만한 시간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밀린 일들을 다 제쳐두고 무얼 할 만한 여건이 아니기에 떠올려본 시이다...

내게 밀밭을 그려줘

밀밭을 그려줘, 나의 밀들이 자라게
주말에 나는 밀린 일들을 다 제쳐두고 저
밀밭으로 달려갈 거야
가서 볼 거야
밀밭이야, 물결치는 밀밭이야
내 손에 쥐어진 한줌의 밀들이 자라게
나는 가슴으로 너를 끌어안을 거야
이 향긋한 흙속에 코를 묻을 거야
밀밭이야
밀밭을 그려줘, 나의 밀들이 어서 자라게
나는 맨발로 너를 끌어안을 거야
나는 밀밭을 일굴 거야
밀밭이야, 물결치는 밀밭이야
거기 황혼이 내리면
나는 종소리를 구하러 읍내에 나가야지
때앵
때앵
때앵
나는 밀들을 거둬들여야지
나의 사랑하는 밀들을 빻고 또 빻아서
남김없이 빻아서

전부 밀가루 반죽을 만들 거야
두고볼 거야

밀밭을 어서 그려줘, 나의 밀들이 자라게
이 말라가는 한줌의 밀들이……

 

07. 11.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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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괭이 2007-11-06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빤스' 만큼은 아니지만, 아 웃겨 ㅋㅋㅋ

로쟈 2007-11-06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면 제가 쓴 시의 팔할은 코믹시였나 봅니다. 웃기다고들 하시니.^^;

섬나무 2007-11-06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밭만 그려줘도 밀을 키우시겠다니 놀랍네요. 그런데 밀가루 반죽을 만들어서 두고 보면 안되잖아요. 수제비라도 만들던가 해야잖아요.^^ 음...너무 귀한 밀이라 차마 먹어치우진 못하는 건가요 아님 애초에 먹을 수 없는 밀인가요?

로쟈 2007-11-06 12:35   좋아요 0 | URL
'전부 밀가루 반죽을 만들 거야/ 두고볼 거야'는 순차적인 것이 아니라 반복적인 것으로 읽어주시면 제 의도에 더 잘 맞겠습니다.^^

마노아 2007-11-06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종소리를 구하러 읍내에 나가야지
//요 구절이 좋아요. 그림과 꼭 함께 보아야 더 맛있는 시가 되는 것 같아요^^

로쟈 2007-11-06 12:36   좋아요 0 | URL
'시화전 시'가 돼버렸네요.^^;

호민관 2007-11-07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시의 모티브는 다른 이들의 글이나 영화라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전혀 다른 시들도 많겠지만)
관계와 교류를 중시하는 님은 경제학을 전공하셔도 좋을뻔했을까요?^^

로쟈 2007-11-07 21:28   좋아요 0 | URL
잘 보셨습니다. 고전적인 시나 상투어들에 대해 쓴 시들이 좀 되구요, 영화의 제목을 차용한 시들도 있습니다(직접 관련되는 건 없지만). 저대로의 유희이면서 윤리입니다. 경제학과는 전혀 무관한(제가 계산엔 소질이 없어서요).^^


영남자파 2011-09-28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인형이십니다. 다 빻아버릴 결심을 하시다니 ㅋ(책도 모조리 다 모둣코^^)
언젠가 시집 꼭 내시면 좋겠어요.((한 권 갖고있고 싶네요^^)

 

어쩌다 보니 옛날에 쓴 시가 생각났다. 97년 대선보다도 더 전이니까 아주 오랜 '옛날'이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이란 제목은 박완서 선생의 소설 제목에서 따왔으니까(물론 원출처를 따지자면 김현승의 시 '눈물'로까지 거슬러올라가겠지만) 최소한 94년 이후에 씌어진 것이다. 이런저런 할일들에도 불구하고 의욕이 저하된 상태에서 물끄러미 주말과 휴일을 보내다보니 생각난 시인 듯도 하다. 무엇이 너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이냐, 라고 묻는 뜻에서. 생각난 김에 창고에 넣어둔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1

쩌다 그런 생각, 좀처럼 그런 생각을 벗지 못한다.
무엇이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이냐에 대해
나의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남겨두면, 바로 그 목숨
이전의 마지막 보루, 나의 빤스. 마치 목숨의 경계인 듯
빤스는 나와 함께 반생(半生)을 뛰고 또 뛰었다, 어떤 날은
빤스만 입고 뛰었다(호루라기에 맞춰). 억울할 그 무엇도
없는 날들이 나의 빤스를 젖게 했고 닳게 했고
닳아빠지게 했다. 닳아빠지도록 한 사람 곁에 머문다는 것은
보기 드문 미덕이며, 미덕의 승리이어야 한다. 보라,
온몸의 때를 씻고 씻어내고 우리가 가장 먼저 하는 일,
새 빤스를 입는 일! 금방 빤 듯한 빨아서 말린 듯한
새 빤스, 의 노곤한 감촉이여 갱생의 의지여
(요즘 빤스는 잘 찢어지지도 않는다.)
오, 삶의 이유 있는 살 만함이여
몸에 꼭 맞는 빤스를 여러 장 가진 내게 부러워할 그 무엇이
있을 것인가,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들의 순종과
더불어 나는 늙어가리라, 는 생각.
(이건 점차 확신이 되어가는 것인데.)
좀처럼 그런 생각을 벗어나지 못한다, 어쩌다 그런
흐뭇한 생각이 나를 거울 앞에 서게 한다.
빤스만 입고-

무엇이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이냐에 대해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빤스! 라고, 아직은.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2

무엇이 정말, 당신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이냐고
자꾸자꾸 물어보는 녀석은 한 대 패주고 싶다!
나는 거듭,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빤스! 라고, 
덧붙여 말하거니와 세상은 빤스 이전과 빤스 이후로 나뉘는데
빤스 이후의 삶이란, 다름아닌 빤스의 로테이션일 뿐!



07. 11. 05.

P.S. 왜 이 시가 뜬금없이 생각났는지 알겠다. <이론-이후-삶>(민음사, 2007)에서 데리다와의 패널토론을 읽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후(after)'란 말의 뜻에 대해 깊이 따져묻는 내용이다. '이론 이후의 삶'에서 '빤스 이후의 삶'을 떠올렸던 것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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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7-11-05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대 맞지 않으려면 조용히 추천만 하고 가야겠네요. 시 잘봤습니다.^^

로쟈 2007-11-05 17:19   좋아요 0 | URL
팬서비스 차원으로 읽어주시길.^^

소경 2007-11-05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흡~ 이런 저도..조용히 추천만. 지옥을 바라볼 용기가 없네요

로쟈 2007-11-05 17:19   좋아요 0 | URL
'빤스 지옥'이요?^^

와넬 2007-11-05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의 시를 읽다가 생각났는데, 군대에 가면 종종 빤스의 로테이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친구들이 있었다지요.

로쟈 2007-11-05 17:20   좋아요 0 | URL
삶이 헐벗은 게지요...

이리스 2007-11-05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에 꼭 맞는 빤스.. 라는 대목에서 부러워졌다는.. (이유는 묻지 마세요.. 후다닥~)
-.-

로쟈 2007-11-05 22:31   좋아요 0 | URL
'꼭 맞는'이란 표현도 우스개인데, 빤스야 '대충' 다 맞는 거지요(고무줄이나 스판이니까). 그래도 안 맞으신다면 이유야 뻔해보이지만 묻지는 않겠습니다.^^

섬나무 2007-11-05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하된 의욕이 보충되기에 적절한 시어로 보입니다.^^

로쟈 2007-11-06 00:37   좋아요 0 | URL
적절하지만 충분하지는 않네요.^^;

Joule 2007-11-06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빤스 이후의 삶이란, 다름아닌 빤스의 로테이션일 뿐!

마지막에 느낌표는 마음에 좀 안들긴 하지만. 위와 같은 문장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저의 이상형입니다. 이제 겨우 절반쯤 산 것 같은데 이상형을 두 명이나 찾았으니 죽기 전에 셋은 채우겠지요. 역시 운수 좋은 삶이에요.

로쟈 2007-11-07 21:19   좋아요 0 | URL
느낌표에 대한 예리한 지적이십니다. 한데, 앞에서 이미 남발했기 때문에 쿨하게 끝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메 2007-11-06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빤스'라는 시어를 보니까, 장석남 시인의 '목돈'도 생각나네요. ^^
시 잘 읽었습니다.

로쟈 2007-11-07 21:21   좋아요 0 | URL
목돈으로 빤스를 사는 시던가요?^^

우와한맘 2019-11-07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엄하신 선생님 얼굴을 떠올리며...잘 읽었습니다! ^^♡
 

미술 전시회 얘기도 적은 김에 새로 나온 미술관련서 소개도 옮겨놓는다. 특이하게도 <미술관에 간 화학자>(랜덤하우스, 2007)가 책의 제목이다. 제목대로 저자 전창림 교수는 '화학자'이고 미술에 해박해서 한편으론 미대에서 미술재료에 대한 강의도 맡고 있다고. 열렬한 미술광이 아닐까 짐작해볼 수 있는데, 짐작대로이다. "미술 책을 많이 읽었고, 루브르·오르세·퐁피두… 미술관 무료 개방일이면 하루종일 살면서 그림 구경 다녔어요. 당시 파리에 살던 백수남·김기린 화백과도 친하게 지냈어요. 생각해보니 과학자보다 화가들을 많이 만났네요.”라고 고백하고 있으니 말이다. 학문간 '크로스오버'의 좋은 사례이다 싶은데, 이러한 학제적 관심의 밑바닥은 바로 '열정'이란 건 확인하게 된다. 돈으로 장려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다시 든다. 관련기사들을 모아둔다.

세계일보(07. 11. 03) 르누아르는 어떻게 햇빛을 그렸을까

렘브란트 그림으로 유명한 ‘야경’이 있다. 어둠 속에서 군대나 경찰이 순찰을 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 그림이 본래는 낮 풍경이었는데, 100년 후 사람들이 어둡고 거무칙칙한 그림을 보고 추측해 붙였다는 것이다. 밤 풍경이 된 데는 여러 원인이 있다. 이 가운데 렘브란트가 납이 들어간 황토색, 흰색, 갈색 물감을 많이 썼는데, 그게 검게 변하는 특성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흑화현상’은 밀레의 ‘만종’에서도 나타난다. 여체를 그리면 껴안고 싶게 만든다는 르누아르는 따뜻한 햇빛을 캔버스에 담아낸 화가다. 그가 색채의 오묘한 성질을 몰랐다면 ‘목욕하는 여인’ 같은 명화는 결코 나올 수 없었다.

얼마 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벽화 ‘최후의 만찬’이 16기가 픽셀의 고해상도 이미지로 재생돼 불과 몇 ㎝ 떨어진 곳에서 그림을 보는 것 같다 해서 주목받았다. 그런데 이 벽화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손상된 것은 다빈치가 물감의 성질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미술은 화학과 지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예술이 아닐까.

‘미술관에 간 화학자’는 과학자의 눈으로 본 미술, 미술과 함께하는 과학에 대해 말하고 있다. 홍익대 화학시스템공학과 교수인 지은이는 어린 시절 화가의 꿈을 화학으로 풀어내며 미술과 화학, 또는 예술과 과학의 접점을 찾아가는 일을 해나왔다. 일반 미술평론가와 달리 화학의 소산으로서 그림을 분석하는 화학자의 미술평론이 대단히 섬세하고 흥미진진하다.

아무리 명화라도 그냥 보면 1분을 보기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 설명을 들으면 몇 시간을 봐도 지루하지 않고 재미가 더욱 깊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지은이는 명화의 대부분은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얀 반 에이크가 그린 ‘아르놀피니의 결혼’을 지은이 시각으로 음미해 보자. 왜 남자가 손을 들고 있을까. 왜 대낮인데 촛불이 켜져 있을까. 그것도 딱 하나만. 그림 가운데 거울에는 뭐가 비친 것일까. 신부의 배는 왜 임신한 것처럼 부르며,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녹색은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남자 옷의 색이 왜 저렇게 이상하게 변했을까. 알아야 할 것도 많고, 이야기할 것도 많다.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알면 더욱 재미있어지고 생각이 풍부해질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지론이다.

책에는 화학자의 별난 미술 감상기가 긴박감 있게 펼쳐진다. 화가들이 돌연사한 배후에 흰색 물감이 있었을 줄이야! 밀레의 만종이 칙칙해진 것이 아황산가스 때문이었다니. 철학적 사색까지 자극했던 세잔의 유명한 회화 ‘사과와 오렌지’에 등장하는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물감이 단지 앞으로 나와 보이고, 뒤로 들어가 보이게 하려고 사용했다니…. 명화 속 화학반응의 비밀이 밝혀질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고 무릎을 치게 감탄하게 한다.

인상파 화가들은 스펙트럼의 과학을 예술에 끌어들인다. 빨강과 파랑을 미리 섞으면 어두운 보라색이 되는데, 밝은 파랑과 밝은 파랑을 나란히 칠하고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면 우리 눈의 망막에 밝은 보라색으로 보인다고 한다. 과학과 미술의 연결고리까지 밝히는 지은이의 궁구하는 미술 열정이 돋보인다.(정성수기자)




 

 

 

 

 

 

 

 

중앙일보(07. 11. 03) ‘최후의 만찬’이 손상 심한 건 다빈치가 화학에 문외한인 탓

고등어에 많이 들어 있다는 불포화지방산이 미술의 역사를 바꿨다? 거장 렘브란트의 대표작 ‘야경’은 사실 낮 풍경을 그린 것이다? 미술 서적의 봇물 속에서도『미술관에 간 화학자』(랜덤하우스)는 도드라지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이자 ‘미술관에 걸어들어간 화학자’는 홍익대 화학시스템공학과 전창림(53) 교수다. 화학자의 프리즘을 통해 바라본 미술은 신선하다.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 유채와 템페라 기법을 함께 사용했다. 템페라는 안료를 갤 때 계란노른자를 넣는 방법이다. 노른자는 접착력을 높이기 위해 넣는 것으로 50% 이상이 수분이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기름’인 유채기법과 템페라는 상극인 셈이다. ‘최후의 만찬’이 다른 작품에 비해 유독 심하게 손상된 이유는 어울릴 수 없는 두 기법이 충돌한 탓이다. 수지 균형이 깨어져 상 분리가 일어난 것. 전 교수는 “미술뿐 아니라 기계공학, 천문학, 기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천재성을 드러냈던 다빈치도 화학에는 문외한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취학 전부터 미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고교 때까지 미대 진학을 꿈꾸었던 그는 돌연 화공과에 진학했다. “아버지의 간곡한 권유를 뿌리칠 수 없었어요. 제가 화학을 공부해 가업을 이어주길 바라셨거든요.” 그의 부친은 포스터컬러로 유명한 ‘알파색채’의 창업주 전영탁 회장이다.

화학도가 된 뒤에도 미술에 대한 관심을 거두지 않던 그는, 1981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면서 본격적으로 그림에 빠져들었다. 빡빡한 학사일정 속에서도 어떻게든 시간을 냈다. “미술 책을 많이 읽었고, 루브르·오르세·퐁피두… 미술관 무료 개방일이면 하루종일 살면서 그림 구경 다녔어요. 당시 파리에 살던 백수남·김기린 화백과도 친하게 지냈어요. 생각해보니 과학자보다 화가들을 많이 만났네요.”

가욋일에 눈을 돌린 전 교수를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과학자가 웬 미술이냐고, 외도라는 비난도 받았어요. 하지만 저는 ‘인류에 유익을 준다’ 는 과학의 본령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재료의 성질을 이해하지 못한 탓에 ‘최후의 만찬’ 같은 불후의 명작이 비운의 명작이 되지 않도록 돕고 싶습니다.”

그는 현재 홍익대 미술대학에서 미술재료 강의를 하고 있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것, 창조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미술이나 과학이나 똑같지 않나요?” 그는 어린 시절 품었던 화가의 꿈을 화학이라는 붓으로 그려내고 있다.(이에스더기자)

07. 11.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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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7-11-04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재밌겠네요 :-)

Kitty 2007-11-05 0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은 당장 사야겠네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

심술 2007-11-05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소개 고맙습니다.

로쟈 2007-11-05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제가 책을 사드리는 것도 아니고.^^;
 

아주 오랜만에 미술 전시회에 관한 기사를 옮겨온다. 북리뷰들만 읽다가 진절머리도 나서(왜 아니겠는가!) 잠시 미술쪽으로 눈을 돌렸다가 의외로 '횡재'한 기분이 들게 한 기사이다. 시간이 난다면 이 가을이 가기 전에 미술관으로 걸음을 돌려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최근에 국내외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는 안성하, 배준성, 두 젊은 작가의 전시회인데, 이런 경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해 보인다. 이미지만으로도 활자로 인한 멀미를 잠시 덜어준다(기사에 딸린 이미지들은 각각 미술관전시정보 http://link.allblog.net/6322314/http://www.galleryinfo.co.kr/170 와 갤러리현대 http://www.galleryhyundai.com/new/kr/exhibitions/past84_1.htm 에서 가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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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07. 11. 05) 클로즈업·각도비틀기… 확 달라진 이미지들

미술시장의 젊은 스타작가 두 명의 개인전이 나란히 열리고 있다. 담배와 사탕을 클로즈업해 그리는 젊은 여성작가 안성하(30)와 서양 명화에 한국여인의 누드사진을 합성해 고전을 비틀어온 배준성(39)이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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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선보이고 있는 안성하의 신작들은 100~200호의 대작들이 대부분. 전시장에 들어서면 매크로 렌즈로 접사한 듯한 사실적이고도 거대한 화면이 시각을 압도한다. 수십 배로 클로즈업된 이 사소하고도 일상적인 오브제들은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어쩐지 쓸쓸해지는데, 투명하고도 촉촉한 화면이 도회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탓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언뜻 보면 사진처럼 보일 정도로 담배와 사탕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그의 그림들은 유리를 통해 굴절되는 오브제로 인해 몽환적이면서도 추상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극사실적인 구상 밑에 아스라이 배채(背彩)된 추상의 흔적이 묘한 아우라를 느끼게 하는 게 그의 매력. 국내 미술시장은 물론 스페인 아르코 아트페어와 소더비, 크리스티 등 해외경매에서도 각광받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작가는 “담배는 독이며 아름답지 않지만 그것이 가져다주는 정신적 위안이 아름답고, 사탕은 달콤하고 유혹적이지만 결국 독이 되고 만다”고 말한다. 줄곧 사탕과 담배만을 그려온 이유다. 13일까지. Close Window

배준성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7~25일 열리는 ‘더 뮤지엄’전에서 벨라스케스, 다비드, 앵그르, 베르메르 등 거장들의 명화에 동양 여성의 누드를 슬쩍 끼워넣는 기존 방식에 렌티큘러라는 새로운 매체를 가미한 신작 40여점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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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티큘러는 층층이 쌓인 레이어로 인해 보는 각도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보이는 입체 영상 매체. 시각적 교란을 통해 이미지가 움직이는 듯 보이는 렌티큘러를 통해 왼편에서 보면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있는 명화 속 한국 여인이 오른쪽에서 보면 나체의 모습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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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정물을 그리고 싶었다”는 작가는 프라도 미술관, 루브르 박물관, 에르미타주 박물관 등 12개 유명 박물관들의 내부 전경을 유화로 그린 후 명화가 걸려있던 자리에 자신의 렌티큘러 작품을 덮어씌웠다. 관음의 욕구를 부추기며 훔쳐보기를 위한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작품들이다.(박선영기자)

07. 11. 04.

P.S. 배준성의 예전 작품들은 'The Costume of Painter'(터치아트, 2006)로 출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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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나무 2007-11-05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절머리난 북리뷰 읽기...ㅎ

로쟈 2007-11-05 17:28   좋아요 0 | URL
^^;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할 것 없이 스캔들로 얼룩져가는 게 요즘 '조용한 아침의 나라'이다. 대선이 껴있는 연말까지 이런 추세는 더욱 강화되고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모처럼 청명한 가을 하늘을 바라보면서도 마음이 맑지 않은 이유이다. 개인사는 접어두고서라도 말이다. 책을 읽는 마음 또한 그러하다.

책소개 글들을 정기적으로 쓰고 있기에 매주 나오는 북리뷰들을 일견해보는 것이 '습관'처럼 돼 버렸다(하긴 이건 오랜 습관이다). 가을날 배낭 하나 짊어지고 길 떠나는 팔자는 아닌 것이다. 이번주에는 별로 눈에 띄는/드는 책들이 없는데(내 경우엔 '의외성'이 판단의 중요한 기준이다. '뜻밖의 책'과의 만남이야말로 가슴 뛰는 일이니까), 그냥 담담하게 <중세의 사람들>(이산, 2007)이나 만나보기로 했다. 

중세와 중세사에 관한 책들이 비교적 드물지 않은 상태에서 이 밋밋한 제목의 책이 눈길을 끄는 건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먼저, 저자인 아일린 파워(1889-1940)가 영국의 여성 사학자로서 중세관련으로는 국내에 많이 소개된 프랑스쪽 역사학자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또 한가지는 책이 먼지 흠뻑 뒤집어쓰고 있을 만한 1924년작이라는 것. 80년도 더 된 책이 여전히 출간될 만하다면 '고전'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관심을 갖고 있는 시대가 아니어서 과문하지만 책은 '사회경제사의 고전'이라고 한다. 출판사 소개는 이렇다.  

이 책 <중세의 사람들>은 바로 그 새로운 시각으로 쓰인 사회경제사의 한 전형 같은 역사서로서, 지금은 사회경제사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외국에서는 서양중세사의 기본텍스트로 읽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록 초판이 출판된 지 80여 년이 지난 지금에야 완역되었지만, 의외로 비전문가인 학생과 일반인도 적지 않게 이 책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중학교 사회교과서에 이 책 1장의 일부가 인용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이 책을 읽어보고 싶은데 책을 찾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쉽게 눈에 띈다.

이 책을 이미 알고 있는 "의외로 비전문가인 학생과 일반인" 축에도 못 끼는 형편이라 쑥쓰럽지만 여러 기대와는 달리 로쟈는 책을 그리 많이 읽는 편이 아니다(독서가 취미는 넘어서지만 직업은 아니기에). 더구나 중세사에 관해서라면 기본서들이나 장서용으로 모아두었다가 지금은 박스에 보관중이니 전문가는커녕 '비전문가'도 못되는 것이다. 아래 리뷰를 보면 "서양의 중세를 이해하는 데 최적의 입문서"라고 강추하고 있다. 나 같이 '무지한' 독자에게 딱 맞는 책이겠다.   

경향신문(07. 11. 03) 중세, 민초의 삶을 더듬다

서양 중세의 일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케임브리지 대학의 경제사 교수인 아일린 파워(1889~1940)가 쓴 ‘중세의 사람들(Medieval People)’은 평범한 6명의 인물을 등장시켜 중세 사람의 다채로운 삶을 손에 잡힐 듯 묘사하고 있다. 우리는 이 책에서 무겁고 어두운 중세의 종교적 분위기 대신 민초들의 땀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6명은 샤를 마뉴 치세 하의 프랑크 왕국의 농부 보도, 베네치아 상인 겸 여행가인 마르코 폴로,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에 나오는 수녀원장 마담 에글렌타인, 파리의 중간 계급 가정 주부인 메나지에의 아내, 15세기 지정 거래소의 양모무역 상인인 토머스 벳슨, 헨리 7세 시대 에식스의 모직물 업자인 토머스 페이콕 등이다. 등장 인물들 가운데에는 마르코 폴로처럼 매우 유명한 사람도 있고, 마담 에글렌타인처럼 수녀원장도 있지만 나머지는 모두 중세시대에 살던 중간 계급 이하의 사람들이다.

저자는 “이런 평범한 사람들이 중세 사회를 떠받치고 변화를 주도해 결국 자본주의 사회가 열렸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그리면서도 “중세는 결코 ‘암흑시대’라는 말로 단순화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기층의 사람들을 다루고 있지만 굳이 이 책이 ‘민중사’로 불리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등장 인물들의 사회적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이다.

아일린 파워는 자신이 여성이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주인공 6명을 남자 3명, 여자 3명으로 설정했다. 저자는 주인공이 남자든 여자든 반드시 그들의 남녀 관계를 다루고 있다. 최근 역사 연구에서 여성사를 제외하면 여성을 남성과 같은 비중으로 다룬 역사서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이 책은 20세기 초반에, 그것도 중세사에서 이렇게 구체적으로 여성의 삶과 일상을 소개했다는 점에서 대단한 작업으로 평가될 만하다.

‘중세의 사람들’은 여느 중세 관련 서적처럼 성직자, 영주, 기사의 신앙이나 무용담을 다루는 게 아니다. 생산과 유통을 담당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그 때문에 이 책은 ‘사회경제사의 고전’으로 평가 받는다. 저자는 “사회사는 정치사에 비해 저명한 인물이 등장하지 않아 독자의 관심을 끌기도 어렵고 간혹 모호하고 막연하다는 비판을 받는다”면서도 “개인 위주의 서술 방식이 화려하지는 않아도 결코 재미가 작은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중세의 사람들’은 서양의 중세를 이해하는 데 최적의 입문서라 할 만하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개론적 지식 이상의 것을 얻으면서 역사의 의미를 곱씹어 볼 수 있다. 원저의 초판은 1924년 나왔으나 이번에 국내에서 처음 완역됐다.(설원태 선임기자)

07. 11. 04.

 

 

 

 

P.S. 중세에 관한 너무도 많은 책들 가운데 <중세의 사람들>과 관련해서 떠오르는 건 자크 르 고프 등의 <중세에 살기>(동문선, 2000)와 노만 켄터의 <중세 이야기>(새물결, 2001)이다. 특히 '위대한 8인의 꿈'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중세 이야기>는 직접적으로 아일린 파워의 책을 염두에 두고 씌어진 것이다.

저자 켄터에 따르면, "이 책은 4세기에서 15세기에 살았던 여덟 명의 중세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파워의 책과 마찬가지로 이 책도 일반 독자와 대학생을 대상으로 씌여졌으며, 중세인 여덟 명의 간략한 전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이 책은 파워의 고전적인 작품과 몇 가지 분명한 차이가 있다. 파워는 사회경제사가인 반면 나는 문화사와 지성사에 주로 관심을 갖고 있다." 따라서 파워의 책과 나란히 읽어볼 만하다. 특별히 중세의 여성들에 대해서는 르 고프와 함께 중세사의 거장으로 꼽히는 조르주 뒤비의 <12세기의 여인들>(새물결, 2005) 등이 번역돼 있으므로 참고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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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블로그도 인기 블로그가 될 수 있다?
    from 내 안에 아직 2007-11-04 18:17 
    제가 애용..까지는 아니지만 책을 살 때 주로 이용하는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는 블로그 서비스도 제공합니다.마이리스트, 마이리뷰 등 내가 알라딘에 올린 글들을 모아주고다른 사람이 쓴 글들을 쉽게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알라딘을 많이 이용하신다면 이용해 볼만하다고 하고 싶지만블로그 자체의 기능은 자유도가 많이 떨어지고 제한된 점이 많습니다.말 그대로 '서재'로만 이용하기엔 좋을 듯 합니다.제한되고 협소한 공간임에도 불고하고그 중에서 유명한 블로그가 하나...
 
 
람혼 2007-11-04 13:13   좋아요 0 | URL
<중세의 사람들> 책 소개를 보니, 일전에 새물결 출판사에서 번역 출간되었던 Norman F. Cantor의 <중세 이야기-위대한 8인의 꿈(Medieval Lives)>이 생각납니다. 비슷한 형식으로 또한 흥미롭게 읽은 책은ㅡ비록 중세사에 관한 책은 아니지만ㅡSusan Whitfield의 <실크로드 이야기(Life along the Silk Road)>(이산)가 떠오르는데, 이런 식의 "인물의 '생생한' 생을 통해 본 당대의 역사 이야기"를 저는 상당히 좋아하는 편입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마르크 블로크의 thaumaturgie에 대한 연구나 뤼시엥 페브르의 라블레론, 루터론, 또한 거시와 미시의 씨실과 날실을 직조하는 조르주 뒤비의 여러 책들을 또한 첨가할 수 있을 텐데요, 또 다른 '비전문가' 내지는 '순수'애호가의 입장에서(^^;) 상당히 반가운 책 소식입니다. 감사드립니다.
덧붙여, 어떤 책과의 만남에 있어서 '의외성'과 '뜻밖의 만남'을 중요한 기준으로 생각하시는 로쟈님이, 왠지 더욱 저와 '가깝게' 느껴지는군요.^^

로쟈 2007-11-04 13:12   좋아요 0 | URL
켄터의 책은 빙고입니다. 제가 글을 쓰는 중에 댓글을 달아주셨네요.^^

람혼 2007-11-04 13:17   좋아요 0 | URL
앗, 거의 실시간 댓글이군요. 이미지 올려주신 르 고프의 <중세에 살기>도 재미있는 책이죠.^^ 르 고프가 쓰거나 편집한 책은 국내에도 다종다양하게 나와 있지만, 특히 르 고프 편집의 <고통 받는 몸의 역사>(지호)도 이른바 '병리학의 고고학'이라는 입장에서 가볍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인 것 같습니다.

로쟈 2007-11-04 13:30   좋아요 0 | URL
뒤비나 르 고프의 책들은 이미 서가 하나 정도는 차지할 만큼 소개돼 있어서 제가 중세에 큰 관심이 없다는 게 다행으로 여겨질 정도입니다.^^;

람혼 2007-11-04 13:42   좋아요 0 | URL
하하, 그런 심정은 정말 이해가 가는 바입니다.^^ 글이 진행중일 때 단 제 댓글과 로쟈님의 완성된 글이 이루는 고리를 보니, 역시나 책이 책의 꼬리를 무는 '하이퍼텍스트'의 여러 갈래 길이란 것이 어느 정도는 '공통감각'을 포함하는 '포장도로'라는 생각도 한 자락.^^;

wnsgml 2007-11-04 18:06   좋아요 0 | URL
글 약간 인용할려고 하는데요, 양해부탁드립니다.
트랙백으로 주소 달아드릴게요 ^^

로쟈 2007-11-04 18:27   좋아요 0 | URL
먼댓글 말씀이신가 보네요. 책에 관한 정보라면 저는 '카피레프트'의 입장이기 때문에 북리뷰들을 많이 옮겨오고 있습니다. 블로그란 게 절반은 공적인 공간이니까요(대신 절반은 사적인 공간이기에 제 얘기들을 끼워넣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