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내서점에 들렀다가 <현대비평과 이론>(2007년, 봄-여름호)를 손에 들었다(원래는 가을-겨울호를 사려고 했지만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몇 권이나 팔릴까 싶은 잡지인데, 나는 자주 구입하는 편이다(일년에 두 번 나오는 게 다행이다!). '정명환의 문학과 학문'이 특집이어서 생각난 김에 '정명환 읽기' 리스트를 만들어둔다. 하지만 그가 대표작으로 꼽는 책들 가운데 <한국 작가와 지성>(1978), <졸라와 자연주의>(1982)는 절판된 지 오래이고 <문학을 찾아서>(1994)는 이미지가 뜨지 않는다. 리스트가 반쪽짜리밖에 되지 못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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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란 무엇인가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정명환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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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언제가 적은 말. "내가 읽은 사르트르는 정명환과 박이문이 읽은 사르트르이다."
문학을 생각하다
정명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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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환의 평론집은 몇 권 되지 않는다. 해서 다 사두면 된다.
젊은이를 위한 문학이야기
정명환 지음 / 현대문학 / 2005년 12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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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안 갖고 있는 책.
현대의 위기와 인간
정명환 지음 / 민음사 / 2006년 7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4월 29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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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무게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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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7-11-04 13:45   좋아요 0 | URL
<문학을 찾아서>는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책인데, 품절이라니, 저 역시나 아쉽고 안타깝군요.
 

내일자 한국일보의 '오늘의 책'은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를 다루고 있다. 문득 20년전 대학시절이 떠올라 기사를 옮겨놓고 몇 자 적는다. 아마도 그해 여름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와 함께 민음사의 세계시인선으로 읽었던 이 시집은 <비가>와 함께 비의적인 매혹을 품고 있어서(사실 시보다도 발레리의 '정신'이 더 매혹적이었다) 이후에 발레리의 책들이나 그에 관한 책들을 주섬주섬 사모았던 기억이 있다. 젊은 날 시를 쓰고 한 20년 절필을 해야지, 하고 마음 먹은 것도 내 딴엔 발레리 흉내쯤 된다(그 20년이 다 돼 간다!)...

Поль Валери Об искусстве

내가 아끼는 책은 러시아어판 <예술론>(1993). 3년전 모스크바대학의 헌책방에서 우연히 구한 책이다.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한국어 발레리는 몇 권 되지 않는다. <나르시스는 말한다>(태학당, 2000)나 <발레리 선집>(을유문화사, 1999), <젊은 운명의 여신>(혜원출판사, 1987) 등이 문학평론가 김현이 젊은 시절 옮긴 <해변의 묘지>(민음사, 1973)와 함께 한국어로 나온 시집들이고 산문집으론 <드가-춤-데생>(열화당, 1977), <발레리 산문선>(인폴리오, 1997), <신체의 미학>(현대미학사, 1997) 정도가 나와 있는 듯하다(그밖에 두어 권의 연구서가 있다). 개인적으론 영역본 산문집들을 몇 권의 한국어본에 보태어 갖고 있다. 여하튼 여유가 없어서인지 그간에 모아놓기만 한 책들을 미처 읽지 못했는데, 삶의 의욕이 수시로 저하되는 요즘인지라 한번쯤 뒤적여보고 싶기도 하다. 아래 사진은 릴케와 담소를 나누고 있는 발레리의 모습.  

한국일보(07. 10. 30) [오늘의 책<10월 30일>] 해변의 묘지

1871년 10월 30일 프랑스 상징주의 시를 정점에 올려놓은 시인이자 20세기 최대의 산문가로 꼽히는 폴 발레리가 태어났다. 1945년 74세로 몰. 가장 잘 알려진 발레리의 시는 <해변의 묘지>다. 남불 항구도시의 수부(水夫) 집안에서 태어난 그에게 지중해는 언제나 정신의 고향이었다. 죽어서 그는 고향 해변의 묘지에 묻혔다. ‘바람이 인다! … 살려고 애써야 한다!/ 세찬 마파람은 내 책을 펼치고 또한 닫으며,/ 물결은 분말로 부서져 바위로부터 굳세게 뛰쳐나온다./ 날아가거라, 온통 눈부신 책장들이여!/ 부숴라, 파도여! 뛰노는 물살로 부숴 버려라/ 돛배가 먹이를 쪼고 있던 이 조용한 지붕을!’

김현(1942~1990)은 <해변의 묘지>의 마지막 연 첫 구를 ‘바람이 인다! … 살려고 애써야 한다!’로 번역했지만, 개인적으로 ‘바람이 분다! … 살아야겠다!’는 번역이 우리말로는 더 매력있게 느껴진다. 20세기말 한국의 한 시인은 이 구절을 이렇게 변주하기도 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남진우의 시 ‘로트레아몽 백작의 방황과 좌절에 관한 일곱개의 노트 혹은 절망 연습’에서).

“언어의 한쪽 끝에는 음악이 있고, 다른 한쪽 끝에는 대수학이 있다.” 시에서 모든 불순물을 제거한 순수시를 지향했던 발레리의 엄밀한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말이다. 발레리에 감동한 릴케가 발레리의 평생의 지기였던 앙드레 지드에게 보낸 편지에 쓴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모든 작품도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날 나는 발레리를 읽었다. 그리고 내 기다림이 끝이 난 줄 알았다”는 구절은 유명하다. 경구처럼 쓰이는 문장 “기억하라,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도 발레리의 시구다.(하종오기자)

07. 10. 29.

P.S. 그래, 내게 그만한 호사가 허락된다면 죽어 해변의 묘지에 묻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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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07-10-30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닷가 풍경이 이쁩니다.

로쟈 2007-11-01 21:20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래도 고른 사진입니다...

필라멘트 2007-10-30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현 선생이 번역한 프랑시들을 읽으면서 자주 느끼는 거지만 교수나 비평가가 번역한 시는 뭔가 매끄럽지 못하다는 느낌입니다. 시번역 만큼은 외국어에 능통한 시인이 번역하는 게 좋을 듯 한데요. 물론 외국어에 능통한 시인이 그리 흔하지는 않겠지만요. 황동규 시인이 번역한 엘리어트 시나 강은교 시인이 번역한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번역자들이 시인들이어선지 번역이 무난하더라구요.

로쟈 2007-11-01 21:21   좋아요 0 | URL
가장 좋은 번역은 역시 전문학자나 번역자가 시인과 공역을 하는 것이죠. 러시아의 경우 한국시(조)선 번역에 당대 최고의 시인이었던 아흐마토바가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초역은 번역자가 하고 그걸 '시'로 만드는 것이죠...

뭉실이 2007-10-30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추워진날씨에 '바람이 분다!...살아야겠다!'는
싯구가 확 땡긴다는...*^^*

로쟈 2007-11-01 21:22   좋아요 0 | URL
콧등이 때리는 북서풍이 불면 사정은 또 다르죠.^^;
 

느지막이 학교에 나오는 길에 점심은 오천원짜리 순대국밥으로 때웠다. 학교식당에서보다야 비싼 점심이었지만 '국밥'은 왠지 '때웠다'와 잘 호응할 성싶다. 덕분에 조간신문 기사들을 두루 읽었다. 특히 경향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기획기사 '2007 한국인의 자화상'(http://news.khan.co.kr/kh_news/khan_serial_list.html?s_code=af055)을 '눈물나게' 읽었다. '어린 가장들'을 다룬 기사였다. '죽음으로 내몰린 양극화 절망'이란 1면 기사에서 이미 41분마다(하루 36명) 자살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며, 자살자의 대부분은 생활고를 못 이기고 목숨을 끊은 것이라고 하니 실상은 '사회적 타살'이란 지적을 읽은 터였다.  

조금 인용하면 이렇다: "1970~80년대에 전태일 열사와 대학생들은 민주화와 사람답게 살 권리 쟁취를 위해 몸을 불살랐다. 하지만 21세기를 맞은 지금도 생활고·장애·산재 극복 등 최소한의 삶의 질 보장을 요구하며 자살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민주화 투쟁 20년을 맞은 한국의 참담한 현주소다. 성장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고 숨가쁘게 달려온 우리사회에 남겨진 것은 ‘20대 80’이라는 양극화다. 하위 30%는 한푼도 저축할 수 없는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미래도 희망도 약속할 수 없는 삶이다. 양극화가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승자독식, 1등지상주의, 신자유주의의 구호 속에 그늘도 짙어지고 있다. 서민들은 경쟁에서 낙오된 패배자 정도로 치부된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여전히 ‘성장 만능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과 한나라당 등 보수정당과 그 대선후보들은 성장중심의 경제공약을 경쟁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잘못된 현실인식에서 나온 잘못된 해법이다. 하층민을 대표해야 할 진보정당은 가치실현을 위한 세력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거기에 이어서 읽은 게 여고생 김정은양 이야기(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10281747391&code=210000)와 병든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17세 안재우군 이야기이다. TV 프로들에서도 자주 접하기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야기들이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살아가려는 모습이 얼마간은 대견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한 자화상으로 김정은양의 이야기를 옮겨놓는다. 그와 대조적인 사설과 함께. 졸렬한 공무원들에 관한 사설이다.

경향신문(07. 10. 29) 어린 가장들-혼자 사는 여고생 김정은양

“가끔씩 학원 다니기 싫다고 투정하는 친구들 보면 ‘내가 대신 가줄까’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갈 때가 있어요. 저는 수업 시간에 절대 자지 않아요. 졸릴 때는 손톱으로 허벅지를 꼬집어요. 정말 피곤하면 머리카락을 하나씩 뽑아요. 그리고 속으로 몇 번씩 나 자신과 이야기 하죠. ‘이거라도 듣지 않으면 나는 배울 기회가 없다’ ‘수업시간에 잠깐 졸 권리조차 나에게는 없다’…”

김정은양(16)은 새벽까지 학원을 전전하는 친구들을 과도한 입시경쟁의 희생양으로 묘사하는 것을 들을 때 피식 쓴 웃음을 짓는다. 돈이 없어 학원 문턱도 가보지 못한 정은이에게는 학원 강의 듣고 새벽별을 보면서 집으로 가는 게 소원이기 때문이다. 구르는 낙엽만 봐도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고, 한창 멋을 부릴 여고 1학년. 하지만 지난 24일 경기 수원의 한 고등학교 근처에서 만난 정은이는 생각이나 말씨가 ‘완벽한 어른’이었다.

“반 친구들은 저를 ‘정은이 형’ ‘정은이 형님’ ‘정은이 이모’ ‘정은이 엄마’라고 불러요.” 정은이가 좋아하는 가수는 요즘 10대들에게 인기있는 슈퍼주니어, 원더걸스, 소녀시대가 아니다. 요즘 10대들은 이름이나 들어봤을까. 정은이가 좋아하는 가수는 ‘김광석’이다.

“노래를 듣는 순간 김광석에게 끌렸어요. 김광석의 잔잔한 노래가 제 삶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어요. 노래를 듣다보면 김광석이 왜 자살했는지 알 것 같아요. 이루기 어려운 무엇인가를 늘 동경하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는 것이….”

10대 소녀가 사춘기를 거치지 않고 훌쩍 어른이 돼 버린 사연은 김광석의 노랫가락만큼 애절하다. 정은이의 부모님은 7년전 불의의 교통사고로 모두 돌아가셨다. “경찰로부터 부모님 교통사고 소식을 들었어요. 믿어지지 않았죠. 이상하게 처음에는 눈물도 나지 않았어요. 6살 아래 동생을 챙겨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동생에게는 ‘엄마 죽었대’라고 담담하게 말했어요.”

하지만 정은이는 평생 흘릴 눈물을 그날 모두 쏟았다. 동생이 잠든 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밤새 울었다. 정은이는 “그후로 한번도 울지 않았다”고 말했다. “살아 남아야 했고, 부모님 대신 동생을 돌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정은이는 동생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인터뷰 내내 생기 발랄함을 잃지 않았던 정은이도 동생 이야기에는 표정이 굳어졌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정은이와 동생은 대구에 있는 숙모와 살았다. 숙모는 남매를 사랑으로 대하지 않았다. 정은이는 숙모에게 많이 맞았다. 숙모가 가방을 던져서 연필 심이 머리에 꽂힌 적도 있다. 아직도 흉터가 있다. “잦은 폭력 때문에 24시간 내내 ‘경계태세’를 갖추고 살았어요. 당시 저는 비쩍 마른 채 반 미친 상태로 하루하루를 이어갔죠. 5년간 구타를 견뎠어요. ‘절대 무너지지 말아야지’라고 마음 속으로 수만번 기도를 했어요.”

정은이는 알고 지내던 아주머니의 아들이 군대를 가게 돼 방 하나가 비게 되면서 지난해 수원으로 ‘탈출’을 감행했다. 동생을 두고 온 게 아직도 마음에 응어리가 되어 있다. 정은이는 “부모님 돌아가신 후 동생을 양자로 보내야 했다”고 자신을 질책했다. “양자로 들어갔으면 지금쯤 잘 먹으면서 잘 살았을 수도 있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리는 정은이의 눈시울은 어느새 붉어졌다.

동생과는 가끔 e메일을 주고받아요. 동생이 너무 보고 싶어요. 함께 사는 게 소원이에요. ‘동생이랑 같이 살아야지’라고 생각하면 절대로 나쁜 짓을 할 수가 없어요. 동생은 내 인생을 바른 길로 인도해주는 인도자예요. 저는 ‘부모가 없어서 저런다’는 말을 안 들으려고 진짜 노력을 많이 했어요. 동정 섞인 말을 하면서 연락하라는 사람을 믿지 않아요. 도와준다는 사람이 몇번 있었는데 말뿐이라는 것을 알아요.”

정은이는 지금 60대 할머니가 혼자 사는 아파트의 조그만 방에 세들어 살고 있다. 사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자 정은이는 손사래를 쳤다. 할머니는 정은이가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밥 먹는 것도 눈치를 준다고 했다. 정은이는 세들어 사는 집에서도 구박을 받고 있었다. 정은이는 “할머니가 ‘매일 약속 없냐, 누구는 여기 살 때 음식도 많이 사들고 왔다, 전깃불 함부로 켜 놓고 물쓰지 마라’며 잔소리를 매일 늘어 놓는다”고 말했다.

심지어 정은이는 주인 할머니 세탁기도 사용할 수 없어 교복을 직접 손빨래하고 있다. 정은이의 손바닥은 가사에 지친 40대 주부마냥 거칠었다. “시험 기간 동안 밤 늦도록 공부하기도 쉽지 않아요. 할머니가 전기요금 많이 나온다고 눈치를 줘요. 할머니가 그러는 것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돼요. 가난하기는 마찬가지거든요.”

정은이의 한달 생활비는 5만원이다. “제 앞으로 들어오는 보조금 중 일부를 숙모가 매달 보내주세요. 그렇지만 제 앞으로 들어오는 보조금이 얼마인지는 정확히 몰라요.” 정은이에게 5만원은 부모님이랑 같이 사는 학생들의 용돈과는 개념이 다르다. “그 돈으로 밥도 먹어야 하고, 문제집도 사고, 교통비로도 사용해야 돼요. 가끔 학교에서 장학금 10만원이라도 받을 때는 사고 싶었던 문제집을 왕창 사요.” 정은이는 “책값이 너무 비싸 절망적이다”고 말했다.

정은이는 그래서 꾀를 냈다. “수학 문제집을 한권 사서 책장이 구겨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노트에 그대로 정리해서 풀고, 완전한 새책을 다시 팔았어요. 책값을 조금이라도 아껴보려고요. 그렇지만 정말 새책인데 1000원도 안쳐주더라고요. 그래도 덕분에 헌책을 사서 공부하면 되겠다는 요령을 터득했어요.”

정은이는 항상 돈에 쪼들린다. 주인 할머니 눈치 때문에 밥을 밖에서 사먹느라 돈이 더 들어간다. 아침에는 주로 1000원짜리 ‘칼로리 바란스’를 먹는다. 살을 빼기 위해 먹는 다이어트 식품이 정은이에게는 주식인 셈이다. 점심은 학교 급식, 저녁은 보통 분식으로 해결한다.

부모 없는 가난한 소녀에게 학교 생활은 쉽지 않다. 특히 과제물을 컴퓨터 워드 문서로 제출하라는 숙제는 정말 힘들다. “선생님들 생각이 잘못돼 다들 집에 컴퓨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5만원으로 1개월을 버텨야 하는데 컴퓨터 살 꿈은 엄두도 못내지요. 그래서 할 수 없이 PC방을 가요.”

일부 선생님의 편견도 견디기 힘들다. 초등학교 때는 한 선생님이 친구들 앞에서 정은이가 부모님이 없다는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해 화가 정말 많이 났다. “선생님에 대한 복수심이 일었어요. 선생님 말을 더 안들었고, 그래서 그 선생님한테 많이 맞았어요. 다른 애들은 때리면 부모님이 항의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으니까 거리낌없이 때리는 것 같았어요.”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만난 지금의 담임 선생님은 그에 비하면 천사다. 선생님과 진로도 상담하고, 사는 이야기도 나눈다. 정은이는 “지금까지 학교 다니면서 이렇게 좋은 선생님을 만난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교칙같은 거 한번 어겨보려는 친구들 보면 한심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머니에게 반항하는 친구들에게 ‘그러지 마라’고 충고도 자주 하죠. 친구들이 음식점에서 밥 남기는 것도 용서하지 않아요. 친구들은 저보고 ‘60년대 아줌마’라고 놀리지만 애들이 나중에는 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가난과 폭력, 사회의 편견에 정은이는 지금까지 굴복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내성적이 됐지만, “요즘 세상은 내성적일수록 손해보는 게 많다”는 이치도 깨달을 만큼 성숙했다. 정은이는 밝게 보이려고 무던히 노력하는 중이다. “저는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풍족하다고 생각해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죠.” 정은이 삶의 신조도 ‘나부터 잘하자’다. “내가 잘해서 남에게 피해 안주는 게 남을 도와주는 길”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했다.

정은이의 꿈은 회사원이 되는 것이었다. 월급을 꼬박꼬박 받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고 싶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취직을 할 거예요. 하지만 여기 저기서 들리는 취업난 이야기 때문에 겁이 나요. 대학교를 졸업해도 일자리가 없다는데…. 돈을 벌면 제일 먼저 지금 사는 곳에서 나와 방을 얻고, 그 즉시 동생을 수원으로 데리고 올 생각이에요.”

정은이는 부모 없는 아이를 동정적으로만 대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저는 부모가 없어서 의지할 사람은 없어도, 더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많이 배웠어요. 다른 사람들의 부모님도 언젠가는 돌아가시는데 나에게 그 시간이 빨리 왔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제발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아주세요. 부모 없다는 것이 창피한 일이 아닌데, 주위에서 가엾어 하는 시선 때문에 부모님이 안 계신 걸 숨기게 되거든요.” 정은이는 맑은 웃음으로 붙임성 있게 재잘대는 모습이 영락없는 여고생이었다. 그 웃음에는 혼자 삶을 꾸려갈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의지가 묻어 있었다. “저는 열심히 살거예요.”

경향신문(07. 10. 29) [사설] 대학생 리포트 베껴 연수보고서 낸 공무원들

공무원들의 해외연수가 낭비성, 놀자판으로 흐르는 것은 왜 일까. 한마디로 감독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해외에 나가 무슨 일을 해도 상부에서는 알 길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없으니 실컷 놀다 와도 괜찮다는 생각이 공무원들 머리 속에 뿌리깊게 남아있는 것이다. 이들은 그래서 귀국후 내는 보고서에 별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여기 저기 남의 것을 보고 짜깁기해 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국회 행정자치위 김기현 의원이 행정자치부와 경찰청 직원들이 제출한 해외연수보고서를 분석해본 결과 이런 부실·표절 행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행자부 공무원이 제출한 ‘2006년 제2기 선거제도 해외연수보고서’는 앞부분이 인터넷에 있는 900원짜리 대학생 리포트와 토씨까지 똑같았다. 괄호속 영문 및 숫자표기나 ‘~함으로써’라고 써야할 문구를 ‘~함으로서’라고 맞춤법이 틀리게 쓴 대목까지 완벽하게 같았다. 일자 일획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베껴서 낸 것이다. 경찰공무원이 낸 연수보고서 역시 인터넷 사이트에서 1200원에 살 수 있는 대학생 리포트와 말만 조금 다를 뿐 내용은 사실상 같았다고 한다. 누구나 인터넷에서 클릭 한번이면 쉽게 볼 수 있는 문서를 베껴놓고도 버젓이 귀국보고서라고 제출한 것이다.

이들이 유독 강심장이어서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는 이들의 선배 동료들이 엉터리 보고서를 써도 사후에 검증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공직사회의 경험칙이 그런 표절 행위를 낳았을 것이다. 얼마전 감사원이 국가·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벌인 국외여행 실태 감사에서 그런 분위기가 확인된 바 있다. 이미 종료된 국제기구 행사에 참석한다며 출장을 떠나 관광만 하고 돌아온 경우, 자료수집이란 같은 명목으로 수십명이 특정 도시를 수차례 반복적으로 방문한 경우 등 사후 검증시스템이 작동한다면 있을 수 없는 놀자판 출장·연수 사례가 수없이 적발된 것이다. 공무원 개인의 도덕적 해이를 탓하기에 앞서 정부의 감독 시스템 부재를 꾸짖지 않을 수 없다.

07. 10. 29.

P.S. 비록 불우한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있지만 정은이의 장래가 그렇게 어두워보이지만은 않는다. 김광석을 좋아하는 '정은이 이모' 성격에다가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그녀의 자산일 것이기 때문이다(김광석의 '일어나'를 정은양에 대한 선물로 링크해놓는다. http://www.youtube.com/watch?v=6lx1JHZ63T0). 요컨대 정은이는 많은 시련을 겪으며 삶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배웠고 비록 현실은 노예 같은 삶일지언정 자기 삶의 '주인'이 됐다. 거기에 비하면 사설에서 꼬집고 있는 양심불량 공무원들이야말로 '천박한 노예들' 아닌가? 연구보고서로 대학생들 리포트나 베껴내는 인생들이 무사안일 호의호식하며 사는 사회라면 비전 없는 사회다(공공기관 개혁에 관해서는 강준만 교수의 칼럼 http://h21.hani.co.kr/section-021128000/2007/05/021128000200705310662073.html 참조). 그래도 이 정도 굴러가는 것이 언제나 미스터리하긴 하지만. 여하튼 정은이의 10년후, 20년후의 모습에 기대를 건다. 우리가 아주 엉터리 같은 사회에 살았던 건 아니라는 걸 보여주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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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경 2007-10-29 18:12   좋아요 0 | URL
철밥통 속 나이 값 보다 어린 김정은양의 산전수전 돋보이네요. 주변에서 공무원 고시 준비하라는 소릴 많이 듣는데, 공무원 만큼은 정말 되기 싫더군요. 아직은 미덥지 않아서 그단 소리나 듣는 저도 반성할게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저도 꼴값은 안떨어야 할텐데.

로쟈 2007-10-30 00:15   좋아요 0 | URL
책읽는 공무원이라면 리포트 베껴내진 않겠죠.^^

마늘빵 2007-10-29 22:45   좋아요 0 | URL
제 이번 추천은 로쟈님이 아니라 정은이를 향한거에요. ^^

로쟈 2007-10-30 00:14   좋아요 0 | URL
네, 정은이는 추천받을 만합니다. 아니 표창을 줘야죠!..

테렌티우스 2007-10-30 02:31   좋아요 0 | URL
음 마음이 아프네요... 저는 아동학대하는 어른들을 보면 살인 욕구가 치밀어 오른다는 ...

유교 이데올로기 때문에, 예를 들면, 부모 살해보다 더 끔찍하고 더 비인간적인 자식 살해, 어린이 살해가 덜 주목받는 우리나라...

인간의 고통을 필터링하여 그 고통을 못 느끼도록 혹은 선택적으로 공감하게 만들고 훈련시키는 이 도덕이라는 놈을 잘 분석해야 합니다...

여하튼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

정은이 화이팅입니다!!!^^

로쟈 2007-10-30 13:57   좋아요 0 | URL
'동정 없는 세상'이라는 걸 이미 아는 아이니까 잘해나갈 거라고 믿습니다...

뭉실이 2007-10-30 23:45   좋아요 0 | URL
'저는 열심히 살거예요'라는 정은양의 마지막말이 저를
반성하게 하네요. 봄의 새싹같은 그마음이 주위로도
쭈욱 퍼저갈것같아요 ^^

로쟈 2007-11-01 21:23   좋아요 0 | URL
실상은 다들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건데요...
 

이번주 리뷰들에서 <인간 없는 세상>(랜덤하우스, 2007)과 함께 눈길을 끄는 책은 제레미 시브룩의 <다른 세상의 아이들>(산눈, 2007)이다. 부제대로 '세계화 시대의 야만, 어린이 노동'을 다루고 있는 책인데, 그러고 보니 모두 '조화'와 '신의 섭리'에 대한 이반 카라마조프의 맹렬한 비판의 논거로 쓰임직한 책들이다. 내가 읽은 리뷰들을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7. 10. 27) '경제성장’만이 아동착취를 막을수 있을까

서구 국가들은 1999년 시애틀 세계무역기구(WTO) 회담을 통해 제3세계 국가들의 아동 노동 착취와 학대를 문제 삼으며 ‘문명세계의 표준’을 제시하려 했다. 그러자 방글라데시와 같은 후발개도국들은 강력 반발했다. “왜 너희들은 이미 다 해놓고, 우리는 못하게 하느냐.” 그들은 서구 국가들의 ‘사악한 보호주의’를 읽었던 것이다. 어린이 노동을 문화적 야만성 또는 도덕적 문제로 간단하게 치부할 수 없는 한 단면이다. 이는 마치 이라크를 침략한 미국 네오콘이 일상적으로 “폭력만은 안돼”라고 말하는 것에서 보듯 폭력에 대한 논의가 간단치 않은 것과 비슷하다.

영국인 시민활동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산업혁명 초기인 19세기 영국의 아동 노동과 21세기 방글라데시의 아동 노동을 오버랩시키며 아동 노동에 대한 서구의 논의가 얼마나 위선적인지, 그리고 문제의 근본이 어디에 있는지 짚고 있다. 저자는 서구의 인권단체와 국제기구들이 제3세계 아이들을 가혹한 노동환경에서 구해내야 된다고 할 뿐, 그 아이들이 ‘구출된’ 뒤에는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왔다고 꼬집는다. 게다가 그들 중에는 아직도 이 문제가 경제 성장으로 해결되리라고 믿는 이들이 많다. 마치 17세기 북미의 노예무역과 19세기 영국 공장에서의 아동 착취라는 악습이 사회 전체의 부가 쌓이고 그것이 빈곤층에까지 흘러넘치며 완화됐듯이 말이다. 하지만 영국이 식민지라는 자국 아동 노동을 대체할 보루가 있었던 반면 방글라데시는 그런 식민지를 가질 수는 없다. 더 가난한 부족민들이 사는 지역을 공략할 수는 있을지언정 말이다.

어린이 노동을 문화적 야만성이나 도덕성의 문제로 생각하는 서구의 논의는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짚지 못하는 것이다. 사진은 학교를 가는 대신 일을 하고 있는 네팔 어린이의 모습.

많은 이들이 말한다. 현재로서는 가혹한 아동 노동에 대해서만 철저히 규제하도록 하고, 근본적으로는 세계화와 시장 원리에 충실함으로써 더 많은 부를 창출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는 것만이 아동 노동의 폐해를 없앨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봐도 이 논리는 모순임이 드러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핵심은 국가가 자국민의 복지, 건강, 교육, 영양분야에 개입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인데, 바로 이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노동시장으로 유입된다. 그런데 해결책이라는 것이 그 세계화와 자유시장에 의한 부의 창출밖에 없다니. 모든 대안들이 사라지고 아이들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이는 바로 그 원인이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아이러니인 것이다.

그래도 이해가 안된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해 저자는 두바이의 인공섬과 아랍에미리트연합에 낙타경주 기수로 팔려온 남아시아 어린이들을 예로 든다. “두바이의 인공섬은 진보한 현대 사회의 문명을 한눈에 보여준다. 하지만 남아시아의 3~4세 아이들이 돈 몇 푼에 팔려와 아랍에미리트연합에서 낙타 등에 꽁꽁 묶인 낙타경주 기수로 이용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공포에 질린 아이들의 비명은 낙타를 자극해 더욱 빨리 달리게 만들고, 밧줄이 풀려 아이들이 죽기도 한다. 경제성장과 기술진보에 의한 부의 창출이 모든 인류에게 자유를 가져다 주리라는 믿음은 비현실적이며, 근거 없는 희망이다.”

그러면 노동을 전혀 하지 않는 서구 아이들은 행복한가. ‘일과 완전히 분리된 유년’이라는 신화 자체가 최근에 생긴 것이다. 최상층만을 제외하면 세계화 이전에도 아이들은 소 풀을 먹이거나 집에서 떡(케이크) 만드는 것을 돕는 식으로 노동을 해왔다. 서구의 아이들은 제3세계 아이들이 돌을 깨기 위해 망치를 잡는 그 나이부터 소비의 주체가 됨으로써 노동하는 아이들과 불가분의 운명체로 묶이게 된다. 이들은 ‘공부’ 외에는 어떤 직분도 부여받지 못한 채, ‘쓸모없는’ 성인으로 성장하기 쉽다. 아동들에게도 일과 여가 사이의 적정한 선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아이들을 이 양 극단에 놓음으로써만 비로소 안도하는 사람들은 시장원리를 외치는 많은 어른들이 아닐까.(손제민기자)

 

 

 

 

 

 

 

 

 

 

 

 

 

 

 

 

 

 

 

 

 

 

 

  

한국일보(07. 10. 27) 무서운 세상이, 너희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웠구나

#1 쇠가죽 채찍이나 잘 마른 가죽끈에 못 이겨 시계태엽처럼 일하는 소년들, 또는 여자아이들도 심심찮게 목도할 것이다. 열한살 먹은 어느 아이는 나무 뭉둥이에 다리가 부러졌고, 또 다른 소녀는 면직공장의 감독관 형상을 한 무자비한 괴물에게서 판자로 얻어맞았다.

#2 열네살의 한 소년은 트럭운전사 보조다. 새벽 5시에 일을 시작하는데 운행일정은 종종 밤 11시나 12시가 되어도 끝나지 않는다. 그는 한 달에 약 2만원을 버는데 그 가운데 3분의 2는 가족- 그는 9남매 중 한 명이다- 에게 보낸다. 그는 트럭에서 살고 좌석에서 잔다.

19세기초 영국의 사회개혁가 존 필든이 당시 미국 노동현장을 기록한 보고서(#1)와 현재 세계 최빈국인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에 사는 한 소년 노동자의 일상에 대한 르포(#2)를 읽어보자. 어떤 차이를 느낄 수 있는가? ‘안티 나이키 운동’이 잘 보여주듯 제3세계에서 자행되는 어린이 노동착취의 문제가 세계적 이슈로 떠오른 지도 꽤 됐다. 그것이 ‘제도화된 가장 극악무도한 부정이고, 성장ㆍ개발 모델의 수치’라는 주장을 반박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반(反)세계화 운동가이자 영국의 저널리스트인 제레미 시브룩은 이 책을 통해 어린이 노동착취의 문제에 폭넓은 시각으로 접근한다.

복잡하게 얽힌 역사ㆍ경제ㆍ문화적 맥락을 신중히 들여다봐야 문제의 근절, 그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개선이라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선 ‘이런 일은 경제적으로 낙후되고 문화적으로 열등한 나라에서나 생기는 일이라는 식의 시각은 위선’이라며 어린이노동 착취 문제에 대한 시각의 교정을 주장한다. 그는 엥겔스나 영국 학자 E P 톰슨을 인용, 현재 제3세계의 어린이 노동착취는 18,19세기 영국의 노동지대나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대농장에서 벌어졌던 비극의 반복임을 주지시킨다.

‘어린이 노동은 비윤리적이니만큼 당장 폐지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도 대의명분은 훌륭하지만 수혜자들의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 순진한 논리다. 가령 1995년 영국의 한 TV가 모로코의 12~15세 여자아이들이 영국에서 마크 앤 스펜서로 납품되는 잠옷을 만들어왔다고 폭로하자, 많은 모로코 소녀들이 해고됐다. 소녀들의 가정은 이 정도의 노동은 충분히 받아들일 만하다고 봤지만 결과적으로 어린이노동의 금지는 소녀의 가족들을 더욱 깊은 가난으로 몰아넣었다.

동의하기 쉽진 않겠지만 문화의 상대성도 고려해야 한다. 가령 벵골어에는 태어나서부터 열여덟살까지를 의미하는‘미성년’이라는 단어가 없다. 따라서 방글라데시에서는 ‘노동에 대한 어린이들의 권리’라는 말이 거부감없이 동의를 얻는다. 하지만 세계자본주의 착취구조의 최하부에 어린이들의 노동이 깔려있고 이를 인정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이 책의 기본 전제다. 저자는 3, 4세의 어린이를 낙타 위에 밧줄로 묶고 경주를 위해 이들의 공포감을 자극하는 아랍에미리트의 낙타경주나, 먼지와 기름을 뒤집어쓰고 금속성의 굉음에 시달리는 10대 초반의 소년을 무급으로 부려먹는 방글라데시의 자동차정비소의 사례를 들어 이런 노동의 비인간성을 폭로한다.

그렇다면 제3세계 어린이들의 노동착취 문제를 빠른 시간 안에 해결할 수 있을까? 문제는 다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로 환원된다. 저자는 비관적이다. IMF 같은 국제금융기구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프로그램 때문에 각국 정부는 건강, 영양, 교육 같은 사회보장 프로그램을 축소하고, 이는 빈곤층에 가장 큰 타격을 준다. 그것은 곧바로 결손가정, 아동 성매매, 노동시장에 유입되는 아동의 증가로 이어진다. 저자는 어린이노동을 당장 근절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기보다 우선 가장 위험하고 유해한 노동부터 금지시키는 일이 실천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제 ‘Children of Other Worlds’(2001).(이왕구기자)

07. 10. 28.

P.S. 제레미 시브룩의 경우에도 <세계의 빈곤, 누구의 책임인가?>(이후, 2007)가 지난봄에 소개되었기에 구면이다. 빈곤 문제에 대한 독서 리스트를 내달에는 만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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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문제와 인간종말을 다룬 책이 모처럼 언론리뷰들에서 크게 다루어졌다. 나도 리뷰들을 읽고서야 책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앨런 와이즈먼의 <인간 없는 세상>(랜덤하우스, 2007)이 문제의 책이다. 타임지에서 이미 '올해 최고의 논픽션'으로 꼽았다고도 하니까 '명불허전'을 기대봄 직하다(국역본도 초스피드로 출간된 셈이군). "어느날 갑자기 인류가 사라진다면"이란 상상 자체도 제법 '유쾌'하다. 내가 읽은 기사들을 모아둔다.  

경향신문(07. 10. 27) “인류가 지구에서 사라진다면…”

이 책(원제 ‘The World Without Us’)이 매력적인 건 이 도발적인 상상력 탓이다. 하지만 ‘기발한 상상’에 그쳤을 질문을 인류에게 던지는 ‘묵직한 울림’으로 바꿔놓은 것은 다양한 시공간과 학문을 넘나드는 저자의 꼼꼼한 취재와 열정, 명징하면서도 서정적인 문체, 그리고 인간과 지구의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다.

‘인간 없는 세상’의 모습은 어떠할 것인가. 인류와 함께 없어질 것들은 무엇이고, 인류가 남길 유산은 무엇인가. 책은 이 같은 질문들의 해답을 찾아 떠난 지적 모험이다. 미국의 유명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폴란드-벨로루시 국경의 원시림, 아프리카 탕가니카 호수, 키프로스섬 바로샤, 하와이 킹맨 환초(環礁), 한국의 비무장지대 등 세계 곳곳을 둘러봤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진화생물학자·지질학자·고고학자·박물관큐레이터·환경운동가 등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저자가 그려낸 ‘인간 없는 세상’의 연대기에 따르면 인간이 사라진 바로 다음날, 자연은 ‘집 청소’부터 하기 시작한다. 곰팡이가 벽을 갉아먹고, 빗물은 못을 녹슬게 하고 나무를 썩게 한다. 우리가 살던 집들은 50년이면 대부분 허물어진다. 인간이 사라진 이틀 뒤면 습지와 강을 메워 만든 도시 뉴욕의 지하철은 물에 잠길 것이다. 20년 후엔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 대통령이 “이 시대 최고의 토목공사”라고 말한 파나마 운하는 막혀버리고 남북 아메리카는 다시 합쳐진다. 300년 후 세계 곳곳의 댐들이 무너지고, 삼각주 유역에 세워진 휴스턴 같은 도시들은 물에 씻겨나가 버린다. 1000년 후 인간이 남긴 인공구조물 가운데 제대로 남아있는 것은 영불해협의 해저터널뿐이다.

그러나 인간의 또다른 ‘유산’들이 있다. 인간세상이 18세기부터 과배출한 이산화탄소가 인류 이전 수준으로 떨어지려면 10만년이 걸린다. 태평양을 쓰레기장으로 만들고 있는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데는 몇 천년, 몇 만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납이 토양에서 전부 씻겨나가려면 3만5000년, 크롬은 그 두 배의 기간이 소요된다. 인류가 남긴 약 3만개의 핵폭탄의 플루토늄이 자연 상태의 배경 복사 수준이 되려면 25만년쯤 걸린다. 그러고도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441개의 핵발전소와 싸워야 한다.

결국 저자가 미래의 ‘인간 없는 세상’이라는 가정을 통해 되새기고자 하는 것은 오늘날의 ‘인간 있는 세상’이다.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 아프게 드러나는 건 지금까지 인류가 지구와 다른 생명체들에게 얼마나 엄청난 짓을 저질렀는가라는 사실이다. 한 이론에 따르면 인류가 신대륙에 도착할 때마다 마주친 동물들은 전멸당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킬러 본능’만이 아니라 멈출 줄 모르는 ‘탐욕의 본능’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의도하지 않더라도 다른 존재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치명적으로 박탈해버리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인간이 사라진다고 세상이 안타까워할까?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쉬지 않을까. 저자는 인간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생물이라곤 이, 진드기, 바퀴벌레, 쥐같이 인간에 기대 살았던 동물들뿐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사라지면 오히려 수많은 생명체가 지구상에 번성할 것이라는 지적은 그래서 뜨끔하다.

그렇다고 이 책이 독자들의 두려움만을 키우는 종말론적 계시록은 아니다. 저자는 답사의 중간중간 상처 입은 지구의 경이로운 치유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생명의 요람인 바다는 인류가 하늘에다 뿜어낸 탄소를 흡수하고 있고, 핵발전소 사고로 오염된 체르노빌에서도 생명은 왕성히 살아나고 있다. 저자는 특히 동족이 원수가 되어 싸우던 지옥에서 수많은 생물들로 넘쳐나는 천국으로 변한 비무장지대에서 희망의 근거를 찾는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비무장지대 방문 경험이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자연이 화해하게 할 수 있다는 꿈을 꾸게 했다”라고 밝혔다.

저자는 인류가 지구를 파괴하면서까지 부여잡으려고 애쓴 것들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묻는다. 뭇 생명체들이 그러하듯 인간이라는 생물종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인간이 사라진 뒤 영원히 남는 것이라곤 우주 공간으로 퍼져가는 전자 신호 정도일 뿐. “창공은 영원히 푸르고,/ 대지는 장구히 변치 않으며 봄에 꽃을 피운다./ 그러하나 사람아,/ 그대는 대체 얼마나 살려나”라는 이백의 시가 울림을 갖는 건 이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 책은 ‘영리한 책’이다. 환경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제시해 지적 자극과 재미를 동시에 준다. ‘인간 없는 세상’을 상상함으로써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이 책이 “딱딱하기 쉬운 과학 논픽션의 새로운 전범을 제시했다”는 미국 현지 매체들의 극찬을 받은 이유다. 그들의 말을 빌려 모처럼 좋은 책의 전범을 보여주는 책을 만났다고 말하면 과찬일까.(김진우기자)


중앙일보(07. 10. 27) `인간과 자연, 공생 해법 DMZ에 있다`

환경문제를 다룬 책들은 대체로 공포스럽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한 시골 마을이 무분별한 살충제 사용으로 점차 죽음의 공간으로 변해버린다는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그랬고, 생태계 파괴와 기상 이변 등 지구 온난화의 위험한 결과를 보여주는 앨 고어의 『불편한 진실』이 그렇다. 읽을수록 마음이 무거워만지니, 독자 입장에서 유쾌한 종류의 책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저널리스트 앨런 와이즈먼이 쓴 이 논픽션은 ‘우울하다’는 기존 환경관련서의 한계를 벗은 신선한 책이다. 점점 망해가는 지구를 묘사하는 대신, ‘어느날 지구상에서 인류가 몽땅 사라진다면’을 가정하고 그 이후 자연의 신비스러운 복원과정을 보여준다. 과학적인 지식과 상상력을 결합해 완벽한 지구 부활 시나리오를 만들어낸 그를 전화 인터뷰했다. 와이즈먼은 25일 매사추세츠주(州) 커밍턴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았다.

그는 “2003년 11월 한국의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했던 경험이 이 책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50여년 동안 인간의 발길이 끊어진 곳. 그래서 이젠 반달가슴곰·스라소니·사향노루·고라니 등 멸종위기 야생동물의 피난처가 된 곳이다. 그는 “DMZ에서 희귀동물인 빨간 머리 두루미 무리를 발견했을 때 무척 감격스러웠다”고 회상했다. 와이즈먼은 DMZ 외에도 폴란드-벨로루시 국경의 원시림과 체르노빌·미크로네시아·아프리카·아마존·북극 등 지구 구석구석을 발로 누비며 자연의 생명력을 직접 확인했다. 또 수백명의 과학자들의 만나 인터뷰하고, 또 수백 권의 책과 논문을 읽으며 자료를 모았다. 꼬박 3년 동안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그는 자연이 어떻게 인간이 남기고 간 것들을 다룰지 유추해 냈다.



그는 “인간이 사라지면 인간이 만든 인공구조물들도 사라지기 시작한다”고 설명한다. 대부분의 집은 보통 50년, 길어야 100년 안에 주저앉는다는 것이다. 지붕과 벽면에 빗물이 스며들고 곰팡이가 자리잡는 게 출발이다. 겨울철엔 배관이 얼어터지고, 다람쥐·너구리·도마뱀 등이 벽에 구멍을 낸다. 나무는 썩고, 석고보드는 물에 씻겨 땅으로 되돌아가고, 시멘트도 조금씩 부스러져 가루가 된다. 포장된 도로도 엉망이 된다. 땅이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면서 아스팔트와 시멘트가 갈라진다. 그 틈에서 겨자·토끼풀ㆍ갈퀴넝굴 같은 풀이 자라면서 틈은 더욱 벌어지고 곧 나무도 뿌리를 내리게 된다. 도시에 줄지어 서 있는 건물들은 화재로 무너질 확률이 크다. 20년이면 피뢰침이 삭아 꺾이기 때문에, 벼락이라도 한번 치면 도시가 불타는 건 순식간이다.

물론 자연의 복원과정이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특히 핵은 심각한 위협거리다. 지금 당장 인류가 사라진다 해도 3만 여개의 핵탄두와 441개의 핵발전소가 남는다. 와이즈먼은 “인간 없는 세상에서 핵탄두가 폭발할 위험은 없다. 대신 포탄의 외피가 부식해 내용물이 노출된다”고 내다봤다. 대륙간탄도미사일 속에 들어있는 플루토늄의 양은 4∼9㎏. 그 방사능의 강도가 자연 상태로 줄어들려면 무려 35만년 쯤 걸린다는 계산이다. 그래도 와이즈먼은 희망을 내비친다. “생명체가 방사능에 대한 내성이 강해지는 쪽으로 진화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그 지역에 사는 들쥐들이 다른 지역 들쥐들보다 수명은 훨씬 짧아졌지만 성적(性的)으로 일찍 성숙해 새끼를 빨리 낳음으로써 개체 수는 줄지 않았다는 게 추론의 근거가 됐다.

그의 계산법에 따르면, 인간이 사라진 뒤 300년이 지나면 댐들이 무너져 강 유역에 세워진 도시들이 물에 씻겨 나가고, 3만5000년 후엔 토양에서 납이 전부 사라진다. 그가 이렇게 경이로운 지구의 자기 치유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는 뭘까.



와이즈먼은 저술 동기를 묻자 “이젠 인간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자연이 회복될 수 있는 길은 없겠냐는 질문을 던지기 위해”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에너지 절약▶녹색 에너지 개발 ▶숲 파괴 중지 ▶산아제한 등을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위한 해법으로 제안했다. ‘산아제한’은 "나흘마다 100만명씩 느는 세계 인구 증가의 속도를 제어하지 못한다면, 자원 부족으로 인류가 멸망하고 말 것”이란 우려에서 나온 해결책이란다. “모든 가임여성이 아이를 하나만 낳는다면, 현재 65억인 세계인구가 2100년이면 16억으로 줄어들어 세상이 나날이 아름다워질 것”이라는 그는 “하지만 한 집에 아이 하나씩만 낳자고 요구(require)하는 건 아니다. 다만 부탁(ask)할 뿐이다”라며 조심스러워했다.(이지영기자)

07. 10. 27.

P.S. 과문한 탓에 모르고 있었는데, 와이즈먼의 책으론 <가비오따쓰 - 세상을 다시 창조하는 마을>(월간말, 2002)이 이미 소개돼 있었다. "'가비오따쓰'는 서구식 근대화에 회의를 느낀 한 무리의 이상주의자들이 콜롬비아에서도 가장 척박하고 황량한 초원지대에 건설한 계획공동체이다. 그들은 1970년대 초반에 선진국에서조차 걸음마 단계에 있던 태양열시대를 활짝 열어 제쳤고, 태양력이나 풍력과 같은 대체 에너지만을 이용하여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하였다. 가비오따쓰에 모여든 사람들은 서구사회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찾아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하였다. 또한 자신들이 파괴해 버린 인디언 원주민 문화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보기도 한다."란 소개글이 내용을 짐작하게 한다. 더불어, 그의 신작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란 사실도 새삼 일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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