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서울대 교수 되기, 란 무엇인가.

이렇게 물어야 할 것 같다.

 

은사가 나간 다음 공고가 났으나 '러시아문학사(19세기 제외) 혹은 문화'로 났고, 나는 지원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한 이른바 내정자는 A였는데, 다수가 반대하였고 그들이 미는 자는 B였고, 형식상 C가 들러리였다.(물론 C본인은 그리 생각지 않으리라.) 결국 '나가리'가 났다. 한학기는 애도의 차원에서 조용. 이번 학기에 공고가 났고, 문구가 똑같았다. 나는 명실상부한 19세기문학(소설) 전공자이지만, 20세기도 최소 업적(두 편 - 최대 4편)을 채울 만큼은 되어 지원을 해보았다. 지난 월요일 오후에 떨어졌다는 메일 받고 무척 상심했다. 혹자는 아니 당연하지! 라고 하겠지만 당사자는 그렇지 않은지라, 상심한 마음을 다독이고 앞으로 나아갈 바, 당장 지금 해야 할 일을 새겨보고자 한다.^^;

 

속사정을 어느 정도 전해들은 뒤라 '어부지리'를 얻고자 하는 목적, 정확히 욕심이 있었다. 나는 이런 경우에, '그냥 내봤어~' '내가 되겠어?'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수사법도 물론 이해가 되지만, 그냥 내는 건 없다. 되고 싶으니까 내는 것이다. 될 확률이 아주 낮더라도 그럴 수록 더더욱 되고 싶은 마음이 커서 내는 것이다. 그냥? 서류 준비하는 데 꼬박 2주(3주?)가 소요되었다. 단순히 업적, 각종 증명서, 계획서 등은 그나마 일주일이면 해결된다. 문제는 저 공포의 추천서. 러시아의 지도교수까지 괴롭혀 힘들게 서류를 만들고 여기저기 전화, 메일을 통해 추천자를 구하고 그 서류가 제대로 들어갔는지 확인하고 하는 번거로움에 '그냥'은 없다. 되고 싶은 것이다. 이 성가신 일을 함에 있어, 그래도 내가 될 거야, 될 수 있을 거야, 라는 믿음, 적어도 바람이 없다면 일 자체가 진척이 안 될 것이다. 다 알지 않나. 서류 행정만큼 무의미하고 한심한 것, 그러나 꼭 필요한 것은 없음을. 기왕지사 1차 탈락이지만 이 참에 서류를 한 번 정리해본 것은 그래도, 슬프지만, 아무튼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굳이 내숭 떨지 않고 말하거니와, 결과를 기다리는 요 1-2주의 고통은, 과장 좀 보태면, 내시경(혹은 각종 생검) 이후 조직검사의 결과를 기다리는 것에 비할 수 있으리라.  

 

- 문구만 봐서는 지난 번 재탕이구먼.

 

누가 봐도 뻔한 구도에도 불구하고 고생하며 지원하는 데는...

 

 

 

 

 

 

 

 

 

 

- 알료샤, 아버지한테 가서 좀 (3천루블을) 부탁해봐.

- (드미트리)형, 아버지는 안 주실 거야.

- 안 주시지, 주실 리가 있냐. (한 템포 쉬고.) 알료샤, 절망이 뭔지 아니?

 

드미트리는 희극적인 인물인데, 이 비극에 있어서도 참 희극적이다.(드미트리에게는 항상 미안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의 저 절망에 깊이, 격하게 공감하게 된다.

 

- 19세기제외라고요? 그래도 한 번 내 볼 테니 고려해주세요, 예? 뽑아주면 열심히 할게요! 내 자리 아니라고요? 그건 아는데요, 혹시 절망이 뭔지 아세요?

 

현재 '패컬티'가 모두 한솥밥 선배들(심지어 전공은 아주 다르나, 동기까지)인지라 더더욱 그런 희극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경우 흔한 일이지만, 온갖 말들과 온갖 표정들이 되살아나면서 나를 거의 섬망상태로 몰아간다. 헉, 다 집어쳐, 더럽고 치사해서, 원! 이러고 싶지만, 잠깐잠깐, '건전한 상식'이 나의 발목을 잡는다. 첫째, 마땅히 집어치울 것이 있지 않다. 기껏해야 다음 학기 강의 정도인데, 그냥 둬도 절로 폐강될 수도 있거니와, 개설되는 경우라면 그것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한달 강사료가 100만원에 육박한다. 일주일에 3시간 강의하는데 이만한 벌이가 어디 있나. 둘째, 행여 저나마 집어치운다면 그다음 뭘하지? 전업작가? 전업 번역가? 사실 지금도 다를바 없지 않나. 셋째? 마땅히 생각나는 것도 없지만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이 무의하게 느껴진다.

 

*

 

무릇, 사람은 직업이 필요하다. 나는 직업이 있다. 직업 정도는 있는 인간이다. 직장도 필요하다. 직업은 있는데 직장은 없다? 비정규직 형식의 직장이 있다고 해야겠다. 그러니 더 정확하게는 비정규직 강사에서 정교직 교수로의 신분 상승을 꾀한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서울대를 나왔고 서울대 교수가 되고 싶다. 욕을 많이 먹고 그럴 만하지만 그래도 나는 서울대가 좋고 서울대 나온 내가 좋다. 명백히 '개룡'인 나의 이력에서 쓸만한 몇 안 되는 이력 중 하나가 '서울대 졸'(그리고 쓰고 번역한 책들이다)이다. 계속 이곳에 머물다가 이곳에서 (뭘?) 떠나고 싶지만, 이것이 실은 '소박'은 고사하고 무척 '사치'스러운 것임을 알겠다. 

 

*

 

 

 

 

 

 

 

 

 

 

 

 

 

 

 

김영민의 에세이를 뒤적이다 <마지막 강의의 상상>(?)인가 하는 제목의 글에 잠시 머물렀다. 놀랍게도, 처음에 언급되는 것은 이인성의 <마지막 연애의 상상>이었다. 지금은 이미지도 뜨지 않는(솔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다) 책인데, 이런 것까지 챙겨읽은 그의 성향이랄까, 부지런이랄까, 아무튼 그런 것에 놀란다. '마지막 강의'를 하기 위해서는 사실 여러 요건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전임 교원인 그가 이런 문제를 제기함에 있어 언급하는 내용을, 내 식으로 재구성해 보면 이렇다.

 

첫째는 교수가 되어야 한다. 지금의 나처럼 불안정한 신분 상태에서는 '정년' 자체가 없다. '마지막 강의'란 계획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냥 담 학기에 짤려, 강의를 못 받아, 어쩔 수 없이 현재 이 강의가 마지막이 되는 것이다. 둘째, 학령 인구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내가 속한 학과, 학교가 폐과, 폐교되지 말아야 한다. 이 농담 같은 일이 실현된지 오래다. 특히 나처럼 제2외국어 전공은 허다하다, 라고 할 수도 있다. 러시아어과 교수로 임용되어 교양 영어 가르치다 퇴직, 이런 식이다. 시인 이성복도 불문과 교수로 취직, 문창과 교수로 퇴직한 것으로 안다. 셋째, 돌연사하지 말아야 한다. 옛날 같으면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을 것을, 지금은 숙연, 심지어 모골이 송연해지는 대목이다. 사람은 다 죽는데, 그 죽음의 시기가 재직 기간이지 말라는 법은 없다. 좀 웃기지만, 쓰다 보니 첫째와 셋째는 상당히 통하는 면이 있다.   

요컨대 (시간) 강사에게 '마지막 강의'란, 바로 지금 이 강의다. 마치 오늘 이 순간이 내 생애의 마지막일 수 있는 것처럼(고맙게도, 배가 덜 아프게도, 이건 교수나 시간강사나 다 똑같다!) 다음 주 화요일에 할 강의가 마지막일 수 있다. 위에 열거한 1번, 3번의 이유에서 그렇다.

 

그리하여...

매 시간 내가 하고 있는 강의에 최대한 충실할 것,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을 열심히 할 것.

 

19세기를 당당히 제외한 교원 공채에는 20세기를 열심히 공부하겠노라고 썼지만 사실 내가 올 겨울에 쓰고 싶은 논문은 <마담 보바리>와 <레이디 맥베스>(레스코프)를 비교하는 논문이다. 즉, 19세기 소설 연구다. 에효, 송충이는 솔잎 먹어야지. 그리고 당장 좋아하는 사람 따로 있는데 엉뚱한 데 붙어 있는 것도 힘들다. <악령>이 끝나면 톨스토이 단편선 번역을 후다닥(^^;) 해치우려고 한다. 도스토-키 연구서도 더 미룰 상황이 아니다. <백치> 번역은 쉰 살 전에 끝낸다고 나 스스로에게 약속했으니 정말 코앞이라고 할 수 있다. 정말, 마지막이다!

 

'마지막'을 앞에 두고 - 그러게

 

-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오늘 아침 나는 살아 있고

어젯밤에 일찍 자서 비교적 상쾌하게 아침에 제때 일어났고  

아이의 등교를 도와주고

("*** 왜 이래요? 병원은 가봤어요? 얘, 이래 뵈도 머리는 좋은 애예요" 이런 말도 듣고 ㅠ)

보다시피, 잡글이지만, 아무튼 글을 쓰면서

'생각'도 정리해보았다. 

 

*

 

오늘 하루도,

남은 이번 달, 남은 올해도, 심지어 조만간 올 내년도

딱히 좋은 일이 있기 보다는,,, 딱히 궂은 일이 없기를,

조심스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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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라고 하면 고급스럽다. essai(s). 단순히 일기 수준의 신변잡기 이상의 글쓰기는 되어야할 것 같다. 아무래도 고전부터 넘겨온 까닭에 이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우리 문학의 고전에 참 무지한데, 조선 최고의 문장가라는 박지원의 <열하 일기> 같은 것을 꼽아볼 수 있을까? 이름만 알지, 읽지는 않은 정약용, 이런 양반들의 글은 어떨지. 검색해보니 <열하일기>, 헉, 이렇게 두꺼운 거였냐, 냐, 냐 -_-;; 나는 한 권짜리도 읽은 것 같다.

 

 

 

 

 

 

 

 

 

 

 

 

 

 

 

20세기 초반 에세이는 '수필'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되었던 것 같다. 교과서에서 그렇게 배웠고, <중고생 필독서 - 수필편> 이런 데 실린 글을 반복해서 읽으며 동서양 수필에 입문했다. 찰스 램(?), 이런 이름도 있지 않았나. 교수 부부의 딸이었던 사촌 동생은 심지어 <바보네 가게>, 이런 것도 읽고 있었는데, 그 지적인 풍미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20세기 후반부터 에세이는 '산문'이라는 이름으로 생산, 소비되는 것 같다. 소설가나 시인이 어느 정도 명망이 쌓이면 산문집을 냈다. 작가의 이름값에 비례해 관심을 얻었고 또 지금도 그런 것 같다. 영화 에세이도 적잖았고 언제부터인가 독서에세이, 각종 독후감책도 많아졌다. 21세기부터인가 그야말로 수많은 '작가'가 생겨났다. 소설가, 시인, 극작가, 이런 명칭과 달리 '작가'란 뭐든 쓰면 된다.(심지어 만들면 된다^^; - 작, 쓰꾸루!) PC통신은 이미 고물이고, 인터넷, 이어 스마트폰에 힘입어 쓰기(+ 사진 찍기 등)가 무척 용이해졌다. 덕분에 옛 기준이라면 도무지 '작가 아닌 작가'도 많아졌다. 그러나, 물론, 소위 등단(=자격증)이 그 작가의 품격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역시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21세기, 어느 지점부터 호칭에도 "- 작가님"이 일반화되었다. 대학교에서도 "교수님"이라는 호칭이 퍼진 것과 비슷한 듯하다. 누구에게나 두루 쓸 수 있는 경칭인 '선생님'과 달리, 이 교수님은 직업에다 '-님'을 붙이는 것이라 처음에는 상당히 낯설었다. 물론, 내가 시간강사인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보다 원론적으로, '직업+님'이 주는 불편함을 얘기하는 것이다. 물론 이 역시 언중들의 합의에 따라 이제 보편화되었고, 나 역시 길들여지는 것을 느낀다. 청소부님, 환경미화원님, 고객님, 의사님, 교사님, 강사님, 헤어 스타일리스님, 간호사님, 의사님 등등. 그래도 여전히 이상하긴 하다.

 

아무튼 다양한 종류, 성향의 작가들이 책을 낸다. 나야 물론 문학가들에게 먼저 끌리지만 독서의 지평을 최대한 넓히려고 무척 노력하고 있다. 노력까지 해야 하는 이 상황(나이와 애 엄마라는)이 참 서글프지만, 그 시간에 한 권이라도 더 훑어보려고 한다. 이런 것 역시 관성이려니.

 

 

 

 

 

 

 

 

 

 

 

 

 

 

 

지난 주말에 이삼일 동안 세 권을 훑었다.  허수경은 나에게 왠지 해탈한 개룡, 약간 이런 느낌을 주었다. 왠지 그녀의 전공만큼이나 독일에서의 그런 최후는 그녀에게 잘 어울린다는 느낌. 반 정도를 읽었는데, 중간중간 울컥하곤 했다. 반면 <시절일기>는 오랫동안 김연수의 소설을 읽어온 독자로서, 뭐랄까, 그가 지금 한 박자 쉬는 중이랄까, 이런 느낌을 받았다. 쉬는 동안 무엇을 할까. 역시 공부밖에. 제목은 '시절일기'지만, 나는 '공부일기'로 읽었다. 음, 그런데, 쬐금 지루했다^^;;

 

그래서 다음 책으로. '칼럼계의 아이돌'로 불리는 '김영민'이라는 이름을, 오랫동안 다른 이름의 주체와 착각하여, 이제야 비로소 읽었다. 캭, 웃겨 죽는 줄 알았다. 웹상으로 읽은 글들이 너무 재미있어, 나로서는 잘 없는 일인데, 이 책 한 권만 달랑 당일배송 주문했다. 얼굴은 굉장히 싱겁게(?), 재미없게 생겼는데, 문체는 정반대다. 그를 스타덤에 올린 이른바 '추석이란 무엇인가'(**란 무엇인가) 외에 거의 모든 칼럼이 굉장히 유의미하다. 학생들에게 쓴(주례사 포함) 글도 재미있었다. 15년 정도 아이들의 레포트를 읽어온 결과 쌓은(?) 내공이지만, 아무래도 사회과학(정치외교학부 교수라니)을 공부한 사람의 글쓰기와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명민한 학생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그들 글쓰기의 특징의 일관된 특성 중 하나는 '-끼' 없음이다. 간혹 '-끼'가 있어도 (레포트라는 제한된 장르에서!) 잘 발휘되지 못하기도 했을 터. 김영민의 프로필을 찾아보니 역시 학부가 고려대 철학과.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활자화된 (아마) 첫 글은 영화평론이다. 인터뷰 들어보니, 영화를 만들어 출품한 적도 있다고. 그런 '-끼'들이 '포텐 폭발' 하듯 넘치는 글들의 모음집이다. 지성과 감성이 만나면 어떤 작용이 일어나는지 보여준다. 반 이상 왔는데 마저 읽을 생각이다. 소설보다 재미있다니, 소설가로서 반성할 수밖에^^; 참고로, 저 책의 한 꼭지에 이인성의 <마지막 연애의 상상>이 언급되었다. '마지막 강의'를 상상한다고 하면서. 우리의 가용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언제 저런 것까지? ^^;

 

*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 생각한다는 것,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 살아 있으리라.

- 아침에는. 즉, 아침에 일어나 있으라.

- 생각. 그냥 멍때리거나 몽상하지 말고 생각, 생각을 하라.

 

*

 

모든 일에서 기대치를 낮추라. 추석과 설날은 물론, 모든 일에서.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 마라. <기생충> 생각난다. 계획을 세우면 반드시 망한다. 반드시 계획대로 안 된다. 이참에 저 책에 인용되는, 마이크 타이슨의 명언을 새겨(^^;) 본다. .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 하나는 있다, 쳐맞기 전까지는

Everyone has a plan, until they get punched in the mouth

 

너무 많이 '쳐맞아서' 지금 이 커피가 너무 고맙다. 오늘 아침 일주일만에 또 몸이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몸이 회복된 것에 회심의 미소를 흘리며, 어젯밤에 저 에세이를 읽으며 오징어파전을 한 판 다 먹고 감자칩까지 먹는 욕심을 부려서가 아닌가 싶다. 비 오는 날에는 부침개를 먹는다, 라는 계획을 버려야지. - 그러게,

 

- 욕심이란 무엇인가.

- 계획이란 무엇인가.

- 시험이란 무엇인가.

- 서울대란 무엇인가.

- 교수란 무엇인가.

- 아이(자식)란 무엇인가.

질문은 무한히 이어질 수 있다.

- 질문이란 무엇인가.

- 무엇이란 무엇인가.

.....

 

 

*

 

많이 찌질한 사족.

아마 내가 꿈꾸던 사오십대의 나는 저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왕년에 소설을 좀 써본, 그러나 소설가로 일가를 이루기에는 재능이든 열정이든 뭐든 좀 부족했던, 그래도 그 '-끼'를 가지고 무슨 유사한 글쓰기를 하는 서울대 교수. 이건 정말로 사족이다. 이참에 찾아본다.

 

- 사족[뱀 발]이란 무엇인가.

 

 

*

 

유의미한(?) 족.

'쳐맞다'. 혹시나 싶어 찾아보니 역시 사전에 없는 비속어이다, 헐.

'처맞다'도 없는 말이다. 안타깝다! 

가끔씩은 내가 (입-아가리를?) 더 쳐맞아야(!) 정신을 차리겠지,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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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8 1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른괭이 2019-11-18 15:54   좋아요 1 | URL
앗, <죄와 벌>은 민음사에서 나왔습니다, 나온지 오래 됐습니다^^;

타이슨은, 사실 저는 누구인지 잘 모르는 인물이고요,
저 책을 보다가 찾아보고 ‘아, 이 양반~‘ 했지요.
러시아의 전설적인 레슬러 알렉산드르 카렐린과 붙여보고 싶다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Falstaff 2019-11-18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쳐맞다‘ 혹은 ‘처맞다‘는 띄어쓰기 하면 괜찮은 거 같네요. 부사로 ‘ㅊ‘ 형제가 뜰 테니까요. ^^
제가 생전 처음 읽은 수필집이 램이 쓴 셰익스피어였습니다만.... 생각나서 댓글 쾅!

푸른괭이 2019-11-18 20:23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새로 찾아보니, 저 책에는 ‘처맞다‘라고 되어 있더라고요.
댓글 감사합니다, 좋지 않은 메일 받고 외로웠어요 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9-11-19 18:43   좋아요 0 | URL
사전 찾아보니 : ˝ 처 - ˝ 가 마구, 많이를 뜻하는 접두사‘라고 나오네요.
처먹다, 처넣다, 처맞다, 처박다, 처대다, 처담다......

푸른괭이 2019-11-19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접두사는 그런데요, 처먹다, 처넣다 등은 사전에 있는데 처맞다, 는 너무 쎈^^; 탓인지 없던데요? 아무튼 어감은 잘 전달되는 듯요^^;
- 근데 대댓글(?) 다는 법을 모르겠네요 ㅋㅋ

Mind 2019-11-20 16:55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대댓글 다는 건 댓글 타래의 맨 위 댓글에 있는 ‘댓글달기’ 단추를 눌러서 작성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위에서 곰곰생각하는 발 님한테 대댓글 드리려면 Falstaff 님 댓글에 있는 댓글달기 단추를 눌러 작성해야 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처맞다’가 맞고 ‘쳐맞다’는 틀린 거란 사실을 확실히 밝혀두고 싶네요. 물론 아시겠지만 틀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이참에 여기에 확실하게 밝혀두는 겁니다. 위 곰곰생각하는발 님 댓글에 나와 있듯이 ‘처- ’ 접두사는 (대개는 부정적인 의미로) 강조를 나타내는 접두사죠. 접두사 ‘처-’는 웬만한 동사에는 다 갖다붙여서 활용할 수 있습니다. 해서 그런 활용 동사를 일일이 사전에 등재할 수는 없을 겁니다. ‘처맞다’란 동사가 아직 사전에 올라와 있지 않은 까닭이겠죠.

한데 요즘 인터넷 누리꾼들이 대부분 잘못된 접두사 ‘쳐-’를 붙여 쓰고 있습니다. 네이버와 다음(Daum) 기사 댓글란에 가보면 잘못된 접두사 ‘쳐-’를 붙인 비난 · 조롱 · 욕설 · 열폭 댓글들이 넘쳐납니다. 한국의 인터넷 언어가 무척 거칠어지고 천박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장하면 한국인들의 종특이 언어에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참고로 저는 한국인들의 의식 수준이랄까, 민도랄까, 양식이랄까, 이런 걸 아주 낮다고 봅니다. 지위고하, 학력고하, 빈부격차, 권력유무를 막론하고 모두 다 찌질하고 비열·비굴하고 천박하기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봅니다. 저 자신도 거기에 포함되는 건 물론이고요.
 

 

지난 화요일 저녁-밤에 이런 곳에 갔다.

출연료가 없는 줄 알고(난 바보??) 갔기 때문에, 거의 2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에 완전 짜증이 났는데, 도착한 다음 구성작가분께 출연료가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아이구, 안 왔으면 큰일 날뻔 했네요!"라는 말이 절로 -_-;; 알고 보니 메일에 다 쓰여 있었는데 읽다 말았던 것이다. 난 정말 부자?ㅋㅋ 그게 아니라, 내 책에 대해 말할 기회가 워낙 없어서 '착한'(!) 마음으로 간 건데, 돈까지 받아서 좋았다. 그리고, 이런 경험이 너무 오랜만이라 무척 신선했다. 학교 바깥 사람들의 생활을 잠시 엿보는 기쁨도, 역시나, 신선했다. 다만, 아이가 너무 보고 싶었다, 흑. 이런 암초.

 

https://audioclip.naver.com/search?query=%EA%B9%80%EC%97%B0%EA%B2%BD%20%EC%82%B4%EB%8B%A4%EC%9D%BD%EB%8B%A4%EC%93%B0%EB%8B%A4

 

나는 원래 내 방송, 다시 안 듣는다.(들을 방송도 별로 없지만 ㅋㅋ) 남편 말론, 말도 너무 빠르고 어투도 사투리거나 그것도 아니거나 완죤 이상하다고. 그래서, 이번에도 다시 안 듣기로 한다.

 

그다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왜 판매부수는 별로 흔들림이 없지? 오히려 옆에 책이 아무것도 안 해도 나간다는... 역시 앞으로 내가 무슨 일을 해야할지를 가르쳐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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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녀는 아팠다, 이 점을 그는 분명히 알아보았다. 그녀 앞에서 예의 그 불안을 느꼈음에도, 그는 갑자기 다가가 그녀의 두 손을 잡았다.

 

“Marie있잖아아마 몹시 피곤한 것 같으니까, 제발 화내지 말고. 혹시 네가 괜찮다면, 가령 차라도 어때, ? 차를 마시면 힘이 날 텐데, ? 네가 괜찮다면!”

여기에 괜찮고 말고가 어디 있어요, 당연히 괜찮죠, 예나 지금이나 어린애로군요. 할 수만 있으면 좀 줘요. 정말 집은 왜 이리 좁은지! 춥기는 또 엄청 춥네!”

, 내가 지금 당장 장작을, 장작을나한테 장작이 있거든!” 샤토프는 정신없이 허둥댔다. “장작이라어쨌든 그래도 일단은 차부터!” 그는 필사적인 결의를 다지듯 손을 내젓더니 모자를 쥐었다.

어디 가요? 그러니까 집에 차가 없다는 거로군요?”

있을 거야, 있을 거야, 있을 거라고, 지금 당장 모든 게 있을 테고.” 그는 선반에서 권총을 집었다.

지금 당장 이 권총을 팔아서· 아니면 전당 잡히거나.”

진짜 바보짓일뿐더러 엄청 오래 걸리겠군요! 당신한테 아무것도 없다면 여기 내 돈을 가져가요, 이건 8그리브나 정도 되겠군요. 내 전 재산이에요. 당신 집은 꼭 정신 병원 같아요.”

필요 없어, 네 돈은 필요 없고, 내가 지금 당장, 냉큼, 권총은 없어도 되거든.”

그는 곧장 키릴로프에게 돌진했다. 분명히, 표트르 스테파노비치와 리푸틴이 키릴로프를 방문하기 2시간쯤 전의 일이었을 터이다. 샤토프와 키릴로프는 한집에 살면서도 서로 만나는 일이 거의 없었고, 만난다고 해도 인사도, 말도 하지 않았다. 아메리카에서 너무 오랫동안 함께 <누워 있었던> 것이다.

키릴로프, 당신 집에는 항상 차가 있죠. 차와 사모바르가 있나요?”

방안을 거닐던(평소처럼 밤새도록 이 구석에서 저 구석으로) 키릴로프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막 뛰어들어 온 사람을 주의 깊게, 그래도 별로 놀라지는 않고 바라보았다.

차도 있고 설탕도 있고 사모바르도 있어요. 그러나 사모바르는 필요 없을 거요, 차가 뜨거우니까. 앉아서 그냥 마셔요.”

키릴로프, 우리는 아메리카에서 함께 누워 있었죠. 나한테 아내가 왔어요. 나는. 차 좀 줘요. 사모바르도 필요해요.”

아내가 왔다면 사모바르도 필요하겠네요. 하지만 사모바르는 나중에. 나한테 두 개가 있거든요. 우선은 탁자에 있는 찻주전자를 가져가요. 뜨거워요, 아주 뜨거워요. 전부 가져가요. 설탕도 가져가요. 전부. 빵도. 빵이 많거든요. 전부. 송아지 고기도 있어요. 돈도 1루블 있어요.”

어서 줘, 친구야, 내일 돌려줄게! , 키릴로프!”

그럼 스위스에 있던 그 아내인가요? 거참 좋은 일이네요. 당신이 이렇게 뛰어들어 온 것도 좋은 일이고.”

키릴로프!” 샤토프는 팔꿈치와 겨드랑이 사이에 찻주전자를 끼고 두 손에 설탕과 빵을 든 채 소리쳤다. “키릴로프! 만약만약 당신이 그 끔찍한 환상을 부정하고 무신론의 미망을 내팽개칠 수만 있다면,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 될 텐데, 키릴로프!”

스위스에서의 일 이후에도 당신은 아내를 사랑하는 게 분명하군요. 스위스에서의 일 이후라면, 거참 좋은 일이요. 차가 필요하면 다시 와요. 밤새도록 와도 좋아요, 아예 안 자거든요. 사모바르도 있을 거요. 1루블도 가져가요, 여기. 어서 아내한테 가봐요, 난 여기 남아서 당신과 당신의 아내 생각을 할 테니까.”

마리야 샤토바는 샤토프가 민첩함에 만족한 기색이 역력했고 거의 탐욕스럽게 차를 마시기 시작했지만, 사모바르를 가지러 뛰어갈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겨우 반 잔 정도만 마셨고 빵도 조그만 조각 하나만 삼켰을 뿐이다. 송아지 고기는 꺼림칙하다는 듯 짜증스럽게 거절했다.

넌 아픈 거야, Marie, 너의 모든 것이 너무도 아파 보여·.”

샤토프는 수줍게 그녀 주위를 맴돌면서 정말 수줍게 말했다.

물론, 아파요, 제발 좀 앉아요. 차가 없었다 어디서 가져온 거죠?”

샤토프는 가볍게, 짧게 키릴로프 얘기를 했다. 그녀는 그에 대해서 뭔가 들은 얘기가 있었다.

알아요, 미친 사람이죠. 이제 됐어요. 세상에 바보가 좀 많아야 말이죠, ? 당신들 그래서 아메리카에 갔다면서요? 들은 적이 있는데, 당신이 편지를 썼죠.”

 

 

많이 고치고 있다. 거의 새로 번역하는 느낌인데, 아마 다 하고 보면 딱히 그럴지도 않을 것이다. 이른바 원판 불변(^^;)의 법칙이랄까. 아무튼 <악령> 거의 막바지. 레뱌드킨 오누이 피살 사건에 완죤 정신이 나간 샤토프 앞에, '마리 샤토바'가 돌아온다. 이어지는 장면은 그녀가 스타브로긴의 아이를 낳는 것이다. 그 사이, 오랜 만에 재회한 그녀 앞에서 살살 녹고 반짝반짝 빛나는 샤토프의 모습에 대한 묘사가 참... 도스-키의 소설의 출발점이 감상주의(!!!+ 낭만주의)였음을 확인하게 된다. 사람 참 안 변한다! 마리와 샤토프 장면, 너무 감동적이다!^^; 정녕 독자의 금선(!)을 건드린다.

 

그다음, 짧지만, 키릴로프와 샤토프의 대화 장면. 중간에 "친구야~" 하는 저 대사만 반말인데, 작가의 실수인지 아니면 감정이 너무 격해서 그런 것인지, 그런 것을 의도적으로 표현한 것인지는 애매하다. 아무튼 이 부분도 참 좋다. 그래서 대학 시절에는,,, 천국-지옥, 아무튼 사후에 다시 만난 샤토프와 키릴로프 얘기를 써보고 싶었다, 내 소설로 말이다. 혹은, 반대로, 소설 속에서 조금만 언급되는 둘의 아메리카 체류기도 상상, 써보고 싶었다. 이런 꿈조차도 이미 과거지사가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악령>은 남는다! 스타브로긴보다 인간적으로, 샤토프와 키릴로프가 더 좋다. 이들이말로 <악령>의 감초. 이미지를 한 번 가져온다. 우리가 염두에 둘 것은,,, 이들이 정녕 청춘(!)이라는 것이다. 자살도 이때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가?)

 

 

 

 

두 컷 모두 오른쪽이 샤토프. 아래 사진은, 지금 내가 다듬은 저 장면인 것 같다. 소설 묘사를 보면, 샤토프도, 키릴로프도 방이 엉망이다. 정녕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젊은 그들'이다.  

 

새삼스럽지만, 어마어마한 소설이다.

사람이 이런 소재로(혁명과 테러), 이런 인물들로(등신들과 광인들과 한량들), 이런 화법으로(안에서 들여다보기) 소설을 쓰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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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수능 보는 날이다. 이 날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올해가 처음이다. 아무래도 아이 때문인 것 같다. 한날은 담임 선생님한테 자기(도) 대학 가고 싶다고 했단다. 그저께인가는 "엄마, 세상에는 서울대 말고 다른 학교도 있어, 그치?"하고 물으면서 대학 진학을 향한 소망을 조심스레, 그러나 강력히 표명하는 것이었다. 수학능력시험. 세계 어느 나라든 이것만큼 중요한 시험이 없다. 교육제도, 입시제도를 잘 모르지만, 아무튼 이런 식의 일제고사(?)는 꼭 필요하며 일정 비율(여기서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이상은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왜냐면

어쨌든

모든 시험과 평가가 갖는 오류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말하자면,

정해진 시공간에서 다함께 일제히 보는 지필고사만큼

정확하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는 없기 때문이다.

 

나의 '그날'은 1992년 겨울이었다.

나는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다. 엄청나게 추웠던 날, 엄마랑 부산에서 서울에 왔고, 사당에 사는 삼촌 집에서 잤다. 숙모가 (당시로선 엄청 고급이었던!) 비엔나 소세지 들어간 도시락 싸주었고, (무척 컸지만) 오리털 파카를 빌려주었다. 18년 평생 그런 옷을 입어보지 않았기에, 너무 가볍고 따뜻해서 놀랐다. 삼촌이랑 같이 학교 갔는데, 택시가 약대 쪽에 세워주는 바람에 인문대까지 찾아가느라 생고생을 했다. 심지어 시험 못 보는 줄 알았다. 다행히 그런 불상사는 없었고, 시험도 봤고, 보통 큰 시험 있을 땐 거의 그렇듯, 점심은 거의 못 먹었다. 그날 시험 감독 들어왔던 여자교수님, 짱 멋있었는데, 나중에 입학하고 보니 영문과의 유** 교수였다. 그날 그녀가 입었던 감색 바지 정장이 나에게는 여교수의 시그너처(^^;) 같았다. 그때 고사장을 가르쳐주었던 선배는, 역시나 입학하고 보니 90학번 누구였는데, 나중에 최연소 외시합격자가 되었다. "아, 그때 걔가 너였냐?"

 

1992년에 떨어진, 그리하여 재수한 친구는 1993년에 수능을 보게 되었다. 재수 94학번은 학력고사 마지막 응시자에 첫 수능 (첫) 응시자가 되었다. 이제는 아무 의미 없는 사실이지만, 그 무렵엔 의미가 컸다. '수능'이 뭔지 몰랐기에, 이번 학력고사에서 떨어지면 죽는 줄(^^;) 알았다. 그때는 선지원 후시험이었고, 2지망이 있었다. 나는 1번에 붙어서 그 이후에 절차를 잘 모르겠지만, 2지망으로 간 친구들도 많았던 것 같다.

 

요즘 건강이 가장 화두가 되어 '그날'을 돌이켜보니...

 

십대 중반부터 이십대 중반, 이 십년이 우리 인간-종은 가장 건강하고 활동이 가장 극대화되는 것 같다. 그 전에는 자라는 중이다. 열도 많이 나고 면역력도 약하고 자기 앞가림, 뒤처리도 잘 못한다. 하지만 대략 초등 고학년, 그다음 중고시절, 대학 초년 시절에는 엄청나게 왕성해진다. 공부도, 놀이도, 타락도 전부 이 때 제대로 할 수 있다. 나는 잠이 정말 많은 편인데, 그 무렵에는 그래도 예닓곱시간 정도 잤던 것 같다. 주말에 보충한 걸 생각해도 대략 7시간 정도? (요즘은 8-9시간 정도, 그 이상 잔다. 수면의 질은 별로 좋지 않다, 대여섯 번 이상 깨니까.) 그리고 깨어 있는 시간에 어마어마한 양의 학습을 했던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이 무렵의 인간-종이 다 그런 것 같다. 이때의 학습은 단순히 협소한 의미의 공부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비좁은 교실 안에 50명 이상이 모여 하루를 보낸다는 것 자체! 그 엄청난 인간 관계와 감정 읽기, 질서와 규율에 길들여지기, 어마어마한 운동량과 각종 기술 습득 등. 모든 것을 이때 배우고 익힌다. 혹은 이때 형성된다.

 

이런 것이 안 된다, 혹은 이런 것을 못한다 함은,,,

각종 '장애'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터이다.

 

문자 그대로, 큰 병(주로 소아암이나 큰 사고) 이후 질병장애

그다음, 우리 아이와 유사한 각종 발달 장애,

그다음, 시청각 장애, 지체 장애,

그다음, 어릴 때는 그저 adhd로 명명하는 정서 장애와 행동 장애의 보다 심화된 버전인 정신질환, 정신장애. 

이 모든 것을 통칭하여 '특수교육대상자'라는 이름으로 묶을 수 있다.

 

한달반만 지나면 아이는 열살이 된다. 두 자리다. 무서운 나이다. 정녕 '짤없이' 완성된 인간-종으로 이월해야 하는 나이다. 단순히 발달지수, 지능지수 몇 점이 문제가 아니라 아이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 운동 능력과 기능, 인지 능력과 학습 능력, 사회 생활 및 또래 관계의 기술 등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나날이 커진다. 엄마의 이런 심리가 아이에게 고스란히 반영되는 건 물론이다. 

 

나는 왜 불안한가.

 

 

 

 

 

 

 

 

 

 

 

 

 

 

 

대학 시절 비디오방에서 보았던 파스빈더의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를, 제목만 잠시 떠올린다. 영화 내용 자체는 그 제목에 별로 부합(?)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저렇게 백인 중년 여성 - 전형적인 아줌마-할머니와 아랍계 청년의, 축복받지도, 환영받지도 못하는 사랑) 제목만은 남았다.

 

불안은 가깝든 멀든 아무튼 미래의 일에 대해 갖는 정서다. 아이에 관한 한, 지난 10월에 열성 경련을 두 번이나 했고 그 이후 회복 과정에서 전에 없던 멍발작이 보여서 무척 불안하다. 소거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또 한 두 번씩 긴가민가하게 보인다. 엄마가 아니면 거의 인지도 못할 만큼 경미하고 시간도 짧다. 어떨 때는 눈은 살짝 멍한데 소리는 또 듣고 있다. 아무튼 덕택에 언제 또 아이가 열이 오를지 몰라 완전 '쫄보'가 돼 버렸다. 심지어 학교에서 그런 일이 있을까 봐 너무 무섭다. 그게 열이 먼저면 그나마 대처가 가능하지만, 경련이 먼저고 열이 두 세시간 이후에 오르면  참 큰일이다. 아니, 이러나저러나 큰일이다. 큰일이 날까봐 불안. 불안은 그래서 굉장히 추상적인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추상이 어마어마한 구상이라, 그게 불안을 더 키우고, 이 불안은 나의 영혼을, 몸과 마음을 심히 잠식한다.

 

Angst essen Seele auf.

(명사는 대문자로 써야했던 것 같다. 아닌가?)

 

러시아어 번역으론 Страх съедает душу.  

'스트라흐'는 보통 '공포/무서움'으로 번역하지만, 독일어의 'Angst'가 이렇게 많이 번역됨을 이 영화 제목을 보고 다시 한 번 인지했다. 키에르케고르의 '두려움과 떨림'(이데아총서, 민음사)의 앞단어도 저렇게 번역된다. 헉, 찾아보니 '공포와 전율'이라는 번역어(서)가 있다.

 

 

 

 

 

 

 

 

 

 

 

 

 

 

 

그뿐이 아니다. 최근에 한밤중에 심한 현기증과 메스꺼움을 경험했는데 결과적으로 단순급체와 소화불량 내지는 위장염 정도였음에도 불안이 무척 컸다. 아마 남동생 때문이리라. 질병에서 가족력은 정말 무서운 것 같다.(현재 강아지구충제를 복용하며 '자가 임상' 중인 모 연예인의 안타까운 경우가 잘 보여준다. 양친이 모두 암으로 요절하신 듯한데, 삼형제는 어찌 자랐을지..ㅠ) 엄마나 자매가 유방암이면 그 딸(자매)는 유방암 발병 확률이 ??프로 이상 높아진다니, 안젤리나 졸리가 미리(!) 싹을 잘라버린 것도 이해된다. 역시나 불안의 행동적 발현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다시 '그날'로 가서.

그날 우리가 얼마나 불안했던가. 오히려 시험 문제를 푸는 동안에는 그 불안이 없었으리라. 점심 시간에는 그 불안이 극대화되니 점심을 못 먹는 것이다. 차라리 문제지와 마주했을 때(만) 그 불안은 불식될 수 있다.  지금도 그렇다.  오직 일을 할 때만 그 불안은 잊힌다. 없어진다, 사라진다는 개념은 아닌 것 같다. 그런 정도라면 그저 '걱정' 정도로 표현되지 않을까 싶다. 불안은 보다 더 실존적(?), 더 병리적(?)인 개념인 것 같다.

 

- "아(씨/발), 빌어먹을, 서울대, 그거 뭐라고!"

 

말은 이렇게 해도 합격자 발표가 나던 날, 너무 불안해서(^^;) 이불 뒤집어 쓰고 누워 있었던 것 같다. 합격자 확인을 해준 건 도시락 싸준 숙모였는데, "축하한다~"라는 말부터 해주셨다. (나는 훗날 시조카에게 이런 상황에서 도시락 싸주고 축하 인사 건넬 수 있을까? - 물론, 장담코, 못할 거다.)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흘러

다시금,

아(씨/발), 서울대, 그거 뭐라고,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대입보다 취직이, 직업을 갖는 것이 문제인데,

역시나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고 있다,

그래서 다시 일을 하려고 한다 ---  

 

-- 서울대 합격 소식을 전후하여 처음 읽은 책, 바로 도스-키의 <악령>이었다. 내가 읽은 그의 작품 순서로 따지면 <죄와벌>, <카라마조프 ->에 이어 세 번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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