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교 시절에 처음 만나는 이상은 [날개]의 작가(소설가)이거나 [오감도]의 시인이기도 하지만 [권태]를 쓴 수필가이기도 하다. 요즘식이면 정말 작가. '권태'의 놀라운 점은 그 모던(!)함이다. '권태' 자체가 우리식 정서가 아니다. (그 무렵의 한국문학을 잘 모르지만-_-;;) 이광수 <무정>, 염상섭 <삼대> 이런 것이 쓰이고 읽히던 시절, 권태는 너무나 이국적? 너무나 뜬금없는 것? 귀신 씨나락? 아무튼 현실과는 굉장히 동떨어진 심리적 정황일 법하다. 병리적, 도착증적, 변태적, 이런 수식어를 붙여도 될 법하다. 한마디로, 이것은 '이식된'(=식민화) 것. 유럽에서 직수입이 아니라 일본을 통해 이중, 간접 수입된 것이다. 원조는 어떠했나.

 

 

 

 

 

 

 

 

 

 

 

 

 

 

영국과 프랑스의 (초기)낭만주의는 '이상'이 중요했던 독일의 그것(1기 - 노발리스, 슐레겔 형제 등)과는 다소 다르게, 권태와 (나아가) 환멸의 정서가 강하다. 러시아에 수입되어 인기를 누린 건 이쪽이다. 독일 낭만주의로는 일세대보다는 말기에 붙은 호프만이 오히려 더 큰 호응을 얻었다. 아무튼 우리(=동양) 문학의 입장에서는 이 모든 것이 몽땅 '서양-것'인데, 20세기 전후 일본 지식인-작가들이 배우고 익히고 닮고자 했던 것이기도 하다. 물론, 루쉰은 빠져야 할 것이다,행동하는 지식인, '메스' 대신 '붓을 든 작가로서 그의 정서는 권태와는 아주 거리가 멀다!  

 

 

 

 

 

 

 

 

 

 

 

 

 

 

 

다시 원조로 가서. 권태란 오랫동안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여자가 어찌 감히 권태를!!! 권태를 느끼려면 많은 것이 갖추어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돈, 돈, 돈이다. 최소한의 물리적 안정 없이 권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다음, 이것을 행동 차원으로 옮기려면(주로 여행을 가는데) 역시나 돈이 필요하고, 그다음은 육체적 자유가 필요하다. 여러 정황상, 여자는 감히 누리기, 혹은 실천(?)하기 힘든 것이 권태이다. 자, 그런데, 1857년(버버리가 <버버리>를 만든지 1년 뒤^^;) 삼십대 작가가 <보바리 부인>이라는 소설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여자가 감히 권태를! 그것도 소설을 많이 읽어서!  그러다가 주제 파악 못하고 파멸하는 얘기라니. 그 파멸은, 결코 남자주인공들의 경우와 같은 비극이 아니다. 오히려 어처구니없는 세태극이다.

 

 

 

 

 

 

 

 

 

 

 

 

 

 

 

 

엠마의 여자로서의 열등감은 결코, 적은 비중을 차지 않는다. 그녀가 아들을 바라는 가장 큰 이유는 '복수'하기 위해서다. 여자로서의 자신의 삶에 대한 복수.

 

 이렇게 사내아이를 갖게 된다고 생각하니 마치 과거의 모든 무력감에 대하여 희망으로 앙갚음하는 느낌이었다. 남자로 태어나면 적어도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온갖 정념의 세계, 온갖 나라를 두루 경험할 수 있고 장애를 돌파하고 아무리 먼 행복이라 해도 붙잡을 수가 있/. 그러나 여자는 끊임없이 금지와 마주친다.(...) 여자는 언제나 어떤 욕망에 이끌리지만 어떤 체면에 발목이 잡혀 있다.”(131-2)

 

'다른 것'의 가능성에 대한 상정에서 권태는 생겨난다. 내가 아닌 다른 나, 여자가 아닌 남자, 이 남자(여자-애인)가 아닌 다른 남자(여자-애인), 이 집이 아닌 다른 집, 이 세상이 다른 세상 등등. 남편 샤를르는 멀쩡 이상의 멀쩡이지만 엠마는 계속 다른 가능성을 꿈꾼다. 그럴 수록 현재(남편)는 싫어지고 권태는 더 강해지고 급기야 환멸로 이어진다.

 

그녀는 우연의 다른 짝맞춤으로 누군가 딴 남자를 만날 도리는 없었을까를 자문했다. 그리고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그 사건들, 달라졌을 그 생활, 알지 못하는 그 남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를 상상해 보려고 애썼다. 과연 어느 누구도 저 남자와는 닮지 않았다. 그는 미남이고 재기발랄하고 품위있고, 매력적인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옛날의 수도원 친구들이 결혼한 상대는 정녕 모두 그럴 것임에 틀림없다. 그녀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도회지에 살면서 거리의 소음, 극장의 술렁거림, 무도회의 광채를 만끽하면서 가슴이 터질 듯하고 관능이 활짝 피어나는 생활을 하고 있는 거다. 그런데 그녀는, 그녀의 삶은 마치 햇빛받이 창이 북쪽으로 나 있는 지붕 밑 골방처럼 냉랭했고 소리없는 거미와도 같은 권태가 그녀의 마음 구석구석의 그늘 속에 거미줄을 치고 있었다.”(70)

 

엠마의 불륜(정사)은, 영화로는 제법 야하게 표현되지만, 소설 속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모든 것이 너무 '연극적'이고, 작가-화자 입장에서는 너무 분석적, 메타적이다. 권태에 대한 소설적 탐구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 끝은 결국, 여주인공의 파멸인데, 가장 의미심장한 대목은, 강조하거니와, 결코 '사랑' 때문이 아니라 '돈-빚' 때문이라는 것이다. 엠마 역시 끝까지 인정하지 못하는, 심지어 모르는 대목이 바로 이것이다. 로돌프한테 돈 빌려달라고 했다가 퇴짜맞고 나온 뒤.

 

물론 아직은 몽롱한 상태였다. 그녀는 자기를 이토록 끔찍한 상태에 몰아넣은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를, 즉 그게 돈문제였음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괴로운 것은 오로지 사랑 때문이었다.”(452)

 

엠마의 음독은 바로 이런 자기기만에 대한 미학적 단죄이다. 이미 숨이 끊어진 엠마를 염하고 장례 치루는 과정에서 미학적 죽음은 더 잔혹하게 진행된다. 작가는 그녀에게 왜 이리 잔혹했을까. 어쩌면 그보다 마흔도 안 된 작가는 왜, 이렇게 멍청하고(ㅠㅠ) 허영심 많은, 예뻐 본들 중치 수준인 시골 의사의 부인을 자신의 페르소나로 내세운 것일까.  게다가, 이런 '된장녀-유부녀'의 자살을 완료하는 데 왜 (번역본으로) 20쪽에 가까운 페이지를 써야 했던 것일까.  많은 의문이 생기는 소설, 새삼스럽지만, 걸작임에 틀림없는 소설이다. 명불허전.

 

 

 

 

 

 

 

 

 

 

 

 

 

 

 

 

이미 낭만주의가 저물고 사실주의가 자리를 잡았을 무렵, 작가 자신 역시 감상주의, 낭만주의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왔을 무렵, 1860년대 분위기를 십분 반영한 <악령>에서 도-키는 전형적인 '권태-환멸'의 캐릭터를 창조한다. 스타브로긴. 사십대 중반에 읽는 그는 실은 이춘재(ㅠㅠ)급의 극악범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대가의 붓은 이런 극악범을 '위대한 죄인'으로 만들었다. 스타브로긴의 내면이 조명되는 이른바 <스타브로긴의 고백>(티혼의 암자에서)의 일절. 핵심적인 사건(마트료샤 사건 이후) 한 문장, "... 지겨웠다", 권태에 간만에 꽂힌다.

 

나는 대체로 그 무렵 사는 것이 머리가 멍해질 만큼 몹시나 지겨웠다. 위험이 지나자 고로호바야 사건도 당시의 모든 일처럼 완전히 잊어버렸을 텐데, 내가 겁을 집어먹었음을 회상하며 계속 분해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나는 아무에게나 분풀이했다. 그 무렵에는 아무 이유도 없이 어떻게든 삶을 불구로 만들자, , 가능한 한 훨씬 더 역겹게 만들자는 생각이 떠올랐다. 벌써 1년째 권총으로 자살할 생각을 했다. 뭔가 더 좋은 것이 나타났다. 한 번은 빈민굴에서 잔시중을 좀 들기도 한 절름발이 마리야 티모페예브나 레뱌드키나를, 당시에는 아직 돌아버린 건 아니고 나에게 남몰래 푹 빠져서(우리 패거리도 눈치챘는데(выследили)) 그저 환희에 젖은 백치 여자를 보고서 갑자기 그녀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다. 스타브로긴이 그야말로 이런 밑바닥 존재와 결혼한다는 생각에 나의 신경이 꿈틀거렸다. 이보다 더 추악한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내 결단 속에 무의식적으로나마(당연히 무의식적으로!) 마트료샤의 일 이후 나를 사로잡은 저열한 비겁함에 대한 분노가 개입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해결하려고 하지는 않겠다. 사실 그러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도-키의 후기작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권태-환멸을 알지만, 이렇게 허랑방탕한 놈은 없었다. 라스-프도, 이반도 다들 열심히 공부(!)하는 자였다. 스타브로긴처럼 '몹쓸 짓'을 일삼지는 않았다. 어릴 때는 굉장히 문어적으로, 형이상학적으로 읽었던 것 같은데, 지금 읽으니 (심지어 아이의 엄마로서!) 이런 처 죽일 놈! 어린 아이를! 물론 이런 극악범죄는 스타브로긴의 말그대로 '십자가'를 위해서 필요한 장치였기도 하다. 권태에 절어 방탕과 범죄를 일삼는 귀족 도련님은 그 존재만으로 '악령'이고 그 출처(원조^^;)는 물론 서유럽이다. 서유럽에서 수입(이식)된 권태와 환멸. 확실히 이것은 고급(!)한 것이라 충족을 모른다. 엠마의 권태와 같은 것이다. 상대적으로 저급(!), 혹은 원시적이고 즉흥적인 권태는 욕망을 채울 대상이 나타나면 이내 해결된다. 가령 <레이디 맥베스>의 권태 같은 것.

 

 

 

 

 

 

 

 

 

 

 

 

 

 

 

-나 리보브나는 빈 방들을 돌아다니며 지루함에 하품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계단으로 이어진, 그다지 크지 않은 다락의 부부 침실로 올라간다. 여기서도 잠깐 앉아 사람들이 광 앞에서 삼의 무게를 달거나 밀가루 담는 것을 내려다본다. 다시 하품이 나온다. 나른한 기분에 젖어 한두 시간 누워 잠을 잔다. 깨어나면 또다시 러시아의 권태, 상인집의 권태가 찾아온다. 그걸 견디느니 차라리 목을 매고 죽는 게 낫다고 말할 정도이다. -나 리보브나는 독서를 좋아하지 않았다. 게다가 집에는 책이라고 해봤자 키예프의 교부전이 전부였다.(14)

 

저렇게 집안을, 마당을 돌다가 만난 하인과 소위 살을 섞는 데 하루도 걸리지 않는다.  세르게이의 농간(?)이기도 하지만, 어떻든 이런 경우 뭔가의 부재와 권태와 욕망과 그것의 충족 등은 굉장히 단순하게 이루어진다. 소재가 성-섹슈얼리티(치정살인)여서 그렇지, 아니라면, 거의 동화를 읽는 느낌이다. 민중 작가가 파악한 민중의 진면목, 혹은 적나라한 실체이기도 할 터.

 

*

 

권태. ennui. 이 주제를 무척 좋아했다. 이 단어를 좋아했다. 그리고 환멸.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보바리>를 읽으면서 다시 상기되었다. 권태와 환멸의 끝은 구토, 다. 만약에 우리가 '구토' 이후에 살아남아 '놀이(게임)의 끝'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이 <고도를 기다리며>이다. 세계멸망(=2차대전) 이후 폐허, 잔해의 정서. 네 늙은이의 놀이에 비하면 19세기의 권태는 굉장히 생산적이고 역동적이고 음탕(!)한 것이었다. 심지어 연애도, 섹스도, 살인도 한다! 젊으니까, 젊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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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소설집은 중고샵에서 사주지만 2018년 경장편은 '매입불가', 흑. 전자에는 '권태/환멸'이 있다. 후자에는 '권태/환멸'이 없다. 소설들이 쓰인 시기를 놓고 볼 때 '비포-애프터'. '비포'에는 권태와 환멸이 가능했고, '애프터'에는 그게 불가능하다. 엠마 보바리는 '비포-애프터' 변화가 없는 훌륭한(아이러니다!^^;) 인물, 훌륭한 여자다. 갓난아이를(더불어 어린아이를) 내팽개치고 연애에 몰입하기 쉽지 않은데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아닐 수 없다. 이 때의 에너지는 성적, 육체적 에너지라기보다는(물론 이것이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소설처럼!" 되고자 하는 모방 욕망, '형이상학적 욕망'의 엄청난 에너지다. 작가는 그녀를 명백히 바보로 그렸지만, (비단 플로-르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엠마 보바리, 혹은 워너비-엠마인 것을, 어쩌랴! 말마따나, 지금 이 순간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연애!^^;

 

권태여(환멸이여), 다시 한 번!

Yesterday, onc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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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만한 사람은 다 알았을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망할 것임을. 작년인지 재작년인지 모심사장에서 만났던 한 국문자의 말대로, '**사는 회생이 불가능할 만큼...' 망가졌다. 참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출판사는 그나마 <이상문학상> 때문에 연명되고 있었다...라고 다들 생각할 것이다. '왕년에는'(! - 세상에 이보다 더 슬픈 말이!) 좋은 책들이 참 많았는데 이제는 쓸 만한 책이 거의 없고 심지어 이 상조차!

 

 

 

 

 

 

 

 

 

 

 

 

 

 

 

 

 

 

 

 

 

 

 

 

 

 

 

아주 오랫동안 이 상은 모든 작가의 로망, 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93년도 이상문학상 <얼음의 도가니>(최수철), 94년 <하나코는 없다>(최윤) 등 문학회 세미나 목록 1순위가 이 책이었다.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단편이 여기 실리는 것만으로도 감격했을 법하다. 젊은 독자들은 비단 수상작뿐만 아니라 여러 수록 작품을 읽으며 현대 소설의 흐름, 방향을 가늠해보고 자신의 나아갈(^^;;) 바를 그려보기도 했다.

 

 

 

 

 

 

 

 

 

 

 

 

 

 

 

대략 위에 가져온 이미지의 작품 정도는 나도 읽었다. 그다음에도 꾸준히 샀다. 수업에서 다루려고 비교적 열심히 읽었으나 도무지 작품이 안 되는 것이다ㅠㅠ 좋은 작품도 있으나 너무 재미가 없기 일쑤고, '잘' 썼다기 보다는 '애'쓴 작품이 많았다. 한 상이 이렇게 망하구나, 하는 슬픔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던 차, 다른 상들이 이 상의 자리를 가뿐히 대체한지 오래다. 단편의 경우, 권위로 치자면 이미 황순원문학상, 현대문학상, 이효석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이 가져갔고, 소위 지형도를 읽기에는 오늘의작가상이 좋다.

 

<이상...> 수상작의 조건 중 하나가 작가의 작품집에 수상작의 제목을 쓰지 않는(못하는) 것, 이었던 것으로 안다. 상 받은 모든 작가들이 동의했다는 것인데, 이상의 얼굴 옆에 자신의 이름과 작품 제목이 붙는다는 사실에 대한 자부심의 방증이기도 하겠다. 최수철의 <얼음의 도가니>는 <내 정신의 그믐>에 수록되었다. 3년씩 발표를(재수록) 못하게 한 줄은 이제야 알았는데(아니, 그 문구가 편집자의 실수로 들어갔다니!!! 이 변명이 더 슬프다!!!)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말하나마나, 나도 등단했을 때 제일 받고 싶은 상이 <이상문학상>이었다.

결국 못 받았고 이제는 줘도 흥~이게 되어버렸다.

나의 단발머리도 윤기가 없고 그저 세지 않은 것, 빠지 않은 것을 감사해야 할 처지.

"그 소녀 데려간 세월이~~~~"

 

무엇이 문제인가.

시간은 흐르는데, 나이는 먹는데, 저 변함없는 도도함이 문제인 것이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변함없음은 결국 퇴행/퇴보를 말한다.

 

'숭고미'가 '추'로 바뀌는 데 몇 년 안 걸렸다.

저러다가 이럴 줄 알았지.

 

*

 

차라리 아주 조현병이나 치매나 그 수준의 질환으로 넘어갔으면 모를까, 그 직전의 상태가 참 무서운 것 같다. 정상과 비정상의 애매한 경계 말이다. 특히, 중증(주로 정신) 질환에 인식 거부증까지(용어를 까먹음-_-;;) 들러붙으면 사태는 정말 심각해진다.

 

"**야, 너 그 약을 매일 매일 꼬박꼬박 먹어라. 그래야 앞으로 더 큰 실수를 막을 수 있다."

 

아버지의 유산-연금을 받기 위해 최근에 정신장애등급까지 받은 (왕년에는 정말 명민했던!) 한 사촌 오빠에게 큰엄마가 해준 충고였다. '완치'는, 물론, 없다!ㅠㅠ '그래야 병이 낫는다~' 이런 건 없다는 말이다. 백모의 충고는 '더 큰 실수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미 진단되고 인지된, 그래서 열심히 치료-관리 중인 질환보다 더 무서운 것이, 강조하건대, '의증-경계' 단계의 질환이다. 본인이 '노망' 든 줄 모른 채 여전히 '왕년'을 외치며 기세등등 굴며 시대착오적인 말을 늘어놓는 (시/친정)아버지들의 망언을 다들 조금씩 경험하리라. 비슷한 짓을 중년의 나/우리는 또 청장년에게, 심지어 소아청소년(자식들)에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멋진 중년? 멋진 노년?

꿈도 야무져, 욕심도 많지.

민폐나 끼치지 말자.

출판사든, 문학상이든, 사람-개인이든

망하는 건 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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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7 14: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른괭이 2020-01-07 14:53   좋아요 0 | URL
이어령 선생님 시절이야 정말 전성기였을 테고, 권영민 선생님 주간이실 때도 잡지 <문학사상> 월평란에만 언급되어도 감개무량, 감지덕지의 시절이 있었지요.

‘너무 고고해서‘ 망하기론 비단 <문학사상사>뿐만이 아닙니다. 시대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창비>에 비하면 <문지>도 실은 많이 아쉽고요ㅠㅠ 우리 개개인도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2020-01-07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른괭이 2020-01-07 14:54   좋아요 0 | URL
아, 그것이 사실 ‘저작권‘ 개념이 지금과는 달랐던 시절이라서요. 저도 97년 첫 소설집을 <문학과지성사>(당시로서는 상당히 좋은^^;)에서 냈는데, 계약서도 안 썼답니다^^; <열린책들>에서 나온 첫 번역도, 역시 계약서 쓴 기억이 없어요 ㅎㅎ 저는 지금도 계약서 똑바로 안 읽는다고 남편한테 혼납니다 -_-;

문제는 세상에 달라지고 현재 삼사십대(혹은 더 젊은) 작가들의 세계관이 전혀 다른데, 그걸 출판사가 전혀 모르고 있다는 점이죠 ㅠ
 

 

잡담이다.

 

오래 전 <인문대문학회> 시절, 2동 3동 사이 동아리방을 드나들던 한 경제학과 선배가 있었다. ('인문대'지만 다른 단대 선배들도 적지 않았다.) 경제학 공부를 하는 걸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렇다고 문학을 열심히? 딱히 그것도 아니었다. 책도 별로 열심히 읽지 않았고, 세미나에는 왔는지 말았는지 기억도 안 난다. 중간쯤 되는 키에 멸치처럼, 마른 명태처럼 깡말랐는데, 당시 무척 뚱뚱했던 나는 하나 같이 그렇게 마른 선배들을 좋아했다. 그 선배는 정녕 세월아 네월아 항상 한량처럼 노는 것 같았다. 수업을 가는 것도 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연애?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술과 담배? 담배를 피웠던 것 같고 술자리도 더러 있었으나 그렇다고 딱히 그것이 주종목도 아니었던 것 같다. 아, 정말 노는 것도 저토록 도저하게 하기 힘든데!^^;;  

 

세월이 흘러, 2004년 러시아에서 돌아왔다. '변/똥' 본 곳을 잊지 못해 간혹 동아리방을 들렀다. 허걱, 웬일인가. 말쑥한 정장 차림의 그 선배가 나타났다. "나 변호사 됐다." 명함까지. 선배는 졸업에는 실패(?)했는데, 그 졸업을 마저해볼까 하는 마음에 학교에 왔던 것도 같다. 나중에 보니 그조차 실패. 또 나중에 보니 그는 고등학교도 중퇴, 대학도 중퇴이다. 아무튼 그는 나와 서클 후배 몇몇을 꾸려서 신림동의 고급(!) 샤브샤브 집으로 데려갔다. 그 이후로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선거법 위반(?)인가 아무튼 그런 죄목으로 재판까지 받게 된 유시민의 변호를 맡았다. 지금은 대통령인 문재인의 선거 캠프 펀드 매니저(?? 명칭이 어려워서-_-;;)이기도 했다. 전공(?)은 선거법이지만 이혼 전문 변호사이기도 하다. 이 모든 정보(?)는 <망치부인>에 출연한 그의 말을 듣고 알았다. 내가 아는 천** 오빠/선배와 천** 변호사(이제는 심지어 청와대 행정관) 사이의 간극이 어마어마하다. 말쑥한 정장에 넥타이, 마이크를 잡고 서서 강연을 하는 그의 모습이 참 낯설다. 항상 문학회방 의자에 구겨지듯(?) 앉아, 혹은 반쯤 누워 잡담이나 떨던 그였는데. 과연 저들은 동일인인가. 당연하지만, 동일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동일인이 아니다. 시간은 '나'라는 단일 존재조차 다른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정치야말로 '해석'의 문제인 것 같다. '무정치적인' 존재인 나도 최근에는 예민해질 때가 있다. 이른바 조국 사태를 보면서, 몇 년 전 우병우는 과연 그렇게 '악'이었던가, 되짚어 보게 된다. 나는 업계종사자가 아님에도 우병우가 얼마나 '날고 기는 놈'이었는지 정도는 안다. 공부 하나는 정말 잘 했고 덧붙여 금전에 관한 한 최영 장군 수준이었다고. 우리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악연?)이나 이후 그의 행보가 과연 '죄'의 수준인지, 예전에는 확신했지만(즉 그러려니 했지만) 이제는 의심하게 된다. 아무래도 정치(범)는 해석의 문제다.

 

 

 

 

 

 

 

 

 

 

 

 

 

 

해석에 반대하는 것은 결코 능사가 아니다.  누구는 해석하고 싶어서 하나. 행동이 필요하고 행동하려면 해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힘들지만 텍스트(=현실, 인간, 사건 등)를 해석하는 것이다. 텍스트 해석에는 항상 많은 지식과 기술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내 해석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혹은 적어도 다른 해석이 가능할 수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

 

어릴 때 별 재능이 없어 보였던 친구(선후배)가 중년에는 훌쩍 커 있기도 하고, 또 굉장히 명민해 보였던 친구가 반대인 경우도 있다.(스승들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인생의 흐름을 우리가 알 수 없기도 하지만, 아마 가치 평가의 기준이 달라지는 탓이기도 할 것이다. '행복(=성공)은 성적순(=외모순=집안순 등등)이 아니다'라는 평범한 말을 새겨봐도 좋을 것 같다.

 

사람 일 한치 앞을 모른다.

 

내 기억 속에 들어 있는 소중한 친구들, 명민한 친구들, 착한 친구들

모두의 건강과 안녕을 빈다,

나 역시도 그러하길!

 

*

 

 

아들의 '초밥'을 모아주기 위해 아빠가 팔 걷고 나섰다. 그 사이, 아들은 아빠의 '꿈의 정원'을 완성하기 위해 아빠의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다. 사방팔방에 깔린 문제집, 학습지, 언제 풀 거냐 ㅠㅠ 단 1분도 아껴야 하거늘 ㅠㅠ 하지만 이건 오직 엄마의 욕심! 엄마만 없으면 너무 행복한 부자지간이다.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저렇게 팽~팽~ 놀다가는 어찌 되겠는가. 또한 그렇기로서니 아무리 버둥대도 또 한계가 있으니... 정답이 없다.

 

*

 

'흰쥐'로 마땅한 이미지가 없어서(넘나 징그러워ㅠㅠ) 흰꽃, 흰장미를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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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범 2020-01-16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멋진 한 해가 되세요!

푸른괭이 2020-01-16 17:45   좋아요 0 | URL
에휴, 많은 복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그저 큰 탈만 없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하세요! 아직은 (젊으시니) 야망도 조금 가져보시고요^^;
 

 

 

 

 

 

 

 

 

 

 

 

 

 

 

 

 

오래 전 박장대소하며 읽은 김영하의 <오빠가 돌아왔다>는 소위 콩가루 집안 얘기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난 시대 작가들이 감히 눈물(신파)과 폭력 없이는 쓸 수 없었던 소재를 이토록 발찍, 경쾌하게 다룬 '오빠'의 재능과 세계관이 경이로울 정도였다. 근엄한 어르신들은 그게 못마땅하셨겠지만, 우리의 '오빠'는 굴하지 않았고, 그것을 좋아하는 나 같은 독자들이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우리 모두 젊었다.

 

7년(?) 동안 정규직 교수 명찰을 달고 있던 미학자 진중권이 토론에 나왔다. 내가 소위 본방사수 할 형편은 못되고(또 아이 병간호 중이었다, 흑흑) 간만에 (저 유명한!!!) 유튜브로 풀버전을 (띄엄띄엄 일해가면서, 흑흑) 다 보았다. 진중권, 유시민, 이창현, 정준희. 처음 본 패널도 있었는데, 그분들이 오히려(?) 빛나서 좀 놀랐다. 또 내가 이런 식의 프로그램을 한동안 얼마나 보지 못했는지 새삼스러웠다. 한때는 나도 KBS열린토론 애청자였는데, 흑.

 

 

 

 

 

 

 

 

 

 

 

 

 

 

 

 

겸사겸사, 그때 패널로 자주 나왔던 경향신문 유인경 기자는 어느덧 정년퇴임을..-_-;; 신문사 생긴 이래 여성 기자가 정년까지 가는 경우가 처음이라니, 이 세상에서 엄마인 여성이 직업인으로 (그나마 최소치라도!) 역할을 다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덧붙여,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다른 것 다 떠나서 세 아이의 엄마라는 것만으로도 일단은 신뢰를 준다. 여자가 애가 셋이면 못할 일이 없다고 하는데 (역설적으로!) 국회의원에 장관까지^^;

 

 

 

 

 

 

 

 

 

 

 

 

 

 

 

내가 말한 '오빠'는 진중권과 유시민이다. 둘 모두 나에게는 작가/인문학자이다. 둘다 목소리가 좋은 건 아니지만(게다가 한쪽은 경상도 사투리까지 ㅠㅠ) 개성 있는 언번력을 갖고 있어 즐겨 듣곤 했다. 어제의 토론에서 둘의 행보가 확 갈렸음을, 갈리고 있음을 보고 참 마음이 아팠다.

 

유시민은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을 생각한다면, 지금 너무 보기 좋다. (장관인 그는 정말이지 안습이었다 ㅠㅠ) 방송에도 곧잘 출연하고 책도 쓰고 강연도 다니고 **재단 직함도 있고 무엇보다도 (소문만 듣던 것을 이번에 처음 들어가 찾아봤다) <알릴레오> 같은 것도 운영(?)한다. 정말 <유튜브>가 이렇게 놀라운 '플랫폼'이 되었다. 전직 장관이니 연금이 나올 테고(흑, 넘나 부러운 것이다!!!) 이제 하고 싶은 일 하면서 건강하게 살면 되는 것이다. 그의 조용한 당당함도 좋다. 어차피 이건 '편파중계'란 말이다!^^; '레거시 미디어'가 아니니 내가 하고 싶은 방송/말하고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 초청해서 얘기하고 등등.

 

진중권은 얼마 전에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는 멋진 말을 던지고 교수직을 떠났다. 진중권의 오랜 팬으로서 그가 경상도-리언인 나조차 처음 듣는 학교에 취직됐다는 얘기에 무척 의아했다. "진중권 선생이 굳이 왜? 돈이 없으신 것도 아닐 테고." "아니, 돈이 없으셨겠죠!" 그 대답을 해준 사람도 진중권의 후배 겸 뭐다. 중산층인 그는 사람에겐 정말 돈-직장이 필요함을 나보다 빨리 알았던 것이고, 나는 아이가 커가고 부모님이 심히 늙어가는 이제야 깨닫고 있다. 그래서 이해는 하되 마뜩치 않았던 차에, 오빠의 귀환을 환영했건만,,,,,

 

토론 테이블에서 보이는 그의 모습은 불행 그 자체였다. 속사정은 모르겠지만, 그는 '가오'를 위해, '자유'를 위해 교수직을 떠난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정황에 의해 쫓겨난 사람 같았다. 적어도, 지금 그의 모습은 전혀,,, 그 스스로에게 자족감을 느끼는 모습이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판단력도 많이 흐려진 것 같았다. 내 생각엔 표창장이란 애초에 위조될 수 있는 성질의 문건도 아닌 것 같고, 시험도 대리로 봐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것(그럴 가능성이 있다면 오픈북, 테이크홈 같은 형식을 취하지 안/못할 것) 같은데... 일개 학생의 봉사 활동에 총장이 직접 서류 작성할 리 없고 담당 교수(심지어 조교)가 몇 마디 쓰고 총장 직인 찍는 방식일 것이다. 문제는 그 담당 교수가 엄마라는 데 있는 것이지, 문서 위조가 아니라는 거다. 시험 역시, 설령 부정 행위(말 그대로 컨닝, 리포트 도용 등등)가 있다면 학칙에 따라(혹은 대부분, 교수 재량) 처리하면 되지, 그게 검찰님이나 동원되어야 하는 법적인 징벌의 대상인지, 놀라울 따름이다. 아무튼 지금 힘이 없어서(^^;;) 일일이 쓰기는 힘들지만, 변한 그의 모습에 다시금,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다. '오빠'가 동양대를 나온 것이 너무 기뻤기에 더더욱 그렇다, 흑.

 

무엇이 문제인가. 시간/나이?

나이는 유시민도 먹었다.

하지만 유시민은 정치할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해 보인다.

 

덧붙여, 다른 두분 패널, 훌륭한 토론 능력 외에 두드러지는 대목이 바로 '자세-태도'이다. 모두 허리를 딱 펴고 있다!^^; "허리 펴!" "허리!" "허~!" 아이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는 잔소리를 이제는 나에게 해본다. 역시 허리 딱 펴고 바른 자세로 앉아/서 있는 사람이 정신도 올바르다^^; 물론 그렇다면 사회자 손석희가 짱^^;

 

*

 

행복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나는 무엇을 할 때 제일 속이 편한가.

(문자 그대로, 제일 덜 아픈가.)

나는 나의 어떤 모습이 제일 마음에 드는가. 

그러고 보니 오늘은 나의 마흔 다섯 번째 생일.

 

- 엄마, 내일이면 엄마 생일이네? 무슨 선물 받고 싶어?

- 선물? 선물 좋아하네! 아프지나 말아라!!!!

 

예전 같으면, 담배를 꼬나물고(!) 컴퓨터 앞에서 작업하는(소설도 좋아, 논문도 좋아, 번역도 좋아) 나 자신이 제일 좋았다. 지금도 (부산의 후줄근한) 길거리에서 코끝을 간질이며 스쳐가는 담배 연기, 왜 그리 좋던지. 하지만 이제 이건 빼고,

 

올해도 나의/우리의 소중한 일상이 와해되지 않기를!

하얀 생쥐야 도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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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비교적 회복되어 9시 반쯤(일부러 늦었다!) 학교(방학 중 돌봄)에 간 아이가 고맙다. 단평 점수가 이게 뭐야, 허리는 왜 안 펴, 밥 빨리 안 먹어, 글자 좀 똑바로 써 등 일상적인 잔소리를 늘어놓는 정황이 실은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통지표 없이 방학을 맞은 것은 우리식으로 2월 봄방학(학기말 방학)이 남은 까닭이다.(-이란다.) 코앞에 닥친 3학년을 맞이하여 참고서, 문제집을 찾아보고 주문한다. <만점왕>보다는 <우공비>가 문제의 난이도가 좀 더 높거나, 정확히 조금 더 어렵고 응용이 많이 된(꼬인) 문제가 몇 개 더 포함되어 있다. 적어도 수학은 그렇다.

 

 

 

 

 

 

 

 

 

 

 

 

 

수학의 시작과 끝은 연산, 국어(+ 각종 문과 과목)의 시작과 끝은 독해. 그래서 이런 것도 주문하려 하거나 벌써 했다. <기하학을 모르는 자 (이리로?!) 들어오지마>. 그래서 <플라토>까지.  

 

 

 

 

 

 

 

 

 

 

 

 

 

*

 

 

 

 

 

 

 

 

 

 

 

 

 

 

 

이런 책의 저자이자 국문학자이지만, 두 아들의 엄마이기도 한 권보드래 교수의 강연을 찾아보고(워낙에는 책을 읽으면 좋은데^^;) 또 (오래된) 칼럼을 조금 뒤져 보았다. 그 중 하나, 아이들(당시 아마 중학생) 키우는 얘기에서 참 공감되는 것이,,, 말하자면 강요되는(적어도 프로그램된) 학습과 취미이다. 학습-공부는 말할 것도 없고, 각종 예체능, 취미조차 그렇다, 그런 측면이 있다. 피아노학원, 미술학원, 태권도, 무용(발레)학원 등. 부모는 아이가 런 문화(!)를 향유했으면 싶다.  문화란 강제되는 것이 아니거늘. 흡사 이것이 굉장히 자생적으로 습득되고 향유되는 것인 양 되도록 유치원 시절부터 예체능에 노출시킨다...라는 이름으로, 강요한다.

 

권보드래 교수보다는 몇 살 어리지만, 나도 음악책(바이엘, 동요곡집, 하농 등)이 든 큰 네모 가방을  들고 다니는 친구들을 무척 동경했던 시절이 있다. 물론, 나는 '중산층의 딸'이 아니어서 피아노 학원을 못 다녔다. 하지만, 강조하건대, 넘나 가고 싶었다... 요즘은 어떤가? 그 시대마다 이런 문화코드는 항상 존재한다. 오래 전의 피아노와 주산처럼 오늘 날에는 역시나 피아노, 심지어 플롯, 음악줄넘기와 트램폴린(태권도 학원에서 같이), 쿠키클레이(공예), 아크릴 물감 회화, 꽂꽂이 등. 그러다 2학년 2학기? 3학년 정도 되면 거의 다 학습(국영수!) 학원으로 슬슬 옮겨간다. 그 와중에도 문화-예체능은 중요하기에, 사실, 이 쪽까지 보내는, 그러려는 부모들이 더 욕심쟁이(^^;)라고 할 만하다.

 

이 모든 것은 사실,

(역시나 입시생 아이를 키우는 한 독문학자 엄마의 말마따나) 

엄마 욕심이다!^^;

 

두툼하고 묵직한 우공비 세트를 보자마자 아이는 책을 펼치고 목차를 훑는다. 무척 열심히, 집중적으로 그런 척한다. 심지어 정리와 분석도 해준다. "음, 통합교과가 없어지고 사회와 과학이 있네? 국어는 1단원이..." 왜 이렇게 열심히? '자기 할 일'을 '딱'(!) 해야지만, **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는 무엇?

 

바로,

노트북으로 동영상 시청,

혹은 새로 구입한 아이패드로 게임 하기.

 

세상 모든 아이들은 이 점에서는 똑같나? 정상 지능의 중학생 아이들도, 경계에 가까운 초등 아이도(내 아이^^;)  오락을 좋아한다는 건 그러니까 똑같다. 시간도 재지 않아, 집중력이 흐트러지지도 않아, 완전히 신난 얼굴에 박수치고 환호성까지! 아이가 이렇게 행복해한 적이 있던가. 그럼 오락의 수준이라도 높여보던가?! 이런 불만 역시 모든 엄마가 다 똑같이 갖는가 보다. 한때는 <냥코대전쟁>(?) 같은 수준 높은 오락도 좀 하더니 아주 접고, 이제는 <캔디 크러쉬>, <꿈의 정원>, <앵그리 버드> 이런 것도 많이 하는데, 어느 새 보면 또 베이비 팬더(?) 이런 걸 하고 있고 등등. 어제 보니 또 낙타 등에 짐을 싣고 사막을 지나 동굴로 가고 하는 오락을 하고 있다.

 

- 아니, 무슨 오락이 이렇게 많아?

- 응, 새로 깔았어! 

 

대답하는 시간도 아깝다는 투다. 한 번 해보고 지루하면 여지없이 삭제! 자기 소유의 아이패드가 생겼기 때문에 아쉬운 게 별로 없다. 아빠가 굳이 빨리 오지 않아도 된다. 그저 엄마 눈치만 보면 된다. 아이의 자율성?!이 너무 훼손되는 것 같아서, "너 스스로 할 만큼 다 했다고 생각하면 게임 해도 돼" 라고 말했더니, 문제집 딱! 한 장 풀고 아이패드를 붙잡기에 또 혼쭐을 내주기도 했다. 역시나 이 모든 것이

 

엄마 욕심, 일 뿐이다! -_-;

 

그러나 이런 사소한 일로 옥신각신, 또 잔소리하고 언성 높이고 하는 일상이, 이런 정황이, 고맙다. 덧붙여, 아이에게 '자기 할 일'을 '딱' 하도록 하려면, 엄마인 나도 놀아서는 안 된다. 아이에게 열심히 공부하는 '척'(!!!) 해야 하기 때문에 일부러 어려운(-_-;) 원서를 펴놓고 번역하거나 읽거나 하는 '척'(!) 하는 것이다. 이게 넘나 힘들다 ㅋㅋㅋ  

 

*

 

 

 

겨울 마가목과 여름(8월) 마가목.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은 참 아름다운 조합이다.

 

잘 가라, 2019년

돼지야!

의도한 건 아닌데 로자 룩셈부르크 묘.

  

안녕, 어서 와, 생쥐야,

여기는 2020년

태양계/지구/아시아/한국/서울/**네 집이야!

 

*

 

<슬픔이여 안녕>에서 '안녕'은 'Adieu'가 아니라 'Bon jour'. 이것을 알고 나서도 여전히 '아듀'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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