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명록




비로그인 2006-07-12  

로쟈 님, 로쟈 님.
정신분석 풋내기 입문자가 읽을만한 책이 무엇이 있을까요? 신경증이니 히스테리니 리비도니 같은 개념도 잘 모르는 상태라서요... p.s 저 혹시 홀링데일의 니체 책 읽어보셨나요? 제가 읽은 바로는 홀링데일의 니체 이해는 상당히 오해가 많은 것 같던데요. 도덕 상대론자 로서의 니체만 나와있으며 힘에의 의지라든지 영원회귀같은 개념은 죄다 설명이 빈약하거나 오해되어 있다는 판단이 들더군요. 관점주의 인식론은 아예 언급도 안 되어 있고요. 김재인 씨도 홀링데일은 학자로서는 별로라고 하시던데.
 
 
로쟈 2006-07-13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정신분석 전문가도 아니고 니체 전공자도 아닌데요(^^;). 저로선 막바로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같은 걸 읽어보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길들여진 정신분석을 기대하시는 게 아니라면 막바로 길들여지지 않은 정신분석과 직접 대면해보시는 게 낫지 않을까 싶네요.

홀링데일의 책은 부분적으로 읽어보았고 소장도서도 아닙니다(영어본은 어딘가 있을 텐데). 카우프만과 함께 '영역본 니체'를 대표하는 양반이니까 그런 의의 정도를 고려하면서 읽을 수 있지 않나 싶네요. 세대론적 한계 같은 것도 있을 텐데, '첨단'에 근거하여 무조건 폄하할 수도 없지 않을까요? 단점들을 들추기보다는 장점을 배우면 되는 것이죠...

비로그인 2006-07-13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이라... 겁 나네요.ㅡㅡㅋ
근데 왜 이 책은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이라고 제목이 번역되어 있는지.헐.
 


aisms 2006-07-12  

<우울증에 반대한다>를 낸 출판사입니다
우연히 로쟈님의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서평을 받지 못해 고심하던 중에 로쟈님의 글을 보니 위안도 되고 많이 아쉽기도 합니다. 정말 로비가 필요했던 걸까요? 한번 뵙고 싶다고 방명록에 글을 남기려는 순간에(피터 크레이머의 전작들을 출판해 볼 생각도 있어서요. 한번 끝까지 가보자는 심사로 말이지요.) 초인종이 울리고 계약서가 한 장 도착했습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자서전 <스피크, 메모리>입니다. 그래서 묻고 싶어졌습니다. 이 책의 역자로 어떤 분이 가장 적절할까요? 이런 궁금증까지 일다니 제가 로쟈님을 무척이나 뵙고 싶은 모양입니다. 이런 글을 남길 자리가 아닌 듯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군요. 로쟈님께 직접 연락을 취할 방법을 알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로쟈 2006-07-12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에도 좋은 책을 내고서 별로 주목받지 못한다면 좀 '억을한' 일입니다. 하지만, 꿋꿋하게 계속 전진하시다보면 반드시 '승리'하실 거라 믿습니다. 저 같은 지지자들이 꾸준히 늘어날 수 있을 테니까요.^^ 나보코프의 자서전 판권을 갖고 계시다면 굉장히 고무적입니다(보통은 구하기가 어렵다고 소문이 나 있으니까요). 제 주변에 전공자도 있으므로 연결시켜드릴 수 있습니다. 저에게 메일을 보내주시면 연락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Joule 2006-07-04  

바보같은 질문처럼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의 영역본은 아래 책입니다. 그런데 이 책이 프랭크 램지가 번역에 참여한 책이 맞는지요. <논리철학논고>에 대한 램지의 서평이 들어 있는 책에 대해 정보를 갖고 계시다면 그 역시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이번에 책세상에서 출간된 <논리철학논고>에는 러셀의 서평이 들어있는데 램지의 서평이 궁금해서 말입니다.
 
 
로쟈 2006-07-05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갖고 있는 영역본은 다른 판본인데 박스 도서라 역자가 확인이 안됩니다. 프랭크 램지는 처음 듣는 이름인데(철자를 적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전공자가 아닌지라 주요 연구자들을 제외한 서지정보에는 밝지 못합니다(물론 요즘엔 검색으로 대부분 해결되지만). '바보 같은 질문'은 아니신데, '똑똑한 답변'을 드리긴 힘드네요.^^

비로그인 2006-07-12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랭크 램지는 비트겐슈타인의 논리 철학 논고의 최초 영역자이고 캠브리지에 20대 나이에 임용된 천재적인 수학교수, 그리고 비트겐슈타인 전기 철학의 색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비트겐슈타인으로 하여금 새로운 사유를 하도록 촉진한 인물,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탐구 서문에서 램지에게 젊은 나이로 죽을 때까지 자기와 왕성한 토론을 하여 자기의 사유를 가다듬는데 도와주왔다고 감사.

로쟈 2006-07-13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비트겐슈타인을 다시 들춰보지 않아서 미처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비로그인 2006-07-01  

바쁘시겠지만 로쟈님의 생각이 궁금해져서....
인사드립니다. 꾸벅. 어떤 이의 글을 보다가 갑자기 님의 생각이 궁금해져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바쁘시겠지만 약간의 노동의 댓가(?)를 기대하시고, 한가 하실 때 짧게나마 답변 부탁드립니다. 꾸벅! 오늘날 시를 쓰는 사람은 자신의 사유와 직관 능력에서 산문적 치열함의 결핍을 숨기기 위해 시로 위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봐야 한다. 오늘날 시는 음악과 분리되어 과거의 운문이 지녔던 힘을 상실했으며 단지 종이 위에 끄적인 산문의 조각에 불과한 것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가 아니라 아포리즘일 것이며, 행갈이를 한 산문에 불과할 것이다. 과연 음악과 분리된 시정신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그렇다면 침묵 속에서 쓰고 읽히는 시는 시가 아닐 터. 시인이 이제 맞부딛혀야 할 상대는 과거의 시인이 아니라 차라리 고금의 산문일 것이다. 이른바 오늘날의 시인은 자기 식의 산문 형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며 산문 형식을 창조하는 능력의 결핍을 숨기기 위해 미완의 산문인 침묵의 시로 도피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로쟈 2006-07-01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생각하기에 따라선 견적이 많이 나오는 문제일 텐데, 임의로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날'의 시점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오늘날의 시가 '산문적 치열함의 결핍'을 위장한 게 아니냐란 혐의에 대해서. 일리가 없지 않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저는 시인들의 산문을 중요한 기준으로 간주합니다. 엉터리이거나(부정확하거나) 허접한 산문을 쓰는 '좋은' 시인은 불가능하다는 게 제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그건 '기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따라서 '미완의 산문인 침묵의 시'로 도피한다는 건 (일시적으로야 혹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가능하지 않는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비로그인 2006-06-24  

로쟈 님~
아펙트란 단어와 파토스란 단어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알려 주실 수 있으신가요?. 어렴풋하게 알고 있을 뿐이라서요... 특히 니체에게서요.... 아 참 그리고 제 아이콘으로 되어 있는 지젝 사진 옆의 여자요. 누군지 혹시 아시나요? ㅋㅋㅋ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로쟈 2006-06-25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ffect는 뜻이 요즘 너무 복잡해진 단어입니다. 우리말로는. 감응, 정동, 정감 등 5-6가지로 번역되고 있어서요(들뢰즈의 주요 용어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누가 쓰는 용어인가에 따라 뜻이 좀 다르다고 해야겠네요. 니체에게서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요? pathos는 특별히 다른 뜻이 있을 거 같지 않고 사전적인 의미를 그냥 참조하시면 되지 않나 싶네요. 그리고 엉뚱한 질문이신데, 이미지를 퍼오실 때 확인하시지 않으셨단 말씀인지? 작년봄에 결혼한 지젝의 세번째 아내입니다. 아르헨티나 처자이고, 친구의 딸이라죠, 아마...

비로그인 2006-06-25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한다"는 "갈망한다", 추구한다,요구한다가 아니다: 이것들로부터 의지는 명령의 아펙트에 의해 구분된다> 니체의 글 중에 이런 글 중에 이런 글이 있더라구요. 이외에도 니체가 많이 쓰던데...... 글고 지젝 옆에 있는 여인이 작년에 결혼한 아내라고요? 헐헐.. 나이 차도 상당한 것 같은데 50대 중반 넘어서 결혼이라....ㅡㅡ;;

로쟈 2006-06-26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지는 명령의 아펙트에 의해 구분된다'가 설마 번역서의 문장은 아니겠지요? 들뢰즈가 좀 특화시킨 의미의 아페트를 저는 '비인칭적 감응' 정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정동이란 무엇인가'란 그의 강연문이 번역돼 있으니까 참조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