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의 낙타와 성자
엘리아스 카네티 지음, 조원규 옮김 / 민음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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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도시에 익숙해지려면 새롭고 이해할 수 없는 목소리들로 혼란스러워질 때 혼자 있을 수 있는 은밀한 장소가 필요하다.(53)

 

'모로코'는 내게 낯선 도시이다. 그뿐인가. 낙타와 성자, 사막... 모든 것이 다 낯설고 경이롭기만 하다. 그래서인지 이 고급스러운 책을 펴들때 나도 모르게 경외감을 갖고 숨을 죽이고 조심스러워졌다.
그런데 어쩌나..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도 여전히 모로코는 낯설다. 낙타의 맑은 눈망울을 떠올려야 할지, 아니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낙타의 서글프고 공포에 질린 광기를 떠올려야 할지 머리를 굴리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엘리야스 카네티는 자신의 시선을 숨기지 않는다. 아무리 오랜 세월을 같이 한다해도 이방인의 시선일 수 밖에 없는 '여행기'라는 것을 그는 숨기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방인의 시선으로 그들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선으로 도시 안에서 생동감있게 살아있는 모든 것을 바라보려한다. 자신의 시선으로 그들의 삶을 포장하려 하지 않는 것,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일것이다. 물론 그러한 매력이 없었다면 이 책은 포장만 그럴듯하게 꾸며낸 빈껍데기에 불과할 것이다. 아, 오십년도 더 전에 쓰여진 책을 지금 읽으라고 내밀 수 있는 것 역시 그 안에 담겨있는 엘리야스 카네티의 사유가 담겨있기 때문이기도 하겠군.

하지만 내게는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확실히 모르겠다. 멋지다,라는 말로 떼워버리기에는 훨씬 더 좋은 사진들.. 고난의 삶이지만 살아가고 있고, 살아가야 한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듯한 사진, 자연빛의 아름다움이 어우러져 평화로움이 흘러나오는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언젠가 나는 모로코로 떠나야 할 것만 같기도 하다. 나 역시 낯선 도시에서 그들을 바라보면서 삶을 느낄 수있게 될까, 생각해보면서 말이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이방인일뿐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과 함께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말이야...

그곳에서 나는 혼자 있을 수 있는 은밀한 장소를 찾을 것이다. 새롭고 이해할 수 없는 목소리들로 혼란스러운 나를 잃지 않고 제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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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의 수수께끼
서프라이즈정보 지음, 한유희.김민경 옮김, 이강훈 그림 / 비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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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집에서 심심할때면 꺼내 보는 책이 있다. 만화책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왠만한 사람은 들어봤을 '명탐정 코난'이다. 코난의 주요 이야기는 사건을 해결하는 추리이야기지만, 색깔의 수수께끼라는 책을 읽는 중이어서 그랬는지 유난히 눈길을 끈 대화가 있다. 가끔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괴도 키드가 있는데, 키드와 코난이 만나 대화를 나눈다. 좀 멀리 돌아가는 느낌이 있지만 그걸 얘기해봐야겠다.
'그야말로 블루 원더! 푸른 창공의 기적의 탈출이라고나 할까!'
'푸른창공? 블루 원더의 블루는 바다를 가리키는 블루라구!'
'그게 그거잖아! 바다의 푸른빛은 하늘의 푸른빛이 비친거니까! 탐정과 괴도도 마찬가지야.. 하늘과 땅으로 갈려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을 따져보면 인간이 꽁꽁 숨겨둔 뭔가를 호기심이란 열쇠로 비틀어 여는 무뢰한 동지지...'
'멍청아.. 하늘과 바다의 색깔이 푸른 건 빛의 산란과 반사... 전혀 성질이 다른 이유때문이야.. 동급 취급하지마! 그 증거로 물웅덩인 푸르지 않잖아?'
'넌 꿈도 없냐....?' (명탐정 코난 44권, 코난과 키드의 대화)

색깔의 수수께끼를 보면 물은 무채색인데, 바다는 왜 파랗게 보이는지 이유를 알 수 있다. 물론 코난 역시 빛의 반사로 인한 현상이라고 이야기해주고 있으니 책을 뒤적이지 않아도 알 수 있겠지. 하지만 내가 굳이 멀리 돌아 명탐정 코난의 이야기를 끌어 온 이유는 사실이 중요하긴 하지만 사실'만'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이다.
넓게 펼쳐진 바다와 열려있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무미건조한 무채색을 떠올리면 정말 가슴이 탁, 하고 막혀버릴 것 같지 않은가. 
그렇다고 색깔의 수수께끼라는 책이 그렇게 숨 막히게 색이 갖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만 나열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의 일상에 퍼져있는 모든 색에 대해 무심코 그러려니 하고 지나치지 않고 잠깐만 색을 지켜봐줘, 하고 말을 걸고 있다. 재미있게 말이다.
간혹 조금만 더 이야기해주었으면 하는 색 이야기도 있지만 그런 아쉬움은 또 다른 색의 신비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달랠수밖에.

처음 책을 받았을 때, 다채로운 색감에 책이 아주 화려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것 역시 색에 현혹된 나의 착각이라는 토막 이야기도 있다. 인쇄되어 나오는 책의 색은 네가지뿐이라나?
'기본적으로 노랑 yellow, 자홍색 magenta, 청록색 cyan 을 색의 삼원색이라고 하는데, 이것으로 거의 모든 색을 표현할 수 있다. 다만 책이나 포스터는 색에 긴장과 이완을 주기 위해 이 삼원색에 먹 black 색을 섞어 4색 인쇄를 한 것이다'(240)
그렇지만 그게 어쨌다구. 그림을 보면서 뚫어져라 쳐다보면 네가지 색이 보일꺼야! 라고 한다면 세상이 얼마나 삭막해지겠는가. 색깔의 수수께끼는 수수께끼로 남겨두고 착시현상으로 인한 생활의 색은 그냥 보이고 느끼는대로 좋아하며 살아가야지. 빨강에서 따뜻함을 느끼고, 파랑에서 시원함을 느끼고.. 가끔은 식욕을 떨어뜨리고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라고 파랑을 끼고 살기도 해보고 말이다.

책을 가만히 보다가 문득 오래 전 선물받은 책 한 권이 떠올랐다. 다른 책 이야기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끝맺음까지 다른 책 이야기인 것이 좀 걸리지만 그 책 이야기를 잠깐 해야겠다. 코키 콜의 '마녀 위니'라는 동화다. 색이 없는 까만 세상에 키우는 고양이를 구별해내기 위해 색을 입히다가 온세상이 아름다운 색으로 변하게 되는 이야기. 색에 대한 정말 멋진 이야기 그림책이다. 색깔의 수수께끼는 바로 그런것을 이야기하는 것 아닐까? 누구나 다 똑같지 않고 나름대로 모두가 자신의 존재이유를 갖고 있는 것은 자기 자신만의 색을 갖고 있다는 것.
무지개색이 단지 빨주노초파남보,가 아니라 '희망'의 색이라는 것처럼 말이다.

** 한가지 덧붙여서 이 책은 색깔의 수수께끼라기 보다는 색에 대한 가벼운 상식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흥미 위주로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그보다는 조금 그 범위를 줄여 한가지 이야기를 좀 더 깊이 있게 했으면 어땠을까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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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공부 -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1월
구판절판


원래 공부란 한 사람이 '조금' 하고, 그 사람이 지치거나 힘이 달리면, 선행자가 조금 공부해 놓았던 것을 맛본 사람이 이어서 계속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누가 해 주는 게 아니라, 자기가 해야 공부다.-196-1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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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6-12-17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부제가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인 게야?

공부할 맘이 없어서 그런지 썩 다가오는게 없어, 문제다.
 

 

 

 

 

 

 

 

 

왜 뒷편이 안나오는거냐?

- 이 말에 다들 동의하시죠?

특히 압권인 이 작품 다음편!!

 

 

 

 

 

살아생전에 완결,을 보고 싶어라~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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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6-12-12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말예요. 근데 저 유리가면은 포기한지 오래됐는데요. 작가가 살아있기는 하남유? ㅠ.ㅠ

하이드 2006-12-12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종교에 빠져서 교주... 뭐, 이런 얘기 들은 것 같은데 -_-a

chika 2006-12-12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그 아줌마는 이상한 종교에 빠져있다 그러지요,
이십세기 소년은 아톰,에 밀리고 있지요
십자군 이야기는 진척없이 미학책에 매달려있었지요.... ㅠ.ㅠ

물만두 2006-12-12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팬들 뭐하나 몰라 ㅡㅡ;;;

urblue 2006-12-12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주말에 20세기 소년을 다시 봤는데요, 작가가 어떻게 결말을 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플루토로 도망간거 같아요. -_-;

chika 2006-12-12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언냐/ 그러게나말유~ ㅜㅡ

블루님/ 음... 으음... 글고보니 정말 그럴지도...글타고 플루토는 얘기가 쑥쑥 진행될까요? 플루토가 아무리 스토리라인이 짜여진거라고는 하지만. ㅡㅡ;;

마노아 2006-12-12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리가면은 포기했구요..;;;
노다메는 곧 나올 것 같아요. 모 서점에서 예약 받더라구요^^

날개 2006-12-13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세기소년은 22권에서 1부완결을 하고 1년후쯤(?)에 다시 쓴다고 하구요..
유리가면은 글렀어요.. 작가가 종교에 빠져서 돈 떨어지면 써놓은거 조금 손봐서 다음권 내고 그런답디다...ㅡ.ㅜ (정식판 아니라 팬들이 사비들여 찍은 내용은 저 다음 얘기도 나와있어요..)

chika 2006-12-13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리가면은 정녕... ㅠ.ㅠ
노다메는 애타게 기다리는정도까지는 아닌데.. 20세기 소년은 1부 끝내고 2부 준비한다는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흑~ 실망이예요. ㅜㅡ
 
모로코의 낙타와 성자
엘리아스 카네티 지음, 조원규 옮김 / 민음사 / 2006년 11월
품절


낯선 도시에 익숙해지려면 새롭고 이해할 수 없는 목소리들로 혼란스러워질 때 혼자 있을 수 있는 은밀한 장소가 필요하다. (사람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다.) 그 장소는 조용해야 한다. 그 장소로 피신해 들어갔다가 다시 나올 때까지 아무도 자신을 볼 수 없어야 한다. 막다른 골목으로 사라질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열쇠를 갖고 문 앞에 서서 지상의 어느 누구도 듣지 못하도록 그 문을 열 수만 있다면 가장 고마운 일이 될 것이다.
서늘한 집 안으로 들어가 잠근 문을 등진다. 실내는 어두워 한순간 눈 앞이 캄캄해진다. 마치 공터와 골목에서 버림받은 맹인처럼. 하지만 시력은 순식간에 회복된다. -53쪽

위층으로 가는 돌계단이 있고 위로 올라가면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고양이는 정적의 화신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어 왔다. 사람들은 고양이가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움을 느낀다. 그토록 소리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니. 사람들은 고양이가 하루에 천 번씩 '알라'를 외치지 않아도 밥을 준다. 고양이는 사지를 절단당하지 않고 잔인한 운명에 자신을 바칠 필요도 없다. 고양이는 냉혹할지도 모르지만 스스로 그렇다고 말하는 일이 없다.-54쪽

집을 오르내리며 정적을 들이마신다. 넌덜머리 나는 소동은 어디로 갔는지? 현란한 색깔과 날카로운 소리들은? 수백 수천의 얼굴들은? 이곳 집들은 길거리를 향해 창을 여는 일이 별로 혹은 전혀 없다. 창문들은 하나같이 안뜰을 향해 열리고 안뜰은 하늘로 열려 있다. 안뜰을 통해서만 주변 세계와 원만하고 적당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혹은 지붕 위에 올라 도시의 납작한 지붕들을 한눈에 볼 수도 있다. 균일함의 광경, 전체가 커다란 계단들처럼 지어져 있다. 그렇게 위에 올라서서 보면 도시 전체를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좁은 골목들은 장애물이 아니고 오히려 더는 보이지 않아 그런 게 있다는 사실까지 잊고 만다. 아틀라스 산맥의 산들이 멀지 않은 곳에서 번쩍여 알프스의 산들을 본다는 착각에 빠질 수도 있을 터이다. 만일 그 산의 광채가 지나치게 강렬하지 않다면, 그리고 도시 곳곳의 야자수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면 말이다.-54쪽

여기저기 솟은 이슬람 사원의 '미나레트'라고 불리는 첨탑들은 교회의 그것과는 다르다. 미나레트는 더 홀쭉한 모양이되 뾰족하지는 않고 위쪽이나 아래쪽이나 폭은 같은데, 중요한 건 높은 곳을 받치는 대(臺)로서 그곳에 기도하러 오라고 사람들을 부르게 된다느 ㄴ것이다. 미나레트는 빛이 밝은 등대와도 같지만 차이가 있다면 미나레트에서는 빛 대신 목소리들이 울려 퍼진다는 점이다.-56쪽

집들의 지붕 위로는 제비 떼가 이리저리 날고 있다. 그 모양이 마치 제2의 도시를 이룬 듯하다. 다만 골목길의 사람들이 느린 데 비해 새 떼는 빠르게 이동한다. 제비들은 결코 한자리에 머물지 않아 사람들은 그 새들이 대체 잠은 자는지 궁금해한다. 제비들은 게으름이 결여되어 있고 미리 재어 보는 사려와 신중함이 부족하달까. 새들은 날면서 먹이를 훔친다. 속이 빈 지붕을 저 새들은 자기들이 정복한 나라쯤으로 여길 것이다.-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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