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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그림의 미술사 - 바로크에서 현대까지 미술사를 바꾼 명화의 스캔들
조이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6월
평점 :
절판
"마르틴 바른케라는 미술사가에 따르면 예술 작품에 대한 모든 비판적인 접근은 ''우상파괴''의 한 종류로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다룬 작가들은 그런 의미에서 모두 ''우상 파괴자''들이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양식이나 자기 시대의 지배적인 양식을 배웠으나 이것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자기가 살고 있는 ''지금, 바로 이곳''의 문제 의식을 가지고 변형하거나 비틀고 비판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들의 그림은 당시에 스캔들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기존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들의 그림은 발칙한 도발이거나 사회 전복의 음흉한 의도를 숨기고 있는 비도덕적인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들의 작품이 일으킨 스캔들을 보면 당시의 사회와 문화의 한 측면을 볼 수 있고 또 반대로 한 사회의 전반적인 문화의 테두리에서 작품을 봐야 그 작품의 의미를 좀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이 책에서 이들의 작품이 일으킨 스캔들을 다루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 프롤로그에서.
조이한, 이라는 이름을 보고 한번 읽어볼까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집어들었었다. 엊그제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라는 책을 읽은 후, <위험한 그림의 미술사>라는 제목을 보니 뭔가 연관되는 것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의 프롤로그를 읽어보니 왜 <위험한>인지 그 느낌이 온다.
나는 사실 예술, 이라는 것도 잘 모르고 위대하다고 하는 그림을 많이 봤지만(아니, ''많이''라는 것도 어느 기준이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은 생각지 않았지만 그래도) 딱히 정말 훌륭해! 라는 말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나름대로 인상적인 그림은 있긴 하지만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좋으면 ''좋은 그림이야''라는 말을 소심하게나마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애써 두리번거리며 뭔가를 끄집어 내려는 노력도 살짝 내려놓았다. 그러니 그림을 보고 조각을 쳐다보는 것이 조금씩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나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내게 있어 예술의 이해, 라는 것의 첫걸음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이 책을 읽으니 나의 이런 생각이 미숙한것이긴 하지만 조금은 괜찮은 첫걸음일지도 모른다는 소심한 자신감이 생겨나서 괜히 뿌듯해지는 것이다.
''우상의 파괴''라는 것은 자신의 관념에 빠져들어 상상의 무한한 자유를 허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해진 정신적 혼돈과 충격의 의미도 될 것이다. 물론 대다수가 우상에 빠져들어 있다면 우상파괴자는 영웅이 아니라 오히려 이단으로 몰려 처형되고 매장되어버리겠지만.
이 책에서 언급한 다섯명, 카라바조, 프리드리히, 마네, 뭉크, 뒤샹은 영웅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가던 시대에는 매장되어버렸다. 현실에서 그들이 너무 앞서 가버렸기 때문일까? 현실을 너무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을 당시의 사람들이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다섯명의 미술가들은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서 단지 ''파괴자''로 보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미술사에 있어 혁명을 일으킨 위대한 미술가로 평가받고 있다.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져 틀 안에 갇힌 사람들에게 자유,를 준 것이다.
어쩌면 나 역시도 ''우상''의 파괴라는 것을 보지 못하고 우상의 ''파괴''만을 보게 되는지도 모른다.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에서 받아들인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나의 느낌과 상상과 감각들을 한정지으며 만들어 낸 ''예술''이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을지도 모르니.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만, 내가 좋다고 느낄 수 있는 것까지만 이해하자 라는 내 생각이 뿌듯함이 아니라 어쩌면 나를 틀지워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예술의 자유로움을 틀지워버리는 것, 조심스럽게 경계해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