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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슈테판 볼만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 무료하게 누군가를 기다려야 할 때, 나는 가차없이 들고다니는 엠피를 꺼내 플레이시키고 이어폰을 꽂는다. 그리고 책을 꺼내들고 적당한 곳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한다.
혼자 앉아 기다리고 있다면 이 모습은 그러려니..하는 일반적인 모습이 되겠지. 그런데 나는 간혹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을 때도 그러한 작태를 연출할때가 있다. 특히 내가 어색해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의 자리에서, 말을 쉽게 하기 힘든 어른들이거나 특별한 공통의 주제가 없는 사람들과 어정쩡하게 서서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일행을 기다려야 할 때.
밖에서 책을 꺼내들고 읽는 나는 스스로를 보이지 않는 벽으로 감싸버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책 읽는 나는 위험한가.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것들을 차단시킬 때, 상처받지 않고 쓸모없는 소모를 하지 않아서 안전하다, 라고 한다면 나는 정말 위험에 빠져버린 것이 될것이다. 하지만 내가 책을 읽는 것은 ''소통''하기 위해서야, 라는 생각이 변하지 않는다면 내게 책읽기라는 것은 그리 위험한 것은 아닐것이다. 물론 책읽느라 내가 해야 하는 것들을 팽개쳐버리는것은 위험한 정도가 아니라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는 것이겠지만.
이 책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라는 제목은 어딘가 모르게 선정적이야, 라는 느낌때문에 그닥 맘에 들지 않는다. 게다가 여자들의 책 읽는 모습을 그린 그림들도 전혀 위험해보이지 않는데.... 뭐지? 라는 생각으로 책을 살펴보고나서야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이 역사"가 눈에 띈다. 맞어. 책의 첫머리에 분명 ''독서의 역사''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을 해 줬는데도 까먹고 ''뭐야~''하고 있었다니.
이건 어쩌면 책의 주제와 제목이 살짝 뒤바뀌어 있는거 아닌가, 라는 내 생각에 몰두해 있어서 ''독서의 역사''는 까먹고 책읽는 여자들의 그림만 쳐다봤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조이한, 진중권의 <천천히 그림읽기>를 너무 좋아해서 그랬는지 이 책은 기대한만큼 아주 좋지는 않았다. 그런데 가만, 이건 또 뭔소린가. 이 책은 조이한이 쓴 책이 아니라 번역한 책이다. 나는 왜 자꾸 이렇게 엇나간 생각만 하면서 책을 읽었단 말인가?
여튼 이 책은 꽤 흥미롭기는 했다. 단순히 ''책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 속에 담겨있는 뜻,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어쨌거나 내가 그 안에서 끄집어 낸 것은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바뀌게 된 여자들의 인식수준과 의식화, 생활의 변화였다. 경건함과 도덕의식에 얽매여 강요당하는 생각에서 상상의 자유로움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변화, 그것은 위험해 보이지만 진정 살아있음을 만끽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지금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조이한의 또 다른 책 <위험한 그림의 미술사>를 읽으려고 꺼내들었다. 어쩌면 두개의 책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을 다시 일깨워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드는 책이다. 그 책 앞 부분을 읽고 이 책, 책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라는 제목을 다시 한번 읽어보니 느낌이 다르다.
"위험한"이라는 말은 누가 어떻게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말이니,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라는 말은 정말 위험한 말인지.. 생각해볼수록 재밌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