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Lemon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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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전에 집에 오는 길에 떼거지로 몰려있는 학생들 앞을 지나치고 있었다. 뒤에서 누군가 큰소리로 불렀지만 내 이름이 아니었기에 그냥 지나쳤는데 골목길을 꺽어 들어서니 뒤에서 뛰어 쫓아온 애가 나를 붙잡고 늘어졌다. ''애들이 많아서 모른척한거야?'' 라는 말을 들으니 어이없어하면서도 ''나는 학생 모르는데요''라고 정중히 대답해줬다. 그런데도 그녀석은 자꾸만 구체적으로 만날 날과 장소까지 언급하면서 괜찮으니 모른척 좀 하지 말아달라고 늘어지는 것이었다. 정말 답답할 노릇이었다. 이미 대학까지 졸업하고 직장을 다닐때였는데 고등학생 녀석이 얼핏봐서 친구로 착각하는 정도가 아니라 바로 앞에서 닮은 친구와 혼동한 것 같다고까지 얘기하는데도 믿지 않으니. 내가 전혀 동요없이 ''난 네 친구가 아냐''라고 말하니 그냥 돌아서기는 했지만 그 뒷모습에서는 여전히 내가 자기를 모른척한다고 섭섭해하는 마음이 남아있는 듯 해 그 오해가 빨리 풀리기를 바라며 집으로 갔던 기억이 있다.

이 세상에는 나와 닮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한두번 만난 사람은 스치면서 착각을 할 정도로 생김새뿐 아니라 스타일까지 닮아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닮은 사람일뿐 같은 사람은 아니다. 쌍동이라고 해도 서로 다른 것처럼. 그리고 또 그것과는 다르게 이제는 ''배아복제''라는 닮은 꼴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고유한 존재가치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 아니, 사람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그럴것이라고 믿는다. 그만큼 생명은 신비롭고 존귀한 것이며 함부로 다루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배아복제라는 것은 어떨까.

사실 이 책 레몬에서는 배아복제의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그 결과물로 태어난 아이들의 마음을 통해 ''복제''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해 보게 한다. 실험과 연구를 통해 생명을 갖게 되었지만, 생명체가 되고 나서는 더 이상 실험물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의 성장 과정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 그러지 않아도 책의 원제와 광고문구 자체가 스포일러 투성이인데, 내 느낌을 길게 쓰다보면 완벽하게 이 책의 스포일러가 될 듯 해 뭔가를 딱히 끄집어 낼 수가 없네...
그러고보면 이 작가의 책은 전체적인 흐름이 어떻게 되는지 결코 숨기지 않는다. 그 흘러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단지 사건의 해결을 향해 치닫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회와 사람들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게 느껴진다. 적어도 내게는.

하나 덧붙여말하자면, 이 책이 요즘 쓰여진 책이라면 작가에 대해 살짝 기대감을 버렸을지 모르지만 92년에 씌어진 작품이라고 하니 내 느낌이 맞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벼워보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글을 쓰는 작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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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3-11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의 작품은 다 좋다니까^^

비연 2006-03-11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읽어봐야겠네요. 다들 좋다고 하시네요^^

chika 2006-03-11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읽어보세요. ^^
만두언냐/ 그니까.. 처음엔 그냥, 이란 생각을 했었는데 정말 가벼워보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작가야. 근데 나 이러다 정말 일본 추리소설에 빠져버리면 어쩐다요~ ;;

2006-03-17 0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hika 2006-03-17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칸다하르
모흐센 마흐말바프 지음, 정해경 엮고 옮김 / 삼인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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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고서나 영화가 불붙인 지식의 작은 등불이 인류의 무지라는 깊고 큰 바다를 비출 수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앞으로 50년간 대인 지뢰에 손과 다리를 잃게 될 사람들이 19세 영국 소녀에 의해 구원받으리라고도 믿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아프가니스탄으로 간 것일까? 카말 호세인 박사는 그렇게 좌절하면서도 왜 UN에 보고서 쓰는 일을 그만두지 않는가? 왜 나는 영화를 만들고 이 글을 쓰는가? 나는 모른다. 그러나 파스칼이 이렇게 말했다. "이성이 모르는 이유를 마음이 알고 있다" (65쪽)

  

열 두 살짜리 아프간 소녀, 내 딸 한나와 같은 나이의 소녀가 내품에서 기아로 떨고 있는 것을 본 이후 나는 세계에 처참한 기아의 비극을 드러내 보이려 했지만 언제나 통계를 제시하는 것으로 끝났다. 신이시여! 나는 왜 이렇게 무력하단 말입니까! 마치 아프가니스탄처럼, 나는 헤라트 시인의 시, 바로 그 방랑을 떠올린다. 그 시인처럼 나도 어딘가에서 길을 잃고 싶다. 나는 바미얀의 석불처럼 치욕감을 못 이겨 차라리 무너져 내리고 싶다. 

나는 걸어서 왔고 걸어서 떠난다.
저금통이 없는 나그네는 떠난다.
인형이 없는 아이도 떠난다.
나의 유랑에 걸린 주문도 오늘 밤 풀리겠지.
비어있던 식탁은 접히겠지.
고통 속에서 나는 지평선을 방황했다.
모두가 지켜보는데서 떠도는 사람은
나였다.
내가 갖지 못한 것들을
나는 놓아두고 떠난다.
나는 걸어서 왔고, 걸어서 떠날 것이다.
(74쪽)

 

***************

지금은 더 이상, 모든 인간은 한 몸의 일부, 인 시대가 아니라고 한다. 세계 저 너머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도 나는 고통을 모른다.
... 잠시 나는 점심을 먹고 왔다. 사순기간이라고, 특히 사순시기의 금요일이라고 절제한다며 라면을 끓여먹고 왔지만 나는 이제 우유도 마시고, 우유를 넣은 커피까지 한 잔 하고서는 따뜻한 불 옆에 앉아 끄덕끄덕 졸며 책을 읽을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은 이제 한 몸의 일부가 아니다. 나는 세상의 고통을 모르고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움켜쥐려 할 것이다. 내게는 내가 가져야 할 것들로 가득하다.....
사순은 더 이상 십자가의 고통을 짊어지고 세상의 모두와 함께 하는 시간이 아니다. 나의 만족을 위해 나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게는 마음이 사라져버렸다. 이성이 모르는 일을 마음은 알 것이라고? 내 이성은 내 마음에게 '잠시 아파하고 잊어라'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내 마음은 알아서 그들을 잊어버릴 것이다.
그렇지만 어느 날, 지금처럼 가끔 마음이 아파오면... 사라져버린 내 마음이 저 깊은 어딘가에서 모습을 나타낼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세상의 고통을 느끼기 힘들지만, 세상에는 많은 고통이 있고 무엇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는다.

 

"아프가니스탄의 불상은 파괴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현실이 너무나 비참함에도 불구하고 철저한 침묵을 지속하는 이 세계가 너무도 "치욕스러운 나머지 무너져 버린 것이다"

 

무너진 성전을 3일안에 다시 세우겠다고 예수는 말했다. 예수를 따른다는 우리는 치욕으로 무너져 버린 불상을 다시 세울 수 있을까? 돌들이 일어나 소리치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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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그만의 정원 - 잃어버린 나의 조국,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가다
사이라 샤 지음, 유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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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세상 사람들은 한몸의 지체이며
같은 본질을 지녔으니
한 부분이 억압받으면
다른 모든 부분도 고통으로 괴로워한다.
-샤이크 사디 쉬라즈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은 한 몸이기때문에, 한쪽이 고통을 당하면 당연히 다른 쪽도 고통을 느낀다고. 그렇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온 세계가 자신들의 고통을 알고 있고 함께 아파하고 있는것이라고.
그런데 실제로는 어떨까. 나 역시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전쟁기자의 책을 읽고 수많은 지뢰에 대해 알게 되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또 다른 책에서 그곳 아이들의 눈망울을 찍은 사진만을 봤을 뿐, 내게는 기아와 굶주림과 내전에 시달리는 그들의 고통이 그저 나와는 상관없는 이 세상 어딘가의 일로만 여겼을뿐이었다.
영국에서 자랐지만 스스로 아프간이라 여기며 어린 시절부터 들었던 아프가니스탄의 신화같은 이야기를 실제로 느끼기 위해 그곳으로 간 사이라 샤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피상적이던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조금이나마 다가설 수 있게 해 준다.
아프가니스탄에 행해진 러시아와 미국의 침략에 대한 판단도, 무자헤딘과 탈레반에 대한 판단도 없는 듯 하지만 담담하게 그려지는 그곳 상황에 대한 글들은 오히려 좀 더 깊은 생각을 끄집어낸다. 정치체제나 세계의 아프간에 대한 제재, 협정 따위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더 확고히 만들어준다. 

부족간의 전쟁과 약탈, 무자비한 보복,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폭격과 대상을 가리지 않는 지뢰는 여전히 아프간을 위험한 곳으로 만들고 있다. 무자헤딘이 살인과 강간을 자행하고 있을 때 탈레반이 생겨났지만 그들 역시 폭력을 멈추지는 않았고 이슬람 근본교리를 따른다며 여성에게 부르카를 씌우고 사람취급도 하지 않는다. 구호물자를 나눠 줄 때도 남자아이에게만 허용을 해 주는 반인륜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단지 테러가 있었고 없어져야 할 테러범과 마약판매상만 가득한 아프간을 이야기할 뿐, 그곳에 살고 있는 '보통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프간을 우리의 일부라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아프간의 어느 곳에서는 지뢰가 터지고 있을 것이며, 가진 것을 모두 잃고 난민이 되어 헤매는 사람들, 난민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다시 위험한 곳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사람들,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생명...이 있을 것이다. 아프간은 세계의 일부이며, 그것은 또한 우리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아파해야 하며,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상처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은 마음으로만 볼 수 있다.
마음과 마음은 두 개의 몸처럼 분리된 것이 아니다.
두 개의 램프가 합쳐지지는 못하지만
두 램프에서 나오는 빛이 하나의 빛으로 합쳐지듯이.
- 잘랄루딘 루미, <마스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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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슈테판 볼만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월
구판절판


"사람은 삶을 통해서 배우며, 독서를 통해서 배운다"라고 귄터 데 브로인은 말한다.
"그리고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은 항상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통찰력을 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삶에 대해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게 된다. 독서를 하면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삶도 함께 사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보충해서 말하겠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사랑을 느끼고 함께 한다'고.
-273쪽

"독서는 삶의 계획만이 아니라 신이나 남편, 행정부, 교회 같은 좀 더 높은 기구가 내리는 지시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게 만든다. 독서는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주고 상상력은 사람을 현실에서 끄집어 내 데려간다. 하지만 어디로? 독서가 아직도 통제될 수있기라도 한 것처럼 이렇게 묻는다. 통제될 수 없는 모든 것은 두려움을 불러 일으킨다.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신, 남편, 행정부, 교회!)은 그같은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쩌면 신은 독서에 대해서는 한눈을 감고 못 본 체할지도 모른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가끔 꿈을 꾼다. 최후의 심판 날의 동이 트고, 위대한 정복자와 법률학자가 자신들에게 주어질 보상을 받기 위해서 올 때 - 그들이 쓰게 될 월계관과 월계수가지, 그들의 이름이 영원히 마모되지 않을 대리석에 새겨져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 전능하신 신께서 우리가 팔에 책을 끼고서 걸어가는 것을 보시게 되면, 그때 그분은 베드로 쪽으로 몸을 돌려 질투심이 전혀 없는 상태라고는 하기 힘든 어조로 말씀하실 것이다. "보아라, 이들은 더 이상 어떤 보상도 필요하지 않아. 이곳 천국에서는 그들에게 어떤 것도 줄 수 없어. 그들은 책 읽는 것을 아주 좋아했지"-274-2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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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런스 2006-03-09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국가면 책을 실컷 읽을 수 있게되는 거나요 ^^

물만두 2006-03-09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투~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슈테판 볼만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월
구판절판


케르테츠의 사진에서는 세계의 모든 장소에서 가능한 상황이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도 책은 읽혀진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독자는 항상 아주 특별한 - '선택된'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은 유혹이 들 정도다 - 개인이다. 케르테츠의 카메라는 책 읽는 사람을 주변 세계로부터 고립시킨다. 독서를 위해서 그리고 독서 과정을 통해서 스스로를 주변 세계와 격리시키는 것처럼. 고독한 대중 속에서 그는 내면으로 침잠해가는 개인이고, 외면을 향한 소비자 무리에서 내면으로 시선을 돌린 게으름뱅이다. 시선의 방향을 바꾸지 않은 채로 그는 책이나 신문을 쳐다보고, 접근할 수 없을 것 같은 인상을 관찰자에게 준다.-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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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05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