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제12회 백신애문학상에 하명희의 ‘불편한 온도’
등록 2019-10-14 16:36:18
제8회 백신애창작기금에는 이철산 시인의 ‘강철의 기억’

【영천=뉴시스】 이은희 기자= 제12회 백신애문학상에 선정된 소설가 하명희씨. 2019.10.14. (사진= 영천시 제공)photo@newsis.com



 
【영천=뉴시스】 이은희 기자 = 대구·경북 첫 여류작가인 영천 출신 백신애 문학상에 소설가 하명희 씨의 ‘불편한 온도’가 선정됐다.
14일 영천시에 따르면 올해 12회를 맞은 이번 문학상은 백신애기념사업회(회장 김종식)가 주관하며 상금은 1000만 원이다.
백신애문학상은 여성에게 침묵·순종을 요구하는 가부장적 가족제도와 조혼의 폐단을 거부하고 비판했던 작가의 정신을 기려 2008년에 제정됐다.
이번 상은 등단 5~15년된 작가들이 2018년에 발간한 창작집을 대상으로 심사했다.
선정된 소설가 하명희는 2009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 장편소설 ‘나무에게서 온 편지’를 출간했다.
한편 기념사업회는 상금 500만 원이 주어지는 제8회 백신애창작기금에 시 ‘강철의 기억’ 작가인 이철산 시인을 선정했다.
영남권 시인들이 지난 8월까지 발간한 시집을 대상으로 심사했다. 이 기금은 지역 문학의 활성화를 위해 쓰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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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뉴시스】 이은희 기자= 제8회 백신애창작기금에 선정된 이철산 시인. 2019.10.14. (사진=영천시 제공)photo@newsis.com

시상식은 오는 11월 9일 영천교육문화센터(2층)에서 열릴 예정이다.
백신애(1908~1939) 작가는 1920년대와 30년대에 항일 여성운동 및 작품 활동을 펼쳤다.
식민지 조선 억압받는 민중의 고통스러운 삶을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여성의 언어로 사실대로 그려낸 리얼리즘 작가이다.1930년 여성으로서는 처음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나의 어머니’로 문단에 데뷔했다.
‘꺼래이’, ‘적빈’, ‘채색교’ 등 소설 20여 편과 30여 편의 수필·기행문·논단 작품을 남겼다.
leh@newsis.com

신아일보
http://www.shina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13493

경북일보
http://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17828

대구 매일신문
https://news.imaeil.com/People/2019101413322402728#

헤럴드경제
http://biz.heraldcorp.com/village/view.php?ud=201910141715358856590_10


http://biz.heraldcorp.com/village/view.php?ud=201910141715358856590_10

아시아뉴스통신
http://www.anewsa.com/detail.php?number=1997635&thread=07r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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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아 2019-10-20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

돌바람 2019-10-21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소식 전해요 이누아님!
 
무정에세이 -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
부희령 지음 / 사월의책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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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에 나는 네팔의 포카라에 머물고 있었다.” -부희령, <무정에세이-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사월의책, 2019)

나는 아직 이 나라 밖으로 발가락을 옮겨본 적이 없다. 그러해서 이런 문장을 만나면 기사나 책에서 접했던 네팔을, 포카라를 상상해보게 된다. 4월의 포카라는 어떨까. 그 노란 겨자꽃은 피었을까. 공기는 어떨까. 폐를 얼얼하게 하는 차가운 맛일까.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콧구멍이 달라붙을까. 사람들은 무슨 옷을 입었을까...
일주일 전에 마산행 열차를 끊어놓기는 했으나 만나려고 했던 그는 어제부터 연락이 닿지 않는다. 어떻게 할까 하다 그냥 기차를 탄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열네 살 때 자장면 배달을 하다 경남대에서 몰려온 시위 행렬을 따라 구경하다 파출소 방화범으로 몰려 42일 동안 고문을 받았으니까. 그가 어리기 때문에, 주변에 그를 보호할 사람이 없는 가출 청소년이었기 때문에, 그저 중국집 배달원이었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고문의 휴유증은 묻지 않을 생각이다. 가능하다면 그가 시위대를 따라 걸었던 중화동에서 오동동으로 이어진 그 길을 같이 걸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도 그의 선택이어야겠지. 사람 하나를 만나는 건 “무정한 세상을 건너가는” 또 하나의 방법이 생기는 일일지도 모르니까. 마산역에 닿을 땐 이 책 귀퉁이를 접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와 연락이 되면 좋겠다. 그렇게 무정한 세상을 건너는 방법 하나 얻어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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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19-10-16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8년 5월에 저는 네팔의 포카라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5월의 포카라는 폐를 얼얼하게 하지도 숨을 들이마실때마다 콧구멍이 달라붙지도 않는 그냥 평범한 한국의 봄 날씨와 같았습니다.
안나푸르나 산행시 낮에는 봄날의 따스함이 전해지지만 저녁 무렵부터는 골짜기에서 몰려든 먹구름이 한바탕 비를 몰고 와 언제나 잠자리는 눅눅했었죠.

돌바람 2019-10-19 14:57   좋아요 0 | URL
포카라는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으로 남았어요. 낮에는 우리의 봄날을, 저녁에는 가을날을 상상하면 되겠군요. 잉크냄새냄, 혹시 <트리술리의 물소리> 읽어보셨나요? 꿀사냥꾼들의 여정이 사진과 함께 실린 글인데 잉크냄새님이라면 분명 아주 반가워하실 듯요. ^^
 

 

책을 언제 어디서 만나게 되었는지에 따라 기억의 밀도는 달라지곤 한다. 박태순 선생의 중편소설 「밤길의 사람들」은 여고 2학년 때 순전히 제목 때문에 도서관에서 꺼내든 소설이었다. 처음엔 슬쩍 읽고 꽂아놓으려 했으나 나중엔 바닥에 퍼질러 앉아 책장을 덮었다. 유월항쟁의 시간이 이렇게 흘렀구나, 명동성당이 시간의 비탈길이었구나... 소설을 통해 그 혼란이 아름다운 것으로 스며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기억을 쓴 것이 아래 글이다.

오늘이 가기 전, 작가들이 발로 쓴 한국 현대사 『민중을 기록하라』(실천문학사, 2015)에 실린 선생의 「소신(燒身)의 경고(警告)」를 다시 보았다.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선생의 고뇌가 보인다. 선생의 글에 대한 고뇌와 경고와 같은 발품, 글품을 새겨야겠다.

 

‘밤길의 사람들’과 명동성당, 그리고 광장의 비탈길

삼월 초 그 길을 다시 찾았다. 내가 가려는 곳은 서울의 가장 비싼 땅 언덕 위에 있었다. 예전 주소대로 하면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 1번지. 명동(明洞)이라는 ‘밝은 동네’의 1번지라면 그곳의 역사를 한 마디로 대변해주는 곳이기도 할 것이다. 실제로 ‘명동성당’이라는 이름은 1945년 바뀐 것이고 그 전에는 ‘북고개’라는 지명을 따서 종현(鍾峴)성당으로 불렸다. 이름이란 건물보다 힘이 세서 내가 다닌 고등학교의 가을 축제명도 ‘종현제’였다.

지하도를 나오면 바로 보여야 하는 곳, 그 언덕의 뾰족지붕이 고종 시대에는 문제였다고 한다. 임금이 있는 경복궁보다 높은 곳에 성당이 지어진 것도 문제인데 그 성당의 건축 양식이 하늘을 찌를 듯 뾰족했던 것이다. 뾰족할 뿐 아니라 건물은 나무나 돌이 아니라 벽돌로 지어졌다. 명동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고딕 건축물이면서 벽돌로 지어진 최초의 건물이기도 하다. 고딕이라고 불리던 이런 건축 양식이 조선조 말 양반들의 사고방식으로는 굉장히 폭력적으로 받아들여졌던 모양이다. 고종은 즉각 성당의 건축을 중단하라고 명하고 금교령을 내려 성당으로 모여들 새로운 종교 세력, 즉 천주교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지하도를 빠져나오자 당연히 보여야 할 뾰족지붕이 보이지 않았다. 명동4지구 개발로 언덕보다 더 높은 건물들이 언덕을, 그 위에 라틴 십자가형 삼랑식 위에 지어진 46.7미터의 종탑을 가리고 있었다. 서울에 경복궁보다 더 높은 건물은 지어질 수 없다고 상소를 올렸던 조선의 권력자들도 성당의 종탑보다 더 높은 자본의 시대를 예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변한 것은 성당을 둘러싼 건물들만이 아니다. 개발은 성당으로 오르는 길 자체도 지워버렸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매일 성당으로 오르는 계단을 올라 예수님 상 앞에서 잠시 멈췄다가 학교로 들어가곤 했다. 그런데 세상을 껴안을 듯 두 팔을 벌리고 있는 예수님 상도 없어졌고 양 옆에 계단을 끼고 오르는 비탈길은 작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김성희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에 관한 만화 『빨간약』(보리, 2015)에서 그 비탈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명동성당 비탈길은 시위자들의 요구가 버티던 곳”으로 “필요한 말을 할 수 있도록 내준 곳”이었다고.

내게도 이 비탈에 대한 기억이 있다. 그 비탈길에 들어서 있던 수많은 천막들과 밤을 잊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그들의 요구를 힘겹게 걸어놓던 곳, 그리고 1991년 6월 말 37일 만에 농성을 풀고 저 비탈길을 걸어나오며 “국민들이 어느 정도 당신을 믿는 것 같냐”는 기자의 질문에 답하던 그를 기억하고 있다.

 

“상식을 갖고 있는 국민은 모두 저를 믿으리라 확신합니다. 그러나 상식이 무너진 험악한 세상이 안타깝습니다.”

 

그때는 몰랐다. 유서를 대필했다는, 한국의 드레퓌스 사건의 희생양이 되었던 강기훈의 죄 없음이 24년이 지나서야 무죄 선고를 받게 될 줄을. 그가 왜 성당으로 피신했고, 저 비탈길에서 위태롭게 버티고 있어야 했는지를. 당시 이 사건을 전두 지휘했던 법무부장관이었던 김기춘이 이제야 구속 수사를 받게 되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도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이었던 것을 보면 어떤 각인된 기억의 유효기간은 진실이 밝혀지는 시효와 비슷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계단을 올라 성당을 둘러보았다. 지하성당에도 들르고 성바오로 수녀회 앞에서 사진도 몇 장 찍었다. 그런데 3월 초 평일 오후인데 성당 뜨락에서 학생들을 만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학교 안의 모습도 어딘지 스산했다. 아이들이 쏟아져 나올 시간인데 계성여고의 입구는 굳게 닫혀 있었다. 그때서야 학교가 이전할 거라는 소문이 떠올랐다. 집에 와 찾아보니 실제로 학교는 작년 초에 마지막 졸업식을 하고 더 이상 그곳에서 입학생을 받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이 떠나면 이름도 사라지는 것이다.

이제 고백해보자. 수녀원과 붙어 있는 저 학교의 도서관을 나는 얼마나 사랑했던가. 도서관에서 뽑아본 책들 중 하나가 채광석과 김명인이 엮은 풀빛소설서 중 첫 권이었던 『밤길의 사람들』(풀빛, 1988)이었다. 도서관에서 저 책을 뽑아들던 당시 열일곱 살이었던 나는 그저 소설 제목이 좋았다. ‘밤길의 사람들’이라니, 뭔가 흥미진진한 밤의 이야기가 펼쳐질 줄 알았다. 그런데 소설의 시작은 이랬다.

 

“만약에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이 시대를 찾아왔다면 도대체 이처럼 이상한 야단법석이 어떻게나 되어버린 퉁구니인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영등포에서 시작된 남자와 여자의 맞선이 명동의 밤으로 이어질 때는 선 채로 책을 보다 다리가 아파 주저앉았을 것이다. 그리고 문예부 선배들이 얘기하던 6월 항쟁이, 경적을 울리기로 약속된 시간으로 향해가는 명동의 밤이, 밤길을 돌아 명동성당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나도 모르게 내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경험했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내가 매일 오르던 비탈길을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역사의 시간으로 바꿔놓고 있었다.

 

“시간의 비탈길은 이 광장에서 여섯시를 향하여 가파른 오르막길을 계속 올라가고 있는 중이었다.”

 

남자가 여자를 만나지 못하고 길에서 해매이던 그 시간의 비탈길은 내가 6월 항쟁을 기억하는 시간과 공간의 좌표가 된 셈이다. 작가는 1987년 6월 10일을 다섯시 오분, 다섯시 사십분 등으로 쪼개어 조각보처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명동이 해방구가 되어가는 그 시간의 멈춤과 폭발을 이렇게 적어놓았다.

 

“명동은 시민들의 해방 공간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커다란 삼태기에 콩을 잔뜩 담아 까불리기를 하고 있는 모습과 흡사하였다. 병신춤, 배꼽춤을 추듯이 하는 사람들. 문자 그대로 길길이 날뛰고들 있는 사람들.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열나게 외쳐대고 있는 청춘들. (…) 그야말로 병신 꼴값들을 하는 것이었으며 놀랄 노 자(字)의 한바탕 춤판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이 혼란, 무질서가 좋은 것, 아름다운 것, 사랑스러운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시간은 고장 난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폭발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시간이 해방을 구가하고 있었다. 서춘환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고 있는가를 정말이지 완전히 잊고 있었다.”

 

이 시간의 폭발과 무질서 속에서 남자는 여자를 찾아 명동성당으로 진입하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날마다 밤길의 사람들 속에 끼어 “마치 알지 못한 자력에 끌리기라도 하듯” 새로운 기질을 만들어가는 밤길의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그들은 “최루탄이 터지면 마치 불꽃놀이에 놀란 강아지들처럼 흩어졌”다가 “금세 다시 모여들”면서 “결코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무질서와 혼란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었다. 무너진 상식을 되돌리는 사람들이었다.

지난해와 올해 숨 가쁘게 달려왔던 탄핵 촛불 항쟁이 대통령을 파면시켰다. 헌제 앞에서 탄핵 인용을 기다리다 ‘파면’이라는 말이 터지자 “이겼다”는 말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30년 전 명동성당으로 모여들며 20여 일을 버티던 밤길의 사람들은 이번에는 연인원 1,700만이 넘는 촛불이 되어 스무 번의 토요일을 광화문으로 모여들었다. 이렇게 우리는 또 하나의 상식을 세운다. 그리고 같은 공간에서 우리는 또 보았다. 왜 우리 애들은 안 되냐고, 광장에 우리만 남으면 어떻게 하냐고 고개를 숙이고 울던 유가족들이 “우리가 너희의 부모다”라고 울부짖으며〈약속해〉의 노래를 부르는 광장의 비탈길을. (<작은책> 2017.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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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리얼리스트 인터뷰] 사회의 온도를 측정하는 소설가 하명희


일시 : 2019년 5월

참석자 : 김대현(인터뷰어, 문학평론가), 하명희(소설가)


 



김대현 : 하명희 선생님 안녕하세요. 문학평론을 하는 김대현입니다. 오늘은 웹진 〈문화다〉 특집  ‘우리 시대의 리얼리스트들’ 관련하여 박일환 시인에 이어 두 번째로 선생님과 대담을 진행하려 합니다. 대담을 준비하기 위해 선생님의 작품 『불편한 온도』(2018, 강)와 『나무에게서 온 편지』(2014, 사회평론)를 다시 천천히 읽어보았습니다. 처음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읽는 사람을 서늘하게 하는 부분들이 많아서 그에 관련된 생각들을 선생님께 직접 듣고 싶었는데요. 이번 대담이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마침 이번에 『불편한 온도』로 제22회 한국가톨릭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하셨는데요. 상당히 오랜 기간 정련의 시간을 가진 소설집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수상을 축하드리고요. 본격적으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읽는 분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와 근황을 조금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하명희 : 고맙습니다. 며칠 전에 시상식이 있었는데요, 제가 올해 등단한 지 딱 10년이 되거든요. 신인상을 등단 10년 이내의 작가에게 준다고 하더라고요. 『불편한 온도』 출간이 더 늦어졌으면 못 받을 거였어요. 그동안 작품집을 출간하려고 여기저기 투고도 하고 그랬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그러다가 재작년에 홍상수 감독의 영화 〈그 후〉에 나온 강출판사를 찾아갔다가 평론하는 정홍수 선생님을 뵙고 소설을 막 들이밀었어요. 좀 봐주세요, 하고. 그때 마음이 바닥을 치던 때여서 거기서도 퇴짜를 맞으면 이건 다 버리고 다시 쓰자, 그랬던 것 같아요. 다행히 정홍수 선생님이 출간을 결정해주셔서 이렇게 좋은 상을 받게 된 것 같습니다. 『나무에게서 온 편지』는 벌써 출간된 지 5년이 지난 장편소설인데 90년대 초 고등학생들 이야기를 누가 읽어줄까 고민하다 전태일문학상에 투고를 했었어요. 그때도 그랬던 것 같아요. 소설은 썼는데 어떻게 독자와 만나지? 저의 경우는 소설 쓰는 것만큼 그 다음이 또 어렵고 힘들더라고요. 지금은 그동안 썼던 30매 가량의 짧은소설과 단편소설들을 하나의 단편집으로 엮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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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 먼저 이번 수상작인 소설집 『불편한 온도』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2009년 선생님의 등단작「꽃 땀」에서부터 비교적 최근작인 2017년 「눈의 집」까지 대략 10여 년에 걸친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는데요. 아무래도 소설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각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들과 사건들이 택배 노동자, 다문화 가정의 아이, 노점상, 알코올중독자, 타워크레인 조종사, 고려 시대의 유랑족인 양수척족의 여성 등 사회의 소수자, 노동자들과 그들의 신산한 삶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등단부터 지금까지 10여 년 동안 선생님의 시선은 변하지 않고 항상 사회의 불편한 곳을 향하고 있는데요. 이는「꽃 땀」의 한 대목처럼 언제나 “지는 팀을 응원하는 서포터의 삶”을 떠오르게 합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을 선택하는 선생님의 기준과 철학이 궁금합니다.


하명희 : 무슨 단어가 좋을까요. ‘소외’보다는 ‘낙오’라고 할까요.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저는 자라면서 성공이나 무언가를 성취하고 싶은 욕망이 자연스럽게 거세된 같아요. 집도 아니고 방도 아니고 포장마차에서 자고 먹고 그랬으니까, 그게 뭔지, 그걸 어떻게 가질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죠. 리어카에 포장을 쳐서 포장마차가 되는 것처럼 간혹 그걸 가진다 해도 눈앞에서 금방 부서지고 빼앗기고 다시 리어카가 되는 걸 봐버렸거든요. 내가 자란 환경을 보면 저 또한 사회적 소외자, 낙오자일 수밖에 없지요. 그들은 일어서고 싶지만 일어설 수가 없어요. 방도 없고 돈도 없고 가족도 자꾸 없어졌다가 돌아오고, 또 폭력에 그만큼 노출되어 있고. 리어카에 도둑질한 철재를 숨기듯 살아가려면 법을 어길 수밖에 없거든요.


   왜 나는 이런 글만 쓰나, 생각해봤는데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저는 ‘낙오’를 선택한 걸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낙오자이기 때문에 낙오자에 대해 쓸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 낙오한 삶이어도 어쨌든 살았단 말입니다. 여기 이렇게 있잖아요. 지금의 나를 증명할 단어들, 나를 형성했던 것들을 돌아보면 쓸쓸함, 슬픔 그런 것들인데, 나를 버티고 살게 만든 것은 성공을 향한 의지가 아니라 ‘슬픔을 슬픔이라고 말하고 싶은 의지’였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그러다 보니까 슬픈 게 좋더라고요. 슬프지도 않으면 사람은 사람이 아닌 것 같고. 자꾸 그런 것만 보이는 거죠.


김대현 : 소설을 통해 소수자의 삶을 재현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소설의 내용이나 형식이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소설의 소재로 소수자들을 재현할 때 피할 수 없는 소설의 윤리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가끔 이야기 되듯이 나는 혹시 타인이 겪는 고통을 미학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닐까? 또는 나의 휴머니즘에서 시작된 재현이 그들을 연민의 대상으로 삼아 오히려 그들을 완전히 타자화시키는 것이 아닌가라는 물음이 그것입니다. 혹시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사회적 소수자들과 그들을 소설로 재현하는 나름의 기준이 있으신지를 듣고 싶습니다.


하명희20190517_080542.png하명희 : 내가 그 안에 있으면 돼요. 그러면 타자화하지 않아도 그냥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상일 수밖에 없어요. 소설 속 인물들도 소외로 통칭되는 타자가 아니라 개별적인 사람이 되는 거고요.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많잖아요. 제가 소설의 윤리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모르는 것에 대한 접근이 없는 것, 다시 말하면 모르면 책을 보고 사람을 만나고 사건의 현장을 찾아가야 하는데 미리 내 사고로 재단해버리는 것을 경계하기는 합니다. 말씀하신 가난이나 고통을 소비하고 그들을 미학적으로 소설화하지 않으려면 우선은 내가 여과기가 되고 싶기는 해요. 그들 속에 있지만 정말 그런가 끊임없이 묻는 작업을 하는 것. 왜 그런지. 왜 그렇게 되어버렸는지. 그럴 때 제 기준이랄까 윤리랄까 하는 것은 “돌을 돌답게 하는 것이 상상력이다”라는 바슐라르의 문장을 적용해보는 겁니다. 내가 그를, 그들을 그답게 그렸나, 퇴고 과정에서 항상 그런 질문을 하게 되더라고요.


김대현 : 선생님의 소설을 읽다가 놀랐던 점은 평상시 독자들이 접하기 어려운 실제 삶의 현장들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불편한 온도」에서 한겨울 타워크레인에 쌓인 눈을 크레인을 조종해 처리하는 방법이라든가, 「그림자들의 강」에 나오는 포장마차에서 카바이드를 이용해 불을 피우는 장면들이 그렇습니다. 자전적 경험이나 심도 깊은 취재가 아니라면 관념적 사고만으로는 도저히 묘사할 수 없는 내용들입니다. 이러한 세밀한 묘사는 읽는 이들에게 소설 속 사건이 가지는 특수성을 지근적으로 체험하게 함으로써 소설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로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세밀한 묘사를 가능하게 하는 선생님의 문학적 원체험이나 특별히 기억에 남는 취재 후기 등을 듣고 싶습니다.


하명희 : 직접 만나기, 만나서 보기, 듣기, 그리고 이게 가장 중요할 것 같은데 버리기. 소설은 세부를 통해 사람이든 사건을 전달하기 때문에 현실의 질료들이 다 들어오기 전까지는 소설이 씌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불편한 온도」는 크레인 조종사를 만나고도 해결되지 않는 이런 세부들을 알고 싶어서 크레인 자격증 문제집을 풀었습니다. 크레인을 설치하고 해체할 때 조종사가 헤드에 앉아 로봇처럼 자기 팔다리를 끼워넣고 빼내고 한다는 거예요. 통계로는 최근 6년 동안 300여 명이 넘게 이 설치와 해체 과정에서 사망했어요. 사고가 아니라 사망이요. 이해가 되세요? 저는 들어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책을 찾아봤는데 의외로 책이 없어서 크레인 자격증 문제집을 풀었죠. 그림도 그리고. 그러면서 취재하고도 1년 있다가 이야기가 만들어지더라고요. 그 1년 동안 버리는 작업을 해야 했던 것 같아요. 썼다가 버리는 것은 문장은 없지만 흔적은 남더라고요. 쓰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이 그걸 읽어줄 때 찌르르 하고 정말 좋았어요. 아, 소설에서 버리는 작업이 이래서 중요하구나. 저도 처음으로 쓰면서 실감했던 소설입니다.


   「그림자들의 강」은 자전적인 이야기인데요. 포장마차에서 살다 보니까 카바이드 돌 같은 경우는 나만의 특별한 경험으로 튀어나오더라고요. 돌이 물을 만났는데 불이 되네, 같은 것들. 노래에서처럼 카바이드가 나오는 포장마차는 80년대 노동자들이 쓴 소주에 시름을 달래던 곳이지만, 제게 포장마차는 생활의 공간이어서 냄새나는 돌에 불을 붙이는 저녁이면 하루가 시작되는, 그런 경험을 풀어내고 싶었고요. 또 그 돌이 막걸리에 들어가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 되는 것처럼 리어카에 포장을 씌우면 포장마차가 되고, 그런 포장마차들도 고향이 있다는 것, 그러니까 함부로 부셔질 수 없다는 것, 그런 것들이 다 제 주변의 소재들이었던 것 같아요.


김대현 : 선생님의 소설에는 빈곤과 폭력으로 점철된 불안한 가정의 모습이 종종 나타납니다. 가정폭력으로 한국인 남편에게 살해당한 베트남 여성과 그 자녀의 이야기를 다룬 「까막편지를 읽는 법」이나, 아빠의 폭력을 피해 달아난 엄마의 이야기가 있는「그림자들의 강」, 부인에 대한 폭력을 통해 자신의 결핍된 남성성을 보충하려는「늙은 물의 사랑은」들이 그렇습니다. 빈곤이라는 구조적 문제의 피해자들 사이에서 다시 젠더역학의 피해자로서 이중의 피해자인 여성들의 모습이 서늘하게 드러나 있는데요. 제가 선생님의 소설에서 주목하는 지점은 이러한 젠더역학을 다루는 방식이, 젠더의 차이를 도식화하여 피해자성과 가해자성을 강화하여 젠더의 차이를 부각시키는 최근의 주류적인 여성서사들과 결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점에 있습니다. 선생님의 소설에는 여성에 대한 가해자로서 남성이 사회 구조적으로 왜 그렇게 되었는가에 대한 과정이 충실히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라 생각되는데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문학이 젠더문제를 다루는 온당한 방식이 무엇인지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하명희 : 질문이 어렵지만 우선은 이해요. 기본적으로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가해와 피해의 도식적 사건이 되어버리고, 이것의 해결은 고발과 법적인 처벌이 되어버립니다. 문학은 모든 것을 법적으로 해결하면 끝나버리는 고발과 처벌에서, 나와 너가 다르다는 구분과 차별의 방식에서 벗어나는 숨구멍이지 않을까요. 문학은 어느 시대나 주류를 다루는 방식에서 끊임없이 예외가 있음을, 그것이 인간사임을 드러내는 작업이 아니었을까요. 그 틈에 구멍을 내고 틈이 틈이 아니게 되었을 때, 그땐 미련 없이 또 다른 틈을 찾아나서는 것이 문학의 운명이 아닐까요. 그래서 고독하고 개별적이고 자유로운 인간성을 회복해오지 않았을까요. 바틀비처럼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백 년도 넘게 외치잖아요. 문학이 그런 일을 해오지 않았다고 한다면 더 할 말이 없지만, 내가 몸에 익힌 문학은 분명히 그러했고, 지금 저는 그것을 내 방식대로 하나씩 풀어내는 중이라고 느껴요. 큰 줄기는 그렇습니다. 오해의 여지가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만, 지금 문학장에서 젠더를 다루는 차별과 배제와 고발과 처벌의 방식은 제 방식은 아닌 것 같아요.


KakaoTalk_20160928_172353726.jpg김대현 : 그래서인지 몰라도 선생님의 소설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구사대로 활동하며 다른 노동자를 폭행했던 청년의 변화과정을 다룬 「목발」이나, 고려를 배경으로 유랑족 출신이지만 고관의 첩이 되어 동료 유랑민들을 자신의 노비로 삼은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눈의 집」, 부인을 폭행하는 알코올중독 남편의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담은 「늙은 물의 사랑은」등은 가해자의 처지에서 사건을 기술함으로써 그 동안 단순화되었던 가해자성에 대한 고착된 관념을 전도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는 가해자의 행위에 대한 변명의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왜 그렇게 되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고찰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접근방식으로 생각됩니다. 누군가의 피해자이면서 누군가에게 동시에 가해자일 수 있는 인간이라는 복합적인 존재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하명희 : 한 사람 안에 있는 가해와 피해의 양상을 통해 ‘그 사람’을 보여주고 싶은데 아직도 멀었습니다. 현대소설은 개별적 인간, 즉 ‘사람’을 다룹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 사람’, 여성이냐 남성이냐가 아니라 그 사람에 더 집중하고 갈등하고 싶어요. 아시잖아요. 사람 하나를 이해하는 것은 우주를 이해하는 것만큼 어렵습니다. 이해할 수도 없어요. 다만 글 쓰는 사람으로 저의 자세는 그것에 다가가보려고 애써보는 것, 이렇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해보는 것, 결국에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가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김대현 : 앞서의 물음과 연결되는 질문일 것 같은데요 사회 시스템이 점점 복잡해짐에 따라 이전의 도식으로는 쉽게 해명될 수 없는 많은 사회적 관계들이 형성되었습니다. 예컨대 프랜차이즈 가맹점에 대해 착취를 당하는 약자인 가맹점주가 그보다 더 약자인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착취하거나, 그 노동자가 다른 감정노동자들에게 갑질을 하는 등 가해와 피해의 관계가 일방향이 아닌 상호 교차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손을 잡는 대신 서로를 피해 각자의 공간에서 고립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약자들의 연대가 불가능해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선생님의 작품들에서도 각 등장인물들이 사회적 약자임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성과 피해자성을 동시에 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불편한 온도」에서 정혜언니의 가르침을 빌어 “혼자서는 어쩔 수 없는 일들도 같이 하면 바꿀 수 있는 거”라는 연대의 힘을 신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날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연대의 가능성과 그 방식에 대해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다면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하명희 : 「불편한 온도」의 미주가 내게 특별한 인물이 된 것은 딱 한 발짝을 더 가본 것이에요. 정혜 언니의 죽음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인물이 외로움이나 쓸쓸함을 그것 자체로 발음할 수 있게 되기까지, 그것을 받아들인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딱 한 발짝의 변화가 있지 않을까. 체불된 임금을 받지 못하고 크레인에 올라온 아저씨를 허공에 두고 혼자 내려올 수 없어서 고민이 시작된 거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같이 내려가자, 내려가서 밥 먹자, 할 수 있는 힘은 뭔가 대단한 의지와 용기가 작동하지 않더라도 행동을 요구하니까요. 어떻게 할 거니? 같은 거요. 그 이후엔 미주의 세계가 굳이 ‘연대’라는 단어를 붙이지 않아도 그 전과 다른 방식으로 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크레인이 춤을 추는 것처럼 스스로를 움직이는 힘인 ‘행동(行動)’이란 그 한 발짝 때문에 사고(思考)의 춤, 마음의 연대가 될 수 있는 거죠. 이전과는 다른 것들이 생겨버리니까.


김대현 : 선생님의 소설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형식에 대한 고민도 놓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배경에 대한 묘사들이 인상 깊었는데요. 특히「목발」에서 구사대에 속했던 청년이 열쇠를 잃어버리고 일종의 패닉 상태에서 열쇠집을 찾기 위해 동네의 풍경을 가게의 이름으로 묘사하는 모습이 특별했습니다. 마치 왕가위 영화처럼 서사의 프레임이 고정되지 않고 모호한 시공간 속에서 불안정하게 부유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또한 「저녁의 목소리」는 마치 시와 희곡이 결합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명사구로 끝나는 간결한 묘사와 산문임에도 불구하고 운문의 특성을 가지는 문장들, 예컨대 ‘저녁이 반짝인다’, ‘저녁이 굴러간다.’ ‘저녁이 들썩인다.’처럼 문장 하나하나가 은유 속에서 리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묘사들이 나타나는 배경과 소설의 형식에 대해 선생님께서 고민하는 지점을 듣고 싶습니다.


하명희 : 「목발」의 공간은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요. 양말공장이 사라지고 그 자리가 공터가 되었는데, 매번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더라고요. 벽에 스프레이로 낙서가 씌어진달지 며칠 후에 가보면 그 낙서에 또 다른 낙서가 덧씌워져 있고. 길도 수시로 바뀌는데 외국인 노동자들이 거주하면서 낯선 가게가 들어서고 간판이 바뀌듯 무언가 계속 바뀌고요. 그 속도랄지 변화에 절뚝거리면서 걸어야 하는 목발을 짚은 인물이 떠올랐어요. 그 속도의 가해자이면서 노동 환경 변화의 피해자로. 왕가위 영화의 부유하는 느낌이라고 해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그 속도와 변화를 기록하고 싶었거든요. 열쇠를 잃어버려야 그 궤도에서 일탈해서 뒤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저녁의 목소리」는 ‘이야기가 없는 소설도 소설이 될까’를 고민할 때 썼어요. 유령이 나타나는 시간이 저한테는 저녁이거든요. 제가 보는 유령은 살면서 만나고 싶지만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인데 저녁이면 그 관계나 상황들로 들어가고 싶더라고요. 그 사람들은 가까운 죽음이기도 하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실종이기도 한데요. 저녁만 되면 그런 것들이 떠올라요. 그러면 유령의 시간인 저녁을 써보자 싶었지요. 그러다 보니 유령을 따라서 이야기가 해체되더라고요. 더 재밌는 건 유령의 문체는 명사형의 시가 되더라고요. 서로 대화를 하는 게 아니니까 이미지를 보여주게 되고요. 누군가 살구가 굴러다니는 산문시 같다고 해주셨는데, 딱 그렇게 써보고 싶었어요.


김대현 : 선생님의 소설을 읽다보면 일상에서 자주 사용되지 않는 고유어들, 예컨대 ‘곤두기침’, ‘발탄강아지’, ‘애줄없이’ 같이 사전을 찾지 않으면 익숙하게 해석되지 않는 단어들이 풍성하게 나타납니다. 이러한 낯선 고유어의 사용은 문학을 통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폭을 넓히고 사유의 경계를 확장하는 장점이 있지만, 소설에 사용될 경우 읽는 이로 하여금 온전히 서사에 몰입하는 과정을 지연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소설의 언어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하명희 : 대학교 때 최인훈 선생님 수업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소설 창작 시간인데도 선생님은 우리에게 소설 강독을 시키셨어요. 그때 월북 작가들의 작품이 해금되어서 막 출판이 되었던 때인데 이태준 전집을 강독 텍스트로 정하고 단편들을 수업 시간에 한 편씩 읽어나가는 거였거든요. 선생님의 주문은 모르는 단어는 무조건 찾아와라. 그거 하나였어요. 그때는 강독도 단어 찾는 것도 별로 재미없었거든요. 왜 소설 창작 시간에 합평도 아니고 이런 걸 해야 하나. 그런데 지나고 보니까 그게 남더라고요. 그때 제가 단어장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후에 편집 일을 하면서 그 단어장이 더 채워졌고요. 지금은 한 권 분량의 저만 보는 소설 사전이 만들어졌습니다.


   문제는 그 단어들이 대부분 현재는 쓰지 않는 사어(死語)라는 점인데요. 동사들은 죽었어도 명사나 부사, 형용사들은 되살리고 싶은 단어들이 많아요. 굳이 문장으로 쓰지 않아도 단어 하나로 해결되는 것들. 요즘 유행어로 ‘쓰담쓰담’ 같은 단어가 어떤 상태와 행동을 다 담고 있는 것처럼 발밤발밤 내려앉다, 비거스렁이를 하다, 왝댁거리고 가난살이가 뚝뚝 떨어지다…. 제 세대는 이 단어들을 쓸 수 있는 인물들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소설에 노인이 나올 때는 단어장을 활용할 수 있어서 신나요. 최인훈 선생님은 소설 창작에 대해 이런 걸 알려주신 것 같아요. 소설이란 단어 하나도 신중하게 고르고 절약해서 써야 한다. 그런 문장이 모여서 소설이 된다. 소설에 대한 어떤 큰 명구보다 선생님의 교수법이 저한테는 훨씬 큰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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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 이번에는 『나무에게서 온 편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이 소설은 선생님의 첫 번째 장편소설입니다. 전교조 창립 시기에 해직된 교사들과 이에 반발하여 학생운동에 투신하는 고등학생들의 이야기, 이른바 ‘고운’을 다룬 소설인데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저 또한 그 시기에 중,고등학교를 다녀서인지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만 그렇게 깊은 사연을 가진 고등학생 선배들의 이야기는 처음 접하는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선생님께서 당시 고운에 참여하게 되었던 동기와 고운의 활동 내용을 들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명희 : 직접 봤으니까요. 저는 선생님들이 해직되고 학교에서 쫓겨나는 것을 눈앞에서 직접 본 세대입니다. 그럴 때 나에게 묻게 되지요. 이게 뭘까, 인간화 교육 하자는 게 뭐가 잘못됐지? 왜 선생님들이 쫓겨나야 하지? 그 시기에 그런 질문들을 해본 거지요. 그 다음은 소설에서처럼 친구들을 만나고 고민을 나누고 또 행동을 하게 되었던 거구요. 그런데 그 경험이 왜 이렇게 사회화되지 않았을까, 가라앉아 있을까, 각자의 경험으로 숨어 있을까… 소설을 쓰면서 그것이 가장 궁금했었는데요. 제가 찾은 답은 1991년 봄, 그러니까 ‘자살정국’이라고 불렸던 그 봄이 너무 아픈 사회적 경험이었구나 싶더라구요. 단 두 달간 13명이 국가 공권력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그것을 알리기 위해 스스로 몸을 던진 그들에 대해 충분히 애도할 만한 공동의 시간이 없었다고 느꼈어요. 당시 전교조 해직 교사가 1,500여 명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각 학교별로 선생님을 돌려달라고 스스로를 조직했던 학생들은 그 열 배는 될 거예요. 그들은 학교에서 퇴학, 정학 등 징계를 감수했고요. 고운 세대라고 불리는 그들의 경험이 문학작품으로 나올 만도 한데 기다려도 안 나오길래 제가 쓴 거죠. 아마 세월호의 아이들이 자라면 그들이 직접 보고 겪은 2014년을 기록하게 될 겁니다. 너무 늦었지만 저도 그런 의미에서 1991년 봄을 끄집어내는 작업을 해야 했던 것 같아요.


김대현 : 묻고 싶은 것은 더 많은데 지면의 한계상 이제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현 시점에서 가장 궁금한 것은 다음 작품일 텐데요. 독자들을 위해 혹시 앞으로 나올 작품에 대해 간단한 소개나 현재 구상하고 있는 내용에 대한 간단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하명희 : 몇 년 전부터 30매 내외의 짧은소설을 연재하면서 한 달에 한 편씩 소설을 썼거든요. 요즘에는 단편소설 한 편을 한 자리에서 읽는 것이 힘들다고 그러잖아요. 예전엔 엽편소설이라고 했고, 최근엔 초단편, 스마트소설이라고도 하던데, 저는 외려 기존의 단편소설이 너무 길이에 제한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길이가 자유로운 단편소설집을 묶으려고요.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순간들, 사건들이라 읽다가 덮어도 되고 아무 쪽이나 펴서 읽을 수 있는 소설집이었으면 해요. 무겁기도 하고 찌질하고 웃기기도 하고 또 슬프기도 한 이야기가 한데 묶이면 좋겠다 싶어서요.


   또 하나는 「그림자들의 강」을 쓰면서 내 고향이 서울이구나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는데요. 하도 서울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서 그동안 저는 고향이 어디라고 말할 수가 없었거든요. 고향 있는 사람이 그렇게 부럽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에는 서울 곳곳을 돌아다닙니다. 워낙 서울이 유튜브 같은 곳이어서 팍팍 바뀌고 있기는 하지만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의 기억은 남아 있으니까요. 소설 연작 형식으로 서울 사람들 이야기를 한 편씩 쓰려고 합니다.


김대현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자유롭게 말씀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긴 시간동안 답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에 다시 기회가 되면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하명희 : 김대현 선생님의 『당신의 징표-이름의 존재론과 성(姓)의 정치학』을 읽었거든요. 그때 깜짝 놀랐어요. 글 쓰는 사람들도 다들 대학에 자리를 잡고 안정적인 지원이랄까 그런 것들을 추구하는 때에 선생님은 인문의 지평을 넓히는 작업을 하셨더라고요. 그 책에서 ‘이름’이라는 징표를 문화사회학적으로, 또 인류학적인 접근으로 풀어내셨는데, 특히 여자들이 자신이 거처하는 집(방)이나 출신 지역의 이름으로 불린 예들을 읽는데 너무 즐거웠어요. 사임당이나 난설헌, 혜경궁 홍씨 등이 그들이 거처한 작은 집의 이름을 쓴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자기만의 방’으로 연결시키진 못했거든요.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했던 버지니아 울프만 알고 있었던 거죠. 그런 발견이 자극이 되더라고요. 사고를 깨고 질문을 던지는 작업들. 그건 호기심을 가지고 있어야 할 수 있다는 걸 선생님 책을 보면서도 느꼈습니다. 저도 꾸준히 그런 작업들을 해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앞서 선생님이 짚어주신 문제들이 결코 쉬운 질문들이 아닌데 〈문화 다〉를 통해 이런 이야기를 고민해보고 나눌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웹진 <문화 다> 2019. 5월)

 

http://www.munhwada.net/home/m_view.php?ps_db=power_interview&ps_boid=47

출처 : 뉴스페이퍼(http://www.news-pap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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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19-05-23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봐야겠어요.

돌바람 2019-07-22 14:33   좋아요 0 | URL
너무 늦었네요. 고맙습니다^^
 

제22회 한국가톨릭문학상 시상식

본상 이승하 시인, 신인상 하명희 소설가 수상

발행일2019-05-19 [제3145호, 1면]    

5월 9일 열린 제22회 한국가톨릭문학상 시상식에서 본상 이승하 시인(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 신인상 하명희 소설가(이 시인 오른쪽)와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이 시인 왼쪽), 손태승 우리은행장(하 소설가 오른쪽) 등 관계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사진 이승훈 기자

가톨릭신문사(사장 이기수 신부)가 주최하고 우리은행(은행장 손태승)이 후원하는 제22회 한국가톨릭문학상 시상식이 5월 9일 오후 4시 서울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 5층 강당에서 열렸다.

본상은 「나무 앞에서의 기도」를 쓴 이승하(프란치스코) 시인, 신인상은 「불편한 온도」를 쓴 하명희 소설가에게 돌아갔다.

생명체에 대한 연민과 따뜻한 사랑이 관류하는 이승하 시인의 시들은 문학적 형상화가 뛰어다나는 평을 받으며 본상의 영예를 안았다. 시적 주제들이 가톨릭 신앙과 깊숙이 연결된다는 점도 높이 평가됐다. 소외된 이들의 현실을 가감 없이 담아낸 하명희 소설가의 「불편한 온도」는 구원 의식을 주제로 삼고 있어 향후 문단 전체에 좋은 모범이 될 수 있다고 심사위원은 평가했다. 심사에는 구중서 문학평론가, 신달자 시인, 이태수 시인이 참여했다.

두 작가의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시상식을 찾은 조환길 대주교(대구대교구장)는 “오늘 수상한 두 작품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태계가 처한 어려움과 연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는 종교가 가져야 할 자세이기도 하다”라며 “종교가 건드리기 쉽지 않은 인간 내면의 심성을 문학으로 표현하고, 생에 대한 가치를 높여준 것에 대해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가톨릭문학상이 걸어온 22년의 시간동안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과 후원사인 우리은행에 감사드리며 두 분의 수상자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함께하길 기도한다”고 전했다.

한국가톨릭문학상 운영위원장 이기수 신부는 인사말을 통해 “물질주의가 만연한 시대에 생명과 사랑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신 두 분 작가님께 감사와 축하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한국가톨릭문학상 후원사인 우리은행의 손태승 은행장은 “기쁨, 행복, 사랑 등 우리 삶에 있어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은 모두 공짜라고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얻기 위해서 용기라는 대가가 필요하다”며 “이번 한국가톨릭문학상 수상작을 비롯해 많은 문인들의 작품들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들을 얻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해주는 마음의 양식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

 

제22회 한국가톨릭문학상 시상식

고통 받는 생명을 위한 교회의 사명 일깨우다

● 운영위원장 이기수 신부
“물질주의 만연한 이 시대에 생명과 사랑의 중요성 언급”
● 본상 이승하 시인
“큰 상 받았다고 자만하지 않고 낮은 자세로 시에 정진할 것”
● 신인상 하명희 소설가
“고통의 호소 담은 책으로 수상 믿음과 격려 주신 데 감사”

발행일2019-05-19 [제3145호, 11면]

제22회 한국가톨릭문학상 시상식은 고통 받는 존재들을 감싸안는 교회 노력이 절실함을 다시금 깨닫는 장이었다.

가톨릭신문사(사장 이기수 신부)가 주최한 이번 시상식은 5월 9일 오후 4시 서울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 5층 강당에서 열렸다. 본상은 「나무 앞에서의 기도」를 쓴 이승하 시인이, 신인상은 「불편한 온도」를 쓴 하명희 소설가가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이날 시상식은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 가톨릭신문 사장 이기수 신부,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 사장 조정래 신부, 손태승 우리은행장, 이광복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등 내빈을 비롯한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해 두 작가의 수상을 축하했다.


■ 교회와 사회 등불 되는 가톨릭 문학

◎… 가톨릭신문사 사장이자 가톨릭문학상 운영위원장인 이기수 신부는 “매년 신록이 푸르른 아름다운 시기에 한국가톨릭문학상 시상식을 개최할 수 있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린다”고 시상식의 문을 열었다. 이어 “오늘 영예의 본상을 수상하신 시인 이승하 님, 신인상을 수상하신 소설가 하명희 님은 각자 작품을 통해 생명에 대한 연민과 사랑, 소외된 이웃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강조하고 있다”며 “물질주의가 만연한 시대에 생명과 사랑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신 두 분 작가님께 감사와 축하의 말씀을 드린다”고 전했다.

22년을 이어온 한국가톨릭문학상의 미래에 대한 다짐도 덧붙였다. 이 신부는 “앞으로도 가톨릭신문사는 우리은행과 함께 한국가톨릭문학상의 위상을 키우며 이 세상에 평화를 널리 전하는데 힘쓸 것을 다짐한다”며 “한국가톨릭문학상이 더 큰 열매를 맺어 우리 사회를 밝힐 수 있는 더 큰 등불이 될 수 있도록 여러분의 관심과 후원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 본상을 수상한 이승하(프란치스코) 시인은 ‘폭력과 광기가 사라진 세상을 향한 희망’에 대한 이야기로 수상소감을 시작했다. 그는 “주먹으로 때리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다”라며 “무단 방류하는 산업 폐기물, 남벌, 어류 남획도 모두 폭력이며 저는 이러한 것들이 사라졌으면 하는 간절한 기도를 담아 시집「나무 앞에서의 기도」를 펴냈다”고 말했다.

이어 “큰 상을 받으면 시세계가 약화되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각오로 더욱 정진하겠다”며 “제 자신을 높이지 않고 시를 쓰면서 자세를 낮추겠다”는 다짐의 말도 덧붙였다.


◎… 수상소감을 말하기 위해 단상에 오른 하명희 소설가는 “적어도 문학이란 슬픔을 슬픔이라고 온전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제 소설집 「불편한 온도」는 우리는 왜 슬픈데 슬프다고 말할 수 없나, 왜 이렇게 이해되는 것이 어려울까라는 각자의 호소들을 담아낸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등단 10년 만에 신인상을 수상한 하명희 소설가는 앞으로 소설가로서 정진하겠다는 각오도 밝혔다. 그는 “소설을 쓰면서 지치고 회의가 들 때면 오늘 주신 이상을 꺼내 한 번씩 쓰다듬도록 하겠다”며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강력한 믿음과 격려의 손을 얹어주신 심사위원들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 교회 안팎의 축하 인사

◎… 이날 시상식에는 교회 안팎의 인사들과 가톨릭 문인회 회원 등 저명한 문인들, 역대 수상자들이 함께 했다.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박명(토마스 아퀴나스) 사무총장은 축하연 건배사를 통해 “지금을 살아가는 평신도들이 활동을 할 수 있는 자양분을 책을 통해 전해주는 이번 가톨릭문학상 수상자를 비롯한 가톨릭문인회 회원들에게 감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 사무총장은 “22년 동안 한국가톨릭문학상을 꾸려오면서 책과 문학을 통해 성숙한 신앙생활을 돕는 가톨릭신문사와 우리은행에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 한국문인협회 이광복(프란치스코) 이사장은 “22회를 이어온 한국가톨릭문학상은 가톨릭의 이념을 살리고 있어 더욱 의미 있는 상”이라며 “이번에 수상한 이승하 시인과 하명희 소설가가 주님 안에서 큰 은총을 받으며 더욱 활발히 글을 쓰길 바란다”고 말했다.

20회 수상자인 이인평(아우구스티노) 시인은 “올해 좋은 작품이 한국가톨릭문학상에 뽑혀 더욱 뜻깊은 시상식이 된 것 같다”면서 “수상자들의 문학정신이 담긴 작품집이 말하고자 하는 밝고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우리 모두 힘써야 할 것”이라고 격려했다.
하 소설가의 딸 유지원(18)양은 “옆에서 엄마를 통해 세상의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울 수 있어 좋았다”면서 “너무 멋있는 엄마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왼쪽)가 이승하 시인에게 본상을 시상하고 있다.

손태승 우리은행장(왼쪽)이 하명희 소설가에게 신인상을 시상하고 있다.



5월 9일 열린 제22회 한국가톨릭문학상 시상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도를 바치고 있다.



시상식이 끝난 뒤 참석자들이 축하떡을 자르고 있다. 가톨릭신문사 사장 이기수 신부, 신달자 시인,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 본상 수상자 이승하 시인, 신인상 수상자 하명희 소설가, 구중서 문학평론가, 이태수 시인, 한국평협 박명 사무총장.(왼쪽부터)



이승하 시인(왼쪽)이 조환길 대주교에게 본상 수상작 「나무 앞에서의 기도」를 선물하고 있다.



시상식이 끝난 뒤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
사진 이승훈·성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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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9-05-19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수상소감도 아주 멋있어요 ^^

돌바람 2019-05-19 14:07   좋아요 0 | URL
아이고, 고맙습니다 하이네님! ^^

잉크냄새 2019-05-23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