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 - 2014 앙굴렘 국제만화제 대상후보작
톰 골드 지음, 김경주 옮김 / 이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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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앗을 읽었다. 왠지 마음이 아려왔다. 내가 읽은 성경은 이러지 않았는데, 골리앗을 그린 저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라는 궁금증이 컸지만 그보다는 더 빨리 성경에 나온 골리앗을 찾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왔다. 그러고나니 저자가 더 궁금해졌다. 골리앗을 그려낸 톰 골드는 분명 시인일 것이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상의 모습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혁명가와 같은 시인이 분명하다.

 

오래전에 성경공부를 할 때 신부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40년이나 광야를 떠돌며 약속의 땅 가나안을 찾아 헤매야했다는 말을 그대로 이해하면 안된다면서 수많은 유목민들이 떼를 지어 이동을 하는데 얼마나 많은 약탈과 싸움이 있었을지를 생각해보라고 하셨었다. 그들의 세력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힘이 없어서 광야를 떠돌았던 것이 아니라 그 기나긴 세월에 담겨있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라는 이야기로 이해하고 기억하고 있다. 이건 어쩌면 신부님의 말씀이 아니라 내가 기억하고 싶었던 나의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골리앗을 읽고난 후 문득 떠오른 그 기억은 성경안에 담겨있는 이야기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맞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하느님의 선택을 받지 못한 이가 곧 죄인임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인식해야 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 어쩌면 카인은 죄인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처음부터 하느님은 아벨의 번제물을 선택하셨을 뿐이지, 카인을 멀리하고 죄인으로 만든 것은 우리들 인간의 생각인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과도 통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달빛이 좋은 밤에 물을 마시러 강으로 내려갔다가 물속에 잠겨있는 조약돌을 꺼내어들고 살펴보는 거인 골리앗, 동료에게 줄까 했지만 필요없다는 말에 다시 한번 조약돌을 쳐다보고 물 속 원래 있던 곳으로 집어넣는 세심한 골리앗의 모습은 여섯암마와 한뼘이 더 큰 커다란 몸집을 가졌지만 마음은 순하디 순한 사람일뿐이다. 톰 골드가 그려낸 골리앗은 그런 사람이다.

 

골리앗을 읽고, 성경을 읽고, 다시 골리앗을 펼쳤다. 처음보다 더 마음이 아려온다. 골리앗이 죄인이라서가 아니라 다윗이 하느님에게 선택되었기에 그는 다윗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왜 그래야만 했는가는 하느님만이 아실지도 모르겠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예루살렘의 수많은 무죄한 어린이들이 죽임을 당한 이유를 인간인 나로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선택받은 민족이라며 팔레스타인의 영토를 빼앗고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선택된 신앙이라며 자신들이 세운 원리원칙을 내세우며 그에 맞지않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생명을 앗아가는 테러도 서슴지않는 것이 옳은 일인가. 테러리스트의 뿌리를 뽑는다며 테러와는 관계없이 이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하고 죄인처럼 대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

괜히 톰 골드의 골리앗만 다시 펼쳐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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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01 15: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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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예수
고진하 지음 / 비채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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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예수,라는 제목에서부터 나는 선입견을 갖기 시작했다. 내가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저자가 이야기하는 시 읽어주는 예수가 서로 상충하는 다른 느낌이라면 어쩌나 싶은 괜한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런데 목차를 훑어보는 순간, 아주 단순하게 말 그대로 '시 읽어주는' 예수라고 생각하고 그런 단순함에 대한 선입견을 가졌던 내가 얼마나 부끄러워지던지.

이 책에는 내가 어릴때부터 좋아했던 성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에서부터 윤동주의 십자가도 실려있고 작년 처음 읽고 손으로 옮겨적기까지 했던 이문재의 오래된 기도도 실려있다. 아니, 이 책은 단지 그 시를 옮겨 적은 것뿐만이 아니라 그 시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느끼게 하는 에세이다.

시를 읽고 그 안에서 무엇을 느끼고 어떤 의미를 인식해야 하고... 그런 평론적인 접근이 아니라 시적 감성으로 시를 읽은 감상과 세상에 대한 마음을 차분히 털어놓고 있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전투적인 마음이 사라지고 인간의 눈으로 바라 본 세상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영성으로 바라보는 세상을 느끼게 된다. 신앙인이 아니라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이 책을 읽는 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저자가 읽어주는 시와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세상을 향해 한걸음 다가선다는 것의 의미가 또 달라질 것이라 믿는다.

 

제주강정마을에는 군사기지가 한참 공사중이고 지금 75%정도 진행되었다고 한다. 신부님께서 강정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우리가 단지 군사기지 반대만을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앙인으로서 영성적인 접근을 하고 그 마을 주민들을 이해하며 도와줘야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괸당문화'라는 말이 있을정도로 대문도 없이 서로 한 형제처럼 지내던 마을 주민들이 서로 의견이 갈라져 싸우고 생활의 터전이었던 곳이 군시설로 수용되며 내쫓기게 되고 몇세기를 이어온 구럼비가 파괴되고 산호군락지가 파괴되면서 자연생태가 무너져가고 있는 것을 그대로 지켜보기만 할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려니 '제도종교가 잃어버린 영성의 깊이를 회복하고, 사소한 일상 속에 성소가 있음을 깨닫게 되고, 당신이 곧 우주의한 송이 꽃'임을 발견하게 되리라는 시 읽어주는 예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라는 말의 의미가 더욱더 깊이있게 다가오는 것은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마음이 퍽퍽해지고 세상이 왜 이러는가 싶을 때, 나는 지금 왜 이렇게 살아가고 있을까 싶을 때, 아니 그 어떤 아무런 이유가 없다하더라도 날마다 한 편씩 시 읽어주는 예수를 가까이 한다면 세상이 달라질 것이라 믿는다. 너무 거창한가? 내가 달라지고 영성의 깊이로 세상을 대한다면 분명 세상은 변하게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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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01 15: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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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lorful 80일간의 컬러풀 세계일주 (유럽 / 아시아 / 이집트 편) - 안티 스트레스 컬러링북 The Colorful 시리즈
스키아 지음 / 보랏빛소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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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링북과 퍼즐조각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단시간에 후다닥 끝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동안 들여다보면서 한조각씩 눈에 띌때마다 맞춰가는 재미가 있는 퍼즐처럼 컬러링북은 항상 가까운 곳에 두면서 어울리는 색이 떠오를 때, 아니면 무심코 오늘은 이 색으로 저곳을 채워넣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그렇게 조금씩 색을 입혀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 컬러링북을 받았을 때는 뭔가 숙제를 받은 학생처럼 비어있는 공간을 색으로 채워넣기 바빴고 그러다보니 작업처럼 느껴지는 컬러링북은 더이상 즐거운 책도, 아름다운 책도 되지 않아버렸다. 그런 당위감을 슬며시 내려놓게 된 것이 바로 이 책 80일간의 컬러풀 세계일주를 통해서였다.

 

  

 

솔직히 이 책은 무척 아름다운 그림이 담겨있다,라는 느낌은 아니다. '세계일주'라는 주제때문에 좀 더 다양하고 화려한 건물을 예상했는데 몇몇 그림은 너무 단순화된 형상이어서 아름답게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기 때문인지 색감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지 않고 정말 '안티스트레스'에 걸맞게 맘 편히 아무색이나 마구 칠해보는 실험적 컬러링을 하고 있다.

그에 대한 가장 어울리는 그림은 이집트를 상징하는 상형문자처럼 보이는 이 그림들이 있는 페이지인데 색의 강약을 조금씩 조절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린아이처럼 손에 잡히는 색연필을 집어들고 색을 입히고만 있다. 퇴근 후 날마다 조금씩 칠을 하다보면 정말 잡생각이 사라지고 생각이 단순해진다. 그러다가 좀 더 이쁘게 칠해보고 싶어지면 다른 페이지를 펼쳐놓고 한두개씩 색을 입히다보면 어느새 집중하고 있는 나를 보게된다.

그러고보니 퍼즐과 컬러링북의 가장 큰 차이는 머리속으로만 밑그림을 그려보는 퍼즐과는 달리 컬러링북은 직접 색을 입히는 동작이 들어간다는 것이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치매예방에 좋다며 컬러링북을 찾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컬러링북을 처음 접했을 때는 공간을 다 칠하려고 애를 썼고 색칠도 힘을 주어 진하게 넣으려고 했었는데 자꾸 하다보니 굳이 공간을 다 색으로 채워넣지 않아도 나름의 재미가 있고 단순하고 커다란 그림은 선을 따라 색을 넣는 것만으로도 달라 보이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무딘 색채감때문에 컬러링북이 오히려 스트레스북이 될 뻔했지만 보름이 넘는 시간동안, 연휴도 지내면서 슬쩍슬쩍 색칠을 하다보니 정말 안티스트레스가 되는 책임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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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의 이런 하루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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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연령 60세,라는 말에 나도 가만히 우리 식구들의 평균 연령을 생각해봤다. 꼬물거리는 조카를 데리고 다니는 친구들과는 달리 이미 대학교에 입학한 성인 조카들이 있는 나로서는 차마 딱 떨어지는 평균연령을 생각해보기가 무섭다. 더구나 지금 우리집에는 어머니와 나, 둘뿐이니 더더욱.

싱글인 마흔 살의 딸이 부모와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공감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전의 마스다 미리의 만화와 에세이를 읽으면서 느낀 '공감'이라는 것은 이런 환경적인 부분에서마저 공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물론 사와무라 씨 댁의 노부부는 건강하게 각자 자신의 삶을, 그러니까 건강을 위해 우리의 헬스장과 같은 짐에 다닌다거나 친구들을 만나 수다도 떨고 나름대로의 일상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좀 다르긴 하지만.

어머니는 혼자 외출을 못하시기 때문에 내가 출근하고 나면 온종일 집에 혼자 계신다. 할수있는 것이라고는 집안에서 식사를 하는 것과 티비를 보는 것 정도. 그러니까 오늘 같은 주말에도 내가 집에 있기는 하지만 나는 이런저런 일을 핑계로 방에 들어와 컴퓨터와 마주하고 있거나 피곤하다며 낮잠을 자버리곤 하는데 어머니의 일상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식사하고 졸다가 점심을 먹고 잠시 앉아있다가 티비 켜놓고 또 슬며시 잠들어버리고 마신다. 내가 잠깐 옆에라도 앉아서 말을 걸면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낼수 있을텐데.

그렇게 구체적인 상황은 조금씩 다르지만 사와무라 씨 댁의 이런 하루를 읽다보면 또다시 공감하지 않을수가 없다. 혼자 사는 딸이 지금이라도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되면 어머니는 혼자 지내야하는 처지를 생각해 마음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는 건 나 혼자만이 아니었구나 싶기도 하고, 예전에는 부모님이 나를 돌봐줬지만 이제는 내가 어머니를 돌봐줘야 하는 것, 지금의 매 순간순간이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독립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생각도 가끔 해보지만 지금의 이런 생활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는, 아니 오히려 어쩌면 이렇게 서로 의지가 되는 것도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러한 생각이 비슷한 환경과 비슷한 나이를 지나가는 우리들 모두의 공감되는 생각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야기가 너무 짧게 끝나버린 느낌이라 아쉬움이 남지만, 다음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지 기대되기도 한다. 만약 사와무라 씨 가족이 여행을 간다면 어떤 에피소드가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해 마스다 미리가 자신의 여행이야기만이 아니라 사와무라씨 가족 여행기도 그려준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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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28 15: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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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 6 - 아찔한 엘리베이터, 개정판
레모니 스니켓 지음, 홍연미 옮김, 브렛 헬퀴스트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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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대결의 제목을 보고서는 도무지 어떠한 내용이 담겨있을지 짐작을 할수가 없다. 뭐 솔직히 말하자면 제목에 그리 신경을 쓰며 읽는 성격도 아니고 여섯번째권의 제목도 책을 다 읽은 지금에야 무엇인가를 살펴봤으니 별다른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엘리베이터가 힌트가 되는 것이기는 하네.

이번에는 왠지 허를 찌르는 듯한 결말이라는 생각이 들어 좀 더 빨리 책을 읽었고 서둘러 다음 이야기를 펼쳐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나먼 곳을 돌아 보들레어 가 삼남매는 자신이 살던 동네의 스퀼러 씨 부부가 사는 펜트하우스에서 지내게 된다. 그곳으로 가게 된 이유는 오직 유행만을 추구하는 에스메이가 '고아를 입양하는 것'이 최신유행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유행은 누가 만들어내고 전파하는 것일까? 이 책에서도 그 실체가 드러나지는 않지만 단지 '유행'이라는 것 때문에 불편하고 불합리한 일상생활을 마다하지 않는 어른들의 모습은 이해할수가 없는 것을 넘어서 어리석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물론 조금은 극단적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더 그럴수도 있겠지만 가만히 우리의 현실 세계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결코 유행과 무관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할수없고 현명하게 살아가고 있다고도 할 수가 없다.

유행이기 때문에 싫은 것도 억지로 해야하고, 좋아하는 음식도 못 먹고 어둠의 거리에서 살며 펜트하우스까지 엘리베이터도 사용하지 못하고 걸어다녀야만 한다는 것은 '유행'이라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환경에서 보들레어 가 삼남매는 유행경매인 귄터로 위장한 올라프 백작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야 했고, 또 위험에 처한 쿼그마이어 세쌍둥이를 구출해야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닥친 시련과 위험은....

레모니 스니켓의 표현대로 '유사' 상상으로 해피엔드를 그려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유사 상상으로 만들어낸 해피엔딩은 진정한 해피엔딩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으로 만족할수는 없는 것이다.

이야기의 끝에 보들레어 아이들은 서로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으며 바이올렛의 발명 능력이나 클로스의 지식, 서니의 이가 좌절감을 안겨 줄 일은 결코 없으리라 믿고 있으며 앞으로 그 어떤 불운이 닥치고 그 어떤 '유사'품들이 끼어든다 하더라도, 보들레어 아이들은 서로를 의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씌어있다. 그리고 적어도 이것만큼은 이 세상에 언제까지나 진실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보들레어 가 삼남매의 위험한 대결은 끝나지 않았고 쿼그마이어 세쌍둥이의 행방도 찾을 수 없고,  V.F.D의 뜻이 무엇인지도 알아내지 못했지만 보들레어의 아이들은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모든 어려움을 헤쳐 나가리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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